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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공과
2023-03-24 제12과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의 요령 예레미야 33:3
읽을말씀 : 예레미야 33:3  |  외울말씀 : 예레미야 33:3 | 참고 말씀: 히브리서 11:6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의 요령을 잘 숙지하여 중심 바쳐 불같이 기도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예수님께서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도록 기도하신 모습을 통해 마음을 집중하는 기도는 자세에서부터 비롯됨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기도하는 자세만 봐도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는지 짐작할 수 있지요. 엘리야는 얼굴이 무릎 사이로 들어갈 정도로 힘쓰고 애써 기도함으로 3년 반 동안 오지 않던 비를 내리게 하였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기도를 올렸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의 요령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중심 바쳐 기도해야 합니다
   
   중심으로 하는 기도는 마음과 뜻, 힘과 정성을 다한다는 의미입니다. 자세 또한 바른 모습으로 마음을 모아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지요. 꼭 오랜 시간 기도한다고 해서 중심의 기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짧은 시간을 하더라도 집중하여 충만하게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중심으로 기도할 수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나를 바라보시고 내 기도에 귀 기울이고 계심을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는데 졸거나 중언부언할 수가 없지요. 또 기도할 때 무엇보다도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의 주관 아래 하나님 마음을 깊이 이해하며 기도하기에 힘써야 하지요. 뿐만 아니라 억지가 아닌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할 때 중심의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중심의 기도는 진심이 하나님께 그대로 전달됩니다. 사랑 자체이시며 좋은 것을 아낌없이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 앞에 중심을 다해 믿음으로 구한다면 어찌 응답하시지 않겠는지요? 그러므로 기도할 때 중심 기도를 드리며, 능치 못하심이 없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합니다.
   
   
   2.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도록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셨습니다. 결코 조용히 기도하지 않으셨지요.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하신 이유는 부르짖어 기도할 때 잡념이나 피곤, 졸음이 틈타지 않고 중심 바쳐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마태복음 6장 6절을 인용하여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하지 않았느냐?”라고 말합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내가 무엇이 필요한지 다 아시는데 부르짖어 기도할 필요가 있겠느냐?”라고 하지요.
   성경 어디에도 골방에 들어가 기도했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동산이나 빈 들에서 기도하셨지요(눅 6:12 ; 막 1:35). 베드로는 지붕에 올라가 기도하였고(행 10:9), 사도 바울은 기도처를 찾아 기도하였습니다(행 16:13).
   따라서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는 말씀의 참뜻은 중심 기도를 하라는 의미입니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으면 외부와 차단되기 때문에 조용하고 집중하여 기도할 수 있지요. 이는 다시 말해 우리의 모든 생각과 잡념, 세상의 근심 걱정을 버리고 마음 중심을 모아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만약 부르짖는 기도를 하지 않고 조용히 묵상 기도를 하면 중심 바쳐 기도하기가 어렵습니다. 밤에 조용히 눈을 감고 기도하다 보면 피곤이 밀려와 졸음으로 빠지기 쉽고, 세상 근심 걱정, 잡념과 싸우다가 지쳐 잠들기도 하지요.
   공중 권세 잡은 원수 마귀 사단의 진을 뚫고 하늘 보좌에 상달되는 기도를 하려면 간절한 중심으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 충만하고 시험 환난이 물러가는 등 크고 작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3. 믿음을 갖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성령이 임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인치십니다. 차츰 주일 성수와 기도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면 믿음이 자라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 각 사람의 믿음대로 응답하십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믿음으로 기도하면 그 믿음을 보시고 더 큰 응답으로 함께하시며 합력해 선을 이루어 주시지요.
   우리가 힘써 기도를 쌓아가면 하늘에서 오는 능력을 받아 죄악을 더 쉽게 버릴 수 있습니다. 나아가 말씀대로 행함으로 주님을 닮아가는 만큼 넘치는 축복을 받게 되지요. 이렇게 응답과 축복을 받기 위한 믿음을 갖는 데에는 자신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산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산 믿음은 행함이 따르는 영적 믿음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믿음을 갖고자 열심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 실천하며 기도해 나가면 하나님께서 마음에 믿어지는 산 믿음, 영적 믿음을 주시지요.
   이처럼 자신의 노력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 믿음이 합치될 때 즉시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 응답의 확신이 불일 듯 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믿음이며, 그러한 능력 있는 믿음이 임하면 이미 응답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말씀한 것처럼(막 11:24), 마음에 확신이 올 때까지 기도하여 믿고 구하는 것을 다 받는 복된 사람(마 21:22)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4. 목적 있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어떤 일에 목적이 분명하면 일을 더욱 힘있게 추진하며 더 빨리 성취할 수 있습니다. 반면 목적이 불분명하면 일의 방향을 잡지 못합니다. 조그마한 어려움이 와도 왜 그 일을 시작했는지 잊어버리고 주저앉고 말지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도 명확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담대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받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요일 3:21~22). 우리가 하나님 앞에 구할 때 얻고자 하는 목적이 분명하다면 더욱 간절함과 인내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책망할 것이 없는 우리 중심을 보시고 넘치도록 채워 주시기 때문입니다.
   
