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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공과
2021-12-17 제51과팔복(7)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9
읽을말씀 : 마태복음 5:9  |  외울말씀 : 마태복음 5:9 | 참고 말씀: 히브리서 12:14, 로마서 6:16
교육목표 : 자신을 희생하여 사람과 하나님 사이를 화목하게 하신 예수님을 닮아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루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영적인 의미의 ‘화평’은 상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마음이기 때문에 무례히 행치 않고, 설령 내가 옳다 하더라도 비진리가 아니면 상대에게 맞추어 주지요. 또한 모든 사람의 유익을 좇으며 나를 드러내지 않고, 상대를 먼저 생각해 주고 맞추어 주며, 편벽됨이 없고 진리 안에서 양면성이 있는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되려면 자신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섬기되 생명까지 내어 주는 것이 영적인 화평이지요.
   
   
   1. 자신을 희생하여 화평케 하신 예수님
   
   첫 사람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 단 한 가지 금하신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그 결과 범죄한 아담과 그의 후손들은 모두 죄인이 되어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의 담으로 막히게 되었습니다.
   때가 이르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화목제물이 되어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모든 인류 사이에 막혔던 죄의 담을 헐어 주셨습니다.
   혹자는 “왜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해 온 인류가 죄인이 되어야 합니까?”라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이는 옛날에 한번 노예가 되면 자손 대대로 노예의 멍에를 짊어져야 했던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6장 16절에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말씀하신 대로 첫 사람 아담이 원수 마귀에게 순종하여 죄를 범함으로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화평케 하는 직책을 감당하셨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화평케 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물론 진리를 알면 악한 의도로 화평을 깨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옳다고 하는 자기 의가 있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화평을 깰 수 있습니다.
   이는 평소에 내가 상대에게 맞추어 주는가, 아니면 상대가 나에게 맞추어 주는가를 점검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내는 음식을 싱겁게 먹는 반면 남편은 짜게 먹습니다. 이때 아내가 싱겁게 먹는 것이 건강에 좋으니 무조건 자신의 의견에 따르라고만 한다면 다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서로 화평하려면 자신도 양보하고 배려하면서 조금씩 개선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또 아주 사소한 일인데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자기 의로 인해 화평이 깨어지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선 ‘상대의 유익을 구하기보다는 내 유익을 먼저 구하지 않는가?’, ‘내 생각이 진리라는 이유로 상대가 힘들어하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관철시키지 않았는가?’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자신이 얼마나 화평케 하는 사람인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2. 화평케 하는 자가 되려면
   
   1)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사야 59장 1~2절에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하나님과 사이에 죄의 담으로 가로막히게 됩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기 위해서는 죄가 없어야 하지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주님의 보혈의 공로로 모든 죄를 용서받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과 가로막혔던 죄의 담이 허물어져 화평을 이루게 되지요. 그런데 죄를 사함 받았는데 또다시 죄를 짓는다면, 하나님과 화평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갈 때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축복받을 수 있습니다. 질병을 치료받아 강건해지고, 물질의 어려움을 해결받아 부요해지는 등 마음의 소원들을 응답받게 되지요.
   
   2) 자기 자신과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마음 안에 미움, 시기, 질투 등 악이 있으면, 환경과 조건에 따라 악이 발동하므로 자신과 화평을 이룰 수 없습니다.
   옛말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남이 잘되는 것을 싫어하는 시기심 때문에 스스로 고통받는다는 뜻이지요.
   이처럼 시기, 질투, 교만, 다툼, 간음 등 마음에 악이 있으면 참 평안을 누릴 수 없고,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탄식하시니 마음이 곤고해질 뿐입니다. 그러니 자기 자신과 화평을 이루기 위해서는 마음의 악을 벗고 성령의 소욕을 좇아야 합니다.
   
