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22
제47과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마가복음 2:1~5
읽을말씀 : 마가복음 2:1~5 | 외울말씀 : 출애굽기 15:26 l 참고 말씀: 마태복음 8:13
교육목표 : 하나님 앞에 진실한 행함으로 믿음의 받침대를 세워 어떠한 질병이나 문제라 할지라도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예로부터 존경받는 의인은 의로운 행함과 내면에서 우러나는 선의 향기로 많은 사람에게 진한 감동과 삶에 아름다운 영향을 끼칩니다. 반대로 악인은 두고두고 부끄러운 이름으로 남아 뭇사람의 입에 오르내리지요. 이는 우리나라의 역사적 인물을 보아도 알 수 있고, 성경에서도 그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1. 의인과 악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신명기 34장 8절 이하를 보면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가 죽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이 슬퍼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평지에서 애곡하는 기한이 맟도록 모세를 위하여 삼십 일을 애곡하니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어 모세가 어떠한 사람이었는지가 잘 나옵니다.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그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더라” 했지요.
이와 반면 악인의 죽음은 어떠합니까?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무수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 아돌프 히틀러는 전쟁이 불리해지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전쟁의 종식을 의미했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환호했겠습니까.
성경에도 이와 같은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시돈 왕의 딸 이세벨입니다. 북이스라엘 아합왕에게로 시집온 그녀는 왕과 백성들을 우상숭배로 물들게 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이며 온갖 악을 행했습니다. 한 번은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갖지 못해 고민할 때에 거짓 증인을 세우고 성의 유력한 사람을 매수하여 무죄한 사람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악행을 거듭한 이세벨은 신하들의 손에 의해 창밖으로 던져지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그의 시체를 개들이 먹으므로 장사조차 지낼 수 없었고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도 없었지요. 이처럼 악인에게 힘이 있을 때에는 사람들이 가까이 오는 듯하지만 결국 힘이 사라지면 모두가 등을 돌리고 떠나 버립니다.
2. 진실한 행함으로 믿음의 받침대를 세운 중풍병자와 친구들
본문에 보면 가버나움에 살고 있던 한 중풍병자는 병이 중해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일 수조차 없는 불쌍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앉은뱅이를 일으키며 귀신을 쫓아낼 뿐만 아니라 각색 병든 사람을 치료해 준다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귀가 솔깃해졌습니다.
그는 마음이 선했기 때문에 그러한 소문을 그대로 믿고 마음에 새기며 예수님께서 계신 곳을 알면 꼭 가서 만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지요. 그러던 중, 중풍병자는 자신이 그렇게 사모하던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오셨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를 도와줄 수 있는 친구들을 찾았습니다. 다행히 그의 친구들은 중풍병자를 돕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고, 예수님의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에 예수님 앞으로 자기를 인도해 달라는 중풍병자의 간곡한 소원을 들어 주었습니다.
친구들은 중풍병자를 들것에 실어 예수님께서 계신 곳으로 나아갔는데 정작 가서 보니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어 몸을 움직일 수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예수님이 계신 집 지붕으로 올라가서 지붕을 뚫고 들것에 실린 중풍병자 친구를 예수님 앞으로 달아 내렸습니다. 결국 그들은 누구보다도 예수님 가까이로 나아가게 되었지요. 그러자 이들의 믿음과 정성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을 깨끗이 치료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장면을 통해 우리는 그들이 얼마나 간절한 중심으로 예수님께 나아가기를 사모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들의 행함을 보면 얼마나 착한 사람들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중풍병자를 데리고 예수님이 계신 집까지 도착은 했으나 도저히 용신할 수 없고 예수님 앞으로 나아갈 길이 없으니 거기에서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지붕까지 뜯어내고 예수님 앞에 중풍병자를 내려놓았으니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을 소유하였는지요.
그들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요, 이 중풍병자를 어떻게 하든 예수님 앞에 데려가야 되겠다고 하는 깊은 우정과 사랑이 있었던 것입니다. 친구가 어떤 문제를 당했을 때에 그를 살리려고 애쓰는 아름다운 중심을 지니고 있었지요. 사람들 중에는 그 행함에 따라 잘 죽었다는 말을 듣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죽음을 슬퍼하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친구들이 중풍병자를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살리려 했던 것은 그만큼 이 중풍병자가 그들에게 중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의인
예수님께서 나인성으로 가실 때에 장례 행렬이 성에서 나왔습니다. 성 안에 사는 어느 과부의 외아들이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염없이 통곡하는 과부를 불쌍히 여기고 청년을 다시 살려 주셨습니다(눅 7:11~16). 어려운 여건에서 기른 사랑스러운 독자를 잃었으니 과부의 참담함과 슬픔이 어떠했겠습니까? 여인은 아들을 다시 살려 준다면 자신의 생명이라도 주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여인은 생명 다해 충성하며 변함없이 붙좇을 중심임을 아시기에 예수님께서 소원을 들어 주신 것입니다.