   
   5. 사랑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 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했습니다. 나의 기도가 응답되고 하늘나라에 상급이 된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기도하는 것이 피곤하거나 어렵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이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신 것처럼, 우리도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구할 수 있지요.
   우리가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면 자신보다 상대의 유익을 먼저 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의 기도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요, 섬기는 목자와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기도도 어떠한 마음을 품고 하느냐에 따라 다른 역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심령으로, 교회와 목자와 영혼들을 위해 올리는 것이 진실한 사랑의 기도입니다. 즉 영적인 사랑이 임하여 하나님 뜻을 깨닫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주인 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하지요. 예를 들어, 성전 건축을 위해 기도할 때 주님의 몸 된 성전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집을 짓는 것보다 더 마음과 정성을 다해 간구합니다. 성전 건축에 필요한 땅과 재정, 일꾼과 기술력 등 성전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모든 것을 조목조목 간절히 구하게 되지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모든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 열리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런 은혜를 입었으니 주님을 닮은 선과 사랑을 마음에 이뤄 항상 아름다운 기도의 향을 올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의 요령에 대해 써 보세요.
   첫째,
   둘째,
   셋째, 믿음을 갖고 기도해야 한다.
   넷째,
   다섯째, 사랑의 기도를 해야 한다.
   
   2.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기도한다는 말씀의 영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영적인 믿음’이란?
   
   무에서 유의 창조를 믿는 믿음으로, 자신이 배운 지식이나 생각에 맞지 않아도 하나님 말씀이라면 다 믿고 한 번 믿은 것은 현실과 조건에 상관없이 변개하지 않고 믿는 믿음이다. 또한 알고 있는 지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증거를 보이는 믿음이다.
지난 주 설교요약
2023-03-19 지옥 (7) - 이재록 목사 누가복음 16:22~26
지난 시간 아랫음부에 이어 오늘부터는 연령과 죄악의 경중에 따라 아랫음부에서 받는 형벌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영혼이 숨을 거두면 두 지옥 사자에게 이끌려 아랫음부의 대기 장소로 들어갑니다. 육의 몸을 벗은 영혼은 큰 구덩이 같은 곳에 던져져 3일간 적응 기간을 보내지요. 이때 흉측한 새들이 날아와 크고 날카로운 부리로 쪼아대면 눈알이 빠지기도 하고 살갗이 벗겨지기도 하면서 지옥이라는 암담한 현실과 마주합니다. 3일이 지나면 구덩이 안에 있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 각자 형벌 받는 장소로 가지요. 그리고 최후의 심판, 곧 백보좌 대심판을 받을 때까지 각자의 죄과에 따라 형벌을 받습니다.
   
   아랫음부에서 받는 형벌의 종류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몸이 썩어 들어가는 고통을 당하기도 하고 벌레에게 뜯기고 피 흘리기도 합니다. 새나 흉측한 짐승에게 사지를 찢기기도 하지요. 벌겋게 달궈진 바위에 짓눌린 영혼, 뜨거운 모래 위에 세워진 영혼도 있습니다. 활활 타오르는 불 속 또는 끓는 물이나 악취 나는 더러운 물속에 들어가 고문받는 영혼도 있지요. 보기만 해도 두려움에 몸서리쳐지는 지옥 사자들이 흉기로 고문하기도 합니다. 지옥 사자들은 형벌의 고통을 극대화하기 위해 온갖 고문 기법을 동원하지요.
   