   3)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자신에게 잘해 주는 사람과는 화평을 이루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말씀하셨습니다(히 12:14).
   어떤 사람은 악해서 화평을 깨기보다는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포용하지 못하므로 화평을 깨기도 합니다.
   가령, 열정적으로 일을 추진하다가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데도 본인은 모릅니다. 반대 의견이 나와도 ‘나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더 좋은 쪽을 택했으니까’ 하며 계획대로 추진해 갑니다.
   이런 사람을 주님께서 보실 때 어떠실까요? 하나님 나라를 위하는 열심은 기특하지만 실족하고 상처받는 영혼들에 대해서는 마음 아파하실 것입니다. 비진리가 아니라면 상대의 연약한 믿음도 고려하여 화평을 좇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화평을 깨면서 많은 일을 이루는 것보다, 적은 일이라도 화평함 속에 이루는 것을 더 기뻐하십니다.
   
   
   3. 화평케 하는 자가 받는 축복
   
   마태복음 5장 9절에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했는데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이란 단지 남자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닮은 모든 자녀를 지칭합니다. 단순히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차원을 넘어 더 깊은 영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만, 믿음의 분량은 각 사람마다 차이가 납니다.
   겨우 구원받을 만한 ‘자녀들의 믿음’이 있는가 하면, 이제 막 하나님에 대해 알아가는 ‘아이들의 믿음’이 있습니다. 또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칠 수 있는 ‘청년들의 믿음’이 있는가 하면, 장성한 믿음의 분량으로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을 아는 ‘아비들의 믿음’도 있지요.
   
   ‘화평케 하는 자’란 아비들의 믿음을 이룬 하나님의 자녀를 말합니다. 악은 모양도 없고 하나님의 선과 사랑을 이룬 자녀, 하나님의 마음을 쏙 빼닮은 자녀이지요. 이런 사람들은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받고 축복받으며 하나님의 권능도 받아 원수 마귀가 두려워 떨며 물러갑니다.
   뿐만 아니라 영화로운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 참 아들로서 존귀와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만물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쏙 닮아서 그분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면 그 영광과 존귀함이 어떠하겠습니까.
   천군 천사들의 호위와 수종을 받으며, 수많은 천국 백성에게 세세토록 칭송을 받게 됩니다. 새 예루살렘에서 웅장한 황금보석 집과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누리며, 존귀와 영광 가운데 영원히 살아가게 되지요.
   그러므로 주님의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닮아 하나님과의 화평은 물론, 자신과의 화평을 이루며 모든 사람과도 화평을 이루어 영원한 새 예루살렘에서 큰 영광 중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화평케 하는 자가 되기 위한 3가지 조건을 써 보세요.
   
   ① ( )과 화평을 이루어야 한다.
   ② 자기 ( )과 화평을 이루어야 한다.
   ③ 모든 ( )과 화평을 이루어야 한다.
   
   2. 마태복음 5장 9절에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셨는데,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은 누구를 가리킬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아비들의 믿음(요한일서 2:14)
   
   창조주 하나님의 근본까지 아는 믿음이다.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깨닫고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을 아는 차원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근본을 알았기에 천지 창조를 비롯하여 무수한 비밀을 계시받아 모세 오경을 기록했다.
   아브라함도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아는 단계’에 이르렀기에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했을 때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기쁨으로 순종할 수 있었다.
지난 주 설교요약
2021-12-12 2차 영혼육 (6) - 이재록 목사 고린도후서 10:3~6
오늘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겪을 수 있는 비진리에 속한 혼의 작용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종종 “세상 만사가 다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말을 합니다. 같은 일이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좋은 결과를 낳기가 쉽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좋지 못한 결과를 낳게 되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는 더욱 그렇습니다. 비진리에 속한 혼의 작용으로 육의 생각을 하느냐 아니면 진리에 속한 혼의 작용으로 영의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며, 인생을 마친 후의 결과도 크게 달라집니다. 곧 영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 큰 축복을 받을 것인가 그렇지 못할 것인가, 심지어는 천국에 갈 것인가, 지옥에 갈 것인가가 결정되지요. 말씀을 통해 자신은 어떠한 혼의 작용을 하는지 잘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삶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진리에 속한 혼의 작용들을 대표적으로 몇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품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나름대로의 취향이나 가치관, 혹은“옳다” 하는 것에 대한 틀이 생깁니다. 옷을 입는 것만 보아도 화려하고 특이한 디자인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단순하고 깔끔한 디자인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지요. 같은 영화를 보아도 어떤 사람은 재미있다고 하는데 어떤 사람은 지루하다고 합니다. 똑같은 사람을 보고도 한 사람은 시원하고 화통하게 보인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은 경솔하고 성급하게 보인다고 생각하지요. 그러다 보니 기질이 비슷한 사람끼리는 좋아하고 쉽게 친해지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에 대해서는 불편한 느낌을 갖는 것입니다.
   
