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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공과
2021-08-20 제34과믿음의 5단계 (2) 민수기 12:7
읽을말씀 : 민수기 12:7  |  외울말씀 : 시편 101:6 | 참고 말씀: 고린도전서 4:2
교육목표 : 믿음의 5단계에 이르러 온 집에 충성하되 맡겨진 직무와 주어진 대가 이상으로 넉넉히 감당하는 일꾼이 되게 한다.


   믿음의 5단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의 깊은 마음과 뜻을 헤아려 순종하는 차원입니다. 많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무수한 기도를 쌓아 기사와 표적을 행할 뿐 아니라 온 집에 충성하는 단계입니다.
   
   
   1. 모든 분야에 마음 다해 충성하는 단계
   
   ‘충성’의 영적인 의미는 자기에게 맡겨진 일 이상을 해 내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시간과 물질과 몸을 아끼지 않고 넘치게 일을 감당했을 때 충성했다고 할 수 있지요. 믿음의 4단계에 들어온 사람은 영적으로 충성한다고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영적인 충성이란, 꾸준히 마음의 할례를 하면서 하는 충성을 말합니다. 이러한 충성의 차원을 넘어 온 집에 충성하기 위해서는 믿음의 5단계에 들어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온전히 맺혀야 합니다.
   예를 들어, 충성이 좋은 결실을 맺으려면 상대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사랑이 없이는 희생하고 헌신할 수 없습니다. 또한 절제의 열매가 부족하면 어느 분야에서는 넘치게 충성한다 해도 다른 분야에는 소홀할 수 있습니다. 화평의 열매가 온전히 맺혀 있지 않으면 일을 이루는 과정에서 부딪침이 생기고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화평이 깨어진 충성은 하나님 앞에 온전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영적인 충성을 하되, 온 집에 충성하려면 충성의 분야만 승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들이 온전히 맺혀야 합니다.
   
   그러면 온 집에 충성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요?
   이는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되 모든 분야에서 주어지는 대가 이상으로 넉넉히 감당해 내는 것’입니다. 한두 가지만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맡겨진 모든 분야에 마음을 다하는 것이지요.
   사명 중에는 중요해 보이고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사명도 있지만, 덜 중요해 보이거나 드러나지 않는 사명도 있습니다. 믿음의 5단계 곧 온 영으로 들어간 사람은 크든 작든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사명을 소중히 여기므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감당합니다. 아무리 많은 사명이 있어도 모든 분야에서 충성하며 열매를 냅니다. 물론 모든 분야를 똑같이 마음에 품고 소중하게 여기며 정성을 다한다는 것이 모든 사명에 똑같은 시간을 할애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분명 급히 할 것과 나중에 할 것,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할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충성의 열매가 온전히 맺힌 사람은 어떤 사명도 가볍게 생각하지 않으며, 한 영혼도 소홀하게 대하지 않습니다. 시간을 적게 들이든 많이 들이든 모든 분야에 정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또한 온 영의 사람은 영이신 하나님의 속성을 닮아 많은 영혼과 사명을 마음에 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영혼 구원을 위해 생명까지 줄 수 있는 사랑도 있습니다. 이처럼 사랑을 가지고 마음에 품고 간구하므로 맡은 모든 분야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지요.
   
