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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천국(49)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계21:19-20 등록일자 2008.06.08
지난 시간에는 새 예루살렘의 열두 기초석 중 여덟 번째 기초석인 녹옥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이 시간에는 아홉 번째 기초석인 담황옥과 열 번째 기초석인 비취옥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아홉 번째 기초석, ‘담황옥’

담황옥은 토파즈라 불리는 붉은 오렌지색의 투명한 보석입니다. 이 담황옥이 상징하는 영의 마음은 ‘양선(良善)’입니다. 양선의 사전적 의미는 ‘어질고 착함’인데, 영적 의미에는 이보다 훨씬 더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참고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도 양선이 있는데, 담황옥이 상징하는 양선과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 하나인 양선은 영적 의미가 같습니다. 양선의 영적 의미는 ‘성령 안에서 선(善)을 추구하는 마음’입니다. 이와 비슷한 의미로, 세상에서는 ‘양심(良心)’이 있습니다. 옳고 그름이나 선과 악을 판단하는 자기 나름의 기준으로서, 시대마다, 나라마다,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러나 ‘양선’의 기준은 오직 하나입니다. 진리인 하나님 말씀, 오직 그것만이 변함없는 기준입니다. ‘내가 보기에 선’을 추구하는 마음은 영적 양선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선’과 이 선을 추구하는 마음이 바로 영적 양선입니다.

마태복음 12장 35절 전반에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낸다” 했습니다. 영적 양선이 임한 사람에게서는 자연스럽게 선이 배어 나오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선한 말과 선한 행실이 나옵니다. 향수를 뿌린 사람에게서 좋은 향기가 나듯이, 양선한 사람에게서 선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으로만 선을 추구하는 것은 양선이라 하지 않습니다. 선을 추구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선한 말과 행실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며 주변에 덕과 사랑을 베푸는 것,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양선입니다.

1) 진리 안에서의 선
하나님은 선이시기 때문에, 말씀인 성경도 선입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담황옥의 빛깔, 곧 영적 양선의 빛깔이 유독 강하게 나오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양선의 기준이 되는 ‘진리 안에서의 선’이 무엇인지 깨닫고, 자신의 양선의 분량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빌립보서 2장 1-4절에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했습니다. 이처럼, 주 안에서 선을 추구하는 사람은 비록 자기 생각과 맞지 않고 자기 성품에 맞지 않아도 마음을 같이해 주고 뜻을 합해 주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 양선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알려 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다가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됩니다. 마침 한 제사장이 지나가다가 그를 봤지만 그냥 피해서 가버렸고, 레위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제사장과 레위인이라면 하나님 말씀을 지식적으로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진리 안에서 선을 추구하는 마음, 곧 양선이 없으니 그냥 가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을 지나던 한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겨 상처를 싸매 주고, 자기가 타고 있던 짐승에 그를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를 잘 돌봐달라고 부탁하고 떠나면서 만약 돈이 더 들면 자신이 돌아올 때 갚겠다는 약속까지 했습니다. 이 사마리아인에게는 선을 좇아 행하는 양선이 마음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내 물질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 해도 하나님 보시기에 선을 택할 수 있는 마음이 바로 양선입니다.

다음으로, 마태복음 12장 19-20절 말씀이 있습니다.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했는데, 바로 예수님의 양선에 대한 내용입니다. 양선한 사람은 들레지 않으며 아무와도 다투지 않습니다. 또한 겉모습에서도 양선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걸음걸이나 몸가짐, 언어 습관은 흠이 없고 교양을 갖춘 참으로 온전한 모습입니다. 이런 예수님 모습을 떠올리며 모든 몸가짐과 행실을 닮아 가시기 바랍니다. 잠언 22장 11절에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임금이 그의 친구가 되느니라” 했습니다. 진리 안에서 선을 추구한다면 입술의 말도 달라지기 바랍니다.