욥바에 사는 여제자 다비다는 어떠하였습니까? 그가 죽자 생전에 그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룻다에 있는 베드로에게 사람을 보내 지체 말고 올 것을 간청하였습니다. 베드로가 도착하니 모든 과부가 그 곁에 서서 울며 다비다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 지어 준 옷가지를 다 내보였습니다. 자신의 안락을 누리지 않고 많은 사람을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살았던 다비다의 행함에 감동을 받은 베드로가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녀를 다시 살려 주셨습니다(행 9:36~40).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은혜를 베푸셨을까요? 여인의 행함이 참으로 아름답고 은혜로웠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기독교인이 심히 핍박받던 시기입니다. 그런데도 다비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리스도인들을 돕는 큰 믿음의 행함을 나타냈습니다.
이처럼 의인은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존귀히 여김을 받습니다. 네 친구가 중풍병자의 부탁을 기꺼이 들어준 것처럼 모든 사람이 그를 위해 의를 나타내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통해 무엇을 깨우쳐야 하겠습니까?
첫째, 의인에게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얻는 후덕함이 있다는 점입니다.
욥에게는 많은 친구가 있었습니다. 비록 변론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친구들은 욥이 곤경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와 같이 염려하며 권면하였습니다. 그들이 그만큼 욥에게 입은 은혜가 있고 그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들이 욥을 위한다면서 그를 깨우치려 한 것이 사람의 생각이고 자기 보기에 의였기 때문에 변론이 일어났지만 처음부터 그런 동기를 가지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의인인지 아닌지 스스로 분별해 보시기 바랍니다. 의인이라면 많은 사람이 존경하고 사랑하며 따를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믿음의 형제들이, 가정에서는 가족이, 일가친척과 이웃이 따릅니다. 의인이 되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면 사랑과 존경을 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축복해 주십니다.
둘째, 의인에게는 믿음의 행함이 있다는 점입니다.
마음이 선하고 의로운 사람은 친구가 죽어가거나 어려움에 처할 때에 믿음으로 구제하고 도우며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좇아 행합니다. 중풍병자의 친구들도 이런저런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믿음으로 친구를 살릴 방법을 강구하였습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어떤 한계에 머물러 있지 않았지요.
이처럼 믿음의 행함을 내보일 때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과 정성을 보고 분명히 역사하여 불가능한 것까지라도 가능케 하십니다.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라고 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역사하시니 오직 믿음으로 행하는 의인이 되어 항상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예로부터 존경받는 의인은 의로운 행함과 내면에서 우러나는 선의 향기로 많은 사람에게 진한 감동과 삶에 아름다운 영향을 끼칩니다. 반대로 악인은 두고두고 부끄러운 이름으로 남아 뭇사람의 입에 오르내리지요. 이는 우리나라의 역사적 인물을 보아도 알 수 있고, 성경에서도 그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네 친구가 중풍병자를 데리고 예수님이 계신 곳까지 왔지만 도저히 용신할 수 없자 어떠한 행함을 내보였을까요?
2. 의인의 특징 두 가지를 써 보세요.
① 의인에게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얻는 ( )이 있다.
② 의인에게는 믿음의 ( )이 있다.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165~178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이세벨’
시돈 왕의 딸이었던 이세벨은 북이스라엘 아합왕과 결혼하면서 시돈의 우상인 바알과 아세라 신을 이스라엘에 들여와 왕은 물론 신하와 백성까지도 우상숭배에 물들게 했다. 이에 북이스라엘은 공의의 심판에 따라 삼 년 반이나 계속된 가뭄과 이방 민족의 침략으로 큰 어려움을 당해야 했다.
이세벨은 요한계시록 두아디라교회에 보낸 서신에도 등장한다.
마치 하나님과 교통하는 선지자인 양 교묘한 말로 성도들을 미혹하여 우상숭배, 곧 영적 음행에 빠지게 한 ‘자칭 선지자’의 표상으로 그 이름이 거론되었다.
