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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공과
2021-10-29 제44과팔복 ( 1 )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3
읽을말씀 : 마태복음 5:3  |  외울말씀 : 마태복음 5:3 | 참고 말씀: 요한일서 2:15~16
교육목표 : 가난한 심령이 되어 천국을 소유할 뿐만 아니라 가정, 학교, 일터 등 모든 곳에서 만사형통한 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세상 사람들은 부유하고 명예와 권세가 있으며, 자녀들이 효도하고 건강하며 가족이 화목하면 복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복을 모두 누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물질이 많아도 건강을 잃어 걱정하고, 명예 권세가 있지만 가정이 불화하여 속상해합니다. 또 불의의 사고로 비참하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았다 해도 죽으면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준비를 하지 않고, 이 땅에서 먹고 마시며 잘사는 것에만 삶의 목표를 둔다면 무서운 지옥에 떨어지고 말지요.
   그러면 과연 참된 복은 무엇일까요?
   
   
   1.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장 3절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말씀합니다. 이 세상에 가난을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당연히 부유한 것이 좋지요.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시는 것일까요?
   여기서 ‘가난하다’는 것은 물질이 없어 가난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마음이 가난한 것을 뜻하지요. 다시 말해,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악이 없고 선한 마음, 아무 욕심이 없어 자기를 비울 줄 아는 중심 상태’를 말합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심령을 채울 영의 것을 사모하기에 복음을 쉽게 받아들입니다. 전도해도 쉽게 받아들이고, 말씀을 들으면 그대로 순종하니 구원받기도 쉽지요.
   반면 마음이 부유한 사람들은 세상 욕심으로 마음이 가득 차 있어 전도를 하면 거부합니다. “사업이 바빠서요. 공부해야 해요. 돈 벌어야 해요. 나중에 한가해지면 갈게요.” 합니다. 이렇게 세상의 부, 명예, 권세로 그 눈과 마음이 가득 차 있으니 하나님의 살아 계신 증거를 보여 주어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6장을 보면 심령이 부유한 부자와 심령이 가난한 거지 나사로가 대조적으로 나옵니다. 부자는 호의호식하며 날마다 잔치를 베풀 정도로 풍족한 삶을 살았기에 마음까지 부요해져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거지 나사로는 비록 부자의 대문 앞에서 구걸하며, 그 상처를 개가 핥는 불쌍한 삶을 살았어도 심령이 가난했기에 하나님을 믿었지요.
   그런데 두 사람이 죽은 후에는 형편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나사로는 아브라함 품에 안겨 참된 평안과 안식을 누렸습니다. 반면 부자는 아랫음부에 떨어져 뜨거운 불꽃 가운데 고통받지요. 그러니 이 땅에서 날마다 잔치를 즐겼던 부자와 비록 구걸하며 살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였던 거지 나사로 중에서 진정 복 있는 사람은 누구이겠습니까?
   이 비유는 거지와 같이 가난한 삶을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영생을 누리기 위해 반드시 가난한 심령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심령이 되어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녀들에게 이 땅에서도 건강의 복, 물질의 복, 머리 되는 복 등 만사형통의 복을 주십니다. 또한 어떤 부귀영화와도 바꿀 수 없는 참되고 영원한 복 곧 천국을 주시지요.
   
   
   2. 가난한 심령이 되어 천국을 소유하려면
   
   1)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버려야 합니다.
   요한일서 2장 15~16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말씀합니다. 따라서 세상 것들로 채워 있던 우리 마음을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으로, 천국의 소망으로 온전히 채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육신의 정욕을 버려야 합니다. 육신의 정욕이란 죄를 지으려는 마음의 속성이지요. 즉 ‘죄를 짓고 싶은 마음’입니다. 마음속에 미움, 혈기, 욕심, 음욕, 시기, 교만 등 온갖 악이 있으면 죄를 짓고 싶어지지요.
   가령, 초신자가 술을 끊기로 결심을 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아직 술을 마시고 싶은 마음을 온전히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술자리에 가면 술을 마시고 싶은 강한 욕구가 일어납니다. 이러한 육신의 정욕이 사람을 충동하여 술을 마시려는 마음을 갖게 하고 술을 마시도록 만듭니다. 또 판단 정죄하는 죄성이 있으면 남의 소문을 듣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며 수군수군합니다.
   
