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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천국 (19)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계 21:3-4 등록일자 2020.12.06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천국에서의 통신 방법과 예배, 그리고 교육 생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장차 영원히 살아갈 천국은 눈물이나 사망, 애통, 아픔 등이 없으며 기쁨과 행복과 즐거움만 있습니다. 이러한 천국 생활의 행복과 기쁨을 이 땅에서도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지요.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가질수록 이 땅에서도 천국의 행복과 기쁨을 맛보며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심령 천국을 이룬 만큼 천국에서도 더 좋은 처소에 들어갈 것이니 장차 누릴 천국 생활과 현재 자신의 영적인 생활 수준이 별개가 아닙니다.


    1. 천국에서의 통신 방법

    천국에서는 어떤 기계나 장비를 이용하여 서로 연락하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새 예루살렘에서는 영과 영이 밝히 통하므로 약속이나 모임을 갖고자 할 때 길게 설명하지 않고 몇 마디만 해도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아무런 오해 없이 정확하게 이해합니다.
    이 땅에서는 두 사람이 “00 정문에서 00시에 만납시다.” 하고 약속했을 때 후문이 정문인 줄 알고 후문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의든 타의든 약속 시각보다 늦게 나타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새 예루살렘에서는 “어느 지점에서 언제 만나자.”라고 한 번만 얘기하면 생소한 장소라도 정확히 주관받아 찾아갈 수 있고, 또한 천사의 인도를 받아갈 수도 있지요. 이처럼 천국에서의 삶은 마음먹은 대로 이뤄집니다.
    새 예루살렘의 성도들은 ‘새 예루살렘’이라는 공간에 들어가면서부터 갑자기 이렇게 된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살 때도 한번 약속하면 변개함 없이 지켰고, 시간 약속도 잘 지키는 것이 몸에 배었으며 어떠한 경우에도 실례하지 않고, 먼저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 생활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개인적인 만남뿐 아니라 소규모 모임을 가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몇몇 성도들이 “주님 집 정원의 가장 아름다운 꽃이 있는 곳에서 만나요.” 하고 약속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새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은 어떤 꽃이 가장 아름다운지를 모두가 같이 느끼고 주관받기 때문에 아무리 주님 집의 정원이 넓다 해도 정확하게 그 장소를 찾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1천층 성도의 경우에는 “주님의 집에 있는 여러 정원 중에서 어떤 정원에 이런 빛깔과 향을 내는 꽃이 있으니까 그 꽃을 찾아서 오세요.” 하고 알려줘야만 찾아갈 수 있지요. 그러니 1천층의 성도들은 새 예루살렘에 함께 살라고 해도 영으로 잘 통하지 않고 알아듣기도 어려우니 답답하고 불편한 것입니다.
    이처럼 새 예루살렘의 성도들은 마음 자체에서 내비게이션의 역할이 자동으로 이뤄지지만, 낮은 처소의 성도들일수록 마음에서 주관받는 정도가 희미하므로 일일이 물어보고 확인해야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이 땅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으로만 알고 있는 성도와 지식으로도 알지 못하는 성도, 영으로 일군 성도가 각각 하나님의 뜻을 좇고 순종하는 정도는 모두 다르지요.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자 하는 마음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더라도 하나님 말씀을 지식으로도 알지 못할 때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며 살면서도 자신이 그런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예를 들어, 간혹 초신자들이 성령이 충만하여 3일 금식 후 곧바로 일반 음식을 마음껏 먹었는데도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간증을 합니다. 이는 초신자라서 보호식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지켜 주신 것이지요. 그러나 보호식에 대해 알고 있는 믿음 있는 성도가 금식 후 보호식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얼굴이 붓거나 위(胃)에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이를 계기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일단 조금씩 알아가는 성도들은 아는 만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성도라 해도 얼마나 마음을 영으로 일궜느냐에 따라서 순종의 정도가 차이 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온전히 영으로 일군 경우에는 하나님의 명(命)이 사람의 지식이나 이론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것이라 해도 마음의 주관을 따라 그대로 순종합니다.
    하지만 마음을 영으로 일군 정도가 부족할수록 육적인 지식들이 생각으로 먼저 작용하여 마음에 주관 오는 것을 행치 못하도록 막습니다. 또한 영의 마음을 가진 성도들에게는 하나님 뜻과 마음에 대해 몇 마디만 일러 줘도 이해하며 마음을 같이하지만, 육의 마음을 가진 성도들에게는 혹여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오해하지 않도록 하나님 뜻에 대해 상세히 일러 줘야 합니다.

