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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공과
2022-11-11 제45과사람의 본분을 찾자 전도서 12:13~14
읽을말씀 : 전도서 12:13~14  |  외울말씀 : 전도서 12:13 | 참고 말씀: 베드로전서 1:16
교육목표 : 사람의 본분이 무엇인지 깨달아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켜 거룩하신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게 한다.


   우리가 삶의 목표와 방향을 어디에 두는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삶의 목표를 영원한 천국이 아닌, 이 땅에서의 성공과 부귀영화에 두는 사람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기본적인 윤리와 도덕마저 무시해 버리기도 합니다. 사람의 본분을 망각한 채 육신의 정욕을 좇아 무절제하게 살아가는 것이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사람의 본분을 다하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1. 사람의 본분이란
   
   창세기 1장을 보면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시고 만물의 영장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정복하고 만물을 다스리도록 역사하셨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그 명령도 지키지 않으면서 살아갑니다. 이처럼 사람의 본분을 망각한 채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원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첫 사람 아담과 하와는 사랑스럽고 아름다웠으며 거짓 없이 진실하고 깨끗하며 온전하였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을 살면서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렸지요.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생령 아담은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죄의 삯으로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으니 영이신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지게 되었지요(롬 6:23). 혼이 사람의 주인이 되어 정욕을 좇아 짐승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은 죄악이 더욱 관영함으로 인륜 도덕이 땅에 떨어져 부모 자녀 간에도 사랑을 찾아보기가 힘든 세상이 되었지요.
   
   이처럼 죄를 범한 아담과 그의 후손은 모두 죄인이 되었기에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화목제물로 내어주셨지요.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죄 사함을 받고 죽은 영이 살아나 사람의 본분을 되찾으며 영생할 수 있도록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의 본분이란 무엇일까요?
   전도서 12장 13절에 “…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했습니다. 피조물인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도리가 있는데 바로 자기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지요.
   이어지는 14절에는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했고, 전도서 1장 2~3절에는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헛되고 헛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사람의 정욕을 쫓아 이 세상의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되지요.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며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고 그 명령을 지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사람의 본분을 지키는 방법
   
   1) 하나님을 밝히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밝히 안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아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사람을 창조하시고 이 땅에 경작하시는지, 어떻게 영생의 길로 인도하시는지 등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바로 알고 깨달아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켜 행할 수 있습니다.
   태초에 드넓은 우주 공간에 홀로 계셨던 근본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대상을 원하셨습니다. 로봇처럼 순종 잘하는 천사가 많이 있었지만 자유 의지 가운데 순종하는 참 자녀를 원하셨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시고 오랜 세월에 걸쳐 무수한 사람을 경작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낳아 기르려면 많은 수고가 따르지만,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행복을 느낄 수 있고 훌륭하게 장성하면 큰 기쁨이 되기 때문에 수고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사람의 악함을 아시지만, 즐거이 경작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자유 의지 가운데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쁘시게 하는 참 자녀로 나올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참 자녀를 얻기 위해 사람에게 자유 의지를 주시고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두셨습니다. 그리고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류를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지요.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시므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누구든지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되었지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부모의 기를 받아 여러 가지 죄성을 타고납니다. 성장 과정 중에도 진리와 맞지 않는 것들을 보고 들으며 배우는 만큼 악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말씀과 기도로 거룩한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을 알고, 창조주 하나님과 원수 마귀도 알며, 죄의 삯이 사망이라는 것과 불의가 얼마나 추하다는 것을 깨달아 불같이 기도하여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밝히 알아가야 사람의 본분인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켜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자기 자신을 개간해 나가야 합니다
   농부가 많은 열매를 거두려면 묵은 땅을 기경하며 씨를 뿌린 후에는 거름을 주고 잡초를 뽑아 주는 등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마음 밭도 개간하는 작업이 있어야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할 수 있는 옥토가 되어 사람의 본분을 지킬 수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고 인간 경작의 섭리를 알았다면, 비진리의 마음을 진리의 마음으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라야 하나님 말씀을 듣고 보며 읽는 대로 깨달아지고 행함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잠언 8장 13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한 대로 악을 미워하고 죄를 버리며 자신의 마음 밭을 열심히 개간하여 옥토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16절에는 “…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했고, 데살로니가전서 5장 22절에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했습니다. 그러니 마음 밭을 개간하고 오직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 성령의 열매와 영적인 사랑, 팔복 등의 열매를 맺어야 할 것입니다.
   