   다음으로, 안목의 정욕을 차단해야 합니다. 안목의 정욕이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을 통해 마음이 동요되고 육의 것들을 추구하게 만드는 속성을 말합니다. 눈이 있어 보고 귀가 있어 들으며 발이 있어 간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보고 들으며 어디에 있는지가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한 번 스쳐가며 본 것이라 해도, 아무 의미 없이 보고 들었다 해도 그것이 느낌으로 입력되어 다시 떠오르기도 하고, 또 보고 싶고 취하고 싶어집니다.
   문제는 이렇게 보고 듣고 접한 것들이 죄에 속한 것, 어둠에 속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음란물을 한 번 봤는데 그것이 공부를 방해하며 또 보고 싶어집니다. 이처럼 안목의 정욕은 내 안에 비진리를 발동시킴으로 육신의 정욕을 불러일으키는 주범입니다. 그러니 진리가 아니면 보거나 듣지도 말고 그런 곳에 가지도 말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생의 자랑을 버려야 합니다. 이생의 자랑은 현실의 모든 향락을 좇아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 자랑하는 속성입니다. 이생의 자랑이 있으면 자신이 가진 것, 부, 명예, 권세, 재능, 외모, 지식 등을 자랑하며 드러내고 싶어합니다.
   야고보서 4장 16절에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말씀합니다. 이생의 자랑이 있으면 자신이 가진 것으로 남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교만이 나옵니다. 이는 가난한 심령인 섬김, 희생, 사랑과는 거리가 먼, 마음이 부유한 모습이지요. 그러니 천국의 아름다움과 소망은 없고 이 세상 것들이 더 좋아 보이고 가치 있게 느껴집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충성하기도 싫고 그저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쭉정이 신앙생활에 머무르지요.
   혹여 여러분은 나를 자랑하고 싶고 세상 것에 욕심이 있지는 않은지, 은근히 인정받고 높여 주기를 바라지는 않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울 때, 천국의 소망으로 가득 채워 주십니다.
   
   2)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8장 3절에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영적인 어린아이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영적인 어린아이는 단순하고 순수하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좋은 것을 알려 주면 쉽게 받아들이고 자존심이나 자기 고집이 없어 지적과 권면을 받아도 쉽게 인정하지요. 잘못한 것에 대해 바로 뉘우치고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힘씁니다.
   그러나 세상에 물들어 순수함이 사라지면 죄를 범하면서도 무감각해지고, 권면을 받아도 인정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죄책감도 없습니다. 주님을 영접한 후에도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를 지어 구원의 길에서 멀어지기도 하지요.
   또한 영적인 어린아이는 선악 간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선한 것을 보면 쉽게 감동받아 눈물을 흘리지만 악은 몸서리치도록 싫어하지요. 하나님께서 악이라 하시면 마음에서부터 싫어지고 어찌하든 범죄하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서 성령님을 통해 신속히 변화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이렇게 가난한 심령이 되기 위해서 항상 겸손히 낮아지고, 말씀을 통해 자신의 악을 발견하며, 불같은 기도를 통해 죄악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그럴 때라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 자녀가 되어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고, 이 땅에서도 부와 명예, 건강, 물질 등 축복을 받는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물질이 없어 가난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 )이 가난한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 )이 없고 선한 마음으로 아무 욕심이 없어 ( )를 비울 줄 아는 중심 상태를 말한다.
   
   2. 가난한 심령이 되어 천국을 소유하는 복을 받으려면
   첫째, ( )의 정욕, ( )의 정욕, ( )의 자랑을 버려야 한다.
   둘째, 영적인 ( )가 되어야 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지옥의 대기 장소인 ‘아랫음부’
   
   창세 이래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영혼들이 지옥으로 떨어지기 전 온갖 형벌을 받으며 머무는 장소이다. 누가복음 16장 24절을 보면, 아랫음부에 있던 부자가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하면서 고통을 호소한다.
   아랫음부에서 대기하던 이들은 인간 경작이 마쳐지고 백보좌 대심판 후에 죄의 경중에 따라 마침내 지옥의 불못이나 유황못으로 떨어진다.
지난 주 설교요약
2021-10-24 1차 영혼육 ( 8 ) - 이재록 목사 데살로니가전서 5:23
오늘은 첫 사람 아담의 영과 우리의 영이 어떻게 다른지 살펴본 후, 영체와 영의 지식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해 영이 죽었고, 그때부터 혼을 주관하는 사단을 통해 비진리가 들어옴으로 사람의 마음과 양심은 점차 악으로 물들게 되었습니다. 인류가 구원에 이르려면 죽은 영이 살아나야 하는데 그 길은 바로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또한 진리의 말씀을 마음에 심고 그 말씀대로 행해 나감으로 영이 성장해야 합니다.
   그러면 첫 사람 아담의 영과 우리의 영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고, 영체와 영의 지식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첫 사람 아담의 영과 우리 영의 차이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창조하실 때, 그 코에 하나님의 능력이 담긴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 생령 곧 살아 있는 영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과정은 오랜 시간이걸린 것이 아니라 순식간에 된 일입니다. 다시 말해, 아담은 어린아이가 아닌 성인으로 지음 받은 후 생령이 되었고 하나님을 통해 점차 영의 지식들을 배워 나갔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의 영은 어떤 비진리나 악이 없는 진리만으로 채워진 영이었지요. 마치 백지에 그림을 그려 나간 것과 같은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의 후손으로서 영이 죽었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이 살아난 사람들은 어떠할까요?
   조상으로부터 전해져 온 죄성이 이미 기 속에 포함되어 있으며 성장하면서 비진리가 입력되어 왔습니다. 따라서 온전한 영의 사람이 되려면 먼저 입력된 비진리를 뽑아내면서 생명과 진리가 마음에 심어지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굳어진 땅을 열심히 쟁기로 갈고 거친 돌을 줍고 가시떨기를 뽑아내어 옥토로 만들듯이 사람의 마음도 개간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비진리를 모두 벗어버리고 100% 진리로만 채워진 마음이 되었을 때 비로소 온 영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담은 비진리나 죄가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진리만 입력된 상태였지만, 이 땅에서 육을 경험하고 온 영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빛과 어둠, 선과 악의 상대성을 알기에 아담처럼 다시 육으로 타락하지 않습니다. 또한 죄에서 구원해 주신 사랑의 하나님께 마음 중심에서 감사하게 되지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영혼육으로 창조하시고 선악과를 두어 인간 경작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2. 영체
   
