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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공과
2020-06-26 제26과응답에 대한 영계의 법칙과 일곱 영 (1) 요한계시록 5:6
읽을말씀 : 요한계시록 5:6  |  외울말씀 : 야고보서 2:22 | 참고 말씀: 마태복음 21:22
교육목표 : 일곱 영이 측정하는 기준에 모두 통과함으로 응답과 축복을 받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믿음으로 기도하여 응답받을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1장 22절에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하여 하나님께서 모든 기도에 무조건 응답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인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응답도 반드시 공의에 맞게 하십니다.
   만약 공의의 법칙에 상관없이 모든 기도가 응답된다면 세상이 얼마나 혼란해지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경쟁 회사가 망하고 우리 회사만 잘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는데 응답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렇게 욕심과 악한 마음으로 하는 기도, 자기 유익만을 구하는 기도는 공의의 법칙에 맞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응답과 축복을 주심에 있어서 반드시 영계의 법칙에 맞춰서 공의에 따라 역사해 가십니다.
   
   
   1. 응답에 대한 영계의 법칙
   
   우리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공의의 법칙을 알아야 합니다. 자녀가 부모의 마음을 알아야 쉽게 응답받을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공의를 알아 합당하게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 마음이 담겨 있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응답받을 수 있는지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과 응답의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일곱 영입니다. 하나님 마음 안에는 여러 가지 속성이 있는데 그중에 일곱 가지 측면에서 살피시는 하나님 마음을 일곱 영이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일곱 영의 측정 결과에 따라 기도 응답의 여부를 결정하십니다. 여기서 일곱은 하나님의 영이 일곱 개라는 뜻이 아닙니다. 일곱은 영적으로 완전하다는 의미입니다.
   요한복음 4장 24절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말씀한 대로 하나님은 영 자체이십니다. 따라서 영 자체이신 하나님 마음을 일곱 영이라 한 것은 완전하신 하나님의 영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또한 조금의 실수나 착오도 없이 모든 것을 정확하고 완벽하게 감찰한다는 의미에서 일곱 영이라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5장 6절에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했습니다.
   완전한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온 땅의 모든 사람을 두루 살피며 항상 감찰하시는데 이때 하나님의 마음인 일곱 영을 보내십니다. 일곱 영을 통해 모든 사람의 마음과 행실을 살피심으로, 합당한 사람에게 응답과 축복을 주십니다.
   일곱 영을 이해하기 쉽게 비유하면 하나님 편에서 응답을 주기 위해 측정하시는 저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기나 야채 등을 살 때에 저울에 무게를 달아서 그에 해당하는 값을 치러야 하듯이 우리가 하나님께 응답받을 때도 일곱 영의 측정에 비춰서 응답받을 조건에 합당해야 합니다.
   
   
   2. 일곱 영이 측정하는 요소
   
   그러면 일곱 영은 무엇을 측정해서 응답의 여부를 결정할까요? 일곱 영은 사람의 모든 마음과 생각, 행실 등을 한 치 오차도 없이 측정하는데 일곱 가지 분야가 있습니다.
   
