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배안내
  • 설교요약
  • 구역공과
  • 공지사항
  • 주간성구
구역공과
2022-08-26 제34과불의 응답을 받은 엘리야 열왕기상 18:38~39
읽을말씀 : 열왕기상 18:38~39  |  외울말씀 : 열왕기상 18:39 | 참고 말씀: 에스겔 36:37
교육목표 : 우상숭배에 빠진 백성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한 엘리야의 순종과 믿음의 행함을 본받게 한다.


   이스라엘 역사상 악한 왕으로 손꼽히는 아합은 시돈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왕비로 맞아들였습니다. 시돈 왕은 바알을 섬기는 제사장이기도 했는데, 그의 딸을 왕비로 맞아들였으니 이스라엘이 타락의 길로 빠져드는 것은 시간문제였지요. 아합은 백성들을 하나님에게서 등 돌리게 만들고 이방 신들을 섬기게 하면서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이스라엘의 죄악이 극에 달한 시대에 맞춰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나타내며, 우상숭배에 빠진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할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십니다. 그가 바로 엘리야 선지자입니다.
   
   
   1. 오직 믿음으로 순종한 엘리야
   
   엘리야는 하나님의 능력이 입혀지기 전에는 매우 유약한 성품이었습니다. 항상 자신은 부족하고 내세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자신감 없는 모습이었지요.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를 주장하거나 화평을 깨는 일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그가 한 시대의 큰 선지자로 쓰임 받기 위해서는 유약한 성품이 영적으로 담대한 성품으로 변화되어야 했기에 하나님께서는 연단을 허락하셨습니다.
   당시 아합왕은 온 나라를 우상의 소굴로 만들고 백성을 도탄에 빠뜨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아합왕에게 보내어 무서운 심판이 임할 것을 전하게 하십니다. 이에 엘리야는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아합왕에게 전합니다(왕상 17:1).
   그런 다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숨을 곳을 지정해 주십니다. 악한 아합왕이 가뭄의 저주를 선포한 엘리야를 죽이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그릿 시냇가에 숨게 하시고 까마귀를 통해 아침 저녁으로 떡과 고기를 공급해 주셨습니다. 그릿 시내가 마르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시돈에 있는 사르밧 과부에게 보내십니다. 엘리야는 과부에게 떡 한 조각을 공궤 받고 가뭄이 끝날 때까지 양식이 끊이지 않는 축복을 내려 주었고,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기도 했습니다.
   
   
   2. 갈멜산에서 불의 응답을 받은 엘리야
   
   엘리야의 예언대로 3년 반 동안 극심한 가뭄이 이스라엘 전역을 덮쳤습니다. 아합왕은 가뭄의 원인이 우상숭배임을 깨달아 회개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엘리야를 잡아서 죽이고자 혈안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말씀하십니다. 이때도 엘리야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아합 앞에 나아갑니다.
   아합은 엘리야를 보자마자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네냐” 하며 소리칩니다. 이에 엘리야는 두려움 없이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비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좇았음이라” 하지요. 즉 3년 반의 가뭄은 왕과 백성의 우상숭배로 인한 재앙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합에게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인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인을 갈멜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오게 하소서” 합니다. 엘리야는 이들과 대결할 때 살아 계신 하나님만이 불로 응답하실 것을 굳건히 믿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고 외쳤지요.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들에게 “먼저 한 송아지를 택하여 잡고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그러나 불을 놓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바알만이 하늘에서 불을 내리며 비, 바람, 폭풍을 일으킨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수백 명이 큰소리로 바알을 부르며 칼과 창으로 자기 몸에 상처를 내어 피를 흘리면서까지 응답해 달라고 외쳤지만, 오정이 지나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아무 소리도, 응답도 없었습니다.
   
