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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천국(37)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약1:12 등록일자 2008.01.13
지난 시간에는 3천층의 모든 환경이 2천층과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천국은 새예루살렘에 가까워질수록 행복, 기쁨, 평안의 정도가 커지기 때문에, 3천층에서 느끼는 행복의 정도가 2천층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오늘은 영으로 일군 마음을 지닌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생명의 면류관에 대해 증거하겠습니다.

1. 생명의 면류관의 의미

하나님께서 3천층의 영혼들에게 기본적으로 주시는 면류관이 있는데 바로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생명의 면류관이라는 이름을 붙이신 이유는 3천층에 들어온 영혼들이 주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드리는 시험을 통과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자격시험을 통과하면 자격증이 주어지듯이, 주를 위해 생명을 바치는 시험을 믿음으로 통과한 사람만이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본문 야고보서 1:12을 보면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했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참는다’는 것은 억지로 눌러 참는 것이 아니라 참을 필요조차 없는 단계를 뜻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마음에 악이 있더라도 어느 정도까지는 눌러 참을 수 있지만, 극한 상황이 되면 결국 참지 못하고 악한 말이나 행동으로 나오게 됩니다.

순전하고 정직하다는 욥도 그러했습니다. 재산과 자녀를 잃었을 때는 시험을 통과한 것처럼 보였지만, 자기 몸에 연단이 가해지자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자신의 생명과 연관되자 친구들과 변론하며 성내고 분을 발하는 등 악한 모습들이 나왔던 것입니다. 욥이 자신의 악을 깨닫고 철저히 회개하여 변화되니 비로소 성결의 단계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2. 생명을 드리는 시험의 사례

저에게도 생명을 잃는 시험이 여러 차례 왔는데 그 중 두 가지 사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생명을 잃는 시험이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첫 번째 생명을 잃는 시험은 1990년도의 목사 파직 사건입니다. 당시 소속돼 있던 교단 총회에서 본 교회에 몇 가지 시정 명령을 내렸습니다. 신앙간증책 판매 금지, 설교테이프 판매 금지, 지교회 명칭에서 ‘만민’이라는 이름 삭제, 예술선교단 해체 등 모두 터무니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상소 이유서를 보내고, 성경에 비춰 무엇이 어긋나는지 알려 주면 시정하겠다고 했습니다. 교단 총회에서는 우리의 상소 이유서를 “이유가 없어서 기각하기로 했다”고 통고했습니다. 선배 목사님들은 교단의 머리들이 콜라를 보고 사이다라고 해도 “아멘” 하고, 무조건 잘못 했다고 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그래야 저와 교회가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진리를 보고 비진리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정녕 하나님을 믿고 사랑한다면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한 저와 교회는 악으로 대항치 않았고, 오직 선과 사랑으로만 행했습니다. 결국 대의원 300명 중 90여 명밖에 참석치 않은 교단 총회에서 48명의 동의로, 목사 파직이 가결되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교단에서 가장 큰 교회가 되자 시기 질투의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목사가 파직을 당한다면 생명을 잃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의를 지킨 사람을 결코 저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성결의 오중복음을 마음껏 외칠 수 있는 새로운 장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두 번째 생명을 잃는 시험은 1992년에 있었습니다. 바로 엄청난 양의 피를 흘렸던 일입니다. 병원에 가서 간단한 조치만 받으면 되는 상황이었지만 세상을 의존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늘 외쳤던 제가 막상 죽음 앞에서 세상과 타협할 수는 없었습니다.

