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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공과
2022-09-30 제39과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마태복음 11:12
읽을말씀 : 마태복음 11:12  |  외울말씀 : 마태복음 11:12 | 참고 말씀: 마태복음 13:31
교육목표 : 사랑의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아름다운 천국을 믿음으로 침노하여 소유하게 한다.


   올림픽에서 우승하여 금메달을 목에 걸 때의 기쁨은 생애 최고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날 뼈를 깎는 듯한 훈련을 잘 견디어 낸 눈물과 땀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잠시 잠깐 사는 이 세상에서도 상을 받기 위해 자신을 절제하고 고통을 인내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데, 하물며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는 성도들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까요?
   
   
   1. 믿음으로 침노하는 천국
   
   예수님께서는 천국에 대해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12)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이므로 원수 마귀 사단이 근접할 수도 없는 빛의 영역입니다. 그런데 누가 감히 천국을 침노하여 빼앗는다는 것일까요?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원수 마귀 사단과 싸워 이김으로 천국을 소유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나아가 성도들의 믿음이 성장하는 만큼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지요.
   사람은 죄로 인해 지옥에 갈 수밖에 없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원수 마귀 사단은 어찌하든 사람들이 복음을 믿지 못하도록 훼방합니다. 이미 주님을 영접한 사람이라도 미혹하여 죄를 짓게 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지요.
   이러한 원수 마귀 사단을 이기고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최후 승리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직 말씀과 기도로 성령의 능력을 받아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하는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성결을 이루며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는 만큼 믿음이 성장하므로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마태복음 11장 12절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천국이 침노를 당하는 것은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라고 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구세주의 사역을 이루시도록 그 길을 예비하는 사명을 맡은 사람입니다. 따라서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란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 곧 믿음으로 구원받는 신약 시대를 의미하지요.
   
   구약 시대는 율법 시대로 율법의 행위로써 구원받았습니다. 반드시 율법을 지켜 행해야 했고, 지키지 못하여 죄를 범했을 때는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사함을 받았습니다. 반면에 신약 시대는 율법대로 속죄의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주님을 믿으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 보혈의 공로로 죄 사함 받고 성령의 능력으로 인도함 받아 구원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신약 시대를 성령 시대, 은혜의 시대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약 시대는 은혜의 시대이니 죄를 지어도 입술로 “주여, 믿습니다.”라고 고백하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5장 28절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말씀한 대로 신약 시대에는 행위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 고 할지라도 마음에 악을 품은 자체로 죄가 성립됩니다. 하물며 행위적으로 죄를 범한다면 그 죄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에 ‘현저히 육체의 일을 하는 자’ 곧 음행, 호색, 우상 숭배, 분쟁, 투기, 방탕함 등 행함으로 죄를 범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믿음을 성장시켜 행위적인 죄는 물론, 마음의 악도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신약 시대는 구약 시대보다 구원받기가 더 어려울까요? 구약 시대에는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율법을 지켜야 했다면, 신약 시대에는 성령의 능력으로 죄를 버릴 수 있고 계명을 지킬 수 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되어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해 나가지요. 행위적으로 죄를 짓지 않을 뿐 아니라 죄의 성질도 버리며 성결한 마음을 이룰 수 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죄를 버리거나 변화될 수 없지만, 주님 보혈의 공로와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면 능히 죄를 버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님을 믿기 전에는 술, 담배를 끊는 것이 힘들었는데 주님을 영접한 후에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쉽게 끊을 수 있습니다. 주님을 영접하여 죄를 버리고자 노력해 갈 때 성령의 능력이 임하여 행위적인 죄는 물론 마음속에 있는 죄성까지 뽑아 버리게 되지요. 이처럼 신약 시대에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기에 믿음으로 구원받고 죄를 버리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3.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하려면
   