2) 상한 갈대를 꺾지 않는 마음
마태복음 12장 20절에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했습니다. 이는 ‘양선’을 표현한 가장 대표적인 말씀입니다. 상한 갈대란 영적으로 세상의 죄와 악으로 가득찬 사람을 말합니다. 이와 같은 사람도 조금이라도 주님을 영접할 만한 선한 마음이 있으면, 가난한 심령으로 하나님을 찾으면 결코 외면치 않고 맞아 주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 주님의 마음이 바로 양선의 절정입니다.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는 마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심지’는 양초나 등잔불 등에서 불을 붙이기 위해 실이나 헝겊을 꼬아 꽂아 놓은 부분입니다. 심지가 꺼져 간다면 불씨는 남았어도 불꽃이 점점 시드는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꺼져 가는 심지’란 ‘마음이 악으로 심히 물들어 영혼의 등불이 꺼져 가는 사람’이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는 마음’은 구원받을 가능성이 아주 조금이라도 있다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신앙 안에서도 상한 갈대와 같고 꺼져가는 심지와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믿음이 연약하여 시험 환난에 넘어져서 혼자서는 다시 교회에 나올 영적인 힘이 없는 사람입니다. 또는 아직 버리지 못한 육으로 인해 성도들에게 해를 끼치고 그 일이 민망하고 부끄러워 다시 교회에 나오지 못하는 사람이지요. 신앙 안에서 먼저 되었으나 지금은 영적으로 나중 된 사람들 중에서도 자신도 사랑 받고 인정받기 위해 몸부림치는데 잘 안되니 때로는 속상하여 악을 발하는 사람입니다.

진정 양선한 사람이라면, 이런 사람들의 마음도 헤아리고 품을 줄 알아야 합니다. 흑백을 가리거나 옳고 그름을 논하여 상대를 꺾으려는 것은 양선이 아닙니다. 진실과 사랑으로 선대함으로써 악으로 나오는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고 감동을 주는 것이 진정한 양선입니다.

2. 열 번째 기초석, ‘비취옥’

비취옥은 옥수의 일종으로 반투명하며 청록색 빛이 나는 보석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숙함과 정결을 상징한다 하여 옛 여인들이 귀하게 여겼지요. 이러한 비취옥이 상징하는 영의 마음은 ‘절제’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이 풍성하면 좋겠지만, 질서를 따라 아름답게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절제가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절제하지 못하고 과식하면 오히려 고통을 받습니다. 운동도 절제하지 못하고 과하게 하면 오히려 건강을 해칩니다. 이처럼 육적으로도 절제하지 못하면 그 후의 결과는 좋지 않습니다. 하물며 영을 추구하는 성도들이라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절제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디도서 1장 7-9절에 보면 교회의 감독된 자의 자격이 나오는데, ‘절제하라’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 안에서는 무엇을 하든지 진리로 분별하고 매사에 절제하면서 성령의 소욕을 좇아 해야 합니다.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고 행하면, 절제해야 할 때 절제할 수 있으므로 괜한 시험을 자초하지 않습니다. 또한 진리 안에서 곧장 바른 길을 가므로 형통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절제치 못한 사람들은 일이 틀어지고 여러 어려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영도 절제를 통해서 온전해질 수 있습니다. 성령의 마지막 열매가 절제인 것도 절제가 모든 것을 적절히 조절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입니다. 기쁨도 절제해야 할 때가 있고, 사랑도 절제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또한 성령 안에서도 마음에 온다고 해서 무조건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진리로 분별해 봐야 합니다. 절제의 열매가 부족한 사람은 성급히 굴다가 일을 망치거나 문제를 만들기도 하지만, 절제의 열매가 맺힌 사람은 정확한 때를 맞출 줄 압니다. 이처럼, 영으로 들어간 사람에게도 절제는 꼭 필요한 열매입니다. 하물며 아직 육을 다 버리지 못한 사람에게는 더욱 절제의 열매가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목적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뚜렷한 목적을 마음에 새기고, 이 세상에서 삼가 절제된 삶을 영위하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세례 요한
믿음의 선진 가운데 절제된 삶을 보여준 인물로 세례 요한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이 땅에 온 목적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참 빛이신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함을 알고, 그것을 감당하기 전까지 세상과 완전히 구별되어 살았습니다. 홀로 광야에서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했으며, 메뚜기와 석청을 먹는 등 매우 절제된 삶을 유지했습니다. 이러한 삶을 통해, 주의 길을 예비하는 준비된 사람으로서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해 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11장 11절 전반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말씀하셨습니다.

혹시 ‘나도 이제 절제된 삶을 위해 깊은 산속이나 외딴곳으로 가야겠다’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절제’하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성령 안에서 ‘마음을 절제’하는 것입니다. 영으로 들어오기 전이라면 육신의 정욕을 철저히 절제하고 오직 성령의 소욕을 좇아야 합니다. 영으로 들어온 후에도 절제를 통해 때에 따라 영의 각 마음의 강약을 조절하여 전체적으로 아름답게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비취옥’의 빛깔은 바로 이런 절제의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번 시간에는 진리 안에서 선을 추구하는 마음인 ‘양선’을 상징하는 아홉 번째 기초석 ‘담황옥’과 ‘절제’를 상징하는 열 번째 기초석 ‘비취옥’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다음 시간에도 계속해서 열두 기초석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2008-06-09 오후 7:20:59 Posted
2018-09-06 오전 10:07:53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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