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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공과
2021-02-26 제9과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지 않는 것 고린도전서 13:5
읽을말씀 : 고린도전서 13:5  |  외울말씀 : 누가복음 6:45 | 참고 말씀: 야고보서 4:12, 갈라디아서 6:7
교육목표 : 악한 것이란 무엇이며, 악한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깨달아 영적인 사랑을 이루게 한다.


   무슨 일이든 좋은 뜻으로, 선한 동기로 해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악한 생각을 하며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혀 본인에게 한 말이 아닌데도 자신을 겨냥한 것이라며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기도 하고, 주위 사람들과 자주 충돌하면서 작은 일에도 과민반응을 일으킵니다. 또 쉽게 자존심에 상처를 받고 스스로를 주위와 격리시키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이처럼 악한 생각은 자신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백해무익한 것입니다.
   
   
   1.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지 않는 것
   
   사랑의 속성 중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마음에 악은 모양도 품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가령 잘사는 친구를 보면 시기, 질투가 나고 괜히 뽐내는 것 같아 밉기도 하지요. ‘친구는 잘사는데 나는 이게 뭔가?’ ‘그가 망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스친다면 이것이 바로 악한 생각입니다.
   그러면 악한 것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 말씀에 비춰 볼 때 하나님 뜻이 아닌 모든 것을 가리킵니다. 악한 생각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상대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생각입니다.
   마음에 영적인 사랑이 있으면 결코 악한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거나 사고가 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지요. 내 아내가, 내 남편이, 내자녀가 항상 건강하고 안전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남이 잘못되기를 바라고 상대의 불행을 기뻐하는 것은 그만큼 사랑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니 상대의 허물이나 약점을 들추며 전하려고 하지요.
   혹여 남의 험담에 귀가 솔깃해진다면 자신을 점검해 봐야 합니다. 만일 자신의 부모를 헐뜯는다면 가만히 있을 사람이 없으며 당장 나무랄 것입니다. 혹 상대가 그릇된 길로 가는 것을 막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 위해 사실을 알아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가 아닌데도 남의 말이 궁금하고 솔깃해진다면 대개 험담하고 수군수군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잠언 17장 9절에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말씀했습니다. 선하고 사랑이 있는 사람은 남의 허물을 덮어 주려고 합니다. 또 마음에 영적인 사랑이 있으면 남이 잘될 때 시기 질투하지도 않으며 상대가 잘되고 사랑받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상대를 판단 정죄하는 생각입니다.
   어떤 성도가 크리스천으로서 가서는 안 될 곳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때 여러분이라면 무슨 생각이 먼저 떠오르겠습니까? 마음에 악이 있는 만큼 ‘어떻게 저럴 수 있지?’ 하고 안 좋게 생각합니다. 좀 더 선하다면 ‘왜 저런 곳에 갈까?’ 의아해하다가 ‘뭔가 사정이 있겠지.’ 하고 좋은 쪽으로 바꾸지요. 그러나 영적인 사랑이 있으면 처음부터 악한 생각 자체가 들지 않습니다. 설령 상대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전해 듣는다 해도 사실을 확인할 때까지 섣불리 판단하지 않지요.
   야고보서 4장 12절에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말씀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재판장으로서 판단하시기에 사람이 남을 판단하는 것은 악입니다. 설령 상대가 잘못했을지라도 영적인 사랑이 있으면 ‘상대가 옳다, 그르다’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습니다. 그를 긍휼히 여기며 어찌하든 살릴 길을 생각하지요.
   영적인 사랑은 허물을 덮어 주고 용서할 뿐 아니라 상대가 회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바른길로 가도록 진리를 알려 주고 변화되도록 감동을 줍니다. 허물 많은 사람도 사랑하기에 어찌하든 믿어 주고 도움을 주고자 하지요.
   
