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배안내
  • 설교요약
  • 구역공과
  • 공지사항
  • 주간성구
구역공과
2021-01-15 제3과영적인 사랑의 중요성 고린도전서 13:1~3
읽을말씀 : 고린도전서 13:1~3  |  외울말씀 : 골로새서 3:23 | 참고 말씀: 고린도전서 2:6~8
교육목표 : 영적인 사랑의 중요성과, 어떻게 하면 마음 안에 영적인 사랑을 이룰 수 있는지 알아본다.


   요한복음 8장을 보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끌고 와서 예수님께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하고 묻습니다. 만일 율법대로 하면 예수님을 사랑이 없다 할 것이고, 용서하라 하면 율법을 무시한다고 정죄할 것이 뻔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바닥에 그들에게 해당되는 죄목을 하나하나 써 내려가셨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죄목을 보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그 자리를 떠났고 여인만 남았지요. 예수님은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치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생명을 살리는 영적인 사랑을 지닌 분이십니다. 영적인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 고린도전서 13장 1~3절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여기서 ‘사람의 방언’이란 방언의 은사가 아닌 영어, 일어, 불어 등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의미합니다. 또한 ‘천사의 말’이란 매우 아름다운 말을 뜻합니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고운 말을 할 때 “천사같이 말한다.”고 하지요.
   영적인 사랑이 담긴 말에는 생명을 살리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이 없는 말은 아무리 유창하고 아름다워도 참 기쁨과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가볍고 속이 비어 요란한 소리를 내는 구리나 꽹과리처럼 아무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도 영적인 사랑이 없으면 쭉정이와 같습니다. 마음 안에 사랑이 가득 차서 하나님을 닮은 참 자녀가 될 때라야 인간을 경작하시는 하나님 앞에 알곡으로서 가치가 있지요. “무슨 말로 상대에게 힘이 될까?” “어떻게 하면 상대를 진리로 나오게 할까?” 기도하며, 말 한마디를 해도 상대에게 생명을 주고자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상대를 무조건 말씀으로 설득시키려 하거나 지적하여 자기 생각에 맞지 않는 부분을 고치려 듭니다. 설령 그 말이 백 번 옳다 해도 사랑에서 비롯되지 않으면 상대를 변화시키거나 참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말을 할 때 내 의와 틀 속에 하지는 않는지, 그 말이 생명을 살리는 사랑에서 비롯되었는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어떤 유창한 말보다 영적인 사랑이 담긴 말 한마디가 사람들에게 힘과 위로가 됩니다.
   
   
   2.“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예언’이란 하나님으로부터 앞으로 이루어질 일을 받아 선포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언은 사람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을 입은 사람이 하나님께 받아 말하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 21절에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말씀한 대로입니다.
   여기서 ‘예언하는 능’이란 특정인에게 주어지는 은사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믿고 진리 안에 들어온 사람이라면 장차 일어날 일을 알아 말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장차 주님께서 강림하시면 구원받은 사람은 휴거되어 7년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7년 환난을 겪고 백보좌대심판 후 지옥에 갈 것 등을 알고 선포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예언하는 능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하나님과 상관이 없습니다.
   
   ‘비밀’이란 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 곧 ‘십자가의 도’를 말합니다. 십자가의 도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섭리로서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예비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범죄하여 사망으로 갈 것을 아시고 만세 전에 구세주가 될 예수님을 예비하셨습니다. 이 구원의 섭리를 성취하기까지 하나님은 비밀로 붙이셨습니다. 구원의 섭리가 알려지면 원수 마귀 사단이 방해하여 성취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고전 2:6∼8).
   원수 마귀 사단은 예수님을 죽이면 아담의 범죄로 넘겨받은 권세를 영원히 가질 줄 알고 악한 사람들을 사주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러나 죄 없으신 예수님을 죽임으로 도리어 구원의 길이 열리게 만들었지요. 이처럼 놀라운 비밀을 알아도 사랑이 없어 전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모든 지식’이란 단지 학문적인 것만이 아니라, 성경에 담긴 진리의 지식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알았다면 만나고 체험하여 마음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는 데 그칠 뿐, 그 지식이 남을 판단 정죄하는 잣대가 되기도 하지요. 그러니 영적인 사랑이 없는 지식 역시 소용이 없습니다.
   또한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실 때 잠시 따라 걸었습니다. 당시 베드로는 성령을 받은 것도, 죄를 버리고 마음의 할례를 한 것도 아니므로 영적인 사랑이 임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자신에게 생명의 위협이 오자 예수님을 부인하였지요.
   이처럼 체험이 있을 때 믿음은 성장할 수 있지만 영적인 사랑은 죄를 버리려는 노력과 헌신, 희생이 따를 때 임합니다. 그렇다고 믿음과 사랑이 무관한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있기에 죄를 버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지요. 그러나 사랑을 이루려는 행함이 없으면 아무리 충성해도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없습니다.
   