   첫째, 믿음을 측정합니다.
   성경에는 ‘믿음대로 되라’ 했습니다. 진정 마음에 믿는 참 믿음, 영적인 믿음으로 기도했다면 반드시 실상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나름대로 믿는다 고백하며 기도했는데도 응답이 없다면 영적인 믿음의 고백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머리에 지식으로만 담고 있는 육적인 믿음의 차원에 머물러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마음으로 믿는 것과 머리로 아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아무리 많은 말씀을 알고 믿는다 고백해도 정작 마음으로 믿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영적인 믿음으로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영적인 믿음이란 눈에 보이지 않고 사람의 생각이나 지식에 맞지 않아도 마음에서 의심 없이 믿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원한다 해서 마음대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악을 버리고 성결을 이루는 만큼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우리가 마음의 악을 버리며 기도할 때 위로부터 영적인 믿음이 오며 그 믿음대로 응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믿음에는 반드시 행함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지요.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말씀했습니다(약 2:22). 즉 말씀대로 살지 않는 건 죽은 믿음인 것입니다.
   믿음은 신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고 그 아들 예수께서 우리의 구세주 되심을 믿으며 장차 심판이 있을 것과,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이를 진정 믿는다면 삶이 변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땅의 헛된 것에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두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며 진리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변화될수록 믿음이 커지고 당연히 더 큰 믿음의 행함과 순종이 나옵니다. 일곱 영은 바로 이러한 것을 통해 ‘어느 정도 믿음이 있는가?’ 측정합니다. 믿음을 가장 먼저 측정하는 것은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다른 분야의 측정 기준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 분량의 믿음을 가진 사람과 장성한 분량의 믿음을 가진 사람에 대해 똑같은 응답의 기준을 적용한다면 어떠할까요?
   어린아이의 믿음을 가진 사람은 응답받기가 너무 어려워 아예 포기해 버릴 것입니다. 또한 장성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쉽게 응답받으므로 더 깊은 영의 단계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맞추어서 일곱 영이 측정하는 응답의 기준을 달리 정해 놓으셨습니다.
   
   둘째, 기쁨을 측정합니다.
   기쁨은 구원받은 하나님 자녀의 대표적인 증거입니다. 영원한 사망인 지옥에서 건짐 받아 천국에 가게 되었는데, 그 기쁨을 무엇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또 주님을 믿기 전에는 온갖 인생의 문제로 눈물, 슬픔, 고통에 싸여 기쁨이 없는 삶을 살았는데, 구원받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 천국 소망 가운데 살아가게 되니 당연히 기쁨이 넘칩니다.
   물론 ‘나는 하나님을 믿기 전에도 기뻐하며 살았습니다’ 말할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뻐할 만한 일이 있을 때만 기뻐하고 상황이 바뀌면 사라질 수 있는 기쁨이라면 참 기쁨이 아닙니다. 자신의 유익과 마음에 맞을 때라야 나오는 조건적인 기쁨도 마찬가지입니다.
   주 안에서 누리는 영적인 기쁨은 상황과 조건에 상관없이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고 천국에 대한 소망이 가득하기에 마음 중심에서 항상 샘솟는 기쁨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사자밥이 되면서도 기뻐하며 순교할 수 있었던 것처럼, 기쁨이야말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 된 징표요, 그리스도인을 구별하는 향기가 됩니다. 또한 기쁨은 믿음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으며 기도에 응답하실 것을 믿기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쁨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간혹 믿음이 있다 하는 사람 중에도 영적인 기쁨을 잃은 경우가 있습니다. 겉모습은 웃지만,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이 느껴지지 않지요.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열심이 사라지고 미지근한 신앙에 머무르거나, 성령의 소욕을 좇지 못하고 세상 것을 취하여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의 담을 만들면 영적인 기쁨이 사라집니다.
   그런 사람은 기도해도 오랫동안 응답이 지체되는데, 일곱 영이 기쁨을 측정할 때 합격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혹여 영적인 기쁨이 없다면 자신을 돌아보아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고 신속히 죄의 담을 헐어 버림으로 일곱 영의 측정에 합격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의 마음과 응답의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2. 일곱 영을 통해 모든 사람의 ( )과 ( )을 살피심으로, 합당한 사람에게 응답과 축복을 주신다.
   
   3. 일곱 영이 첫 번째로 측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39~53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성령의 소욕’이란
   
