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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공과
2022-01-28 제4과선악과를 두신 이유 창세기 3:1~7
읽을말씀 : 창세기 3:1~7  |  외울말씀 : 야고보서 1:15 | 참고 말씀: 창세기 2:17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을 에덴동산에 이끌어 들이시고 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두신 섭리를 알게 한다.


   창조주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깊고 오묘한 인간 경작의 섭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은 왜 선악과를 두어 사람을 멸망의 길로 가게 하셨느냐?”고 묻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두시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에덴동산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일부러 선악과를 두고 사망의 길로 인도하셨을 리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두신 이유는 무엇이며, 생령 아담은 왜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을까요?
   
   
   1. 에덴동산에서의 아담과 하와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을 생령, 곧 살아 있는 영으로 창조하시고 풍요로운 에덴동산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동산 중앙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었고 생명수 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령 아담이 홀로 있는 것이 좋지 못하여 돕는 배필로 여자인 하와를 지어 한 몸을 이루게 하셨습니다(창 2:18~25). 이는 아담이 스스로 외롭다고 느껴서가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홀로 계셨던 하나님께서 아담의 형편을 헤아려 베푸신 사랑이었으며 장차 인간 경작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생령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마음껏 누리며 풍요롭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단 한 가지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이 있었지요. 바로 동산 가운데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만은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두시고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사람 사이에 질서를 세우셨습니다.
   
   
   2. 뱀의 유혹을 받아 범죄한 아담과 하와
   
   오랜 세월이 흐르자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말씀을 명심하지 못한 채 선악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자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사단이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한 뱀을 통해 하와를 유혹하니 하와는 물론 결국 아담도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창 2:16~17).
   그런데 뱀이 여자에게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고(창 3:1) 묻습니다. 여자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고 대답하지요.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자가 하나님 말씀을 변질시켜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다고 답변하자 뱀은 더욱 적극적으로 유혹합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하지요(창 3:4~5).
   사단이 간교한 뱀을 통해 욕심을 불어넣자 여자는 선악과가 예전과 다르게 보였습니다. 곧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여자는 선악과를 따 먹고 아담에게도 줘서 먹게 했지요.
   어떤 사람은 “사람에게 악이 있었기 때문에 선악과를 먹었다.”고 말하는데, 아담과 하와는 불순종하기 전에는 전혀 악이 없었습니다. 다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의지에 따라 선악과를 먹을 수도, 먹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님 말씀을 명심하지 못하니 뱀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먹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에 불순종하므로 악이 들어왔습니다. 즉 생령으로 창조된 사람에게 처음부터 악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유 의지 가운데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죄가 성립되었고, 비로소 악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3. 죄의 삯은 사망
   
   영계의 법칙은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롬 6:23).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정녕 죽으리라” 하셨는데 아담과 하와는 불순종한 후 곧바로 죽지 않고 오랜 세월 살면서 많은 자녀를 낳았습니다. 따라서 “죽는다”라는 것은 단순히 호흡이 끊어지는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영의 죽음을 뜻합니다.
   원래 사람은 생령으로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과, 영의 지배를 받는 혼, 그리고 영과 혼의 장막인 육으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니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하던 사람의 영이 죽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죄로 인해 아담과 하와의 영이 죽으니 더 이상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영의 공간인 에덴동산에서 육의 공간인 이 땅으로 쫓겨났지요.
   이때부터 인류의 고난이 시작되어 하와는 잉태하는 고통이 크게 더하여 수고하며 자녀를 낳고, 남편을 사모하며 그의 다스림을 받아야 했습니다(창 3:16). 그리고 아담은 저주받은 이 땅에서 평생토록 수고하여야 소산을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창 3:17).
   결국 아담과 하와는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이 되었지요. 또한 범죄한 아담의 후손들도 죄인으로 태어나 죄의 삯인 사망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롬 5:12).
   하나님께서는 사단의 사주를 받아 하와를 미혹한 뱀에게는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흙은 흙으로 창조된 사람을 말하며(창 2:7), 뱀은 원수 마귀 사단을 뜻합니다(계 20:2).
   따라서 하나님께서 뱀에게 흙을 먹으라고 하신 말씀에는 어둠 가운데 사는 사람들은 원수 마귀 사단의 밥이 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세상 사람은 물론, 하나님의 자녀라 할지라도 죄를 지으면 원수 마귀 사단이 역사하므로 시험 환난이 찾아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그 말씀을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미혹하여 사망의 길로 인도합니다.
   
