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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공과
2021-03-05 제10과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 고린도전서 13:6
읽을말씀 : 고린도전서 13:6  |  외울말씀 : 요한복음 15:14 | 참고 말씀: 역대하 19:7, 요한복음 14:6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불의란 무엇이며,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불의는 국가의 흥망성쇠를 결정하고 개인의 삶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1.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 것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랑의 속성 중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악한 것을 생각지 않는다’는 것은 마음에 악은 모양도 품지 않는다는 뜻이고,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 것’은 행위로 드러나는 불의한 일들을 기뻐하지 않으며, 거기에 가담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가령, 부유한 친구를 보았을 때 시기, 질투가 나서 ‘친구는 잘사는데 나는 이게 뭔가? 친구가 망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스쳤다고 합시다. 이는 악한 생각입니다.
   그런데 그 친구의 회사가 부도났을 때, “잘산다고 뽐내더니 고소하다.” 하면서 쾌재를 부른다면 이는 불의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악한 일에 동조하고 가담했다면 적극적으로 불의를 기뻐한 것이지요. 불의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1) 세상 사람들도 불의라고 여기는 경우
   세상 사람들이 볼 때도 불의라 여기는 ‘일반적인 불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옳지 않은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거나 법과 절차를 어기면서까지 자신의 이익을 쌓아나가는 것은 불의입니다. 판사가 뇌물을 받고 부당한 판결을 내려 죄 없는 사람이 억울한 처벌을 받았다면 이 또한 불의이지요.
   역대하 19장 7절에 “너희는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삼가 행하라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불의함도 없으시고 편벽됨도 없으시고 뇌물을 받으심도 없으시니라” 말씀합니다. 사람의 눈은 가릴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으니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사랑을 받는 사람은 정당한 대가 외에는 바라지 않지요.
   
   2) 하나님께서 불의라고 여기시는 경우
   주 안에서의 불의는 일반적인 의미와는 조금 다릅니다. 세상의 법을 어기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뿐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는 온갖 죄가 다 불의입니다. 불의는 마음의 악이 구체적인 형태로 나온 죄이며, 죄 중에서도 특히 육체의 일에 해당합니다. 즉 마음에 있는 미움, 시기, 질투와 같은 악이 다툼, 폭행, 사기, 살인 등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온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9~10절에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안에서 불의는 구원과 직결됩니다. 그러니 불의를 행하는 형제를 본다면 애통하며 사랑으로 기도하고 말씀대로 살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나도 적당히, 좀 편하게 신앙생활 하고 싶다.’ 하며 부러워하거나 함께 동조한다면 주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없지요.
   주님은 흠과 티도 없으신 분인데 불의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벧전 3:18).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의 담을 헐기 위해 화목제물이 되어 주셨지요. 바로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런 큰 사랑을 깨닫는다면 결코 불의를 기뻐해서는 안 됩니다.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 사람은 단순히 불의를 행하지 않는 차원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갑니다. 요한복음 15장 14절에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말씀했습니다.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애통하는 사람은 그만큼 주님의 마음을 닮아 사랑이 많은 것입니다.
   
   
   2.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면 불의를 행치 않을 뿐 아니라 진리를 행하고, 나아가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그렇다면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첫째로, 복음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복음이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아 천국에 간다는 복된 소식입니다. 많은 사람이 진리를 찾기 위해 사상과 철학, 학문을 탐구하며 여러 종교 교리에서 답을 얻고자 합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14장 6절에 참된 진리가 무엇인지 명쾌하게 나와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말씀하셨지요. 즉 참된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을 통하지 않고는 천국에 갈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주님의 보혈로 죄 사함 받아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갈 수 있게 되었지요. 이처럼 삶의 목적을 알아 가치 있는 삶을 살게 되었으니 복음을 기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4절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뜻을 알기 때문에 복음을 듣고 주님을 영접해 구원받는 이들이 더해가는 것을 기뻐합니다. 자신보다 더 충성해 열매 맺는 사람을 보면 내 일처럼 기뻐하고 감사하며, 부흥하는 교회를 볼 때도 함께 기뻐하지요.
   