   
   2. 뜨거운 열정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한 모세
   
   모세는 출애굽의 지도자로서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였으며, 온 집에 충성했던 사람입니다(민 12:3, 7).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당시, 장정만 해도 60만 명가량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었지요(출 18:13~14). 각종 문제를 갖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모세 혼자 일일이 상담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모든 백성을 영으로 품었고 자신의 생명보다 귀히 여기며 사랑으로 돌보았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모세에 대해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영으로 들어간 만큼 영혼들을 더 품을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사명도 감당할 수 있지요. 물론 자신이 맡은 영혼이 수백 명이라면 그들 모두를 매주 심방할 수는 없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이들이나 긴급한 문제가 있는 이들을 우선적으로 돌아보게 되지요.
   그러나 모세처럼 온 집에 충성된 마음을 가졌다면 자주 보든, 보지 않든 모든 양 떼를 항상 영으로 품어 마음에 담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짧게 한 번 만난다 해도 그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변화됩니다.
   이는 게을러 심방하지 않으면서 “그를 위해 기도하고 있으니까” 하고 변명하는 모습과는 다릅니다. 생명 다해 사명을 감당하려고 노력하지만 “직접 돌보지 못한 분야까지도 하나님께서 돌봐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는 심정이 얼마나 간절하겠습니까? 이러한 중심의 향을 받으시므로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영혼 관리뿐 아니라 다른 사명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분야에 똑같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며, 영으로 품어 많은 열매를 내는 것이 바로 온 집에 충성하는 비결입니다.
   어떤 사람은 “많은 사명을 다 감당하기 벅차니 차라리 한두 가지만 맡아서 정성을 다한다면 온 집에 충성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충성된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과 영혼들을 위해 헌신하려는 열정이 뜨거우니 어찌하든 사명 맡기를 사모합니다. 그러니 잘할 수 있는 한두 가지만 감당하겠다는 말 자체가 이미 온 집에 충성과는 거리가 멀지요.
   또한 온 집에 충성하는 사람은 개인적인 분야에서도 자신의 소임을 다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교회에서는 열심을 내는데 가정은 전혀 돌보지 않는다거나 학교나 직장에서 불성실하다면 충성된 일꾼이라 할 수 없습니다. 충성된 사람은 마음 자체가 성실하고 진실하기 때문에 하나님 일만 아니라 모든 곳에서 성실하게 행합니다. 그렇다 해서 꼭 1등을 해야 하고, 실적이 뛰어나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성실하게 본분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3. 온 집에 충성하기 위한 노력의 중요성
   
   아직 온 영이 아니라 해도 온 집에 충성하기 위해 노력해 나간다면 그만큼 더 빨리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성결되기 위해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워 버려야 하지요. 그러면서 모든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마음씀을 넓히기 위해 노력하며 마음과 뜻과 힘과 정성을 다해 하나하나 감당해 나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별로 원하지 않는 사명이나 또 사소하게 보이는 일은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또 “내 능력이 이것밖에 안 되니까.” 하면서 더 많이 애쓰지 않거나, 자신을 희생하지 않아도 되는 범위 내에서만 적당히 한다면 주인의 입장에서 볼 때 어떨까요? 이런 사람에 대해서는 차츰 신뢰도 떨어지고, 다음에는 그 사람에게 맡기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작은 것에 충성된 사람에게 큰 것도 믿고 맡길 수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 해도 주변에 도움을 청하거나 방법을 배워서라도 일을 감당해 내고자 하고 최선을 다하려는 진실과 노력이 보인다면 결과는 좀 부족해도 그 사람에게는 신뢰가 쌓이게 되지요. 그러니 “저 사람은 능력은 좀 부족하다 해도 마음 자세가 되었다.” 하면서 다음에는 더 중한 책임도 맡길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자신에게 맡겨 준 모든 분야에 마음을 다해 희생하며 섬겨 나가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만큼 기뻐하시고, 은혜와 능력을 주셔셔 영으로, 온 영으로 신속하게 들어올 수 있게 해주십니다.
   그러니 자신이 속한 모든 분야에서 사람에게 하는 것처럼 하지 말고 마음과 정성과 지혜를 다해 하나님께 하는 것처럼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시편 101편 6절에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거하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수종하리로다” 하신 말씀대로 완전한 길로 행하며 충성된 자로 인정받아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거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 ( ) 안에 알맞은 말을 넣어 보세요.
   
   1. ( )는 것은,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되 모든 분야에서 주어지는 대가 이상으로 넉넉히 감당해 내는 것이다.
   한두 가지만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맡겨진 모든 분야에 ( )을 다하는 것이다.
   
