2024-09-20
제38과모세의 선(1)
히브리서 11:24~26
읽을말씀 : 히브리서 11:24~26 | 외울말씀 : 히브리서 11:25 | 참고 말씀: 잠언 17:3
교육목표 :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와 같은 아름다운 선의 마음을 이루어 하나님 앞에 귀히 쓰임 받는 그릇으로 나오게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3500년 전, 모세는 출애굽의 지도자로서 400년간 애굽의 노예로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했습니다. 이처럼 큰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 명령에 절대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필요했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선한 중심을 지닌 모세를 택해 믿음으로 순종하도록 연단하시고 역사적인 사명을 감당하도록 축복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모세는 얼마나 지극한 선(善)을 지니고 있었기에 하나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아 출애굽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을까요?
1.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고난받는 것을 택했습니다
애굽 왕 바로는 이방 민족인 이스라엘이 자기 땅에서 더욱 번성하고 강대해지자 위협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로 부리며 심한 강제 노동을 시키고 학대했지요. 그런데도 그들이 더욱 번성하자 바로 왕은 이스라엘의 새로 태어나는 남자아이들은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후손들을 멸절시키겠다는 뜻이지요. 이처럼 암울한 시대에 모세는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석 달간 모세를 숨겨 키우지만(히 11:23)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갈대 상자에 모세를 넣어 강물에 띄워 보냅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 왕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온 하수로 그 갈대 상자가 떠내려오도록 역사하셨고, 이를 발견한 공주가 모세를 불쌍히 여겨 물에서 건져내지요. 이때 그 광경을 지켜보던 모세의 누나 미리암이 재빨리 모세의 친어머니를 유모로 추천합니다.
모세는 친어머니에게 양육 받으면서 민족과 하나님에 대해 배울 수 있었고, 바로의 궁전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진 일들이었지요.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공주의 양자가 되게 하여 보호하셨을 뿐만 아니라 친어머니의 신앙 안에서 자라도록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당시 애굽은 고도로 발달한 문명을 이룬 강대국이었기에 애굽의 왕자라면 그 권세 또한 막강했습니다. 그가 왕궁에서 공주의 양아들로 있는 한 일평생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지요. 하지만 모세의 마음 한편에는 항상 친어머니에게서 들은 하나님과 애굽에서 고통받는 자기 민족에 대한 연민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세는 애굽 사람이 자기 민족인 히브리 사람을 때리는 것을 보고 의분이 일어나 애굽 사람을 쳐 죽이고 맙니다. 그런데 다음 날 동족인 히브리인들끼리 싸움이 일어나 말리려 하자, 그들이 “네가 애굽 사람을 죽임같이 나도 죽이려느냐” 하며 노를 발했지요. 모세는 자기 나름대로 힘과 지식을 동원해 자기 민족을 도와주고자 했건만 오히려 그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만 것입니다. 결국 그는 애굽 사람을 죽인 일이 탄로나 애굽을 도망쳐 나옵니다.
모세가 자기 안일만 생각했다면 동족이 고통당하는 것을 보고도 자신에게 해가 미칠까 봐 모르는 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것을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했기 때문에, 자기 동족이 고통당하는 것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마음을 ‘선하다’ 인정하시고 출애굽의 지도자로 택하셨습니다. 도망자 신세가 된 모세는 언제 붙잡혀 목숨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강대국 왕자로서 누리던 영화도, 기름지고 호화스러운 생활도 사라져 버렸지요. 대신 거칠고 험한 광야에서 집도 없이 당장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하기 위해 고난의 길을 스스로 택했습니다. 이러한 모세에 대해 히브리서 11장 26절에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했지요.