   천국은 선하신 하나님께 속한 영역으로 행복만 가득한 곳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면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더 큰 행복을 줄까?’ 하고 선한 지혜를 총동원하여 아름답게 만드셨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지옥은 천국과 정반대로 고통과 괴로움만 가득합니다.
   특히 아랫음부는 악한 영들이 온갖 악한 지혜를 짜내어 고통과 괴로움을 주는 곳입니다. 물론 이곳도 하나님 주권 아래 있지만 직접 치리하시는 영역은 아니지요. 악한 영들이 권세 잡고 모든 형벌을 주관하도록 내어주신 영역입니다.
   
   
   1. 갖가지 악랄한 기법으로 영혼들을 고문하는 악한 영들
   
   아랫음부를 총괄하는 우두머리는 바로 하나님을 배신하고 악한 영의 머리가 된 루시퍼입니다. 그러므로 한 영혼이 아랫음부에 간다는 것은 곧 자비와 긍휼함이 전혀 없는 루시퍼의 손아귀에 전폭적으로 맡겨진다는 뜻이지요.
   하나님께서 사랑 자체라면 루시퍼를 비롯한 악한 영들은 악 자체입니다. 이들은 ‘어찌하면 더 심한 고통을 줄까?’ 하고 갖가지 악랄한 기법으로 영혼들을 고문하며 아랫음부를 공포의 도가니로 만들지요.
   이 땅에서 사람들이 사용하는 고문 기법이나 도구만 해도 그 종류가 다양하고, 보거나 듣기만 해도 매우 끔찍합니다. 인류 역사를 보면 지배국이 피지배국의 저항 세력이나 전쟁포로를 잔인하게 고문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독재 정권에 저항하다가 모진 고문을 받은 사람들도 수없이 많았지요. 특정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문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을 비롯한 순교자 중에도 극심한 고문으로 고통받다가 숨을 거둔 이들이 많습니다.
   영화 같은 영상물을 통해 고문 장면을 보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신경이 예민한 손톱 밑에 대바늘이나 날카로운 꼬챙이를 깊숙이 꽂습니다. 손톱과 발톱을 하나씩 뽑기도 하고 이를 뽑기도 하지요. 고춧가루 탄 물을 눈과 코에 들이붓고 자극적인 음식물을 다량으로 강제 주입하여 죽게 만들기도 합니다. 물에 강제로 얼굴을 들이밀어 숨이 막혀 죽을 지경까지 가게 했다가 다시 꺼내기를 반복하지요.
   새빨갛게 달군 인두로 몸 곳곳을 지지기도 하고 담뱃불로 지지기도 합니다. 심한 경우, 산 사람에게 기름을 뿌리고 불을 붙여 산 채로 태워 죽이는 경우도 있지요. 사람을 거꾸로 매단 채 몽둥이찜질을 해서 살과 뼈가 으스러지고 나중에는 창자가 몸 밖으로 흘러나오기도 합니다. 전기 고문으로 혈관이 터지고, 내장 기관이 타들어 가며, 말이나 차에 사람을 매달아 빨리 달리므로 살이 닳아 뼈가 하얗게 드러나지요. 여성들의 경우, 성(性)적으로 심한 수치와 모멸감을 주어서 육체는 물론 정신까지 학대하는 일들도 많다고 합니다.
   이러한 고문을 받고도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은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고백합니다. 평생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불행하게 살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사람들이 악을 행하도록 사주하는 존재가 바로 어둠의 영들입니다. 곧 원수 마귀 사단이지요. 그러니 이 땅의 사람들이 저지르는 악행만 보아도 아랫음부의 형벌을 관장하는 어둠의 영들이 얼마나 무자비하고 흉악할지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영적인 존재로서 사람의 지혜와 능력을 초월합니다. 그래서 이 땅의 사람들이 고안하는 방법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악랄한 기법으로 영혼들을 고문할 수 있습니다. 더 섬뜩한 것은 이들이 영혼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즐긴다는 것입니다.
   물론 아무리 악한 영들이 아랫음부를 관장하는 권세를 받았다고 해도 일정 수위 내에서만 고문할 수 있습니다. 지옥도 영계의 법칙에 따라 운행되는 곳이므로 영혼들의 죄과에 상응하는 형벌만 집행할 수 있지요. 따라서 악한 영들은 가능한 범위 안에서 고통을 극대화하기 위해 온갖 고문 방법을 고안해 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잔학성이 극에 달합니다.
   