   천국을 침노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천국도 여러 단계로 나뉘어 있어서 상대적으로 더 좋은 곳을 사모하여 침노해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천국은 보이지 않는 영의 하늘에 속해 있으며, 영의 하늘은 육의 하늘과 차원이 다른 영역이지요. 영의 하늘도 다시 여러 하늘로 나뉩니다(느 9:6 ; 왕상 8:27).
   고린도후서 12장 2절에는 사도 바울의 영이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갔다고 말씀합니다. 셋째 하늘이 있으면 첫째, 둘째 하늘도 있고 그 이상의 하늘도 존재할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러 하늘 중에서 바울이 말하는 셋째 하늘은 바로 천국이 있는 하늘이지요. 그리고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합니다(고후 12:4). 즉 사도 바울은 천국이 있는 셋째 하늘 중에서도 낙원을 보았는데 이를 차마 다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과연 낙원은 어떤 곳일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실 때 죽음 직전에 주님을 영접한 한편 강도와 같이 간신히 구원받은 사람이 가는 천국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간 것도 아니고 하나님 나라에 충성한 일도 없어 상급이 없는 사람이 가는 곳으로 천국 중에서도 가장 낮은 단계의 처소입니다.
   그런가 하면 요한계시록 21장에는 사도 요한이 본 새 예루살렘 성이 나옵니다. 천국에서 가장 영화로운 처소 곧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입니다. 마음의 성결을 온전히 이루고 온 집에 충성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천국에는 겨우 구원받은 성도가 들어가는 가장 낮은 단계의 처소인 낙원이 있는가 하면, 주님을 닮아 온 영의 마음을 이룬 성도가 들어가는 가장 아름다운 새 예루살렘 성이 있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처소가 있으며, 각자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처소가 결정됩니다.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진리의 마음으로 변화되는 만큼 더 좋은 천국 처소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을 침노해 빼앗는다는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13장을 보면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다’고 했습니다. 갓 주님을 영접한 성도들의 믿음은 겨자씨처럼 작지만, 그 씨를 자신의 마음 밭에 심고 열심히 가꾸면 비바람에도 끄떡없는 울창한 나무와 같이 큰 믿음으로 성장합니다. 큰 나무에 많은 새가 깃들이듯이 믿음이 큰 사람은 많은 영혼을 품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믿음이 큰 사람은 수많은 영혼을 품고 기도하며 영적 성장을 도와줄 수 있기 때문에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갑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아름답고 화려하며 행복한 것을 상상한다고 해도 천국에서 가장 낮은 처소인 낙원의 삶과도 비교할 수조차 없습니다. 하물며 하나님 보좌가 있는 새 예루살렘 성의 영광과 기쁨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천국에 대해 알수록 이 땅의 것이 헛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삶을 마치는 순간 자신의 천국 처소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깨달아 부지런히 천국을 침노하여 새 예루살렘 성에까지 이르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란 ( )의 시대, 곧 믿음으로 구원받는 신약 시대를 의미한다.
   
   2. 천국을 침노해 빼앗는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3. 마태복음 11장 12절 말씀을 외워 봅시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 )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하늘들(렘 51:15 ; 시 68:33)’이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하늘은 크게 넷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하늘’은 이 땅에 속한 육의 세계를 말한다.
   ‘둘째 하늘’은 ‘공중’(살전 4:17)으로 표현되며, 빛의 영역과 어둠의 영역으로 나뉜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기 전까지 살았던 에덴동산과 주님께서 공중 강림하신 후 혼인 잔치 하는 공간이 빛의 영역이라면, 악한 영들이 거하는 곳이 어둠의 영역이다.
   ‘셋째 하늘’은 하나님의 자녀가 들어갈 천국이 있는 곳이다.
   낙원에서 새 예루살렘 성에 이르기까지 여러 처소가 있다.
   ‘넷째 하늘’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처소가 있는 곳이다.
지난 주 설교요약
2022-09-25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6) - 이재록 목사 롬 8:12~16
오늘은 성령의 음성과 사단의 음성이 각각 어떻게 사람을 주관하는지를, 하나님을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육신의 생각에 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성령의 음성과 사단의 음성이 각각 사람을 주관하는 방법
   