   셋째로, 하나님 뜻에 위배되는 모든 생각입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사람을 선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도덕이나 양심은 선의 절대적인 기준이 아닙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것도 많습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만이 선의 절대적인 기준입니다. 주님을 처음 영접한 사람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아무리 선하게 살았다고 자부하던 사람도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보면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악한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선의 절대적인 기준인 하나님 말씀에 어긋난 것은 다 악이며 죄이기 때문입니다(요일 3:4).
   그러면 죄와 악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이 둘을 나무에 비유한다면, ‘악’은 보이지 않는 땅속의 뿌리와 같습니다. ‘죄’는 눈에 보이는 줄기와 잎, 열매입니다. 뿌리가 있으므로 줄기와 잎, 열매가 나오듯이 죄는 악에서 나오는 산물입니다. 즉 악은 땅속 깊숙이 자리 잡은 뿌리와 같이 마음 안의 ‘속성’입니다. 이 악이 구체적인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6장 45절에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욕을 하며 가시 돋친 말과 함께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이는 마음에 있는 미움이라는 악이 욕이나 가시 돋친 말, 폭력이라는 행함 곧 죄로 나온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에 악이 있다고 반드시 죄를 짓지는 않습니다. 교양이 있거나 하나님 말씀을 듣고 절제한다면 죄를 짓지는 않지요.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본성 속의 악까지 다 버려야 성결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의 계명도 압축하면 ‘사랑’이지요. 결국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악이며 죄입니다. 하나님과 영혼들을 사랑하는 만큼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영적인 사랑을 이룰 수 있습니다.
   
   
   2.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으려면
   
   악한 것을 보고 듣지 않으면 악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만일 보고 들었다면 떠올리거나 기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마음대로 쉽게 통제되지가 않습니다. 악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하면 더욱 잘 떠오르기 때문에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불같이 기도하면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하지요.
   혹여 일부러 악한 것을 보고 듣고 떠올리는 일은 없어야 하며 순간적으로 스치는 악한 생각까지도 버려야 합니다. 악한 일에 결코 가담해서도 안 되지요.
   요한이서 1장 10~11절에 “누구든지 이 교훈(그리스도의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예하는 자임이니라” 말씀한 대로 철저히 악을 경계하고 용납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은 타고난 죄성과 성장하면서 보고 들은 비진리를 바탕으로 자기를 만들어 나갑니다. 주님을 영접한 후 죄성과 비진리를 발견하여 버려 나가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죄성과 비진리를 버리는 데에는 많은 인내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진리보다 비진리가 더 익숙하고, 비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만 버리기는 상대적으로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하면 그가 좋아하는 것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싫어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면 계명을 지키며 악은 모양이라도 버릴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에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말씀했습니다. 악은 무익한 것이요, 악을 심으면 재앙을 거둘 뿐입니다(잠 22:8). 자신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자녀에게 질병이 오거나 사고를 당하고 가난을 겪으며 가정불화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악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악을 미워하면서 ‘말씀’과 ‘기도’가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해야 악한 생각을 물리치고 선한 생각을 할 수 있지요. 또한 불같이 기도하면서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되새길 때 미처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실 속의 악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불같이 기도할 때에 마음의 악을 버릴 수 있지요. 그러므로 말씀과 기도로 신속히 악을 벗어 버림으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악한 것을 생각하는 것이란 무엇일까요?
   ① 상대가 ( )되기를 바라는 생각이다.
   ② 상대를 ( ) ( )하는 생각이다.
   ③ 하나님 ( )에 ( )되는 모든 생각이다.
   
   2. 죄와 악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3. 악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악의 모양 (살전 5:22)
   사람의 본성에는 부모의 기를 통해 받은 악이 있지만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다가 극한 상황에 부딪히면 드러난다.
   “사흘 굶어서 남의 집 담장 안 넘을 사람 없다”는 속담처럼 온전히 성결을 이루기 전에는 극한 상황에서 자신도 모르는 악이 드러나는 것이다. 파리 똥이 아무리 작아도 똥인 것처럼 설령 죄를 짓지 않는다 해도 흠도 티도 없으신 하나님에 비할 때 온전하지 않은 것이 모두 악의 모양이다.
지난 주 설교요약
2021-02-21 천국 (29) - 3천층 ① - 이재록 목사 야고보서 1:12
오늘은 3천층의 환경과 상급 및 영광, 마음을 영으로 일군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생명의 면류관, 생명을 드리는 시험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1. 천국 3천층 집의 규모와 시설, 보석
   