   2.“내 눈이 이 땅의 ( )를 살펴 나와 함께 거하게 하리니 ( )에 행하는 자가 나를 수종하리로다”(시 101:6)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홍마노에 담긴 영적 의미
   
   새 예루살렘 성곽의 다섯 번째 기초석인 홍마노는 영적으로 ‘충성’을 의미한다. 홍마노가 의미하는 충성이란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기록된 ‘죽도록 충성하는 것’을 말한다. 곧 성결된 사람이 거룩한 중심에서 생명 다하도록 사명을 감당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해야 가능한 일이다. 모세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마음과 뜻, 정성을 다하고 목숨까지 바칠 수 있었다. 바로 이러한 충성된 마음을 하나님께서는 홍마노의 빛깔로 나타내셨다.
지난 주 설교요약
2021-08-15 십계명 (9) - 제9계명 - 이재록 목사 출애굽기 20:16
오늘은 십계명 중 제9계명인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하신 말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하고 자부하는 사람이 종종 있기는 하지만, 사실은 그런 사람들도 대부분 크고 작은 거짓말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어두운 곳에서는 더러움이 잘 보이지 않아도 아주 밝은 빛이 비추이면 미세한 먼지나 얼룩까지 드러나는 것처럼, 진실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짓 증거를 하고 있지요.
   그렇다면 거짓 증거란 무엇인지 세 가지 유형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1. 한 것을 하지 않았다고 하거나, 하지 않은 것을 했다고 하는 것
   
   거짓 증거가 얼마나 나쁜 것인지 확연히 드러나는 대표적인 경우는 재판할 때입니다. 재판석에서는 증인의 말이 직접적으로 판결에 영향을 줍니다. 거짓 증인으로 인해 무죄한 사람이 큰 손해를 입을 수도 있고 심지어 생사가 달라지는 일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증언하는 사람도, 증언을 듣고 판결하는 사람도 모두가 신중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신명기 19장 15절에 “사람이 아무 악이든지 무릇 범한 죄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하셨지요. 한 사람의 말만 듣고 남을 정죄하지 말고 여러 사람의 말을 들어 보고 정황을 바르게 분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이어지는 19~20절에는 거짓 증인에 대한 형벌을 정하고 계십니다. 곧 거짓 증인으로 인해 상대가 받을 뻔한 형벌을 거짓 증인 자신이 받도록 하라는 것이지요.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은 일상생활 속에서의 사소한 거짓말도 버려야 합니다. 상대에게 심각한 손해를 입히는 경우가 아니라 해도 작은 거짓말 역시 비진리이지요. 또한 자신이 사실을 말해야 할 상황에서 말을 하지 않는 것도 거짓된 행함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범한 잘못에 대해 다른 사람이 애매히 누명을 쓰는 것을 보고도 모른 척한다든가, 물건 값을 지불한 후 더 많은 거스름돈을 받고도 아무 말 없이 왔다면 정직하다 할 수 없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거짓을 말하지 않을 뿐 아니라 마음 자체가 정직하여 말과 행실이 다 참되고 진실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거짓말 중에는 “하얀 거짓말”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지요. 욕심이나 상대를 해치려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상대를 위하는 마음에서 하는 거짓말을 하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면, “식사하셨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 사실은 식사하지 않았는데도 상대가 자신에게 마음 쓰지 않도록 “먹었습니다.” 하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이런 때에도 “먹지 않았지만 먹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솔직히 말하는 것이 옳습니다.
   성경에도 이런 경우가 나옵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들에 숨겨 두었으면서도 다윗을 무고히 죽이려 하는 사울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다윗이 형들을 만나러 갔다.”고 합니다. 다윗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좇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선한 의도일 때는 하나님께서도 “네가 거짓말을 했다.”고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더 온전한 선의 차원에 이르면 이런 상황조차도 생기지 않습니다. 굳이 하얀 거짓말을 하지 않고서라도 상대를 감동시킴으로 그 상황을 피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유익을 좇아 거짓말을 하고도 “나는 선한 의도로 했다.”고 말하는데,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지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정직한 마음을 이루고 위로부터 난 지혜를 받음으로 항상 덕스럽고 은혜로운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2. 말을 전할 때 더하거나 빼는 것
   
