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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공과
2024-09-13 제37과사도 바울의 선(2) 로마서 9:1~3
읽을말씀 : 로마서 9:1~3  |  외울말씀 : 로마서 9:3 | 참고 말씀: 고린도후서 12:1~5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최고의 선을 이룬 사도 바울의 마음과 행함을 살펴보면서 하나님 앞에 귀히 쓰임 받을 수 있게 한다.


   사도 바울은 한번 받은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개치 않았습니다. 심한 고난과 핍박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오히려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의 향은 더욱 진하게 하나님께 올려졌지요. 악으로 나오는 상대를 위해 자신의 생명도 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놀라운 권능을 베풀어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렸습니다.
   신약 시대 최고의 사도요, 권능을 베풀었던 사도 바울이 어떻게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최고의 선을 이룰 수 있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자신을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 생명을 줄 수 있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주님처럼 영혼들을 사랑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이유가 오직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마음 깊이 깨우치기 때문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계시면서도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을 위해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또한 “내가 목마르다.” 말씀하시며 영혼 구원에 대한 간절한 심정을 나타내 주셨지요.
   그러므로 주님을 사랑한다면 죄로 인해 사망을 향해 가는 영혼들을 긍휼과 사랑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영혼 사랑이 얼마나 컸던지 빌립보서 1장 8절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극심한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오히려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셨던 것처럼, 모진 핍박과 환난을 겪을 때도 자신에 대한 염려와 근심이 아니라 오직 교회와 성도들을 염려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고후 11:28~29). 또한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면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애통하였지요(빌 3:18).
   사도 바울은 영혼들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각처의 교회를 다니면서 어찌하든지 성도들이 복음의 진리 안에 살도록 밤낮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복음을 받아들인 성도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복음을 배척하고 핍박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지요. 그래서 로마서 9장 1~3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 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이란 사도 바울의 육적인 일가친척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로서 바울을 핍박하고 훼방했던 사람들을 가리키지요. 심지어 유대인 중에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동맹한 자들도 있었습니다(행 23:12~13). 그런데도 바울은 자신이 구원받지 못할지언정 자신을 핍박하고 훼방하는 사람들은 구원받기를 원하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악으로 나오는 상대를 위해 자신의 생명도 줄 수 있는 최고의 선을 이루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는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구보다 지옥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이 그들이 구원받을 수만 있다면 자신이 대신 지옥에 가기를 원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영혼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2. 큰 권능과 깊은 계시를 받았다 해도 모든 영광을 온전히 주님께 돌렸습니다
   
   신약 시대 최고의 권능을 베풀었던 사도 바울은 태어나면서부터 앉은뱅이를 걷게 하는가 하면 독사에게 물려도 해를 받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는 희한한 능이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크고 놀라운 권능을 행하면서도 그는 결코 자신을 드러내거나 높아지지 않았고 오직 주님께만 영광을 돌렸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도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백하지요. 이처럼 겸손한 마음을 지닌 사도 바울은 날마다 죽어지는 삶을 통해 성결을 이루었고 하나님과 밝히 교통하며 하늘의 신령한 것들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천국도 보게 해 주시고, 하늘에서 얻게 될 상급도 알려 주셨지요.
   결국 사도 바울은 영의 것에 대해 사모함이 더해졌으며, 영의 깊은 계시를 받아 하나님과 주님과 성령님에 대해, 또한 천국과 멜기세덱에 대해서도 밝히 알았습니다. 그는 깊은 영의 말씀들을 마음에 잘 간직하였다가 은혜받을 만한 사람에게는 들려줌으로 주님을 더 사랑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지요. 하지만 은혜를 받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할 사람들에게는 전하지 않았습니다.
   
