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12
제11과사랑은 모든 것을 참고 믿으며 바라는 것
고린도전서 13:7
읽을말씀 : 고린도전서 13:7 | 외울말씀 : 고린도전서 13:7 | 참고 말씀: 고린도전서 15:19
교육목표 : 영적인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참고 믿고 바라는지에 대해 알려 준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다 보면 참아야 할 일이 매우 많습니다. 혈기나 짜증이 나도 참아야 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려는 마음도 참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의 개념을 설명할 때에도 가장 먼저 ‘오래 참고’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비진리를 버리기 위해 온갖 시련을 참는 자기와의 싸움이 ‘오래 참음’이라면 ‘모든 것을 참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바로 자신의 마음을 진리로 일군 후에 상대로 인해 겪어야 하는 모든 고통을 참는 것입니다. 즉 ‘오래 참음’보다 넓은 의미로 ‘영적인 사랑에 위배되는 모든 것을 참는 것’이지요.
1. 사랑은 모든 것을 참는 것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죄인들에 대해 잠잠히 참아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오직 선만 행하셨는데도 악한 사람들은 조롱하고 멸시하며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인생들이라 할지라도 참아 주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위해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기도하셨지요. 이처럼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참으신 사랑의 결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는 사람마다 하나님 자녀가 되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망에서 벗어나 영생에 이르게 되었지요.
우리 영혼의 주인 되신 아버지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고통을 기쁨으로 참고 기다리십니다.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사람들이 악을 행할지라도 선으로 변화되기를 바라보며 기다리셨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가증한 우상을 섬길지라도 다시 하나님이 참 신임을 나타내 보이셨지요. 만약 “너는 불의가 가득하니 도저히 안 되겠어. 가망이 없구나. 더 이상은 못 참겠다.”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면 구원받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우리는 당회장님을 통해서도 한 영혼 한 영혼이 변화될 때까지 얼마나 사랑으로 기다리며 오래 참아 주시는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연약하고 성격이 모난 사람이라도 언젠가 변화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을 기대하며 항상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셨지요. 온전히 변화될 때까지 성결의 복음을 가르치며 간절히 기도하기를 쉬지 않으셨습니다. 이처럼 모든 것을 참으며 기다리고 또 기다리니 결국 많은 성도가 좋은 일꾼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2. 사랑은 모든 것을 믿는 것
상대를 진정 사랑한다면 그의 모든 것을 믿어 줍니다. 설령 허물이 있고 부족한 모습이 보이더라도 흠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앞으로 변화될 것을 믿기에 사랑스럽게 바라봐 주지요. 서로를 신뢰하는 부부는 사랑으로 더욱 결속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서로 믿지 못하는 부부는 사사건건 다투며 의심하지요.
믿음은 상대에 대한 사랑의 크기를 보여 주는 척도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한다는 말과 같지요.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음으로 하나님의 벗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신실했던지 자신의 생명보다 귀한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믿음을 보시고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며 아브라함의 사랑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사랑은 모든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면 하나님 말씀을 백 퍼센트 믿습니다. 모든 것을 믿기 때문에 또한 모든 것을 참습니다. 영적인 사랑에 위배되는 모든 것을 참으려면 반드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믿을 때라야 열심히 마음에 할례하여 사랑과 위배되는 것을 버릴 수 있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죄인인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아낌없이 내주심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여 믿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해 주셨고 그 사실을 믿음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사실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영적인 사랑을 이루면 사랑하기 때문에 믿는 차원에 이릅니다.
