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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공과
2021-12-24 제52과예수 그리스도 빌립보서 2:8
읽을말씀 : 빌립보서 2:8  |  외울말씀 : 빌립보서 2:8 | 참고 말씀: 베드로전서 2:22, 마태복음 12:19~20
교육목표 :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행함을 닮는 성도가 되게 한다.


   성탄절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귀한 선물을 주신 복된 날입니다. 그 선물은 바로 ‘구원의 길’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희생시키심으로 죄인이었던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어떤 분인지 살펴볼까요?
   
   
   1. 고운 분이셨습니다.
   
   모양이 거칠지 않고 모나지 않은 것, 부드러운 것을 ‘곱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마음과 행동, 말씨, 모든 것이 고우셨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수백 년 전에 예수님의 모습을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라고 표현했습니다(사 42:2).
   예수님의 말씀은 지혜롭고 그 권세가 대단했습니다. 놀라운 권능이 있어서 병자에게 손을 얹기만 하셔도, 혹은 병자들이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치료받았고 소경, 귀머거리, 중풍병자 등 중증 환자들이 온전해졌지요. 거친 바람과 바다도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잠잠해졌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큰 무리가 몰려들었지요.
   그런데도 예수님은 전혀 들레지 않으셨습니다. 누군가 자신을 알아주거나 칭송받기 원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으셨지요. 오히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자 길을 걸을 때도 조용히 걸으셨고 요란하게 말씀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큰 권세와 능력을 가졌다고 사람들을 제압하여 부당한 이득을 취하거나 남을 해치는 일은 상상도 못하셨습니다. 소자 한 사람을 대하더라도 섬기는 자세로 대하셨고, 오히려 낮아져서 피조물인 사람들을 섬기셨습니다.
   
   예수님을 주시하는 이들 중에는 바리새인이나 제사장들같이 예수님을 반대하는 부류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끊임없이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틈만 나면 올무를 놓아 잡으려 하고 깎아내리려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까지도 사랑으로 품으셨습니다. 물론 때로는 책망을 하셨지만 이는 그들과 싸워 이겨서 억지로 굴복시키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든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진리를 깨우쳐 주시기 위해서였지요.
   마태복음 12장 20절에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하신 대로 포기할 수밖에 없을 법한 영혼들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이처럼 고운 마음을 지니신 분이 그 누구에게 거친 말이나 행동을 하셨겠습니까. 베드로전서 2장 22절에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말씀한 대로, 예수님께서는 모든 말과 행실이 참으로 거룩하고 온전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고운 마음을 지니면 자연히 고운 말과 행실이 뒤따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만 하기 원하고, 한마디 말도 믿음의 말, 선한 말만 하려고 하지요. 또 누구를 대하든지 자신의 말과 행실을 꼼꼼히 살핍니다.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않기 위해서입니다.
   