   성령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성전 삼아 마음 안에 거하십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말씀한 대로이지요. 곧 성령은 마음 안의 진리를 주관합니다.
   반면에 사단은 사람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 밖에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2절에 “그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말씀한 대로 사단은 공중에서 역사합니다. 마치 전파를 보내듯이 공중에 사단의 마음과 능력을 흩뿌려 놓으므로 마음 안의 비진리는 안테나처럼 이 사단의 음성을 받아들이지요. 비진리에서 비롯되는 육신의 생각을 통해 받아들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기억 장치에 입력된 지식 중에서 비진리의 지식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사단은 이 육신의 생각을 통해 사단의 음성을 들려주지요.
   사단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생각’은 대문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집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 안방이라고 할 때 대문을 통과해야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고 안방에도 들어갈 수 있지요. 안방은 바로 우리 ‘마음’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사람 마음에 자신의 음성을 침투시켜 그 마음을 자기 뜻대로 주관하려고 항상 노리는 사단은 사람이 육신의 생각을 해서 대문을 열어 주면 ‘이때다.’ 하고 어찌하든 생각의 문을 통해 마음으로 침투하려고 합니다.
   반면에 성령은 외부에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 안에 항상 좌정해 계십니다. 사단이 집 밖에 있다면 성령은 안방에 계신 것이지요. 마음 안에서 그 사람 마음에 일궈진 진리를 활용해서 성령의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생각의 문을 통과하실 필요 없이 마음에서 곧바로 음성을 들려주시지요.
   
   그런데 혹시 이 설명을 들으시고 요한계시록 3장 20절 말씀과 혼동하면 안 됩니다. 주님께서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하심은 아직 주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린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사람의 마음 안에 들어오시기 전에 먼저 생각의 문을 두드리신다는 것입니다. 전도자를 통해 ‘구원의 도’와 ‘내세’에 대해 알려 주시며 각 사람 생각의 문을 두드리시지요. 이때 생각의 문을 여는 사람들은 ‘십자가 사건이 참인가? 하나님이 진정 살아 계시는가? 천국이 있을까?’ 등등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복음을 긍정하고 마음 문을 열면 주님께서 마음 안에 들어오십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주님과 하나이신 성령이 마음에 임하시지요. 이렇게 마음 안에 들어오신 성령은 우리 마음 안에 늘 함께 거하시니 더 이상 생각의 문을 통해 들어오실 필요가 없습니다.
   
   
   2. 사단의 음성이 사람에게 더 빨리 전달되는 이유
   
   사단이 주관하는 육신의 생각은 머리에서 나오고 성령의 음성은 마음에서 옵니다. 그러니 언뜻 생각하기에는 사단의 음성보다 성령의 음성을 더 잘 들을 수 있을 것 같아 보입니다. 사단은 사람의 외부에서 역사하고 성령은 우리 마음 안에 계시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마음에 비진리가 있는 한은 육신의 생각이 먼저 떠오릅니다. 비진리가 많을수록 육신의 생각이 더 빨리 떠오르지요. 즉 사단의 음성이 사람에게 더 빨리 전달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들은 마음과 머리 중 머리로 먼저 전달됩니다. 보는 것은 시신경을 통해, 듣는 것은 청신경을 통해 뇌에 전달되지요. 뇌는 이 정보들을 바탕으로 생각합니다. 마음에 비진리가 있는 사람은 이 원칙이 그대로 적용됩니다. 무엇을 보고 들으면 머리의 생각이 먼저 작용하지요. 비진리의 지식이 많이 입력되었다면 생각 중에서도 육신의 생각이 주로 떠오릅니다.
   그러나 비진리를 다 버린 진리의 사람은 무엇을 보고 들으면 그것이 생각으로 즉각 이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는 마음에 전달되지요. 물론 본 것이 시신경을 통해, 들은 것이 청신경을 통해 뇌에 전달되는 경로는 비진리의 사람과 동일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생각을 지배하기 때문에, 즉 영이 혼을 지배하기 때문에 생각해도 마음에서 울리는 성령의 음성에 따라 생각합니다.
   보고 들은 어떤 정보가 머리에서 즉시 생각으로 재생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거쳐서 재생된다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 마음 안에 계신 성령의 주관에 따라 영에 속한 진리의 생각만 떠오릅니다.
   그렇다면 성령을 받아 영이 살아나기는 했는데 아직 마음에 비진리가 있으면 어떨까요? 무엇을 보고 들었을 때 성령은 마음을 주관하시지만 비진리가 있으면 그 주관을 받기에 앞서 육신의 생각을 떠올리기가 쉽습니다. 육신의 생각이 먼저 떠오르면 성령의 음성을 차단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3. 성령의 음성 듣기를 사모하고 순종할 마음 가져야
   