   둘째로, 진리에 속한 모든 것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사랑이 있으면 선, 사랑, 공의 등 진리에 속한 것을 보고 듣고 행하는 것을 기뻐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 말씀에 ‘섬기라, 이해하고 용서하라.’ 하셨으니 기쁨으로 순종합니다. 상대를 미워하고, 시기, 질투, 판단, 정죄하는 것이 너무나 싫어지지요. 그래서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사람은 상대가 잘되면 함께 기뻐하고 시기, 질투하지 않습니다. ‘상대가 잘못되었으면’ 하고 악한 생각을 하거나, 상대의 불행을 기뻐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불의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애통합니다. 또한 변개하지 않는 마음, 진실함, 정직함 등 선의 마음을 좋아합니다. 선한 말과 행실을 기뻐하지요.
   요한삼서 1장 4절에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을 너무나 기뻐하십니다. 따라서 영적인 사랑을 마음에 가득 채움으로 진리에 속한 일들을 볼 때 더욱 기뻐하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하나님 말씀을 믿고 그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진리만 기뻐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마음에 어둠과 비진리가 있을 때는 악한 것을 생각하고 불의를 기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차츰 변화되어 비진리의 마음을 온전히 벗으면 진리만 기뻐하는 마음이 됩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열심히 노력하는 과정이 따르지요.
   예를 들어, 초신자의 경우에는 예배드리는 것이 무조건 행복한 것만은 아닙니다. 교회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진리의 맛을 모릅니다. 예배 시간에 피곤해하거나 마음이 다른 데 있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어찌하든 성전에 나와 예배드리며 말씀대로 순종하고자 열심히 노력합니다. 구원받아 천국에 가기 위해서입니다. 진리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믿기에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사실도 믿습니다. 천국에서 각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급이 다르다는 것도 알지요. 그러니 더 열심히 성결을 이루며 충성하려고 노력합니다. 이처럼 진리와 함께 온전히 기뻐하지는 못한다 해도, 각자 믿음의 분량대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로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의를 벗고 오직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영적인 사랑을 온전히 이루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 ( ) 안에 알맞은 답을 넣어 보세요.
   1. 사랑은‘악한 것을 생각지 않는다’는 것은 ( )에 악은 ( )도 품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랑은 ‘( )를 기뻐하지 않는 것’은 행위로 드러나는 어떤 불미스런 일들을 기뻐하지 않고 거기에 가담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2.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① ( )을 기뻐하는 것이다.
   ② ( )에 속한 모든 것을 기뻐하는 것이다.
   ③ ( )을 믿고 그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불의를 행하다가 멸망당한 ‘아간’
   
   아간은 여리고성을 함락시킬 때 전리품을 숨겨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죽임당한 사람이다. 여호수아는 전리품을 모두 하나님께 바치라고 명령했는데 아간은 시날 산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 중의 금덩이 하나를 취한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하고 만다. 결국 아간은 그의 가족들과 소유물들과 함께 돌에 맞은 후 불살라졌다. 그 위에 돌무더기를 쌓았는데, 그곳이 바로 아골 골짜기이다(수 7장).
지난 주 설교요약
2021-02-28 천국 ( 30 ) - 3천층 ② - 이재록 목사 로마서 2:14~15
지난 시간에는 3천층에 들어갈 수 있는 신앙의 자격과, 생명의 면류관에 대해 말씀드렸고, 오늘은 양심 심판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주님을 알지 못한 사람들 중에도 너무나 의로운 행동을 한 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구원의 길을 마련해 주셨는데 바로 양심 심판입니다.
   
   
   1. 양심 심판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했고, 요한복음 3장 18절에는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했습니다.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세주라 입술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어야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이 땅에 구세주로 오시기 전인 구약 시대의 사람들과 신약 시대라도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양심 심판’ 입니다.
   로마서 2장 14~15절에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했습니다.
   여기서 율법은 하나님께서 택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것으로 구원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율법의 기준에 합당한 사람은 구원받지만 합당하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율법을 범했을 때 속죄할 수 있는 방법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이방인들에게는 율법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도 율법을 행한 것으로 인정받는 경우가 있는데, 자기 양심에 따라 선을 행한 경우입니다.
   
   ‘양심’이란,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 놓은 선과 악을 구분하는 판단 기준입니다. 사람마다 타고난 마음 밭과 성장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양심도 각자 다릅니다. 또 사람이 보기에는 양심이 바르다 해도, 하나님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깨끗한 양심을 찾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양심은 온전치 않지만, 그 안에 있는 선과 악을 통해 나름대로의 판단 기준을 가지고 ‘이것은 선이다’ 판단하여 선을 좇거나, ‘이것은 악이다’ 판단하여 좇지 않습니다. 이러한 양심은 곧 율법과 같은 역할을 하는데, 이를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따라서 율법이 없는 시대의 사람은 양심에 따라 선을 좇거나 악을 좇지 않으면 율법을 지킨 것과 같습니다.
   반대로, 양심에서 악인 줄 알면서도 행하거나 선인 줄 알면서도 행치 않았다면 율법을 어긴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율법이 없는 시대의 사람은 양심이 증거가 되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이후에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마음이 선한 사람들은 질서 있게 창조된 천지 만물을 보아도 신의 존재를 믿습니다.
   로마서 1장 20절에는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했고, 전도서 3장 11절에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했습니다. 마음이 선한 사람들은 본성적으로 신을 찾으며 막연하게나마 사후의 세계가 있음을 믿습니다. 하늘을 두려워하여 선하고 의롭게 살려고 힘쓰며 어느 정도는 진리인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가는 것입니다.
   