영적인 사랑을 이뤘다는 것은 비진리의 마음을 다 버렸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비진리가 없으면 하늘로부터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이 옵니다. 이때부터는 하나님 말씀을 의심하거나 신뢰가 흔들리는 일이 없습니다. 영적인 사랑을 온전히 이룬 사람은 모든 사람을 믿습니다. 상대가 믿을 만해서가 아니라 허물 많고 부족해도 믿음으로 바라봐 주는 것입니다.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부족한 모습에 실망하고 주저앉을 것이 아니라, 나를 놓지 않으시고 변화시키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지요. 성령님은 항상 우리에게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십니다. 그 사랑을 믿고 변화되기 위해 노력하면 그 믿음대로 이뤄 주십니다. 그러니 믿는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그러므로 자신뿐 아니라 어떤 사람도 믿어 줄 수 있는 영적인 사랑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3. 사랑은 모든 것을 바라는 것
사람들은 상대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기가 원하는 대로 바꾸려고 합니다. 그러나 치약을 위에서 짜느냐, 밑에서부터 짜느냐 하는 등의 사소한 습관조차 바꾸지 못해 다투는 부부가 얼마나 많습니까? 상대를 변화시키기 전에 내가 변화되면 됩니다. 그리고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상대가 변화되기를 기대하고 바라며 기다려 주면 되지요.
모든 것을 바란다는 것은 믿는 것이 실상으로 나타날 때까지 기대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이뤄질 것을 바라게 됩니다. 장차 아름다운 천국에서 하나님과 세세토록 사랑을 나누며 살게 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참으며 달려갑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아름답고 행복한 천국에 대한 소망이 없습니다. 이러한 소망이 없으니 현실이 전부인 양 살아갑니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하고 욕심을 채우기 위해 다투지요. 하지만 아무리 갖고 누린다 해도 참된 만족이 없습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 속에 살아가지요.
반면에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은 모든 것을 바람으로 세상과 구별된 좁은 길을 갑니다. 왜 좁은 길이라 할까요? 이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 믿지 않는 사람 편에서 볼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오락을 즐기지 않고, 주일에는 온종일 교회에서 예배드리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 봉사하는 등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며 기도합니다. 이 자체가 믿음이 없으면 힘들기 때문에 좁은 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 15:19) 말씀했습니다. 육적으로 보면 성도들은 세상에서 많은 것을 절제하고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하니 고생스럽게 보입니다. 그러나 이 길이 영생의 길이기에 힘들지 않고 행복하지요. 아름다운 천국에서 사랑하는 주님과 영원히 살아갈 것을 생각한다면 얼마나 설레고 즐겁겠습니까? 이처럼 사랑은 믿는 모든 것이 실상으로 나타날 때까지 변함없이 기다리고 바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믿음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큰 힘이 있습니다. 말썽을 부리거나 공부를 못하는 자녀라도 부모가 “잘할 수 있어!” 하며 믿어 주고 소망의 눈으로 바라봐 주면 얼마든지 착하고 공부도 잘하는 아이로 바뀔 수 있습니다. 영혼들을 갈무리할 때에도 자신의 생각 가운데 상대를 단정 지어서는 안 됩니다. ‘저 사람은 변화되기 어려울 것 같다.’ 하거나 ‘여전히 그 모습이구나.’ 하고 실망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변화될 것을 소망의 눈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격려하며 끊임없이 기도해 주어야 하지요.
천 년을 하루같이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같이 어떤 영혼이든지 소망의 눈으로 바라봐 줄 수 있어야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마음에 있는 비진리를 버리기 위해 온갖 시련을 참는 자기와의 싸움이 ( )이라면, ( )는 것은 오래 참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진리로 일군 후에 상대로 인해 겪어야 하는 모든 고통을 참는 것을 말한다.
2. 사랑은 ‘사랑에 위배되는 모든 것을 참는 것’이라 했는데, 사랑에 위배되는 모든 것을 참으려면 반드시 ( )이 있어야 한다.
3. ( )는 것은 믿는 것이 실상으로 나타날 때까지 기대하며 기다리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말씀을 믿고 그대로 이뤄질 것을 바라게 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고린도교회
사도 바울의 선교 여행을 통해 그리스에서 가장 활발한 상업도시인 고린도 지방에 세워진 교회이다. 고린도교회는 은사가 넘쳤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문제가 산적해 있었다. 분쟁, 소송 문제, 은사 나눔 문제, 부활 논쟁, 심지어 바울의 사도권까지 문제 삼았다.
또한 거짓 선지자가 훼방하며, 음행 같은 세상 문화가 들어와 교회를 더럽혔다. 빈부 격차에 제사 음식 먹는 것 가지고도 싸웠기에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사도 바울이 쓴 서신이 고린도전·후서이다.