   이를 지켜본 엘리야는 먼저 여호와의 무너진 단을 수축합니다. 그런 다음 번제물 위에 많은 물을 붓게 하지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직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음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고 믿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3년 반 동안 계속된 가뭄 중에 무엇보다 귀한 것은 물입니다. 그 물을 통 넷에 담아 세 번씩이나 제단에 부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고 행한 대로 거두게 하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을 불살랐을 때 누구도 하나님의 역사를 부인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지요. 바알은 한낱 생명 없는 우상에 불과하며, 오직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역력히 보여 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마침내 엘리야가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라고 부르짖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웠고 도랑의 물까지 다 핥았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본 백성들은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고백하며 하나님만이 참 신임을 인정하였지요.
   엘리야는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 없이 하나님을 믿고 신뢰했기에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 앞에서도 담대히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큰비가 내리기까지 오직 믿음으로 행한 엘리야
   
   불의 응답으로 참 신이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을 철저히 회개시킨 엘리야는 거짓 선지자들을 하나도 도망치지 못하게 하여 기손 시내에서 다 죽입니다(왕상 18:40).
   그리고 아합왕에게 가서 오직 믿음으로 “큰비의 소리가 있나이다” 고백한 후, 다시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지요. 이는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한 믿음의 행함이었습니다.
   갈멜산 정상에 오른 엘리야는 땅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얼마나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했던지 창자가 꼬이고 배가 뒤틀려 허리가 구부러지면서 얼굴이 무릎 사이로 들어갈 정도였지요. 엘리야는 하나님으로부터 응답받을 때까지 쉬지 않고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사환에게 “올라가 바다 편을 바라보라”고 합니다. 사환이 올라가 보고 “아무것도 없나이다” 하자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고 하지요. 바다 편에서 사람의 손만 한 작은 구름이 일어날 때까지 사환에게 일곱 차례나 바라보게 했습니다.
   
   엘리야의 간절한 기도는 하늘 보좌를 움직이며 하나님을 감동하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3년 반 동안 닫힌 하늘을 열어 비를 오게 하는 기도이니 얼마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했겠습니까.
   엘리야는 응답받을 때까지 오직 믿음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어도 사람 편에서 구해야 한다는 영계의 법칙을 알았기 때문입니다(겔 36:37).
   또한 엘리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에 믿음의 행함과 함께 믿음의 고백으로 하나님의 응답을 끌어내렸습니다. 작은 구름만 일어났을 뿐 아직 비가 내리지도 않는데 사환에게 “올라가 아합에게 고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말하지요. 그러자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하여지고 큰비가 내렸습니다.
   우리도 엘리야처럼 하나님께 응답받고 마음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내보여야 합니다. 기쁨으로 예배드리고 정성껏 예물도 준비해 드려야 하지요. 또한 의심 없이 끝까지 믿음으로 구하되 입술로 시인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는 못 이루실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할 때 어떠한 문제라도 해결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오직 믿음의 고백을 하며, 응답받을 때까지 간절히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이스라엘에 3년 반 동안 가뭄이 든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2. 엘리야 선지자는 왜 번제물 위에 물을 붓게 했을까요?
   
   3. 엘리야 선지자는 3년 반 동안 닫힌 하늘 문을 열어 비를 오게 하기 위해 어떠한 기도를 올렸을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아합왕’은 어떤 인물일까?
   
