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08
제2과영적인 사랑과 육적인 사랑
고린도전서 13:4~7
읽을말씀 : 고린도전서 13:4~7 | 외울말씀 : 고린도전서 13:13 | 참고 말씀: 사무엘상 18:1~4
교육목표 :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적인 사랑과 자기 유익에 따라 변질되는 육적인 사랑에 대해 알아본다.
한 케이블 방송에서 기혼 여성을 대상으로 “만약 결혼을 다시 한다면 지금의 배우자를 다시 선택하겠는가?”라는 설문조사를 하였습니다. 다시 결혼하겠다는 사람은 겨우 4%에 불과했습니다. 사랑해서 결혼한 경우가 대부분일 텐데 왜 그 마음이 변한 것일까요? 바로 영적인 사랑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인 사랑이란 무엇인지 육적인 사랑과 비교하여 살펴보겠습니다.
1. 영적인 사랑이란?
사전을 보면, 사랑은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은 더 차원 높은 영적인 사랑입니다. 곧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기쁨과 소망과 생명을 줄 뿐만 아니라, 영원히 변함없는 사랑이지요.
다윗과 요나단은 영적인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요나단은 이스라엘의 왕 사울의 아들입니다. 그는 다윗이 물맷돌로 블레셋 적장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신이 임한 용사임을 알아보았습니다. 자신도 군대를 이끄는 장수였기에 그의 용맹함이 흠모되었고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때부터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아끼고 사랑하였습니다. 다윗에게 어떠한 것을 내주어도 아깝지 않았지요.
그는 사울왕의 장남으로서 왕위를 이어받을 수 있는 후계자였지만 사심이나 욕심이 없었기 때문에 왕이라는 직책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울이 왕위를 지키기 위해 다윗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었을 때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다윗을 구해 주었지요. 이러한 사랑이 죽을 때까지 한결같았습니다.
요나단이 길보아 전투에서 전사하자 다윗은 식음을 폐하고 그의 죽음을 슬퍼했습니다. 왕위에 오른 후에는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찾아 사울의 재산을 모두 돌려주고 왕궁에서 자신의 아들처럼 돌봐주었습니다.
이처럼 영적인 사랑은 비록 자신에게 유익이 되지 않고 해가 될지라도 생명 다하기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떤 대가를 바라거나 나에게 잘해 준다고 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 조건 없이 순수하게 자기를 희생하며 상대를 위해 한결같이 줄 수 있는 사랑입니다.
2. 우리를 향한 하나님과 주님의 변함없는 사랑
혹여 여러분은 육적인 사랑 때문에 마음의 괴로움을 겪어 본 적이 있습니까? 쉽게 변하고 마는 사랑에 아파하고 외로워할 때 우리를 위로하고 친구가 되어 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주님이시지요. 주님은 아무 죄와 허물이 없는데도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멸시를 받으셨기에 누구보다 우리 마음을 잘 아십니다. 하늘 영광을 뒤로하고 이 땅에 오셔서 고난의 길을 가심으로 우리의 참된 위로자가 되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참된 사랑을 주셨지요.
우리는 당회장님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진한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당회장님은 하나님을 영접하기 전 온갖 질병으로 고통받으며 가난한 삶을 사셨습니다. 7년 투병생활 끝에 남은 것이라고는 병든 몸과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뿐이었지요.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둘 떠나고, 철저히 외면당하고 멸시받은 인생이었습니다. 실낱같은 희망조차 없이 죽음의 문턱에 헤매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당회장님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때 단번에 모든 질병을 치료받아 새 생명을 얻었지요. 그 후 주님은 당회장님의 전부가 되셨고, 당회장님은 오직 영혼 구원을 위해 생명 다해 달려오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주신 사랑은 값없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찾아와 손 내밀어 주셨습니다. 이사야 49장 15~16절에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요한일서 4장 9~10절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말씀하지요.
하나님은 사랑 자체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온갖 아름답고 값진 것들로 천국 처소를 예비하시고 하루를 천 년같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지요. 조금만 마음을 열어도 하나님의 섬세하고 풍성한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3. 육적인 사랑
자신에게 잘해 주고, 유익이 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나 악한 사람도 합니다. 겉보기에는 그럴 듯해 보이나 실제로는 참이 아닌 가짜 사랑을 하는 것이지요. 이는 시간이 흐르면 변질되어 조그만 일에도 쉽게 깨지는 육적인 사랑입니다. 육적인 사랑은 세월이 흐르고 상황과 조건이 달라지면 변해 버립니다. 자신의 유익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하지요. 상대에게 내가 먼저 받아야 주고 자신에게 유익이 되어야 베풉니다.
