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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공과
2020-03-27 제13과꿈을 이루실 줄 믿음으로 (1) 창세기 37:5~9
읽을말씀 : 창세기 37:5~9  |  외울말씀 : 요한일서 5:18 l 참고 말씀: 마가복음 11:24
교육목표 :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굳건히 믿음을 지키며 성실히 꿈을 이루어 가는 성도가 되게 한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어떤 사람은 신속하게 응답받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 가지 소원을 이루기 위해 금식과 철야를 하면서 수개월 혹은 수년 동안 기도해도 당장 손에 잡히는 열매가 없거나 오히려 상황이 더 나빠진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절망하며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녕 믿음으로 바라보고 구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요동하지 않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 어떠하든지 변치 않는 진실한 마음으로 믿음을 지킬 때 마침내 응답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증손자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열두 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그중 열한 번째인 요셉을 더 깊이 사랑했습니다. 이렇게 아버지의 귀여움을 받고 자란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받아 어린 나이에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려가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무 죄 없이 감옥에 갇혀 지내야 했지요. 이러한 상황에서도 요셉은 오직 믿음으로 행하였으며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기뻐하시고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연단을 허락하신 이유와, 요셉의 삶과 신앙을 통해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1. 요셉에게 연단을 허락하신 이유
   
   아버지의 각별한 사랑을 받으며 귀하게 자란 요셉이 하루아침에 노예 신세가 되었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기까지 하지요. 이러한 과정은 요셉이 자기적인 의와 틀을 철저히 깨뜨리고 변화되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축복의 연단이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의 차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지름길이었습니다.
   요셉은 이러한 연단 속에서도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왔는가?’ 하며 원망 불평하거나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다가온 모든 상황을 잠잠히 받아들였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돌아보며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했습니다. 자신을 노예로 파는 형들을 보면서 ‘형들이 그동안 얼마나 나를 미워했으며, 왜 그렇게 미워하게 되었는지.’ 뼛속 깊이 느꼈습니다. ‘내가 형들의 허물을 전하고 꿈 자랑을 할 때 얼마나 마음이 상했을까? 내 편에서는 옳다 생각했지만 형들 입장에서는 많이 힘들었겠구나.’ 이렇게 자신을 돌아보며 철저히 회개했지요.
   또한 요셉은 모든 인생사가 하나님 손 안에 있음을 깊이 인식했기에 자신의 상황을 풀어 주실 분도 오직 하나님뿐임을 깨닫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겼습니다. 요셉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었던 것은 자신과 함께하며 지키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자기 의가 남아 있었지만 늘 하나님 말씀을 청종했고 말씀대로 행하고자 노력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비록 노예 신세라 해도 또한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이라 해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키고 인도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니 평안할 수 있었지요.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연단을 허락하신 이유는 커다란 악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통해 하나님에 대해 배우고 들은 바를 명심하여 지켜 행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연단을 허락하신 이유는 자기 의를 깨뜨리며 장차 하나님 섭리를 이루는 큰 그릇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마침내 어려움 가운데서도 오직 믿음으로 행한 요셉을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총리로 세우셨습니다.
   
