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26
제9과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지 않는 것
고린도전서 13:5
읽을말씀 : 고린도전서 13:5 | 외울말씀 : 누가복음 6:45 | 참고 말씀: 야고보서 4:12, 갈라디아서 6:7
교육목표 : 악한 것이란 무엇이며, 악한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깨달아 영적인 사랑을 이루게 한다.
무슨 일이든 좋은 뜻으로, 선한 동기로 해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악한 생각을 하며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혀 본인에게 한 말이 아닌데도 자신을 겨냥한 것이라며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기도 하고, 주위 사람들과 자주 충돌하면서 작은 일에도 과민반응을 일으킵니다. 또 쉽게 자존심에 상처를 받고 스스로를 주위와 격리시키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이처럼 악한 생각은 자신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백해무익한 것입니다.
1.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지 않는 것
사랑의 속성 중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마음에 악은 모양도 품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가령 잘사는 친구를 보면 시기, 질투가 나고 괜히 뽐내는 것 같아 밉기도 하지요. ‘친구는 잘사는데 나는 이게 뭔가?’ ‘그가 망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스친다면 이것이 바로 악한 생각입니다.
그러면 악한 것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 말씀에 비춰 볼 때 하나님 뜻이 아닌 모든 것을 가리킵니다. 악한 생각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상대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생각입니다.
마음에 영적인 사랑이 있으면 결코 악한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거나 사고가 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지요. 내 아내가, 내 남편이, 내자녀가 항상 건강하고 안전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남이 잘못되기를 바라고 상대의 불행을 기뻐하는 것은 그만큼 사랑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니 상대의 허물이나 약점을 들추며 전하려고 하지요.
혹여 남의 험담에 귀가 솔깃해진다면 자신을 점검해 봐야 합니다. 만일 자신의 부모를 헐뜯는다면 가만히 있을 사람이 없으며 당장 나무랄 것입니다. 혹 상대가 그릇된 길로 가는 것을 막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 위해 사실을 알아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가 아닌데도 남의 말이 궁금하고 솔깃해진다면 대개 험담하고 수군수군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잠언 17장 9절에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말씀했습니다. 선하고 사랑이 있는 사람은 남의 허물을 덮어 주려고 합니다. 또 마음에 영적인 사랑이 있으면 남이 잘될 때 시기 질투하지도 않으며 상대가 잘되고 사랑받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상대를 판단 정죄하는 생각입니다.
어떤 성도가 크리스천으로서 가서는 안 될 곳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때 여러분이라면 무슨 생각이 먼저 떠오르겠습니까? 마음에 악이 있는 만큼 ‘어떻게 저럴 수 있지?’ 하고 안 좋게 생각합니다. 좀 더 선하다면 ‘왜 저런 곳에 갈까?’ 의아해하다가 ‘뭔가 사정이 있겠지.’ 하고 좋은 쪽으로 바꾸지요. 그러나 영적인 사랑이 있으면 처음부터 악한 생각 자체가 들지 않습니다. 설령 상대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전해 듣는다 해도 사실을 확인할 때까지 섣불리 판단하지 않지요.
야고보서 4장 12절에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말씀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재판장으로서 판단하시기에 사람이 남을 판단하는 것은 악입니다. 설령 상대가 잘못했을지라도 영적인 사랑이 있으면 ‘상대가 옳다, 그르다’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습니다. 그를 긍휼히 여기며 어찌하든 살릴 길을 생각하지요.
영적인 사랑은 허물을 덮어 주고 용서할 뿐 아니라 상대가 회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바른길로 가도록 진리를 알려 주고 변화되도록 감동을 줍니다. 허물 많은 사람도 사랑하기에 어찌하든 믿어 주고 도움을 주고자 하지요.
셋째로, 하나님 뜻에 위배되는 모든 생각입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사람을 선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도덕이나 양심은 선의 절대적인 기준이 아닙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것도 많습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만이 선의 절대적인 기준입니다. 주님을 처음 영접한 사람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아무리 선하게 살았다고 자부하던 사람도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보면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악한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선의 절대적인 기준인 하나님 말씀에 어긋난 것은 다 악이며 죄이기 때문입니다(요일 3:4).
그러면 죄와 악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이 둘을 나무에 비유한다면, ‘악’은 보이지 않는 땅속의 뿌리와 같습니다. ‘죄’는 눈에 보이는 줄기와 잎, 열매입니다. 뿌리가 있으므로 줄기와 잎, 열매가 나오듯이 죄는 악에서 나오는 산물입니다. 즉 악은 땅속 깊숙이 자리 잡은 뿌리와 같이 마음 안의 ‘속성’입니다. 이 악이 구체적인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6장 45절에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욕을 하며 가시 돋친 말과 함께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이는 마음에 있는 미움이라는 악이 욕이나 가시 돋친 말, 폭력이라는 행함 곧 죄로 나온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에 악이 있다고 반드시 죄를 짓지는 않습니다. 교양이 있거나 하나님 말씀을 듣고 절제한다면 죄를 짓지는 않지요.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본성 속의 악까지 다 버려야 성결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의 계명도 압축하면 ‘사랑’이지요. 결국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악이며 죄입니다. 하나님과 영혼들을 사랑하는 만큼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영적인 사랑을 이룰 수 있습니다.