교육목표 : 하나님 앞에 진실한 행함으로 믿음의 받침대를 세워 어떠한 질병이나 문제라 할지라도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예로부터 존경받는 의인은 의로운 행함과 내면에서 우러나는 선의 향기로 많은 사람에게 진한 감동과 삶에 아름다운 영향을 끼칩니다. 반대로 악인은 두고두고 부끄러운 이름으로 남아 뭇사람의 입에 오르내리지요. 이는 우리나라의 역사적 인물을 보아도 알 수 있고, 성경에서도 그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1. 의인과 악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신명기 34장 8절 이하를 보면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가 죽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이 슬퍼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평지에서 애곡하는 기한이 맟도록 모세를 위하여 삼십 일을 애곡하니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어 모세가 어떠한 사람이었는지가 잘 나옵니다.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그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더라” 했지요.
이와 반면 악인의 죽음은 어떠합니까?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무수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 아돌프 히틀러는 전쟁이 불리해지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전쟁의 종식을 의미했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환호했겠습니까.
성경에도 이와 같은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시돈 왕의 딸 이세벨입니다. 북이스라엘 아합왕에게로 시집온 그녀는 왕과 백성들을 우상숭배로 물들게 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이며 온갖 악을 행했습니다. 한 번은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갖지 못해 고민할 때에 거짓 증인을 세우고 성의 유력한 사람을 매수하여 무죄한 사람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악행을 거듭한 이세벨은 신하들의 손에 의해 창밖으로 던져지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그의 시체를 개들이 먹으므로 장사조차 지낼 수 없었고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도 없었지요. 이처럼 악인에게 힘이 있을 때에는 사람들이 가까이 오는 듯하지만 결국 힘이 사라지면 모두가 등을 돌리고 떠나 버립니다.
2. 진실한 행함으로 믿음의 받침대를 세운 중풍병자와 친구들
본문에 보면 가버나움에 살고 있던 한 중풍병자는 병이 중해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일 수조차 없는 불쌍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앉은뱅이를 일으키며 귀신을 쫓아낼 뿐만 아니라 각색 병든 사람을 치료해 준다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귀가 솔깃해졌습니다.
그는 마음이 선했기 때문에 그러한 소문을 그대로 믿고 마음에 새기며 예수님께서 계신 곳을 알면 꼭 가서 만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지요. 그러던 중, 중풍병자는 자신이 그렇게 사모하던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오셨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를 도와줄 수 있는 친구들을 찾았습니다. 다행히 그의 친구들은 중풍병자를 돕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고, 예수님의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에 예수님 앞으로 자기를 인도해 달라는 중풍병자의 간곡한 소원을 들어 주었습니다.
친구들은 중풍병자를 들것에 실어 예수님께서 계신 곳으로 나아갔는데 정작 가서 보니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어 몸을 움직일 수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예수님이 계신 집 지붕으로 올라가서 지붕을 뚫고 들것에 실린 중풍병자 친구를 예수님 앞으로 달아 내렸습니다. 결국 그들은 누구보다도 예수님 가까이로 나아가게 되었지요. 그러자 이들의 믿음과 정성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을 깨끗이 치료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장면을 통해 우리는 그들이 얼마나 간절한 중심으로 예수님께 나아가기를 사모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들의 행함을 보면 얼마나 착한 사람들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중풍병자를 데리고 예수님이 계신 집까지 도착은 했으나 도저히 용신할 수 없고 예수님 앞으로 나아갈 길이 없으니 거기에서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지붕까지 뜯어내고 예수님 앞에 중풍병자를 내려놓았으니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을 소유하였는지요.
그들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요, 이 중풍병자를 어떻게 하든 예수님 앞에 데려가야 되겠다고 하는 깊은 우정과 사랑이 있었던 것입니다. 친구가 어떤 문제를 당했을 때에 그를 살리려고 애쓰는 아름다운 중심을 지니고 있었지요. 사람들 중에는 그 행함에 따라 잘 죽었다는 말을 듣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죽음을 슬퍼하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친구들이 중풍병자를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살리려 했던 것은 그만큼 이 중풍병자가 그들에게 중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의인
예수님께서 나인성으로 가실 때에 장례 행렬이 성에서 나왔습니다. 성 안에 사는 어느 과부의 외아들이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염없이 통곡하는 과부를 불쌍히 여기고 청년을 다시 살려 주셨습니다(눅 7:11~16). 어려운 여건에서 기른 사랑스러운 독자를 잃었으니 과부의 참담함과 슬픔이 어떠했겠습니까? 여인은 아들을 다시 살려 준다면 자신의 생명이라도 주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여인은 생명 다해 충성하며 변함없이 붙좇을 중심임을 아시기에 예수님께서 소원을 들어 주신 것입니다.