   마음에서 비진리가 없어지면 머리에서도 비진리의 지식이 지워집니다. 육신의 생각도 없어지지요. 육신의 생각을 떠올리려고 애를 써도 잘 안 됩니다. 어떤 상황에 부닥치든지, 어떤 문제를 만나든지 더 이상 사단의 주관을 받지 않지요. 사단이 주관할 근거 자체가 아예 없어졌기 때문에 바로 어떤 상황의 어떤 문제를 만나도 사단의 주관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대문, 곧 생각의 문을 사단에게는 결코 열어 주지 않기 때문에 사단의 음성이 들어올 수가 없지요. 오직 마음 안에 계시는 성령이 마음을 주관하십니다.
   비진리를 벗고 진리를 채우는 만큼 사단의 음성이 점점 작아지고, 성령의 음성은 점점 커집니다. 예를 들어 마음의 진리와 비진리가 각각 80퍼센트, 20퍼센트라면 그때는 성령의 음성이 확연하게 구분됩니다. 사단의 음성이 들려온다고 해도 무시하고 성령의 음성만 듣게 되지요. 성령의 음성이 훨씬 더 또렷하고 육체의 소욕보다 성령의 소욕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육을 다 버렸다고 해도 그 흔적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사단의 음성이 세미하게나마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성령의 음성을 들을 마음이기 때문에 그 희미한 사단의 음성을 귀 기울여 들으려고 하지 않지요.
   그런데 반대로 사단의 음성이 성령의 음성보다 좀 더 크게 들리는 경우라도 성령의 음성을 듣고자 하면 들을 수 있습니다. 즉 초신자라도 성령의 음성에 순종할 마음으로 열심히 말씀을 행하면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순종할 수 있지요. 그러면 비진리도 신속하게 버려집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사모함입니다. 성령의 음성 듣기를 사모하고 순종할 마음이라면 성령의 음성이 미세해도 듣게 됩니다. 반면에 진리와 비진리가 대등해도 사모함이 적고 순종할 마음이 없으면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지요.
   
