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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공과
2021-10-01 제40과성령의 열매 (6) - 양선 갈라디아서 5:22~23
읽을말씀 : 갈라디아서 5:22~23  |  외울말씀 : 마태복음 12:19~20 | 참고 말씀: 마태복음 12:35
교육목표 : 성령 안에서 범사에 선을 추구하며 진리 안에서 선을 좇아 행함으로 어느 곳에서든지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성령을 받지 않은 세상 사람들도 나름대로 선을 분별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즉 자기 양심에 따라 “이것은 선하다. 저것은 악하다.” 하지요.
   그래서 자기 양심에 거리낌이 없으면 나름 선하고 의롭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양심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나는 선하다고 여긴 것이 상대에게는 악할 수 있고, 내게는 악한 것이 남에게는 선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1. 양심이란?
   
   그렇다면 ‘양심’이란 무엇일까요? 바로 ‘본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입니다. 사람의 본성은 부모로부터 어떤 기를 받고 태어나는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선한 부모의 기를 받고 태어난 자녀는 비교적 본성이 선합니다. 또 좋은 환경 속에서 선한 것을 많이 보고 들으며 자란 사람은 양심이 선하게 만들어지기 쉽지요. 반면 악한 부모의 기를 받고 태어나 악한 것을 많이 보고 듣고 접하면 본성과 양심이 악해지기 마련입니다.
   가령, 정직의 중요성을 교육받고 자라는 아이는 작은 거짓말에도 양심의 가책을 느낍니다. 하지만 습관적으로 거짓말하며 자란 아이는 큰 거짓말을 하면서도 잘못한 줄도 모르지요. 양심이 그만큼 악에 물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가치관의 영향을 받고 성장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양심은 달라집니다. 사회마다 나라마다, 시대마다 가치관이 같지는 않습니다. 왕정 시대에는 노예를 부리며 학대해도 그것을 잘못이라 생각지 않았습니다. 또 40~50년 전만 해도 우리 사회는 노출이 심한 옷을 입으면 손가락질 받았지요. 그러나 지금은 의식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만큼 시대의 가치관이 달라졌다는 뜻입니다.
   
   
   2. 양선의 열매란?
   
   세상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기 보기에 선한 것을 추구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으로 선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는 선악과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기준이 항상 동일합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변함없는 진리, 곧 하나님 말씀이 그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진리’를 기준 삼아 행하려는 마음이 바로 ‘양선’입니다. ‘양선(良善)’을 문자대로 풀면 ‘어질고 착하다’는 뜻입니다. 영적으로는 성령 안에서 선을 추구하는 마음, 곧 진리 안에서 선을 좇아 행하는 마음이지요.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는 것처럼, 선을 추구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선이 배어나옵니다(마 12:35).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선한 마음이 있기에 선행을 베풀지요. 마치 향수를 뿌린 사람에게서 좋은 향기가 나듯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합니다. 그런데 선을 추구하는 마음만 간절하다 해서 양선의 열매가 맺히진 않습니다. 선을 보고 듣고 반드시 마음에 이루고 실천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0장에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어떻게 양선을 행했는지 잘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마침 한 제사장이 그를 보았으나 그냥 지나쳐 버리지요. 그 뒤에 레위인이 지나가지만 그도 외면해 버립니다. 제사장이나 레위인은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정작 하나님 뜻을 행해야 할 순간에는 행함을 내보이지 못했지요. 그 후 한 사마리아인이 그곳을 지나다가 쓰러져 있는 사람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바로 상처를 싸매 주며 황급히 주막으로 데려가 돌봐 주었지요.
   이튿날 두 데나리온을 주막 주인에게 주면서 그를 부탁하며 비용이 더 들면 나중에 와서 지불하겠다고 합니다. 이기적으로 생각한다면 그가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내 갈 길도 바쁜데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의 일에 끼어들었다가 시간과 물질을 손해 볼 수도 있습니다. 또 응급조치는 해줄 수 있지만 굳이 앞으로의 비용까지 대겠다면서 주막 주인에게 부탁해야 할 책임은 없지요.
   그러나 그에게는 선을 추구하며 행하는 양선의 마음이 있었기에 죽어가는 사람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손해를 본다 해도, 아무리 갈 길이 바쁘다 해도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을 차마 버리고 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만약 그가 이유가 있어 그냥 지나쳐 버렸다면 ‘다친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그를 구했어야 했는데’ 하며 내내 마음에 걸렸을 것입니다. 이처럼 양선은 누군가 자신의 발목을 붙잡고 끌어당기는 것처럼, 선을 택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어서 범사에 선을 택해 나가는 마음입니다.
   