   3) 자기 삶에 충실해야 합니다
   사람의 본분을 지키려면 맡은 일을 잘 감당할 뿐만 아니라 자기 삶에 충실해야 합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요.
   예를 들어 부모는 부모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자녀는 자녀로서 해야 할 도리를 다해야 합니다. 학생은 본분인 공부를 잘해야 하고, 군인은 국방의 의무를 이행해야 하지요.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기관장, 성가대, 교사, 구역장, 조장, 지역장 등 맡은 사명을 잘 감당해야 자기 본분을 다했다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영혼을 사랑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충성 봉사해야 하지요. 교회에서 모이기를 힘쓰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마음 다해 찬송하는 것,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는 생활은 신앙인의 기본입니다.
   혹여 영적인 사명을 감당한다는 이유로 육적인 사명을 소홀히 하거나 육적인 사명 때문에 주 안에서 감당해야 할 영적인 사명을 게을리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각 분야에서 자신이 맡은 모든 일을 지혜롭고 충실하게 감당할 수 있어야 하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여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림으로 사람의 본분을 다하는 참 자녀로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사람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하나님을 밝히 ( ) 사람이 되어야 한다.
   ② 자기 자신을 ( )해 나가야 한다.
   ③ 자기 삶에 ( )해야 한다.
   
   2. 사람의 본분이란 무엇일까요? 전도서 12장 13절을 써 보세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에덴동산’이란?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먹고 쫓겨나기 전까지 오랜 세월 동안 자손을 낳으며 살았던 곳이다.
   생령 아담은 에덴동산과 지구를 다스리고 지배하며 아름답고 풍성한 열매들이 있는 곳에서 부족함 없이 살았다.
   하지만 에덴동산 중앙에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는데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 먹고 남편 아담에게도 주어 결국 두 사람 모두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지난 주 설교요약
2022-11-06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10) - 이재록 목사 로마서 8:12~16
지난 시간에 이어 육신의 생각 셋째 단계인 ‘의와 틀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의 예를 살펴보고, 어떻게 하면 깨뜨릴 수 있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성령의 음성을 좇는 대신 육신의 생각과 육체의 소욕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크게 세 가지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그중 셋째 단계인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의와 틀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의와 틀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 중 기질적인 틀이나 성격의 틀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과 미세한 비진리가 남아 있어서 순간순간 스치는 육신의 생각, 환경에서 오는 충만함에 가려져 있는 육신의 생각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이어서 오늘은 육체의 결여에서 비롯되는 육신의 생각과 ‘의의 틀’과 ‘선의 틀’에서 비롯되는 육신의 생각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의와 틀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의 예
   