   
   4. 믿음의 분량에 따라 단계가 나뉘는 육신의 생각
   
   믿음의 분량에 따라 떠오르는 육신의 생각도 다릅니다. 믿음의 분량에 따라 마음에 일군 진리의 분량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성령의 음성을 듣기 위해 깨뜨려야 할 육신의 생각을 단계별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단계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육신의 생각입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기 위해 깨뜨려야 하는 육신의 생각 중 아주 초보적인 단계이지요. 세상의 많은 사람이 이 육신의 생각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못합니다. 교회는 나오지만, 아직 구원받을 믿음을 갖지 못하는 사람도 여기에 해당하지요.
   이 육신의 생각은 대부분 세상 지식과 이론 등에서 비롯됩니다. 고린도후서 10장 5절에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했습니다. 세상 이론이나 지식, 인간적인 지혜가 가득한 사람은 하나님을 믿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는 육신의 생각이 그만큼 많이 동원되기 때문입니다.
   평생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온 사람을 전도하면 복음을 단번에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지만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세상 지식이나 이론에서 나오는 생각이 복음을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근본 하나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의 몸에서 나셨지요. 그런데 세상 지식에 따르면 생명은 남자의 정자와 여자의 난자 결합에 의해 잉태됩니다. ‘남자를 알지 못하는 여자가 어떻게 잉태하여 아이를 낳을 수 있는가?’ 하는 의심의 생각이 들지요. 사단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이런 생각을 물고 늘어지며 육신의 생각을 부추깁니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의문을 가진 정도였다면 점점 ‘거짓말이다. 황당한 일이다.’ 이런 판단, 정죄로 발전하게 되지요. 그 결과 복음을 받아들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하물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어떻게 믿겠습니까?
   또 성경은 분명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없는 무(無) 상태에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만물의 기원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많은 사람이 진화론을 믿습니다. ‘천지 창조’라는 실제 사건을 하나의 신화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지요. 자신이 배운 이 세상의 지식이나 이론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 10장에 보면 해와 달이 같은 위치에 일정 시간 동안 머문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 지식에 따르면 해와 달은 멈출 수 없습니다. 만약 멈춘다면 지구는 엄청난 타격을 받지요. 그런데 영의 공간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이 육의 공간을 영의 공간으로 덧입히면 지구에 어떤 충격도 주지 않고 해와 달을 멈추게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해와 달이 멈추면 지구에 엄청난 타격을 준다는 이론은 참입니다. 그러나 이런 지식과 이론을 바탕으로 성경에 기록된 기사를 부인한다면 이 지식은 무익한 지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이로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사망에 이르는 육신의 생각을 낳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절절히 깨달았기 때문에 이전에 쌓은 세상 지식과 이론을 오히려 해로운 것으로 여겼습니다. 빌립보서 3장 8절에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라고 고백한 대로이지요.
   그런데 전도해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많은 사람이 세상 지식은 고상하고 주를 아는 지식, 곧 복음이 미련한 것으로 생각합니다(고전 1:21). 전도하는 여러분을 어리석게 여기고 거짓말쟁이로 만들기도 하지요. 자신의 지식과 아는 이론에 비춰 보면 도무지 맞지 않기 때문에 사실을 사실로 믿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평안과 축복의 길을 밝히 보여 줍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귀한 보화인 ‘천국’을 얻는 길을 알려주지요. 잠시 잠깐 후면 쓸모없어질 세상 지식이나 육신의 생각을 낳아 사망으로 인도하는 헛된 지식에 비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사도 바울은 마음으로 깨달았기 때문에 모든 이론, 지식, 생각을 파하고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긴 것입니다.
2022-09-25 욥기강해(24) - 이수진 목사 욥기 10:13~22
오늘은 욥이 교만과 무지 가운데 하나님께 하소연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1. 하나님 앞에 아는 체하는 욥
   