   
   2. 요셉의 삶과 신앙을 통해 깨달을 점
   
   첫째, 사람이 고난받는 까닭은 대부분 자신의 부족함 때문입니다.
   요셉은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아내인 라헬에게서 낳은 아들입니다. 더구나 야곱이 노년에 얻은 아들이기 때문에 그는 여러 형제 중에서 유달리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야곱이 얼마나 사랑했던지 그에게만 채색옷을 입혔고, 다른 아들들은 일하러 나갈 때도 자기 곁에 남게 할 정도였습니다. 이로 인해 형들은 불평하며 요셉을 미워하였습니다.
   게다가 요셉이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알리기까지 하니 더욱 감정이 상하였습니다. 요셉의 입장에서는 옳지 않은 일을 그냥 넘기지 못하여 그런 것이지만 사랑이 아니었지요. 그뿐 아니라 요셉이 자기가 꾼 꿈을 말하는데, 그 또한 형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형제들이 밭에서 곡식을 묶는데 형들의 곡식 단이 요셉의 단을 향해 절을 하더라는 것입니다(창 37:7). 또 얼마 후에는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을 꾸었다고 말합니다. 이 꿈들은 장차 요셉이 존귀하게 되어 부모와 형제들까지도 그를 높이게 되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형들이 보기에 그렇지 않아도 곱지 않은 동생이 갈수록 더 얄미운 말만 합니다. 물론 그의 꿈은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인 꿈이었고,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실제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더 지혜롭고 겸손했더라면 공연히 형들에게 꿈 이야기를 하여 시기 나게 하지 않고 잠잠히 마음에 담아 두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 주변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덕과 지혜가 부족하여 형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요셉을 미워하던 형들은 마침내 그를 미디안 상인에게 팔아 버리고 맙니다. 물론 형들이 악하기 때문에 요셉을 팔아넘겼지만 그에게 자랑하는 마음이 없고 낮은 마음으로 형들을 섬겼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자신의 모습을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자신의 건강이나 가정, 일터, 사업터 등에 어떤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면 이는 남의 탓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일서 5장 18절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선하고 의롭게 산다면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니 질병이 틈타거나 삶 가운데 어떤 문제나 어려움이 생길 리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어떤 응답을 받기 원할 때는 먼저 자신의 부족함이 무엇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십일조를 하지 않거나 주일을 온전히 지키지 않았는지 돌아보며 미움, 시기, 간음, 판단 등 마음 안에 비진리가 있다면 회개하여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헐 때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둘째,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요셉은 애굽에 팔려갔지만 결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도하시리라는 믿음과, 하나님이 주신 꿈대로 자신이 존귀한 자리에 이르게 되리라는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종으로 팔려간 곳은 애굽 왕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이었습니다. 주인은 요셉의 성실함과, 그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자기 온 집을 관리하는 가정 총무로 세웠습니다. 이로 인해 형편이 나아졌는가 했는데, 얼마 후에 요셉은 이전보다 더 비천한 자리로 떨어지고 맙니다.
   주인의 아내가 그를 유혹했다가 거절당하자 오히려 자신을 희롱했다는 누명을 씌웠기 때문입니다. 이제 요셉은 수치스러운 누명을 쓰고 왕의 죄수를 수용하는 깊은 감옥에 갇히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때도 그는 낙심하지 않고 반드시 꿈을 이루어 주실 줄 믿으며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이처럼 참 믿음이 있는 사람은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하신 대로 자신이 하나님께 구한 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응답이 없어도 이미 받은 줄로 믿기 때문에 결코 낙심하지 않으며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그러니 때가 이르면 그 고백대로 반드시 응답과 축복을 받습니다. 진실하게 믿음을 내보이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의 열매로 축복하십니다. 요셉과 같이 변함없는 믿음을 소유하여 영광스런 천국에 들어가는 날까지 항상 응답과 축복이 넘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요셉의 삶과 신앙을 통해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① 사람이 고난받는 까닭은 대부분 자신의 ( ) 때문이다.
   
   ②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 )하지 않는다.
   
   2.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연단을 허락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83~95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요셉이 범사에 형통할 수 있었던 이유’
   
   만일 죄의 담으로 인해 오는 보응이나 마음에 큰 악이 있어서 빼내도록 허락하신 연단이라면 하나님께서 외면하신다. 철저히 홀로 연단을 받아야만 단단히 굳어진 악이 버려지고 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히 연단의 과정도 힘들다. 그러기에 악이 많은 사람은 연단 중에도 악을 발함으로 더 큰 고통과 어려움을 자초하기도 한다.
   