   1) ‘육체의 결여’에서 비롯되는 육신의 생각
   사람은 성장하면서 여러 발달 단계를 거칩니다. 단계마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반드시 경험하고 훈련받아야 하는 것들이 있지요. 육체의 결여란 이 중 어떤 분야가 결핍되어 성인이 된 후에도 그 결핍이 나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어린이들이 학교에 가면 선생님 말씀에 집중하는 훈련을 받습니다. 이때 이 훈련을 잘 받지 못 한 사람은 성장해서도 다른 사람이 말할 때 집중하지를 못합니다. 이 결핍이 신앙생활에 영향을 주기도 하지요. 설교나 교육 시간에 말씀을 집중해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는 누군가와 대화할 때 상대의 말을 경청하지도 못하지요. 일꾼들의 경우 윗사람의 지시사항을 귀담아듣지 못하거나 명심하지 못해서 실수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성장기에 고립된 환경에서 자라 의사소통 능력이나 교감 능력이 부족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표현방식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지요. 그래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이 부족합니다.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닌데 매사에 주변 사람의 마음에 맞춰 주지를 못하지요. 자기 경험 안에서, 즉 자기 생각의 한계 안에서 ‘이것이 좋다. 저 사람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데 그 생각이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육체의 결여가 있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혼의 지배를 받기가 더 쉽습니다. 혼을 주관하는 사단이 진리를 행하지 못하도록 훼방할 요인이 많지요. 따라서 이런 육의 분야의 결여도 채워야만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물론 이 결여는 자신의 힘과 의지만으로는 쉽게 극복할 수가 없습니다. 불가능이 없으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야만 극복할 수가 있지요.
   
   그 방법론을 간단히 말씀드리면 먼저 진리의 말씀을 열심히 보고 듣고 배우면서 이 진리에 자신의 모든 것을 비춰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불같이 기도해야 하지요. 그러면 자신이 영육 간에 알아야 할 것, 갖춰야 할 것, 다듬어야 할 것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기도하면 성령께서 예전 일을 떠올려 주셔서 자신의 결여가 무엇인지 발견하게 해 주시기도 합니다. 이때 진리에 위배되는 것이 발견되면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자신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요. 성령의 소욕을 좇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합니다.
   이때 불같은 기도를 반드시 병행해야 하는 이유는 성령의 소욕을 좇을 힘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무엇보다도 진리를 바르게 깨닫기 위함이지요. 결여가 있는 상태에서 말씀을 문자적으로, 또는 자기 생각의 틀 안에서 이해하면 또다시 잘못된 진리의 틀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들어 안다는 것이 결여를 극복하는 데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지요. 그러므로 기도하면서 성령의 감동 속에 진리를 바르게 깨우치고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자신의 한계 안에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깨달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깨달아 열심히 행해 나가면 육체의 결여도 점점 채워지지요. 그래서 주의 교양을 이루면 영육 간에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2) ‘의의 틀’과 ‘선의 틀’에서 비롯되는 육신의 생각
   ‘의의 틀’과 ‘선의 틀’은 진리의 말씀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여 ‘이것이 옳다. 이것이 선하다.’ 이런 식으로 생각을 단단하게 굳힌 것입니다. 이 선의 틀과 의의 틀은 자신이 아는 말씀 지식을 바탕으로 만들기 때문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잘 깨닫지 못합니다. 더구나 그 틀에서 비롯된 생각이 들어맞는 상황도 간혹 있기 때문에 자기 생각이 옳다고 자신하게 되지요.
