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배안내
  • 설교요약
  • 구역공과
  • 공지사항
  • 주간성구
구역공과
2021-03-26 제13과온전한 사랑 고린도전서 13:8~13
읽을말씀 : 고린도전서 13:8~13  |  외울말씀 : 고린도전서 13:13 | 참고 말씀: 시편 103:15
교육목표 :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 중 제일은 사랑이라 하신 말씀에 담긴 영적인 의미를 살펴본다.


   이 세상에 속한 풀, 꽃, 나무와 같이 육의 모든 것들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편 103편 15절에 “인생은 그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말씀합니다. 부와 명예, 권세 등도 모두 변하고 결국에는 사라집니다. 미움, 다툼, 시기, 질투 등 죄와 어둠도 없어지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사랑만은 영원히 변하지 않기에 천국에까지 가지고 갈 수 있습니다.
   
   
   1.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고전 13:8)
   
   예언이나 방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신령한 것인데 왜 이것도 사라진다고 하는 것일까요? 영의 세계인 천국은 온전한 곳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예언한다 해도 장차 천국에서 알고 깨닫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지요. 천국에서는 하나님과 주님의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예언이 더 이상 필요치 않습니다.
   방언도 그렇습니다. 지금은 나라나 민족, 지역에 따라 다른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대화하려면 서로의 언어를 배워야 합니다. 천국에 가면 이런 걱정이 없습니다. 언어가 하나이기 때문에 알아듣지 못할 염려가 없고, 선한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에 오해나 편견이 생기지 않지요.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지식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지식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을 알기 위해 열심히 배웁니다. 어떻게 하면 구원받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배우지만 이는 천국 가는 데 필요한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즉 예언이나 방언, 지식 등은 천국 가기 위해 한시적으로 필요할 뿐이기에 결국 폐하게 되지요.
   하지만 사랑은 천국에서도 폐하지 않으며, 우리가 경작받는 동안 마음을 할례하여 영적인 사랑을 이루는 만큼 더 좋은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영적인 사랑을 이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2. “…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9~12)
   
   어린아이에게 오백 원짜리 동전과 오만 원짜리 지폐를 내밀면 으레 동전을 집습니다. 오백 원으로 과자를 사 봤지만 지폐로는 안 사 보았기 때문에 그 가치를 모르지요. 우리가 천국을 알고 깨닫는 깊이도 이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천국이 아름다운 곳이라는 것은 알지만,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광채가 얼마나 찬란한지 온전히 깨닫기가 어렵습니다.
   장차 천국에 이르면 그때는 무한히 넓고 신비로운 영의 세계와 모든 것이 운행되는 원리도 얼마든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 11절에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육의 세계와 영의 세계는 이처럼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물론 이 땅에서도 믿음의 분량에 따라 말하고 깨닫고 생각하는 것에 차이가 나지요. 요한일서 2장을 보면 믿음의 각 단계를 자녀, 아이, 청년, 아비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자녀나 아이의 믿음은 말씀대로 행하지 못하고 잘 깨닫지도 못합니다. 청년의 믿음이 되고 더 장성하여 아비의 믿음이 되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깨닫는 차원도 달라지지요. 하지만 아무리 이 땅에서 아비의 믿음을 이뤘다 해도 육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천국에 비하면 역시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또한 영원한 천국에 비하면 이 세상은 그림자와 같습니다. 그림자는 해가 지면 사라지는 허상이며, 실체가 아니라 실체를 닮은 모형에 불과하지요. 이 세상은 영원한 세계가 어떠한지 짐작하게 하는 그림자일 뿐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림자 같은 삶이 지나면 그때에는 실체인 천국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 12절에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말씀했습니다.
   지금은 영의 세계를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하지만 천국에 가면 얼굴을 마주하고 보는 것처럼 뚜렷이 알게 되지요. 사도 바울이 사랑장을 기록한 시대는 약 2천 년 전입니다. 당시 거울은 은, 청동, 철 등으로 만들어져 지금처럼 선명하지 않았기에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하다고 한 것입니다.
   
