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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공과
2020-04-10 제15과부활 사도행전 1:11
읽을말씀 : 사도행전 1:11  |  외울말씀 : 로마서 10:9 l 참고 말씀: 데살로니가전서 4:16~17
교육목표 :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마음에 믿음으로 부활의 소망 가운데 변화된 삶을 살아게 한다.


   주님의 부활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로마서 10장 9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말씀하신 대로 주님의 부활을 마음에 믿을 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굳건한 부활의 믿음이 있어야 재림의 주님을 맞이할 그날을 더욱 사모하며 성결과 충성에 힘쓸 수도 있지요. 부활이 마음에 믿어지는 사람은 변화된 삶을 살며, 주님의 부활을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목도한 제자들도 담대히 주님의 증인 된 삶을 살다가 마침내 순교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처럼 부활을 온전히 믿을 때 어떠한 상황에서도 타협하지 않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지요. 그러면 부활의 의미를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부활이 희생의 대가로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부활은 주를 믿는 모든 이들에게 가장 기쁘고 즐거운 사건입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말씀했습니다(고전 15:19).
   이 말씀대로 만약 부활이 없고 이 땅의 삶으로 끝난다면 우리처럼 불쌍한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은 반드시 있고 내세는 분명히 있습니다. 부활의 소망 가운데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우리가 가장 복 받은 사람들이지요. 이처럼 부활은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이 부활이 있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죽음이라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주님께서도 부활의 영광으로 나오시기 위해 먼저 죽음에 이르셔야 했지요. 더욱이 하나님의 본체시요,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육적으로 가장 고통스럽고 치욕적인 죽음을 맞으셔야 했습니다.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는 전혀 없는 삶을 사셨지요. 죽으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것을 내어주는 희생의 삶이셨습니다. 하늘 영광을 다 버리고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자체부터가 피조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희생이셨습니다.
   또한 사역을 이루시는 동안에는 제대로 주무실 시간도, 잡수실 시간도, 잠시 자신의 몸을 돌볼 시간도 없으셨습니다. 결국 마지막 물과 피 한 방울까지 다 내어주시며 자신이 주실 수 있는 모든 것을 희생하셨지요.
   이처럼 영광의 부활이 있기까지 그 이면에는 엄청난 희생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부활을 생각할 때마다 이러한 주님의 희생을 항상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그럴 때 부활의 의미와 가치 또한 더욱 마음에 깊이 새겨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활의 신앙을 가진 사람은 주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 자신을 희생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 누릴 것 다 누리고 취할 것 다 취하며,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산다면 무엇을 희생했다 말할 수 있겠는지요? 주님의 뒤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힘들게 억지로 자신을 희생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희생하는 만큼 장차 영원한 삶이 주어지는 천국에서는 우리가 희생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상급과 영광이 주어집니다.
   
   
   둘째, 부활로 인해 영원한 삶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부활을 직접 목도했습니다. 제자들이 며칠 전에 뵈었던 예수님은 극악무도한 자들의 채찍질에 살갗이 엉망이 되고, 머리에는 날카롭고 뾰쪽한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두 손과 발에는 큰 못이 박혀 온몸이 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3년 동안 제대로 주무시지도 드시지도 못한 야윈 몸은, 앙상한 뼈에 가죽만 덮인 듯하였지요.
   이러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여섯 시간 동안 극심한 고통을 받으시다가 결국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럼에도 한 군병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 피와 물이 흘렀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은 세마포에 싸여 새로 판 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 도무지 다시 살아날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이는 완전한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시 살아나셨고 제자들 앞에 부활체의 몸을 입고 나타나 대화를 나누셨지요. 주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도마에게는 못 자국과 창 자국을 만져 보라 하셨고, 제자들과 구운 생선도 함께 드셨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한 부활을 직접 본 제자들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단 하나뿐인 목숨을 주를 위해, 복음을 위해 다 바쳤습니다. 영생에 대한 확신이 생기니 이제 자연히 죽음에 대한 공포는 사라졌지요. 제자들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확신 가운데 전하는 복음을 들은 사람들 역시 부활과 영생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이 가셨던 고난의 길을 따랐지요.
   맹수의 밥이 되는 상황에서도 감사의 기도를 올리며 품에 꼭 안긴 어린 자녀에게 “우리 곧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고 인사를 나눴습니다. 기독교인들에 대한 핍박을 피해 평생 햇빛을 직접 보지 못하고 지하 묘지 카타콤에 숨어 살면서도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기다림으로 가슴 벅찬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러다 먼저 잠든 가족을 그 지하 무덤에 장사하면서도 영원히 이별이 없는 천국에서 다시 만날 소망을 다졌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 대로 우리는 살아서 주님을 맞을 소망 가운데 오늘도 주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셋째, 부활을 통해 아버지의 섭리가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인간 경작의 역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점을 찍은 사건입니다. 이 부활이 기독교에서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3~14절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망 권세를 깨트리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구원의 도가 완성되었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구원의 도가 완성될 수 없었고, 우리는 죄 사함을 받지 못한 채로 영원한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었지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예수님이 아무 죄 없이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고, 죄가 없으시기에 사망 권세를 이기셨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요.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부활을 빼고는 결코 구원을 말할 수가 없습니다.
   