   만약 이들이 복음을 들었다면 당연히 주님을 영접하고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일단 구원에 이르게 해 주십니다. 이 땅의 삶을 마치면 윗음부로 들여 머물게 하면서, 구원의 도를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19절에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한 대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임당하신 후 윗음부로 가셨습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에 율법으로 구원받은 영혼들과 양심 심판에 의해 구원받은 영혼들은 모두 윗음부에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할 수 있었습니다. 신약 시대에 양심 심판으로 구원받는 영혼들도 윗음부에서 3일간 머무는 동안,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됩니다. 그 후에는 대심판 때까지 낙원의 가장자리에 마련된 대기 장소에서 대기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 되시기 때문에 양심 심판으로 구원받은 영혼들도 이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반면, 양심 심판으로 구원받지 못하는 영혼들은 아랫음부로 떨어지게 됩니다. 대심판 때까지 아랫음부에서 고통 받다가 이후엔 영원한 지옥불에 던져지는 것입니다.
   
   
   2. 양심 심판으로 구원받은 영혼들의 처소
   
   양심 심판으로 구원받은 영혼들도 각기 중심의 선(善)에 차이가 있고, 양심에 따라 의롭게 산 정도도 다릅니다. 그러므로 각자가 행한 대로 천국의 처소가 달라지며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요 사랑입니다.
   
   1) 천국 3천층에 들어가는 경우
   복음을 들은 영혼들이 3천층에 들어가려면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한다는 증거는 육을 온전히 벗고 성결되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을 위해 자기 목숨도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듣지 못한 영혼들 중에서도 자기 양심의 의와 선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버린 이들이 있습니다. 나라와 임금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버렸던 충신들이 그러한 예입니다. 비록 임금이 자신의 충정을 알아주지 않고 애매히 고난을 받게 해도 임금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양심의 의를 좇아, 죽기까지 변함없이 충성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이순신 장군은 예수 그리스도를 몰랐지만 참으로 진리에 합당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라와 임금을 위해서, 또한 백성을 위해 생명을 바쳐 충성했으며 자신의 명예나 권세, 부를 취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억울한 누명을 써도 누구를 원망하거나 원수를 갚고자 하지 않았지요.
   자신을 귀양 보냈던 임금에게 감사의 예를 다했으며, 그러한 임금과 나라를 위해 싸움터에 나가 생명이 다하기까지 싸웠습니다.
   그런가 하면, 때를 따라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하여 기도를 올리는 등 언제나 신을 인정하였습니다. 이러한 양심의 의는 진리 안에서의 의와도 부합됩니다. 진리 안에서 선의 3단계, 혹은 4단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진리에 합당한 선과 의를 가졌으되 그 선과 의를 지키기 위해 자기를 온전히 버렸던 분들이 복음을 들었다면, 그분들은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함은 물론 하나님을 위해 능히 생명도 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능히 3천층에 들어갈 수 있다고 인정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양심 심판을 통해 3천층에 들이시는 또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부모나 이웃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희생하는 고귀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의 경우입니다. 우리나라 전래 동화에 나오는 효녀 심청과 콩쥐의 선을 그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심청은 맹인이면서도 홀로 자신을 키워 준 아버지의 은혜에 감사하여 아버지를 지극 정성으로 섬겼고,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자기 목숨까지 스스로 버렸습니다.
   콩쥐는 자신을 심히 핍박하는 계모를 전혀 미워하지 않았고 성심으로 섬겼습니다. 계모가 데려온 딸 팥쥐까지도 친동생처럼 사랑하고 잘 보살펴 주었고, 팥쥐만을 심하게 편애해도 서운해하지 않고 선으로 이해했습니다. 이러한 콩쥐와 심청의 선은 진리 안에서도 높은 수준의 선입니다. 선의 3단계, 4단계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정말 이런 선을 지닌 사람이 있다면 그는 능히 3천층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2) 천국 2천층과 1천층에 들어가는 경우
   이처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희생하는 선을 나타낸 사람과, 자기 자신만 선을 지키며 산 사람의 선의 깊이는 전혀 다릅니다. 3천층에 들어간 사람들은 자기 자신만 선하게 산 것이 아닙니다. 선한 양심을 따라 헌신하고 희생하면서 자신은 죽어지는 의로운 행함을 보였고, 다른 사람도 그 선에 감동 받아 선하게 살 수 있도록 영향을 주기도 했던 것입니다.
   반면, 그저 자기 자신만 선하게 산 사람들은 2천층에 들어갑니다. 남을 위해 큰 선을 행한 일도 없으며, 그렇다고 악을 행한 일도 없습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선을 좇아 자신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간 사람들이 2천층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나라와 임금에 대해 의를 지켰던 신하들이 불의한 일에 대처하는 경우를 예로 들어, 마음의 의를 구분하여 보겠습니다.
   먼저, 3천층에 들어갈 수 있는 의로운 신하라면 불의한 일을 의롭게 개선할 수 있습니다. 그 모든 과정도 선 가운데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신이 어떤 불이익을 당한다 해도 묵묵히 참을 줄 알고 모함하는 상대에게 악으로 갚지도 않습니다. 2천층에 들어가는 신하라면 불의를 보고 참되, 선 가운데 모든 것을 인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장서서 어떤 것을 개선하려는 적극적인 선행을 보이지는 않습니다. 1천층에 들어갈 만한 신하는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합니다. 심히 마음이 상해 울분을 터트리기도 합니다. 또한 자기 의 가운데 불의에 대항하려다가 도리어 해를 입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을 듣지 못한 시대의 사람들이라도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선과 의를 정확하게 파악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온전한 공의와 사랑 가운데 각자의 양심에 따라 천국의 영원한 처소로 들이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그러면 복음을 들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도 여러분은 천국 가는 밝은 길을 압니다. 더구나 성결의 복음을 들음으로 새 예루살렘에 가는 길도 밝히 알지요. 그러므로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성결의 길을 따라 새 예루살렘까지 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1년 2월 28일 주일)
* 사회: 임학영 목사
개회찬송 37장 1절
성시교독 19번
찬송 265장
기도 이성숙 목사
성경봉독 야고보서 1:12
찬양 주 날 인도하네(영상)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천국(31)-3천층③(영상설교)
당회장님
찬송 만민 찬양 1장
주일 저녁예배 (2021년 2월 28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안성헌 목사
대표기도 최영자 목사
성경봉독 로마서 14:7~8
특송 성유진 형제
설교 순교
이수진 목사
수요 예배 (3월 3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이풍근 목사
대표기도 정규원 목사
성경봉독 마태복음 13:44
설교 자기 소유를 다 팔자
이미경 목사
금요 철야예배 (3월 5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박형렬 목사없음
대표기도 강승표 목사
성경봉독 요한일서 2:24~27
찬양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영상)
설교 요한일서 강해( 13)(영상설교)
당회장님
새벽 예배
인도 당분간 없습니다.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1-02-28 2021년 2월 넷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새로 나오셔서 등록해 주신 분들과 인터넷으로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당회장님 소식