   선으로 악을 이기며 빛 가운데 거하는 진리의 미음이다.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좇고자 하는 것이 성령의 소욕이다.
   성령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마음에 거하시며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알려 주시고, 육체의 소욕을 좇아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진리로 행하도록 이끄신다. 곧 성령으로 영을 낳게 하는 것이다.
   성령의 소욕을 좇아 성령으로 영을 낳아가는 만큼 성령이 기뻐 하시므로 마음에 평안과 즐거움이 임한다. 반대로 육체의 소욕을 좇으면 성령께서 탄식하시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잃게 되고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할 힘도 점점 약해진다.
지난 주 설교요약
2020-06-21 마음밭을 개간하자 (5) - 이재록 목사 마태복음 13:3~9
오늘은 가시떨기밭의 특징과 가시떨기가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경우및 가시떨기밭을 개간하는 방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농촌에 가 보면 잡초 하나 없이 잘 가꿔진 밭이 있는가 하면 잡초가 무성해서 잡초밭인지 채소밭인지 구분이 잘 안 되는 밭도 있습니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올까요? 십중팔구는 주인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차이가 생길 것입니다. 잡초 하나 없는 논밭으로 가꾸려면 찌는 듯한 한낮은 물론 이른 새벽 이슬을 털며, 어둑어둑한 밤이 되도록 일해야 합니다. 고생스럽지만 이렇게 가꾼 논밭은 그러지 않은 논밭과 수확량 자체가 다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마음밭은 어떻습니까? 잡초가 무성해서 싹이 잘 자라지 않고 열매도 맺지 못하는 밭은 아닌지요? 만약 그런 분이 있다면 이 시간을 통해 마음밭의 잡초를 다 뽑아내시기 바랍니다. 마음밭을 부지런히 경작해서 이 땅에서 부유한 삶을 사시고 천국에서도 큰 영화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1. 가시떨기밭의 특징
   
   마태복음 13장 7절에 씨를 뿌리는 자가 씨를 뿌리니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했습니다.
   가시떨기란 가시나무의 한 뿌리에서 여러 줄기가 나와 더부룩하게 된 그 전체를 가리킵니다. 씨가 길가에 떨어지면 아예 싹이 나지 않고 돌밭에 떨어지면 싹이 나도 이내 말라 죽습니다. 이와 달리 씨가 가시떨기에 떨어지면 싹도 트고 싹이 어느 정도 자라납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열매를 맺지는 못합니다. 가시떨기에 막혀 더 이상 자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라 하셨습니다(마 13:22). 길가밭은 말씀 자체를 받지 못하고 돌밭은 말씀을 들으면 깨닫기도 하고 은혜도 받지만 말씀을 행하지는 못하지요.
   반면에 가시떨기밭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믿고 행하기는 하지만 온전하게 행하지 못합니다. 마음에 가시떨기 즉 세상 염려와 재리 곧 재물이나 명예, 권세 등에 대한 탐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대로 산다고 하는데도 여전히 시험, 환난 속에 살아갑니다. 가정, 물질, 건강 문제 등 가지가지 어려움 속에 살아가지요. 마음에서 가시떨기를 걷어내고 말씀을 제대로 행해야 영육 간에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2. 가시떨기가 열매 맺지 못하게 하는 경우
   
