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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천국(41)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약1:12 등록일자 2008.02.10
오늘은 순교하여 3천층에 들어간 사례를 증거하고자 합니다. 비록 순교 당시에는 온전히 성결하지 못했지만 하나님께 중심을 인정받아 ‘순교자의 상’을 받는 한 선교사를 통해, 참된 순교의 삶이 무엇인지 깨닫기 바랍니다.


1. 순교자의 피 값을 찾으시는 하나님

순교란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을 말합니다. 어떤 핍박이나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목숨까지 버렸을 때 “순교했다.”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순교자가 나왔습니다. 2007년 4월, 아프리카 선교사 한 분이 케냐 키베라에서 전도하다 강도의 총격을 받아 목숨을 잃었습니다. 거기는 약 100만의 빈민이 사는 아프리카 최대 슬럼가로 현지 경찰조차 꺼려하는 매우 위험한 지역입니다.

이사야 43:2에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했습니다. 요한일서 5:18에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말씀합니다. 이처럼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졌어도 보호받았고, 다니엘의 세 친구 역시 극렬히 타는 풀무 불 가운데서도 머리카락 하나 그슬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신실히 믿은 선진 중에는 칼에 목이 베이거나 돌에 맞아 순교한 분도 많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사도 요한을 제외한 대부분이 그랬고, 사도 바울, 스데반도 순교했지요.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어느 때는 보호하고 어느 때는 순교를 허락하시는 것일까?’, ‘왜 하나님께서 우리 선교사를 지키지 않으셨을까?’라고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무 흠과 죄가 없는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온 인류에게 구원의 길이 열렸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에 의해 합당하게 성취된 구원의 섭리이자 영계의 법칙입니다. 만약 하나님을 신실히 믿는 사람이 원수 마귀 사단의 사주를 받은 악한 사람에 의해 죽었다면, 하나님께서는 공의 가운데 반드시 그 피 값을 찾으십니다.

초대교회 당시, 무수한 기독교인이 극심한 박해와 핍박으로 순교했습니다. 로마 원형경기장에서 사자밥이 되고 목이 베이며 화형을 당했습니다. 그들의 피 값으로 유럽에 복음이 전파되어 최강국 로마가 기독교 국가가 되고 세계 선교의 길이 활짝 열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제자 도마가 순교한 인도에서 ‘2002년도 인도 연합대성회’를 통해 그 피 값을 찾게 하셨습니다. 연인원 3백만 명 이상이 모이고 각종 매체를 통해 수많은 사람이 구원에 이르렀지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순교의 피는 오랜 세월이 흘러도 공의 가운데 반드시 또 다른 생명을 살리는 역사를 이루고, 순교자는 그 상으로 3천층 이상의 천국이 주어집니다.

2. 참된 순교자의 삶

하나님께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변개치 않는 곧은 중심과 진실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순교의 사명을 주십니다. 성결한 상태에서 충성하다 순교하면 새 예루살렘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보기에는 순교를 했어도 순교자의 상을 줄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7년 환난 때 휴거 못한 쭉정이 신자들이 순교했을 때입니다. 이들은 단지 부끄러운 구원을 받아 낙원의 가장자리에 들어갈 뿐이지요.

아프리카 선교사는 순교의 사명을 받은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러 차례 그의 마음을 주관하여 죽음을 피하도록 하셨습니다. 위험한 지역에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가면 어떤 방법으로 가야 할지 기도할 때 알려 주셨지요. 그런데 이분의 생각의 틀이 강해 성령의 음성과 주관을 받지 못했습니다. 어찌하든 열매를 많이 내 하나님께 영광 돌리겠다는 의욕이 앞섰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어떤 상황이든 공의의 선을 넘으면 하나님께서 지켜 줄 수 없습니다. 세상의 법도 준수하며, 사람 편에서 할 도리는 해야 합니다. 당연히 할 것도 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믿음으로 밀어붙이면 진정한 믿음의 행함이라 할 수 없습니다. 실수를 하면 그 원인을 파악해서 고쳐야 합니다. 한두 번은 실수로 인한 어려움을 하나님께서 막아 줄 수 있지만, 계속된 실수로 공의의 선을 넘으면 안 되지요.