   
   3. 예수님의 양선의 마음
   
   마태복음 12장 19~20절에는 예수님의 양선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말씀합니다.
   선한 일만 하신 예수님을 악한 사람들은 죽이려 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들을 미워하지 않으셨고 하나님의 참 뜻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아무리 악한 자들이 훼방하여도 다투거나 들레지도 않으셨지요. 육의 사람들은 자신을 드러내고 자랑하기 좋아합니다. 나를 알아주기 원하고 대접받고 싶어 하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고 큰 권능을 베풀면서도 들레지 않으셨고 겸손하셨습니다.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할 정도로 걸음걸이, 몸가짐, 언어에도 흠이 없으셨지요. 오직 그 마음에는 지극한 선과 겸손함, 영적인 사랑만이 가득했습니다.
   우리가 양선의 열매를 맺으면 예수님처럼 누구와도 걸리거나 부딪치지 않습니다. 상대의 티나 허물을 들추어내지 않지요. 자신을 드러내 높임 받으려 하지도 않고 경우에 맞지 않는 일을 당한다 해서 불평하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은 상한 갈대도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셨습니다.
   영적으로 ‘상한 갈대’란, 세상의 죄와 악으로 가득 찬 사람을 말합니다. ‘꺼져 가는 심지’란 마음이 심히 악으로 물들어 그 영혼의 등불이 꺼져 가는 사람이지요. 상한 갈대와 꺼져 가는 심지 같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 해도 그 행함을 보면 세상 사람과 다를 바 없고 오히려 성령을 거역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놀라운 권능을 보면서도 여전히 믿지 않고 악을 발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도 끝까지 믿음으로 바라보며 구원받을 기회를 열어 주셨습니다.
   양선의 열매가 맺히면 악을 발하는 사람이라도 품습니다. 굳이 시비를 따져 상대의 잘못을 드러내거나 꺾으려고 하지 않지요. 진실한 마음으로 선대하여 그들의 마음을 녹이고 감동을 줍니다. 설령 사망의 길로 가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여기까지만 참자!”라고 한계를 두고 선을 넘는다고 해서 외면하는 것도 없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리고자 애쓰지요. 이것이 곧 양선의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양선’의 마음과 다른 성령의 열매와는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가령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준 것은 자비나 구제와 긍휼이 아닌가?” 또 “다투지도 않고 들레지도 않는 마음은 화평과 겸손의 마음이 아닌가?”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어떤 면에 중점을 두었느냐를 보면 됩니다.
   ‘양선’의 열매는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과 선을 좇아 ‘행할 수 있는 힘’에 대한 것입니다. 상대를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는 ‘긍휼’에 초점을 두지 않고, 긍휼히 여겨야 할 상황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선의 마음’에 중점을 두었지요. 또 다투지도 들레지도 않는다는 것은 화평과 겸손의 마음입니다. 이것을 양선에 비유했을 때는 선해서 화평을 깰 수 없는 마음, 인정받으려고 들레기보다는 겸비한 것을 더 좋아하는 선한 마음에 포인트를 둔 것입니다.
   우리가 양선의 열매를 온전히 맺으면 주님의 마음을 닮게 됩니다.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거나 실족시키지 않으며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습니다. 외적으로도 선과 겸손이 풍겨납니다. 주의 교양으로 범사에 존경받을 만하며 걸음걸이나 몸가짐, 언어 습관 등이 온전해지지요. 누가 봐도 존중할 만한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이란 본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을 말합니다.
   
   2. 양선이란 ( ) 안에서 선을 추구하는 마음, 곧 ( ) 안에서 선을 좇아 행하는 마음입니다.
   
