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3
제37과사도 바울의 선(2)
로마서 9:1~3
읽을말씀 : 로마서 9:1~3 | 외울말씀 : 로마서 9:3 | 참고 말씀: 고린도후서 12:1~5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최고의 선을 이룬 사도 바울의 마음과 행함을 살펴보면서 하나님 앞에 귀히 쓰임 받을 수 있게 한다.
사도 바울은 한번 받은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개치 않았습니다. 심한 고난과 핍박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오히려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의 향은 더욱 진하게 하나님께 올려졌지요. 악으로 나오는 상대를 위해 자신의 생명도 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놀라운 권능을 베풀어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렸습니다.
신약 시대 최고의 사도요, 권능을 베풀었던 사도 바울이 어떻게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최고의 선을 이룰 수 있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자신을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 생명을 줄 수 있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주님처럼 영혼들을 사랑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이유가 오직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마음 깊이 깨우치기 때문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계시면서도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을 위해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또한 “내가 목마르다.” 말씀하시며 영혼 구원에 대한 간절한 심정을 나타내 주셨지요.
그러므로 주님을 사랑한다면 죄로 인해 사망을 향해 가는 영혼들을 긍휼과 사랑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영혼 사랑이 얼마나 컸던지 빌립보서 1장 8절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극심한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오히려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셨던 것처럼, 모진 핍박과 환난을 겪을 때도 자신에 대한 염려와 근심이 아니라 오직 교회와 성도들을 염려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고후 11:28~29). 또한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면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애통하였지요(빌 3:18).
사도 바울은 영혼들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각처의 교회를 다니면서 어찌하든지 성도들이 복음의 진리 안에 살도록 밤낮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복음을 받아들인 성도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복음을 배척하고 핍박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지요. 그래서 로마서 9장 1~3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 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이란 사도 바울의 육적인 일가친척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로서 바울을 핍박하고 훼방했던 사람들을 가리키지요. 심지어 유대인 중에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동맹한 자들도 있었습니다(행 23:12~13). 그런데도 바울은 자신이 구원받지 못할지언정 자신을 핍박하고 훼방하는 사람들은 구원받기를 원하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악으로 나오는 상대를 위해 자신의 생명도 줄 수 있는 최고의 선을 이루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는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구보다 지옥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이 그들이 구원받을 수만 있다면 자신이 대신 지옥에 가기를 원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영혼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2. 큰 권능과 깊은 계시를 받았다 해도 모든 영광을 온전히 주님께 돌렸습니다
신약 시대 최고의 권능을 베풀었던 사도 바울은 태어나면서부터 앉은뱅이를 걷게 하는가 하면 독사에게 물려도 해를 받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는 희한한 능이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크고 놀라운 권능을 행하면서도 그는 결코 자신을 드러내거나 높아지지 않았고 오직 주님께만 영광을 돌렸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도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백하지요. 이처럼 겸손한 마음을 지닌 사도 바울은 날마다 죽어지는 삶을 통해 성결을 이루었고 하나님과 밝히 교통하며 하늘의 신령한 것들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천국도 보게 해 주시고, 하늘에서 얻게 될 상급도 알려 주셨지요.
결국 사도 바울은 영의 것에 대해 사모함이 더해졌으며, 영의 깊은 계시를 받아 하나님과 주님과 성령님에 대해, 또한 천국과 멜기세덱에 대해서도 밝히 알았습니다. 그는 깊은 영의 말씀들을 마음에 잘 간직하였다가 은혜받을 만한 사람에게는 들려줌으로 주님을 더 사랑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지요. 하지만 은혜를 받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할 사람들에게는 전하지 않았습니다.
3. 자신을 들레는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악의 모양이 있는 사람들은 어떤 깨달음이 오거나 환상을 보고 비밀스러운 말씀을 들으면 자신을 들레는 수단으로 이용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선한 사람들은 기도 중에 영의 깨달음이 왔다면 그것을 마음에 담아 자신에게 적용합니다. 영안이 열려 무엇을 보아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더 영으로 정진해 들어가려 하며, 자신을 들레지 않지요. 또 깊고 비밀스러운 영의 말씀을 들으면 그 말씀을 붙들고 어찌하든 자신이 변화되고자 노력합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에게도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깊은 계시를 받으며 하나님과 깊은 교통을 이룬다.” 하지 않았습니다. 선한 마음의 바탕 위에 오래 참음과 절제의 열매가 맺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말도 받지 못할 사람에게는 하지 않았고, 능히 말할 수 있는 것도 혹여 실족 당할 사람이 있을까 하여 절제하였지요. 그래서 고린도후서 12장 1~5절에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했던 것입니다.