   
   2. 아랫음부의 형벌을 집행하는 지옥 사자들
   
   아랫음부의 형벌은 악한 영 중에서도 지옥 사자들이 집행합니다. 이 지옥 사자들은 루시퍼의 하수인 같은 존재들이지요. 아랫음부를 총괄하는 루시퍼의 마음과 의지에 따라 아랫음부를 관장합니다.
   이들은 본래 하나님께서 지으신 천사들이었습니다. 루시퍼를 따라 하나님을 대적하고 타락한 하급 천사들이지요. 타락한 천사 대부분은 무저갱에 갇혀 있지만 일부는 아랫음부를 관리하며 고문하는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지옥 사자들은 죽은 영혼을 아랫음부로 끌어가는 사명을 맡는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아랫음부에 있습니다. 이들은 타락하기 전에 천상에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때는 매우 아름다운 형상을 입고 있었지만, 타락한 후에는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음산하게 변형되었습니다.
   지옥 사자의 형체는 전반적으로 시커멓고 그 얼굴은 사람과 비슷한 모양도 있고 갖가지 가증한 짐승의 탈을 쓴 모양도 있습니다. 저주받아 흉측하게 변형된 형상을 하고 있지요.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괴상한 색조와 무늬로 머리카락, 얼굴을 꾸미고 가증한 것들로 몸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무시무시한 철갑옷을 입고 군화를 신은 지옥 사자도 있습니다. 그 몸에는 닿기만 해도 베이고 찢길 듯한 고문 기구들이 달렸지요. 시퍼렇게 날이 선 칼이나 창, 채찍을 손에 든 경우도 있습니다.
   이들은 어둠의 권세를 가진 존재이므로 그 모습이 위압적입니다. 움직일 때도 강한 악의 기운이 느껴지는데 보기만 해도 두려움에 짓눌릴 정도이지요. 이 흉물스럽고 무서운 지옥 사자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고문입니다.
   지옥 사자들은 아랫음부에 떨어진 영혼들을 고문하는데 아직 말도 못 하는 어린 영혼이라도 예외 없이 혹독하게 다룹니다. 루시퍼의 마음을 그대로 전달받기 때문에 루시퍼의 극악함이 이들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물론 지옥 사자들은 아랫음부의 형벌 중에서도 주로 중한 형벌을 담당합니다.
   
   
   3. 어린아이들이 받는 형벌
   
   아랫음부의 형벌은 고통의 경중에 따라 크게 네 단계로 나뉩니다. 생전에 주님을 몰라 믿지 못했는데 양심 심판에도 통과하지 못해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이 비교적 가벼운 형벌을 받습니다. 예수님을 판 가룟 유다와 같이 양심에 화인 맞아 하나님을 대적한 영혼들은 가장 중한 형벌을 받지요. 몰라서 믿지 않은 것보다 알고도 믿지 않은 죄, 은혜를 받고도 배신한 죄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이 네 단계의 형벌에 관해 설명하기에 앞서 어린아이들이 받는 형벌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사춘기 이전에 죽은 아이들은 따로 분류되어 별도의 형벌을 받습니다. 네 단계의 형벌은 사춘기 이후의 사람들, 곧 성인들만 해당하지요.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가지실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주님께서 공중 강림하시면 33세로 환원됩니다. 어린아이도 성인이 되고 노년에 죽은 영혼들도 33세의 한창때 모습으로 변하지요. 그런데 아랫음부의 형벌은 왜 연령에 따라 구분될까요?
   지옥에 가는 영혼들은 죽을 때의 모습 그대로 영원히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로 죽었으면 어린아이로, 노년에 죽었으면 노인의 모습으로 세세토록 살아가지요. 이들에게는 영적인 생명이 없으므로 부활도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들도 구원받은 사람들이 입는 부활체와 유사한 개념의 ‘영적인 육’을 입습니다. 그래서 형벌을 받으면 그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지지요.
   