   복음이 활발하게 전파되기 시작할 당시를 기록한 사도행전을 보면 복음의 중요한 핵심이 바로 ‘부활’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예로, 가룟 유다를 대신할 제자를 선택할 때 제자 된 자의 사명이 바로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는 것임을 분명히 말씀하지요. 사도행전 1장 22절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기독교는 부활에 대한 믿음의 굳건한 토대 위에 세워진 부활의 종교입니다. 만약 주를 믿는 우리가 죽은 후에 다시 살아서 영원히 천국 영광을 누릴 소망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힘들게 말씀대로 살겠습니까? 부활의 소망이 있기때문에 세상에 미련 두지 않고, 어떤 핍박이나 환난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직 생명 다해 진리를 행하며 살아가게 되지요.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서 인간 경작을 통해 얻기 원하시는 참 자녀로 나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참 자녀로 나온 영혼들을 장차 새 예루살렘으로 이끌어 들여 영원토록 사랑을 나누실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 경작을 하며 마음에 품으신 섭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은 부활의 소망 가운데 변화된 삶을 살아가심으로 영광스러운 부활의 열매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 주님의 부활에는 어떠한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① 부활이 ( )의 대가로 주어졌다는 것이다.
   ② 부활로 인해 ( ) 삶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③ 부활을 통해 아버지의 ( )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2. 사람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한 부활을 직접 목격한 후 제자들의 삶은 어떻게 변화되었을까요?
   
   
   ● 금주 과제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들을 위해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더 뜨겁게 사랑하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영적인 부활’과 ‘육적인 부활’
   
   ‘영적인 부활’이란 주님을 영접하여 마음에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죽었던 영이 살아나는 것을 말한다.
   
