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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공과
2021-06-25 제26과믿음의 반석에 서려면 로마서 12:3
읽을말씀 : 로마서 12:3  |  외울말씀 : 요한일서 3:15, 마태복음 5:28 | 참고 말씀: 야고보서 4:11~12
교육목표 : 믿음의 반석에 들어갈 수 있는 아홉 가지 기준을 통해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소유하게 한다.


   믿음의 3단계에서 60% 이상이 되면 육신의 일, 즉 마음과 생각으로 짓는 죄도 웬만한 것은 다 버린 상태이므로 ‘믿음의 반석’에 섰다고 말합니다. 믿음이 견고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범사에 믿음으로 승리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믿음의 반석에 서기 위해 버려야 하는 악은 무엇일까요?
   
   
   1. 분노, 짜증과 같은 혈기
   
   혈기란 분노와 같은 악한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말합니다. 혈기를 참지 못하면 욕설이나 폭행 등 거친 말과 행동이 나오지요. 믿음의 반석에서는 마음에서 ‘욱!’ 하거나 부글부글 끓는 것도 거의 없어야 합니다.
   만약 혈기를 참기 위해 안절부절못하거나 짜증 섞인 말과 감정이 담긴 말을 툭툭 내뱉는다면 믿음의 반석과는 거리가 멀지요. 더욱이 혈기가 얼굴에 분명히 드러나고 말이나 행동에서 확연히 느껴지는데도 스스로 반석에 섰다 생각한다면 착각입니다. 혈기를 내고도 ‘상대를 깨우쳐 주기 위함’이며 ‘의분이 난 것’이라고 이유를 대거나 변명한다면 이 또한 믿음의 반석과 거리가 멉니다.
   
   
   2. 불편함, 서운함 등 나쁜 감정
   
   감정이란 마음 안에 있는 다양한 비진리가 느낌과 함께 올라오는 것으로서 혈기보다 포괄적인 개념입니다. 이 감정으로부터 여러 가지 육신의 일들이 파생돼 나오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불편함과 서운함이지요. 누군가가 자신에게 안 좋은 말을 하거나 지적 또는 책망할 때, 자신을 섬겨 주지 않거나 자신이 원하는 만큼 해 주지 않을 때 불편함이 생깁니다. 또한 남이 자기를 인정해 주지 않거나 자기가 일한 만큼 대가가 주어지지 않을 때, 애매히 오해를 받을 때 서운함이 생깁니다.
   믿음의 반석이라면 어느 정도 무익한 종의 마음이 되어 서운함이나 불편한 감정이 스스로 느낄 만큼 올라오지는 않습니다. 혹여 착각 속에 ‘나는 그런 감정들이 없다’ 할 수 있는데 이처럼 자신을 속이면 믿음의 반석에 설 수 없습니다.
   
   
   3. 미움, 시기, 질투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마음에서 계속 상대를 미워한다면 이는 거듭 살인하는 것과 같으며(요일 3:15) 믿음의 반석과는 거리가 멉니다. 시기 질투 역시 현저한 육체의 일(갈 5:19~21)이므로 반드시 버려야 할 악입니다.
   만일 누군가 칭찬받을 때 ‘저 사람에게는 저런 부족한 모습이 있는데….’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면 시기가 있는 것입니다. 상대와 비교하여 낙심하거나 자격지심을 갖는다면 이 역시 시기 질투로 인한 현상입니다. 시기 질투가 없다면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상대가 나보다 더 잘하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인정과 칭찬을 받는다 해도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미움, 시기, 질투를 가지고 있으면서 믿음의 반석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4. 거짓, 속이는 마음
   
   자기 유익을 위해 속이거나 거짓말을 지어낸다면 믿음의 반석이라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공을 드러내고자 허위로 실적을 보태고, 불리한 내용을 축소하거나 은근슬쩍 넘어가는 것은 거짓과 속이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눈앞의 현실을 덮는 데 급급하여 거짓말하고 속인다면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당장은 속여서 넘어갔다 해도 결국 시험 환난으로 오고 나중에는 더 큰 일도 속이는 사람이 됩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속이려는 마음, 거짓말하거나 숨기려는 마음 자체가 없어야 믿음의 반석에 설 수 있습니다.
   