욥바에 사는 여제자 다비다는 어떠하였습니까? 그가 죽자 생전에 그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룻다에 있는 베드로에게 사람을 보내 지체 말고 올 것을 간청하였습니다. 베드로가 도착하니 모든 과부가 그 곁에 서서 울며 다비다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 지어 준 옷가지를 다 내보였습니다. 자신의 안락을 누리지 않고 많은 사람을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살았던 다비다의 행함에 감동을 받은 베드로가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녀를 다시 살려 주셨습니다(행 9:36~40).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은혜를 베푸셨을까요? 여인의 행함이 참으로 아름답고 은혜로웠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기독교인이 심히 핍박받던 시기입니다. 그런데도 다비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리스도인들을 돕는 큰 믿음의 행함을 나타냈습니다.
이처럼 의인은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존귀히 여김을 받습니다. 네 친구가 중풍병자의 부탁을 기꺼이 들어준 것처럼 모든 사람이 그를 위해 의를 나타내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통해 무엇을 깨우쳐야 하겠습니까?
첫째, 의인에게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얻는 후덕함이 있다는 점입니다.
욥에게는 많은 친구가 있었습니다. 비록 변론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친구들은 욥이 곤경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와 같이 염려하며 권면하였습니다. 그들이 그만큼 욥에게 입은 은혜가 있고 그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들이 욥을 위한다면서 그를 깨우치려 한 것이 사람의 생각이고 자기 보기에 의였기 때문에 변론이 일어났지만 처음부터 그런 동기를 가지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의인인지 아닌지 스스로 분별해 보시기 바랍니다. 의인이라면 많은 사람이 존경하고 사랑하며 따를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믿음의 형제들이, 가정에서는 가족이, 일가친척과 이웃이 따릅니다. 의인이 되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면 사랑과 존경을 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축복해 주십니다.
둘째, 의인에게는 믿음의 행함이 있다는 점입니다.
마음이 선하고 의로운 사람은 친구가 죽어가거나 어려움에 처할 때에 믿음으로 구제하고 도우며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좇아 행합니다. 중풍병자의 친구들도 이런저런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믿음으로 친구를 살릴 방법을 강구하였습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어떤 한계에 머물러 있지 않았지요.
이처럼 믿음의 행함을 내보일 때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과 정성을 보고 분명히 역사하여 불가능한 것까지라도 가능케 하십니다.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라고 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역사하시니 오직 믿음으로 행하는 의인이 되어 항상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예로부터 존경받는 의인은 의로운 행함과 내면에서 우러나는 선의 향기로 많은 사람에게 진한 감동과 삶에 아름다운 영향을 끼칩니다. 반대로 악인은 두고두고 부끄러운 이름으로 남아 뭇사람의 입에 오르내리지요. 이는 우리나라의 역사적 인물을 보아도 알 수 있고, 성경에서도 그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네 친구가 중풍병자를 데리고 예수님이 계신 곳까지 왔지만 도저히 용신할 수 없자 어떠한 행함을 내보였을까요?
2. 의인의 특징 두 가지를 써 보세요.
① 의인에게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얻는 ( )이 있다.
② 의인에게는 믿음의 ( )이 있다.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165~178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이세벨’
시돈 왕의 딸이었던 이세벨은 북이스라엘 아합왕과 결혼하면서 시돈의 우상인 바알과 아세라 신을 이스라엘에 들여와 왕은 물론 신하와 백성까지도 우상숭배에 물들게 했다. 이에 북이스라엘은 공의의 심판에 따라 삼 년 반이나 계속된 가뭄과 이방 민족의 침략으로 큰 어려움을 당해야 했다.
이세벨은 요한계시록 두아디라교회에 보낸 서신에도 등장한다.
마치 하나님과 교통하는 선지자인 양 교묘한 말로 성도들을 미혹하여 우상숭배, 곧 영적 음행에 빠지게 한 ‘자칭 선지자’의 표상으로 그 이름이 거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