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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공과
2020-12-18 제51과준비된 자 디모데후서 2:20~21
읽을말씀 : 디모데후서 2:20~21  |  외울말씀 : 디모데후서 2:21 | 참고 말씀: 에베소서 6:12, 고린도전서 4:20
교육목표 : 말씀과 기도로 그릇을 잘 준비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귀히 쓰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디모데후서 2장 20절에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했습니다. 이처럼 그릇의 종류도 많고 크기도 다양한 데 주인은 어떤 것을 골라 쓰겠습니까?
   일단 용도에 맞아야 하고 주인의 손에 잘 맞는 그릇이면 좋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주인의 손에 맞고 용도에 맞아도 깨끗하지 않으면 쓸 수가 없습니다.
   이런 조건들은 영적으로도 동일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준비된 그릇이 되어 하나님 나라에 귀히 쓰임 받을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준비된 그릇이란?
   
   영적으로 용도에 맞는 그릇이 된다는 것은 각 분야에서 쓰임 받기 합당한 자질을 갖춰야 한다는 말입니다. 주의 종이면 주의 종, 교사면 교사, 찬양 사역자면 찬양 사역자의 자질을 갖춰야 합니다. 기술직이라면, 더 나은 기술들을 쌓아가며 하나님의 나라에 잘 적용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물론 어떤 사명이든지 가장 기본적으로는 영적인 자질을 먼저 갖춰야 합니다. 곧 말씀을 무장하고 기도를 쌓아야 하지요.
   다음으로, 주인의 손에 맞는다는 것은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달란트가 뛰어나고 능력이 있어도 순종하지 않으면 쓰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동으로 가는 것인데 자기 뜻대로 서쪽으로 간다면 하나님의 일이 이뤄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준비된 그릇의 가장 중요한 자격은 깨끗한 그릇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깨끗한 그릇이란, 마음의 악을 버리고 성결된 사람을 말합니다. 물론 기왕이면 많이 담아지는 큰 그릇이 좋고, 귀한 금그릇이 좋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귀하고 큰 그릇이라도 씻지 않아 더럽다면 쓸 수가 없습니다. 성결되어 깨끗한 그릇이 되는 만큼 사명 감당할 능력도 더 받을 수 있고, 순종도 더 온전히 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하였고, 고린도전서 4장 20절에는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능력과 지혜로 ㅇㅣ루는 것이 아닙니다. 원수 마귀 사단과의 영적인 전쟁이므로 영적인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힘과 능력은 죄를 버리고 성결된 만큼 임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성결되어 영적인 힘이 있는 일꾼들을 항상 찾으십니다.
   
   
   2. 성결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만 더딘 이유
   
   성결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연히 이뤄야 할 본분입니다. 특히 직분을 맡은 일꾼이라면 성결에 대한 사모함이 더욱 간절하지요. 그런데 사람마다 나름대로 기도하고 금식하며 노력한다 했는데 더디 이루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구체적이고 지속적으로 노력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막연하게 성결되고 싶을 뿐, 낱낱이 자신을 해부하여 죄를 버리는 작업은 하지 않은 것입니다. “성결되게 해 주세요, 죄 버리게 해 주세요, 선한 마음을 주세요.” 하면서 막연하게 기도한다면 변화가 늦습니다. 어떤 죄가 있고 어떤 악한 마음이 있는지 조목조목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습관적으로 입술로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찢으며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내 안에 육의 속성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싫게 여겨져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번에는 비슷한 상황이 와도 절대로 같은 잘못을 하지 않기 위해 늘 근신하고 절제해야 합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하나하나 버려 나가면 한 달, 두 달 지날수록 모습이 달라집니다. 어떤 경우는 구체적으로 발견한 것에서 그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발견해서 버리기로 했으면 끝을 보아야 하는데, 버리는 작업을 어느 정도 하다가 맙니다.
   어떤 계기로 모르고 있던 자신의 비진리를 발견한 것도 큰 은혜입니다. 더 나아가 왜 그런 비진리가 자기 안에 심어졌는지 성령께서 과거를 떠올려 주시며 깨닫게 하실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영적인 깨우침이 올 때나 또 그것을 회개할 때는 성령이 충만해집니다. 마치 그 순간에 다 버리고 변화된 것 같지요.
   그러나 한 번 회개했다고 버려진 것은 아닙니다. 잡초를 제거할 때 뿌리를 남겨두면 금방 다시 자랍니다. 죄성도 발견하여 한 번 회개한다고 해서 그것으로 다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근본의 죄성까지 뽑아야 하지요. 다 뽑아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자신을 점검하며 기도해 나가야 합니다. 발견되는 것이 너무 많다면 그중에 큰 뿌리부터 먼저 뽑아야 합니다. 큰 뿌리가 뽑힐 때 많은 잔뿌리도 함께 뽑혀나가지요. 자기 안에 가장 크고 버리기 어려운 것 몇 가지만 집중적으로 버리면 됩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쉽게 버려나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이 없으면 점차 신앙이 정체되기 쉽습니다. 늘 준비하려고만 할 뿐, 막상 준비된 자로서 세워질 수 없습니다.
   