   “체”란 어떤 형상을 좇아서 그려낼 수 있는 모습의 형상을 말합니다. 즉 어떤 사물의 형상을 이룬 것을 말하지요.
   가령, 우리는 독수리의 체를 보고 독수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한 사자를 독수리라고 하지 않는 것은 그 체가 독수리의 체와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사람의 형체가 있기 때문에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지, 만약 그 체가 사자로 되어 있다면 그 마음이 아무리 사람과 같다 할지라도 “사자”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체란 눈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특별히 살갗이 있고 그 살갗이 어떤 형상을 이루어놓은 것을 육체라 말합니다.
   그런데 육체가 있으면 영체가 있음도 알아야 합니다(고전 15:38~40). 우리 눈에 보이는 육이 형상을 이룬 육체가 있듯이, 영에도 영혼을 담는 그릇인 영체가 존재하므로 누구의 영인지 구별할 수 있고, 형상을 알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영체란 무엇이며 또 영체는 어떻게 생기게 되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흙으로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는데 여기서 기(氣)란 하나님의 모든 능력이 응집된 결정체를 말합니다.
   이러한 기가 불어넣어졌기 때문에 아담은 흙으로 지어졌지만 살아있는 영이 된 것입니다. 마치 TV에 전기 코드를 꽂고 스위치를 올릴 때 화면에서 영상과 소리가 나듯이, 아담도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옴으로 비로소 살아 움직이는 영이 되었지요. 이때 영이 몸담고 있는 체가 바로 영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영체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의 불순종 이후 하나님께서 “정녕 죽으리라” 말씀하신 대로 영은 죽은 상태가 되었으나 아담의 영을 담고 있던 영체는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육체는 주인인 영혼이 떠나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체는 하나님의 생기를 받아 만들어졌기 때문에 결코 소멸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아담이 범죄한 후, 사람의 영은 어떤 상태가 되었을까요?
   영은 죽음을 맞이하고 대신 영체 안에 혼이 담기게 됩니다. 짐승은 육의 생명이 끊어지면 혼도 사라지지만 사람은 영이 죽는다 해도 영체 안에 혼이 담겨 영원히 존재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천국과 지옥을 두실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성령으로 죽은 영이 살아나고, 계속해서 성령으로 영을 낳으면 그 영과 진리에 속한 혼이 영체에 담겨서 천국에 들어갑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영체 안에 죽은 영과 혼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베드로의 저주를 받을 때, “영혼이 떠났다” 하지 않고 “혼이 떠났다”라고 표현한 것입니다(행 5:1~11).
   그러면 이런 사람들의 혼은 영체에 담겨 어디로 갈까요?
   이들은 죄로 오염되어 부패하고 냄새나며 더럽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갈 수 없고 지옥에 던져집니다.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백보좌대심판 전까지는 아랫음부로 갔다가 부활하여 심판받은 후에는 지옥 불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만약 악하고 추한 마음을 가진 이들이 천국에 간다면 어찌 천국을 아름답다 할 수 있겠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떻게 행복하고 평안하게 지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영안이 열린 분들은 영체를 볼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영체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다릅니다. 각자가 진리의 말씀을 마음에 심어 영으로 변화된 만큼 영체에서 더 아름답고 환한 빛이 나오며 그 빛에 따라 나중에 들어갈 천국의 처소와 영광이 달라지지요.
   고린도전서 15장 41절에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했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19장 7~8절에는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했지요.
   이와 같이 우리가 구원받는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영광을 얻는 것이 아님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올바로 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안다 해도 그 말씀대로 행하지 않고 전혀 마음에 할례하지 않는 사람은 영체가 검은 빛을 냅니다.
   각 사람의 영체에서 흘러나오는 빛만 보아도 그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지, 교회만 왔다 갔다 하고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지, 혹은 사단에 사로잡혀서 곤고해하는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영체를 알면 부활이나 휴거도 쉽게 이해하고 믿을 수 있습니다. 영체는 무게가 있는 것 같으나 없고 없는 것 같으나 또한 있습니다. 그래서 믿는 이들이 죽으면 영체가 하늘로 올라가는데, 이때 영만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혼도 영체에 함께 담겨 올라갑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에 그들의 몸도 썩지 않을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공중에 끌어 올려지는데, 이때 주님과 함께 온 영체와 결합되어 영혼육의 완전한 부활체를 이룹니다.
   누가복음 24장 39절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말씀하신 것처럼, 부활하신 주님께서도 뼈와 살이 있으시되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을 입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문으로 통과하지 않으시고 방에 들어오기도 하셨지요. 이처럼 영체에 신령한 몸이 입혀지면 시공간을 초월해서 움직일 수 있습니다.
   