2. 연단 중에 하나님을 믿으며 모든 것을 중심에서 감사했습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쳐 그곳에서 미디안 제사장인 이드로의 딸과 결혼해 양 무리를 치면서 살았습니다. 자신의 앞날에 대한 계획이나 자기 민족에 대해 가지고 있던 소망도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지요. 처음에는 너무나 비참하고 불안해 자신의 상황에 낙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왕자의 자존심이나 자신감도 사라지고 그저 평범한 양치기로서의 생활에 적응해 갔지요. 점점 광야 생활이 적응되어 가자, 이제는 마음의 연단이 시작되었습니다. 자신은 가진 자 같았으나 막상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없다고 느껴지니 공허함과 인생의 허무함이 밀려온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가질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꼈지요. 왕궁에 있을 때와는 달리 자기 임의대로 되는 것이 없고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것을 철저히 깨달으며 자신을 낮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슬퍼하거나 절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을 발견하는 새로운 눈이 뜨였습니다.
모세는 인생의 허무함을 깨닫는 순간부터 오히려 하나님께 대한 깊은 감사가 우러나왔습니다. 자신이 머무는 곳에 감사했고, 모든 일은 자신이 스스로 움직여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자신이 취하고자 해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항상 마음 중심에서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출애굽의 지도자로 부르실 때도 심히 자신 없는 모습으로 주저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40년 연단의 세월을 살면서 자신의 가치 없음과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철저히 느끼고 깨달았습니다. 자기 의분에 못 이겨 사람을 쳐서 죽였던 모세가 이처럼 낮아질 수 있었던 것은 연단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어떻게 보면 그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데 있어서 너무나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애굽 왕자로 있을 때는 자신감도 있고 권세가 있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무엇인가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제는 자기 생명조차 위협받는 도망자요, 민족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뜻하신 섭리를 이루기 위해 왕자로서 당당한 모세가 아니라 광야의 양치기로서 철저히 낮아진 모세를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철저히 자기 생각을 깨뜨리고 자기를 부인하여 하나님께만 온전히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을 통해 그 섭리를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연단 과정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모세는 연단의 시간을 통해 자신의 지혜와 능력과 방법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뜻을 이루기 위해 미리 준비시키시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는 그릇됨을 먼저 갖추게 하십니다. 이처럼 모세가 연단 중에도 하나님을 믿으며 모든 것을 중심에서 감사한 것을 하나님께서는 선하다고 인정하셨지요. 여러분은 혹여 연단을 받을 때 ‘내가 왜 이런 연단을 받아야 하나? 어떻게 혹독한 이 연단을 견뎌야 하나?’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그나마 가졌던 믿음마저 흔들리고 낙심해 절망하지는 않는지요?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며 아주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살아간 세월은 무려 40년이나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누가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힘들어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철저히 낮아진 마음으로 주어진 모든 상황과 환경에 대해 중심에서 감사했지요.
이처럼 철저히 자기를 비웠을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고 출애굽의 큰 사명을 주셨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합니다. 그런데 혹여 하나님 보시기에 아직 그릇 준비가 안 되어서 계속해 연단을 허락하시는데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감사함으로 받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잠언 17장 3절에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했습니다. 따라서 연단을 받을 때 마음 중심에서 감사했던 모세의 선을 기억하여 철저히 자신을 낮추며 모든 것에 오직 감사만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마지막 때에 귀히 쓰임 받는 좋은 그릇이 되어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 크게 나타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모세의 선에 관한 내용입니다. 밑줄 친 부분에 정답을 써넣어 보세요.
① ___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___받는 것을 택했다.
② ___ 중에 하나님을 믿으며 모든 것을 중심에서 ___했다.
2. 모세가 광야에서 연단을 받으며 하나님께 드리는 고백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께 사랑의 고백을 드려 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시여! 내가 어리석어서 하나님에 대해 깨우치지 못했으나 이제는 정녕 지는 해를 보고도 그곳에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심을 믿나이다. 내가 취하고자 하여도 취하여지지 않고 갖고자 해도 가질 수 없는 이같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요 허무한 자인데 나를 사랑하시며 나를 친히 부르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내 마음속에서 믿나이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바로’란?
고대 애굽 왕들의 일반적인 호칭이다.