   
   2. 자기를 철저히 희생하는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태어나신 날부터 십자가에서 죽임당하시는 날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영혼들을 위해 내어 주셨습니다. 짐승보다 못한 인생들을 속량하시려고 ‘짐승의 우리’에서 나셨습니다. 또 이런 인생들에게 생명의 양식이 되어 주시려고 ‘구유’에 누이셨지요.
   인생들을 가난의 저주에서 풀어 주려고 부요하신 분임에도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모든 질병과 연약함을 온전케 하시려고 채찍에 온몸이 상하셨습니다. 마침내 죄인들을 대신하여 죄의 짐을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지요.
   예수님은 무엇을 넉넉하게 누릴 권한도, 자유로이 살 권리도 다 포기하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의 생애에는 오직 아버지 하나님과 영혼들만 있었습니다.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 전혀 없으셨지요. 빌립보서 2장 8절에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신 대로입니다.
   이 희생은 ‘내가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니까’ 이런 의무감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 ‘내가 이렇게 희생했으니 인생들이 내 뜻과 내 말에 무조건 따르는 것이 마땅하다.’ 이렇게 군림하고 높임 받기 위해 계산적으로 희생하신 것도 아니었지요. 예수님의 희생은 오직 순전한 ‘사랑’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하늘 영광 다 버리시고 이 낮고 낮은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또 가장 귀한 것 바로 생명을 버리셨습니다.
   “너희가 죄를 지었으나 죽기까지 너희를 사랑하노라.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기를 원하노라.” 예수님은 희생을 통해 이런 아버지 하나님의 크고 깊은 사랑을 전해 주고자 하셨습니다.
   또한 이 희생은 예수님께서 어찌하든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고픈 마음을 표현하신 사랑의 행함이기도 했지요. 예수님은 그 귀하신 몸을 제물 삼아 인생들에게 구원과 천국을 주시라고 아버지 하나님께 간구하셨습니다. 이 사랑의 희생으로 인해 결국 우리에게 구원의 길, 천국 가는 길이 열렸지요. 히브리서 10장 20절에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이처럼 주님의 마음에는 오직 영혼들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희생을 떠올릴 때 과연 무엇을 느끼십니까? 주님의 희생은 의무가 아니라 오직 사랑이었습니다. 이런 주님의 사랑이 바로 여러분 자신을 위한 것이었음을 깨닫고 마음으로 느낀다면, 여러분도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3. 항상 간구하는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성결이나 사랑을 구하실 필요가 없을 만큼 하나님을 온전히 닮은 분이셨습니다. 능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지요. 그렇지만 바쁜 나날을 보내시면서도 기도를 쉬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을 낮추시고 오직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것을 구하셨지요.
   구세주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케 하여 주시기를, 영혼들을 깨우쳐 주시고 제자들을 붙들어 주시기를 늘 간구하셨습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이에게 응답이 주어진다는 영계의 법칙을 너무나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을 깊이 사랑했기에 늘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깊은 뜻을 더 온전히 헤아려 이루어 드리기를 간절히 바라셨지요.
   이처럼 기도는 하나님을 사랑하면 자연히 따르는 행함입니다. 어떤 분들은 목자를 사랑해서 간절히 기도하시는데 물론 이 또한 하나님을 사랑해서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누구 눈치 보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랑하기에 스스로가 하는 것입니다.
   
   뜻깊은 성탄절을 맞아 여러분은 “아버지 하나님, 구원해 주시고 변화시켜 주심에 감사합니다.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이제 아버지 하나님의 참 자녀로 나와 오직 하나님 나라와 영혼들을 위한 삶을 살기 원합니다.”라는 마음으로 간절하실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아버지 하나님, 주님, 목자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이런 마음이 간절하다 해도 기도하지 않으면, 삶 가운데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성결을 위해, 사명 감당을 위해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함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결단한 바를 이뤄 가는 과정에서 혹여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만난다 해도, ‘역시 나는 안 되는 사람인가?’ 하고 낙심하기보다 ‘우리 예수님도 늘 기도하셨지. 나는 더욱 기도해야겠구나.’ 하며 더 간절히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기도를 쉬지 않고 끊임없이 영을 향해 달려가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더 신속히 영의 사람, 온 영의 사람으로 이끄실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셨을까요?
   
   첫째, ( )
   
   둘째, 자기를 철저히 희생하는 분이셨습니다.
   
   셋째, ( )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상한 갈대와 꺼져 가는 심지란?
   
   ‘상한 갈대’란 ‘세상의 죄와 악으로 가득 찬 사람’을 말하며, ‘꺼져 가는 심지’란 ‘마음이 심히 악으로 물들어서 그 영혼의 등불이 꺼져 가고 있는 사람’을 뜻한다.
   마태복음 12장 20절에 “상한 갈대도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도 끄지 않는다”는 것은, 만의 하나라도 회생 가능한 영혼이 있다면 어찌하든 살 길을 열어 주시려는 주님의 사랑의 마음을 나타낸다.
지난 주 설교요약
2021-12-19 2차 영혼육 (7) - 이재록 목사 고린도후서 10:3~6
오늘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비진리에 속한 혼의 작용이 아닌 진리에 속한 혼의 작용만 할 수 있는지 그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우리 사람은 눈에 보이는 몸, 곧 육과 보이지 않는 영과 혼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영혼육 말씀은 사람의 영과 혼과 육에 대해 밝히 알려줌으로, 우리 자신의 영혼육이 어떻게 생겨났고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지를 깨닫게 합니다.
   자신의 영혼육에 대해 아는 것은 신앙생활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온전한 주님의 형상을 입으려면 먼저 자신의 영혼육을 발견하여 부족한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부족함을 채울 때, 즉 자신의 영혼육을 온전케 할 때 그것이 바로 성결의 길이며, 축복의 길이 됩니다.
   우리에게 축복의 길을 알려주는 영혼육의 말씀이 결국은 새 예루살렘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곧게 뻗은 지름길입니다.
   
