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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옥(6)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눅16:22-26 등록일자 2009.03.08
지난 시간까지는 잠시 지옥 설교를 중단하고 온전한 주일성수,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에 대해 설명해 드렸습니다. 이제 다시 지옥설교가 이어집니다. 이번 시간에는 아랫음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누가복음 16장 24절에는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간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했습니다. 여기서 부자가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는 곳이 바로 아랫음부이지요.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이 불과 유황의 지옥에 들어가기 전에 대기하는 곳이 바로 아랫음부입니다.

1. 음 부

1) 윗음부와 아랫음부
천국과 지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음부라는 공간을 알아야 합니다. 음부는 천국에 속한 윗음부와 지옥에 속한 아랫음부로 나뉘는데, 천국에 속한 윗음부는 구원받은 영혼들이 대기하는 장소입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구약시대에, 더 정확히 말하면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는 윗음부에 대기했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이후에는 주님의 공중강림 때까지 천국, 낙원의 대기장소에 거합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들은 이제 3일 동안만 윗음부에 머무는데, 육의 몸에서 빠져나온 영혼이 영의 세계에 적응하는 기간입니다. 또한 윗음부는 잉태된 지 6개월 이상 된 태아가 죽은 경우, 그 영혼이 영원히 거하는 처소이기도 합니다. 이 땅에 태어나지도, 경작받지도 못했기에 이처럼 별도의 공간에 거하는 것입니다.
아랫음부는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의 대기장소입니다. 인류 역사 이래로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은 곧바로 지옥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아랫음부에 머물다가 백보좌 대심판을 받은 후에 불못이나 유황못에 들어갑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3절 이하에 ‘바다와 사망과 음부가 죽은 사람을 내어주고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이들은 심판받아 불못에 던져진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옥의 제일 윗부분이 아랫음부입니다. 더 깊이 내려가면, 그 아래에는 더 깊은 지옥, 곧 대심판 후 들어가는 불못과 유황못이 있습니다. 가장 깊은 곳에는 악한 영들을 가두는 무저갱이 있습니다.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영혼들은 아랫음부에서 형벌을 받으며 갇혀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수천 년 전에 죽은 영혼도 있고, 바로 며칠 전에 죽은 영혼도 있습니다. 길게는 수천 년 동안 자신이 지은 죄악대로 참혹한 형벌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2) 구원 여부에 달라 달라지는 임종
그런데 사람이 임종할 때의 표정을 보면, 구원 여부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생전에 영안이 열리지 않은 사람도 호흡이 끊어지기 전, 마지막 순간에는 영안이 열려 영의 세계를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이때 두 천사를 보게 됩니다.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해 마중 나온 천사들을 보는 것입니다. 환한 빛 속에 대기한 이 천사들을 본 사람들은 미소 띤 얼굴로 평안히 눈을 감습니다. 이들은 윗음부에 가게 되며, 그 시체도 비교적 오래도록 경직되지 않습니다. 마치 잠든 듯 보일 정도로 생전의 모습이 잘 보존됩니다.

반면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죽으면, 두 지옥사자가 와서 그 영혼을 아랫음부로 끌고 갑니다. 죽기 직전에 영안이 열려서 이 지옥사자를 본 사람들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숨을 거둡니다. 두려움과 고통 속에 죽어가며, 눈을 뜬 채로 숨을 거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얼굴빛도 어둡고 몸도 뻣뻣하게 굳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의 경우, 천사들과 지옥사자들이 이 영혼을 두고 힘을 겨루기도 합니다. 구원 여부가 확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천사들이 영혼을 데려가려고 하면, 지옥사자들이 “이 사람에게는 구원받을만한 믿음이 없다.” 하며 계속 송사합니다. 이런 경우, 믿음이 좋은 사람들이 가서 예배를 드리고 찬송을 불러주어야 합니다.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갖도록 계속해서 믿음을 심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2. 아랫음부

1)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의 대기장소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은 두 지옥사자에 의해 아랫음부로 끌려갑니다. 그리고는 큰 구덩이 같은 곳에 던져집니다. 구원받은 영혼들은 몸에서 빠져나온 후 윗음부에서 3일간 적응기간을 거친다 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도 3일 동안 아랫음부의 대기장소에 거하는데, 큰 구덩이가 바로 이런 대기장소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도 육의 몸을 벗은 직후에는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합니다. 따라서 지옥이라는 영의 세계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구원받은 영혼들이 윗음부나 낙원에 머물 때는 오직 기쁨과 평안만 있습니다. 눈물, 슬픔, 애통이 있는 이 땅의 삶이 다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누리게 될 영광스런 삶에 대한 소망으로 충만하고 행복합니다. 그러나 아랫음부는 이렇게 안식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이 땅의 슬픔, 고통과 비할 수 없는 참혹한 고통이 시작되는 곳이며, 어떤 소망도 가질 수 없는 곳입니다. 지옥사자에게 끌려와 대기 장소, 곧 큰 구덩이에 던져질 때부터 이런 끔찍한 현실에 직면하게 됩니다.