    이러한 원리는 천국에서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가령, 새 예루살렘의 성도들이 있는 곳에 1천층의 성도가 함께 있다면 그는 새 예루살렘 성도들의 대화를 잘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런데 새 예루살렘의 성도들은 함께한 성도를 소외시키지 않기 때문에 그를 위해 자세하게 설명하게 되지요.
    어쩌다 한 번씩 있는 일이라면 괜찮겠지만, 항상 이와 같다면 피차간에 불편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두에게 최고의 행복과 평안함을 주기 위해 믿음의 분량에 따라 천국의 처소를 구분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새 예루살렘에 가고 싶다 해도 중요한 것은 새 예루살렘의 삶에 적응할 수 있는 영적인 자질을 이 땅에서 온전히 갖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천국에서의 예배

    천국에서도 일정한 시간에 예배를 드립니다. 물론 설교는 하나님께서 하시는데 그 설교를 통하여 하나님의 근본과, 태초부터 영원까지의 영의 세계에 대해서도 자세히 배워 나갑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도 듣지만 때로는 하나님과 대화하는 시간도 있고 주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도 있습니다. 기도하는 시간도 있는데 천국에서는 이 땅에서처럼 무릎을 꿇고 힘쓰고 애써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주님, 성령님과의 대화가 곧 기도이지요. 또한 천국에서는 이 세상의 언어가 아니라 천국에서의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 땅에서 한 교회를 이루었던 성도들은 자신들이 섬겼던 목자를 중심으로 함께 예배를 드리기도 하고 정겨운 교제를 나누기도 합니다. 함께 신앙생활을 하며 어려운 연단의 시절을 이겨낸 성도들은 천국에서도 사이가 각별하여 늘 함께하며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마다 믿음의 분량대로 거할 천국의 처소가 다른데 어떻게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요? 특별히 자신이 거하는 처소보다 높은 처소에 있는 예배에 참석할 때는 그곳에 합당한 옷으로 갈아입습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날 어떤 행사나 사건이 인공위성을 통해 생중계로 전 세계에 동시에 보도될 수 있는 것처럼 천국에도 이러한 시스템이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에서 드리는 예배가 생중계되므로 다른 처소에서도 함께 동참할 수 있지요.

    천국의 방송 시스템은 이 땅에서처럼 복잡한 기계나 장비가 동원되는 것이 아니며, 천사들이 하늘에 천과 같은 것을 펼치기만 하면 화면이 됩니다. 천국에서의 화면은 각 처소에 따라 조명과 색상이 가장 알맞게 조절되기 때문에 어느 처소든지 화면 영상이 생생하여 마치 실제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각 처소에 따라 빛이 조절되는 이유는, 만일 새 예루살렘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모습을 조절 없이 그대로 내보낸다면 3천층 이하의 성도들은 너무나 눈이 부셔서 화면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비록 새 예루살렘에 들어오지 못한 성도들이라도 하나님께서는 화면을 통해서 하나님의 모습과 새 예루살렘의 전경을 보여주기 원하시기 때문에 낮은 처소의 화면일수록 빛의 세기를 줄여야 하지요.
    각 처소에 알맞게 빛의 세기를 조절한다 해도 2천층 이하의 성도들은 스스로의 양심 속에서 화면에 나오는 하나님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특히 낙원에 들어간 성도들의 경우는 심히 민망하여 하나님의 얼굴이 화면에 나오면 힐끗힐끗 한 번씩 화면을 쳐다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예배 외에도 주님과 성령님, 그리고 모세나 바울 등 믿음의 선진들을 초청하여 예배를 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계의 질서에 따라 격에 맞게 초청이 이루어지기에 존귀한 분들을 초청하려면 그만한 영적인 자격이 있어야 합니다.


    3. 천국에서의 교육 생활

    인간 경작을 받는 동안 이 땅에서도 영적인 것을 많이 배우지만 장차 천국에 들어가면 또다시 새로운 세계에 대해 배웁니다. 이 땅에서 배우는 것은 영적인 훈련에 불과하고 진정한 배움은 천국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무궁하기에 아무리 많이 배운다 해도 태초부터 계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하여 온전히 다 배울 수는 없으며, 영원 전부터 스스로 계셔서 영원까지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깊이를 다 알기는 어렵지요. 우리가 무한한 영적인 세계에 들어가면 진정 배워야 할 것들로 가득함을 실감하며 그 배움은 이 땅에서와 달리 즐겁고 재미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또한 천국에서의 배움은 의무적인 것이 아니고 시험을 치르는 것도 아니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없고 한번 들으면 많은 것이 깨달아지며, 한 번 배운 것은 영원히 잊지 않으므로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더욱이 천국에서 영의 지식을 배울 때는 그냥 앉아 말씀만 듣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대형 입체 영상이 펼쳐지며 음향도 뛰어나 실제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는 하나님의 근본의 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빛이 생성되고 빛과 어둠이 나뉘는 장면이나 물 가운데 궁창이 생김으로 물과 물이 나뉘는 장면이 눈앞에서 펼쳐진다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받게 될 것입니다. 창조의 역사를 베푸신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올릴 뿐이지요. 이처럼 천국에서는 흥미진진한 배움이 계속되니 지루하거나 따분할 시간이 전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천국 생활의 모든 것은 공의 가운데 처소마다 누릴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이 차이 나는데, 이는 모든 영혼이 각자의 처소에서 가장 자유롭고 행복하게 생활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곧 하나님의 사랑이 깃들어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천국에 가서도 하나님의 얼굴을 마음껏 뵙지 못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그러므로 마태복음 5장 8절 말씀처럼 “마음의 청결함”을 이루어 하나님의 얼굴을 마음껏 뵐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0-12-09 오후 6:17:47 Posted
    2020-12-13 오후 12:17:12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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