   
   둘째로, 판단하는 경우입니다.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자기의 틀이나 느낌 등으로 단정 짓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식탁에서 코를 풀면 무례하고 교양 없는 행동으로 여기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나라도 있습니다. 또 초대받았을 때 음식을 남기면 무례하다고 여기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그릇을 깨끗이 비우면 교양이 없는 행동이기에 반드시 약간은 남겨 놓아야 한다는 나라도 있습니다.
   지역과 문화뿐만 아니라 시대에 따라서도 기준은 크게 차이가 납니다. 예를 들어, 한때 유행했던 옷 스타일이 유행이 바뀌면 촌스럽게 여겨지기도 하며 세월이 지나면 다시 이전의 유행으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니 때와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기준에 맞추어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생각과 느낌에 맞춰 상대의 의도나 행동을 판단해 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은 상대도 거짓말을 한다고 판단하기가 쉬우며 남의 허물을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작은 소리로 말하는 것을 보고 “내 허물을 말하고 있나 보다” 하면서 판단하기가 쉽습니다.
   
   동문서답도 판단으로 인해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예로, 지각을 자주 하는 사람에게 “오늘 아침에는 사무실에 몇 시에 왔느냐?”고 물으면 대답하는 사람은 기분 나빠하면서 “나 오늘은 지각 안했어!” 하는 것입니다. 단지 몇 시에 왔는지를 물었는데 ‘저 사람이 내가 또 지각한 줄 알고 있구나’ 이렇게 판단하고 엉뚱한 대답을 한 것이지요.
   이렇게 사람들은 일상생활이나 교회 안에서도 많은 판단을 하며 살아가면서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때로는 “안 봐도 뻔하다”, “척하면 안다”는 말까지 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지식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친히 보고 들은 것이라 해도 속사정까지는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보지 않고 듣지 않은 일을 나름대로 추측하며 사람의 마음을 판단한다면 이는 너무나 잘못된 일이지요(고전 4:5). 오직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알고 판단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셋째로, 정죄하는 경우입니다.
   
   자신의 생각에 맞춰서 상대를 판단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정죄까지 내리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눈이 나빠서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사람에 대해 ‘눈이 마주치고도 왜 인사하지 않을까’ 하고 판단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은 너무 교만해서 안하무인이야!’ 하고 정죄를 내리는 사람도 있지요. 이처럼 상대를 판단 정죄할 때 이미 그는 하나님처럼 교만해진 것이고 이로 인해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가 정죄받게 되는 것입니다(약 4:11~12).
   더구나 세상 사람들은 영적인 일들을 들으면 자신의 지식과 틀 속에서 이해하지 못하므로 판단 정죄가 나옵니다.
   예를 들어, 병원에서도 고치지 못한 병을 기도받고 치료받았다고 간증하면 “설마 기도만 받고 어떻게 병이 치료되나? 약도 먹으면서 기도를 받았겠지” 하거나 “기분상 나아졌다고 착각하는 것이겠지” 하고 판단합니다. 때로는 간증하는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정죄하는 경우도 있지요.
   또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홍해가 갈라지고, 해와 달의 운행이 멈추었다거나 쓴물이 단물로 변하는 성경상의 기적들에 대해서도 거짓으로 지어냈다고 정죄합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이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성령의 역사를 판단 정죄합니다.
   예를 들어, “환상을 보았다”거나 “계시를 받았다” 하면 “잘못되었다”, “신비주의다” 하지요. 이런 일들은 분명히 성경에도 기록된 하나님의 역사인데 자기 나름대로 만들어 온 신앙의 틀 속에서 성령의 역사를 정죄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자신의 기준에 맞춰 하나님까지도 감히 판단 정죄합니다. 예를 들어, 선악과를 두신 섭리에 대해 모르면서 아담으로 하여금 선악과를 먹고 범죄하여 고통받게 하셨으니 나쁜 하나님이라 합니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 앞에 큰 죄의 담이 되고 자칫하면 성령 훼방, 모독, 거역의 죄를 범하여 회개할 기회조차 얻지 못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넷째로, 말을 잘못 전달하는 경우입니다.
   