   
   5. 헤아림과 비방, 판단 정죄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100%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생각이나 지식 또는 자기 보기에 선과 의를 기준으로 판단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아시지요. 사람을 함부로 판단, 정죄하는 것은 교만에서 비롯됩니다(약 4:11~12). 판단을 하면 대부분 수군거림과 헤아림, 비방과 정죄가 따릅니다. 특히 ‘분별한다’는 명목으로 다른 사람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하거나 안 좋은 말을 퍼뜨리는 것도 경계해야 합니다. 남의 이야기나 소문을 듣고, 혹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 정죄하는 사람은 믿음의 반석과 거리가 멉니다.
   
   
   6. 변개함
   
   믿음의 반석에 서려면 육의 대표적인 특징인 변개함을 반드시 버려야 합니다. 자신과의 약속은 물론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쉽게 변경하고, 더욱이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도 수시로 바꾸는 사람이라면 변개함의 속성이 많다는 증거입니다. 믿음의 반석이라면 순교의 믿음에 해당합니다. ‘순교의 믿음’이란 죽음의 위협과 두려움 앞에서도 주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변개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일상생활 속에서 수시로 변개하며 하나님과의 약속도 어기는 사람이 어떻게 죽음의 위협 앞에서 이길 수 있겠습니까?
   
   
   7. 간음
   
   믿음의 반석에 서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버려야 할 것이 바로 간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27~28). 이성을 보고 마음에 음욕을 품거나 생각으로 하는 간음도 없어야 반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음란한 행위만 죄로 여길 뿐 음란한 생각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꼭 음란한 생각은 아니라 해도 이성을 보면서 ‘몸매 좋다.’거나 ‘잘생겼다. 사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간음의 속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따라서 음란한 행위는 물론, 마음이나 생각으로 짓는 간음의 근본 뿌리까지 온전히 빼내야 합니다.
   
   
   8. 욕심과 탐심, 사사로운 마음
   
   욕심과 탐심은 물질, 명예, 권세, 외모 등 다양한 분야로 표출되어 나옵니다. 사심은 정과 욕심을 좇아 개인적인 유익을 구하는 마음입니다. 욕심, 사심, 탐심이 드러나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물질과 관련된 경우입니다.
   욕심이나 탐심이 있어 돈을 사랑하면 결국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집니다(딤전 6:10). 사심 역시 물질과 관련되면 온갖 부정과 부패의 원인이 되지요. 사심이 있으면 개인적인 유익, 자신과 관련된 사람들의 유익을 먼저 챙깁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려면 이러한 욕심, 탐심, 사심을 반드시 버려야 합니다.
   
   
   9. 은혜를 저버리고 배신하는 마음
   
   배신은 변개함과도 관련이 있지만 간사한 마음과 크게 관련이 있습니다. 또 자기 유익을 구하는 마음, 교만 등 여러 가지 악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배신’이라는 악을 낳게 됩니다. 자기 유익을 위해 함께했던 사람에게서 등을 돌리는 것, 상대와 약속해 놓고 그 기대를 저버리는 것도 배신입니다. 더욱이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 이를 저버리고 배신한다면 더 큰 악입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려면 이러한 배신의 마음을 근본 뿌리까지 철저히 뽑아야 합니다.
   이제까지 살펴본 아홉 가지 기준에 비추어 걸릴 만한 것이 없다면 믿음의 반석에 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면 죽음의 위협과 두려움 앞에서도 주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범사에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지요. 그러므로 신속히 믿음의 반석에 설 뿐 아니라 더 깊은 영의 차원으로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 ( ) 안에 알맞은 말을 쓰세요.
   