   
   3. 자신을 들레는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악의 모양이 있는 사람들은 어떤 깨달음이 오거나 환상을 보고 비밀스러운 말씀을 들으면 자신을 들레는 수단으로 이용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선한 사람들은 기도 중에 영의 깨달음이 왔다면 그것을 마음에 담아 자신에게 적용합니다. 영안이 열려 무엇을 보아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더 영으로 정진해 들어가려 하며, 자신을 들레지 않지요. 또 깊고 비밀스러운 영의 말씀을 들으면 그 말씀을 붙들고 어찌하든 자신이 변화되고자 노력합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에게도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깊은 계시를 받으며 하나님과 깊은 교통을 이룬다.” 하지 않았습니다. 선한 마음의 바탕 위에 오래 참음과 절제의 열매가 맺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말도 받지 못할 사람에게는 하지 않았고, 능히 말할 수 있는 것도 혹여 실족 당할 사람이 있을까 하여 절제하였지요. 그래서 고린도후서 12장 1~5절에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했던 것입니다.
   또한 천국에 대해 알려 줌으로 성도들에게 소망을 주고자 하되 자신을 자랑하는 마음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에 대한 마음이 각별했는데, 자기 자신이 기도하여 얻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안에 계신 성령의 역사로 된 것임을 늘 중심에서 인정했습니다.
   혹여 여러분 중 “내가 기도해 보니 이렇더라. 내 마음에는 그렇게 주관되지 않는다.”라고 쉽게 말하지는 않습니까? 물론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연히 성령의 음성을 듣고 주관, 인도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마치 자신만 특별히 영으로 뛰어난 것처럼 들레는 마음에서 행동하지 않는지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목자님께 기도 받은 손수건(행 19:11~12)으로 환자가 치료받았을 때 온전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는지, 아니면 자신을 조금이라도 들레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는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마음이 선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지 않습니다. 온전히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지요. 결코 자신의 능으로 된 것이 아님을 중심에서 인정하기에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며 담대히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한 사람이 육으로는 연약해 보일 수 있어도 영으로는 오히려 강하고 담대하고 능력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의 의를 철저히 깨뜨린 후에는 아무리 크고 놀라운 역사를 베풀어도 늘 중심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의 능력으로 할 수 있었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니 권능을 행할수록 자신은 더 낮아지고 하나님의 영광은 더 커져만 갔지요.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선한 중심을 찾아 은사도 주시고 권능도 주셔서 크게 쓰십니다. 고린도전서 11장 1절에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여러분도 최고의 선을 이루어 마지막 때 영광의 도구로 귀히 쓰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사도 바울에 관한 설명입니다. 맞는 것에 표시해 보세요.
   ① 신약 시대 최고의 사도로서 놀라운 권능을 베풀었다( )
   ②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개치 않았다( )
   ③ 악으로 나오는 상대를 위해 자신의 생명도 줄 수 있었다( )
   ④ 스데반 집사가 순교하던 현장에 있었다( )
   ⑤ 바울에 의해 쓰인 바울 서신은 총 14권이다( )
   
   2. 사도 바울의 선이 자신에게는 얼마나 맺혀 있는지를 점검해 보세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바울 서신’이란?
   
   바울에 의해 쓰인 편지들을 말한다.
   신약 성경 27권 중에는 사도 바울에 의해 쓰인 서신서 14권이 있다.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히브리서가 있다.
   그중에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는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기록한 것이기에 옥중서신이라고 한다.
지난 주 설교요약
2024-09-08 십계명(3) - 제3계명 - 이수진 목사 출애굽기 20:7
십계명 중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세 번째 계명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
   
   출애굽기 20장 7절에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말씀합니다. ‘죄 없다 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죄 있다.” 정죄하신다는 말이지요.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 했으니, 죄 있다 정죄 받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사망의 형벌을 받게 되며 결국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엄위한 명령을 주셨는데도 어떤 사람들은 십계명 중에 이런 말씀이 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 중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하지 못하고 망령되이 일컫는 경우가 종종 있지요. 물론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진리를 좇아 살고자 한다면 무심결에라도 이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사전에 보면 ‘망령되다’는 말은 ‘늙거나 정신이 흐려 말과 행동이 정상을 벗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다’는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바르게 사용하지 않고 경건치 못하며 허망하게 사용하는 것을 말하지요. 자기 생각을 말하면서 하나님 말씀인 것처럼 말하고 자기 뜻대로 행동하면서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 하거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나 농담하는 등 여러 경우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평소에는 하나님을 찾지도 않던 사람들이 자기 생각에 맞지 않는 일을 당하면 “하나님도 무심하시다.” 원망하거나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어찌 이런 일이 있는가!” 하기도 하지요.
   모든 영광과 존귀를 받기에 합당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이름을 감히 피조물의 입장에서 망령되이 거론한다면 하나님께서 어찌 죄 없다 하시겠습니까?
   