   
   3.“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자기를 자랑하고 싶어 형식적으로 구제하는 사람은 칭찬받을수록 마음이 높아지게 마련입니다. 자신을 의롭다 착각하여 마음의 할례를 하지 않으니 결국 아무 유익이 없으며 자신에게 해만 되지요. 그러나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구제는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상관이 없습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서 행한 대로 축복과 상급으로 갚아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마 6:3~4).
   희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준다는 것은 완전히 희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희생은 사랑을 전제로 하지만 사랑 없이도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습니다. 즉 실컷 수고해 놓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힘과 정성, 시간, 물질을 다해 일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해합니다. 열심 내지 않는 사람을 보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어쩜 저럴 수 있지?” 판단합니다. 이런 마음이면 자신도 힘들고 주변 사람과 화평을 깨니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이 있는데 어떻게 사랑 없는 희생이 나올 수 있을까요? 이는 중심에서 하나님의 것이 내 것이요, 내 것이 하나님 것이라는 주인의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령, 농부가 자기 밭의 일을 할 때는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열심히 합니다. 하지만 남의 일을 할 때는 그 마음가짐이 다르지요.
   마찬가지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삯을 받고 일하는 일꾼처럼 형식적으로 일하고, 당장 대가를 받지 못하면 불평이 나옵니다. 골로새서 3장 23~24절에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하신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참된 희생을 하려면 무엇보다 마음에 영적인 사랑을 이뤄야 합니다. 마음 안에 사랑이 가득한 사람은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알아주든 몰라주든 묵묵히 헌신합니다. 마치 초가 자신의 몸을 태워 어둠을 밝히듯 아낌없이 자신을 내줍니다.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 수많은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었던 것도 참사랑으로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심으로 생명 다하기까지 그분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순간에도 영혼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올리셨지요. 누구든지 예수님처럼 어떤 욕심이나 거짓이 없이 자신을 희생한다면 하나님께서 높여 주시고 영광의 자리로 이끄십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영적인 사랑에 관한 말씀을 고르시오.
   ① 고린도전서 13:1~3
   ② 골로새서 3:23~24
   ③ 사도행전 13:3
   ④ 누가복음 17:10
   
   2. 믿음은 있는데 어떻게 사랑 없는 희생이 나올 수 있을까요?
   
   3. 믿음과 사랑은 비례할까요? 다르다면 왜 그런지 이유를 써 보세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계시’와 ‘예언’의 차이는?
   
   계시 -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자에게 성령의 감동함 속에 환상이나 음성 등 여러 방법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 주시는 것, 또는 사람으로서는 풀 수 없는 영의 일들을 풀이해 주시는 것.
   
   예언 - 성령의 감동함을 입은 사람이 하나님께 받은 계시를 고하는 일, 또는 그런 말(벧후 1:21).
지난 주 설교요약
2021-01-10 천국 ( 23 ) - 낙원 ③ - 이재록 목사 누가복음 23:43
지난 시간에는 낙원이 영원한 처소로 주어지는 첫 번째 경우를 말씀드렸고, 오늘은 두 번째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1.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는‘구원’
   
   이사야 43장 11절에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하신 말씀처럼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때 구원할 만한 영혼이면 구원하시고, 구원할 만한 영혼이 아니면 구원하지 않으시지요.
   우리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공의와 사랑을 이룬 분이시므로 그 판단에는 조금의 실수도, 틀림도 없습니다. 오히려 공의만으로는 구원받기 어려운 영혼을 크신 사랑으로 구원하시는가 하면, 공의로는 천국의 낮은 처소로 보낼 영혼도 사랑으로 더 좋은 처소로 보내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하나님을 정녕 ‘아버지’라 부른다면 주어진 날들 동안 더욱 마음 깊이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대로 빛 가운데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자녀들과 영원토록 함께하기를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큰 기쁨이 되시기 바랍니다.
   