   3. ( )는 세상의 죄와 악으로 가득 찬 사람을 말합니다.
   ( )는 마음이 심히 악으로 물들어 그 영혼의 등불이 꺼져 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사마리아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이자 그 주변을 일컫는다. 이곳에 바알 당이나 다른 종교의 사당들이 있었기에 선지자들은 우상 숭배의 중심지로 여겼다. 예후는 왕이 된 후 이스라엘 중에서 바알을 멸했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한 사마리아는 여러 번 앗수르의 공격을 받다가 결국 함락된다. 앗수르 왕은 사마리아에 자국민들을 이주시켜 혼혈정책을 펼친다. 자연히 사마리아는 혼혈 민족이 되었다. 유대인들은 이런 사마리아인들을 적대시하며 상종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지난 주 설교요약
2021-09-26 1차 영혼육 (5) - 이재록 목사 데살로니가전서 5:23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그릇됨됨이와 마음됨됨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떤 심정으로 받고, 또 들은 말씀을 어떻게 마음에 새기고 행해 나가느냐에 따라 각 사람의 그릇됨됨이가 결정됩니다. 먼저 그릇됨됨이의 차이가 왜 중요한지 설명한 후에 마음됨됨이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그릇됨됨이의 중요성
   
   그릇됨됨이가 중요한 이유는 그릇됨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아 새기고 행하는 정도가 다르며, 그릇됨이 좋으면 그만큼 성결을 신속히 이루고 영적인 능력도 더 크게 나타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똑같이 들었다 해도 사람마다 마음에 담는 정도가 다르고 행해 나가는 정도도 다르지요. 어떤 사람은 듣기는 들어도 마음에 잘못 담고, 어떤 사람은 담기는 해도 행하지는 않습니다. 반면에 마음에 잘 담고 열심히 행해 나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처럼 같은 말씀을 받고도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이 다 다른 것입니다. 이런 차이 때문에 주의 종이나 일꾼들의 능력과 권세가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데 어떤 사람은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바로 사람마다 그릇됨됨이가 다르고, 그릇됨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행해 나가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가령, 수학 공식을 배우면 어떤 학생은 건성으로 듣고 잊어버리는가 하면, 어떤 학생은 외울 때까지 열심히 복습합니다. 그런데 공식을 달달 암기했다고 해서 학생들의 실력이 같은 것은 아니지요. 그 공식에 대입해서 얼마나 많은 문제들을 풀면서 적용하고 응용하는가에 따라 실력이 다릅니다.
   영적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워도 영적인 능력이 다르지요. 어떤 사람은 말씀을 듣는 대로 놀랍게 변화되는데, 왜 어떤 사람은 수년이 지나도록 큰 진보가 없는 것일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처럼 귀히 여기고 그 말씀대로 행해 나간다면 변화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영적으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지요. 기도하면 응답이 오고 영적인 축복뿐 아니라 물질의 축복도 넘치게 받습니다. 성령의 음성을 들어 사명을 감당해 나가니, 심령들을 대하면 깨어지고 변화되는 역사가 나타나지요. 자신이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도록 맡겨 드리므로 아름다운 열매들이 맺히는 것입니다.
   
