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19
제8과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고 성내지 않는 것
고린도전서 13:5
읽을말씀 : 고린도전서 13:5 | 외울말씀 : 야고보서 1:20 | 참고 말씀: 고린도전서 10:31, 요한복음 2:13~16
교육목표 :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고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성내지 아니하고 선과 사랑으로 마음을 채우는 성도가 되게 한다.
현대 사회는 자기의 이익만을 꾀하고 일반의 이익을 염두에 두지 않는 이기주의가 팽배합니다. 단지 개인의 이익을 위해 갓난아이들이 먹는 분유에 유해성 화학물질을 첨가하는가 하면, 국가적으로 중대한 원천 기술을 빼돌려 막대한 손실을 입히기도 합니다. 이처럼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고 일상생활에서도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지요.
1.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는 것
많은 사람이 자기의 유익을 구하면서도 잘 모르고 살아갑니다. 가령, 여러 사람이 함께 식당에 갔다고 합시다. 이때 어떤 사람은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주장하고, 어떤 이는 상대가 원하는 것에 맞추는 것 같지만 마음은 불편해합니다. 반면 다수가 선호하는 것을 맛있게 먹는 사람도 있습니다. 과연 여러분은 어느 유형에 해당합니까?
또 직장에서 자기 의견이 관철될 때까지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지는 않지만 상대 의견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면에 다른 사람의 의견을 귀 기울여 듣고, 설령 자기의 의견과 다르더라도 기쁨으로 따라 주는 사람도 있지요. 이처럼 각 사람의 마음에 얼마큼 영적인 사랑이 있느냐에 따라 나오는 현상이 다릅니다.
만일 의견 대립이 심해져서 다툼이 생기고 화평이 깨진다면 이는 바로 자기 입장만 고집하며 자기 유익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부부간에도 자기 입장만 고집하면 자꾸 부딪치고 마음에 상처만 깊어지지요. 서로 양보하고 상대 입장을 생각한다면 얼마든지 화평할 수 있는데도 자기 입장만 고집하므로 화평이 깨집니다.
우리가 상대를 사랑하면 늘 나보다는 상대를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대표적 인물로는 아브라함을 들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을 정도로 소유가 많아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롯의 목자들과 아브라함의 목자들이 가축에게 먹일 물이 부족하여 다투게 되지요.
이때 아브라함은 롯에게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하며 먼저 좋은 곳을 선택하여 떠나라고 하지요(창 13:9).
그러자 롯은 한 번의 사양도 없이 자기가 보기에 좋은 요단 들을 택하여 떠납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유익만 구하여 떠난 롯에 대해 섭섭해하지 않고 잘살기만을 바랐습니다. 그가 오직 상대의 유익을 구하니 범사가 잘되고 형통하며 거부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자신의 유익을 구치 않고 기쁨으로 상대의 유익을 구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과 응답이 따릅니다.
2.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으려면
우리가 영적인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매사에 나보다 주변을 먼저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보다 이웃, 나보다 하나님, 주님, 교회가 우선이 되어야 하지요. 가정에서도 나보다 부모, 형제, 남편, 아내, 자녀부터 돌아봐야 합니다. ㅇㅣ렇게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상대의 유익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더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십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 생활에 치우쳐 가정, 일터, 학교 등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기도 합니다. 금식하여 힘이 없다며 업무에 지장을 주거나 교회 일을 한다고 가족을 등한시합니다. 학생의 본분인 학업을 게을리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경우, 자신은 놀거나 쉬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 유익을 구했다고 생각지 않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주의 일에 충성했어도 온 집에 충성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본분을 다했다 할 수 없습니다. 결국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것과 같지요.
그렇다면 범사에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성령을 의뢰해야 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마음으로서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십니다. 성령의 주관 따라 행하면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만 위해 살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려면 마음의 악을 버려야 합니다. 악이 없어야 마음에 참사랑을 이룰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분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나 도움이 될 만한 사람에게는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배려합니다. 그러나 나를 힘들게 하고 친분이 없는 사람에게는 맞춰 주려 하지 않고 희생하기를 꺼린다면, 이는 내 유익을 구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마음에 맞지 않더라도 보듬어 줄 수 있어야 상대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요, 영적인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사랑은 성내지 않는 것
화를 잘 내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보다 사망률이 20%가량 높다고 합니다. 습관성 분노가 일시적으로 기분을 망치게 할 뿐 아니라 생명을 단축시키기 때문입니다. 화를 냄으로써 상대방에게 인격적인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그전에 자신의 상처가 더욱 깊어진다는 것입니다. 심하게 화를 내는 사람의 신체는 권투선수의 강펀치를 맞는 것 같은 타격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화를 참고 살면 병이 된다며 직장이나 가정에서 화를 폭발시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이 불이익을 당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아무런 이유 없이 원망을 듣거나 피해를 보았을 때, 자신의 지시나 요구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누군가에게 모욕을 당했을 때 쉽게 화를 내지요. 하지만 화를 내는 것은 최악의 방법이며 심신을 망치는 지름길입니다. 화를 냄으로써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트레스를 확대시킬 뿐이지요.