   
   1. 비진리에 속한 혼의 작용을 발견하고 벗어 버려야
   
   혼은 사람의 두뇌에 있는 “기억 장치”와 “그 안에 저장된 기억 내용들” 그리고 “이 내용들을 재생해서 활용하는 생각”을 다 포함하여 총칭하는 용어입니다. 사람들은 거의 항상 혼의 작용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매일 매순간 무엇인가를 보고, 듣고, 느끼면서 그 내용을 기억해 둡니다. 전에 보고 들은 여러 내용들을 떠올려 생각하거나 앞으로 할 일을 계획하기도 하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거나 논리적으로 추론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똑같은 상황에 처한다 해도 모두가 동일한 혼의 작용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살아오면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 어떤 환경에서 어떤 가치관을 만들어 왔는지, 개인적인 취향과 성격은 어떠한지, 이런 것들에 따라 달라집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이 혼의 작용을 할 때, 진리에서 벗어난 혼의 작용을 한다는 데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과 불편한 관계가 되면, 그 사람의 말 하나하나가 걸립니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에 맞추어서 상대의 의도를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상대는 진실을 말했는데도 거짓말을 한다고 단정하거나 자신의 감정에 맞춰서 오해를 하지요.
   가령, 사이가 안 좋은 동료가 “사무실을 깨끗하게 씁시다” 하면 그 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꼬아서 생각합니다. ‘저 사람이 또 나를 빗대어서 말하는구나’ 생각하거나 ‘자기가 직접 청소하면 될 텐데 남들한테 시키려고 한다’, ‘상사에게 잘 보이려고 그러는구나’ 이런저런 비진리의 생각을 하면서 상대를 점점 더 싫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비진리의 혼의 작용을 할 때 자신에게 유익되는 것은 없습니다. 육신의 생각 곧 비진리의 생각들이 마음에 무거운 짐이 되어 생명과 평안이 사라집니다(롬 8:6). 그럴수록 마음은 점점 더 비진리로 물들어 악하게 변해가고, 하나님 앞에도 담이 되어 은혜와 축복을 받을 길이 막히는 것이지요.
   
   
   2. 진리에 속한 혼의 작용을 하려면
   
   때로는 비진리의 혼의 작용을 하면서도 즉시 깨닫지 못할 수 있는데, 나중에 하루를 돌아보며 기도하다 보면 성령께서 깨우쳐 주시고, 떠올려 주시기도 합니다. 이렇게 항상 깨어서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고, 진리에 속한 혼의 작용을 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진리로 생각하려고 해도 자꾸만 비진리의 생각이 떠오르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진리에 속한 혼의 작용을 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모든 것을 진리의 기준으로 분별해야 합니다.
   사람마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양심이 다르고, 세상에서 옳다 여기는 가치 판단의 기준은 대부분 시간과 장소, 문화 등에 따라 달라집니다.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기준은 진리 자체인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 중에는 성경 66권의 진리와 일치하는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도 많지요.
   예를 들어, 세상에서는 원수를 갚아야 의롭고 그렇지 않으면 비겁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하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만약 친한 친구가 범죄했는데 다른 사람이 범인으로 몰려 누명을 썼다면, 이때 친구의 잘못을 덮어 주는 것이 친구에 대한 의리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누명 쓴 사람의 억울함을 알면서도 침묵을 지킨다면, 하나님 앞에서 결코 의롭다 할 수 없지요.
   