   비록 어린아이라 해도 구원받을 믿음이 없는 부모에게서 나고 자랐다면 구원받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양심 심판이 적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아이의 본성이 악하여 양심 심판마저 통과하지 못하면 그 영혼은 지옥으로 갑니다. 그러나 어른들보다 범죄한 일이 적으므로 형벌은 가벼운 편이지요. 어린아이들은 본능에 의해 공포와 배고픔, 통증을 느끼는 것이 곧 형벌입니다. 지옥 사자의 고문보다 가벼운 형벌이라고는 하나 어린아이로서는 참기가 심히 어려운 고통이지요.
   그중에서도 갓난아이들, 곧 말도 못하고 걸음마조차 못하는 연령대의 아이들은 분류되어 커다란 장소에 갇힙니다. 이들의 영혼은 이 땅에서 죽은 당시와 같이 어린아이의 형상과 의식이 있습니다. 아직 무엇을 지각할 수도 없고 스스로 걸어서 돌아다닐 수도 없지요. 엄마 아빠의 존재도 알지 못하며 지금 지옥에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본성을 따라 배고픔에 울어댑니다.
   이렇게 울어대면 지옥 사자들이 다가와 송곳과 같은 뾰족한 도구로 아이들의 배, 팔다리, 눈, 손톱, 발톱 등을 찔러댑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더 자지러지게 웁니다. 그곳이 순식간에 울음바다가 되지요. 지옥 사자들은 이런 모습을 보며 재미있어합니다. 심심하면 조그만 아기 하나를 집어 들고 그 몸에 바람을 불어넣습니다. 아기의 몸이 풍선처럼 부풀면 공 굴리듯 굴리면서 가지고 놀지요. 태아로 죽은 영혼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옥에 가는 영혼들은 아랫음부에 떨어지면서 옷을 바꿔 입습니다. 누더기를 입는데 여기저기 찢기고 더러운 것이 묻어서 낡은 걸레 조각에 가깝습니다. 천 조각으로 겨우 몸의 일부만 가린 경우도 있고 아예 벌거벗겨진 이들도 있지요. 마음이 악한만큼, 죄가 중한만큼 더 수치스러운 복장을 하는 것입니다.
   아랫음부에서는 자비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지옥 사자들에게 짐승, 혹은 벌레보다 못한 존재로 취급받습니다. 또 지옥에 간 사람들 자체가 악하니 조금이라도 고통을 덜 받으려고 옆 사람을 짓밟고 늘 욕하며 원망하지요.
   여러분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선한 마음, 하나님의 형상을 이뤄 이런 끔찍한 지옥이 아니라 아름답고 선한 천국에서 사랑받고 존중받는 하나님의 자녀들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3-03-19 욥기강해(39) - 허망한 말 - 이수진 목사 욥기 16:1-6
오늘은 허망한 말의 무익함과, 영적인 사람과 육적인 사람의 차이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허망한 말
   
   “욥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런 말은 내가 많이 들었나니… 허망한 말이 어찌 끝이 있으랴 네가 무엇에 격동되어 이같이 대답하는고”(욥 16:1-3)
   15장에서는 엘리바스가 말했고, 16장부터는 욥이 그 말을 받아서 다시 변론을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욥의 친구들이 욥에게 권면했던 말들은 욥도 이미 선진들로부터 들어와서 잘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욥은 왜 친구들을 번뇌케 하는 안위자라고 표현한 것일까요?
   안위란 “몸을 편안하게 하고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것”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에게 안위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욥을 혈기 나게 하고 속상하게 하며 번뇌케 만들 뿐이었지요. 친구들은 계속 말로 욥을 다그쳤기에 욥이 그 말을 들으면서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되니 머리가 더욱 복잡해졌던 것입니다. 그러니 친구들의 말로 인해 오히려 시달리고 괴로움을 당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믿음의 형제들 간에도 주의해야 할 부분입니다. 상대가 내 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내 말이 상대로 하여금 오해와 번뇌를 하게 만든다면 차라리 잠잠히 기다리는 편이 낫지요.
   
   “허망하다”라는 말은 “거짓되고 망령되다, 허무하고 어이없다” 또는 “허황되고 미덥지 아니하다”라는 뜻입니다. 욥은 왜 친구들의 권면을 허망한 말이라고 단정하는 것일까요? 이는 친구들의 행함이 본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주 안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진리 안에 살면서 본이 되는 사람이 전도를 하면 사람들이 쉽게 마음 문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또 축복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을 믿으면 축복을 받습니다.”라고 담대히 전할 수 있고, 이 말을 듣는 사람도 “당신을 보니 나도 교회에 가고 싶습니다.”라고 답을 하게 되지요.
   반대로 언어와 행실이 바르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사람이 전도를 한다면 “당신이나 좀 잘 믿으세요.”라고 비웃음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하는 헛된 말이 바로 허망한 말인 것입니다.
   