   예를 들어 어떤 일꾼이, 목자가 양 떼를 용서하고 감싸 주는 모습에 감동하였습니다. 이때 ‘용서하고 이해하는 것이 선이다. 영혼을 갈무리하는 일꾼은 저렇게 해야 한다.’라는 선의 틀이 만들어졌지요. 그래서 양 떼를 갈무리할 때 자신도 어찌하든 영혼을 용서하고 감싸 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용서만 해서는 안 되는 상황에서도 똑같은 태도를 취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돌이키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구원받기조차 어려운 영혼은 무조건 감싸 주는 것이 아니라 죄에서 돌이킬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진정한 선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1절에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했습니다. 믿음의 형제가 죄를 범하면 죄에서 돌이키도록 바로잡아 주는 것이 일꾼의 역할이며 이것이 선이요, 사랑입니다. 물론 이렇게 할 때는 어떤 감정도 없이 온유한 심령으로 해야 하지요. 또 지혜로운 사람은 죄를 범한 사람을 바로잡아 주는 입장에 있다고 해도 자신도 함께 돌아보는 겸비한 자세를 가집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죄를 범한 영혼에게 권면하는 것을 보면 자기 의가 발동합니다. ‘사랑은 허물을 덮어 주는 것 아닌가. 저 일꾼은 사랑이 부족한 것 같다.’며 자기 의 속에서 그 일꾼을 바라보지요. 또 어떤 사람은 죄를 범한 징계로 물질의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구제합니다. 물론 상대의 믿음에 따라 구제하는 것이 그 영혼을 살리는 데에 유익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영혼이 죄에서 떠나는 것을 오히려 막아 버릴 수도 있지요. 선의 틀에서 나온 육신의 생각 때문에 그 영혼에 대한 하나님 사랑을 더 깊이 헤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꾼들은 이와 반대로 양 떼를 지적하고 권면하는 것이 사랑이고 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양 떼가 말씀대로 살지 못하면 잘 이해하지 못하지요. 자신은 초신자 때부터 그 정도의 말씀은 지켰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상대가 버거워도 믿음의 분량에 넘치도록 계명을 지키도록 가르치고 권면하는 것이 상대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양 떼의 허물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용서하고 덮어 줘야 하는 상황에서도 즉시 지적하고 권면하지요. 젖 먹는 성도에게 밥을 먹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의 틀에 갇혀서 그 영혼의 마음이 어떤지 상대의 형편을 살펴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기 경험이나 자기 생각의 한계 안에서 만든 의와 틀은 대부분 하나님의 뜻과 맞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내가 보기에는 분명히 이것이 선한데, 이것이 의로운데.’ 하면서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 사람도 있지요.
   물론 진리가 시시각각 달라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진리는 절대불변이지요. 다만 물이 담는 그릇에 따라 모양이 바뀔 수 있는 것처럼 상황에 따라 진리를 적용하는 모양이 조금 달라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때그때 진리를 어떤 모양으로 적용해야 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성령의 음성과 주관으로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는 사람은 어떤 상황을 만나든지 그 상황을 바로 파악할 수가 있지요. 진리를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금방 답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육아 경험이 많은 어머니 중에는 아기 울음소리만 듣고도 아기에게 필요한 것을 바로 알아채는 분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는 육아법만 체득한다고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아기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있을 때 가능하지요.
   신앙생활이나 사명 감당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면 그때그때 무엇이 선인지, 의로운 것인지, 진리를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기 때문이지요.
   