   “그러한데 주께서 이것들을 마음에 품으셨나이다 이 뜻이 주께 있은 줄을 내가 아나이다 내가 범죄하면… 내 죄악을 사유치 아니하시나이다”(욥 10:13~14)
   이는 12절에 “생명과 은혜를 내게 주시고 권고하심으로 내 영을 지키셨나이다.” 한 말에 이어지는 말입니다.“하나님께서 내게 생명을 주시고 복도 주시며 내 마음과 생각을 주관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선을 좇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은혜를 베푸실 때 저에게 환난을 내릴 것을 미리 계획해 놓으셨음을 이제 알겠습니다.” 하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욥은 “이 뜻이 주께 있는 줄을 안다”며 또다시 아는 체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스스로 안다고 하는 자체가 무서운 교만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밝히 알아서 그 뜻대로 행한다면 축복이지만, 욥처럼 알지 못하면서도 스스로 안다고 생각하며 도리어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잠언 16:18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말씀합니다. 이처럼 교만은 인생을 망하게 하는 선봉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항상 겸손한 마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욥이 말한 대로 내가 범죄하면 하나님이 나를 죄인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진리입니다. 하지만 죄를 지은 사람이 중심에서 회개하면 용서해 주십니다. 그러니 욥이 “내 죄악을 사유치 아니하시나이다”라고 한 것은 옳지 않은 말입니다. 욥은 마치 한번 범죄하면 용서받지 못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면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용서해 주시며 기억하지도 않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사 1:18) 말씀하셨지요.
   이처럼 우리 하나님은 한없는 긍휼과 용서를 베푸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단, 반드시 우리가 죄에서 돌이켜 빛 가운데 행할 때 주님의 보혈로 죄 씻음 받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요일 1:7).
   
   “내가 악하면 화가 있을 것이오며 내가 의로울지라도 머리를 들지 못하올 것은 내 속에 부끄러움이 가득하고 내 환난을 목도함이니이다”(욥 10:15)
   여기서 “내가 악하면 화가 있을 것”이라 했는데, 이는 당연한 말입니다. 성경을 보면, 온 백성을 우상숭배에 빠지게 만든 북이스라엘의 아합왕. 선한 다윗을 시기하여 끊임없이 쫓아다니며 죽이려 한 사울왕. 스승인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아넘긴 가룟 유다 등 악한 사람의 결말은 하나같이 비참했습니다.
   혹 악한 사람이 잠시 흥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공의의 법대로 심판을 받게 됩니다(시 1:5).
   욥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의롭고 선한 사람이고, 시험이 오기 전까지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지도자로서 부와 명예를 누렸습니다. 그런데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고. 심한 악창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친구들조차 욥을 정죄하며 멸시 천대하는 현실이 심히도 부끄럽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 중에도 사업에 성공하여 떵떵거리며 살아가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망하고, 병까지 들면 얼마나 부끄러워합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면 비록 이런 상황 속에 처해 있을지라도 그가 하나님 앞에 떳떳하다면 사람에게도 부끄러울 것이 없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구하여 응답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요일 3:21~22, 요일 5:14). 그러니 어려움이 있다고 숨고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과 감사의 제사를 드릴 수 있지요. 결국 전보다 더 큰 축복을 받게 됩니다.
   
   
   2. 사자처럼 무자비한 하나님이라며 원망하는 욥
   
   “내가 머리를 높이 들면 주께서 사자처럼 나를 사냥하시며 내게 주의 기이한 능력을 다시 나타내시나이다 주께서 자주자주 증거하는 자를 갈마들여… 군대가 갈마들어 치는 것 같으니이다”(욥 10:16~17)
   ‘내가 머리를 높이 든다’는 것은 영적으로는 교만을 의미합니다. 물론 여기서 욥이 자신을 교만하다는 의미로 말한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좀 아는 체하고 옳다고 주장하고 따지면 하나님께서 사자처럼 자신을 사냥하신다는 의미로 말한 것이지요.
   욥은 어이없게도 하나님을 사나운 사자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마치 사자가 굶주릴 때 먹이를 사냥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의롭게 살아온 자신을 무자비하게 움키고 괴롭게 하신다는 것이지요.
   또 “주께서 기이한 능력을 다시 나타내신다” 했는데, 욥이 옳다고 따지며 하나님을 대적할 때마다 하나님의 기이한 능력으로 고통을 더하신다는 것입니다. 마치 사자에게 사냥당하는 것처럼 온몸의 악창에서 심한 피고름이 나오고 몸이 더욱 고통스러워지더라는 것입니다.
   만일 시험 환난이 왔다면 회개거리를 찾아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합당치 않은 말을 쏟아내며 악을 발할수록 더욱 곤고해집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원수도 사랑하라 말씀하셨는데, 더구나 원수도 아닌 사람을, 믿음의 형제를 미워하고 서로 다툰다면 내 안의 성령님께서 탄식하시니 곤고해질 수밖에 없지요.
   잠언 16:7에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하셨으니, 설령 애매히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선으로 이길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좇을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원수 마귀가 물러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욥은 능력의 하나님 앞에 두려움과 떨림 가운데서도 여전히 원망하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두려움도 없이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환난이 왔을 때 낙심하고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고 감사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모든 어려움에서 건져내시고 구원해 주신다 말씀하셨습니다(시 50:15, 약 5:13, 시 34:4, 시 50:23). 우리가 이러한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좇으면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므로 얽히고설킨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한다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선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고 마음껏 축복해 주시는 분이지요.
   ‘주께서 자주자주 증거하는 자’란 하나님이 부리시는 사자들을 의미합니다. 또한 “갈마들다”라는 말은 “서로 번갈아 들다”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부리는 사자들을 번갈아 보내어 자신을 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마치 잘 훈련된 군대가 번갈아 공격해 오는 것처럼, 욥이라는 목표물을 향해 무섭게 진노를 퍼붓고 계시다는 말이지요.
   