   둘째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는 자신에게 어떤 비진리가 있는지 잘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비진리의 마음을 진리로 포장하여 스스로도 속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기의 의와 틀을 깨지 못하므로 자신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자기가 잘한 것만 생각하고 잘못한 것은 덮고 넘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 일꾼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뜨거운 열정으로 어떤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화평을 깨는 일이 생겼지요. 내 고집과 자기주장이 상대에게 부딪힐 원인을 제공한 것입니다. 이럴 때도 자기 틀과 의가 있으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그랬으니까, 내가 화평을 깨려고 한 것이 아니니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화평을 깨지 않으려는 마음이라면, 자기가 더 옳다고 해도 상대의 마음에 맞춰 줍니다. 때론 자신이 손해를 본다 해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한다 해도 상대가 말하는 것을 들어주지요. 더구나 윗사람이 지시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죄를 지으라는 명령이라면 순종할 수 없습니다. “비진리가 아니고 죄가 아니라면” 먼저 상대의 입장을 배려해 주라는 것입니다.
   
   내가 더 옳기 때문에 상대를 무시하는 것은 결국 “화평을 깨도 좋다”는 마음입니다. 또한 내가 너무나 이것이 하고 싶기 때문에 윗사람이 “그러지 말라” 해도 여전히 자기 원하는 대로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히려 윗사람이 자신을 힘들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도 화평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화평을 떠나서 기본적인 질서조차 지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은 여전히 변명만 합니다. “내가 화평을 깨려고 한 것이 아니다”, “나는 정말 화평하고 싶지만 상대에게 맞춰 줄 수는 없다” 합니다.
   이는 진실한 태도가 아닙니다. 물론 머리로는 화평을 원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마음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하기 위해서는 화평을 깨도 할 수 없다”라는 마음입니다. 행함과 진실함으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말과 혀로만 원하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나는 화평하려고 했다”고 스스로를 좋게만 생각하므로 신속하게 성결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6장 8절에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 성결된 사람을 찾고 찾으십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은혜를 사모하고, 불같은 기도를 통해 발견된 모든 비진리의 뿌리까지 뽑아냄으로 하나님 나라에 귀히 쓰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준비된 그릇이란 어떤 그릇을 의미할까요?
   1. ( )에 맞는 그릇이다. 이는 각 분야에서 쓰임 받기 ( )을 갖춘 사람을 말한다
   2. 주인의 손에 맞는 그릇 곧 ( )하는 그릇이다.
   3. 준비된 그릇의 가장 중요한 자격은 ( ) 그릇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 금주 과제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감사의 향 올리기.
   
   
   ● 알고 넘어갑시다!
   