   1. 믿음의 반석에 서려면 육의 대표적인 특징 ( )을 반드시 버려야 한다.
   자신과의 약속은 물론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쉽게 변경하고,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도 수시로 바꾼다면 ( )의 속성이 많다는 증거이다.
   
   2. ( )이란 마음 안에 있는 다양한 비진리가 느낌과 함께 올라오는 것으로 혈기보다 포괄적인 개념이다. 이 ( )으로부터 여러 가지 육신의 일들이 파생돼 나오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불편함과 서운함이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예수님을 배신한 가룟 유다
   가룟 유다는 사사로운 이익과 욕심을 위해 예수님을 따랐다.
   예수님께서 힘 있는 위치에 오르시면 자신도 덕을 보려는 속셈이었다.
   돈궤를 맡으면서 물질을 임의로 빼돌리기도 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점점 자기 기대와는 다른 길로 가시자 은 삼십에 팔아넘기고 만다.
   가룟 유다의 최후에 대해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행 1:18) 기록돼 있다. 사리사욕 때문에 배신한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지 보여준다.
지난 주 설교요약
2021-06-20 십계명 (3) - 제3계명 - 이재록 목사 출애굽기 20:7
오늘은 십계명 중 제3계명인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말씀에 대하여 증거하겠습니다.

   1.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다는 것
   
   출애굽기 20장 7절에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죄 없다 하지 않는다.’는 말씀은 곧 하나님께서 “너는 죄 있다”고 정죄하신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 했으니 하나님께 죄 있다고 정죄받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사망의 형벌을 받게 되며 결국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다’는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바르게 사용하지 않고 경건치 못하며 허망하게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말하거나 자신의 뜻대로 행동하면서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 하는 것,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나 농담을 하는 것 등이 해당됩니다.
   또한 평소에는 하나님을 찾지도 않던 사람이 자기 생각에 맞지 않는 일을 당하면 “하나님도 무심하시다.”고 원망하거나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어찌 이런 일이 있는가?” 말하는 경우도 이에 해당되지요. 모든 영광과 존귀를 받기에 합당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이름을 감히 피조물의 입장에서 망령되이 거론한다면 하나님 앞에 죄가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을 때 죄 있다 하시는 이유
   
   1)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래전에 소련의 한 우주 비행사는 “내가 우주에 가 보았지만 하나님은 아무 데도 안 계시더라.” 했다고 하지요. 우주 비행사쯤 되면 자신이 탐험한 공간이 전체 우주에 비해 얼마나 작은 부분인지를 잘 알고 있을 것인데, 극히 미미한 우주 공간을 탐험해 보고 모든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을 안 계신다 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시편 53편 1절에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했지요. 겸손한 마음으로 천지 만물을 바라보는 사람은 그 안에서 얼마든지 창조주 하나님의 증거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 수많은 전도자들이 있어서 살아 계신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알려 주지요.
   그런데도 스스로 마음을 강퍅하게 함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서 하나님에 대해 함부로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어찌 죄 없다 하시겠습니까.
   
   2)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홀히 여긴다”는 것은 하찮게 여기며 우습게 여긴다는 말입니다. 감히 창조주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고도 죄 없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시편 96편 4절에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극진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보다 경외할 것임이여”, 디모데전서 6장 16절에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했습니다. 심지어 출애굽기 33장 20절에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하실 정도로 하나님은 크고 위대한 분이시지요.
   피조물인 사람도 부모나 중심으로 존경하는 분에 대해서는 함부로 이름을 부르지 않으며, 꼭 이름을 불러야 할 때는 존칭어를 붙입니다. 하물며 만물의 창조주요, 모든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에 대해서는 얼마나 경건한 자세여야 하겠습니까. 그래서 한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경에 “여호와”라는 이름이 나오면 “아도나이” 곧 “나의 주님”이라고 읽는 등 하나님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삼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서도 무익한 농담을 하면서 성경 구절을 엉뚱하게 인용하기도 합니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므로 성경 말씀을 소홀히 여긴다면 이는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과 같지요.
   