   “주께서 나를 태에서 나오게 하셨음은 어찜이니이까 그렇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기운이 끊어져 아무 눈에도 보이지 아니하였을 것이라…”(욥 10:18~19)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태에서 나오게 하셨다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섭리 가운데 인간에게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근본의 씨를 주셨지만 자식을 낳고, 낳지 않고는 부모의 의지에 달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태중에서 누구는 살고 누구는 죽도록 일일이 간섭하지는 않으시지요.
   하나님은 인생의 모든 생사화복을 영계의 법칙 안에서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결혼이나 사업, 가정 문제 등 매사에 일이 잘못되면 하나님을 원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의 허물로 인해 연단받고 있는데 “하나님이 나를 치셨다”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문제가 생긴다면 반드시 말씀 안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신명기 28장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모든 복이 임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저주가 임하게 된다고 하셨지요.
   그러니 만일 어떤 재앙이나 저주가 임했다면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사단의 송사를 받아 자초한 결과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때 하나님 앞에 무엇이 담이 되었는지 기도하며 찾아서 회개해야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3. 내세에 대해 알지 못하는 욥의 하소연
   
   “내 날은 적지 아니 하니이까 그런즉 그치시고... 내가 돌아오지 못할 땅 곧 어둡고 죽음의 그늘진 땅으로 가기 전에 그리하옵소서…”(욥 10:20~22)
   욥은 “하나님, 나는 나이도 많고 죽을 날이 멀지 않았으니, 제발 이 땅에 살아가는 잠시 동안 행복하게 살게 해 주세요. 내가 죽어서 가게 될 땅은 어둡고 침침하며 소망이 없는 곳이니 그곳에 들어가기 전에 나 좀 고통받지 않고 살다가 죽게 해 주세요. 나를 좀 내버려 두세요.” 이렇게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욥은 마치 내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상은 사후의 세계에 대해서 모르니 지옥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이란 조금도 없었지요.
   만일 욥이 말하는 것처럼, 천국도 지옥도 없고 그저 사람이 죽으면 무로 돌아간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죄를 지으며 세상과 짝하여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 15:19) 말씀한 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은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알며,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압니다. 또 천국이 얼마나 아름답고 영화로운지, 반대로 지옥은 얼마나 참혹하고 비참한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시험 환난이 와도 욥처럼 원망, 탄식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변화의 열매로 나와야 하지요. 연단을 통해 더 굳건한 믿음으로 성장하며 깊으신 하나님의 사랑과 뜻을 깨달아 더 뜨겁게 사랑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정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면 어려움 중에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잃지 않습니다. 어려움과 연단의 시간에 더욱 선과 진리를 좇아 행합니다. 그것이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지요.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 55:8~9) 말씀하셨으니, 작고 짧은 사람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일을 판단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아야겠습니다.
   오직 믿음과 선,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여 깊고 넓으신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을 이해하는 참 자녀로 나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2년 9월 25일 주일)
* 사회: 조대희 목사
개회찬송 23장 1절
성시교독 48번
찬송 182장
기도 황금란 목사
성경봉독 로마서 8:12~16
찬양 주님 주신 아름다운 세상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7)
당회장님
찬송 만민 찬양 159장
주일 저녁예배 (2022년 9월 25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노영진 목사
대표기도 이영인 전도사
성경봉독 욥기 11:1~11
특송 손영락 장로
설교 욥기 강해(25) - 말의 중요성, 허망한 사람
당회장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
수요 예배 (9월 28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박광현 목사
대표기도 이형진 집사
성경봉독 고린도후서 2:14~15
설교 그리스도의 향기
이미경 목사
금요 철야예배 (9월 30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임학영 목사- 은사집회 -
대표기도 이미영 목사
성경봉독 사사기 9:7~15
찬양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요동하지 말라
당회장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
새벽 예배
인도 추후 공지 시까지 새벽예배는 모이지 않습니다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2-09-25 2022년 9월 넷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새로 나오셔서 등록해 주신 분들과 인터넷으로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교회 소식