   
   2.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을 죄 있다고 하시는 이유
   
   1)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철학자 중에도 “신은 죽었다.” 한 사람이 있고, 일반인 중에도 “하나님은 없다.”는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래전, 구소련의 한 우주 비행사가 “우주에 가보았지만, 하나님은 아무 데도 안 계시더라.” 했다고 하지요. 극히 미미한 우주 공간을 탐험하고 모든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을 자신의 눈으로 보지 못했다고 안 계신다고 한다면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시편 53:1)
   겸손한 마음으로 천지 만물을 바라보는 사람은 얼마든지 창조주 하나님의 증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 수많은 전도자가 있어서 살아 계신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주지요. 그런데도 스스로 마음을 강퍅하게 하므로 믿지 않으면서 하나님에 대해 함부로 말한다면 어찌 죄 없다 하시겠습니까?
   
   2)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홀히 여긴다’는 것은 하찮게 여기며 우습게 여긴다는 말입니다. 시편 96편 4절에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극진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보다 경외할 것임이여”, 디모데전서 6장 16절에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 했고, 심지어 출애굽기 33장 20절에는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할 정도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피조물이 감히 바라볼 수 없을 만큼 크고 위대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예전에 양심이 선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해도 하늘에 관한 것에는 존칭어를 썼습니다. 비가 올 때도 “비가 오시네.”라고 존칭을 썼는데, 비록 하나님을 알지는 못하지만 막연하게나마 전능하신 조물주가 계셔서 하늘로부터 비를 내려주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인 사람에 대해서도 부모님이나 존경하는 분에 대해서는 함부로 이름을 부르지 않고, 꼭 불러야 할 때는 존칭을 붙여 표현했지요. 하물며 하나님에 관해서 언급하는데 얼마나 경건한 자세로 대해야 하겠습니까? 한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삼갔다고 합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이 나오면 직접 언급하지 않으려고 ‘아도나이’ 곧 ‘나의 주님’이라고 읽었지요.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 중에서도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무익한 말로 농담하면서 성경 구절을 엉뚱하게 인용하거나 하나님 이름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므로 말씀을 소홀히 여긴다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가령, 자기 유익을 구하면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양보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말하는 것도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기 생각 속에 떠오른 것을 “하나님께서 음성을 주셨다.” 하거나 “성령께서 주관하셨다.” 하는 경우이지요. 만약 제가 전혀 하지 않은 말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면서 “당회장님이 말씀하셨어요.” 한다면 저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혹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상대를 움직이기 위해 “당회장님의 뜻이에요.” 한다면 그 사실을 제가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민망하겠는지요?
   이처럼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헛된 말을 해서도 안 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헛된 말을 한다면 심히 무례한 일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생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선악 간에 행하는 모든 말과 행실을 손금을 보듯이 다 알고 계십니다. 항상 불꽃 같은 눈동자로 모든 사람의 삶을 지켜보시고 각자가 행한 대로 심판하시지요. 이러한 하나님을 정녕 믿는다면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죄를 범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지극히 경외하므로 대화 중에도 늘 신중하며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죄를 범치 않도록 삼가 주의하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기억하실 것은, 정녕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을 말할 때만 아니라 하나님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도 근신하고 절제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성경 말씀을 대하거나 인용할 때도 하나님을 중심으로 경외한다면 경건한 마음으로 대하게 되지요. 또 성전과 성물을 대할 때도 자기 물건보다 더 소중히 조심스럽게 다루고, 하나님의 재정을 집행할 때도 근신하여 아무리 적은 액수라도 정확하게 집행합니다.
   만약 교회 재정으로 구비한 물컵을 깨뜨리거나 성전 안의 거울이나 창문을 깨뜨렸다면 모른척하고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해도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된 성물이기 때문입니다. 기관, 선교회 등의 회비도 사사로이 사용하면 안 되고, 임원회의 후 지출해야 한다는 것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보장하시는 하나님의 사람에 대해서나 성령의 역사에 대해 말할 때도 이 모든 것이 하나님과 직접 관련되는 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간섭하시는 분야에 대해 사람이 육신의 생각 속에서 판단하거나 무례하게 말하지 않도록 삼가 조심해야 하지요. 하나님을 존중하고 경외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 속한 모든 것을 경건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 거짓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역사에 거짓 선지자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은 것을 하나님 말씀이라고 선포하거나 알려주신 예언이라고 하여 백성들을 미혹하지요. 이들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내가 고하라고 명하지 아니한 말을 어떤 선지자가 만일 방자히 내 이름으로 고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엄히 경계하십니다(신 18:20).