   1) ‘세상 염려’라는 가시떨기가 말씀이 자라지 못하도록 막는 경우
   하나님의 전에서 안식일을 지키면서도 집안일, 사업터 걱정, 내일 출근할 걱정 등 육의 일들에 대한 염려가 끊임없이 밀려온다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위로를 얻고 새 힘을 얻어야 할 텐데 근심만 더 늘어납니다. 그러면 아무리 오랜 세월 주일을 교회에서 보낸다고 해도 주일을 지킬 때 주시는 참 기쁨과 평안을 맛볼 수가 없지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면 영혼이 잘되고 복이 임할 텐데 이런 복이 온전히 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주신 이유는 자녀들이 주 안에서 참 안식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믿음으로 세상일을 다 아버지 하나님께 맡기고 영육 간에 평안과 기쁨을 누리기 원하시지요. 이런 하나님의 뜻에 맞게 안식일을 지킬 때 안식일을 온전히 지켰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평소에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하며 충성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행하느냐에 따라 그 행함이 축복의 열매로 맺힐 수도 있고 맺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사업이 바쁜데, 공부하느라 바쁜데, 집안일이 많은데’ 하고 염려 가운데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수가 없지요. 몸과 마음, 시간과 재능, 물질 등 무엇을 드리든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어떤 마음으로 말씀을 행해야 할까요? 마태복음 6장 31~34절에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말씀하셨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이든지 믿음으로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 하나님께서 나의 일을 책임져 주신다는 믿음, 소중한 것을 드릴 때 더 귀한 것으로 갚아 주신다는 믿음으로 행해야 하지요. 그러니 ‘세상 염려’라는 가시떨기를 뽑아버리고 온전한 믿음으로 말씀대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2) ‘재리의 유혹’으로 인해 말씀의 싹이 자라지 못하는 경우
   마음에 재리 곧 재물이나 명예, 권세 등 세상적인 이익에 대한 탐심이 있으면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할 수 없습니다. 쉽게 유혹에 넘어가서 하나님 뜻대로 행하지 못하지요. 예를 들어 물질의 축복, 건강의 축복을 받아 영광 돌리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원하여 기도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는 대로 순종하고 계십니까? 아무리 순종할 마음이 있어도 육신의 생각이 가득하면 말씀대로 온전하게 순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A라는 길을 제시해 주셨는데 B라는 엉뚱한 길로 가지요.
   육신의 생각은 대개 짧은 시일 내에 많은 것을 거두고 싶은 욕심에서 비롯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자녀들이 정도를 걷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물론 이 세상의 법도 지키라고 말씀하시지요. 그러나 세상에서는 어느 정도 법을 어김으로써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다고 합니다. 이는 인간적인 생각에 불과하며 믿음의 눈으로 볼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법망은 어떻게 벗어날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세우신 영계의 법망은 결코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눈을 가릴 수도 없지요. 따라서 영계의 법을 우선적으로 지켜야만 모든 일이 형통하고 축복이 임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지혜로운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이 가장 빠른 지름길이요, 많은 열매를 낼 수 있는 확실한 길이지요. 이를 믿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정도를 걸으면 반드시 믿음의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재리에 대한 탐심을 버리면 이런 명철의 길이 밝히 보입니다. 탐심으로 인해 육신의 생각이 발동하고 육신의 생각이 눈을 가리기 때문에 불통의 길로 갑니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어느 정도 성공할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온전한 축복을 받을 수는 없지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모든 일을 자기 생각대로 해 놓고 어느 정도 잘되자 축복받았다고 간증합니다. 그런데 이 일이 계속 잘되려면 계속해서 육의 지식과 세상 방법을 의존해야만 합니다. 불법을 행해야 할 때도 있지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수 없기 때문에 형통하지 못합니다. 쌓았던 모든 것이 순간에 허물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자기 생각대로 행했기 때문에 오히려 영광을 가리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가시떨기밭을 가진 자녀에게는 원하는 대로 축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먼저는 마음에서 ‘탐심’이라는 가시떨기를 걷어내고 하나님의 뜻에 무조건 순종할 수 있을 때 원하는 대로 축복을 주시지요.
   하나님의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인정받고 성도에게 사랑받는 일꾼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며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신 대로 섬겨야 합니다(막 9:35). 그런데 마음에 사심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방법을 동원해서 스스로 높아지려고 합니다.
   가령, 육적인 지혜로 하나님의 일을 합니다. 맡은 양 떼를 육적인 선으로 갈무리하기도 하지요. 이렇게 하면 당장은 양 떼들이 마음을 잘 모아 주는 것 같고 하나님의 일이 척척 이뤄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렇게 얻은 열매는 파도가 한번 밀려오면 모래성이 무너지듯 순식간에 무너지고 맙니다. 성령의 음성을 좇아 사명 감당한 것도 아니고 영적인 사랑과 섬김을 베푼 것도 아니기 때문이지요.
   영혼들이 작은 일로도 쉽게 돌아서고 강압적으로 이끌지 않으면 순종하지 않기도 합니다. 또 일꾼 편에서도 나름대로 양 떼를 섬긴다고 하다가도 감정이 상하면 혈기가 나오는 등 결국 육의 모습을 드러내고 말지요. 아무리 선한 것처럼 행동해도 마음에서 사심을 버리지 않았다면 결국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3. 가시떨기밭을 개간하는 방법
   
   1) 마음밭에서 가시떨기를 발견하여 뿌리째 뽑아버려야 합니다
   가시떨기는 육신의 생각들을 의미합니다. 그 뿌리는 마음의 악 그리고 육을 의미합니다. 즉 마음에 있는 악과 육이 육신의 생각의 근원이라는 말이지요. 가시떨기의 가지만 쳐내면 뿌리에서 또다시 돋아납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육신의 생각을 하지 말아야지’ 해도 마음에 악이 있으면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궁극적으로 마음에서 육을 뽑아버려야 하지요.
   