   아합은 북이스라엘 왕조 가운데 가장 악명을 떨친 인물이다.
   바알을 숭배하는 이세벨과 결혼하여 바알의 단을 쌓고 섬기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어 하나님의 노를 격발하였다. 결국 우상숭배로 인해 이스라엘에 3년 6개월 동안 가뭄과 기근이 임했다.
   또한 왕비 이세벨의 계략으로 나봇을 죽이고 그의 포도원을 빼앗는 등 수많은 악을 행한다.
   마침내 그는 아람과의 전쟁에서 한 병사가 우연히 쏜 화살에 죽어, 그 피를 개들이 핥는 비참한 종말을 맞이했다.
지난 주 설교요약
2022-08-21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 1 ) - 이재록 목사 롬 8:12~16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범사에 형통하고 어떤 길이든 쉽게 갈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성령의 음성을 듣고 주관, 인도받는 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살다 보면 참으로 다양한 상황들을 만날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이 하나님의 뜻일까?’, ‘어떤 길이 형통한 길일까?’ 고민하게 되지요. 이럴 때마다 정확한 답을 얻는다면 얼마나 시원하겠습니까?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어렵지 않게 답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말씀한 대로 보혜사 성령이 가르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의 자녀라면 아버지 하나님과 교통해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교통한다는 말에는 ‘소식이나 정보를 주고받는다’, ‘관계를 맺는다’, ‘사귄다’ 등의 뜻이 있습니다. 가정에서 아버지와 자녀들이 교통하는 것이 당연하듯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버지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 또한 당연하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들만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과 교통한다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하기도 하지요. 물론 교통하는 방식에 따라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허락되는 경우도 있지만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한입니다.
   로마서 8장 14~15절에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했지요.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받는 사람들이 하나님 아들이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른다고 말씀합니다.
   주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도 하나님과 교통하지 못하면 전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돌아가신 줄만 알았던 아버지를 만난 후에도 아버지와 교류가 전혀 없다면 그전과 별반 다를 것이 없지요.
   마찬가지로 아버지 하나님과 교통하지 않으면 옛 습관대로 범사에 자기 생각을 좇습니다. 여전히 자기 한계 안에서 살게 되지요.
   예를 들어 사업을 해도 자기 노하우와 능력 안에서 하므로 그 이상의 큰 이윤을 남기기 어렵습니다. 사람의 능력 밖의 일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지요. 앞일을 꿰뚫어 볼 수 없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재앙을 만나거나 악한 사람의 궤계에 속아 손해를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교통하는 사람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인도 안에서 풍성한 축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대로 행하기만 하면 설령 재앙이 온다고 해도 능히 피할 수 있고, 축복받는 길을 알아 그 길로만 갈 수 있지요. 일터뿐 아니라 가정도 항상 평안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룰 때는 더더구나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영적인 일입니다. 하나님과 교통하는 사람이 내는 열매와 교통하지 못하는 사람이 내는 열매는 하늘과 땅 차이이지요.
   예를 들어 성도의 가정을 심방할 때 하나님과 교통하는 사람은 그 가정에 합당한 말씀을 주관 받습니다. 주관 받은 말씀을 전하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지요. 반면에 하나님과 교통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상황에 맞춰 말씀을 생각해 냅니다. 가령 ‘이 집은 부부 사이가 안 좋으니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전해야겠다.’ 하고 자기 생각 속에서 말씀을 전하지요. 그러나 이렇게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전한다고 해서 서로 미워하던 부부가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근본의 문제를 해결해 주셔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가정에 정말 필요한 말씀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정확히 아시기에 하나님과 교통하여 그 말씀을 주관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주관 받은 말씀을 증거하면 말씀에 권세가 따릅니다. 영혼들에게 통회자복의 은혜가 임하고 심령이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나지요. 심령이 변화되어 영혼이 잘되어 가면 축복도 임합니다. 이렇게 영으로 심방해야 맡은 양 떼가 튼튼해지고 맡은 교구나 선교회가 부흥합니다.
   물론 하나님과 교통하지 못하는 사람도 양 떼를 좋은 말로 위로하고 육으로 잘해 주어서 영혼을 갈무리하기도 합니다. 잠시 부흥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이렇게 육으로 갈무리한 영혼들은 어떤 시험을 당하면 마치 비바람에 썩은 과일이 떨어지듯 우수수 떨어져 나갑니다. 혹은 자신에게 잘해 주던 일꾼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 신앙이 미지근해지지요. 이는 참믿음을 심어 주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이처럼 육적으로 사명을 감당하면 아무 상급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자녀라면, 특히 하나님 일을 하는 주의 종이나 일꾼이라면 반드시 하나님과 교통해야 하며 하나님과 교통하기를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2. 하나님과 교통해 인도받으면 범사에 형통
   