애굽어 ‘프로’의 음역으로 본래 ‘커다란 집’을 뜻하는 단어였는데 점차 왕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교육목표 :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와 같은 아름다운 선의 마음을 이루어 하나님 앞에 귀히 쓰임 받는 그릇으로 나오게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3500년 전, 모세는 출애굽의 지도자로서 400년간 애굽의 노예로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했습니다. 이처럼 큰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 명령에 절대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필요했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선한 중심을 지닌 모세를 택해 믿음으로 순종하도록 연단하시고 역사적인 사명을 감당하도록 축복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모세는 얼마나 지극한 선(善)을 지니고 있었기에 하나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아 출애굽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을까요?
1.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고난받는 것을 택했습니다
애굽 왕 바로는 이방 민족인 이스라엘이 자기 땅에서 더욱 번성하고 강대해지자 위협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로 부리며 심한 강제 노동을 시키고 학대했지요. 그런데도 그들이 더욱 번성하자 바로 왕은 이스라엘의 새로 태어나는 남자아이들은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후손들을 멸절시키겠다는 뜻이지요. 이처럼 암울한 시대에 모세는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석 달간 모세를 숨겨 키우지만(히 11:23)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갈대 상자에 모세를 넣어 강물에 띄워 보냅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 왕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온 하수로 그 갈대 상자가 떠내려오도록 역사하셨고, 이를 발견한 공주가 모세를 불쌍히 여겨 물에서 건져내지요. 이때 그 광경을 지켜보던 모세의 누나 미리암이 재빨리 모세의 친어머니를 유모로 추천합니다.
모세는 친어머니에게 양육 받으면서 민족과 하나님에 대해 배울 수 있었고, 바로의 궁전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진 일들이었지요.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공주의 양자가 되게 하여 보호하셨을 뿐만 아니라 친어머니의 신앙 안에서 자라도록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당시 애굽은 고도로 발달한 문명을 이룬 강대국이었기에 애굽의 왕자라면 그 권세 또한 막강했습니다. 그가 왕궁에서 공주의 양아들로 있는 한 일평생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지요. 하지만 모세의 마음 한편에는 항상 친어머니에게서 들은 하나님과 애굽에서 고통받는 자기 민족에 대한 연민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세는 애굽 사람이 자기 민족인 히브리 사람을 때리는 것을 보고 의분이 일어나 애굽 사람을 쳐 죽이고 맙니다. 그런데 다음 날 동족인 히브리인들끼리 싸움이 일어나 말리려 하자, 그들이 “네가 애굽 사람을 죽임같이 나도 죽이려느냐” 하며 노를 발했지요. 모세는 자기 나름대로 힘과 지식을 동원해 자기 민족을 도와주고자 했건만 오히려 그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만 것입니다. 결국 그는 애굽 사람을 죽인 일이 탄로나 애굽을 도망쳐 나옵니다.
모세가 자기 안일만 생각했다면 동족이 고통당하는 것을 보고도 자신에게 해가 미칠까 봐 모르는 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것을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했기 때문에, 자기 동족이 고통당하는 것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마음을 ‘선하다’ 인정하시고 출애굽의 지도자로 택하셨습니다. 도망자 신세가 된 모세는 언제 붙잡혀 목숨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강대국 왕자로서 누리던 영화도, 기름지고 호화스러운 생활도 사라져 버렸지요. 대신 거칠고 험한 광야에서 집도 없이 당장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하기 위해 고난의 길을 스스로 택했습니다. 이러한 모세에 대해 히브리서 11장 26절에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했지요.