또한 천국에 대해 알려 줌으로 성도들에게 소망을 주고자 하되 자신을 자랑하는 마음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에 대한 마음이 각별했는데, 자기 자신이 기도하여 얻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안에 계신 성령의 역사로 된 것임을 늘 중심에서 인정했습니다.
혹여 여러분 중 “내가 기도해 보니 이렇더라. 내 마음에는 그렇게 주관되지 않는다.”라고 쉽게 말하지는 않습니까? 물론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연히 성령의 음성을 듣고 주관, 인도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마치 자신만 특별히 영으로 뛰어난 것처럼 들레는 마음에서 행동하지 않는지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목자님께 기도 받은 손수건(행 19:11~12)으로 환자가 치료받았을 때 온전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는지, 아니면 자신을 조금이라도 들레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는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마음이 선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지 않습니다. 온전히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지요. 결코 자신의 능으로 된 것이 아님을 중심에서 인정하기에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며 담대히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한 사람이 육으로는 연약해 보일 수 있어도 영으로는 오히려 강하고 담대하고 능력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의 의를 철저히 깨뜨린 후에는 아무리 크고 놀라운 역사를 베풀어도 늘 중심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의 능력으로 할 수 있었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니 권능을 행할수록 자신은 더 낮아지고 하나님의 영광은 더 커져만 갔지요.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선한 중심을 찾아 은사도 주시고 권능도 주셔서 크게 쓰십니다. 고린도전서 11장 1절에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여러분도 최고의 선을 이루어 마지막 때 영광의 도구로 귀히 쓰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사도 바울에 관한 설명입니다. 맞는 것에 표시해 보세요.
① 신약 시대 최고의 사도로서 놀라운 권능을 베풀었다( )
②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개치 않았다( )
③ 악으로 나오는 상대를 위해 자신의 생명도 줄 수 있었다( )
④ 스데반 집사가 순교하던 현장에 있었다( )
⑤ 바울에 의해 쓰인 바울 서신은 총 14권이다( )
2. 사도 바울의 선이 자신에게는 얼마나 맺혀 있는지를 점검해 보세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바울 서신’이란?
바울에 의해 쓰인 편지들을 말한다.
신약 성경 27권 중에는 사도 바울에 의해 쓰인 서신서 14권이 있다.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히브리서가 있다.
그중에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는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기록한 것이기에 옥중서신이라고 한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최고의 선을 이룬 사도 바울의 마음과 행함을 살펴보면서 하나님 앞에 귀히 쓰임 받을 수 있게 한다.
사도 바울은 한번 받은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개치 않았습니다. 심한 고난과 핍박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오히려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의 향은 더욱 진하게 하나님께 올려졌지요. 악으로 나오는 상대를 위해 자신의 생명도 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놀라운 권능을 베풀어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렸습니다.
신약 시대 최고의 사도요, 권능을 베풀었던 사도 바울이 어떻게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최고의 선을 이룰 수 있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자신을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 생명을 줄 수 있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주님처럼 영혼들을 사랑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이유가 오직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마음 깊이 깨우치기 때문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계시면서도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을 위해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또한 “내가 목마르다.” 말씀하시며 영혼 구원에 대한 간절한 심정을 나타내 주셨지요.
그러므로 주님을 사랑한다면 죄로 인해 사망을 향해 가는 영혼들을 긍휼과 사랑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영혼 사랑이 얼마나 컸던지 빌립보서 1장 8절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극심한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오히려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셨던 것처럼, 모진 핍박과 환난을 겪을 때도 자신에 대한 염려와 근심이 아니라 오직 교회와 성도들을 염려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고후 11:28~29). 또한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면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애통하였지요(빌 3:18).
사도 바울은 영혼들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각처의 교회를 다니면서 어찌하든지 성도들이 복음의 진리 안에 살도록 밤낮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복음을 받아들인 성도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복음을 배척하고 핍박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지요. 그래서 로마서 9장 1~3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 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이란 사도 바울의 육적인 일가친척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로서 바울을 핍박하고 훼방했던 사람들을 가리키지요. 심지어 유대인 중에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동맹한 자들도 있었습니다(행 23:12~13). 그런데도 바울은 자신이 구원받지 못할지언정 자신을 핍박하고 훼방하는 사람들은 구원받기를 원하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악으로 나오는 상대를 위해 자신의 생명도 줄 수 있는 최고의 선을 이루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는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구보다 지옥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이 그들이 구원받을 수만 있다면 자신이 대신 지옥에 가기를 원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영혼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2. 큰 권능과 깊은 계시를 받았다 해도 모든 영광을 온전히 주님께 돌렸습니다
신약 시대 최고의 권능을 베풀었던 사도 바울은 태어나면서부터 앉은뱅이를 걷게 하는가 하면 독사에게 물려도 해를 받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는 희한한 능이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크고 놀라운 권능을 행하면서도 그는 결코 자신을 드러내거나 높아지지 않았고 오직 주님께만 영광을 돌렸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도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백하지요. 이처럼 겸손한 마음을 지닌 사도 바울은 날마다 죽어지는 삶을 통해 성결을 이루었고 하나님과 밝히 교통하며 하늘의 신령한 것들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천국도 보게 해 주시고, 하늘에서 얻게 될 상급도 알려 주셨지요.