   
   2. ‘의와 틀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려면
   
   의와 틀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려면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스스로 발견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비진리 중에는 발견하기가 쉬운 것도 있고 비교적 어려운 것도 있습니다. 양심 속의 악이나 본성 속의 악은 비교적 어려운 편에 속하지요. 이런 악이 있으면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진리의 틀을 만듭니다. 육신의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도 이 잘못된 진리의 틀에서 육신의 생각이 나와 결국 성령의 음성을 거스르게 되지요. 따라서 이 양심의 악과 본성의 악은 반드시 벗어 버려야 합니다(히 10:22).
   
   먼저, 양심의 악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양심은 각 사람이 선, 악이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주관적인 기준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양심에 거리끼는 것은 악이고 거리끼지 않는 것은 악이 아니라고 인식하지요. 그런데 양심은 자기 나름대로 만든 것이기에 사람마다 다르고 시대나 지역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또 이 양심조차 비진리가 많이 포함돼 있지요. 세상이 악해질수록 사람들의 양심도 점점 더 비진리에 물들고 악에 대해 무뎌집니다. 그래서 양심은 절대적인 선의 잣대가 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양심만 살펴보아도 이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의 양심과 지금의 양심을 비교해 보면 많이 달라졌음을 느끼실 것입니다. 예전에는 악이라고 느끼지 못한 것도 지금은 악으로 느껴지지요. 진리의 말씀을 들으면서 양심이 정화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양심의 악을 많이 버렸는데도 미세한 악이 남아서 의지와 상관없이 성령의 음성을 거스르는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옳다고 판단하여 어떤 행동을 취했는데 그 행동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옳지 않은 경우가 있지요. 그러므로 미세한 악까지 숨은그림찾기를 하듯이 구석구석 찾아내야 합니다.
   우리가 찾고자 노력하며 기도하면 성령께서 양심 속의 미세한 악을 발견케 해 주십니다. 예를 들어 펜이 필요한데 마침 옆자리에 펜이 있어서 말도 없이 써 버린 경험이 있으신지요? 허락도 없이 남의 물건을 마음대로 취급했으니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도적의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기 전에는 ‘친한 사이인데 뭐. 물어보나 마나 쓰라고 했을 거야. 펜 좀 쓰는 게 어때서?’ 이런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지요? 이런 작은 불의의 행함으로도 양심의 가책을 받는 분들이 많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으려면 반드시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해서 양심의 미세한 악도 뽑아 버려야 합니다. 자신을 발견해 나가는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육신의 생각을 온전히 깨뜨리므로 성령의 인도를 받아 형통한 삶을 영위하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11-06 욥기강해 (28) - 자기의 타당성을 주장하는 욥 - 이수진 목사 욥기 12:7~21
오늘은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높여 드리는 척하면서 결국 자기의 타당성을 주장하는 욥의 본심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높여 드리는 욥
   
   “이제 모든 짐승에게 물어 보라 그것들이 네게 가르치리라 공중의 새에게 물어 보라… 생물들의 혼과 인생들의 영이 다 그의 손에 있느니라”(욥 12:7~10)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늘과 바다, 땅, 산천초목, 모든 만물에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담아 두심으로 누구나 창조주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롬 1:20).
   하나님께서는 독수리처럼 큰 새뿐만 아니라 파리나 모기, 하루살이처럼 작은 곤충도 잘 날아다닐 수 있게 만드셨습니다. 욥은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인정하기 때문에 짐승, 새, 땅, 물고기 중에 어느 것이 여호와의 손이 이를 행하신 줄을 알지 못하겠느냐고 말하지요.
   생물이란 동물과 식물을 포함해서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욥은 영혼육에 관한 바른 지식이 없으므로 다만 자신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욥이 말하는 ‘혼’은 단지 사고력을 말합니다. 즉 생각하고 궁리할 수 있는 힘을 말하지요. 또 욥이 말하는 ‘영’은 단지 ‘사물을 깨우치고 이치를 터득하는 모든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짐승들은 본능에 따라 살아갈 뿐 사물을 깨우치고 이치를 터득할 수 있는 능력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욥은 “하나님께서 생물들에게는 혼을 주셔서 생각하고 궁리할 수 있게 하셨고, 사람에게는 영을 주셔서 사물을 깨우치고 이치를 터득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입이 식물의 맛을 변별함같이 귀가 말을 분변하지 아니하느냐… 지혜와 권능이 하나님께 있고 모략과 명철도 그에게 속하였나니”(욥 12:11~13)
   우리 입 안에 혀가 있어 쓴맛, 단맛, 짠맛 등을 분별하는 것처럼, 귀 안에는 청각이 있어 소리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욥은 이러한 능력을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늙은 자에게 지혜가 있다는 것은,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경험을 통해 사고력이나 분별력, 판단력이 분명해지고 삶의 지혜가 많아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어서 욥은 ‘늙은 자’와 구분하여 ‘장수하는 자’에게는 명철이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늙은 자란, 단순히 세월이 흘러 노인이 된 사람을 의미하지만, ‘장수하는 자’는 ‘건강하게 오래 사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명철이란 총명하고 사리에 밝은 것을 말합니다. 즉 삶의 경험을 통해 능히 분별하는 힘과 통찰력이 있어서 일을 투철하게 이루어 가는 것, 자기 자신을 확고하게 세워 가는 것을 말합니다. 모략이란,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 준비하는 모든 꾀를 말합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늙은 자와 장수하는 자에게 이러한 능력을 주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욥은 하나님께는 지혜와 권능이 있고 모략과 명철도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욥이 하나님을 높여 드리는 말이며, 그 말이 다 옳습니다. 그러나 정작 욥이 하고 싶었던 말은 다음 절에 이어집니다.
   