   그릇의 크기와 재질
   
   그릇의 재질은 사람의 중심과 연관되며, 그릇의 크기는 진리에 속한 것을 얼마나 많이 담을 수 있는지와 상관이 있다. 그릇의 크기에 따라 얼마나 더 큰 일을 감당할 수 있는지가 정해진다.
   그릇은 타고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인의 노력으로 변화될 수 있다.
   태어날 때부터 그릇의 재질이 좋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일구는 것이 더 수월하므로 믿음의 성장이 빠르다.
   그러나 타고난 그릇이 작거나 재질이 좋지 않다 해도 노력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다. 성결을 이루어 곧 깨끗한 그릇이 되어 주인에게 쓰임 받을 수 있고, 또 마음 씀을 넓히고 그릇을 키워 더 큰 일들을 감당해 갈 수 있다. 하나님 말씀을 양식 삼아 비진리를 버리고 진리로 채우는 만큼 그릇의 재질도 바뀔 수 있다.
지난 주 설교요약
2020-12-13 천국 (19) - 천국 생활④ - 이재록 목사 요한계시록 21:3~4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천국에서의 통신 방법과 예배, 그리고 교육 생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장차 영원히 살아갈 천국은 눈물이나 사망, 애통, 아픔 등이 없으며 기쁨과 행복과 즐거움만 있습니다. 이러한 천국 생활의 행복과 기쁨을 이 땅에서도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지요.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가질수록 이 땅에서도 천국의 행복과 기쁨을 맛보며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심령 천국을 이룬 만큼 천국에서도 더 좋은 처소에 들어갈 것이니 장차 누릴 천국 생활과 현재 자신의 영적인 생활 수준이 별개가 아닙니다.
   
   
   1. 천국에서의 통신 방법
   
   천국에서는 어떤 기계나 장비를 이용하여 서로 연락하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새 예루살렘에서는 영과 영이 밝히 통하므로 약속이나 모임을 갖고자 할 때 길게 설명하지 않고 몇 마디만 해도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아무런 오해 없이 정확하게 이해합니다.
   이 땅에서는 두 사람이 “00 정문에서 00시에 만납시다.” 하고 약속했을 때 후문이 정문인 줄 알고 후문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의든 타의든 약속 시각보다 늦게 나타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새 예루살렘에서는 “어느 지점에서 언제 만나자.”라고 한 번만 얘기하면 생소한 장소라도 정확히 주관받아 찾아갈 수 있고, 또한 천사의 인도를 받아갈 수도 있지요. 이처럼 천국에서의 삶은 마음먹은 대로 이뤄집니다.
   새 예루살렘의 성도들은 ‘새 예루살렘’이라는 공간에 들어가면서부터 갑자기 이렇게 된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살 때도 한번 약속하면 변개함 없이 지켰고, 시간 약속도 잘 지키는 것이 몸에 배었으며 어떠한 경우에도 실례하지 않고, 먼저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 생활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개인적인 만남뿐 아니라 소규모 모임을 가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몇몇 성도들이 “주님 집 정원의 가장 아름다운 꽃이 있는 곳에서 만나요.” 하고 약속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새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은 어떤 꽃이 가장 아름다운지를 모두가 같이 느끼고 주관받기 때문에 아무리 주님 집의 정원이 넓다 해도 정확하게 그 장소를 찾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1천층 성도의 경우에는 “주님의 집에 있는 여러 정원 중에서 어떤 정원에 이런 빛깔과 향을 내는 꽃이 있으니까 그 꽃을 찾아서 오세요.” 하고 알려줘야만 찾아갈 수 있지요. 그러니 1천층의 성도들은 새 예루살렘에 함께 살라고 해도 영으로 잘 통하지 않고 알아듣기도 어려우니 답답하고 불편한 것입니다.
   이처럼 새 예루살렘의 성도들은 마음 자체에서 내비게이션의 역할이 자동으로 이뤄지지만, 낮은 처소의 성도들일수록 마음에서 주관받는 정도가 희미하므로 일일이 물어보고 확인해야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이 땅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으로만 알고 있는 성도와 지식으로도 알지 못하는 성도, 영으로 일군 성도가 각각 하나님의 뜻을 좇고 순종하는 정도는 모두 다르지요.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자 하는 마음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더라도 하나님 말씀을 지식으로도 알지 못할 때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며 살면서도 자신이 그런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예를 들어, 간혹 초신자들이 성령이 충만하여 3일 금식 후 곧바로 일반 음식을 마음껏 먹었는데도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간증을 합니다. 이는 초신자라서 보호식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지켜 주신 것이지요. 그러나 보호식에 대해 알고 있는 믿음 있는 성도가 금식 후 보호식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얼굴이 붓거나 위(胃)에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이를 계기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일단 조금씩 알아가는 성도들은 아는 만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성도라 해도 얼마나 마음을 영으로 일궜느냐에 따라서 순종의 정도가 차이 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온전히 영으로 일군 경우에는 하나님의 명(命)이 사람의 지식이나 이론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것이라 해도 마음의 주관을 따라 그대로 순종합니다.
   하지만 마음을 영으로 일군 정도가 부족할수록 육적인 지식들이 생각으로 먼저 작용하여 마음에 주관 오는 것을 행치 못하도록 막습니다. 또한 영의 마음을 가진 성도들에게는 하나님 뜻과 마음에 대해 몇 마디만 일러 줘도 이해하며 마음을 같이하지만, 육의 마음을 가진 성도들에게는 혹여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오해하지 않도록 하나님 뜻에 대해 상세히 일러 줘야 합니다.
   