● 당회장님 저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폴란드어(630번째), 따갈로그어(631번째)가 종이책으로 발간되었고, 벵골어, 체코어가 전자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 당회장님 신앙칼럼이 「기독선교신문」, 「시사뉴스」 등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교회 소식

● 만민뉴스 한글(938호), 영어(688호), 중국어(563호) 신문을 인터넷(PDF)으로 발행하였습니다(만민뉴스 홈페이지 www.manminnews.com).

● 오늘 저녁예배 시 2020년도 각 부문 우수상 시상이 있습니다(비대면으로 진행).
※ 우수상 대상자 명단
교역자: 오인숙4/ 지역장: 김일화2/ 조장: 조성범2, 오은혜4,
구역장: 정명숙2, 박춘애3, 윤홍국, 원창순1, 윤정옥5, 정용혁1
교사: 류순엽1/ 부장: 서상기1, 강동호3
예능위원회: 이현미13, 선지영1, 헤어 메이크업팀
예배국: 미화부/ 기도제물: 조영순2
샤론선교회: 한숙희1/ GCN방송: 이은혜2

● 만민기도원/ 작정 다니엘철야가 3월 15일부터 4월 4일까지 온라인으로 진행됩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 주제: 2021년 7가지 기도제목, 인도: 이복님 원장

● 우림북/ 3월 추천도서는「영혼육(상)」입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우림북 홈페이지 www.urimbooks.com)

● 당회장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조) 교보문고, 영풍문고, 반디 앤 루니스, 북스리브로, 예스24, 알라딘, 인터파크 등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자책(e-book)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감사드립니다

강단 헌화/ 이웃나라(꽃꽂이 봉사: 예배국 미화부, 시설관리국)
주간 성경구절
2024-03-03
[주일]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 10:45]
2024-03-04
[월요일]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요 13:14]
2024-03-05
[화요일]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고후 6:16]
2024-03-06
[수요일]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마 5:5]
2024-03-07
[목요일]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시 16:6]
2024-03-08
[금요일]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골 3:22]
2024-03-09
[토요일]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고후 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