   
   2. 욥의 본심
   
   “그가 헐으신즉 다시 세울 수 없고 사람을 가두신즉 놓이지 못하느니라… 속은 자와 속이는 자가 다 그에게 속하였으므로”(욥 12:14~16)
   욥은 하나님께서 헐어 버리시면 다시 세울 수가 없고, 또 사람을 가두면 놓임 받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욥 자신처럼 의롭고 정직하게 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혹독한 시련으로 헐어 버리고 가두셨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떤 것도 맘대로 헐어 버리거나 사람을 가두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런 일들은 원수 마귀가 하는 것이며 시험 환난, 질병을 주는 것도 원수 마귀입니다(벧전 5:8). 사람이 불의를 행하며, 죄를 지으면 거기에 대한 대가가 원수 마귀 사단으로부터 오게 되는 것이지요(창 3:14).
   그러나 설령 사람이 죄를 짓고 넘어졌다 할지라도 회개하고 돌이키면 하나님께서는 다시 세워 주십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도 통회자복 하니 권능의 종으로 세워 주시지 않았습니까.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여정에서 하나님의 권능으로 홍해가 갈라지고 요단강 물이 멈췄던 일. 그래서 백성들이 바다와 강을 마른 땅으로 건넌 일 등을 욥은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욥은 하나님께서 물을 그치게도 하시고 마르게도 하신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물을 내신즉 땅을 뒤집는다’는 것은 홍수가 나면 산사태가 나고 흙이 파헤쳐지는 등 땅이 뒤집어지는 현상을 설명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셔서 땅을 뒤집기도 하시며, 또 사람으로 하여금 속이게도 하시고 속임을 당하게도 하시는 나쁜 하나님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속는 것도 속이는 것도 하나님이 능력 가운데서 그렇게 만든 것이니, 결국 순전하고 의로운 욥 자신도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곤욕을 당하며 멸시 천대를 받고 조롱거리가 되었다는 말이지요.
   욥은 앞에서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위대하심을 표현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하나님을 높여 드리려는 목적이 아니라, 이런 힘 있는 하나님께서 의인인 자신을 이렇게 괴롭히신 거라고 설명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친구들에게 나쁜 하나님으로 인식시키기 위해 고도의 작전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욥은 속는 자와 속이는 자가 하나님께 속하였다며 나쁜 하나님으로 몰아가고 있지만, 우리 하나님은 결코 그런 분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어떻게 하면 불로소득을 얻을까, 어떻게 하면 남을 속여서 부자가 될까’ 악한 지혜를 동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사단이 주는 지혜입니다. 거짓과 속임은 원수 마귀 사단의 속성이기 때문입니다(요 8:44).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혜, 구원받을 수 있는 지혜, 성결에 이르는 지혜이지요.
   
   “모사를 벌거벗겨 끌어가시며 재판장으로 어리석은 자가 되게 하시며… 제사장들을 벌거벗겨 끌어가시고 권력이 있는 자를 넘어뜨리시며”(욥 12:17~19)
   욥은 선진들을 통하여 이스라엘 역사에 대해 들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어떤 모사꾼이 아무리 뛰어난 계획을 세워도 하나님께서 그의 지혜를 폐하여 버리시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경우가 나옵니다.
   예를 들면, 아히도벨은 다윗왕의 신하로서 매우 뛰어난 모사요, 전략가였습니다. 그런데 압살롬이 반역하였을 때에 그는 다윗을 떠나 압살롬에게 가담하였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모략을 파하기로 작정하시니 이룰 수 없었고, 마침내 승리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다윗왕에게 돌아갔습니다.
   또 주변 나라에서 수십만의 군대를 동원하여 이스라엘을 침략해 와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자중지란이 일어나 순간에 멸망해 버린 경우도 욥은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욥은 아무리 모사꾼이 좋은 지혜를 냈어도 하나님께서 그 지혜를 없애 버리시면 그는 끌려갈 수밖에 없다고 말을 하는 것이지요.
   