교육목표 : 영적인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참고 믿고 바라는지에 대해 알려 준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다 보면 참아야 할 일이 매우 많습니다. 혈기나 짜증이 나도 참아야 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려는 마음도 참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의 개념을 설명할 때에도 가장 먼저 ‘오래 참고’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비진리를 버리기 위해 온갖 시련을 참는 자기와의 싸움이 ‘오래 참음’이라면 ‘모든 것을 참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바로 자신의 마음을 진리로 일군 후에 상대로 인해 겪어야 하는 모든 고통을 참는 것입니다. 즉 ‘오래 참음’보다 넓은 의미로 ‘영적인 사랑에 위배되는 모든 것을 참는 것’이지요.
1. 사랑은 모든 것을 참는 것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죄인들에 대해 잠잠히 참아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오직 선만 행하셨는데도 악한 사람들은 조롱하고 멸시하며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인생들이라 할지라도 참아 주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위해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기도하셨지요. 이처럼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참으신 사랑의 결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는 사람마다 하나님 자녀가 되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망에서 벗어나 영생에 이르게 되었지요.
우리 영혼의 주인 되신 아버지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고통을 기쁨으로 참고 기다리십니다.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사람들이 악을 행할지라도 선으로 변화되기를 바라보며 기다리셨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가증한 우상을 섬길지라도 다시 하나님이 참 신임을 나타내 보이셨지요. 만약 “너는 불의가 가득하니 도저히 안 되겠어. 가망이 없구나. 더 이상은 못 참겠다.”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면 구원받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우리는 당회장님을 통해서도 한 영혼 한 영혼이 변화될 때까지 얼마나 사랑으로 기다리며 오래 참아 주시는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연약하고 성격이 모난 사람이라도 언젠가 변화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을 기대하며 항상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셨지요. 온전히 변화될 때까지 성결의 복음을 가르치며 간절히 기도하기를 쉬지 않으셨습니다. 이처럼 모든 것을 참으며 기다리고 또 기다리니 결국 많은 성도가 좋은 일꾼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2. 사랑은 모든 것을 믿는 것
상대를 진정 사랑한다면 그의 모든 것을 믿어 줍니다. 설령 허물이 있고 부족한 모습이 보이더라도 흠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앞으로 변화될 것을 믿기에 사랑스럽게 바라봐 주지요. 서로를 신뢰하는 부부는 사랑으로 더욱 결속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서로 믿지 못하는 부부는 사사건건 다투며 의심하지요.
믿음은 상대에 대한 사랑의 크기를 보여 주는 척도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한다는 말과 같지요.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음으로 하나님의 벗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신실했던지 자신의 생명보다 귀한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믿음을 보시고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며 아브라함의 사랑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사랑은 모든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면 하나님 말씀을 백 퍼센트 믿습니다. 모든 것을 믿기 때문에 또한 모든 것을 참습니다. 영적인 사랑에 위배되는 모든 것을 참으려면 반드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믿을 때라야 열심히 마음에 할례하여 사랑과 위배되는 것을 버릴 수 있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죄인인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아낌없이 내주심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여 믿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해 주셨고 그 사실을 믿음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사실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영적인 사랑을 이루면 사랑하기 때문에 믿는 차원에 이릅니다.
영적인 사랑을 이뤘다는 것은 비진리의 마음을 다 버렸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비진리가 없으면 하늘로부터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이 옵니다. 이때부터는 하나님 말씀을 의심하거나 신뢰가 흔들리는 일이 없습니다. 영적인 사랑을 온전히 이룬 사람은 모든 사람을 믿습니다. 상대가 믿을 만해서가 아니라 허물 많고 부족해도 믿음으로 바라봐 주는 것입니다.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부족한 모습에 실망하고 주저앉을 것이 아니라, 나를 놓지 않으시고 변화시키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지요. 성령님은 항상 우리에게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십니다. 그 사랑을 믿고 변화되기 위해 노력하면 그 믿음대로 이뤄 주십니다. 그러니 믿는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그러므로 자신뿐 아니라 어떤 사람도 믿어 줄 수 있는 영적인 사랑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3. 사랑은 모든 것을 바라는 것
사람들은 상대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기가 원하는 대로 바꾸려고 합니다. 그러나 치약을 위에서 짜느냐, 밑에서부터 짜느냐 하는 등의 사소한 습관조차 바꾸지 못해 다투는 부부가 얼마나 많습니까? 상대를 변화시키기 전에 내가 변화되면 됩니다. 그리고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상대가 변화되기를 기대하고 바라며 기다려 주면 되지요.