   다른 사람의 말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느낌 속에 말을 더하거나 빼서 엉뚱하게 전하는 경우입니다. 그나마 좋게 전한다면 다행이지만 나쁘게 전하여 오해를 빚으니 문제입니다. 설령 글자 하나까지 그대로 전했다 해도 말의 억양이나 장단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지요.
   예를 들어, “왜 그래?”라는 표현도, 걱정스럽게 “왜 그래?” 하는 억양과 화가 나서 “왜 그래!” 하고 따지듯이 말하는 억양이 다른 것입니다.
   물론 녹음기처럼 상대의 말을 똑같이 전달하기는 어렵지만 최대한 말한 사람의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하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비록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해도 은혜와 덕이 되지 않고 진리가 아닌 말이라면 전하지 않아야 하지요. 좋은 의도에서 전했다 해도 듣는 사람 편에서는 마음이 상하므로 사람들을 이간하는 결과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2장 36~37절에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은혜롭고 덕이 되는 말을 하여 의롭다 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3. 자기 생각에 맞춰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서 판단 정죄하며 비판하는 것
   
   사람들은 남의 표정과 행동을 보거나 말을 들을 때, 자신의 느낌과 생각에 맞춰 상대를 판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마음이라서 그 말을 했을 것”이라거나 “이러한 의도가 있어 저렇게 행동하는 것”이라 말하지요. 가령, 상대는 눈이 나쁘거나 딴 생각을 하며 걷다가 나를 못 보고 지나쳤는데 ‘저 사람은 나를 보고도 모른 척한다. 나에게 감정이 있는가?’ 생각합니다.
   아무리 눈치가 빠른 사람도, 서로 사랑하고 친한 사이라 해도 상대의 마음을 다 헤아리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자기 기준에 맞춰 상대를 오해하고 판단함으로 감정을 품거나 상대를 비방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렇게 사실이 아닌 말을 전하면, 그 말만 듣고 동조함으로 남을 판단하고 허물을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역시 거짓 증거에 동참하는 어리석은 행동이지요.
   
   자기 기준에 맞춰 상대를 판단하고 비방하는 사람은 상대를 정죄하는 그 정죄가 오히려 자신에게 해당됨을 깨달아야 합니다.
   육의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 악을 발했다면 다른 사람들도 동일한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과 같은 악을 발할 것이라 생각하지요. 자신에게 속이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상대가 나를 속이는 것”이라 의심하며, 어떤 장면을 보고 나쁜 생각이 들었다면 “상대도 그런 생각을 할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자신에게 남을 무시하는 마음이 있으니 상대의 행동을 오해하여 “저가 나를 무시한다, 교만하다.” 말하기도 합니다.
   마태복음 7장 12절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했고, 마태복음 7장 1~5절에는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했습니다.
   상대의 허물을 말하며 이를 비판하는 사람은 자신이 상대보다 더 큰 악을 행하고 있음을 알아야 하며, 자기 악을 버리고 성결될 때라야 다른 사람의 잘못도 분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마음의 악을 다 벗어 버리면 상대방의 허물을 보려고 하지도 않고 오히려 좋은 것을 보기 원하며 상대에게 허물이 있다 해도 덮어 주려고 하지요.
   또 야고보서 4장 11절에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했습니다. 형제를 판단하고 비방하는 것은 곧 재판장이신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큰 악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명심할 것은, 사람이 자기 생각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는 말을 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한계로는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라 해도 하나님께서는 능히 하실 수 있으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생각을 동원하여 “잘못되었다.” 판단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하겠습니다.
   