   제가 하나님을 믿기 전에는, 식사 시간이 다 되어 남의 집에 갈 경우 아직 식사를 하지 않았다 해도 “저는 식사하고 왔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전혀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을 알고 진리에 비춰 보았을 때 이 또한 엄연히 거짓말이었습니다. 상대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은 좋지만 그 방법 자체는 진리가 아니었지요. 이런 사실을 깨달은 후로는 그냥 “먹고 싶지 않습니다” 한다거나 다른 표현으로 바꾸어 말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부모님들이 받기 싫은 전화가 걸려 올 때나 만나고 싶지 않은 손님이 왔을 때, 자녀들에게 “지금 없다고 해라” 하고 거짓말을 시키지요. 이렇게 번번이 진리에 어긋나게 행하면서도 “내가 거짓말을 하는구나” 깨닫지 못합니다. 또 남의 물건을 빌려 쓰고는 돌려주지 않는다거나, 허락 없이 남의 것을 사용했으면서도 도적질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요.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비춰볼 때는 사람들의 일상 속에 너무나 많은 것들이 진리에서 벗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더구나 세대가 점점 악해질수록 자기 유익을 구하여 비진리를 행하면서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아지고 있지요. 그러면서도 남을 판단 정죄할 때는 자기 자신의 기준을 적용합니다.
   예를 들어, 정치하는 사람들이 경쟁자들을 비방하는 내용을 보면, 자신이 옳고 남은 틀렸다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면 지켜보는 국민들까지도 편이 갈려서 “이들이 옳다, 저들은 그르다” 판단하고 서로 다툽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판단이 과연 진리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정말 나라를 사랑하고 국민을 위하는 선한 마음으로 행동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기 유익을 구하는 것인지, 사람은 모른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다 아십니다.
   그리고 사람이 그 중심을 다 읽지는 못한다 해도 진리의 말씀에 비춰 보면, 각 사람의 말 한 마디나 행동 하나를 통해 그 마음에 얼마나 악이 있는지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어떤 편지를 받았는데 악한 표현으로 누군가의 허물을 알리고 비방하는 내용이 기록되었다면 그 내용을 그대로 믿으시겠는지요? 저라면 믿지 않을 것입니다. 편지에 사용된 악한 표현들만 봐도 그것을 쓴 사람이 얼마나 비진리의 마음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다른 사람을 비방한 내용을 사실이라고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 삼아서 진리로 모든 것을 분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리를 열심히 듣고 배움으로 우리 안에 양식 삼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66권을 열심히 읽어야 하고, 세상에서 비진리로 잘못 입력된 기준들을 벗어 버려야 하지요. 세상에서 아무리 지혜로운 것이라 해도 하나님의 말씀과 어긋나는 것은 모두 벗어 버려야 합니다. 이처럼 세상에서 입력된 비진리를 벗어 버릴 때라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지혜를 얻습니다(고전 3:18).
   
   둘째로, 느낄 때도 진리에 합당하게 느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미움”이라는 감정을 버리려고 해도 상대를 볼 때 싫은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하지만, 느낌이라는 것도 결국 혼의 작용 곧 생각에 따라 달라집니다.
   오래전에 영화에서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한 소녀가 어릴 때부터 코끼리와 매우 친해서, 코끼리는 소녀의 목에 긴 코를 감고 장난을 하기도 했지요. 하루는 이 소녀가 자는데 독사가 와서 그 목을 감았습니다. 만약 그것이 독사인 줄 알았다면 소녀는 얼마나 두렵고 징그럽게 느꼈을까요?
   그러나 소녀는 여전히 눈을 감은 상태에서, 자기 목을 감는 것이 코끼리의 코라고 생각하니 놀라지도 않고 오히려 다정하게 느끼는 것입니다.
   일상생활 속에도 이런 일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좁은 폭의 나무다리를 건너갈 때, 그 다리가 지면에서 1미터쯤 되는 높이에 있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밟고 지나갑니다. 그런데 똑같은 다리를 10~20미터쯤 되는 높이에 두면, 그때는 겁이 나서 지나가지 못하지요. 또 구더기나 지렁이, 지네 같은 것들을 보면 징그럽고 더럽다고 질색을 하는 사람들도, 그런 것을 잡아먹고 사는 닭은 맛있게 먹습니다.
   이처럼 느낌이라는 것도 다 자신이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어떤 사람을 볼 때도, 어떤 일을 대할 때도 좋게 생각하고 좋은 느낌으로 받으면 됩니다. 내 성격과 교양에 맞지 않는 사람에 대해 “저 사람은 참 싫다” 이렇게 생각해 버리면 안 좋은 느낌과 감정으로 남게 되지만,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면서 좋게 생각하면 좋은 느낌으로 입력되는 것입니다.
   범사에 선으로 생각하여 선으로 느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항상 선한 것을 보고 입력시켜 나가야 합니다. 물론 세상을 살아가면서 악한 것들을 전혀 접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특히 요즘은 매스컴이나 인터넷을 통해 잔인하고 폭력적인 것, 거짓된 것, 자기 유익을 구하고 간사하고 배신하는 것 등 악한 것을 더욱 많이 접할 수 있습니다. 진리로 자신을 지키려면 이런 것들을 보지 않고 듣지 않고 기억에 담아두지 않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러나 부득이하게 접하게 된다 해도 매순간 진리로, 선으로 입력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영화에서 폭력적인 장면을 보았을 때, 세상 사람들은 “나도 저렇게 많은 사람을 휘어잡고 싶다”, “참 멋있다” 생각할 수 있지만, 진리로 분별하는 사람은 “저렇게 폭력적인 것은 남을 고통스럽게 하는구나, 나는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느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혼육 말씀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여 비진리에 속한 혼의 작용을 온전히 벗어 버리고 진리에 속한 혼의 작용만 함으로 하나님께서 사랑하실 수밖에 없는 자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1년 12월 19일 주일) 성탄감사주일
* 사회: 조대희 목사
개회찬송 125장 1절
성시교독 57번
찬송 115장
기도 이성숙 목사
성경봉독 고린도후서 10:3~6
찬양 참 귀한 선물 주 예수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2차 영혼육(8)(영상설교)
당회장님
찬송 만민 찬양 52장
주일 저녁예배 (2021년 12월 19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이석규 목사
대표기도 류순주 전도사
성경봉독 에베소서 5:15~21
특송 성유진 형제
설교 어떻게 행할 것인가?
이수진 목사(당회장 직무대행)
수요 예배 (12월 22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노영진 목사
대표기도 조은영 전도사
성경봉독 사도행전 10:1~6
설교 해가 뜨니 어둠은 사라졌습니다
박형렬 목사
금요 철야예배 (12월 24일 금요일 오후 11시)
성탄 전야예배 관계로 금요 철야예배는 없습니다.
새벽 예배
인도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협조하기 위하여 추후 공지 시까지 새벽예배는 모이지 않습니다.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1-12-19 2021년 12월 셋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새로 나오셔서 등록해 주신 분들과 인터넷으로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교회 소식