   실생활에서 말을 잘못 전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변이 시끄럽고 소리가 잘 안 들려서 원래 내용과 다르게 듣고 전달하는 경우도 있지만 문제는, 내용을 잘 들었는데도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섞어 변질시키는 것입니다.
   사실 들은 내용을 문자 그대로 전달한다고 해도 표정과 소리의 크기 등으로 인해 전해지는 의미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똑같이 “야” 하고 상대를 불렀다 해도 작고 친근한 목소리로 “야” 하는 것과 거칠고 성난 목소리로 “야!” 하는 것은 전혀 다르지요. 하물며 상대의 말이나 표현을 그대로 옮기지 못하고 자신의 표현으로 바꾸어 전하면 원래의 의미와 달라져 버립니다.
   
   성경에도 이런 일이 기록되어 있는데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앞으로 순교할 것을 알려 주십니다. 이때 베드로가 요한에 대해 여쭙자 예수님께서는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지요. 곧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요한이 죽지 않는다 해도 베드로가 상관할 일이 아니라는 말씀인데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그가 죽지 않겠다”라고 말씀하셨다고 엉뚱하게 전했지요(요 21:23).
   이런 예들은 일상생활 속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원래의 내용에서 과장하거나 축소하기도 하고, 심할 때는 전혀 엉뚱한 말로 바꾸어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 게 아닐까?” 하는 말이 “그렇다더라”로, “그럴 수도 있다, 그럴 예정이다” 하는 말이 “그렇게 정해졌다”라고 전달되기도 합니다.
   
   세상에는 말을 정확히 전달하는 사람보다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 더 많고 또 말을 잘못 전했다 해도 웃고 넘어갈 수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말을 잘못 전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순간 마음에 있는 어떤 비진리와 연관되어 잘못된 혼의 작용이 이뤄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음에 진실을 이루면 자기 생각에 의해 사실을 왜곡하지 않습니다. 자기 유익을 구하는 마음, 대충대충 넘어가려는 마음, 조급하게 판단하는 마음이나 남의 말 하기 좋아하는 마음들이 없어질수록 말의 의미나 실제 상황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말을 잘못 전달하는 일이 나에게는 얼마나 있는가?” 돌아보는 것이 결국 “나는 얼마나 비진리에 속한 혼의 작용을 하고 있는가”를 깨달을 수 있는 하나의 척도가 됩니다.
   
   
   다섯째로, 감정입니다.
   
   서운해하고 섭섭해하며 자존심 상하거나 낙심하고 시기하며 분내는 것 등 육적인 감정으로 인해 비진리에 속한 혼의 작용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접하게 되는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품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결국 자신의 마음먹기에 달려 있습니다. 악한 감정을 가지면 생각도, 행동도 악해지는 반면, 선한 감정을 가지면 좋게 보고 듣고 좋게 생각하여 선한 행동도 나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께 책망을 들은 장면들이 기록되어 있는데(마 14:31, 마 16:23), 이때 베드로는 예수님께 서운해하거나 어떤 감정을 품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데는 항상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음을 믿었기에 한 점 감정 없이 동일하게 예수님을 섬겼고 변함없이 존경과 사랑으로 붙좇았습니다. 이렇게 영으로 생각해 나간 베드로는 결국 권능을 행하는 큰 사도가 되었지요.
   