사랑은 사람의 마음을 긍정적으로 만들지만 성내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부정적으로 만듭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성을 내도록 부추기지요. 미움과 성냄은 원수 마귀 사단의 덫입니다.
성내는 것은 단지 격렬히 화를 내고 큰소리로 욕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얼굴이 굳어지고 안색이 변하는 것, 퉁명스러운 말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의분과 성냄의 차이는 어떻게 다를까요? 요한복음 2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제사에 쓰일 가축을 내쫓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이들의 의자를 엎으셨습니다. 유월절을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상인들이 성전 뜰에 좌판을 펴고 돈을 환전해 주거나 가축을 사고팔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이 혈기를 내시네?’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 미움이 있어서가 아니라 의분을 내신 것입니다. 비록 좋은 목적이라도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음을 깨우쳐 주신 것이지요. 이처럼 성냄과 의분은 전혀 다릅니다. 성결하여 죄가 없을 때 의분이나 책망을 통해서도 영혼들에게 생명을 주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흔히 ‘감정이 상한다’ 하면 성냄의 전초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내면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없고, 영적 성장에 막대한 지장을 줍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약 1:19~20)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성을 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조건 꾹 눌러 참으면 될까요? 스프링은 누를수록 더욱 강한 반동이 생깁니다. 참아서 순간의 위기는 모면할 수 있어도 언젠가는 폭발하지요. 성내게 하는 감정 자체를 온전히 뽑아 버려야 합니다. 억지로 눌러 참는 것이 아니라 아예 참을 것이 없도록 선과 사랑으로 승화시켜야 하지요.
하루아침에 감정을 버리고 선과 사랑으로 마음을 채우기는 어렵지만 꾸준히 노력하면 됩니다. 우선 화가 나면 기도하며 참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 성내는 것이 무슨 유익을 주는가?’ 생각하면서, 후회하거나 부끄럼을 당하지 않도록 어떤 상황에서도 화를 내거나 다투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 ( ) 안에 알맞은 말을 채워 보세요.
1. 범사에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으려면 ( )을 의뢰해야 한다.
2. 우리가 성내지 않기 위해서는 성내게 하는 ( ) 자체를 온전히 버리고, 억지로 눌러 참는 것이 아니라 아예 참을 것이 없도록 ( )과 ( )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3. 성결하여 죄가 없을 때 ( )이나 ( )을 통해서도 영혼들에게 생명을 주는 역사가 일어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분냄과 성냄에 관한 성경구절
약 1:20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잠 15:18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잠 16:32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 29:22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분하여 하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
전 7:9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자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교육목표 :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고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성내지 아니하고 선과 사랑으로 마음을 채우는 성도가 되게 한다.
현대 사회는 자기의 이익만을 꾀하고 일반의 이익을 염두에 두지 않는 이기주의가 팽배합니다. 단지 개인의 이익을 위해 갓난아이들이 먹는 분유에 유해성 화학물질을 첨가하는가 하면, 국가적으로 중대한 원천 기술을 빼돌려 막대한 손실을 입히기도 합니다. 이처럼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고 일상생활에서도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지요.
1.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는 것
많은 사람이 자기의 유익을 구하면서도 잘 모르고 살아갑니다. 가령, 여러 사람이 함께 식당에 갔다고 합시다. 이때 어떤 사람은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주장하고, 어떤 이는 상대가 원하는 것에 맞추는 것 같지만 마음은 불편해합니다. 반면 다수가 선호하는 것을 맛있게 먹는 사람도 있습니다. 과연 여러분은 어느 유형에 해당합니까?
또 직장에서 자기 의견이 관철될 때까지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지는 않지만 상대 의견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면에 다른 사람의 의견을 귀 기울여 듣고, 설령 자기의 의견과 다르더라도 기쁨으로 따라 주는 사람도 있지요. 이처럼 각 사람의 마음에 얼마큼 영적인 사랑이 있느냐에 따라 나오는 현상이 다릅니다.
만일 의견 대립이 심해져서 다툼이 생기고 화평이 깨진다면 이는 바로 자기 입장만 고집하며 자기 유익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부부간에도 자기 입장만 고집하면 자꾸 부딪치고 마음에 상처만 깊어지지요. 서로 양보하고 상대 입장을 생각한다면 얼마든지 화평할 수 있는데도 자기 입장만 고집하므로 화평이 깨집니다.
우리가 상대를 사랑하면 늘 나보다는 상대를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대표적 인물로는 아브라함을 들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을 정도로 소유가 많아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롯의 목자들과 아브라함의 목자들이 가축에게 먹일 물이 부족하여 다투게 되지요.
이때 아브라함은 롯에게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하며 먼저 좋은 곳을 선택하여 떠나라고 하지요(창 13:9).
그러자 롯은 한 번의 사양도 없이 자기가 보기에 좋은 요단 들을 택하여 떠납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유익만 구하여 떠난 롯에 대해 섭섭해하지 않고 잘살기만을 바랐습니다. 그가 오직 상대의 유익을 구하니 범사가 잘되고 형통하며 거부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자신의 유익을 구치 않고 기쁨으로 상대의 유익을 구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과 응답이 따릅니다.