2. 연단 중에 하나님을 믿으며 모든 것을 중심에서 감사했습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쳐 그곳에서 미디안 제사장인 이드로의 딸과 결혼해 양 무리를 치면서 살았습니다. 자신의 앞날에 대한 계획이나 자기 민족에 대해 가지고 있던 소망도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지요. 처음에는 너무나 비참하고 불안해 자신의 상황에 낙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왕자의 자존심이나 자신감도 사라지고 그저 평범한 양치기로서의 생활에 적응해 갔지요. 점점 광야 생활이 적응되어 가자, 이제는 마음의 연단이 시작되었습니다. 자신은 가진 자 같았으나 막상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없다고 느껴지니 공허함과 인생의 허무함이 밀려온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가질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꼈지요. 왕궁에 있을 때와는 달리 자기 임의대로 되는 것이 없고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것을 철저히 깨달으며 자신을 낮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슬퍼하거나 절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을 발견하는 새로운 눈이 뜨였습니다.
모세는 인생의 허무함을 깨닫는 순간부터 오히려 하나님께 대한 깊은 감사가 우러나왔습니다. 자신이 머무는 곳에 감사했고, 모든 일은 자신이 스스로 움직여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자신이 취하고자 해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항상 마음 중심에서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출애굽의 지도자로 부르실 때도 심히 자신 없는 모습으로 주저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40년 연단의 세월을 살면서 자신의 가치 없음과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철저히 느끼고 깨달았습니다. 자기 의분에 못 이겨 사람을 쳐서 죽였던 모세가 이처럼 낮아질 수 있었던 것은 연단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어떻게 보면 그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데 있어서 너무나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애굽 왕자로 있을 때는 자신감도 있고 권세가 있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무엇인가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제는 자기 생명조차 위협받는 도망자요, 민족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뜻하신 섭리를 이루기 위해 왕자로서 당당한 모세가 아니라 광야의 양치기로서 철저히 낮아진 모세를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철저히 자기 생각을 깨뜨리고 자기를 부인하여 하나님께만 온전히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을 통해 그 섭리를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연단 과정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모세는 연단의 시간을 통해 자신의 지혜와 능력과 방법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뜻을 이루기 위해 미리 준비시키시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는 그릇됨을 먼저 갖추게 하십니다. 이처럼 모세가 연단 중에도 하나님을 믿으며 모든 것을 중심에서 감사한 것을 하나님께서는 선하다고 인정하셨지요. 여러분은 혹여 연단을 받을 때 ‘내가 왜 이런 연단을 받아야 하나? 어떻게 혹독한 이 연단을 견뎌야 하나?’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그나마 가졌던 믿음마저 흔들리고 낙심해 절망하지는 않는지요?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며 아주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살아간 세월은 무려 40년이나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누가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힘들어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철저히 낮아진 마음으로 주어진 모든 상황과 환경에 대해 중심에서 감사했지요.
이처럼 철저히 자기를 비웠을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고 출애굽의 큰 사명을 주셨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합니다. 그런데 혹여 하나님 보시기에 아직 그릇 준비가 안 되어서 계속해 연단을 허락하시는데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감사함으로 받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잠언 17장 3절에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했습니다. 따라서 연단을 받을 때 마음 중심에서 감사했던 모세의 선을 기억하여 철저히 자신을 낮추며 모든 것에 오직 감사만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마지막 때에 귀히 쓰임 받는 좋은 그릇이 되어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 크게 나타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모세의 선에 관한 내용입니다. 밑줄 친 부분에 정답을 써넣어 보세요.
① ___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___받는 것을 택했다.
② ___ 중에 하나님을 믿으며 모든 것을 중심에서 ___했다.
2. 모세가 광야에서 연단을 받으며 하나님께 드리는 고백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께 사랑의 고백을 드려 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시여! 내가 어리석어서 하나님에 대해 깨우치지 못했으나 이제는 정녕 지는 해를 보고도 그곳에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심을 믿나이다. 내가 취하고자 하여도 취하여지지 않고 갖고자 해도 가질 수 없는 이같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요 허무한 자인데 나를 사랑하시며 나를 친히 부르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내 마음속에서 믿나이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바로’란?
고대 애굽 왕들의 일반적인 호칭이다.
애굽어 ‘프로’의 음역으로 본래 ‘커다란 집’을 뜻하는 단어였는데 점차 왕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