● 당회장님의 저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가 스웨덴어 종이책으로 발간되었고,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 필리핀 따갈로그어로, 「영혼육(상)」이 네덜란드어로, 「일곱교회」가 마케도니아어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노르웨이어로, 「영혼육(하)」가 조지아어로, 「근본의 소리를 발하라」가 세르비아어 전자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 당회장님 신앙칼럼이 「기독선교신문」, 「시사뉴스」 등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만민뉴스 한글(958호), 영어(708호), 중국어(583호) 신문을 온라인으로 발행하였습니다.
(만민뉴스 홈페이지www.manminnews.com)

● 「2022년도 교회 기도제목」
1) 불가능이 없는 믿음 (막 9:23)
2) 거룩한 자녀 (살전 4:3, 딤전 4:5)
3) 아버지 기뻐하시는 성전 (마 21:12~13)
4) 재창조의 권능 100% (겔 37:4~10)

● 정기 원로회가 오늘 오후 7시에 온라인으로 개최됩니다.

● 「12월 은사집회」를 통해서 치료받은 성도님들은 해당 교구장, 지도교사에게 간증을 접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 성탄 전야예배가 12월 24일(금) 오후 7시에 온라인으로 있으며, 2부에 축하행사 상영이 있습니다.
※ 2부 축하행사 찬양인도: 당회장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
※ 제목: Merry Christmas (부제: Praise to the Lord)

● 이번 주 금요 철야예배는 성탄 전야예배 관계로 없습니다.

● 성탄 축하예배가 12월 25일(토) 오전 11시에 있습니다. 준비 찬양은 예배 20분 전인 오전 10시 40분부터 있습니다.
※ 설교: 당회장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

● 2022년 사무연회가 12월 26일(주일) 저녁예배 후 온라인 비대면 회의로 있습니다. 사무연회는 위임받은 대표자가 참여하여 진행합니다.

● 교회 달력이 아름답게 제작되었습니다. 한 가정당 1부씩 배부되며, 사무실 등에 추가로 필요하신 성도님들께서는 교구장님께 문의 바랍니다.

● 2022년 기도제목카드가 제작되어 배부되고 있습니다. 2022년 개인 기도제목을 작성하시어 교구장님께 전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헌금 봉투에 2022년 소속으로 기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당회장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조) 교보문고, 영풍문고, 북스리브로, 예스24, 인터파크 등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자책(e-book) 및 오디오북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성도 소식

양은주 집사(20교구, 새렘아동심리발달센터 대표)/
제22회 경기도 & 안산시 사회복지의 날 기념식에서 경기도 지사 표창장 수여


● 감사드립니다.

강단헌화/ 백병희 집사(2대대 8교구)(꽃꽂이 봉사: 예배국 미화부, 시설관리국)
주간 성경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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