   
   2. 낙원이 영원한 처소로 주어지는 경우
   
   2) 믿음의 1단계에서 성장 없이 머물러 있다가 구원받은 경우
   낙원이 영원한 처소로 주어지는 두 번째 경우는 하나님을 믿은 지 오래됐다 해도 믿음의 1단계에서 성장 없이 머물러 있다가 구원받은 경우입니다. 초신자라면 믿음이 성장할 시간이 짧았다는 이유라도 댈 수 있지만,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는데도 믿음이 성장하지 않아 계속 믿음의 1단계에 있다가 낙원에 들어갔다면 이는 더욱 부끄러운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예
   성경상의 인물로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이에 해당되는데, 왜 그러한지 그의 신앙을 살펴보겠습니다. 창세기 23장 1절에 “사라가 일백이십칠 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의 향년이라” 했으니 175세를 살았던 아브라함에 비하면 사라는 비교적 일찍 삶을 마쳤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 경작의 역사에서 ‘믿음의 조상’이라는 하나의 표본으로 세워질 만큼 온전했던 아브라함의 아내라면, 사라 역시 대단한 믿음의 소유자가 돼 있어야 마땅하지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사라는 육신의 생각을 버리지 못했고, 마음에서 악의 모양을 벗어내지 못했지요. 따라서 영적인 믿음이라기보다는 아브라함 곁에서 늘 보고 들어서 지식적으로 아는 육적인 믿음에 가까웠습니다.
   육적으로 아브라함과 함께 있었지만 영으로는 아브라함과 너무나 큰 차이가 났습니다. 아브라함은 오랜 세월을 함께한 동반자로서 여러 연단을 함께 받았던 사라를 사랑하여 어찌하든 좋은 천국에 함께 들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창세기 23장 2절에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밝히 교통하며 내세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어떤 곳이며, 사라가 천국의 어떤 처소에 들어갈 것도 알았기에 그녀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며 애통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렇다면 왜 사라의 믿음으로는 낙원밖에 가지 못한다고 하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친히 이삭에 대한 언약을 주셨을 때, 사라는 그 말씀을 듣고 믿지 못하여 그만 웃고 말았습니다(창 18장).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많이 보았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체험했음에도 마음에서 온전히 믿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 하지 못하고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며, 자기 생각과 맞지 않으면 불순종할 수 있는 신앙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러 갈 때도 이에 대해 사라에게 알려 줄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말해 주어도 사라는 반대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사라가 하나님의 뜻을 좇기보다는 자기 보기에 좋은 편을 택했던 일이 또 있습니다. 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오래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 방법대로 후손을 얻기 위해 여종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주었지요.
   그런데 하갈이 아들을 낳자 사라는 시기 질투하여 결국 하갈과 그의 아들을 쫓아내고 말았습니다. 사라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긴 것이 아니라 사람 편에서 보기에 좋은 방법을 취했던 것입니다.
   사라가 하갈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보면, 그 마음에 얼마나 악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시기 질투하고 자기 유익을 구하려는 마음, 자신의 마음에 맞지 않으면 멀리하고 심지어 상대는 어떻게 되든 자기 보기에 좋을 대로 하려는 마음 등 여러 악의 모양을 발견할 수 있지요.
   