   또한 욥은 ‘하나님은 재판장으로 어리석은 자가 되게 하신다’고 주장합니다. 재판장은 공의로운 판결이 생명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재판장으로 하여금 어리석은 판결을 내리게 만드신다는 말입니다.
   정작 욥이 하고 싶은 말은, 하나님은 공의롭지 못하시기에 의롭고 선한 자기를 이토록 고통스럽게 만들어 놓은 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재판장으로 하여금 어리석은 재판을 하도록 만드는 분이니, 그러한 하나님 역시 어리석은 재판장이심을 비유 들어 설명하는 것이지요.
   ‘열왕의 맨 것을 풀어 그들의 허리를 동인다’는 것은 왕의 권세를 꺾어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욥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볼 때, 왕들도 포로로 잡혀가고 죽임당했던 경우를 떠올리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욥은 자기가 볼 때 착하고 의로운 제사장들도 포로로 잡혀가거나 죽임당하고, 권력자가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도 역사를 통해 알았지요. 욥은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 아니냐고 비유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3. 자기의 타당성을 주장하는 욥
   
   “충성된 자의 말을 없이 하시며 늙은 자의 지식을 빼앗으시며 방백들에게 멸시를 쏟으시며 강한 자의 띠를 푸시며”(욥 12:20~21)
   욥이 역사를 돌아볼 때, 사울왕은 하나님 앞에 충성을 했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교만과 사심 가운데 생각을 동원하여 불순종을 거듭함으로 인해 결국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이지요. 욥은 이러한 사건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니 충성된 자의 입을 막으시는 하나님이라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늙은 사람의 지식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늙어도 강건하기를 원하시며 더욱 지혜롭고 총명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이 없어지거나 분별력이 흐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욥은 이 또한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사실은 인간 스스로가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모세 선지자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사람들은 나이 들어도 건강하고 지혜롭습니다(신 34:7).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도 마음이 선하고 정직하게 사는 사람은 깨끗하고 곱게 늙어가는 것을 볼 수 있지요.
   방백들은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께서 조직을 이끄는 지도자들에게 멸시를 쏟으신다면 얼마나 나쁜 하나님입니까. 또 “강한 자의 띠를 푸신다” 했는데, 여기서 띠란 그 사람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것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면, 삼손의 띠는 머리털이었습니다. 삼손의 머리털을 잘라 버리니 힘을 잃어 조롱받고 두 눈이 뽑혀 멸시 천대를 받는 신세가 되었지요.
   그렇다면 욥의 강한 띠는 무엇이었을까요? 높은 지식과 지혜, 부와 명예, 많은 사람을 가르칠 수 있는 능력, 존경받는 위치 등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렇게 강한 자신의 띠를 풀어 버리셨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욥은 친구들이 반박할까 봐 마치 남의 얘기를 하듯이 우회하여 비유 들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방백들을 멸시하고 강한 자의 띠를 풀어 버리는 분이시니 나의 띠도 하나님이 풀어 버리신 것이 아니냐”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욥도 연단이 오기 전에는 자신에게 악이 있는 줄 모를 정도로 행위적인 면에서는 온전했습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연단을 통해 욥의 본성 속에 있는 악의 모양들을 드러내시니 비로소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하나 버리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의 모습으로 나와 축복을 마음껏 받아 누리게 되지요.
   그러므로 시간시간 욥의 모습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변화되어 축복받을 수 있는 아름다운 중심으로 나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2년 11월 6일 주일)
* 사회: 조혁희 목사
개회찬송 48장 1절
성시교독 16번
찬송 502장
기도 장성식 목사
성경봉독 로마서 8:12~16
찬양 구주를 생각만 해도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11)
당회장님
찬송 만민 찬양 199장
주일 저녁예배 (2022년 11월 6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박광현 목사
대표기도 최영신 전도사
성경봉독 욥기 12:22~13:9
특송 해피니스팀
설교 욥기 강해(29) - 교만의 극치를 보이는 욥
당회장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
수요 예배 (11월 9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정진영 목사
대표기도 정현진 목사
성경봉독 고린도전서 1:10
설교 마음을 하나로
이미경 목사
금요 철야예배 (11월 11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김상휘 목사없음
대표기도 조대희 목사
성경봉독 요한계시록 15:5~16:7
찬양 샬롬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요한계시록 강해(56)
당회장님
새벽 예배
인도 추후 공지 시까지 새벽예배는 모이지 않습니다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2-11-06 2022년 11월 첫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새로 나오셔서 등록해 주신 분들과 인터넷으로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교회 소식