   또한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말하는 것도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기 생각 속에 떠오른 것을 “하나님께서 음성을 주셨다.”거나 “성령께서 주관하셨다.” 하는 경우이지요.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생들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선악 간에 행하는 모든 말과 행실을 손금을 보듯이 다 알고 계시며 각자가 행한 대로 심판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정말로 믿는다면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음으로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죄를 범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한 가지 더 기억할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도 근신하고 절제한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성경을 대하거나 인용할 때도 경건한 마음으로 대하지요. 또 성전과 성물을 대할 때도 자기 물건보다 더 소중하게 다루며 하나님의 재정을 집행할 때도 근신하여 아무리 적은 액수라도 정확하게 집행되도록 합니다.
   만약 교회의 물컵이나 성전 안의 창문 유리를 실수로 깨뜨렸다면 모른 척하고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지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해도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된 성물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보장하시는 하나님의 사람에 대해 말할 때나 성령의 역사에 대해 말할 때도 이는 하나님과 직접 관련되는 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간섭하시는 분야에 대해 사람이 육신의 생각 속에서 판단하거나 무례하게 말하지 않도록 삼가 조심해야 하지요. 사울은 심히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였지만 한때 하나님께 기름부음 받은 왕이었기에, 다윗은 사울이 아무리 자신을 위협해도 끝까지 그의 생명을 해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존중하고 경외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 속한 모든 것을 경건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 거짓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역사 속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신 것을 하나님의 말씀이나 예언이라고 선포하여 백성들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죽임을 당하리라 말씀하셨지요(신 18:20).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사칭하여 거짓말을 할 때 그 죄는 사형에 해당한다는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8절에도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했습니다. 여기서 거짓말하는 자란 바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말하는 자이지요.
   거짓 선지자들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지키지 않으면 이 또한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말한 것이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입니다. 레위기 19장 12절에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하신 말씀대로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전혀 하나님의 역사가 아닌데도 “기도하다가 성령의 음성을 들었다. 내 마음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셨다.” 하거나 어떤 일이 되어가는 것을 보고 무조건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루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역사라면 상관이 없지만 성령의 음성이나 주관이 아닌데도 습관적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 문제이지요. 물론 하나님의 자녀라면 마땅히 성령의 음성을 들어야 하고 범사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구원받았다 해서 무조건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죄를 버리고 마음이 진리로 채워지는 만큼 점점 정확하게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 안에 비진리가 가득하면서도 자신을 과시하려는 의도로 자기 생각을 성령의 역사라고 말한다면, 이는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도 거짓말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또 성령의 음성을 조금씩 듣는다 해도, 그것이 100%가 되기까지는 성령의 음성인지 아닌지 스스로 분별하는 훈련과정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아직 확실히 분별하지 못할 때는 함부로 성령의 역사라고 단정하는 일은 삼가야 합니다.
   꿈이나 환상 등 여러 가지 영적 체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꿈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꿈, 자기 생각 속에서 꾸는 꿈 그리고 사단이 역사해서 꾸는 꿈도 있으므로 무조건 ‘하나님이 주신 꿈’이라 말한다면 합당치 않지요.
   또 어떤 사람이 “성령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라고 말한다면, 듣는 사람의 편에서도 그 말에 대해 기도해서 정확히 알기 전에는 “성령의 음성이다.” 혹은 “아니다.” 하고 경솔하게 단정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되지요. 하나님의 이름으로 어떤 것을 말할 때는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항상 신중한 자세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범죄하여 사단의 역사로 재앙을 만났으면서도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치셨다.”고 말합니다. 또 일이 잘되면 “내 기도에 하나님께서 축복하셨다.” 말해 놓고 얼마 후 그것이 꼬이고 막히게 되면 “하나님께서 막으셨다.”고 말을 바꾸는 등 습관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합당하지 않게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자기편에서는 그것을 믿음의 고백이라고 하지만 진실한 중심에서 나오는 믿음의 고백과 들레고 경솔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끌어들이는 말은 전혀 다릅니다.
   잠언 3장 6절에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라”는 말씀은 아무 때나 하나님의 이름을 거론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신실하고 근신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입에 올리기를 조심하며 다만 진리 가운데 행하고자 노력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무엘상 2장 30절 후반에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중심에서 존중히 여긴다면 당연히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도 않을 것이고 범사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행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을 존중히 여김으로 모든 말과 행동을 보장하시며 천국에서도 가장 영화로운 자리까지 인도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1년 6월 20일 주일)
* 사회: 임학영 목사
개회찬송 48장 1절
성시교독 43번
찬송 57장
기도 조혁희 목사
성경봉독 출애굽기 20:8~11
찬양 햇빛을 받는 곳마다(영상)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십계명(4) - 제4계명①(영상설교)
당회장님
찬송 만민 찬양 174장
주일 저녁예배 (2021년 6월 20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이석규 목사
대표기도 류순주 전도사
성경봉독 여호수아 17:14~18
특송 캐나다 토론토 만민교회
설교 젖과 꿀이 흐르는 땅(11)-네 것이 되리라
이수진 목사
수요 예배 (6월 23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김영석 목사
대표기도 김영순 전도사
성경봉독 로마서 12:19~21
설교 범사에 하나님께 맡기라
이미경 목사
금요 철야예배 (6월 25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강승표 목사없음
대표기도 박형렬 목사(광주 만민교회 담임)
성경봉독 요한일서 3:23~24
찬양 샬롬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영상)
설교 요한일서 강해(28)(영상설교)
당회장님
새벽 예배
인도 당분간 없습니다.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1-06-20 2021년 6월 셋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새로 나오셔서 등록해 주신 분들과 인터넷으로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당회장님 소식