해외 선교든, 전도든, 심방이든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야 합니다. 사람의 생각에는 많은 열매를 낼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막으시면 하지 않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가족이 사는 소돔과 고모라는 죄악이 관영한 곳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컸지만, ‘곧 심판할 소돔과 고모라의 영혼들이 불쌍하니 내가 가서 전도해야지. 그들에게 심판이 임박했음을 외치고 돌이키게 하리라. 들어가서 그들을 변화케 해야겠다.’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라!” 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진정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아브라함처럼 순종합니다. 그러나 조카 롯은 자기 뜻대로 갔다가 결국에는 불의 심판으로 멸망당할 재앙 가운데 놓이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의 사람과 육의 사람의 차이입니다. 오늘날에는 소돔과 고모라처럼 죄악이 가득 찬 곳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그곳 영혼들이 불쌍해서 직접 전도하겠다고 무모하게 나서면 안 됩니다. 특별하게 하나님이 주관하실 경우에만 순종해야지요. 성령의 음성을 듣기보다 자기 의욕이 앞선 것을 믿음이라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항상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태복음 7:6에 보면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했습니다. 성결 복음과 권능의 소식을 어떤 사람에게 전하면 좋을지 하나님께서 가장 잘 아십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일꾼이라면 항상 하나님의 뜻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해야 합니다.

3. 순교자의 상을 받는 이유

그러면 아프리카 선교사가 성결을 이뤘거나 하나님의 뜻 가운데 순교한 것도 아닌데 ‘순교자의 상’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그의 중심을 인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분은 해외 유학을 다녀올 정도로 지적 수준이 높았지만 성결 복음을 듣고 감사하여 오직 은혜를 갚고자 아프리카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부나 명예를 취하려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헌신한 것입니다. 나아가 성결의 열매로 나오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악을 버린 선한 영의 사람이 되기 위해 기도와 금식을 무던히 했지요. 자신이 기대한 것보다 육이 버려지지 않고 변화가 더뎌 실망한 때도 있었지만, 어찌하든 열심히 뛰어 많은 열매를 내려 했습니다. 그렇게나마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 받은 바 은혜를 갚고자 했지요.

하나님께서는 그가 열심히 해서 목자의 기쁨이 되리라는 마음이 너무 커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한 것을 아십니다. 그러기에 “네가 왜 그리 잘못했느냐?” 하시지 않고 오히려 순교자의 상으로 갚아 주셨습니다. 온전한 마음은 이루지 못했어도 주를 위한 충성을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프리카에서 반드시 그 피 값을 찾으실 것입니다.

“너무나 제가 하고자 했나이다. 제 자신을 볼 때 어찌 그리 많이 부족한지, 말씀도 많이 들었고 은혜도 많이 받았는데, 너무나 세월을 허송했나이다. 내 마음의 비진리를 버리고자 했으나 버리지 못한 것이 많았습니다. 그것이 질책이 되고 심히 나를 곤고하게 했나이다. 그래서 ‘목자 곁에 가까이 있으면 나도 온전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 적도 많았습니다.

제게 있어 가장 최고의 장점은 ‘열심’이라 스스로 생각하였나이다. 그 환경 속에서도 게으르지 않고 충성하면 이 부족한 마음이 채워지리라 믿었나이다. ‘내가 열매를 많이 내면 목자님이 나를 보고 웃으실 거야. 그 얼굴을 보면 얼마나 감동이 될까?’ 이렇게 혼자서 그려 보며 기쁘게 생각했나이다. 그러나 제 생각이, 열심이 앞서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목자께서 말씀하신 그 ‘지혜’도 깨닫지 못했나이다. 심히도 죄송하고 민망하나이다. 저는 원래 아무것도 드릴 것이 없고, 오로지 드릴 것은 이 생명 하나요, 몸 하나였습니다.

결국 이 아들의 피 값으로 작으나마 열매를 낼 수 있는 밑거름이 되게 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더 많은 것으로 힘이 되지 못하고 열매를 드리지 못함을 용서하소서. 큰 은혜를 입었음에도 제 자신이 심히 부끄럽고 민망하여 중심에서 ‘사랑합니다.’ 고백 한 번 못했나이다. 제 생각이 앞서 행함으로 오히려 아픔을 드렸으니 용서해 주시길 원합니다. 저의 부족함을 그 사랑으로 가리사 저 스스로는 갈 수 없는 곳에 갈 수 있게 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두고두고 감사하며 또 감사하겠나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선교지에서 목숨을 잃는다고 순교자의 상이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프리카 선교사는 성결을 갈망하며 열심히 충성했기 때문에 그 중심을 인정받아 3천층에 들어갈 자격을 상으로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주님의 뜻만을 좇는 것이 영적인 순교자의 삶임을 깨달아 무슨 일이든 순종하심으로 3천층을 지나 새예루살렘까지 이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8-02-11 오후 10:35:33 Posted
2018-06-25 오후 5:15:40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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