   
   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는 데 있어 믿음과 소망은 매우 귀한 덕목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구원받아 천국에 가고, 믿음으로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구원과 영생, 천국을 얻을 수 있기에 믿음은 보배 중에 보배이며, 응답의 열쇠입니다. 또한 소망을 가짐으로써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믿음이 있다면 당연히 소망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천국과 지옥을 확실히 믿는다면 천국을 소망하지요. 또한 소망이 있다면 죄를 버리고 성결되기 위해 힘쓰고 열심히 충성합니다. 이처럼 믿음과 소망은 천국에 가는 그날까지 꼭 필요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 그중에 사랑이 제일이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믿음과 소망은 이 땅에서 인간 경작을 받을 동안 필요한 것일 뿐 천국에 가면 영적인 사랑만 남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가면 그때부터는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이 필요 없으며, 소망 역시 필요치 않습니다. 진정 믿음이 있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세월이 흐를수록, 믿음이 장성할수록 천국에 대한 소망이 더욱 커지게 마련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주님이 사무치도록 뵙고 싶어지지요.
   이처럼 천국의 소망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이 땅에서 좁고 험한 길을 가더라도 “힘들다, 괴롭다.” 하지 않고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최종 목적지인 천국에 이르면 믿음과 소망은 더 이상 필요치 않습니다. 오직 사랑만 천국에서도 영원토록 이어지기 때문에 사랑이 제일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둘째로, 믿음으로 천국을 소유하지만 영적인 사랑이 없으면 가장 좋은 천국 처소인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음과 소망으로 행한 만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죄를 버리고 아름다운 마음을 이룬 만큼 영적인 믿음이 주어지고 이 믿음의 분량에 따라 낙원, 1천층, 2천층, 3천층, 새 예루살렘 성으로 처소가 구분됩니다.
   낙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겨우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들어갑니다. 1천층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들어갑니다. 2천층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대로 행하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한 사람들이 들어가지요. 3천층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여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성결된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나아가 새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고 온 집에 충성한 사람들이 들어갑니다.
   새 예루살렘 성은 믿음으로 온전한 사랑을 이룬 하나님 자녀들에게 주어지는 천국으로서 사랑의 결정체입니다. 원래 새 예루살렘 성에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피조물인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면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집니다.
   우리가 주님을 닮아 새 예루살렘 성에 거하기 위해서는 주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야 하는데 그 길이 곧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있어야 우리에게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와 팔복이 임하여 주님의 성품을 닮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갖출 수 있지요.
   결론적으로, 믿음과 소망은 분명히 필요한 것이지만 온전한 사랑이 있을 때라야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으므로 사랑이 제일인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언이나 방언,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영적 지식은 신령한 것인데 천국에 가면 왜 폐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2.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① 믿음과 소망은 우리가 이 땅에서 인간 경작을 받을 동안 필요한 것일 뿐 천국에 가면 영적인 ( )만 남기 때문이다.
   ② 믿음으로 천국을 소유하지만 영적인 사랑이 없으면 가장 좋은 천국 처소인 ( )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새 예루살렘 성 ‘열두 기초석’에 담긴 영적 의미
   
   ① 벽옥(영적 믿음) ② 남보석(곧음과 절개)
   ③ 옥수(결백과 희생적 사랑) ④ 녹보석(의와 푸름, 정의롭고 깨끗함)
   ⑤ 홍마노(영적 충성) ⑥ 홍보석(열정적 사랑) ⑦ 황옥(자비)
   ⑧ 녹옥(오래 참음) ⑨ 담황옥(양선) ⑩ 비취옥(절제)
   ⑪ 청옥(청결함과 거룩함) ⑫ 자정(온유)
지난 주 설교요약
2021-03-21 천국 (33) - 새 예루살렘 ② - 이재록 목사 요한계시록 21:10~14, 21:18~19
하나님께서는 사도 요한의 영안을 열어 새 예루살렘을 보여 주셨습니다. 사도 요한이 보고 기록한 새 예루살렘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벽옥과 수정같이 맑은 새 예루살렘 성
   
