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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천국(38)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롬2:14-15 등록일자 2008.01.20
지난 시간에는 3천층에 들어갈 수 있는 신앙의 자격과 그들에게 주어지는 생명의 면류관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알지 못한 사람들 중에도 너무나 의로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구원의 길을 마련해 주셨는데 바로 양심 심판입니다. 오늘은 양심 심판을 통해 구원받는 경우에 대해 증거하겠습니다.


1. 양심 심판

사도행전 4:12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했고, 요한복음 3: 18에는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했습니다.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세주라 입술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어야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이 땅에 구세주로 오시기 전인 구약 시대의 사람들과 신약 시대라도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양심 심판’ 입니다.

로마서 2:14-15에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했습니다. 여기서 율법은 하나님께서 택한 선민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것으로 구원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율법의 기준에 합당한 사람은 구원받지만 합당하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율법을 범했을 때 속죄할 수 있는 방법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이방인들에게는 율법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도 율법을 행한 것으로 인정받는 경우가 있는데, 자기 양심에 따라 선을 행한 경우입니다.

‘양심’이란,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 놓은 선과 악을 구분하는 판단 기준입니다. 사람마다 타고난 마음 밭과 성장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양심도 저마다 다 다릅니다. 또 사람이 보기에는 양심이 바르다 해도, 하나님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깨끗한 양심을 찾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양심은 온전치 않지만, 그 안에 있는 선과 악을 통해 나름대로의 판단 기준을 가지고 ‘이것은 선이다’ 판단하여 선을 좇거나, ‘이것은 악이다’ 판단하여 좇지 않게 합니다. 이러한 양심은 곧 율법과 같은 역할을 하는데, 이를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라고 한 것입니다.

따라서 율법이 없는 시대의 사람은 양심에 따라 선을 좇거나 악을 좇지 않으면 율법을 지킨 것과 같습니다. 반대로, 양심에서 악인 줄 알면서도 행하거나 선인 줄 알면서도 행치 않았다면 율법을 어긴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율법이 없는 시대의 사람은 양심이 증거가 되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이후에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마음이 선한 사람들은 질서 있게 창조된 천지만물을 보아도 신의 존재를 믿습니다.

로마서 1:20에는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했고, 전도서 3:11에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했습니다. 마음이 선한 사람들은 본성적으로 신을 찾으며 막연하게나마 사후의 세계가 있음을 믿습니다. 하늘을 두려워하여 선하고 의롭게 살려고 힘쓰며 부족하나마 진리인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가는 것입니다.

만약 이들이 복음을 들었다면 당연히 주님을 영접하고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일단 구원에 이르게 해 주십니다. 이 땅의 삶을 마치면 윗음부로 들여 머물게 하면서, 구원의 도를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19에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한 대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신 후 윗음부로 가셨습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에 율법으로 구원받은 영혼들과 양심 심판에 의해 구원받은 영혼들은 모두 윗음부에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할 수 있었습니다. 신약 시대에 양심 심판으로 구원받는 영혼들도 윗음부에서 3일간 머무는 동안,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됩니다. 그 후에는 대심판 때까지 낙원의 가장자리에 마련된 대기장소에서 대기하게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 되시기 때문에 양심 심판으로 구원받은 영혼들도 이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반면, 양심 심판으로 구원받지 못하는 영혼들은 아랫음부로 떨어지게 됩니다. 대심판 때까지 아랫음부에서 고통 받다가 이후엔 영원한 지옥불에 던져지는 것입니다.

2. 양심 심판으로 구원받은 영혼들의 처소

양심 심판으로 구원받은 영혼들도 각기 중심의 선(善)의 차이가 다르고, 양심에 따라 의롭게 산 정도도 다릅니다. 그러므로 각자가 행한 대로 천국의 처소가 달라지며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요 사랑입니다.

1) 3천층에 들어가는 경우
복음을 들은 영혼들이 3천층에 들어가려면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한다는 증거는 육을 온전히 벗고 성결되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을 위해 자기 목숨도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듣지 못한 영혼들 중에서도 자기 양심의 의와 선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버린 이들이 있습니다. 나라와 임금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버렸던 충신들이 그러한 예입니다. 비록 임금이 자신의 충정을 알아주지 않고 오히려 애매히 고난을 받게 해도 임금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양심의 의를 좇아, 죽기까지 변함없이 충성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이순신 장군은 예수 그리스도를 몰랐지만 참으로 진리에 합당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라와 임금을 위해서, 또한 백성을 위해 생명을 바쳐 충성했으며 자신의 명예나 권세, 부를 취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억울한 누명을 써도 누구를 원망하거나 원수를 갚고자 하지 않았지요.