크고 날카로운 부리를 가진 갖가지 새들이 날아와서 구덩이 안에 있는 사람들을 쪼아댑니다. 이 새들은 징그럽고 흉측하게 변형된 영물(靈物)로서, 이 땅의 조류와는 다릅니다. ‘이미 육에서 분리된 영혼이 무슨 고통을 느낄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새들 또한 영물이기 때문에 영혼에게 해를 입힐 수 있습니다. 이 새들에게 쪼이면 극심한 통증을 느낍니다. 날카로운 부리에 쪼일 때마다 몸이 찢겨 피가 나고 살가죽이 벗겨져 나갑니다. 피하고자 해도 피할 곳이 없습니다. 구덩이 안에서 비명을 지르며 버둥대거나 몸을 움츠릴 따름입니다.

수많은 영혼들이 커다란 구덩이 안에서 정신없이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지옥을 믿지 않던 이들도 이런 상황에 닥치면 ‘지옥이 정말 있었구나.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두려움에 몸서리칩니다. 다시 돌아갈 길도 없고, 이 끔찍한 현실을 벗어나게 도와줄 이도 없습니다. 큰 구덩이에서 이렇게 3일을 지낸 영혼들은 자신의 죄목과 죄악의 경중에 따라 형벌 받을 장소로 옮겨집니다.

2) 전쟁터와 같은 아랫음부의 참상
아랫음부는 어둡고 습하면서도 불길이 끊임없이 지글지글 타오릅니다. 스산함과 불쾌함이 소름을 돋게 하며, 끊임없이 때리고 찌르고 찢는 고문으로 인해 영혼들은 쉼 없이 비명을 지르며 신음합니다. 눈이 있어도 눈이 있는 것이 아니요, 입이 있어도 입이 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손이 있고 발이 있어도 손발이 있는 것이 아닌 고통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이 땅에서는 팔다리가 한 번 잘리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아무리 심한 고통을 겪는다고 해도 생명이 다해 죽으면 그만입니다. 또한 기절이라도 하면 잠시나마 극심한 고통을 모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은 팔, 다리, 목 등 그 어느 부위를 베어낸다 해도 다시 붙습니다. 피를 흘리고 또 흘려도 다함이 없습니다. 고문으로 피부가 벗겨지고 뼈가 으스러지며 장기가 밖으로 쏟아져 나와도 잠시 후면 원래대로 회복됩니다. 그러면 처음부터 다시 고문이 시작됩니다. 형벌이 되풀이 되고 또 되풀이 되는 것입니다. 영혼은 영원불멸의 존재이기 때문에 죽을 수도 없습니다. 잠시 잠깐의 쉼도 용납되지 않는 것입니다. 극심한 고통으로 울부짖는 소리, 고막을 찢는 듯한 날카로운 비명 소리, 신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귓전을 울립니다.

전쟁터의 참혹한 풍경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자신의 팔다리가 저 멀리로 떨어져 나간 것을 보고 울부짖는 사람, 눈알이 빠진 사람, 머리가 터져 뇌수까지 쏟아져 나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사람, 이 곳 저 곳에서 들리는 요란한 폭음에 손 내미는 동료도 뿌리치고 혼비백산하는 병사들, 자욱한 포연과 먼지로 숨 막히도록 매캐한 공기, 피비린내, 신음과 비명, 울부짖음 등이 난무합니다. 이런 혼란스런 전장을 가리켜 사람들은 흔히 ‘생지옥’이라 하는데, 이런 전쟁터와 비할 수 없이 너무나 공포스럽고 참혹한 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지옥에서 감당할 수 없는 형벌로 괴로워하며 ‘어찌하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까?’ 고민하지만, 실낱같은 희망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보이는 것이라곤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참혹한 현실과 더 깊은 곳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과 유황의 지옥뿐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결국 불못 또는 유황못에 떨어질 것을 압니다. 이런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이들에게는 고문으로 인한 고통에 정신적인 고통까지 가중됩니다. 이곳도 이렇게 괴로운데 저 불 속은 어떨까? 얼마나 더 고통스러울까? 어떻게 견딜까, 내가 왜 이곳에 들어왔을까 후회하고 또 후회할 뿐입니다. 끝없는 한숨과 탄식만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다음 시간부터는 연령에 따라, 죄악의 경중에 따라 아랫음부에서 받는 형벌에 대해 자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최근 유럽의 한 도시에서 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진화론의 주창자인 찰스 다윈의 탄생 200주년 기념행사에 즈음하여 “아마도 신은 없을 것이다. 이제 걱정을 멈추고 인생을 즐겨라.”라는 광고판을 버스에 달았다고 합니다. 신이 없다면 정말로 인생을 즐길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안 계시다면 천국도 지옥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이제 마음껏 즐길 수 있겠다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가 않습니다. 법이 없는 사회는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울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공의, 절대적인 진리가 없는 세상이 결코 편할 리가 없습니다. 그 누가 참된 선을 추구하며 살겠으며, 그 누가 이웃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겠습니까? 대부분의 사람이 짧은 인생을 최대한 즐기려고 욕망을 좇아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살 것입니다. 이런 세상이 즐거울까요? 그야말로 고통스러운 생지옥일뿐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날마다 깨닫고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오직 선을 좇아 살아가심으로 지옥과 전혀 상관없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9-03-09 오후 10:07:07 Posted
2018-06-25 오후 5:23:37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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