   
   2. 마음됨됨이
   
   마음됨됨이는 어떤 면에서는 그릇됨됨이와 비슷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지만 그릇됨됨이에 비해 마음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마음됨됨이라는 것은 똑같은 그릇됨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 상황에서 얼마나 마음을 넓혀서 사용하는가에 따라 달라지지요.
   비유를 들면, 그릇됨됨이는 그릇의 재질 곧 금그릇이냐, 은그릇이냐, 질그릇이냐 하는 것에 관계됩니다. 반면에 마음됨됨이는 그릇의 크기와 관계된다 할 수 있습니다. 이 마음됨됨이를 크게 네 가지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자신이 해야 할 것 이상으로 해내는 경우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마음됨됨이가 가장 좋은 그릇입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자녀에게 방에 떨어진 휴지를 주우라고 하면 휴지를 주울 뿐 아니라 휴지통까지 비우는 자녀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 방안의 먼지까지 쓸고 닦고 구석구석까지 청소하여 부모에게 흡족함과 기쁨을 안겨 주는 자녀도 있습니다.
   또 청소할 때 자기 집 마당과 문 앞만 치우고 끝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옆집 대문 앞까지 쓸어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 동네 골목길까지 부지런히 청소하는 사람도 있지요. 이렇게 마음을 넉넉하게 쓰는 사람은 모든 일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인정을 받습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도 마음을 얼마나 넓게 쓰느냐에 따라 마음됨됨이가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스데반 집사나 빌립 집사 같은 경우는 주의 종이 아니니 적당히 신앙생활 한 것이 아니라 주의 종에 못지 않은 마음됨됨이로 성결되고 충성하여 하나님 앞에 온전한 자녀의 모습을 이뤄나갔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기쁨이 되었고 집사로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많이 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는, 자신이 해야 할 것만 겨우 해내는 경우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는 확실하게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거나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데까지는 마음을 쓰지 못합니다. 가령, 부모가 휴지를 주우라 하면 달랑 휴지만 줍는 경우이지요.
   주 안에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만 감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이 맡은 일만 하고 다른 분야에는 마음을 쓰지 못하는 경우인데,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큰 기쁨을 드리지는 못합니다.
   예를 들어, 찬양이나 어떤 분야에 특별한 달란트가 있어서 직분을 맡았다 해도 마음됨됨이가 좋은 사람은 그 분야만 감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영혼 관리하는 직분을 맡지 않았다 해도 기관장이나 구역장과 하나 되어 영혼들을 돌아본다든가 그 밖에 내가 도울 일이 없는지 마음을 쓰지요.
   교회적인 행사가 있을 때도 마음을 넓게 쓰는 사람은 자신의 사명뿐 아니라 전반적인 분야들을 마음에 담고 아버지 하나님의 심정으로 돌아보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라면 기도할 때도 자신이 맡은 분야만을 위함이 아니라 다른 분야의 사명 맡은 분들을 위해 자신의 일처럼 간절히 기도하게 되지요. 이럴 때에 하나님 앞에서도 큰 기쁨이 되고 그만큼 천국의 상급도 큰 것입니다.
   