모든 것을 바란다는 것은 믿는 것이 실상으로 나타날 때까지 기대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이뤄질 것을 바라게 됩니다. 장차 아름다운 천국에서 하나님과 세세토록 사랑을 나누며 살게 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참으며 달려갑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아름답고 행복한 천국에 대한 소망이 없습니다. 이러한 소망이 없으니 현실이 전부인 양 살아갑니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하고 욕심을 채우기 위해 다투지요. 하지만 아무리 갖고 누린다 해도 참된 만족이 없습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 속에 살아가지요.
반면에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은 모든 것을 바람으로 세상과 구별된 좁은 길을 갑니다. 왜 좁은 길이라 할까요? 이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 믿지 않는 사람 편에서 볼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오락을 즐기지 않고, 주일에는 온종일 교회에서 예배드리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 봉사하는 등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며 기도합니다. 이 자체가 믿음이 없으면 힘들기 때문에 좁은 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 15:19) 말씀했습니다. 육적으로 보면 성도들은 세상에서 많은 것을 절제하고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하니 고생스럽게 보입니다. 그러나 이 길이 영생의 길이기에 힘들지 않고 행복하지요. 아름다운 천국에서 사랑하는 주님과 영원히 살아갈 것을 생각한다면 얼마나 설레고 즐겁겠습니까? 이처럼 사랑은 믿는 모든 것이 실상으로 나타날 때까지 변함없이 기다리고 바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믿음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큰 힘이 있습니다. 말썽을 부리거나 공부를 못하는 자녀라도 부모가 “잘할 수 있어!” 하며 믿어 주고 소망의 눈으로 바라봐 주면 얼마든지 착하고 공부도 잘하는 아이로 바뀔 수 있습니다. 영혼들을 갈무리할 때에도 자신의 생각 가운데 상대를 단정 지어서는 안 됩니다. ‘저 사람은 변화되기 어려울 것 같다.’ 하거나 ‘여전히 그 모습이구나.’ 하고 실망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변화될 것을 소망의 눈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격려하며 끊임없이 기도해 주어야 하지요.
천 년을 하루같이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같이 어떤 영혼이든지 소망의 눈으로 바라봐 줄 수 있어야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마음에 있는 비진리를 버리기 위해 온갖 시련을 참는 자기와의 싸움이 ( )이라면, ( )는 것은 오래 참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진리로 일군 후에 상대로 인해 겪어야 하는 모든 고통을 참는 것을 말한다.
2. 사랑은 ‘사랑에 위배되는 모든 것을 참는 것’이라 했는데, 사랑에 위배되는 모든 것을 참으려면 반드시 ( )이 있어야 한다.
3. ( )는 것은 믿는 것이 실상으로 나타날 때까지 기대하며 기다리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말씀을 믿고 그대로 이뤄질 것을 바라게 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고린도교회
사도 바울의 선교 여행을 통해 그리스에서 가장 활발한 상업도시인 고린도 지방에 세워진 교회이다. 고린도교회는 은사가 넘쳤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문제가 산적해 있었다. 분쟁, 소송 문제, 은사 나눔 문제, 부활 논쟁, 심지어 바울의 사도권까지 문제 삼았다.
또한 거짓 선지자가 훼방하며, 음행 같은 세상 문화가 들어와 교회를 더럽혔다. 빈부 격차에 제사 음식 먹는 것 가지고도 싸웠기에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사도 바울이 쓴 서신이 고린도전·후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