   성경을 보아도 믿음의 선진들은 한결같이 하나님과 밝히 교통하여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다윗은 항상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했습니다.
   사무엘하 5장 18~25절에 보면 다윗이 하나님과 교통하여 전쟁에서 승리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을 때 블레셋 군대가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 차도록 몰려왔습니다. 이때 다윗은 무작정 나가 싸운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저희를 내 손에 붙이시겠나이까”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올라가라 내가 단정코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라” 하고 답하셨지요.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올라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물리쳤습니다. 다윗은 이전에도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경험이 있었습니다. 또 다양한 전쟁 경험이 있었지요. 더구나 이제는 군대 장관도 아니고 유다 한 지파의 머리도 아닌, 온 이스라엘 족속의 왕으로 등극했습니다. 얼마든지 당당하게 전장으로 나가 블레셋 군대와 맞서 싸울 수 있지요. 그런데도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여쭈었고, 그 결과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또다시 블레셋 군대가 같은 장소로 몰려왔습니다. 이전과 같은 장소이고, 싸워본 지 얼마 안 된 상대이니 그냥 출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번에도 하나님께 여쭙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다른 방법을 알려 주십니다. “올라가지 말고 저희 뒤로 돌아서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저희를 엄습하되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동작하라 그때 여호와가 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 하고 세세하게 전술을 일러 주셨지요. 순종한 다윗은 이번에도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다윗은 이 전투에서만 이렇게 행한 것이 아니라 범사에 “이 일은 어떻게 될까요? 이번에는 제가 어떻게 할까요?” 하고 하나님께 여쭙고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이렇게 행할 때마다 형통한 길로 갈 수가 있었지요. 그래서 설령 음침한 사망의 골짜기에 거할지라도 다윗에게는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여러분도 범사에 하나님과 교통하여 하나님께 인도받으면 무슨 일이든지 형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어느 책략가보다 지혜로우시고 이 세상 어떤 권세자보다 능력이 크시지요. 또한 섬세하시고 자상하십니다. 범사에 이런 하나님께 인도받기를 간절히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과 교통하는 방법
   
   성령의 음성을 듣고 성령의 주관, 인도를 받는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교통하는 방법의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음성은 어떻게 들리는지, 주관은 어떻게 오는지 이해하실 수 있도록 먼저 하나님과 교통하는 방법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과 교통하는 방법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음성이나 주님의 음성, 천사의 음성을 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이나 모세, 사무엘 선지자가 자신에게 친히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대답하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회심하는 체험을 했지요. 사도 요한은 계시록을 기록하면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이 “많은 물소리와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동정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할 때는 직접 천사를 만나 천사의 음성을 들었지요. 그 밖에도 성경 곳곳에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영의 음성을 듣는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
   
   그렇다면 이런 하나님의 음성이나 주님의 음성, 천사의 음성은 성령의 음성과 어떤 게 다를까요? 이런 음성들은 외부로부터 들려오지만, 성령의 음성은 각 사람의 마음 안에서 들려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어떤 음성을 들었다면 그것을 잘 분별하셔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악한 영의 역사를 받으면서 하나님, 또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귀에 대고 소곤소곤 말씀하셨다고 말하는 사람도 보았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은 이렇게 들리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분들은 성령의 음성을 듣고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혹은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지요. 하나님과 교통하는 경우 중 하나님의 음성이나 주님의 음성, 천사의 음성 등을 듣는 것은 성도들이 일반적으로 체험하는 경우는 아닙니다. 하나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보실 때 합당한 사람에게 때를 좇아 들려주시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하나님께서 우리와 교통하시기 위해 일반적으로 사용하시는 방법은 바로 성령의 음성을 듣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나 주님의 음성이 외부에서 들려오는 것이라면 성령의 음성은 우리 마음 안에서 들려옵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절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말씀한 대로 성령은 우리 마음을 성전 삼아 마음 안에 거하시므로 음성도 우리 마음 안에서 들려오는 것입니다.
   성령의 음성은 어떤 또렷한 소리로 들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렁차고 청아한 말소리가 들린다든지 하는 것이 아니지요. 그러나 정확하게 들을 수만 있다면 성령의 음성처럼 섬세하고 확실한 음성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길을 가다가 순간적으로 그른 선택을 하면 정 반대 방향으로 가기도 하고 전혀 엉뚱한 곳에 이르기도 합니다. 원래 가려던 곳을 다시 찾아가려면 시간과 수고가 더 들지요. 하나님의 자녀가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면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집니다. 이 길이 분명 맞는 것 같은데 막상 가보면 아니고, 지난번에도 잘되었으니 이렇게 하면 또 잘될 것 같은데 잘 안되기도 하지요.
   반면에 매 순간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범사에 형통하고 어떤 길이든 쉽게 갈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주관, 인도받아서 항상 평탄한 길로만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08-21 욥기강해(21) - 욥의 무지② - 이수진 목사 욥기 9:19~26
오늘은 영적인 무지함 가운데 하나님을 오해하고 판단, 정죄하는 등 거침없이 드러나는 욥의 악과 속마음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을 무서운 심판자로 오해하는 욥
   