   사도 요한은 새 예루살렘을 보고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있다”는 말씀은 새 예루살렘 성에서 나오는 빛이 얼마나 위엄 있고 현란한지를 나타냅니다. 새 예루살렘 성의 전체적인 느낌을 보석 중에서도 벽옥과 수정에 비유한 이유는 그 빛이 벽옥과 수정처럼 지극히 맑고 푸른색을 띠었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벽옥은 매우 아름답고 깨끗하여 마치 맑은 물속을 환히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의 푸른빛이 감돕니다. 이 땅에 있는 어떤 것으로도 그 아름다움을 설명하긴 어렵지만, 최대한 가까운 것으로 비유하자면 맑은 물결에 햇살이 반사되어 나올 때의 눈부신 푸른빛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이 전체적으로 벽옥의 맑고 푸른빛이 감도는 것은 천국을 예비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청아하고 산뜻함, 곧 티가 없이 맑고 정직한 ‘의로움’을 나타냅니다.
   수정은 ‘크리스털’이라고도 불리며 종류가 다양하지만, 여기서는 물처럼 맑고 깨끗하며 무색투명하고 단단한 돌을 말합니다. 수정은 예로부터 장식품으로 널리 사용되었는데, 색이 맑고 투명하며 빛을 받을 때 광채가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천국의 수정은 얼마나 휘황찬란한 빛을 발하겠는지요. 하나님께서 창조의 능력으로 영광의 광택을 입혀 놓은 천국의 보석들은 이 땅의 것과 비교할 수 없이 맑고 아름다운 빛이 납니다.
   
   
   2. 새 예루살렘 성의 크기
   
   새 예루살렘 성은 영롱하고 찬란한 빛을 내는 높은 성벽으로 둘려 있는데, 이는 3천층 내의 다른 처소와 새 예루살렘을 가르는 경계선이 됩니다. 새 예루살렘 성의 크기는 가로, 세로, 높이가 같은데, 각각의 길이는 12,000스다디온입니다(계 21:16). 스다디온은 거리의 단위로서, 12,000스다디온은 대략 1,500마일과 같으며, 이는 2,400㎞에 해당합니다. 이를 우리나라의 길이 단위인 “리”로 환산하면 6천 리가 되는데, 이처럼 새 예루살렘 성의 크기가 가로 6천 리, 세로 6천 리, 높이 6천 리인 것에는 중요한 영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인간 경작 6천 년 동안의 가장 좋은 열매를 담은 그릇이 새 예루살렘 성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새 예루살렘 성벽의 두께는 요한계시록 21장 17절에 144규빗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1규빗은 약 45㎝이므로, 성벽의 두께는 약 65m가 됩니다. 그러므로 새 예루살렘 성은 두께 65m의 성벽이 가로 6천 리, 세로 6천 리로 네모반듯하게 놓여 있고, 성벽의 높이도 6천 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넓은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영혼의 수는 구원받은 모든 영혼의 수에 비하면 매우 적습니다. 따라서 새 예루살렘 안에서 개인이 받게 되는 땅의 면적은 이 땅의 그 어떤 대저택보다 넓습니다.
   새 예루살렘은 바닥에 붙은 평지뿐만 아니라, 6천 리 높이까지 모든 공간이 활용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로 운영되는 영의 공간이므로, 사람의 측량으로 계산되는 면적보다 훨씬 더 넓다는 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열두 문과 열두 기초석의 의미
   