   당시는 구약 시대로 내주하시는 성령의 도우심이 없기 때문에 쉽게 마음에 할례를 할 수 있는 때는 아니었으나, 그래도 사라는 남편 아브라함을 통해 선과 사랑이 무엇인지 수없이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사라는 단지 악을 마음에 담아 두는 차원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권세와 위치를 가지고 마음대로 휘두르는 모습이었습니다. 오늘날 믿음의 단계로 보자면 믿음의 2단계에도 미치지 못하는 모습이었지요.
   믿음의 2단계는 비록 육체의 일을 다 벗지 못했다 해도, 진리가 무엇인지 들어서 알기 때문에 육체의 일을 버리기 위해 노력하며, 조금씩이나마 변화되어 가는 단계입니다. 그런데 사라는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악의 모양을 마음에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겉으로도 드러내는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더욱이 사라는 아브라함이라는 훌륭한 신앙의 모델이 곁에 있었음에도 그 마음과 행함이 변화되지 못했으니 하나님께서 과연 믿음의 몇 단계로 보시겠습니까? 사라는 분명 주인의 뜻을 알고도 행치 않았고, 하나님께로부터 많은 것을 받은 자임에도 하나님께서 찾으실 때 드릴 것이 없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눅 12:47~48). 비록 구약 시대이지만 사라는 상대적으로 매우 좋은 조건 속에서도 여전히 육에 거하며 마음과 행함이 변화되지 않았으니 낙원 이상의 좋은 천국은 바라볼 수 없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겨우 구원받아 낙원에 갔다는 것은 너무 충격적인 일이지만, 심판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집니다. 이 땅에서 아브라함의 아내였다고 해서 더 봐주는 것도 없고, 오히려 아브라함의 아내였음에도 그 정도밖에 되지 못한 것이 부끄러운 일이지요.
   내세에 대해 잘 아는 아브라함은 평소에 사라에게 많은 교훈도 주고,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었을 것입니다. 결국 사라가 그것을 받지 못하고 흘려버렸으므로 죽은 후까지도 아브라함의 마음을 심히 아프고 애통하게 했습니다.
   
   이미 소천한 본 교회 성도의 예
   먼저,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나 뒤늦게 신앙생활을 시작했던 성도의 경우입니다. 이분은 군대 중령으로서 인생의 뚜렷한 목표가 있어 성실하게 그 목표를 향해 살아갔지요. 군대에서는 부하들에게 위엄과 덕망 있는 상관으로서 인정받기 원했고,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 자녀들에게 자신이 이뤄온 삶의 열매들을 남겨 주길 원했습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얽히고설킨 문제들로 인해 좌절과 번민 속에 고통받았고 불치병까지 걸려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제 간증 수기 “죽음 앞에서 영생을 맛보며”를 읽고 우리 교회에 등록하였습니다. 각종 예배에 참석하고, 기도하며 나름대로 하나님께 심음도 있었지요. 그런데 왜 낙원에 이르렀을까요?
   이분은 죽을병에 걸려 의지할 가족이나 친척도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자 교회에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수많은 권능의 역사를 보고 들어 ‘나도 이곳에 있으면 혹여 나을 수 있겠지’라는 생각에서 이런저런 행함을 보였던 것입니다.
   즉 믿음의 행함이라기보다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된다”고 하니 어차피 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행했을 뿐이었습니다.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해서 심고 행한 것이 아니라 단지 질병을 치료받고자 하는 마음에서 행했던 것입니다. 마음에서 확연히 믿고 행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렇게 해서 응답받았다고 하니 자신도 그대로 따라 해 본 것이지요.
   이처럼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 여러 분야가 치료의 응답을 받기에는 부족했기에 결국 치료받지 못하고 소천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분이 인생의 마지막 기간에라도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고자 했던 것을, 구원받을 만한 믿음으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천국의 낙원을 영원한 처소로 받았지요. 이 땅에 사는 동안 온갖 슬픔과 아픔을 겪으며 중한 질병으로 고통당하다가 낙원에 이르게 되니 얼마나 감사와 기쁨이 충만했겠습니까.
   비록 낙원이라 할지라도 천국이라는 공간에서 느껴지는 평안과 행복은 육의 공간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 땅에서도 마음 안의 육을 버리고 영의 마음이 되는 만큼 천국의 행복과 평안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른 무엇이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 안에 있는 육의 속성이 힘들고 슬프게 하며 고통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할 때도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여 속상해하거나, 부와 명예를 더 갖지 못해 안절부절 못하고, 혹여 빼앗길까 불안 초조해하는 것도 육의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사랑받기보다는 사람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에 시기 질투도 나오는 것이지요. 이런 육의 마음을 다 벗어버리면 진리와 함께 기뻐할 수 있고,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기쁘고 좋으니 내어 주고 또 내어 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육의 마음이 영으로 들어가는 데 얼마나 부질없고 무익한지 깨우쳐서 미련 없이 육의 마음을 벗어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자녀들과 새 예루살렘에서 영원토록 함께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 큰 기쁨을 드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1년 1월 10일 주일)
* 사회: 이미경 목사
개회찬송 9장 1절
성시교독 51번
찬송 502장
기도 이풍근 목사
성경봉독 요한복음 6:53, 요한계시록 2:4~5
찬양 햇빛을 받는 곳마다(영상)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천국(24)-낙원④(영상설교)
당회장님
찬송 만민 찬양 161장
주일 저녁예배 (2021년 1월 10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박광현 목사
대표기도 김진홍 장로
성경봉독 요한일서 4:11~12
특송 손영락 장로
설교 사랑으로 하나 되는 교회(신년 기도제목③)
이수진 목사
수요 예배 (1월 13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김영석 목사
대표기도 차경숙 전도사
성경봉독 요한일서 3:3
설교 이 소망을 가진 자
이미영 목사
금요 철야예배 (1월 15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정진영 목사없음
대표기도 차전환 목사
성경봉독 요한일서 2:12~14
찬양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영상)
설교 요한일서 강해(7)(영상설교)
당회장님
새벽 예배
인도 당분간 없습니다.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1-01-10 2021년 1월 둘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새로 나오셔서 등록해 주신 분들과 인터넷으로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당회장님 소식