   그러나 요셉에게는 큰 악이 없었고, 연단 중에 악을 발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며 겸비함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변함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니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며 연단 중에도 형통케 하셨다.
지난 주 설교요약
2020-03-22 의와 틀을 깨뜨리자 (1) - 이재록 목사 이사야 55:8~9
오늘은 자기적인 의와 틀의 개념과, 세상적인 의와 틀 및 진리를 바탕으로 형성된 의와 틀은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자기적인 의
   
   의란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원래 의의 일반적인 뜻은 사람으로서 행해야 할 바른 도리입니다. 또 진리 안에서의 의는 의로우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정직하게 정의롭게 행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의로운 사람을 사랑하십니다(시 11:7). 그런데 지금 설명하고자 하는 의는 하나님 보시기에 의가 아닙니다. 바로 자기 기준에서 맞다, 옳다고 주장하는 자기적인 의를 말하지요.
   이사야 55장 8~9절에 하나님께서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말씀하십니다.
   무엇 무엇이 옳다는 생각에 있어서도, 사람이 보기에는 옳은 것 같아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옳지 않은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 보기에 옳은 것을 고집하거나 주장하는 것, 이것이 바로 자기적인 의입니다. 이 의가 있으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좇을 수가 없습니다. 자기 보기에 옳은 것을 좇게 되지요.
   
   1) 세상적인 의
   자기적인 의를 세분하면 먼저 세상적인 의, 곧 하나님의 뜻에 명백하게 위배되는 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역사소설이나 무협소설을 보면 주인공이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일생을 살아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모의 원수를 갚는 것이 자식의 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굳게 믿고 행하는 것, 이것이 이 사람의 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원수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뺨을 한 대 맞으면 다른 편 뺨도 돌려대는 것이지요. 따라서 원수를 갚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세상적인 의입니다.
   
   2) 진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의
   다음으로 자기적인 의에는 진리를 바탕으로 만든 의가 있습니다. 이 의가 바로 영으로 들어오는 데 있어서 걸림돌이 되는 존재이지요. 이 의는 진리로 포장되어 있어서 겉모양은 하나님의 의와 구분이 잘 안 됩니다. 진리 안에서 만든 의는 믿음의 1단계, 2단계보다는 3단계에서 많이 나타납니다. 왜 그럴까요?
   믿음의 3단계는 아직 생각으로 짓는 죄, 즉 육신의 일까지 다 버린 것은 아니지만 행위로 범하는 죄 곧 육체의 일은 행치 않는 단계이지요. 이때는 진리를 많이 알고 그 진리를 어느 정도 행할 수 있으며 사명도 맡아 감당합니다. 사명을 감당하면서 열매를 내기도 하지요. 그래서 자신의 믿음을 높이 평가하게 됩니다. 은연중에 자기 생각이 옳고 자기 행동이 옳다는 의식이 자리 잡지요.
   
   누가복음 18장 10~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자기가 의롭다고 믿는 사람들을 깨우쳐 주시려고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비유로 말씀해 주십니다. 바리새인은 기도하기를 “나는 토색, 불의, 간음하는 자들과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합니다. 그런데 세리는 감히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며 기도하지요.
   세리는 감히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믿음이 적을 때는 세리처럼 자기적인 의가 별로 없습니다. 아직 온전히 말씀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지 못하지요. 물론 아직 세상적인 의가 남아 있을 수는 있지만 이것은 진리와 명확하게 구분되므로 발견해서 깨뜨리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3단계에 들어오면 어느 정도 하나님 말씀을 지켜 행하기 때문에 바리새인처럼 스스로 의롭게 여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가 옳다는 의를 깨뜨려야지만 하나님의 뜻을 좇을 수 있고 풍성한 축복을 거둘 수 있지요. 진리 안에서 만든 의는 믿음의 3단계 60%를 넘어서서 믿음의 4단계에 가까울수록 발견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때로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혹독한 연단을 허락하셔서 자기 의를 발견하여 깨뜨리게 하셨습니다. 욥이 대표적인 예이지요.
   
   욥은 행위로 볼 때는 아무 흠이 없었기 때문에 순전한 자라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연단이 시작되자 욥의 자기적인 의가 여실히 드러납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불의하고 자신은 의롭다고까지 말하지요. 친구들이 권면을 해도 도리어 비꼬았습니다. 물론 친구들이 옳은 말만 한 것은 아니지만 욥이 참으로 의로웠다면 어떤 말이든 겸허하게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욥은 행위적으로는 온전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의롭지 못한 마음이 있었지요. 혹독한 연단을 받은 후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시자 그제야 비로소 욥의 의가 깨어집니다. 자신의 무지함과 옳지 않음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철저히 낮추었던 것입니다.
   