   세 번째는, 반드시 해야 하는 것만 억지로 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사람은 기쁨과 감사함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불평불만이 가득하고 매사에 부정적이며, 자신을 희생하고 섬기는 데 인색합니다. 사명을 맡았을 때도 의무감 속에서 감당하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부담을 주지요.
   그러나 사람이 무엇을 한다 해도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중심입니다.
   예를 들어, 기도를 해도 직분자이니까 할 수 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 정녕 아버지를 사랑하기에 중심의 간절함으로 해야 하지요.
   또한 맡은 분야에 부흥을 이루고자 할 때도 열매를 내야 한다는 부담감에 억지로 심방하고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들을 사랑하기에 자기 몸처럼 돌아보고 어찌하든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에 이르도록 뜨거운 마음으로 복음을 증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의 입에서는 부정적인 말이나 불평불만이 나오지 않습니다. 항상 기쁨의 찬송이 흘러나오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는 고백이 저절로 나오지요. 이와 같이 내게 맡겨진 것을 이룰 때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여 자원하는 마음으로 감당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네 번째로, 자신의 할 바를 감당하기는커녕 상관하지 않는 것이 나을 정도로 악을 행하는 경우입니다.
   이러한 마음됨됨이를 가진 사람은 책임감이나 의무감도 없고 상대에 대한 배려도 없을 뿐 아니라 자기 생각과 이론을 고집하여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합니다.
   가령, 부모님이 청소를 하라고 시키면 ‘동생도 있는데 왜 꼭 나에게 시키느냐’면서 청소도 하지 않고 오히려 동생을 때려 울리는 경우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도, 당연히 해야 되는 일인데도 ‘내가 왜 이런 일까지 해야 하느냐’고 불평불만하며 더 나아가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하며 화평을 깨는 사람들이 있지요. 또한 맡겨 주신 영혼들을 사랑으로 갈무리하지 못하여 잃어버리거나 실족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부족함을 회개하고 어찌하든 사명을 잘 감당해 보려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남의 탓, 환경 탓만 합니다. 이런저런 핑계만 대다가 맡았던 사명까지 놓아 버리지요.
   이런 사람에게는 무엇을 부탁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기왕에 무슨 일을 맡기려면 첫 번째 경우처럼 자신의 일 이상의 것을 감당하되 기쁜 마음으로 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원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일을 이루실 때에 이렇게 마음됨됨이가 좋은 사람을 기뻐하시며 크게 사용하십니다.
   여러분은 네 가지 경우 중 어디에 속하는지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일을 감당할 때 더 넓게 마음을 쓰고 포용하며 살펴보았습니까? 혹시 주어진 만큼만 간신히 감당하면서 불평불만이 가득한 마음이었거나 행할 것도 행치 않으면서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서로 간에 다투며 부딪히는 분야는 없었습니까?
   이러한 것을 살펴봄으로 만약 내 마음됨됨이가 부족했다면, 이제부터라도 더 넓고 큰 마음으로 바꾸면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마음을 성결하게 하여 그릇됨됨이를 갖춰야 합니다. 그릇이 좋지 않은데 마음됨됨이만 좋아질 수는 없지요. 그리고 모든 분야에서 열정을 가지고 행하며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마음을 이루는 것이 마음됨됨이를 좋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됨됨이가 좋은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쓰임받을 때도 더 큰 일을 감당하며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요셉은 형들의 시기 질투로 인해 애굽으로 팔려가서 시위대장 보디발의 종이 되었으나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매를 맞지 않으려고 주인이 시키는 일만 적당히 한 것도 아닙니다. 성실하게 맡은 일을 행하며 주인의 마음으로 집안일을 돌아봄으로 결국 주인에게 인정받아 그 가정의 제반 업무를 맡게 되었지요.
   결국 요셉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애굽 온 나라를 다스리는 총리가 되었으며 자기 가족과 민족을 구원하는 위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신이 처한 환경 속에서 매 순간 하나님 앞에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하며 좋은 마음됨됨이로 보고 듣고 행하였기에 하나님 앞에 크게 쓰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각자가 어떻게 마음을 쓰고 자신의 마음됨됨이를 만들어 가는가에 따라 하나님 앞에 쓰임받는 데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기관에서 단지 회원이라 해도 기관장의 마음으로 모임에 동참하고 심방하며 영혼들을 돌아보면 결국 회원들의 인정을 받아 기관을 맡게 되며, 계속 그렇게 마음을 넓게 써 가면 선교회장이나 연합회장도 될 수 있지요.
   이런 사람이라면 교회에서만 열심 내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마음을 넓게 쓰며 뭇사람에게 인정받습니다. 이렇게 마음됨됨이를 아름답게 이뤄나가면 결국은 온 집에 충성하는 자라 인정받은 모세와 같이 하나님 앞에서 귀한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잘 양식 삼아 크고 귀한 그릇으로 나와 하나님의 큰 기쁨이 되며 늘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이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1년 9월 26일 주일)
* 사회: 임학영 목사
개회찬송 52장 1절
성시교독 34번
찬송 453장
기도 이미영 목사
성경봉독 데살로니가전서 5:23
찬양 주님 앞에 설 때에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1차 영혼육(6)(영상설교)
당회장님
찬송 만민 찬양 44장
주일 저녁예배 (2021년 9월 26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이석규 목사
대표기도 류순주 전도사
성경봉독 요한일서 5:16
특송 말레이시아 페낭 농아 만민교회
설교 요한일서 강해(40)
이수진 목사(당회장 직무대행)
수요 예배 (9월 29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정현진 목사
대표기도 조은영 전도사
성경봉독 갈라디아서 5:22~23
설교 자비
이미영 목사
금요 철야예배 (10월 1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조대희 목사없음
대표기도 강승표 목사(전주 만민교회 담임)
성경봉독 요한계시록 2:8~11
찬양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요한계시록 강해(9)-서머나 교회①(영상설교)
당회장님
새벽 예배
인도 당분간 없습니다.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1-09-26 2021년 9월 넷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새로 나오셔서 등록해 주신 분들과 인터넷으로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당회장님 소식

● 당회장님의 저서 「참된 복을 좇는 자」가 인도 벵골어,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가 조지아어, 콩고 링갈라어, 베트남어 전자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 당회장님 신앙칼럼이 「기독선교신문」, 「시사뉴스」 등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교회 소식

● 정기 원로회가 오늘 저녁예배 후 오후 7시에 온라인으로 개최됩니다.

● 남선교회 총연합회/ 「제20회 말씀퀴즈대회 」시상식이 오늘 저녁예배 시 있습니다.

● 우림북/ 10월 추천도서는 「영혼육(하)」입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우림북 홈페이지 www.urimbooks.com)

● 당회장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조) 교보문고, 영풍문고, 북스리브로, 예스24, 인터파크 등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자책(e-book) 및 오디오북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감사드립니다.

강단헌화/ 이웃나라(꽃꽂이 봉사: 예배국 미화부, 시설관리국)
주간 성경구절
자료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