● 당회장님의 저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스웨덴어 종이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 당회장님 신앙칼럼이 「기독선교신문」, 「시사뉴스」 등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지난 2022년 9월 14일 이스라엘 홀로코스트 연맹?(회장:?안드레 가지로우스키 박사)?제15회 창립기념 행사에서 야엘 라피드 이스라엘 총리의 축하메시지와 함께 당회장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님의 영상축하인사 메시지가 방영되었습니다.

● 만민뉴스 한글(977호), 영어(727호), 중국어(601호), 우르두어(97호) 신문을 온라인으로 발행하였습니다. (만민뉴스 홈페이지 www.manminnews.com)

● 9월 은사집회가 9월 30일 금요철야예배 시 당회장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님 인도로 있습니다.
준비찬양은 오후 10시 40분부터 시작하며 실시간 간증접수를 받습니다(☎ 02-818-7300).
아직 환자접수를 하지 못한 성도님들은 오늘까지 접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세한 사항은 교회 홈페이지와 모바일앱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 교회 창립 40주년을 기념하는 「2022 만민찬양제」가 10월 9일(주일) 오후 1시 10분에 신학교 스튜디오에서 GCN 생방송으로 진행됩니다. 성도님들께서도 함께 응원해 주시고 마음에 진한 감동과 은혜의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 자세한 사항은 교회 홈페이지 또는 모바일앱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 10월 추천도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우림북 홈페이지 www.urimbooks.com)

● 레위 직원 조회가 9월 26일(월) 오전 9시 30분에 신학교 3층 예배실에서 있습니다.
레위 직원들은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 당회장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고) 교보문고, 영풍문고, 북스리브로, 예스24, 인터파크 등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자책(e-book) 및 오디오북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지교회 소식

춘천만민성결교회(담임 강영식 목사) 창립 22주년 기념예배
※ 일시: 10월 3일(월) 오후 3시
※ 강사: 이미경 목사, 특송: 서승원 집사


●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강노을 자매(2청년/ 14교구 강용권 성도 ? 성경란 권사의 자녀)/ 10월 1일(토) 낮 12시 10분
영등포 위더스 6층 「메리엘컨벤션홀」

이은영37 집사(3청년/ 13교구 이형 집사 ? 최향자 권사의 자녀)/ 10월 1일(토) 오후 6시 10분
신도림 테크노마트 7층 「웨스턴 베니비스 그레이스홀」


● 감사드립니다.

강단헌화/ 마산만민교회 장복내 권사 가족(꽃꽂이 봉사: 예배국 미화부, 시설관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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