   이러한 원리는 천국에서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가령, 새 예루살렘의 성도들이 있는 곳에 1천층의 성도가 함께 있다면 그는 새 예루살렘 성도들의 대화를 잘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런데 새 예루살렘의 성도들은 함께한 성도를 소외시키지 않기 때문에 그를 위해 자세하게 설명하게 되지요.
   어쩌다 한 번씩 있는 일이라면 괜찮겠지만, 항상 이와 같다면 피차간에 불편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두에게 최고의 행복과 평안함을 주기 위해 믿음의 분량에 따라 천국의 처소를 구분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새 예루살렘에 가고 싶다 해도 중요한 것은 새 예루살렘의 삶에 적응할 수 있는 영적인 자질을 이 땅에서 온전히 갖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천국에서의 예배
   
   천국에서도 일정한 시간에 예배를 드립니다. 물론 설교는 하나님께서 하시는데 그 설교를 통하여 하나님의 근본과, 태초부터 영원까지의 영의 세계에 대해서도 자세히 배워 나갑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도 듣지만 때로는 하나님과 대화하는 시간도 있고 주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도 있습니다. 기도하는 시간도 있는데 천국에서는 이 땅에서처럼 무릎을 꿇고 힘쓰고 애써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주님, 성령님과의 대화가 곧 기도이지요. 또한 천국에서는 이 세상의 언어가 아니라 천국에서의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 땅에서 한 교회를 이루었던 성도들은 자신들이 섬겼던 목자를 중심으로 함께 예배를 드리기도 하고 정겨운 교제를 나누기도 합니다. 함께 신앙생활을 하며 어려운 연단의 시절을 이겨낸 성도들은 천국에서도 사이가 각별하여 늘 함께하며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마다 믿음의 분량대로 거할 천국의 처소가 다른데 어떻게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요? 특별히 자신이 거하는 처소보다 높은 처소에 있는 예배에 참석할 때는 그곳에 합당한 옷으로 갈아입습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날 어떤 행사나 사건이 인공위성을 통해 생중계로 전 세계에 동시에 보도될 수 있는 것처럼 천국에도 이러한 시스템이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에서 드리는 예배가 생중계되므로 다른 처소에서도 함께 동참할 수 있지요.
   
   천국의 방송 시스템은 이 땅에서처럼 복잡한 기계나 장비가 동원되는 것이 아니며, 천사들이 하늘에 천과 같은 것을 펼치기만 하면 화면이 됩니다. 천국에서의 화면은 각 처소에 따라 조명과 색상이 가장 알맞게 조절되기 때문에 어느 처소든지 화면 영상이 생생하여 마치 실제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각 처소에 따라 빛이 조절되는 이유는, 만일 새 예루살렘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모습을 조절 없이 그대로 내보낸다면 3천층 이하의 성도들은 너무나 눈이 부셔서 화면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비록 새 예루살렘에 들어오지 못한 성도들이라도 하나님께서는 화면을 통해서 하나님의 모습과 새 예루살렘의 전경을 보여주기 원하시기 때문에 낮은 처소의 화면일수록 빛의 세기를 줄여야 하지요.
   각 처소에 알맞게 빛의 세기를 조절한다 해도 2천층 이하의 성도들은 스스로의 양심 속에서 화면에 나오는 하나님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특히 낙원에 들어간 성도들의 경우는 심히 민망하여 하나님의 얼굴이 화면에 나오면 힐끗힐끗 한 번씩 화면을 쳐다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예배 외에도 주님과 성령님, 그리고 모세나 바울 등 믿음의 선진들을 초청하여 예배를 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계의 질서에 따라 격에 맞게 초청이 이루어지기에 존귀한 분들을 초청하려면 그만한 영적인 자격이 있어야 합니다.
   
