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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공과
2020-04-17 제16과오직 하나님을 의뢰한 다니엘 (1) 다니엘 1:8~20
읽을말씀 : 다니엘 1:8~20  |  외울말씀 : 요한복음 14:21 l 참고 말씀: 레위기 11장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라면 철저히 싫어하며 세상 어떠한 것과도 타협하지 않고 중심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다니엘은 주전 605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남유다를 침략했을 때,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런데 포로의 신분과 상관없이 이방 족속 가운데 뛰어난 자가 되어 왕의 신임과 사랑을 받으며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는 다니엘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한 마음을 가졌고, 그 선을 행함으로 온전히 나타내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린 결과였습니다. 그러면 다니엘이 어떠한 마음과 행함으로 하나님을 의뢰하였기에 포로 신분인데도 불구하고 왕의 신임을 받아 총리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을까요?
   
   
   1.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라면 철저히 싫어한 다니엘
   
   느부갓네살왕은 점령한 속국을 보다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왕족과 귀족의 몇 사람을 바벨론으로 데려가 교육을 받게 했습니다. 이때 발탁된 소년들이 다니엘과 세 친구들입니다. 이들은 흠 없고 아름다우며 모든 재주를 통달하여 왕궁에 모실 만한 소년들로, 왕은 이들에게 갈대아 학문을 배우며 왕의 진미를 먹게 하였습니다. 포로의 신분으로 이 같은 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매우 영광스런 일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에게 우려되는 일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왕의 진미에 우상의 제물로 드려진 음식이나 하나님께서 ‘가증하다’ 하신 짐승으로 만든 음식들이 섞여 있을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레위기나 성경 곳곳에 보면 우상의 제물이나 가증스러운 짐승들은 먹지 못하게 금하셨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행위적인 율법의 준행이 중요했기에 우상의 제물이나 가증한 식물(食物)을 먹으면 그것은 곧 하나님께 범죄함이 되었지요.
   이에 다니엘은 왕의 진미를 먹지 않고 대신에 채식을 할 수 있도록 환관장에게 청하였습니다. 열흘 동안 시험적으로 채식을 할 수 있게 해 보고 왕의 진미를 먹은 다른 소년들과 얼굴빛을 비교하여 보라 했지요.
   과연 다니엘의 제안대로 하였을 때 다니엘과 세 친구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윤택하여 왕의 진미를 먹은 모든 소년보다 나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후로도 계속하여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먹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2. 왕의 총애를 받는 총리가 된 다니엘
   
   하나님을 경외하여 계명을 좇아 자신들을 지키고자 했던 다니엘과 세 친구에게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다니엘 1장 17절에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신 외에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더라” 하신 대로이지요. 그 결과 이들은 소년들 중에서 왕을 모시는 자들로 뽑히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이들은 왕에게도 인정받았는데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했습니다(단 1:20). 하나님께서 지혜와 명철을 주셔서 지식에 지식을 더하게 하심으로, 배도 아니고 십 배나 나았으니 얼마나 뛰어납니까?
   
   여러분이 다니엘이라면 포로의 신분으로 좋은 대우를 받는 상황에서 왕의 진미를 단호히 거절할 수 있었겠는지요? 이는 당시 상황에서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며 받아들여질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포로 신세이니 이것저것 가릴 수 있는 처지가 아니며, 더구나 왕이 지정해 주는 음식을 내 뜻에 맞지 않다고 해서 거절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알면서도 ‘상황이 안 되니 어쩔 수 없다.’며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에서 경외하니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은 자신도 철저히 싫어하는 마음이었지요.
   하나님께서는 분명 선하신 뜻 가운데 우상의 제물과 가증한 식물을 금하셨습니다. 우상의 제물은 당연히 취하면 안 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가증하다’ 하신 짐승들 안에는 악한 기가 담겨 있어서 그것을 먹는 사람에게도 나쁜 영향을 주게 되지요. 예를 들어, 한방에서는 몸에 상처가 나고 곪았을 때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게 합니다. 더 성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지 말라”고 금하실 때 그것은 결국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위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담겨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 온전히 행하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도 선한 사람입니다.
   
   
   3. 인간적인 선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은 없어야
   
   하나님을 믿는다 하는 사람 중에는 분명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 하신 것을 알면서도 ‘하는 것이 더 옳다’고 여기며 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자기 보기에 좋을 대로 행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우상 숭배를 하나님께서 얼마나 싫어하시는지 성경 곳곳에서 알려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은 복을 받지도 못하고 결국은 영원한 사망에 이르게 되지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상 숭배를 철저히 금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녀가 사망의 길로 가도록 내버려 둘 수 없는 아버지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적인 선을 앞세워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완전히 거스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계 평화와 종교 간의 화합을 위한다며 무수한 사람들을 미혹하여 사망으로 이끌며 우상과 타협하게 만들지요.
   혹여 여러분은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인간적인 선으로 하나님의 선을 거스르는 일은 없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하지 말라’, ‘버리라’ 하셨는데, 자기 보기에 선의 잣대로 판단하여 ‘너무 매정하지 않은가?’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하지는 않았는지요.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할 때에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소하게 여기고 지나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요, 법이요, 명령입니다.
   