결국 사도 바울은 영의 것에 대해 사모함이 더해졌으며, 영의 깊은 계시를 받아 하나님과 주님과 성령님에 대해, 또한 천국과 멜기세덱에 대해서도 밝히 알았습니다. 그는 깊은 영의 말씀들을 마음에 잘 간직하였다가 은혜받을 만한 사람에게는 들려줌으로 주님을 더 사랑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지요. 하지만 은혜를 받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할 사람들에게는 전하지 않았습니다.
3. 자신을 들레는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악의 모양이 있는 사람들은 어떤 깨달음이 오거나 환상을 보고 비밀스러운 말씀을 들으면 자신을 들레는 수단으로 이용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선한 사람들은 기도 중에 영의 깨달음이 왔다면 그것을 마음에 담아 자신에게 적용합니다. 영안이 열려 무엇을 보아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더 영으로 정진해 들어가려 하며, 자신을 들레지 않지요. 또 깊고 비밀스러운 영의 말씀을 들으면 그 말씀을 붙들고 어찌하든 자신이 변화되고자 노력합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에게도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깊은 계시를 받으며 하나님과 깊은 교통을 이룬다.” 하지 않았습니다. 선한 마음의 바탕 위에 오래 참음과 절제의 열매가 맺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말도 받지 못할 사람에게는 하지 않았고, 능히 말할 수 있는 것도 혹여 실족 당할 사람이 있을까 하여 절제하였지요. 그래서 고린도후서 12장 1~5절에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했던 것입니다.
또한 천국에 대해 알려 줌으로 성도들에게 소망을 주고자 하되 자신을 자랑하는 마음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에 대한 마음이 각별했는데, 자기 자신이 기도하여 얻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안에 계신 성령의 역사로 된 것임을 늘 중심에서 인정했습니다.
혹여 여러분 중 “내가 기도해 보니 이렇더라. 내 마음에는 그렇게 주관되지 않는다.”라고 쉽게 말하지는 않습니까? 물론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연히 성령의 음성을 듣고 주관, 인도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마치 자신만 특별히 영으로 뛰어난 것처럼 들레는 마음에서 행동하지 않는지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목자님께 기도 받은 손수건(행 19:11~12)으로 환자가 치료받았을 때 온전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는지, 아니면 자신을 조금이라도 들레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는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마음이 선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지 않습니다. 온전히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지요. 결코 자신의 능으로 된 것이 아님을 중심에서 인정하기에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며 담대히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한 사람이 육으로는 연약해 보일 수 있어도 영으로는 오히려 강하고 담대하고 능력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의 의를 철저히 깨뜨린 후에는 아무리 크고 놀라운 역사를 베풀어도 늘 중심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의 능력으로 할 수 있었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니 권능을 행할수록 자신은 더 낮아지고 하나님의 영광은 더 커져만 갔지요.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선한 중심을 찾아 은사도 주시고 권능도 주셔서 크게 쓰십니다. 고린도전서 11장 1절에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여러분도 최고의 선을 이루어 마지막 때 영광의 도구로 귀히 쓰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사도 바울에 관한 설명입니다. 맞는 것에 표시해 보세요.
① 신약 시대 최고의 사도로서 놀라운 권능을 베풀었다( )
②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개치 않았다( )
③ 악으로 나오는 상대를 위해 자신의 생명도 줄 수 있었다( )
④ 스데반 집사가 순교하던 현장에 있었다( )
⑤ 바울에 의해 쓰인 바울 서신은 총 14권이다( )
2. 사도 바울의 선이 자신에게는 얼마나 맺혀 있는지를 점검해 보세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바울 서신’이란?
바울에 의해 쓰인 편지들을 말한다.
신약 성경 27권 중에는 사도 바울에 의해 쓰인 서신서 14권이 있다.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히브리서가 있다.
그중에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는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기록한 것이기에 옥중서신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