   “힘으로 말하면 그가 강하시고 심판으로 말하면 누가 그를 호출하겠느냐”(욥 9:19)
   욥이 볼 때, 하나님은 하루아침에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간 무서운 분이었기에 강한 하나님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강한 힘을 마음대로 쓰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나, 삼 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원수 마귀의 사망 권세를 깨뜨리셨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강함은 죽음의 권세를 이긴 강함이며, 부활의 강함입니다.
   이처럼 무엇보다 강하고 위대한 것은 사랑의 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인류를 구원하여 영생으로 인도하시는 강함입니다. 이 사랑의 힘은 죄인을 회개케 하며, 강퍅한 마음을 부드럽게 녹이며, 원수와도 화목하게 만들지요. 이처럼 강한 사랑의 힘으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온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고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심판자로서 힘이 있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욥은 하나님이 주권을 사용하여 예정 가운데 마음대로 처리해 버리는 무서운 심판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반석이시며 진리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공의로운 심판이 이루어짐을 알아야 합니다(요 5:26~27).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심판하는 권세를 주신 이유는 예수님만이 생명 곧 진리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진리 자체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가르치신 모든 말씀과 친히 본이 되어 행하셨던 모든 행함이 심판의 기준이 되지요.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생명을 가진 사람은 천국으로, 생명을 갖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2. 욥의 이중성의 마음
   
   “가령 내가 의로울지라도 내 입이 나를 정죄하리니… 나는 순전하다마는 내가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내 생명을 천히 여기는구나”(욥 9:20~21)
   여기서 정죄란 ‘자신의 범죄 행위에 대한 대가’를 의미하며, 패괴란 ‘부서지고 무너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욥의 속마음은 여전히 스스로 의롭고 정직하며 순전하다고 생각하는데, 친구들은 그렇지 않다고 얘기하니, 욥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을 정죄하며 자신의 패괴함을 증거한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 내가 잘못했다고 치자” 이런 뉘앙스로 말하는 것이지요. 이는 욥의 이중성의 마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미워하면서 사랑하는 척, 사랑하면서도 미워하는 척, 속으로는 화가 나는데 절제하여 너그러운 체하기도 합니다. 마음에 없는 엉뚱한 말을 하면서도 그것을 인식조차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안 그런 척, 거룩한 척하는 모든 것들이 거짓되고 이중적인 모습이지요.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겉으로만 죄를 인정하거나 형식적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것에 속지 않으십니다. 마음 중심에서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원하시며, 마음에서 우러나는 사랑을 원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아 깨끗하고 진실한 마음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요일 3:18).
   
   욥은 스스로 순전하다고 결론지으면서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는데 전능자에 의해 삶이 엉망이 된 현실 앞에서는 자신을 천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 중에도 “나는 예전에는 부유했고 명예와 권세도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망하고 말았습니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문제의 원인을 나의 실수와 부족함으로 돌리고 회개해야 하는데, 마치 하나님이 자신을 그렇게 만들었다는 식으로 말하지요.
   비록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해도 그러한 생각 자체가 큰 오산이요 너무나 하나님을 서운케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돈이나 명예가 있다고 해서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만일 사업이 망하여 하나님을 찾는 계기가 되었다면 도리어 감사의 고백이 나와야 하지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생과 천국을 얻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욥처럼 변명하거나 이중성의 마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비추어 자기를 온전히 내려놓고 솔직하게 인정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3. 공의가 없는 하나님이라고 판단, 정죄하는 욥
   