   3천층의 집은 화려하고 웅장하며 거대한 규모의 복층 구조로 되어 있어 이 땅의 백만장자라도 가히 흉내 낼 수 없으리만큼 아름답고 황홀합니다. 골프장, 수영장, 무도회장 등 집주인이 원하는 모든 시설이 상급으로 주어지므로 이웃집에 있는 시설을 이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1천층이나 2천층에 비해 3천층의 영혼들에게 이처럼 파격적인 대우를 해 주시는 것은, 그들이 가장 중요한 성결을 이뤘기 때문입니다.
   3천층처럼 새 예루살렘의 집도 기본적으로 주인이 원하는 모든 시설이 갖춰져 있지만 규모와 아름다움과 영화로움의 정도가 3천층의 집들과는 큰 차이가 납니다. 우선 집의 크기가 다른데 3천층 집의 대지 면적이 60이라면 새 예루살렘의 집은 100정도입니다. 그것도 새 예루살렘에서 가장 작은 집의 크기를 100이라 할 때 그렇습니다.
   규모뿐만 아니라 집의 모양과 형태의 아름다움, 집을 장식하는 보석도 크게 차이 납니다. 3천층에도 수많은 보석들이 있지만 새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종류가 있는 것은 아니며 이중, 삼중의 빛을 내는 보석은 오직 새 예루살렘에만 있습니다. 3천층의 보석은 1천층이나 2천층의 보석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빛을 내지만, 새 예루살렘에 비하면 단순하고 기본적인 보석만 있고, 같은 종류의 보석이라도 새 예루살렘의 보석보다는 못합니다.
   3천층과 새 예루살렘 집의 특징은 문패가 없다는 점입니다. 집에서 주인의 마음을 대변하는 독특한 향과 빛이 나오므로 굳이 문패를 달지 않아도 누구의 집인지를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천국 백성 전체 수에 비하면 3천층과 새 예루살렘에 들어간 사람의 수가 매우 적기 때문이지요.
   
   
   2. 천사들의 섬김 수준과 구름자가용
   
   3천층부터는 천사의 섬김 차원이 뚜렷이 달라집니다. 바로 개인적으로 시중을드는 천사가 따르고, 그것도 한 천사가 아닌 여러 천사가 따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땅에서 얼마나 더 큰 믿음과 순종의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는지에 따라 수종하는 천사의 수가 다르며, 천사의 수만 보아도 각 사람의 영광과 존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은 성결은 기본이요 온 집에 충성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므로 기본적으로 따르는 천사의 수도 3천층보다 훨씬 많습니다. 왜냐하면 상급으로 주어지는 집이 워낙 커서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각종 시설과 물건들을 관리하는 천사, 면류관만 관리하는 천사, 옷만 관리하는 천사, 각종 부대시설을 관리하는 각각의 천사들도 필요합니다. 곳곳의 정원을 관리하는 천사, 골프장이나 수영장을 관리하는 천사, 놀이동산을 관리하는 천사, 방문객들을 안내하는 천사, 연회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천사,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는 천사 등 수많은 천사가 필요하지요.
   3천층도 주인이 원하는 모든 시설이 주어지므로 많은 천사가 주어집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시중 드는 천사는 오직 주인을 사랑하고 경외합니다. 여기에 새 예루살렘에서 수종하는 천사들은 주인의 마음을 헤아려 주인이 시키지 않아도 그 마음을 알아서 행하는 것입니다. 최고의 섬김으로 주인을 섬기니 이 땅의 왕자, 공주들에 비할 수 없는 최고의 대우를 받습니다.
   
   3천층부터는 교통 수단 중에 구름자가용이 있습니다. 수증기로 된 구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천국에 있는 영광의 구름으로 만드신 것으로 주로 천사가 운전을 해 줍니다. 3천층에는 개인용은 없고 공용만 있는데,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탈 수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에서는 개인용 구름자가용이 주어집니다.
   구름자가용은 그 자체만으로도 영광과 위엄과 권세를 나타내며 새 예루살렘의 성도들은 구름자가용을 타고 주님과 함께 마음껏 여행할 수 있습니다. 이때 천군 천사가 호위하며 시중을 드는데, 마치 왕이 행차할 때 많은 신하들의 호위를 받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천군 천사들의 호위를 받는 자체도 그 사람의 권세와 영광을 나타냅니다.
   