   요한계시록 21장 8절에는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했는데, 여기서 거짓말하는 자란 바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말하는 자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이름으로 거짓말하여 죄 있다 정죄함을 받게 된다면 스스로 심판을 자초하게 됩니다. 거짓 선지자들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말한 것이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지요. 레위기 19장 12절에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말씀한 대로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 중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혀 하나님의 역사가 아닌데도 “내가 기도하다가 이런 성령의 음성을 들었다. 내 마음에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관하셨다.” 하거나, 어떤 일이 되어가는 것을 보고 무조건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루셨다.” 말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역사라면 상관이 없지만 성령의 음성이나 주관이 아닌데도 습관적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라면 문제이지요.
   물론 하나님의 자녀라면 마땅히 성령의 음성을 들어야 하고 범사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해서 무조건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죄를 버리고 마음이 진리로 채워지는 만큼 정확하게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진리 안에 살지 않고 세상과 짝하는 사람은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자기 안에 비진리가 가득하면서도 들레는 마음과 자신을 과시하려는 의도로 자기 생각에서 나온 것을 성령의 역사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이때는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도 거짓말하는 것이 됩니다. 또한 성령의 음성을 조금씩 듣는다 해도 100%가 되기까지는 성령의 음성인지 아닌지 스스로 분별하는 훈련 과정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아직 확실히 분별하지 못할 때는 함부로 성령의 역사라고 단정해서 말하는 일은 삼가야 합니다.
   성령의 음성뿐 아니라 꿈이나 환상 등 여러 영적인 체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꿈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꿈도 있지만 사람이 자기 생각 속에서 꾸는 꿈과 사단이 역사해서 꾸는 꿈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닌데도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라고 말한다면 하나님 앞에서 합당하지 않은 것이지요.
   또 어떤 사람이 성령의 이름으로 말할 때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신중해야 합니다. 만약 어떤 분이 제게 와서 “성령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다면 아무리 소자의 말이라 해도 저는 그것을 무시하거나 반박하지 않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정말 성령의 음성이라면 제가 그것을 거역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지요. 물론 저 역시 성령의 음성을 들으므로 상대의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기도해서 정확히 알기 전에는 그 말이 “성령의 음성이다.” 혹은 “아니다.” 하고 경솔하게 단정 짓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자신이 범죄하여 사단의 역사로 재앙을 만났으면서도 “하나님께서 치셨다.” 합니다. 또 자기 생각대로 일이 풀어지는 것 같으면 “내가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축복하셨다.” 하고는 얼마 후 그것이 꼬이고 막히면 “하나님께서 막으셨다.” 하고 말을 바꾸는 등 습관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합당하지 않게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이렇게 하면서 자기편에서는 믿음의 고백이라 하지만, 진실한 중심에서 나오는 믿음의 고백과 들레고 경솔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끌어들이는 말은 전혀 다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중심으로 경외하며 항상 깨어 기도해 마음을 점검하시므로 하나님께 영광만 돌리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의 모든 말과 행동을 보장하시며 여러분을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시므로 천국에서도 가장 영화로운 자리까지 인도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4년 9월 8일 주일)
* 사회: 임학영 목사
개회찬송 48장 1절
성시교독 1번
찬송 57장
기도 이미영 목사
성경봉독 출애굽기 20:8~11
찬양 주의 사랑 안에서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십계명(4) - 제4계명①
당회장 이수진 목사
찬송 만민 찬양 192장
주일 저녁예배 (2024년 9월 8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장성식 목사
대표기도 오인숙 전도사
성경봉독 욥기 33:27~34:2
특송 김진희 권사
설교 욥기 강해(97) - 자기 자신을 알자⑥
당회장 이수진 목사
수요 예배 (9월 11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성기용 전도사
대표기도 박금미 전도사
성경봉독 요한계시록 19:7~8
설교 주님의 신부
김상휘 목사
금요 철야예배 (9월 13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주현철 목사
대표기도 이영인 전도사
성경봉독 창세기 1:6~8
찬양 샬롬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창세기 강해(27) - 육각형
이재록 원로목사
새벽 예배
인도 황금란 목사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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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4-09-08 2024년 9월 둘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새로 나오셔서 등록해 주신 분들과 인터넷으로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당회장님 동정