   “일이 다 일반이라… 순전한 자나 악한 자나 멸망시키신다 하나니 홀연히 재앙이 내려 도륙될 때에 무죄한 자의 고난을 그가 비웃으시리라”(욥 9:22~23)
   욥은 예정 가운데 마음대로 해 버리는 하나님이시기에 사람이 의롭게 살아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자기와 같이 순전하고 의롭게 살아간 사람도 이처럼 고통받게 하시는 하나님은 선한 자들과 악한 자들을 똑같이 취급하는 분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선악 간에 심판하시는 공의로운 재판장이십니다. 극렬한 풀무불 같은 심판날이 이르면 교만한 자와 악한 자는 순식간에 불에 살라지는 지푸라기같이 패망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는 치료하는 여호와,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하십니다(말 4:1~2).
   또한 신명기 28장에는,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며 모든 복이 임하게 해 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반대로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모든 저주가 임할 것을 말씀하고 있지요.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선한 자와 악한 자를 일반으로 취급하시는 것이 아니라, 악한 자는 악의 보응을 받게 하시고 순전한 자는 선을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분입니다(전 12:14, 마 16:27).
   그러나 욥은 공의가 없는 하나님이라 오해할 뿐만 아니라, 죄 없는 자의 고난을 비웃으시는 하나님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홀연히 재앙이 내려 도륙될 때’라고 표현한 것은 자신에게 갑자기 재앙이 임하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흔히 사람은 자기가 악하면 다른 사람도 악하게 봅니다. 자기가 거짓말하니 상대방도 거짓말한다 생각하고, 자기가 간음하니 상대방도 그러려니 생각하지요. 상대는 진실을 말하는데도 “속마음은 안 그러겠지” 판단합니다.
   사람에 대해 오해하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서도 오해합니다. 한낱 피조물인 우리가 어떻게 광대하시고 오묘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욥은 마치 하나님의 마음을 다 아는 것처럼 함부로 말하고, 점점 더 하나님에 대하여 비꼬며, 자신의 억울함을 토설하고 있습니다.
   
   
   4. 자신의 속마음을 보지 못하는 욥
   
   “세상이 악인의 손에 붙이웠고 재판관의 얼굴도 가리워졌나니 그렇게 되게 한 이가 그가 아니시면 누구이뇨”(욥 9:24)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깊은 속마음을 감찰하십니다. 욥이 시험이 오기 전에는 순전하고 정직한 자로 인정을 받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욥의 깊은 속마음에 있는 악을 알고 계셨습니다.
   사단도 이 악을 알았으므로 송사를 했고 하나님도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연단을 받아야 속마음이 드러나고, 결국 회개하여 변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욥은 아직도 자신의 속마음을 보지 못하니, 자기처럼 순전하고 정직한 사람을 이렇게 고통 속에 살아가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재판이 공의롭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뇌물을 받고 공의를 굽게 하는 재판관처럼 하나님도 마찬가지라고 단정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운 분이십니다(시 9:8). 하지만 욥은 현재 연단이 자신의 깊은 악으로 인함임을 깨닫지 못하니 계속하여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던 악들이 하나씩 나오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거침없이 쏟아져 나옵니다. 욥 자신도 몰랐던 악들이지요.
   그러나 욥은 시험이 오기 전 하나님을 경외하여 성실하게 번제를 드렸으며, 행함으로 죄를 짓지 않았고, 열심히 이웃을 돌아보는 등 반듯한 삶이었기에 하나님께서 순전하다고 해 주셨던 것입니다. 굳이 드러나지 않은 내면의 악을 들춰내신 것이 아니라 욥의 그 당시 모습 그대로를 인정해 주신 것이지요. 욥 또한 자신이 잘했던 것만을 생각하니 자신의 악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의 날이 체부보다 빠르니 달려가므로 복을 볼 수 없구나 그 지나가는 것이 빠른 배 같고 움킬 것에 날아 내리는 독수리와도 같구나”(욥 9:25~26)
   체부란, 왕이나 고위 직책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보발꾼이나 우편물을 전달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소식을 빨리 전하기 위해 바삐 움직이지요.
   욥이 “나의 날이 체부보다 빠르다” 말한 것은 그만큼 시간이 허무하게 지나고 있음을 비유한 것입니다. 즉 자기가 정한 응답의 시간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 테두리를 벗어났음을 의미하며 ‘나는 이제 안 되나 보다’ 체념이 담긴 말입니다.
   바다에 배가 지날 때는 물보라를 일으키지만, 일단 지나가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흔적조차 없습니다. 이와 같이 욥은 지금 자신의 인생이 아무런 유익도, 열매도 없이 허무하게 지나가고 있음을 비유로 말하고 있습니다.
   독수리는 공중을 날다가 먹잇감을 발견하면 쏜살같이 내려와 잡아챕니다. 이는 욥이 허무하게 지나가는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한 동시에 너무나 갈급한 심정을 호소하는 말입니다. 고통이 하루 빨리 해결되기를 원하는 갈급함의 표현이며, 허무하게 지나가는 하루하루의 흐름이 너무나 고통스러움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지요.
   친구들이 이러한 욥의 아픈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면 그의 심령에 맞춰 사랑으로 권면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연단 중에 있는 사람을 대할 때에 욥의 친구들같이 차갑게 내리쏘는 것이 아니라, 아픈 그 마음을 이해하고 따뜻하게 보듬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무조건 진리의 잣대로 판단하며 다그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아픔을 공감해 주고 사랑으로 깨우쳐 줌으로 상대가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선하시고 온전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신뢰했던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말씀에도 조금의 오해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큰 기쁨이 되어 드릴 수 있었지요. 하나님께서는 모든 자녀들이 이런 믿음에 이르기를 원하시므로 연단하십니다. 그 과정에 낙오되고 넘어지는 이들이 있다 해도 알곡, 참 자녀를 얻기 위해 우리를 단련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전서 1장 7절에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하신 말씀이 모든 성도님들에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2년 8월 21일 주일)
* 사회: 조혁희 목사
개회찬송 21장 1절
성시교독 37번
찬송 204장
기도 노영진 목사
성경봉독 로마서 8:12~16
찬양 주님의 영광을 우리는 보았네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2)
당회장님
찬송 만민 찬양 159장
주일 저녁예배 (2022년 8월 21일 주일 오후 3시) 임직예배
* 사회: 임학영 목사
대표기도 이미경 목사
성경봉독 누가복음 13:31~33
특송 감사와 축하 (축가: 서승원 집사)
설교 예루살렘 안에서 죽는 삶
당회장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
수요 예배 (8월 24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박광현 목사
대표기도 곽윤진 전도사
성경봉독 고린도전서 15:31
설교 일신우일신
이미영 목사
금요 철야예배 (8월 26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차전환 목사없음
대표기도 조대희 목사
성경봉독 요한계시록 12:5~9
찬양 샬롬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요한계시록 강해(48)
당회장님
새벽 예배
인도 추후 공지 시까지 새벽예배는 모이지 않습니다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2-08-21 2022년 8월 셋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새로 나오셔서 등록해 주신 분들과 인터넷으로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교회 소식