   
   3. 머리카락의 길이와 장식품 등 성도들의 외모
   
   이 밖에도 2천층 이하의 성도들과 3천층 이상에 들어간 성도들은 겉모습만 보아도 큰 차이가 납니다. 각 사람에게서 나오는 영광의 빛이 다르고, 옷과 옷의 문양, 달려 있는 장식, 머리 모양 등이 다르지요. 이를 통해 그가 얼마나 주님을 닮아 성결된 사람인지, 얼마나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인지를 금방 구별할 수 있습니다.
   천국에서는 남녀가 모두 살짝 웨이브가 있는 금빛 머리카락을 지닙니다. 남자는 목선 정도까지 내려온 반면 여자는 성결된 정도에 따라 머리카락 길이가 달라집니다. 고린도전서 11장 15절에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말씀했듯이 낙원의 여인들은 머리카락이 어깨선에 닿을 정도로 가장 짧고 1천층, 2천층으로 갈수록 더 깁니다. 3천층과 새 예루살렘의 여인들은 길고 탐스러운 머리카락이 영광스러운 상급으로 주어집니다. 3천층의 여인들은 머리카락의 길이가 척추 중간 정도까지 이르고 새 예루살렘의 여인들은 머리카락이 척추 끝까지 닿을 정도로 깁니다.
   머리카락의 길이 자체도 영광과 상급이지만 그에 따른 머리 장식품도 달라집니다. 낙원에서는 아무런 장식품도 주어지지 않으며 1, 2천층은 각각의 상급에 따라 장식품이 조금씩 주어집니다. 그런데 3천층부터는 머리 장식품이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마치 왕비나 공주들의 머리 장식이 일반 백성들과 달라 사람의 신분을 상징하듯이 단순한 장식품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4. 생명을 드리는 시험과 생명의 면류관
   
   하나님께서 3천층의 영혼들에게 기본적으로 주시는 면류관이 있는데 바로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생명의 면류관이라는 이름을 붙이신 이유는 3천층에 들어온 영혼들이 주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드리는 시험을 통과했기 때문입니다(약 1:12).
   저에게도 생명을 잃는 시험이 여러 차례 왔는데 그중 두 가지 사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시험은 1990년도의 목사 파직 사건입니다. 당시 소속돼 있던 교단 총회에서 본 교회에 몇 가지 시정 명령을 내렸습니다. 모두 터무니없는 것들이어서 우리는 상소 이유서를 보내고, 성경에 비춰 무엇이 어긋나는지 알려 주면 시정하겠다고 했습니다. 교단 총회에서는 우리의 상소 이유서를 “이유가 없어서 기각하기로 했다”고 통고했습니다. 선배 목사님들은 교단의 머리들이 콜라를 보고 사이다라고 해도 “아멘” 하고, 무조건 잘못했다고 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그래야 저와 교회가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진리를 보고 비진리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정녕 하나님을 믿고 사랑한다면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한 저와 교회는 악으로 대항치 않았고, 오직 선과 사랑으로만 행했습니다. 결국 대의원 300명 중 90여 명밖에 참석지 않은 교단 총회에서 48명의 동의로, 목사 파직이 가결되었습니다.
   목사가 파직을 당한다면 생명을 잃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의를 지킨 사람을 결코 저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성결의 오중복음을 마음껏 외칠 수 있는 새로운 장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두 번째 시험은 1992년에 있었습니다. 제가 엄청난 양의 피를 흘렸던 일입니다. 병원에 가서 간단한 조치만 받으면 되는 상황이었지만 세상을 의존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늘 외쳤던 제가 막상 죽음 앞에서 세상과 타협할 수는 없었습니다.
   차라리 생명을 잃을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는 길을 택했습니다. 결국 저의 목숨은 끊어졌고, 제 영혼은 주님 앞에 갔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마지막 때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도록 다시 살려주셨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굳게 지키는 것이 생명을 드리는 시험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성령 받은 이후, 믿음이 성장함에 따라 계속해서 크고 작은 시험이 따릅니다. 생활 속에서 매 순간 ‘진리를 택할 것이냐, 세상과 타협할 것이냐?’ 하는 시험이 옵니다. 그때마다 진리를 택하는 사람은 그만큼 시험을 통과해서 영으로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여 항상 성령의 법을 좇아 나가면 믿음의 시험들을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지요.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육체의 소욕을 끊어 나가야 합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내 원대로 살고자 하는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백한 대로입니다. 어떤 순간에도 항상 주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 되었다면 그는 정녕 자기 생명을 드린 것과 같습니다. 나를 형성하고 있었던 육을 온전히 벗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를 ‘살아서 하는 순교’라고 합니다. 또한 이것이 ‘죽도록 충성’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했습니다. 보통 ‘충성’이라 하면, 맡은 사명을 열심히 감당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진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충성은 영적인 충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우선적으로 우리가 영의 마음을 이루는 참 자녀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물론 사명 감당도 동반되어야 하지요. 사명을 감당해야 자신을 더 발견할 수 있고 변화되기도 쉽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면류관은 생명을 바치는 시험을 믿음으로 통과했을 때 주어지기 때문에, 주님의 이름으로 순교한 사람들도 3천층에 들어가서 생명의 면류관을 받습니다. 순교할 당시에는 비록 성결되지 못했다 해도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순교할 중심이라면, 능히 육을 벗고 성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선교지에서 죽었다 하여 무조건 순교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본문에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다 했지요. 그리고 양심 심판으로 구원받은 영혼 중에서도 3천층에 들어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1년 2월 21일 주일)
* 사회: 조혁희 목사
개회찬송 3장
성시교독 52번
찬송 493장
기도 최종태 장로
성경봉독 로마서 2:14~15
찬양 주의 사랑 안에서(영상)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천국(30)-3천층②(영상설교)
당회장님
찬송 만민 찬양 61장
주일 저녁예배 (2021년 2월 21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조대희 목사
대표기도 서덕분 전도사
성경봉독 데살로니가전서 4:1
특송 이수희 집사 & 이혜경 집사
설교 정성
이수진 목사
수요 예배 (2월 24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김기석 목사
대표기도 박금미 전도사
성경봉독 열왕기상 18:30~35
설교 갈멜산 제단의 교훈
문신현 목사
금요 철야예배 (2월 26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문태규 목사없음
대표기도 서진범 목사
성경봉독 요한일서 2:20~23
찬양 샬롬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영상)
설교 요한일서 강해( 12)(영상설교)
당회장님
새벽 예배
인도 당분간 없습니다.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1-02-21 2021년 2월 셋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새로 나오셔서 등록해 주신 분들과 인터넷으로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당회장님 소식