이처럼 내가 준 만큼 상대에게서 받기 원하고, 상대가 주지 않으면 서운해하고 아쉬워하는 것은 모두 육적인 사랑입니다. 일반적으로 부모와 자녀 간의 사랑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부모가 정성을 다해 자녀를 뒷바라지하면서도 힘들다 하지 않는 것은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먹고 입는 것보다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기 원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를 생각하는 마음 한편에는 대개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마음이 깔려 있지요. 진정 사랑한다면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고 자녀를 위해 생명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 유익과 영광을 위해서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만족을 채우거나 자랑하기 위해 자신의 뜻대로 자녀를 이끌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녀가 진로나 배우자를 선택할 때 부모의 뜻과 다르면 반대하며 서운해하지요. 결국 자녀를 위한 헌신과 희생이 대가를 바라는 조건적인 사랑이었음을 말해 줍니다.
자녀가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은 어떨까요?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부모가 늙고 병들면 무시하고 귀찮아합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떨어져 계신 부모님께 안부 전화 드리는 데도 인색합니다. 내 자녀, 내 생활 중심적이고 점점 부모님한테는 무관심해집니다. 더구나 부모에게 재산이나 돈을 요구해서 거절당하면 미워하고 심하면 부모를 죽이는 패륜적인 자녀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친구 간에 사랑은 어떻습니까? 끝까지 내 편이 되어 줄 거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친구의 배신으로 큰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급히 돈이 필요하다며 친구에게 목돈을 부탁하거나 담보를 서 달라고 합니다. 만일 친구가 거절하면 배신감을 느끼며 사이가 소원해지고 말지요.
정말 사랑하는 친구라면 그에게 고통을 주지 않습니다. 만약 부도가 난다면 담보를 서 준 친구와 가족들은 고통당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믿음의 형제간에 돈거래나 담보, 보증서는 일을 금하셨습니다. 이에 불순종할 경우 사단의 역사가 따르고 불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웃 간의 사랑은 어떻습니까? 요즘은 철저한 경비 시스템을 이용하여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에 이웃이 누구인지 알려고도 하지 않지요. 이웃끼리 고소하고 주차 문제 등 사소한 일로 얼굴을 붉히며 다투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이렇게 육적인 사랑은 자신의 실리를 따지고 유익이 없으면 멀리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러한 육적인 사랑이 아니라, 상대의 유익을 구하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영적인 사랑을 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영적인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 )
2. 육적인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 )
3. 여러분은 부모와 자녀, 형제, 친구, 성도 간에 영적인 사랑을 나누고
있는지요?
( )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물매’란?
가죽이나 천 조각에 돌멩이를 넣고 돌리다가 과녁을 향해 돌이 날아가게 하는 기구이다.
물매는 목자들이나 군인들의 무기로 사용하였다.
다윗은 물매로 골리앗을 물리쳤으며 베냐민 지파 중에서 택한 700명의 왼손잡이 병사들은 물매 사용에 능한 자들이었다(삿 20:16).
교육목표 :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적인 사랑과 자기 유익에 따라 변질되는 육적인 사랑에 대해 알아본다.
한 케이블 방송에서 기혼 여성을 대상으로 “만약 결혼을 다시 한다면 지금의 배우자를 다시 선택하겠는가?”라는 설문조사를 하였습니다. 다시 결혼하겠다는 사람은 겨우 4%에 불과했습니다. 사랑해서 결혼한 경우가 대부분일 텐데 왜 그 마음이 변한 것일까요? 바로 영적인 사랑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인 사랑이란 무엇인지 육적인 사랑과 비교하여 살펴보겠습니다.
1. 영적인 사랑이란?
사전을 보면, 사랑은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은 더 차원 높은 영적인 사랑입니다. 곧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기쁨과 소망과 생명을 줄 뿐만 아니라, 영원히 변함없는 사랑이지요.
다윗과 요나단은 영적인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요나단은 이스라엘의 왕 사울의 아들입니다. 그는 다윗이 물맷돌로 블레셋 적장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신이 임한 용사임을 알아보았습니다. 자신도 군대를 이끄는 장수였기에 그의 용맹함이 흠모되었고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때부터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아끼고 사랑하였습니다. 다윗에게 어떠한 것을 내주어도 아깝지 않았지요.
그는 사울왕의 장남으로서 왕위를 이어받을 수 있는 후계자였지만 사심이나 욕심이 없었기 때문에 왕이라는 직책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울이 왕위를 지키기 위해 다윗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었을 때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다윗을 구해 주었지요. 이러한 사랑이 죽을 때까지 한결같았습니다.
요나단이 길보아 전투에서 전사하자 다윗은 식음을 폐하고 그의 죽음을 슬퍼했습니다. 왕위에 오른 후에는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찾아 사울의 재산을 모두 돌려주고 왕궁에서 자신의 아들처럼 돌봐주었습니다.
이처럼 영적인 사랑은 비록 자신에게 유익이 되지 않고 해가 될지라도 생명 다하기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떤 대가를 바라거나 나에게 잘해 준다고 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 조건 없이 순수하게 자기를 희생하며 상대를 위해 한결같이 줄 수 있는 사랑입니다.