● 당회장님의 저서 「사랑은 율법의 완성」 슬로베니아어(648번째)가 종이책으로 발간되었고, 「깨어라 이스라엘」이 마케도니아어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가 말레이어, 세르비아어, 슬로바키아어 전자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 당회장님 신앙칼럼이 「기독선교신문」, 「시사뉴스」 등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교회 소식

● 만민뉴스 한글(946호), 영어(696호), 중국어(571호) 신문을 온라인으로 발행하였습니다.
(만민뉴스 홈페이지 www.manminnews.com)

● 정기 원로회가 6월 20일(주일) 오후 7시에 온라인으로 개최됩니다.

● 7월 4일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저녁예배 시 온라인으로 성찬예식이 진행됩니다.
성도님들께서는 각 가정에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동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준비사항
성찬식에 사용되는 떡과 포도즙은 각자 가정에서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떡은 카스테라 빵으로 각자 한 사람당 가로, 세로 약 1.5cm 크기로 준비하시고,
포도즙은 포도주스 원액으로 준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성찬식에 사용되는 잔은 작년 추수감사절 성찬식 때 나누어 드린 잔으로
사용하시고, 추가로 필요하신 성도님은 교구장님에게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성찬식 때 사용한 잔은 소중하게 보관해 주시기 바랍니다.

● 교역자회/ 「전 성도 영적 성장 프로젝트」로 2개월 동안 진행했던 '2차 당회장님 저서 읽기'가 6월 26일에 마쳐집니다. 저서 읽기를 통해 마음의 변화 및 치료와 응답의 간증으로 축복해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동참해 주신 전국 및 전 세계 만민의 모든 성도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 당회장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조) 교보문고, 영풍문고, 반디 앤 루니스, 북스리브로, 예스24, 인터파크 등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자책(e-book) 및 오디오북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교구 및 선교회별 현장예배(저녁예배) 참석 일자

날 짜 초 청 대 상
6월 20일 3대대교구, 해외교구
6월 27일 중국대교구, 빛과소금선교회
7월 4일 현장예배 없음(맥추감사절-온라인 성찬식)
7월 11일 1대대교구


● 감사드립니다.

강단 헌화/ 이웃나라(꽃꽂이 봉사: 예배국 미화부, 시설관리국)
주간 성경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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