   ‘육적인 부활’이란 주님이 공중 강림하실 때 구원받은 사람의 몸이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으로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지난 주 설교요약
2020-04-05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녀 - 이재록 목사 히브리서 10:22
오늘은 아버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참 자녀가 되기 위해 명심하여 기도해야 할 세 가지 분야에 대해 증거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자손들을 택하여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모세를 불러 히브리 민족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라고 명하셨지요. 이때 이후로 백성들이 여호와를 섬길 것이며 하나님 앞에 희생 곧 제사를 드리리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경배하고 제사드리는 행위는 하나님을 애굽의 모든 신보다 뛰어나신 참 신으로 인정하고 높이는 표현입니다. 곧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여 열방 가운데 하나님을 나타내셨고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이들을 통해 구약의 역사를 이루셨고 복음이 이방인에게까지 전파되게 하셨지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이스라엘 곧 주를 믿는 자녀들을 구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하나님을 섬긴다 하고 하나님께 제사드린다 하면서 아벨의 제사가 아닌 가인의 제사를 드리는 이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제사는 온전한 피의 제사입니다. ‘피의 제사’는 영적으로 피 흘리기까지 싸워 죄를 버리며 진액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의미합니다. 피의 제사 중에서도 가장 온전한 제사는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룬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 올리는 삶 자체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이 마지막 때에 이런 참 제사의 표본으로 보이시기 위해 이 제단을 예비하셨습니다. 일어나 빛을 발하는 제단으로 일궈 오셨지요. 하나님의 이런 뜻을 이루어 드리려면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빛을 발해야 합니다. 불순물을 빼낸 순금처럼, 정교하게 세공한 보석처럼 밝게 빛나야 이 제단이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도해야 신속하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녀로 나올 수 있을까요? 다음의 세 가지를 명심하여 응답받을 때까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첫째,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녀는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룬 자녀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참마음’이란 말 그대로 거짓이 없는 진실한 마음입니다. 어떤 악도 없는 깨끗한 마음이지요. 불순물을 빼낸 순금은 세월이 흐르거나 모양이 바뀌어도 본래 성질이 변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참마음을 가진 자녀는 환경이나 조건이 변한다 해도 그 마음이 변치 않지요. 한결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빛 가운데 거하며 선을 행합니다.
   다음으로, ‘온전한 믿음’은 장성한 그리스도의 분량에 이른 믿음입니다. 단순히 큰 믿음이나 어느 정도 성숙한 믿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지요. 0.0001퍼센트의 의심도 없이 하나님을 믿는 순전한 믿음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연단을 허락하셔서 마음 깊은 곳까지 조명하실 때 여러분은 과연 어떤 고백을 하셨습니까?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가졌다 자부할 수 있었는지요? 하나님께서 죄의 근본까지 드러내는 작업을 감행하셨을 때, 그동안 덮어 두고 묻어 두었던 추한 죄를 자신의 두 눈으로 직시해야만 했습니다. 이를 통해 ‘내 마음에 악이 있고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온전하지 못하면 결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꾼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절절히 느끼셨을 것입니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자손도 모세가 인도하는 무리에 있다고 해서 모두가 하나님의 백성이라 할 수는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진노케 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지요.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열 정탐꾼은 각 지파에서 선택된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가는 과정 중에 이런 쭉정이 백성들은 알곡으로부터 자동으로 분리되었습니다.
   그동안 본 제단에서도 ‘시험’을 통해 알곡과 쭉정이가 분리되고 영의 일꾼과 육의 일꾼이 구별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한 영혼도 잃지 않기를 원하셨기에 그때마다 늘 풍성한 긍휼과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지금까지 크신 섭리를 이루시는 매 순간마다 아버지 하나님께는 마음을 진리로 일군 자녀, 아버지의 마음을 꼭 닮은 자녀가 필요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변화가 더딘 영혼들을 쉽게 버리고, 속히 변화되는 영혼들만 들어 쓰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좀 더딘 영혼들도 귀한 일꾼으로 나오기를 바라며 기다려 주셨지요. 때마다 깨우침과 은혜를 주셨고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달려가야 하는지 길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오늘도 아버지 하나님은 하나님을 꼭 닮은 자녀가 이제나 나올까 저제나 나올까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처럼 기대에 찬 아버지의 눈빛을 상상해 보십시오.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고 싶은 소망이 더욱 간절해질 것입니다. 이 간절함을 품고 불같이 기도하여 반드시 그 소망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둘째, 어떤 연단이든지 기쁨과 감사로 받고 이겨내는 이들마다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룰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루아침에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 아닙니다. 오랜 연단 끝에 비로소 하나님의 선민으로 나왔지요.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계보를 이어 야곱의 열두 아들을 중심으로 각 지파가 형성되기까지만 해도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 자손들은 애굽에서 종살이했고 모세의 인도로 애굽을 탈출한 후에는 광야에서 오랜 세월 연단을 받았지요. 믿음의 주역이나 일꾼들은 더 혹독한 고난의 길을 걸어야만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도에 탈락한 자들도 많았습니다. 출애굽 여정 중에 모세를 대적한 고라 일당, 우상에게 경배하고 행음하여 죽은 무리,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도 믿음을 내보이지 못해 40년간을 광야에서 유리하다 죽어간 열 정탐꾼과 출애굽 1세대가 바로 그런 이들입니다.
   반면에 힘든 길을 걸으면서도 끝까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연단을 잘 받아 결국 하나님의 사람 또는 하나님의 참 백성이 되었지요. 이들이 처음부터 의롭고 온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시며 연단하신 결과 구별된 하나님의 자녀들로 나왔고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이루는 도구로 쓰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백성을 향해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하셨습니다(사 48:10). 여러분도 이 택함 곧 구원의 테두리 안에 거하려면 때로는 풀무 불같이 뜨거운 연단 가운데 놓이기도 하고,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날마다 죽어야 합니다(고전15:31). 더구나 일꾼의 위치에 있다면 더 혹독한 연단이 가해질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몸과 마음, 재물과 재능, 생명 다해 주님과 교회를 위해 산다 했는데 영으로 들어가는 속도가 너무 더딘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기를 진정 원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기뻐하고 감사합니다. 연단은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기쁨과 감사 가운데 연단을 잘 통과하면 그때마다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에 가까워지지요. 애매히 고난을 받으면서도 선으로 인내하며 감사했다면 하나님과의 신뢰관계가 더욱 돈독해집니다.
   여러분이 연단을 잘 받은 끝에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고 드디어 천국에 들어갔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때 자신이 거하게 될 처소를 지금 미리 볼 수만 있다면 연단을 받을 때 기쁨과 감사가 넘칠 것입니다. 연단을 잘 통과할 때마다 영화로운 곳에 더 가까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세미한 것까지 연단하실 때마다 기쁨과 감사로 잘 통과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스스로도 말씀대로 행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는 일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능력, 성령의 도우심으로만 가능합니다. 세상에 죄악이 관영한 이 마지막 때에는 더더구나 스스로 악을 발견하여 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연단하며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말라기 3장 3절에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게 하는 자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게 하되 금, 은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말씀한 대로이지요. 그러므로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려면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각자의 노력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자신을 발견하여 변화시키기 위해, 하나님 말씀 안에 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더구나 사망에 이르는 죄에서 돌이켰다면 이제 그런 죄를 부르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철저히 차단하고 마음에서도 벗어 버려야 하지요. 그리고 여러분의 마음에 말씀과 기도와 찬양, 천국 소망을 가득 채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부족함을 발견케 하실 때마다 적극적으로 노력하여 변화되시기 바랍니다. 명백한 비진리는 물론 육체의 결여 같은 분야도 ‘안 된다, 어렵다’ 하지 마시고 차근차근 고치고, 채워 나가시기 바랍니다. 지난날의 죄와 허물을 청산한 것으로 결코 마음을 놓지 마십시오. 이제는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는 데 총력을 기울이시기 부탁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끊임없이 이 제단을 정결케 해 오셨습니다. 친히 찬양까지 주시면서 우리의 마음과 입술을 정화시키고 계시지요. 찬양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대표적인 행위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아버지께서 주신 찬양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계신지요? 입술로는 찬양을 한다 해도 범죄하며 살아가면 이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예배와 기도를 드리든 사명을 감당하든 무엇을 하든지 마찬가지입니다.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행할 때 하나님을 진정 영화롭게 할 수가 있습니다.
   에스라 3장 11절에 백성들이 “서로 찬송가를 화답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가로되 주는 지선하시므로 그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 하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전 지대가 놓임을 보고 여호와를 찬송하며 큰소리로 즐거이 부르며” 말씀했습니다.
   속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어 가나안성전 지대가 놓일 때 우리 또한 참된 예배와 찬양, 기도와 충성을 드립시다.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나아가 세세무궁토록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참 자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0년 4월 5일 주일) 고난주간
* 사회: 주현철 목사
개회찬송 147장 1절
성시교독 60번
찬송 144장
기도 빈금선 권사
성경봉독 빌립보서 2:6~8
찬양 정결하게 하는 샘이(영상)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주 예수그리스도(영상설교)
당회장님
찬송 만민 찬양 161장
주일 저녁예배 (2020년 4월 5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임학영 목사
대표기도 장정미 전도사
성경봉독 디모데후서 4:7
특송
설교 우리의 열심은(영상설교)
당회장님
수요 예배 (4월 8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정진영 목사
대표기도 류순주 전도사
성경봉독 야고보서 3:17~18, 잠언 9:10
설교 공부 잘하는 비결(5)(영상설교)
당회장님
금요 철야예배 (4월 10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조혁희 목사부활절 공연(영상)
대표기도 김진홍 장로
성경봉독 마태복음 22:37~40
찬양 샬롬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영상)
설교 눈물(영상설교)
당회장님
새벽 예배
인도 당분간 없습니다.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0-04-05 2020년 4월 첫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새로 나오셔서 등록해 주신 분들과 인터넷으로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당회장님 소식