2.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으려면
악한 것을 보고 듣지 않으면 악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만일 보고 들었다면 떠올리거나 기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마음대로 쉽게 통제되지가 않습니다. 악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하면 더욱 잘 떠오르기 때문에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불같이 기도하면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하지요.
혹여 일부러 악한 것을 보고 듣고 떠올리는 일은 없어야 하며 순간적으로 스치는 악한 생각까지도 버려야 합니다. 악한 일에 결코 가담해서도 안 되지요.
요한이서 1장 10~11절에 “누구든지 이 교훈(그리스도의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예하는 자임이니라” 말씀한 대로 철저히 악을 경계하고 용납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은 타고난 죄성과 성장하면서 보고 들은 비진리를 바탕으로 자기를 만들어 나갑니다. 주님을 영접한 후 죄성과 비진리를 발견하여 버려 나가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죄성과 비진리를 버리는 데에는 많은 인내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진리보다 비진리가 더 익숙하고, 비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만 버리기는 상대적으로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하면 그가 좋아하는 것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싫어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면 계명을 지키며 악은 모양이라도 버릴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에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말씀했습니다. 악은 무익한 것이요, 악을 심으면 재앙을 거둘 뿐입니다(잠 22:8). 자신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자녀에게 질병이 오거나 사고를 당하고 가난을 겪으며 가정불화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악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악을 미워하면서 ‘말씀’과 ‘기도’가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해야 악한 생각을 물리치고 선한 생각을 할 수 있지요. 또한 불같이 기도하면서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되새길 때 미처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실 속의 악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불같이 기도할 때에 마음의 악을 버릴 수 있지요. 그러므로 말씀과 기도로 신속히 악을 벗어 버림으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악한 것을 생각하는 것이란 무엇일까요?
① 상대가 ( )되기를 바라는 생각이다.
② 상대를 ( ) ( )하는 생각이다.
③ 하나님 ( )에 ( )되는 모든 생각이다.
2. 죄와 악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3. 악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악의 모양 (살전 5:22)
사람의 본성에는 부모의 기를 통해 받은 악이 있지만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다가 극한 상황에 부딪히면 드러난다.
“사흘 굶어서 남의 집 담장 안 넘을 사람 없다”는 속담처럼 온전히 성결을 이루기 전에는 극한 상황에서 자신도 모르는 악이 드러나는 것이다. 파리 똥이 아무리 작아도 똥인 것처럼 설령 죄를 짓지 않는다 해도 흠도 티도 없으신 하나님에 비할 때 온전하지 않은 것이 모두 악의 모양이다.
교육목표 : 악한 것이란 무엇이며, 악한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깨달아 영적인 사랑을 이루게 한다.
무슨 일이든 좋은 뜻으로, 선한 동기로 해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악한 생각을 하며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혀 본인에게 한 말이 아닌데도 자신을 겨냥한 것이라며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기도 하고, 주위 사람들과 자주 충돌하면서 작은 일에도 과민반응을 일으킵니다. 또 쉽게 자존심에 상처를 받고 스스로를 주위와 격리시키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이처럼 악한 생각은 자신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백해무익한 것입니다.
1.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지 않는 것
사랑의 속성 중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마음에 악은 모양도 품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가령 잘사는 친구를 보면 시기, 질투가 나고 괜히 뽐내는 것 같아 밉기도 하지요. ‘친구는 잘사는데 나는 이게 뭔가?’ ‘그가 망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스친다면 이것이 바로 악한 생각입니다.
그러면 악한 것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 말씀에 비춰 볼 때 하나님 뜻이 아닌 모든 것을 가리킵니다. 악한 생각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상대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생각입니다.
마음에 영적인 사랑이 있으면 결코 악한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거나 사고가 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지요. 내 아내가, 내 남편이, 내자녀가 항상 건강하고 안전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남이 잘못되기를 바라고 상대의 불행을 기뻐하는 것은 그만큼 사랑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니 상대의 허물이나 약점을 들추며 전하려고 하지요.
혹여 남의 험담에 귀가 솔깃해진다면 자신을 점검해 봐야 합니다. 만일 자신의 부모를 헐뜯는다면 가만히 있을 사람이 없으며 당장 나무랄 것입니다. 혹 상대가 그릇된 길로 가는 것을 막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 위해 사실을 알아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가 아닌데도 남의 말이 궁금하고 솔깃해진다면 대개 험담하고 수군수군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잠언 17장 9절에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말씀했습니다. 선하고 사랑이 있는 사람은 남의 허물을 덮어 주려고 합니다. 또 마음에 영적인 사랑이 있으면 남이 잘될 때 시기 질투하지도 않으며 상대가 잘되고 사랑받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상대를 판단 정죄하는 생각입니다.