   
   4. 교회 안에서 지켜야 할 분야
   
   교회 안에서 남녀 간에 지켜야 할 법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녀 단둘이 밀폐된 공간에 있으면 안 된다 했고, 남녀 간에 악수도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금하고 있지요. 사람이 영의 마음을 이루기 전 육의 속성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는 그 육이 발동하여 범죄할 수 있기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철저히 금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분야에서도 얼마나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온전히 마음으로 깨달아 준행하고 있는지요?
   또한 기관이나 각 부서의 회계는 개인 사정이 아무리 급해도 하나님의 재정을 임의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엄히 경계하셨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쓰고 채워 넣었다 할지라도, 아무리 소액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재정에 손을 대었다면 이는 도적질할 수 있는 마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다면 구원과도 상관이 있기에 하나님께서는 철저히 금하신 것입니다. 이 밖에도 많은 분야에서 하나님께서 엄히 경계하신 것들을 얼마나 선한 마음으로 준행하고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이 말씀을 준행한다 할지라도 속마음은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마음으로 깨달아 기쁨과 감사함으로 준행하는 사람도 있지요. 그런가 하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알지만 마음 한 편에는 두려움이 있어서 의무감으로 지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알지 못한 채 억지로 지키려 하니 너무나 힘들게 지켜 나가는 사람도 있지요. 더구나 아예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선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니엘이 포로의 신분인데도 좋은 대우를 마다하고 굳이 채식을 했던 그 중심의 선을 깨달아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은 철저히 싫어하고, 기뻐하시는 것만 지켜 행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 )하시는 것을 알면서도‘상황이 안 되니 어쩔 수 없다.’며 타협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중심에서 경외하니 하나님께서 ( )하시는 것은 자신도 철저히 싫어하는 마음이었다.
   
   2. 하나님께서“무엇을 하지 말라”고 금하실 때 그것은 결국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위한 하나님의 ( ) 뜻이 담겨 있음을 알아야 한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99~111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다니엘이 포로로 끌려간 시대적 배경’
   
   이스라엘 통일왕국은 르호보암왕 때에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열되었다(왕상 11:26~36). 이후 북이스라엘은 B.C. 721년 아시리아의 침공으로 사마리아가 함락되어 멸망하였고, 남유다는 B.C. 586년 바벨론 제국 느부갓네살왕의 3차 침공 때 예루살렘이 함락되어 멸망했다.
   
   느부갓네살왕은 여호야김이 유다 왕국을 통치하던 때에 1차 침공을 하였는데(B.C. 605년) 그때에 성전 보물과 함께 왕족과 귀족 일부를 바벨론으로 데려갔다. 다니엘은 이때 잡혀간 포로 중의 한 사람이다.
지난 주 설교요약
2020-04-12 주 예수 그리스도 - 이재록 목사 빌립보서 2:6~8
오늘은 종려주일을 맞아 ‘예수’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으며, 주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 증거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닷새 전의 일입니다. 감람산에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성을 향해 내려오시는 예수님을 무리가 앞뒤로 옹위하며 따릅니다. 사람들이 길에 자기 겉옷을 깔거나 나뭇가지를 꺾어 폅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소리 높여 “호산나”를 외치지요(막 11:7~10).
   이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 바로 종려주일입니다. 백성들이 종려 나뭇가지를 꺾어 예수님을 열렬히 환영한 데서 유래했습니다. 그런데 “호산나”라는 환호 소리는 닷새 뒤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성난 외침으로 돌변합니다.
   
   
   1. ‘예수’와 ‘예수 그리스도’의 차이
   
   종려주일부터 한 주간은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고난 주간으로 지킵니다. 이 고난 주간을 통해 매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예수’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바뀌었지요. 두 이름 사이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 보면 천사 가브리엘이 요셉에게 하나님의 명을 전합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했지요. 즉 ‘예수’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란 의미입니다.
   ‘그리스도’는 ‘메시아’라는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번역한 말이며, ‘메시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뜻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왕이나 제사장, 선지자를 세울 때 머리에 기름을 붓게 하셨습니다. 기름은 성령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왕, 제사장, 선지자의 직임에 임명받아 이 땅에 오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구원의 섭리를 완성하셨지요.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신 구세주’를 뜻합니다.
   