2.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으려면
우리가 영적인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매사에 나보다 주변을 먼저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보다 이웃, 나보다 하나님, 주님, 교회가 우선이 되어야 하지요. 가정에서도 나보다 부모, 형제, 남편, 아내, 자녀부터 돌아봐야 합니다. ㅇㅣ렇게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상대의 유익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더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십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 생활에 치우쳐 가정, 일터, 학교 등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기도 합니다. 금식하여 힘이 없다며 업무에 지장을 주거나 교회 일을 한다고 가족을 등한시합니다. 학생의 본분인 학업을 게을리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경우, 자신은 놀거나 쉬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 유익을 구했다고 생각지 않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주의 일에 충성했어도 온 집에 충성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본분을 다했다 할 수 없습니다. 결국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것과 같지요.
그렇다면 범사에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성령을 의뢰해야 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마음으로서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십니다. 성령의 주관 따라 행하면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만 위해 살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려면 마음의 악을 버려야 합니다. 악이 없어야 마음에 참사랑을 이룰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분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나 도움이 될 만한 사람에게는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배려합니다. 그러나 나를 힘들게 하고 친분이 없는 사람에게는 맞춰 주려 하지 않고 희생하기를 꺼린다면, 이는 내 유익을 구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마음에 맞지 않더라도 보듬어 줄 수 있어야 상대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요, 영적인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사랑은 성내지 않는 것
화를 잘 내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보다 사망률이 20%가량 높다고 합니다. 습관성 분노가 일시적으로 기분을 망치게 할 뿐 아니라 생명을 단축시키기 때문입니다. 화를 냄으로써 상대방에게 인격적인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그전에 자신의 상처가 더욱 깊어진다는 것입니다. 심하게 화를 내는 사람의 신체는 권투선수의 강펀치를 맞는 것 같은 타격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화를 참고 살면 병이 된다며 직장이나 가정에서 화를 폭발시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이 불이익을 당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아무런 이유 없이 원망을 듣거나 피해를 보았을 때, 자신의 지시나 요구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누군가에게 모욕을 당했을 때 쉽게 화를 내지요. 하지만 화를 내는 것은 최악의 방법이며 심신을 망치는 지름길입니다. 화를 냄으로써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트레스를 확대시킬 뿐이지요.
사랑은 사람의 마음을 긍정적으로 만들지만 성내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부정적으로 만듭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성을 내도록 부추기지요. 미움과 성냄은 원수 마귀 사단의 덫입니다.
성내는 것은 단지 격렬히 화를 내고 큰소리로 욕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얼굴이 굳어지고 안색이 변하는 것, 퉁명스러운 말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의분과 성냄의 차이는 어떻게 다를까요? 요한복음 2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제사에 쓰일 가축을 내쫓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이들의 의자를 엎으셨습니다. 유월절을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상인들이 성전 뜰에 좌판을 펴고 돈을 환전해 주거나 가축을 사고팔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이 혈기를 내시네?’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 미움이 있어서가 아니라 의분을 내신 것입니다. 비록 좋은 목적이라도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음을 깨우쳐 주신 것이지요. 이처럼 성냄과 의분은 전혀 다릅니다. 성결하여 죄가 없을 때 의분이나 책망을 통해서도 영혼들에게 생명을 주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흔히 ‘감정이 상한다’ 하면 성냄의 전초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내면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없고, 영적 성장에 막대한 지장을 줍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약 1:19~20)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성을 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조건 꾹 눌러 참으면 될까요? 스프링은 누를수록 더욱 강한 반동이 생깁니다. 참아서 순간의 위기는 모면할 수 있어도 언젠가는 폭발하지요. 성내게 하는 감정 자체를 온전히 뽑아 버려야 합니다. 억지로 눌러 참는 것이 아니라 아예 참을 것이 없도록 선과 사랑으로 승화시켜야 하지요.
하루아침에 감정을 버리고 선과 사랑으로 마음을 채우기는 어렵지만 꾸준히 노력하면 됩니다. 우선 화가 나면 기도하며 참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 성내는 것이 무슨 유익을 주는가?’ 생각하면서, 후회하거나 부끄럼을 당하지 않도록 어떤 상황에서도 화를 내거나 다투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 ( ) 안에 알맞은 말을 채워 보세요.
1. 범사에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으려면 ( )을 의뢰해야 한다.
2. 우리가 성내지 않기 위해서는 성내게 하는 ( ) 자체를 온전히 버리고, 억지로 눌러 참는 것이 아니라 아예 참을 것이 없도록 ( )과 ( )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3. 성결하여 죄가 없을 때 ( )이나 ( )을 통해서도 영혼들에게 생명을 주는 역사가 일어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분냄과 성냄에 관한 성경구절
약 1:20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잠 15:18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잠 16:32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 29:22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분하여 하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
전 7:9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자의 품에 머무름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