● 당회장님의 신앙칼럼이 「기독선교신문」, 「서울뉴스통신」 등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9월 13일(금)부터 국내 주요 언론사인 「동아일보」에 '실로암' 칼럼 제목으로 정기 게재됩니다.


● 교회 소식

● 원로목사님의 저서 「권능」 보스니아어(862번째), 「근본의 소리를 발하라」 마케도니아어(863번째), 「지혜」 우간다 국가의 공용어인 루간다어(864번째)가 종이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 다음 주 추석연휴 관계로 9월 22일자 주보 광고를 9월 10일(화)까지 접수 바랍니다.

● 9월 7일(토) ~ 11월 30일(토)까지 진행될 「만민문화아카데미」 관련 소식이 인터넷신문 「K-Daily 뉴스」와 「뉴스렉카」에 게재되었습니다.

● 「9월 은사집회」가 9월 27일 금요 철야예배 시 당회장님의 인도로 있습니다.
환자접수를 오늘까지 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세한 사항은 교회 홈페이지와 모바일앱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 제23회 말씀퀴즈대회 시상식이 오늘 저녁예배 시 있습니다.

● 사랑하는 성도님들의 행복한 신앙생활을 위해 만민라디오 「좋으신 하나님」25회가 만민중앙교회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오늘 저녁예배 후 업로드 됩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관심과 청취 바랍니다.
※ 25회 라디오 진행자: 이미경 목사

● 원로목사님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고) 교보문고, 영풍문고, 북스리브로, 예스24, 인터파크, 알라딘 등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자책(e-book) 및 오디오북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교구 소식

여조장 월례회/ 9월 9일(월) 오후 1시 사택예배실(강사: 임학영 목사)


● 기관 소식

화요찬양예배 운영팀
만민 화요찬양예배(학생·청년·가나안 선교회)/ 9월 10일(화) 오후 8시 사택예배실
※ 인도: 최나영 자매(화요찬양예배 후 오후 9시 30분부터 다니엘철야 진행)


● 성도 소식

전진수3 형제(1청년)/ 제48회 전국대학레슬링선수권대회 자유형 남자 70kg급에서 금메달 획득


● 감사드립니다.

강단헌화/ 김종은5 집사(1가나안)(꽃꽂이 봉사: 예배국 꽃꽂이부, 시설관리국)
주간 성경구절
2024-09-08
[주일]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렘 32:27]
2024-09-09
[월요일]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시 105:4]
2024-09-10
[화요일]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 5:48]
2024-09-11
[수요일]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암 3:7]
2024-09-12
[목요일]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고후 9:6]
2024-09-13
[금요일]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고후 9:7]
2024-09-14
[토요일]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시 6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