   
   3. 천국에서의 교육 생활
   
   인간 경작을 받는 동안 이 땅에서도 영적인 것을 많이 배우지만 장차 천국에 들어가면 또다시 새로운 세계에 대해 배웁니다. 이 땅에서 배우는 것은 영적인 훈련에 불과하고 진정한 배움은 천국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무궁하기에 아무리 많이 배운다 해도 태초부터 계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하여 온전히 다 배울 수는 없으며, 영원 전부터 스스로 계셔서 영원까지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깊이를 다 알기는 어렵지요. 우리가 무한한 영적인 세계에 들어가면 진정 배워야 할 것들로 가득함을 실감하며 그 배움은 이 땅에서와 달리 즐겁고 재미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또한 천국에서의 배움은 의무적인 것이 아니고 시험을 치르는 것도 아니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없고 한번 들으면 많은 것이 깨달아지며, 한 번 배운 것은 영원히 잊지 않으므로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더욱이 천국에서 영의 지식을 배울 때는 그냥 앉아 말씀만 듣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대형 입체 영상이 펼쳐지며 음향도 뛰어나 실제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는 하나님의 근본의 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빛이 생성되고 빛과 어둠이 나뉘는 장면이나 물 가운데 궁창이 생김으로 물과 물이 나뉘는 장면이 눈앞에서 펼쳐진다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받게 될 것입니다. 창조의 역사를 베푸신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올릴 뿐이지요. 이처럼 천국에서는 흥미진진한 배움이 계속되니 지루하거나 따분할 시간이 전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천국 생활의 모든 것은 공의 가운데 처소마다 누릴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이 차이 나는데, 이는 모든 영혼이 각자의 처소에서 가장 자유롭고 행복하게 생활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곧 하나님의 사랑이 깃들어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천국에 가서도 하나님의 얼굴을 마음껏 뵙지 못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그러므로 마태복음 5장 8절 말씀처럼 “마음의 청결함”을 이루어 하나님의 얼굴을 마음껏 뵐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0년 12월 13일 주일)
* 사회: 임학영 목사
개회찬송 28장 1절
성시교독 39번
찬송 126장
기도 고경아 전도사
성경봉독 창세기 2:8~9
찬양 주 영광 보리라(영상)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천국(20)-에덴동산(영상설교)
당회장님
찬송 만민 찬양 92장
주일 저녁예배 (2020년 12월 13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박광현 목사
대표기도 김진홍 장로
성경봉독 사도행전 27:21~25
특송 단비중창단
설교 유라굴로 광풍의 교훈
문신현 목사
수요 예배 (12월 16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김기석 목사
대표기도 임금선 전도사
성경봉독 요한일서 2:1~5
설교 요한일서 강해(4)(영상설교)
당회장님
금요 철야예배 (12월 18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문태규 목사없음
대표기도 조혁희 목사
성경봉독 누가복음 1:17
찬양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영상)
설교 선(16)-엘리야②(영상설교)
당회장님
새벽 예배
인도 당분간 없습니다.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0-12-13 2020년 12월 둘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새로 나오셔서 등록해 주신 분들과 인터넷으로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당회장님 소식

● 당회장님 외국어 저서 「주님의 자취(상)」 핀란드어(620번째)가 발간되었습니다.

● 당회장님 신앙칼럼이 「기독선교신문」, 「시사뉴스」 등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교회 소식

● 만민뉴스 영어(684호) 신문을 인터넷(PDF)으로 발행하였습니다.
(만민뉴스 홈페이지 www.manminnews.com)

● 정기 당회는 코로나19로 인해 오늘 오후 7시에 온라인으로 개최합니다.

●「2021년도 교회 기도제목」
1) 내가 시행하리라 (요 14:13~14)
2) 신부단장을 잘하자 (살전 5:23)
3) 사랑으로 하나 되는 교회 (요일 4:11~12)
4) 재창조의 권능 100% (겔 37:4~10)

● 사무국/ 헌금봉투에 2021년 소속으로 기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당회장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조) 교보문고, 영풍문고, 반디 앤 루니스, 북스리브로, 예스24, 알라딘, 인터파크 등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자책(e-book)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간 성경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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