● 당회장님 외국어 저서 「주님의 자취(하)」 스웨덴어(625번째),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러시아어(626번째)가 발간되었습니다.

● 당회장님 신앙칼럼이 「기독선교신문」, 「시사뉴스」 등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교회 소식

● 정기 원로회가 다음 주일 오후 7시에 1유아실에서 있습니다.

● 만민기도원/ 신년 작정 다니엘철야가 1월 11일(월)부터 31일(주일)까지 온라인으로 진행됩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참석을 바랍니다.
※ 주제: 2021년 7가지 기도제목, 인도: 이복님 원장

● 교역자회/ 새해를 맞이하여 「전 성도 당회장님 저서 읽기」로 영적 성장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 기간: 1. 10(주일) ~ 4. 10(토)까지 (3개월간)
※ 읽어야 할 당회장님 저서 순서 (10권)
①죽음앞에서 영생을 맛보며
②십자가의 도
③믿음의 분량
④천국(상)
⑤천국(하)
⑥지옥
⑦영혼육(상)
⑧영혼육(하)
⑨사랑은 율법의 완성
⑩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우림북/ 「전 성도 당회장님 저서 읽기」 해당 도서(10종)를 할인 판매합니다.
※ 행사 기간 : 1. 11(월)~1. 15(금), 1. 18(월)~1. 22(금) 2주간
※ 구매 방법
1) 우림북 전시관 방문 구매 2) 전화 주문(택배 배송) : Tel. 070-8240-2075

● 당회장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조) 교보문고, 영풍문고, 반디 앤 루니스, 북스리브로, 예스24, 알라딘, 인터파크 등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자책(e-book)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감사드립니다

강단 헌화/ 이웃나라(꽃꽂이 봉사: 예배국 미화부, 시설관리국)
주간 성경구절
2024-01-14
[주일]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시 19:9]
2024-01-15
[월요일]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시 19:10]
2024-01-16
[화요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계 20:15]
2024-01-17
[수요일]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 16:7]
2024-01-18
[목요일]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 16:8]
2024-01-19
[금요일]
마음이 패려한 자는 여호와의 미움을 받아도 행위가 온전한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 [잠 11:20]
2024-01-20
[토요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요일 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