   욥은 친구의 말이 허망하다고 하면서, “네가 무엇 때문에 격동되어 이런 말을 하는가?”질문을 던집니다. 욥의 친구들이 무엇 때문에 이처럼 격동된 것일까요?
   먼저는 욥이 하나님 앞에 합당치 못한 말들을 했고, 이에 친구들이 열심히 권면했는데, 욥은 이를 무시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나쁜 하나님으로 매도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의롭다고 주장하니 친구들은 이러한 욥이 아니꼽고 싫기 때문에 점점 감정이 격해지면서 흥분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욥은 본인이 이처럼 원인 제공을 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왜 그처럼 감정이 나서 허망한 말들을 하느냐?”고 묻습니다. 게다가 욥 자신은 여전히 옳으며 온전하다고 믿고 있었으므로 친구들이 격동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되었지요.
   이렇게 대화 중에 상대가 격동한다면, 양쪽 모두에게 문제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원수도 사랑하라”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 하셨고,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항상 선을 좇으라” 말씀하셨습니다. 또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라” 말씀하셨지요. 이러한 말씀이 내 마음에 영으로 일구어졌다면 무슨 험담을 듣거나 오해를 받는다 해도 진리로 마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혹여 내게 잘못이 있어서 비방의 말을 듣게 되었다면 회개하고 돌이키면 되고, 애매히 그런 말을 들었다면 내가 진리를 어기지 않았으니 더더욱 평안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진리대로 하나님 앞에 기뻐하고 감사한다면 원수 마귀 사단이 물러갈 수밖에 없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므로 축복이 임하게 되지요.
   반대로 그러한 말로 인해 내 마음이 요동하고 감정이 뒤틀린다거나 실족한다면, 이는 내 안에 악이 있기 때문에 사단의 역사를 받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2. 서로 입장을 바꿔 보자고 제안하는 욥
   
   “나도 너희처럼 말할 수 있나니 가령 너희 마음이 내 마음 자리에 있다 하자 … 너희를 강하게 하며 입술의 위로로 너희의 근심을 풀었으리라”(욥 16:4-5)
   여기서 말을 짓는다는 것은 정작 행함은 없으면서 자기들의 생각 속에 소신껏 말을 지어낸다는 것입니다. 즉, 친구들이 욥의 편에서 생각하고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각 속에서 마음대로 욥을 질책했다는 의미입니다.
   욥은 친구들의 말이 자기와는 거리가 먼 얘기라고 생각하므로, 서로 입장을 바꿔 보자고 제안합니다.
   “만일 너희가 내 처지에 있고 너희의 악한 마음이 나에게 있다면 나도 그럴 듯한 말로 너희를 치며, 너희가 격동될 수 있는 말로 너희들에게 퍼부었을 것이며 너희들에게 머리를 흔들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욥은 오히려 그들에게 여러 가지 격려의 말로 힘과 위로를 주며, 근심을 덜어 주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예전에 욥에게 이러한 선의 행함이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입니다(욥 4:3-4). 욥이 연단받기 전에는 비록 영적인 행함은 아니었다 해도 육적으로는 선과 사랑을 베푸는 행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아, 너희들은 행치도 않으면서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이것저것이 잘못되었다 지적하고 있지만, 나는 행했기 때문에 너희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내가 시험을 받기 전이라면 너희를 강하게 할 수 있고 너희의 근심을 풀어 줄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욥의 편에서는 옳은 말을 하는 것 같지만, 이는 친구들을 더욱 격분하게 만들 뿐이었습니다. 친구들은 얼마나 격동이 심했는지 온몸을 떨고 머리를 흔들 정도였습니다. 친구들이 볼 때 현재의 욥은 그러한 말을 할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의 눈에는 욥이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 엉망진창이 되었는데, 회개하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께 변론하며 친구들을 업신여기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니 욥이 아무리 좋은 말을 한다고 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지요.
   