   반면에 가룟 유다는 어떠합니까? 베다니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 드릴 때 가룟 유다는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는 척 향유를 아까워하며 마리아를 비난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의 편을 들어 주시지 않고 영적인 섭리 가운데 예수님의 장사를 예비하는 마리아를 칭찬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룟 유다에게 “네가 틀렸다, 왜 영적으로 생각하지 못하느냐?” 하신 것도 아니고 “너는 왜 나를 속이고 도적질하느냐?”라고 책망하신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유다는 자신의 말을 인정해 주시지 않는 예수님에 대해 불만과 감정을 품게 되었는데 이런 감정들이 쌓이다 보니 사단이 주는 생각을 받아들여 예수님을 배신할 계획을 짜게 되었고, 결국 예수님을 파는 죄를 지었던 것입니다(마 26:14~15). 예수님의 제자였던 그가 이렇게 멸망의 길로 가게 된 것은, 그만큼 평소에도 원수 마귀 사단의 역사를 따라 악한 생각을 쌓아 왔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비진리에 속한 혼의 작용 중 대표적인 다섯 가지를 살펴보았는데 이 는 근본적으로 마음의 악과 연결됩니다. 이러한 비진리에 속한 혼의 작용들은 영의 생각이 아니라 육신의 생각이기 때문에 결국 사망을 낳게 되며 또 마음에도 평안이 임하지 못합니다(롬 8:6).
   그러므로 스스로를 잘 점검하여 비진리의 생각들은 신속하게 버리고 온전히진리로 보고 듣고 생각하며 말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1년 12월 12일 주일)
* 사회: 조수열 목사
개회찬송 57장 1절
성시교독 41번
찬송 126장
기도 황금란 전도사
성경봉독 고린도후서 10:3~6
찬양 주 영광 보리라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2차 영혼육(7)(영상설교)
당회장님
찬송 만민 찬양 52장
주일 저녁예배 (2021년 12월 12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안성헌 목사
대표기도 김영순 전도사
성경봉독 고린도후서 10:18
특송 이수희 집사 & 이혜경 집사
설교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2)
이수진 목사(당회장 직무대행)
수요 예배 (12월 15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김영석 목사
대표기도 오상록 권사
성경봉독 누가복음 22:42
설교 주님의 마음
이미경 목사
금요 철야예배 (12월 17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김상휘 목사없음
대표기도 이성칠 목사
성경봉독 요한계시록 2:18~29
찬양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요한계시록 강해(18)-두아디라 교회②(영상설교)
당회장님
새벽 예배
인도 당분간 없습니다.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1-12-12 2021년 12월 둘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새로 나오셔서 등록해 주신 분들과 인터넷으로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교회 소식

● 당회장님의 저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가 네덜란드어 종이책으로 발간되었고, 「근본의 소리를 발하라」가 보스니아어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조지아어로, 「영혼육(상)」이 라트비아어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 스웨덴어로, 「일곱교회」가 필리핀 따갈로그어로, 「하나님의 벗 아브라함」이 덴마크어 전자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 당회장님 신앙칼럼이 「기독선교신문」, 「시사뉴스」 등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만민뉴스 스페인어(288호) 신문을 온라인으로 발행하였습니다.
(만민뉴스 홈페이지 www.manminnews.com)

● 「12월 은사집회」를 통해서 치료받은 성도님들은 해당 교구장, 지도교사에게 간증을 접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 2021년 제2차 정기 당회가 오늘 저녁예배 후 오후 5시에 온라인 비대면 회의로 있습니다.

● 2022년 사무연회가 12월 26일(주일) 저녁예배 후 온라인 비대면 회의로 있습니다.

● 오늘은 각 기관 총회가 있습니다. 대예배 후 온라인(카톡 등)으로 기관 총회를 실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2022년도 교회 기도제목」
1) 불가능이 없는 믿음 (막 9:23)
2) 거룩한 자녀 (살전 4:3, 딤전 4:5)
3) 아버지 기뻐하시는 성전 (마 21:12~13)
4) 재창조의 권능 100% (겔 37:4~10)

● 당회장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조) 교보문고, 영풍문고, 북스리브로, 예스24, 인터파크 등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자책(e-book) 및 오디오북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지교회 소식

천안만민교회(담임: 정철수 목사) 창립 33주년 기념예배
※ 일시: 12월 12일(주일) 오후 3시, 강사: 박재영 목사


● 감사드립니다.

강단헌화/ 해외 지교회 성도(꽃꽂이 봉사: 예배국 미화부, 시설관리국)


● 2022년도 정기총회 일정

학생주일학교/ 12월 12일(주일) 대예배 후 오후 1시 온라인
각 기관/ 12월 12일(주일) 대예배 후 온라인(자체 실시)
주간 성경구절
자료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