   2) 먼저 굵직한 뿌리를 뽑아내면 잔뿌리까지 뽑혀 나옵니다
   여러 뿌리 중에서 특히 ‘탐심’과 ‘교만’이라는 두 개의 큰 뿌리를 뽑아내면 마음에서 육이 많이 버려집니다. 육의 것에 대한 탐심이 있기 때문에 세상에 얽매여 세상일을 염려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고 하면서도 무엇이 더 유익이 되나 계산하고 따져서 자기 뜻대로 살아가지요. 또 교만이 있기 때문에 온전한 순종이 나오지 않습니다. ‘내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육적인 지혜를 동원하고 육신의 생각을 좇아가지요.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사심’이라는 뿌리, ‘교만’이라는 뿌리를 뽑아내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가시떨기를 쉽게 뽑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가시가 나를 얼마나 아프게 하는지 깨닫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물질, 명예, 권세를 갖지 못해 근심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아무리 많이 가져도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이처럼 마음을 힘들게 하는 가시떨기를 왜 계속 가지고 있어야 하나?’ 궁구하며 여러분이 늘 말씀을 묵상하고 깨어 기도하면 성령께서 이것을 절절히 깨닫게 하십니다. 절실히 깨달으면 미련 없이 가시떨기를 뽑아버릴 수 있지요. 그러면 말씀의 싹이 무럭무럭 자라 열매를 맺으니 참된 행복이 찾아옵니다.
   여러분이 진정 사모하고 욕심 낼 곳은 천국이며, 가장 좋은 천국인 새 예루살렘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뒤를 돌아보지 마시고 진주문을 향해 곧장 달려가 최고의 행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0년 6월 21일 주일)
* 사회: 조대희 목사
개회찬송 34장 1절
성시교독 42번
찬송 495장
기도 이성숙 목사
성경봉독 마태복음 13:3~9
찬양 구주를 생각만 해도(영상)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마음밭을 개간하자(6)(영상설교)
당회장님
찬송 만민 찬양 75장
주일 저녁예배 (2020년 6월 21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임학영 목사
대표기도 김일선 권사
성경봉독 히브리서 10:22
특송
설교 온전한 믿음(영상설교)
당회장님
수요 예배 (6월 24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이석규 목사
대표기도 박금미 전도사
성경봉독 에스겔 47:1~5, 출애굽기 20:8, 말라기 3:8
설교 믿음을 척량하시니(6)(영상설교)
당회장님
금요 철야예배 (6월 26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차전환 목사없음
대표기도 강영식 목사
성경봉독 요한계시록 2:11~17
찬양 샬롬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영상)
설교 요한계시록 강해-버가모 교회①(영상설교)
당회장님
새벽 예배
인도 당분간 없습니다.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0-06-21 2020년 6월 셋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새로 나오셔서 등록해 주신 분들과 인터넷으로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당회장님 소식

● 당회장님 외국어 저서 「사랑은 율법의 완성」 보스니아어(582번째), 이탈리아어(583번째)와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네덜란드어(584번째)가 발간되었습니다.

● 당회장님 신앙칼럼이 「크리스챤신문」, 「크리스챤월드리뷰」, 「기독선교신문」과 「중앙일보」, 「동아일보」, 「시사뉴스」 등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교회 소식

● 만민뉴스 한글(922호), 중국어(547호), 영어(672호) 신문을 인터넷(PDF)으로 발행하였습니다.
(만민뉴스 홈페이지 www.manminnews.com)

● 당회장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조) 교보문고, 영풍문고, 반디 앤 루니스, 북스리브로, 예스24, 알라딘, 인터파크 등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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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성경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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