자신을 귀양 보냈던 임금에게 감사의 예를 다했으며, 그러한 임금과 나라를 위해 싸움터에 나가 생명이 다하기까지 싸웠습니다. 그런가 하면, 때를 따라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하여 기도를 올리는 등 언제나 신을 인정하였습니다. 이러한 양심의 의는 진리 안에서의 의와도 부합됩니다. 진리 안에서 선의 3단계, 혹은 4단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진리에 합당한 선과 의를 가졌으되 그 선과 의를 지키기 위해 자기를 온전히 버렸던 분들이 복음을 들었다면, 그분들은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함은 물론 하나님을 위해 능히 생명도 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능히 3천층에 들어갈 수 있다고 인정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양심 심판을 통해 3천층에 들이시는 또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부모나 이웃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희생하는 고귀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의 경우입니다. 우리나라 전래 동화에 나오는 효녀 심청과 콩쥐의 선을 그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심청은 맹인이면서도 홀로 자신을 키워준 아버지의 은혜에 감사하여 아버지를 지극 정성으로 섬겼고,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자기 목숨까지 스스로 버렸습니다.

콩쥐는 자신을 심히 핍박하는 계모를 전혀 미워하지 않았고 성심으로 섬겼습니다. 계모가 데려온 동생 팥쥐까지도 친동생처럼 사랑하고 잘 보살펴 주었고, 팥쥐만을 심하게 편애해도 서운해하지 않고 선으로 이해했습니다. 이러한 콩쥐와 심청의 선은 진리 안에서도 높은 수준의 선입니다. 선의 3단계, 4단계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정말 이런 선을 지닌 사람이 있다면 그는 능히 3천층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2) 2천층과 1천층에 들어가는 경우
이처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희생하는 선을 나타낸 사람과, 자기 자신만 선을 지키며 산 사람의 선의 깊이는 전혀 다릅니다. 3천층에 들어간 사람들은 자기 자신만 선하게 산 것이 아닙니다. 선한 양심을 따라 헌신하고 희생하면서 자신은 죽어지는 의로운 행함을 보였고, 다른 사람도 그 선에 감동 받아 선하게 살 수 있도록 영향을 주기도 했던 것입니다.

반면, 그저 자기 자신만 선하게 산 사람들은 2천층에 들어갑니다. 남을 위해 큰 선을 행한 일도 없으며, 그렇다고 악을 행한 일도 없습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선을 좇아 자신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간 사람들이 2천층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나라와 임금에 대해 의를 지켰던 신하들이 불의한 일에 대처하는 경우를 예로 들어, 마음의 의를 구분하여 보겠습니다.

먼저, 3천층에 들어갈 수 있는 의로운 신하라면 불의한 일을 의롭게 개선할 수 있습니다. 그 모든 과정도 선 가운데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신이 어떤 불이익을 당한다 해도 묵묵히 참을 줄 알고 모함하는 상대에게 악으로 갚지도 않습니다. 2천층에 들어가는 신하라면 불의를 보고 참되, 선 가운데 모든 것을 인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장서서 어떤 것을 개선하려는 적극적인 선행을 보이지는 않습니다. 1천층에 들어갈 만한 신하는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합니다. 심히 마음이 상해 울분을 터트리기도 합니다. 또한 자기 의 가운데 불의에 대항하려다가 도리어 해를 입기도 합니다.

이처럼 복음을 듣지 못한 시대의 사람들이라도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선과 의를 정확하게 파악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온전한 공의와 사랑 가운데 각자의 양심에 따라 천국의 영원한 처소로 들이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양심 심판이 무엇이고, 양심 심판으로 구원받은 영혼들의 거하는 천국 처소를 구분하는 기준을 말씀드렸습니다. 양심 심판에 의해 3천층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새예루살렘에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새예루살렘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고 믿음으로 성결된 사람들이 온 집에 충성했을 때 들어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성결의 길을 따라 새예루살렘까지 가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8-01-21 오후 10:55:13 Posted
2018-06-25 오후 5:15:59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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