● 당회장님의 저서 「영혼육(하)」가 콩고 링갈라어 전자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 당회장님 신앙칼럼이 「기독선교신문」, 「시사뉴스」 등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만민뉴스 한글(980호), 영어(730호), 중국어(604호) 신문을 온라인으로 발행하였습니다.
(만민뉴스 홈페이지 www.manminnews.com)

● 은사집회, 성전이전을 위한 작정 다니엘 철야가 11월 7일(월) ~ 11월 27일(주일)까지 만민기도원 이복님 원장님의 인도로 진행됩니다. (준비찬양 오후 8시 40분)

● 「11월 은사집회」가 11월 25일 금요철야예배 시 당회장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님의 인도로 있습니다. 환자접수는 11월 7일(월)부터 11월 13일(주일)까지 받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교회 홈페이지와 모바일앱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 추수감사절(11월 20일)을 맞이하여 오늘 오후 2시 학습문답 및 세례문답을 실시합니다.
문답 내용을 숙지하시고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 장소: 학습문답(신학교 3층 예배실), 세례문답(사택 예배실)

● 11월 20일 주일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저녁예배 시 성찬 예식이 진행됩니다.(집례: 당회장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

● 2022년 영적 성장 프로젝트 「전 성도 당회장님 저서 읽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①주님의 자취(상) ②주님의 자취(하) ③젖과 꿀이 흐르는 땅 ④거역된 삶과 순종의 삶
⑤일곱교회 ⑥네 영혼이 잘됨같이 ⑦공부 잘하는 비결

금번 행사에 성도님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리며, 저서 읽기를 통해 진정한 영적 성장과 축복의 주인공이 되시길 바랍니다.
※ 기간: 11월 30일(수)까지

● 흰돌성가대 신입대원 오디션이 11월 13일(주일) 저녁예배 후 3층 예배실에서 있습니다.
※ 대상: 아동주일학교 1학년 ~ 6학년
※ 오디션곡: 자유곡 1곡, 제출서류: 자기소개서(사진 첨부)
※ 문의: 예능위원회 서승원 집사

● 당회장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고) 교보문고, 영풍문고, 북스리브로, 예스24, 인터파크 등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자책(e-book) 및 오디오북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지교회 소식

인도 델리만민교회(담임 김상휘 목사) 랜선 창립 10주년 기념 및 권사 취임예배/
11월 8일(화) 오후 1시 30분(한국시간)
※ 강사: 이미경 목사, 장소: GCN스튜디오


● 교구 소식

중국대교구 일꾼 월례회/ 11월 6일(주일) 저녁예배 후 신학교 예배실(인도: 황금란 대교구장)


●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김형훈2 집사(19교구, 1가나안) . 이하은2 자매(20교구, 3청년/ 2-2여 이선희30 집사의 딸)/
11월 12일(토) 오전 11시 마포구 월드컵로 240 「월드컵컨벤션 2층 임페리얼볼룸홀」


● 감사드립니다.

강단헌화/ 이성부, 안영홍 집사 부부(중국 3교구)(꽃꽂이 봉사: 예배국 미화부, 시설관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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