● 당회장님 신앙칼럼이 「크리스챤신문」, 「크리스챤월드리뷰」, 「기독선교신문」과 「중앙일보」, 「동아일보」, 「시사뉴스」 등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교회 소식

● 이번 주간은 고난주간입니다.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시며 몸과 마음을 경건하게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 다음 주일은 부활주일입니다.
※ 금주 금요 철야예배 2부시 부활절 공연(영상)이 있습니다.

● 당회장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조) 교보문고, 영풍문고, 반디 앤 루니스, 북스리브로, 예스24, 알라딘, 인터파크 등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자책(e-book)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우림북/ 4월 추천도서는「거역된 삶과 순종의 삶」입니다.
시중서점 또는 만민서점에서 추천 도서를 구입한 뒤 이름, 소속 등을 기재한 영수증을 응모함에 넣어 주시면 추첨을 통하여 사은품을 드립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우림북 홈페이지 www.urimbooks.com)
주간 성경구절
2024-04-07
[주일]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롬 4:25]
2024-04-08
[월요일]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시 121:3]
2024-04-09
[화요일]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시 121:4]
2024-04-10
[수요일]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시 121:5]
2024-04-11
[목요일]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시 121:6]
2024-04-12
[금요일]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시 121:7]
2024-04-13
[토요일]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시 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