   
   2. 틀이란 무엇일까?
   
   틀은 무엇 무엇이 옳다는 생각이 단단하게 굳은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보고 듣고 배운 것을 바탕으로 생각의 틀을 만듭니다. 자기 지식이나 경험을 바탕으로 ‘이것이 도덕적으로 옳다.’ ‘이것이 교양 있는 행동이다.’ ‘이 지식이 맞다.’ 등등 어떤 것이 옳다는 생각을 굳혀 나가지요.
   단단하게 굳어서 쉽게 바뀌지 않는 생각이 바로 생각의 틀입니다. 이 틀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성격, 취향, 자라온 환경, 쌓아온 지식과 교양 등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또 이 틀을 객관적인 사실이나 절대적인 진리에 비춰 보면 맞지 않는 것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대부분 이 틀을 바탕으로 이것이 옳다, 그르다, 맞다, 틀리다 하며 분별하지요. 자기적인 의도 바로 이 틀에서 비롯됩니다. 자신의 틀을 바탕으로 자신이 옳다고 고집하거나 주장하는 것이 의이지요.
   
   1) 의와 틀의 관계 - 성벽과 화살
   의와 틀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틀은 높고 단단하게 쌓아올린 성벽에 비유할 수가 있습니다. 벽돌 하나하나를 쌓아 성벽을 만들듯이 이것이 옳다는 생각들을 하나하나 굳혀서 자신만의 성을 쌓은 것이 바로 틀입니다.
   이렇게 자기만의 성을 쌓으면 대개는 성만 쌓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탕으로 상대를 공격합니다. 즉, 성 안에서 타인을 향해 쏘는 화살, 이것이 말하자면 의이지요. 자기 틀이 강한 사람은 자기 틀 안에서 상대에게 자기 생각을 강요하기도 하고 틀렸다, 잘못되었다 하며 상대를 판단하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마치 적에게 화살을 쏘아대는 것과 같지요. 그래서 의가 강한 사람 곁에 다가가면 이 판단의 화살, 비난의 화살에 맞기가 쉽습니다.
   이렇게 의와 틀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자기 발견을 잘해야 합니다. 성품에 따라 의와 틀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성격이 내성적이어서 의사 표현을 잘 안 하기 때문에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요. 그런데 이런 사람에게도 강한 의가 있습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외향적이라서 목소리도 크고 자기주장이 강한 것 같아 보이는데 의외로 의가 강하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도 잘 수용하고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잘 포용하지요. 따라서 외향적인 모습만 보고 의가 강한 사람이라고 판단하거나 선입견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2) 세상적인 틀과 진리의 틀
   틀에도 세상적인 틀과 진리 안에서의 틀이 있습니다. 세상적인 틀이란 세상을 살아오면서 세상의 지식, 교양 등을 바탕으로 만든 틀입니다. 이런 틀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가령, “사람은 유인원에서 진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셨다”고 하면 믿지를 못합니다. “과학적 지식이 가장 객관적이다”라는 지식의 틀 때문에 말씀을 받지 못하지요.
   