● 당회장님의 저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불어가 종이책으로 발간되었고, 「네 영혼이 잘됨같이」 한국어가 전자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 당회장님 신앙칼럼이 「기독선교신문」, 「시사뉴스」 등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정기원로회가 오늘 저녁예배 후 오후 5시에 온라인으로 개최됩니다.

● 오늘 저녁예배는 2022년 임직예배로 드립니다. (부목사 취임: 황금란 목사)

● 「환자를 위한 랜선 기도회」가 만민기도원 이복님 원장님의 인도로 매주 월요일 오전 11시에 있습니다. (준비찬양: 오전 10시 50분)

● 2022년 영적 성장 프로젝트 1차 전 성도 당회장님 저서 읽기를 진행합니다.
①주님의 자취(상) ②주님의 자취(하) ③젖과 꿀이 흐르는 땅 ④거역된 삶과 순종의 삶
⑤일곱교회 ⑥네 영혼이 잘됨같이 ⑦공부 잘하는 비결
※ 기간: 9월 1일(목) ~ 11월 30일(수)까지(3개월)

● 필리핀 이무스만민교회 담임 김주범 목사가 업무차 입국하였습니다.
※ 입국일: 8월 12일(금)

● 당회장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고) 교보문고, 영풍문고, 북스리브로, 예스24, 인터파크 등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자책(e-book) 및 오디오북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김선화22 성도(15교구, 3청년/ 2-2남 김형식 성도 . 1-4여 이인순 집사의 자녀)
8월 27일(토) 오후 1시, 강북구 도봉로 16 「더 빅토리아 웨딩파티 9층 하늘정원」


● 감사드립니다.

강단헌화/ 중국 1교구(꽃꽂이 봉사: 예배국 미화부, 시설관리국)
주간 성경구절
자료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