   비록 악한 의도가 아니라 해도 사람들은 종종 사소한 거짓말을 합니다.
   예를 들어, 자기 생각 속에서 사실과 다르게 과장하거나 축소하는 경우가 있지요. 상대가 “아주 많이 먹었다.” 하면 “다 먹어버렸다.” 하거나 “조금밖에 안 남았다.” 하면 “하나도 안 남았다.” 하고 전하는 것입니다. 혹은 많은 사람 중에 겨우 두세 사람이 동일한 의견을 냈는데 “모두가 그렇게 말하더라”고 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남의 말을 전할 때, 자신의 생각에 맞춰 엉뚱한 말로 전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전에, 제가 여러 사람과 함께 식사하던 중에 “상이 초라하네.” 하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는 반찬의 종류가 아니라 각각의 그릇에 담긴 반찬의 양이 적다는 의미였지요. 저는 먹는 양이 적지만 많은 사람이 함께하고 있으니 그릇마다 반찬이 좀 넉넉하게 담겨 있으면 좋겠다는 표현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이 말을 듣고 “당회장님이 고기반찬이 없다고 하셨다.”라고 전했다고 합니다. 물론 이는 사소한 것일 수도 있고 나쁜 의도로 거짓말한 것도 아니며, 누군가를 악하게 판단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을 더하거나 빼는 거짓된 모습이 있다면 더 근본적인 문제를 깨달아 보아야 하지요.
   마음이 진리로 채워진 사람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더하거나 빼서 전달하지 않습니다. 오직 알고 있는 그대로만 말할 뿐,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더해서 사실인 것처럼 말하는 일이 없습니다.
   사소하게 보이는 것이라 해도 자신의 말에 진실성이 결여되어 있다면 이는 곧 마음에 거짓의 속성이 남아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거짓의 뿌리를 다 뽑지 못한 사람은 어떤 긴박한 상황을 만나면 남을 해롭게 하는 거짓말도 하게 될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소한 거짓이라도 발견하는 대로 철저히 벗어버림으로 온전히 변화되는 계기를 삼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거짓말 외에도 말을 더하거나 빼는 것이나 남의 마음을 헤아려서 판단 정죄하며 비판하는 것도 하나님 앞에서는 거짓 증거라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빛이신 하나님의 자녀답게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거짓과는 전혀 상관없는 정결한 마음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시편 84편 11절에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길을 밝히 비추시고 어려운 일마다 방패가 되어 주시며 여러분의 삶 가운데 좋은 것을 아낌없이 부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1년 8월 15일 주일)
* 사회: 조혁희 목사
개회찬송 21장 1절
성시교독 38번
찬송 456장
기도 최영자 목사
성경봉독 출애굽기 20:17
찬양 주 얼굴 뵈올 그 날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십계명(10)-제10계명(영상설교)
당회장님
찬송 만민 찬양 174장
주일 저녁예배 (2021년 8월 15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이석규 목사
대표기도 최영신 전도사
성경봉독 요한일서 5:5~6
특송 이현미 권사
설교 요한일서 강해(36)
이수진 목사(당회장 직무대행)
수요 예배 (8월 18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이석규 목사
대표기도 조은영 전도사
성경봉독 에베소서 4:29, 잠언 16:24
설교 선한 말
조수열 목사
금요 철야예배 (8월 20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강승표 목사없음
대표기도 안성헌 목사
성경봉독 요한계시록 1:4~8
찬양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요한계시록 강해(3)(영상설교)
당회장님
새벽 예배
인도 당분간 없습니다.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1-08-15 2021년 8월 셋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새로 나오셔서 등록해 주신 분들과 인터넷으로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당회장님 소식

● 당회장님의 저서 「사랑은 율법의 완성」 마케도니아어(656번째)가 종이책으로 발간되었고, 「치료하는 여호와」가 조지아어, 인도 벵골어, 아르메니아어, 인도 조우어 전자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 당회장님 신앙칼럼이 「기독선교신문」, 「시사뉴스」 등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교회 소식

● 만민뉴스 한글(950호), 영어(700호), 중국어(575호), 불어(137호) 신문을 온라인으로 발행하였습니다(만민뉴스 홈페이지 www.manminnews.com).

● 정기 원로회가 오늘 저녁예배 후 오후 7시에 온라인으로 개최됩니다.

● 당회장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조) 교보문고, 영풍문고, 북스리브로, 예스24, 인터파크 등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자책(e-book) 및 오디오북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감사드립니다.

강단헌화/ 이웃나라(꽃꽂이 봉사: 예배국 미화부, 시설관리국)
주간 성경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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