● 당회장님 저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스웨덴어(629번째)가 종이책으로 발간되었고,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우크라이나어가 전자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 당회장님 신앙칼럼이 「기독선교신문」, 「시사뉴스」 등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교회 소식

● 다음 주일 저녁예배 시 2020년도 각 부문 우수상 시상이 있습니다(비대면으로 진행).
※ 우수상 대상자 명단
교역자: 오인숙4/ 지역장: 김일화2/ 조장: 조성범2, 오은혜4,
구역장: 정명숙2, 박춘애3, 윤홍국, 원창순1, 윤정옥5, 정용혁1
교사: 류순엽1/ 부장: 서상기1, 강동호3
예능위원회: 이현미13, 선지영1, 헤어 메이크업팀
예배국: 미화부/ 기도제물: 조영순2
샤론선교회: 한숙희1/ GCN방송: 이은혜2

● 우림북/ 3월 추천도서는「영혼육(상)」입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우림북 홈페이지 www.urimbooks.com)

● 당회장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조) 교보문고, 영풍문고, 반디 앤 루니스, 북스리브로, 예스24, 알라딘, 인터파크 등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자책(e-book)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이혜진10 자매(4청년, 19교구/ 이항묵1 성도·임춘옥1 권사의 자녀)
※ 2월 27일(토) 오후 3시 「JK아트컨벤션 4층 아트리움홀」


● 감사드립니다

강단 헌화/ 이웃나라(꽃꽂이 봉사: 예배국 미화부, 시설관리국)
주간 성경구절
2024-02-25
[주일]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요 10:27]
2024-02-26
[월요일]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요일 2:22]
2024-02-27
[화요일]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딛 3:10]
2024-02-28
[수요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엡 6:13]
2024-02-29
[목요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엡 6:14]
2024-03-01
[금요일]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엡 6:15]
2024-03-02
[토요일]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엡 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