   이처럼 ‘예수’와 ‘예수 그리스도’ 두 이름 사이에는 ‘구원할 자’, ‘구원한 자’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십자가 사건 후 예수님은 만주의 주요, 만왕의 왕이 되셨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얻으셨지요. 이 영광을 얻기까지는 엄청난 값을 치르셔야 했습니다. 바로 고통의 크기를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십자가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뵐 수 있고 그 사랑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2. 주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
   
   첫째, 사람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심에도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빌 2:6~8). 수많은 천군 천사가 호위하는 영광의 보좌를 버리셨습니다. 아름다움과 평안만이 가득한 천상을 떠나 추함과 더러움, 슬픔과 고통이 있는 이 땅으로 내려오셨지요. 지극히 영화로운 모습으로 계시던 분이 불완전한 육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이 땅에 사시는 동안 사람들과 똑같이 고달픈 나날을 보내셨습니다. 드시지 못하면 배고픔을 느끼셨고, 주무시지 못하면 고단하셨으며, 오래 걸으면 발이 아프셨습니다.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쳐 주신 날은 온 동네 사람들이 해질 무렵 병자들을 많이 데려오는 통에 밤을 새워 치료해 주셨습니다. 날이 밝을 무렵에야 그 집을 나오셨지요.
   하루는 제자들과 갈릴리 호수를 건너시던 중 광풍을 만나 배에 물이 찼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배 뒤쪽에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충분히 주무신 적이 없었고 틈틈이 눈을 붙이시는 것이 다였지요. 제자들이 음식을 구해다 드려도 대부분 그들에게 나눠 주시고 조금만 드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제자들과 인생들과 늘 동고동락하셨습니다. 억지로, 힘들게 지내신 것이 아닙니다. 사랑함으로 인생들과 모든 것을 함께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섭리와 뜻, 인생들을 향한 사랑을 늘 마음에 품고 계셨습니다. 곧 인생들이 하나님의 형상과 자녀의 권세를 회복할 수 있도록 자신을 보내셨음을 항상 명심하고 계셨지요.
   하나님의 섭리를 온전히 이루기 위해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고, 마치 종처럼 오직 순종만 하셨습니다. 결국 짐승처럼 죽임을 당하기까지 순종하셨지요. 예수님은 바로 예수님을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의 증표’이십니다. “내가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느냐?”라고 말씀하시는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표로 보이심으로 그 크신 사랑을 확실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이 한 주간, 아니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고난받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영혼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신 분입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깨우러 가십니다. 가보니 나사로의 누이들은 물론 조문하러 온 사람들이 마냥 슬퍼만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그토록 많은 기적을 보이셨는데도 믿음을 내 보이는 이가 없어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거기다 슬피 우는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의 마음도 전해졌지요. 이에 예수님도 눈물을 흘리십니다.
   또 십자가 처형을 며칠 앞두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누가복음 19장 41절 이하에 보면 예루살렘성이 장차 어떻게 멸망당하는지 말씀하며 우셨지요.
   이 외에도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예수님은 영혼들을 위해 눈물을 많이 흘리셨습니다. 영생과 천국, 치료와 평안, 오직 좋은 것만 주려고 해도 예수님을 오해하고 배척하는 영혼들, 믿음을 갖지 못하는 영혼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셨습니다.
   특히 제자들을 어떻게 사랑하고 이끄셨는지를 보면 예수님이 영혼들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로 돌아가시기 전 복음 전파를 부탁할 제자들을 양육하셨습니다. 친히 제자들을 부르시고 동행하셨습니다. 천국 복음을 전하고 놀라운 일을 행하는 자리에 함께하게 하셨지요. 하나라도 더 배우고 깨달아 온전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나오길 바라셨습니다.
   그런데 십자가를 지실 날이 가까워오도록 제자들에게는 이런저런 부족함이 많았습니다. 겟세마네에서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실 때도 제자들은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잠들었으며, 예수님이 잡히시는 순간 대부분의 제자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쳐 버렸습니다. “모두가 주를 버려도 나는 버리지 않겠다”고 힘 주어 말하던 베드로조차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셨을까요? 그들의 부족함도 연약함도 다 아셨지만 오직 사랑의 눈으로 바라봐 주셨습니다. 온전한 자들로 나와 각자의 사명을 완수하고 천국의 온전한 영광을 누릴 수 있도록 끝까지 사랑으로 이끌어 주셨지요. 심지어 가룟 유다마저도 끝까지 품고 어찌하든 깨우쳐 주려 하셨습니다.
   생명을 위협받는 긴박하고 절박한 상황에서는 진심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예수님은 잡히실 때도, 밤새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심문 받는 동안에도 제자들을 마음에서 놓지 못하셨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도록 붙들어 주려 하셨고 하나라도 더 깨우쳐 주려 하셨지요.
   예수님은 마지막 순간에도 이 제자들은 물론 목자 없는 양 같은 영혼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무리들을 위해 마지막 남은 눈물과 진액을 다 쏟아 중보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 눈물어린 간구는 바로 오늘날 우리를 위한 간구이기도 합니다. 이 사랑의 간구를 힘입어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성령이 우리에게 오실 수 있도록 길을 내주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영혼들을 깨우셨습니다. 천국 복음을 전하시며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깨우쳐 주셨지요. 그러나 이제 예수님은 곧 하늘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이에 제자들과의 만찬자리에서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요 14:16~17).