   다음으로, 진리의 틀은 믿음 안에 들어와서 하나님의 말씀 곧 진리를 바탕으로 만든 틀입니다. 바로 이 진리의 틀이 영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큰 방해 요소가 되지요.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던 당시에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진리의 틀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율법은 물론 장로의 유전까지 힘써 지켰지요. 안식일에는 일정 거리 이상은 걷지도 않을 정도로 안식일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쳐 주시자 안식일을 어겼다고 비난합니다. 안식일에 일을 했다는 것이지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안식일에 대한 잘못된 틀로 진리 자체이신 예수님을 판단하고 비난했지요. 이런 것이 바로 진리를 바탕으로 만든 잘못된 틀입니다. 이 밖에도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씻지도 않은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는다고 장로의 유전을 운운하며 책잡기도 했습니다. 장로의 유전은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이 아닙니다. 사람이 만든 규정이지요.
   오늘날에도 비슷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어떤 교단들은 자신들의 법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이단이다, 잘못되었다 하며 정죄합니다. 심지어 부르짖어 기도하거나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을 금하는 교단도 있습니다. 지극히 성경적인 기도 방법을 자신들이 만든 잘못된 틀 때문에 배척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배운 진리를 가지고 자신이 새롭게 진리의 틀을 만드는 경우입니다. 자신이 보기에는 하나님의 뜻이고 진리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너무나 많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리를 바탕으로 형성된 의와 틀은 발견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고도 의와 틀을 깨뜨리지 못해서 연단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앙의 진전도 없고 눈에 보이는 축복의 열매도 없는 답답한 상태가 지속되지요. 욥처럼 사단의 송사로 인해 질병에 걸리거나 가정, 일터, 사업터에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이렇게 시험이 왔을 때 의와 틀을 발견해서 깨뜨린다면 축복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늘 감당할 수 없는 큰 사랑을 주십니다. 범사에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진한 선의 향을 느낌으로 자신의 의와 틀을 발견하여 부지런히 깨뜨려서 날마다 사랑스러워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0년 3월 22일 주일)
* 사회: 조수열 목사
개회찬송 32장 1절
성시교독 50번
찬송 359장
기도 황금란 전도사
성경봉독 데살로니가전서 5:16~18
찬양 주와 함께 가리라(영상)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하나님의 뜻(영상설교)
당회장님
찬송 만민 찬양 35장
주일 저녁예배 (2020년 3월 22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조대희 목사
대표기도 최종태 장로
성경봉독 요한일서 3:18~22
특송
설교 요한일서 강해(33)(영상설교)
당회장님
수요 예배 (3월 25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정진영 목사
대표기도 최영자 목사
성경봉독 야고보서 3 :17~18, 잠언 9:10
설교 공부 잘하는 비결 (3)(영상설교)
당회장님
금요 철야예배 (3월 27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길태식 목사없음
대표기도 박형렬 목사
성경봉독 창세기 3 :21~22
찬양 샬롬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영상)
설교 창세기 강해(영상설교)
당회장님
새벽 예배
인도 박광현 목사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0-03-22 2020년 3월 넷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새로 나오셔서 등록해 주신 분들과 인터넷으로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새교우를 인도하신 분들은 예배 후 새교우를 새교우환영실(본당 건너편)로 안내해 주시기 바랍니다.
새교우 5주 교육프로그램이 매주일 오후 2시 새교우환영실에서 있습니다.


● 당회장님 소식

● 당회장님 외국어 저서 「사랑은 율법의 완성」 체코어(542번째), 헝가리아어(543번째), 핀란드어(544번째),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노르웨이어(545번째)가 발간되었고, 「하나님의 법도」 불가리아어가 전자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 당회장님 신앙칼럼이 「크리스챤신문」, 「크리스챤월드리뷰」, 「기독선교신문」과 「중앙일보」, 「동아일보」, 「시사뉴스」 등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교회 소식

● 만민뉴스 영어(668호)를 발행하였고, 중국어(544호), 일어(209호), 몽골어(82호) 신문을 인터넷(PDF)으로 발행하였습니다.
(만민뉴스 홈페이지 www.manminnews.com)

● 당회장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조) 교보문고, 영풍문고, 반디 앤 루니스, 북스리브로, 예스24, 알라딘, 인터파크 등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자책(e-book)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감사드립니다.

강단 헌화/ 꽃꽂이 봉사 : 예배국 미화부, 시설관리국
주간 성경구절
2024-03-24
[주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 3:13]
2024-03-25
[월요일]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롬 5:7]
2024-03-26
[화요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2024-03-27
[수요일]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벧전 2:24]
2024-03-28
[목요일]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고후 1:5]
2024-03-29
[금요일]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히 5:8]
2024-03-30
[토요일]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히 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