어떤 성도가 크리스천으로서 가서는 안 될 곳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때 여러분이라면 무슨 생각이 먼저 떠오르겠습니까? 마음에 악이 있는 만큼 ‘어떻게 저럴 수 있지?’ 하고 안 좋게 생각합니다. 좀 더 선하다면 ‘왜 저런 곳에 갈까?’ 의아해하다가 ‘뭔가 사정이 있겠지.’ 하고 좋은 쪽으로 바꾸지요. 그러나 영적인 사랑이 있으면 처음부터 악한 생각 자체가 들지 않습니다. 설령 상대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전해 듣는다 해도 사실을 확인할 때까지 섣불리 판단하지 않지요.
야고보서 4장 12절에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말씀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재판장으로서 판단하시기에 사람이 남을 판단하는 것은 악입니다. 설령 상대가 잘못했을지라도 영적인 사랑이 있으면 ‘상대가 옳다, 그르다’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습니다. 그를 긍휼히 여기며 어찌하든 살릴 길을 생각하지요.
영적인 사랑은 허물을 덮어 주고 용서할 뿐 아니라 상대가 회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바른길로 가도록 진리를 알려 주고 변화되도록 감동을 줍니다. 허물 많은 사람도 사랑하기에 어찌하든 믿어 주고 도움을 주고자 하지요.
셋째로, 하나님 뜻에 위배되는 모든 생각입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사람을 선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도덕이나 양심은 선의 절대적인 기준이 아닙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것도 많습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만이 선의 절대적인 기준입니다. 주님을 처음 영접한 사람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아무리 선하게 살았다고 자부하던 사람도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보면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악한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선의 절대적인 기준인 하나님 말씀에 어긋난 것은 다 악이며 죄이기 때문입니다(요일 3:4).
그러면 죄와 악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이 둘을 나무에 비유한다면, ‘악’은 보이지 않는 땅속의 뿌리와 같습니다. ‘죄’는 눈에 보이는 줄기와 잎, 열매입니다. 뿌리가 있으므로 줄기와 잎, 열매가 나오듯이 죄는 악에서 나오는 산물입니다. 즉 악은 땅속 깊숙이 자리 잡은 뿌리와 같이 마음 안의 ‘속성’입니다. 이 악이 구체적인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6장 45절에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욕을 하며 가시 돋친 말과 함께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이는 마음에 있는 미움이라는 악이 욕이나 가시 돋친 말, 폭력이라는 행함 곧 죄로 나온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에 악이 있다고 반드시 죄를 짓지는 않습니다. 교양이 있거나 하나님 말씀을 듣고 절제한다면 죄를 짓지는 않지요.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본성 속의 악까지 다 버려야 성결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의 계명도 압축하면 ‘사랑’이지요. 결국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악이며 죄입니다. 하나님과 영혼들을 사랑하는 만큼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영적인 사랑을 이룰 수 있습니다.
2.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으려면
악한 것을 보고 듣지 않으면 악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만일 보고 들었다면 떠올리거나 기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마음대로 쉽게 통제되지가 않습니다. 악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하면 더욱 잘 떠오르기 때문에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불같이 기도하면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하지요.
혹여 일부러 악한 것을 보고 듣고 떠올리는 일은 없어야 하며 순간적으로 스치는 악한 생각까지도 버려야 합니다. 악한 일에 결코 가담해서도 안 되지요.
요한이서 1장 10~11절에 “누구든지 이 교훈(그리스도의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예하는 자임이니라” 말씀한 대로 철저히 악을 경계하고 용납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은 타고난 죄성과 성장하면서 보고 들은 비진리를 바탕으로 자기를 만들어 나갑니다. 주님을 영접한 후 죄성과 비진리를 발견하여 버려 나가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죄성과 비진리를 버리는 데에는 많은 인내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진리보다 비진리가 더 익숙하고, 비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만 버리기는 상대적으로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하면 그가 좋아하는 것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싫어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면 계명을 지키며 악은 모양이라도 버릴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에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말씀했습니다. 악은 무익한 것이요, 악을 심으면 재앙을 거둘 뿐입니다(잠 22:8). 자신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자녀에게 질병이 오거나 사고를 당하고 가난을 겪으며 가정불화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악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악을 미워하면서 ‘말씀’과 ‘기도’가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해야 악한 생각을 물리치고 선한 생각을 할 수 있지요. 또한 불같이 기도하면서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되새길 때 미처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실 속의 악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불같이 기도할 때에 마음의 악을 버릴 수 있지요. 그러므로 말씀과 기도로 신속히 악을 벗어 버림으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악한 것을 생각하는 것이란 무엇일까요?
① 상대가 ( )되기를 바라는 생각이다.
② 상대를 ( ) ( )하는 생각이다.
③ 하나님 ( )에 ( )되는 모든 생각이다.
2. 죄와 악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3. 악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악의 모양 (살전 5:22)
사람의 본성에는 부모의 기를 통해 받은 악이 있지만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다가 극한 상황에 부딪히면 드러난다.
“사흘 굶어서 남의 집 담장 안 넘을 사람 없다”는 속담처럼 온전히 성결을 이루기 전에는 극한 상황에서 자신도 모르는 악이 드러나는 것이다. 파리 똥이 아무리 작아도 똥인 것처럼 설령 죄를 짓지 않는다 해도 흠도 티도 없으신 하나님에 비할 때 온전하지 않은 것이 모두 악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