차라리 생명을 잃을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는 길을 택하였습니다. 결국 저의 목숨은 끊어졌고, 제 영혼은 주님 앞에 갔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마지막 때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도록 다시 살려 주셨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굳게 지키는 것이 생명을 드리는 시험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3. 생명을 드리는 시험의 영적인 의미

3천층에 들어가는 믿음의 4단계는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입니다. 내 부모와 자녀, 그리고 내 자신보다 하나님을 제일로 사랑하는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을 지녀야 생명을 잃는 시험도 거뜬하게 통과할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초, 중,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크고 작은 많은 시험을 보면서, 자신의 점수를 확인하고 계속해서 단계를 밟아 올라갑니다. 그리고 대입 시험을 보는 것처럼 신앙 안에서 믿음을 확인하는 시험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 받은 이후, 믿음이 성장함에 따라 계속해서 크고 작은 시험이 따르게 됩니다. 생활 속에서 매 순간 ‘진리를 택할 것이냐, 세상과 타협할 것이냐?’ 하는 시험이 옵니다. 그때마다 진리를 택하는 사람은 그만큼 시험을 통과해서 영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번번이 세상과 타협한다면 믿음이 성장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퇴보할 수도 있지요.

갈라디아서 5:17에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했고, 로마서 7:22-23에는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여 항상 성령의 소욕만을 좇아 나가면 믿음의 시험들을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육체의 소욕입니다. 하나님을 믿기 전에 만들어진 ‘자아’가 ‘내 뜻’ 대로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머리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때로는 육체의 소욕을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서도 반대로 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는 마음이 곤고해지기도 하지요.

하지만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육체의 소욕을 끊어 나가야 합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내 원대로 살고자 하는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백한 대로입니다. 어떤 순간에도 항상 주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 되었다면 그는 정녕 자기 생명을 드린 것과 같습니다. 나를 형성하고 있었던 육을 온전히 벗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를 ‘살아서 하는 순교’라고 합니다. 또한 이것이 ‘죽도록 충성’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0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했습니다. 보통 ‘충성’이라 하면, 맡은 사명을 열심히 감당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진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충성은 영적인 충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우선적으로 우리가 영의 마음을 이루는 참 자녀가 되길 원하십니다. 물론 사명 감당도 동반되어야 합니다. 사명을 감당해야 자신을 더 발견할 수 있고 변화되기도 쉽기 때문입니다.

간혹 사명 감당에만 열심을 내고 영적인 충성에는 소홀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땀 흘리며 봉사를 하는 열정이 있다면, 죄를 싸워버리는 데도 열심을 내야 합니다. 마음에 남은 죄성들을 늘 점검해야 하지요. 그리고 그것을 뽑아내기까지 불같이 기도해야 합니다. 늘 마음에 명심하고 있으면서 행함으로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잠시 스치는 비진리의 생각이었을지라도 다시 떠오르지 않도록 기도해야 하며, 미세하게 요동했던 악의 감정이라도 뽑아버리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영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만져지지 않기에 때론 막막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사랑하기에 믿음으로 성실하게 죄를 벗어 버리는 것, 이것을 바로 충성되다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영으로 조금씩 더 들어올 때마다 반드시 더 큰 사랑을 나타내 주십니다. 기도의 응답도 더 빨라지고, 모든 일의 형통한 정도도 달라집니다. 영으로 들어가는 것이 처음에는 힘들게 느껴진다 할지라도, 영으로 변화될수록 수월해집니다.

4. 육의 목숨을 잃는 순교에 대해

생명의 면류관은 생명을 바치는 시험을 믿음으로 통과했을 때 주어지기 때문에, 주님의 이름으로 순교한 사람들도 3천층에 들어가서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됩니다. 순교할 당시에는 비록 성결 되지 못했다 해도 ‘순교했다’는 사건을 통해 그들의 중심이 인정되는 것입니다.

생명의 위협 앞에서도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순교할 중심이라면, 더 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을 때 능히 육을 벗고 성결되어 영의 마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선교지에서 죽었다 하여 무조건 순교라 할 수는 없습니다. 스스로는 세상과 타협치 않으며 믿음을 지키다 죽었다 해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순교가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이 순교한 것 같다 해도, 그 믿음과 중심은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정말 믿음과 사랑으로 순교한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본문에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님께서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순교에 대해서는 나중에 순교로 3천층에 들어간 사례를 소개할 때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양심 심판으로 구원받은 영혼 중에서도 3천층에 들어가는 경우가 있는데, 양심 심판이란 무엇이며 그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008-01-14 오후 10:05:00 Posted
2018-06-25 오후 5:15:59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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