   
   3. 영의 지식
   
   영체가 영과 영을 구분시켜 주는 껍데기라면 영을 이루는 내용물은 바로 영의 지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이 있는 것처럼 영도 영생하기 위해 영의 지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처음 생령이 되게 하셨을 때에는 갓 태어난 아이처럼 아무런 영의 지식이 없는, 비어있는 영의 상태였습니다.
   만일 사람이 감각만 느낄 수 있을 뿐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지식도 없고 자기 의사를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받아들이거나 분별할 수도 없다면 어찌 온전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산 영이 된 아담이라 해도 알맹이에 해당되는 영의 지식이 없고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영이라는 근본 자체만 있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영도 영의 지식이 겸비될 때 온전한 영의 구실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의 지식이란, 성경 66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과 결부된 모든 말씀들을 말하며 이 영의 지식들이 바로 생명을 작용시킵니다. 예를 들어,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할 때 미움이나 시기와 같은 썩어질 육이 벗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랑이라는 영 자체가 탄생되지요.
   이렇게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해 나가면 마음 자체가 진리로 변화되어 온 영으로 신속히 일구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의 세계는 다함이 없고 끝이 없는 무한한 세계이므로 그 깊이도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 6장 9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하신 말씀처럼 우리는 조금도 멈추지 아니하고 영의 세계를 향하여 끊임없이 도전해 나가야 합니다.
   자신의 부족함이 발견되면 이를 발견케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부족함을 딛고 일어설 수 있어야 하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신 영원한 소망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끝까지 달려나가면 반드시 거기에 대한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열매를 맺기까지는 힘쓰고 애쓰며 인내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가 영적인 세계로 들어가는 것도 마찬가지이지요.
   그래서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라(히 12:4) 말씀했고,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했습니다. 그러므로 영의 세계를 체험했다 해서 자족하여 나태해지지 말고, 더욱 넘치는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무한한 영의 세계를 깊이 뚫어 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1년 10월 24일 주일)
* 사회: 임학영 목사
개회찬송 37장 1절
성시교독 49번
찬송 458장
기도 조대희 목사
성경봉독 데살로니가전서 5:23
찬양 주 날 인도하네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2차 영혼육(1)(영상설교)
당회장님
찬송 만민 찬양 84장
주일 저녁예배 (2021년 10월 24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박광현 목사
대표기도 이영인 전도사
성경봉독 요한일서 5:19~21
특송 몰도바 만민교회 찬양팀
설교 요한일서 강해(43)
이수진 목사(당회장 직무대행)
수요 예배 (10월 27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노영진 목사
대표기도 장성식 목사
성경봉독 로마서 8:5~6
설교 생명과 평안(2)
이미경 목사
금요 철야예배 (10월 29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조혁희 목사없음
대표기도 박광현 목사
성경봉독 요한계시록 2:8~11
찬양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요한계시록 강해(12)-서머나 교회④(영상설교)
당회장님
새벽 예배
인도 당분간 없습니다.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1-10-24 2021년 10월 넷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새로 나오셔서 등록해 주신 분들과 인터넷으로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당회장님 소식

● 당회장님의 저서 「참된 복을 좇는 자」 덴마크어,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가 포루투갈어, 폴란드어로 「깨어라 이스라엘」이 덴마크어 전자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 당회장님 신앙칼럼이 「기독선교신문」, 「시사뉴스」 등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교회 소식

● 만민뉴스 한글(954호), 영어(704호), 중국어(579호), 포루투갈어(111호) 신문을 온라인으로 발행하였습니다(만민뉴스 홈페이지www.manminnews.com).

● 당회장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조) 교보문고, 영풍문고, 북스리브로, 예스24, 인터파크 등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자책(e-book) 및 오디오북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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