   욥은 자기가 옛날 같았으면 친구들을 강하게 할 수 있으며 근심을 풀어 줄 수 있었다고 하였는데, 이는 앞뒤가 안 맞는 말입니다. 자기 근심을 풀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 타인의 근심을 해결해 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러한 대화법이 얼마나 무익한지 알아야 합니다. 만일 욥과 같이 현재는 초라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나도 과거에 이런 사람이었다.”고 하면서 상대에게 권면이나 훈계를 한다면 오히려 비웃음거리가 되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술 담배를 하며 나쁜 언행으로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사람이 “나는 모태 신앙이고, 예전에는 성가대도 하고 주교사도 하면서 열심히 충성했다.”라고 말한다면 얼마나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모습입니까.
   이와 반대로, “내가 예전에 신앙생활을 잘할 때는 부유했었는데 신앙생활을 게을리 하고 세상에 빠지다 보니 결국 재산을 탕진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내 전철을 밟지 말고 신앙생활을 잘하시기 바랍니다.”라고 간증한다면, 이는 회개하는 자세이지요.
   이렇게 과거에 자신이 실패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면서 권면하면 상대에게도 은혜가 되고, 교훈과 유익을 줄 수 있습니다.
   
   
   3. 육적인 사람과 영적인 사람의 차이
   
   “내가 말하여도 내 근심이 풀리지 아니하나니 잠잠한들 어찌 평안하랴”(욥 16:6)
   흔히 남의 일은 쉬워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어떤 일로 고민하고 있으면 “아무것도 아닌 걸 가지고 뭘 그리 어렵게 생각하십니까. 이렇게 하시면 척척 해결됩니다!”라고 큰소리치는 것도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정작 본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 말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그런 사람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영적으로도 내가 하나님을 만난 체험이 없다면 상대에게 확신 있게 말할 수 없고, 내가 이루지 못한 것을 상대에게 이루라고 담대하게 말할 수는 없지요.
   욥도 예전에는 남을 강하게 해주고 근심을 풀어 주었으나, 지금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우치면서 자기 발견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욥이 존경받을 만한 위치에 있을 때는 그의 말이 사람들에게 먹혀들어가는 듯했지만, 지금은 친구들조차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욥 자체가 영이 아닌 육의 사람이므로, 막상 어려움을 당하니 입으로 악한 말을 쏟아냈고, 이로 인해 친구들은 욥을 아주 천한 사람으로 취급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육이란 변하고 썩어질 것이며 무익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참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연단을 허락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요 6:63)는 말씀처럼. 상대에게 변화와 생명을 줄 수 있으려면 먼저 내 마음이 진리로 채워져서 말에 영적인 권세가 따라야 합니다.
   
   육적인 사람은 어려움이 있을 때 잠잠히 견디지 못합니다. 감정이 꿈틀대고 잠도 오지 않으니, 결국은 상대를 찾아가 폭발해야 시원함을 느끼지요.
   그러나 영적인 사람은 사도 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백한 대로, 자기가 없으니 감정을 쌓아 둘 일도 없고, 오히려 상대에게 져줄 때 시원함을 느낍니다. 어려움이 왔을 때도 묵묵히 참고 견디며 기다릴 수 있습니다.
   또한 육적인 사람은 남의 허물에 대해서 들으면 잠잠하지 못하고 얼른 주변에 전해야 마음이 시원합니다. 육의 사람은 원수 마귀 사단의 음성을 들어 나가기에 악을 발함으로 사단을 시원하게 하니 내 마음도 시원해지는 것입니다.
   만일 영적인 사람이 혹여 남의 허물을 전한 일이 있었다면 마음이 시원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탄식 소리에 심히 곤고함을 느끼게 됩니다. 힘든 일을 만났을 때 주변에 하소연을 하면 속이 편안한 것이 아니라 곤고해지지요. 기뻐하지 못하고 불평한 것을 회개해야 편안해집니다.
   육적인 사람과 영적인 사람은 이렇게 정반대입니다. 그러니 영적인 사람이 되어 갈수록 성령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게 되며, 참된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되지요.
   