2. 우리를 향한 하나님과 주님의 변함없는 사랑
혹여 여러분은 육적인 사랑 때문에 마음의 괴로움을 겪어 본 적이 있습니까? 쉽게 변하고 마는 사랑에 아파하고 외로워할 때 우리를 위로하고 친구가 되어 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주님이시지요. 주님은 아무 죄와 허물이 없는데도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멸시를 받으셨기에 누구보다 우리 마음을 잘 아십니다. 하늘 영광을 뒤로하고 이 땅에 오셔서 고난의 길을 가심으로 우리의 참된 위로자가 되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참된 사랑을 주셨지요.
우리는 당회장님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진한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당회장님은 하나님을 영접하기 전 온갖 질병으로 고통받으며 가난한 삶을 사셨습니다. 7년 투병생활 끝에 남은 것이라고는 병든 몸과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뿐이었지요.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둘 떠나고, 철저히 외면당하고 멸시받은 인생이었습니다. 실낱같은 희망조차 없이 죽음의 문턱에 헤매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당회장님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때 단번에 모든 질병을 치료받아 새 생명을 얻었지요. 그 후 주님은 당회장님의 전부가 되셨고, 당회장님은 오직 영혼 구원을 위해 생명 다해 달려오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주신 사랑은 값없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찾아와 손 내밀어 주셨습니다. 이사야 49장 15~16절에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요한일서 4장 9~10절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말씀하지요.
하나님은 사랑 자체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온갖 아름답고 값진 것들로 천국 처소를 예비하시고 하루를 천 년같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지요. 조금만 마음을 열어도 하나님의 섬세하고 풍성한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3. 육적인 사랑
자신에게 잘해 주고, 유익이 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나 악한 사람도 합니다. 겉보기에는 그럴 듯해 보이나 실제로는 참이 아닌 가짜 사랑을 하는 것이지요. 이는 시간이 흐르면 변질되어 조그만 일에도 쉽게 깨지는 육적인 사랑입니다. 육적인 사랑은 세월이 흐르고 상황과 조건이 달라지면 변해 버립니다. 자신의 유익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하지요. 상대에게 내가 먼저 받아야 주고 자신에게 유익이 되어야 베풉니다.
이처럼 내가 준 만큼 상대에게서 받기 원하고, 상대가 주지 않으면 서운해하고 아쉬워하는 것은 모두 육적인 사랑입니다. 일반적으로 부모와 자녀 간의 사랑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부모가 정성을 다해 자녀를 뒷바라지하면서도 힘들다 하지 않는 것은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먹고 입는 것보다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기 원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를 생각하는 마음 한편에는 대개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마음이 깔려 있지요. 진정 사랑한다면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고 자녀를 위해 생명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 유익과 영광을 위해서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만족을 채우거나 자랑하기 위해 자신의 뜻대로 자녀를 이끌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녀가 진로나 배우자를 선택할 때 부모의 뜻과 다르면 반대하며 서운해하지요. 결국 자녀를 위한 헌신과 희생이 대가를 바라는 조건적인 사랑이었음을 말해 줍니다.
자녀가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은 어떨까요?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부모가 늙고 병들면 무시하고 귀찮아합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떨어져 계신 부모님께 안부 전화 드리는 데도 인색합니다. 내 자녀, 내 생활 중심적이고 점점 부모님한테는 무관심해집니다. 더구나 부모에게 재산이나 돈을 요구해서 거절당하면 미워하고 심하면 부모를 죽이는 패륜적인 자녀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친구 간에 사랑은 어떻습니까? 끝까지 내 편이 되어 줄 거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친구의 배신으로 큰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급히 돈이 필요하다며 친구에게 목돈을 부탁하거나 담보를 서 달라고 합니다. 만일 친구가 거절하면 배신감을 느끼며 사이가 소원해지고 말지요.
정말 사랑하는 친구라면 그에게 고통을 주지 않습니다. 만약 부도가 난다면 담보를 서 준 친구와 가족들은 고통당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믿음의 형제간에 돈거래나 담보, 보증서는 일을 금하셨습니다. 이에 불순종할 경우 사단의 역사가 따르고 불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웃 간의 사랑은 어떻습니까? 요즘은 철저한 경비 시스템을 이용하여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에 이웃이 누구인지 알려고도 하지 않지요. 이웃끼리 고소하고 주차 문제 등 사소한 일로 얼굴을 붉히며 다투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이렇게 육적인 사랑은 자신의 실리를 따지고 유익이 없으면 멀리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러한 육적인 사랑이 아니라, 상대의 유익을 구하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영적인 사랑을 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영적인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 )
2. 육적인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 )
3. 여러분은 부모와 자녀, 형제, 친구, 성도 간에 영적인 사랑을 나누고
있는지요?
( )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물매’란?
가죽이나 천 조각에 돌멩이를 넣고 돌리다가 과녁을 향해 돌이 날아가게 하는 기구이다.
물매는 목자들이나 군인들의 무기로 사용하였다.
다윗은 물매로 골리앗을 물리쳤으며 베냐민 지파 중에서 택한 700명의 왼손잡이 병사들은 물매 사용에 능한 자들이었다(삿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