   새 예루살렘 성벽에는 열두 개의 문과 열두 기초석이 있습니다. 열두 문은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 배치되어 있으므로, 성벽을 따라 2천 리(약 800㎞)마다 하나씩 있는 셈입니다. 이 문들은 당당하고 위엄 있는 큰 천사가 서서 지키고 있으며, 각 문 위에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열두 문들 위에 기록된 “이스라엘 열두 지파”는 영적으로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을 상징합니다. 육으로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만이 정식 아브라함의 후손이지만, 영으로는 누구든지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갈 3:29).
   그러므로 새 예루살렘의 열두 문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모든 사람에게 활짝 열려 있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라 할지라도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새 예루살렘을 침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열두 지파는 지파마다 각각의 성향이 다릅니다.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영혼들도 성향에 따라서 들어가는 문이 달라지는데, 이는 영광의 크기가 다르다는 의미가 아니라 빛깔과 향이 다르다는 의미입니다.
   새 예루살렘 성벽 기초석에는 어린양, 즉 주님의 열두 제자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열두 제자’는 ‘성결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생명을 드리기까지 온전히 충성한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음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팔아넘긴 ‘가룟 유다’의 이름은 열두 기초석 중에 새겨져 있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1장 15~26절에는 가룟 유다를 대신해서 사도의 직무를 감당할 사람을 보충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 가르침을 받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을 제비 뽑는데, ‘맛디아’가 새로이 뽑혔지요.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이스라엘 민족이 아닌 다른 민족에게도 구원의 문이 열림을 의미합니다. 둘째는, 주님의 부활, 승천 이후 오늘날까지 하나님께서 친히 택하여 쓰시는 종들도 모두 주님의 제자 중 한 사람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열두 문에는 열두 지파의 이름이, 열두 기초석에는 열두 사도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믿음으로 구원받고 성결되어 생명을 다해 온전히 충성하면 누구라도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지금까지 12라는 숫자가 여러 번 나왔습니다. 성문도 열두 개, 기초석도 열두 개, 이스라엘 민족도 열두 지파, 주님의 제자도 열두 명이었습니다. 이것은 12가 영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녔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1장 9절에 “낮이 열두 시가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했습니다. 여기서 ‘낮 열두 시’는 영적으로 어둠이 조금도 없는 온전한 빛을 뜻합니다. 또한 빛은 어둠이 전혀 없으며 영원하시고 온전하신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12’는 빛의 수로서 완전함과 온전함을 나타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12라는 숫자를 가장 복된 약속의 증표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4.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첫 번째 열쇠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첫 번째 열쇠는 성벽에 숨겨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새 예루살렘 성벽의 재료로 벽옥을 택하신 이유는, 벽옥이 영적으로 믿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신앙생활의 기초이자 필수 요소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구원받을 수 없고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믿음, 즉 믿음의 장성한 분량인 5단계에 이르면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벽돌을 하나씩 쌓아 올려 높은 담장을 만들 듯 믿음을 상징하는 ‘벽옥’을 쌓아 6천 리 높이의 새 예루살렘 성벽을 만드신 이유는 믿음을 쌓아 최고 수준인 5단계에 이르면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시기 위함입니다.
   
   
   5.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두 번째 열쇠는 완전한 사랑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두 번째 열쇠는 열두 기초석에 숨겨져 있습니다. 열두 기초석은 열두 개의 보석으로 이뤄졌으며, 각 보석들은 특별한 영의 마음을 상징합니다. 마태복음 5장의 ‘팔복’과 고린도전서 13장의 ‘영적인 사랑’, 갈라디아서 5장의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모두 열두 보석 안에 담겨 있고, 이 열두 보석의 마음을 종합하면 ‘완전한 사랑’이 됩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완전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믿음도 있어야 하고, 희생도 있어야 합니다. 또한 열정과 충성과 자비도 있어야 하며 때론 절제도 있어야 합니다. 이런 이유에서 하나님께서는 열두 기초석을 한 가지 보석으로 만들지 않고 영의 마음의 각 분야를 상징하는 열두 개의 보석으로 만드셨습니다.
   퍼즐 맞추기를 할 때 모든 조각이 제자리를 찾아야 온전한 그림이 완성되는 것같이, 새 예루살렘 두 번째 열쇠인 완전한 사랑이 제 기능을 발휘하려면 열두 가지 영의 마음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1) 영적인 믿음을 의미하는 ‘벽옥’
   첫 번째 기초석은 ‘벽옥’입니다. 성벽의 재료로서 벽옥이 상징하는 믿음은 ‘믿음의 5단계,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초석으로서 벽옥이 상징하는 믿음은 육적인 믿음과 반대인 ‘영적인 믿음’을 나타냅니다. 영적인 믿음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중심에서 온전히 믿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믿기에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 영적인 믿음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자기 생각에 맞지 않아도, 그대로 행하면 자신에게 불이익이 올 것 같아도 온전히 믿고 행하는 것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은 이처럼 참 믿음을 내보이는 자녀들에게 반드시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사람의 힘과 지혜로는 불가능한 일도 얼마든지 가능케 하시지요.
   