   원래 성령은 죄인들 안에 거하실 수 없는 분입니다. 성령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속죄의 제물이 되어 죄의 담을 헐어 주심으로써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실 수 있었습니다.
   또 예수님은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하고 약속하신 대로 아버지 하나님께 성령을 보내 주시라고 간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친히 사람들과 동고동락하신 분입니다. 인생들의 나약함과 어리석음을 너무나 잘 아셨기에 누군가 도울 존재가 필요함도 잘 아셨지요.
   이처럼 예수님의 사랑으로 인해 이 땅에 성령이 오실 수 있었습니다. 성령은 주님이 승천하신 후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임하셨습니다(행 2장). 제자들과 초대교회 일꾼들은 성령의 불같은 역사를 힘입어 복음을 전했습니다.
   주님 오실 날이 심히 가까운 마지막 때에 사는 우리도 성령의 도우심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이 부활, 승천하신 지 2천 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가 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지 압니다. 놀라운 성령의 권능을 직접 봄으로써 주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히 믿을 수 있지요.
   뿐만 아니라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우리 속에 계시는 성령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느낍니다. 그 사랑 까닭에 구원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해 힘써 나가지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불같이 기도하며 새 예루살렘을 향해 날마다 나아갑니다. 죄악이 관영한 이 마지막 때 아버지의 뜻과 섭리를 알고 영혼 구원에 힘쓰는 일꾼들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보내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 어둠의 때에 바른길로, 온전한 길로 가고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주님이 계신 그곳까지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성령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여 보내 주신 선물입니다. 성령께서 오실 수 있도록 길을 내 주신 주님께, 성령을 보내 주신 하나님께 진한 감사의 향을 올리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지극한 사랑을 귀한 아들 안에 담아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 사랑이 십자가 구원의 섭리를 온전히 이루신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열매로 우리 눈앞에 분명히 나타났지요. 이 한 주간 고난받으신 주님을 생각하며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 깊이 새기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큰 사랑을 받은 나는 아버지 하나님을, 주님을 과연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구하고 다짐해 보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0년 4월 12일 주일) 부활주일
* 사회: 주현철 목사
개회찬송 150장 1절
성시교독 62번
찬송 155장
기도 고경아 전도사
성경봉독 사도행전 1:11
찬양 부활하신 주님께(영상)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부활의 주(영상설교)
당회장님
찬송 만민 찬양 159장
주일 저녁예배 (2020년 4월 12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임학영 목사
대표기도 황금란 전도사
성경봉독 요한복음 11:25~26
특송
설교 부활(영상설교)
당회장님
수요 예배 (4월 15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김성덕 목사
대표기도 김일선 권사
성경봉독 야고보서 3 :17~18, 잠언 9:10
설교 공부 잘하는 비결 (6)(영상설교)
당회장님
금요 철야예배 (4월 17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조수열 목사없음
대표기도 이지영 전도사
성경봉독 창세기 5:21~24
찬양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영상)
설교 창세기 강해-에녹①(영상설교)
당회장님
새벽 예배
인도 당분간 없습니다.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0-04-12 2020년 4월 둘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새로 나오셔서 등록해 주신 분들과 인터넷으로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당회장님 소식

● 당회장님 신앙칼럼이 「크리스챤신문」, 「크리스챤월드리뷰」, 「기독선교신문」과 「중앙일보」, 「동아일보」, 「시사뉴스」 등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교회 소식

●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올해 부활절에는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안타깝게도 성찬식을 거행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성찬식은 현장예배로 전환되면 적절한 시기를 검토해서 진행 예정입니다.

● 당회장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조) 교보문고, 영풍문고, 반디 앤 루니스, 북스리브로, 예스24, 알라딘, 인터파크 등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자책(e-book)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간 성경구절
2024-04-14
[주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요 6:54]
2024-04-15
[월요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요 6:56]
2024-04-16
[화요일]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요 6:57]
2024-04-17
[수요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계 3:5]
2024-04-18
[목요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 8:9]
2024-04-19
[금요일]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약 4:2]
2024-04-20
[토요일]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딤전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