   욥은 영적인 사람이 아니었기에 잠잠하면 고통스러웠으며 악을 입 밖으로 쏟아내야 했습니다. 그래도 마음에 선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뿌린 말들로 인해 갈수록 곤고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입술로 부정적인 말을 심어 나가면 스스로 올무에 매이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잠언 13:2에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을 누리거니와” 말씀했고, 잠언 18:21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말씀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말씀을 명심하여 부정적인 말을 멈추고 진리 안에서 자꾸 긍정해 나가면, 상황을 유리하게 바꾸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입술을 제어하여 오직 긍정의 고백, 믿음의 고백, 선의 고백을 하는 지혜로운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3년 3월 19일 주일)
* 사회: 조혁희 목사
개회찬송 53장 1절
성시교독 44번
찬송 453장
기도 최영자 목사
성경봉독 누가복음 16:22~26
찬양 주님 주신 아름다운 세상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지옥(8)
당회장님
찬송 만민 찬양 174장
주일 저녁예배 (2023년 3월 19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장성식 목사
대표기도 류순주 전도사
성경봉독 욥기 16:7~9
특송 낸시 카푸르 집사(인도 델리만민교회)
설교 욥기 강해(40)-남의 탓으로 돌리지 말자
당회장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
수요 예배 (3월 22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정진영 목사
대표기도 정현진 목사
성경봉독 빌립보서 4:8~9
설교 육체의 결여(1)
이미경 목사
금요 철야예배 (3월 24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임학영 목사없음
- 은사집회 -
대표기도 이미영 목사
성경봉독 누가복음 7:36~38
찬양 샬롬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입 맞추니
당회장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
새벽 예배
인도 정규원 목사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3-03-19 2023년 3월 셋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새로 나오셔서 등록해 주신 분들과 인터넷으로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교회 소식

● 당회장님의 저서 「권능」이 아프리카 스와힐리어와 슬로바키아어 전자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 당회장님의 저서 <깨어라 이스라엘>과 <지혜>가 오디오북으로 발간되어 교보문고 종교부문 일간 베스트셀러 1위와 2위에 올랐습니다.

● 만민뉴스 한국어(989호), 영어(739호), 중국어(613호), 말레이시아어(20호) 신문을 온라인으로 발행하였습니다. (만민뉴스 홈페이지 www.manminnews.com)

● 당회장님 신앙칼럼이 「기독선교신문」, 「시사뉴스」 등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3월 은사집회」가 금주 금요 철야예배 시 당회장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님의 인도로 있습니다. 준비찬양은 오후 10시 40분부터 시작하며 실시간 간증접수를 받습니다.
(☎ 02-818-7300) 자세한 사항은 교회 홈페이지와 모바일앱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 2023년 제3회 정기 원로회가 오늘 저녁예배 후 오후 5시에 온라인으로 개최됩니다.

● 부활주일(4월 9일)을 맞이하여 학습 문답 및 학습식을 실시합니다.
학습 문답 대상자는 문답내용을 숙지하시고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학습 세례 문답서는 신학교 1층 우림북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 학습 문답: 3월 19일(주일), 3월 26일(주일) 오후 2시 3층 성전
※ 학습식: 4월 2일(주일) 오후 2시 3층 성전

● 「부활절 기념 달걀 꾸미기 콘테스트」를 여선교회 총연합회 주관으로 개최합니다.
참가하실 분들은 3월 19일(주일)~26일(주일)까지 교회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 대상: 국내 및 해외 지교회 성도(개인, 단체 가능)
※ 접수일시: 4월 6일(목) 오전 10시~오후 5시까지
※ 접수장소: 신학교 1층 회의실
※ 시상: 대상, 금상, 은상, 동상, 장려상, 인기상, 참가상
※ 문의: 여선교회 총연합회 (이옥주 권사 ☎ 010-5395-1762)

● 당회장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고) 교보문고, 영풍문고, 북스리브로, 예스24, 인터파크 등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자책(e-book) 및 오디오북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지교회 소식

구미만민교회(담임 최제수 목사) 창립 26주년 기념예배/ 3월 19일(주일) 오후 3시
※ 강사: 이미영 목사

속초만민교회(담임 박종대 목사) 창립 19주년 기념예배/ 3월 26일(주일) 오후 3시
※ 강사: 정철수 목사


● 기관 소식

청년선교회연합회
성령충만기도회/ 3월 19일(주일) 대예배 후 오후 1시 30분 사택 예배실
※ 인도: 만민기도원 이복님 원장


● 감사드립니다.

강단헌화/ 해외 지교회(꽃꽂이 봉사: 예배국 꽃꽂이부, 시설관리국)
주간 성경구절
2024-03-24
[주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 3:13]
2024-03-25
[월요일]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롬 5:7]
2024-03-26
[화요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2024-03-27
[수요일]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벧전 2:24]
2024-03-28
[목요일]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고후 1:5]
2024-03-29
[금요일]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히 5:8]
2024-03-30
[토요일]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히 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