   2) 곧음과 절개를 의미하는 ‘남보석’
   두 번째 기초석은 ‘남보석’입니다. 남보석은 일명 사파이어라고 불리는 투명한 남색의 보석입니다. 남보석에 담긴 영의 마음은 ‘곧음과 절개’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한번 뜻을 정했으면 세상의 어떤 유혹이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결코 흔들리지 않는 진실 자체의 마음입니다.
   남보석과 같은 진실의 빛이 마음에서부터 곧게 뻗어 나온 대표적인 인물은 다니엘과 세 친구입니다. 다니엘은 왕의 명령이라도 그것이 하나님 뜻에 어긋날 때에는 결코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사자 굴에 던져질 것을 알았지만 한 번 정한 마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또한 다니엘의 세 친구는 우상에게 절하지 않으면 극렬히 타는 풀무에 던져질 상황에서도 전혀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잃을지라도 하나님을 향한 의는 저버릴 수 없다는(단 3:17~18) 이들의 마음에서 초연하면서도 곧고, 짙푸른 남보석의 빛깔처럼 숭고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셋째 기초석부터는 다음 시간에 이어서 설명하겠습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1년 3월 21일 주일)
* 사회: 조수열 목사
개회찬송 50장 1절
성시교독 49번
찬송 222장
기도 황금란 전도사
성경봉독 요한계시록 21:19~20
찬양 주님 앞에 설 때에(영상)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천국( 34)-새 예루살렘③(영상설교)
당회장님
찬송 만민 찬양 164장
주일 저녁예배 (2021년 3월 21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안성헌 목사
대표기도 최성숙 전도사
성경봉독 에스겔 36:36~37
특송 몰도바 만민교회 찬양팀
설교 이루리라 하였으나 구하여야 하리라( 2)
이수진 목사(당회장 직무대행)
수요 예배 (3월 24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이석규 목사
대표기도 오상록 권사
성경봉독 요한일서 4:16
설교 영의 사랑
문태규 목사(밀양만민교회 담임)
금요 철야예배 (3월 26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박재영 목사없음
대표기도 강영식 목사(춘천만민성결교회 담임)
성경봉독 요한일서 3:4
찬양 샬롬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영상)
설교 요한일서 강해(16)(영상설교)
당회장님
새벽 예배
인도 당분간 없습니다.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1-03-21 2021년 3월 셋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새로 나오셔서 등록해 주신 분들과 인터넷으로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당회장님 소식

● 당회장님 저서 「믿음의 분량」이 오디오북으로 발간되었습니다.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세르비아어(635번째)가 종이책으로 발간되었고, 라트비아어, 리투아니아어, 따갈로그어, 세르비아어가 전자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 당회장님 신앙칼럼이 「기독선교신문」, 「시사뉴스」 등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교회 소식

● 정기 원로회가 오늘 오후 7시에 온라인으로 개최됩니다.

● 우림북/ 2021년 4월 17일까지 당회장님 저서(10권) 독후감을 공모합니다.
심사를 통해 선정된 작품에 시상이 있으니 성도님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부탁드립니다. 자세한 내용은 <당회장님 저서 읽기> 앱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당회장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조) 교보문고, 영풍문고, 반디 앤 루니스, 북스리브로, 예스24, 알라딘, 인터파크 등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자책(e-book)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교구 및 선교회별 현장예배(저녁예배) 참석 일자

날 짜          초 청 대 상
3월 21일     1대대교구
3월 28일     2대대교구
4월 4일     온라인 성찬식 관계로 현장예배 없음
4월 11일     3대대교구


● 감사드립니다

강단 헌화/ 이웃나라(꽃꽂이 봉사: 예배국 미화부, 시설관리국)
주간 성경구절
2024-03-24
[주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 3:13]
2024-03-25
[월요일]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롬 5:7]
2024-03-26
[화요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2024-03-27
[수요일]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벧전 2:24]
2024-03-28
[목요일]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고후 1:5]
2024-03-29
[금요일]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히 5:8]
2024-03-30
[토요일]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히 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