   
   4.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두신 이유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동산의 가장 중앙에 두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람으로 하여금 선악과를 먹고 멸망의 길로 가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상대성을 알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였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령으로 창조된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아주 행복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상대성을 체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참 행복과 사랑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풍요로운 에덴동산에서 많은 것을 누렸지만 스스로 땀 흘려 수고하여 얻은 것이 아니었기에 하나님이 주신 것에 대한 소중함과 고마움을 알지 못했습니다.
   결국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는 불순종의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이들은 에덴동산에서 이 땅으로 쫓겨나 눈물, 슬픔, 고통, 불행, 죽음 등을 체험한 후에야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 깨우칩니다. 비로소 에덴동산에서 누리던 자유와 풍요가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 알게 되지요. 이처럼 상대성을 체험해야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어 영원히 하나님과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자유 의지를 주시고,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셨습니다. 사람이 자유 의지에 따라 선악과를 따 먹어도 막지 않으시고, 인간 경작을 통해 이 땅에서 모든 희로애락을 경험하도록 섭리하셨던 것입니다.
   범죄한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상대성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진정한 사랑과 기쁨, 감사가 무엇인지 깨달아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서 사랑하며 경외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참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풍요로운 에덴동산을 창설하여 중앙에 선악과를 두시고 첫 사람 아담과 하와를 통해 인간 경작의 섭리를 이루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두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2. 하나님께서 뱀에게 “흙을 먹을지니라” 하신 말씀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3. 많은 사람들이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아주 행복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 )을 체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참 행복과 사랑을 알지 못하였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자유 의지란?
   
   자신의 행동과 결정을 스스로 조절, 통제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말한다. 즉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도록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능력과 특권이다.
지난 주 설교요약
2022-01-23 2차 영혼육 (12) - 이재록 목사 요한복음 3:5~7
오늘은 영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깨달을 수 있도록 말씀과 하나님, 사람의 마음, 영 등에 대해 증거하겠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 마음을 닮은 마음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의 마음이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하는데, 이에 앞서 “말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말씀과 하나님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채워 주신 영의 지식들이 말씀이며,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이 성경입니다. 많은 경우 “말씀은 곧 성경에 있는 말씀이요 진리”라는 정도로만 막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말씀에 대해 여러 가지 표현이 나옵니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했고 또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라고 했지요.
   이런 표현들을 보면 말씀이란 단순히 66권 성경 말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영적인 의미가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과연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말씀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포함하는, 진리 자체이신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 마음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권능”이기도 하고, 동시에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계시며 무한하신 “하나님의 근본된 실체”이기도 하지요.
   
   요한복음 1장 1~3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고 무한하신 분이므로 시작과 끝이라는 개념이 필요없으시며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존재하시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태초”라는 말조차 필요없지만, 여기서 태초라는 구분점을 주신 것은 사람 편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사람은 혼이라는 틀이 있어서 반드시 시작과 끝이 있어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혼적인 한계를 깨뜨리고 궁구해 본다면 하나님께는 시작이 없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합니다.
   참고로 창세기 1장 1절에도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여 “태초”가 나오는데 이는 요한복음의 태초와 의미가 다릅니다, 창세기의 태초는 영원 전의 태초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지으신 시점으로서, 실제 시작이 있는 것이지요.
   요한복음 1장 1~3절에는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하나님이 말씀과 함께 계셨다고 하여 마치 말씀과 하나님이 각각인 것처럼 표현합니다. 그런데 이어서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하여 말씀과 하나님이 하나이심을 설명합니다. 또 “태초에 하나님이 계셨다” 하지 않고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했으니 하나님보다 말씀이 먼저 계셨다는 것을 나타내지요. 즉 하나님과 말씀은 하나이지만 각각 분리해서 칭할 수도 있고, 분리해서 생각할 때는 말씀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홀로 계실 때는 온 우주 공간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 곧 말씀이 빛과 소리로서 존재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이르러 하나님께서는 인간경작을 위해 영의 형상을 입으셨고, 동일한 마음을 가지신 삼위 일체 하나님으로 분리되셨습니다. 곧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되셨지요. 따라서 삼위일체 하나님 곧 성부, 성자, 성령의 근본이 모두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근본이 말씀이신 성자 하나님께서 사람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나타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요 1:14). 그리고 예수님의 모든 말씀과 행함은 온전히 하나님의 마음 그대로를 나타내 주셨지요.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라는 명칭을 가지신 것도 인간경작을 계획하신 이후였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분리되시고 천군 천사나 사람 등 다른 존재들이 있게 되니 서로 구분할 수 있는 명칭이 필요하게 된 것이지요. 말씀 곧 하나님의 마음이 먼저 있으셨고 하나님의 명칭과 하나님의 형상은 나중에 생긴 것입니다.
   그렇지만 말씀과 하나님은 각각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하나이신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비유를 들면, 사람의 몸이 있기에 그림자가 있고, 그림자가 있는 것을 보면 실체인 몸이 있음을 압니다. 결국 몸과 그림자는 하나요 각각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존재하는 것인데, 굳이 선후를 따지면 몸이 먼저인 것입니다. 이처럼 말씀이 하나님보다 먼저이지만 결국 말씀과 하나님은 하나라는 것이지요.
   
   말씀은 하나님의 마음이라 했는데, 우리에게 주신 성경 66권 말씀은 무엇일까요? 이는 하나님의 마음이며 근본 속성이신 말씀의 일부분으로 무한하신 하나님의 마음 중, 인간경작을 받는 우리가 알아야 하는 최소한의 내용을 기록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성경 말씀을 양식 삼으면 이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게 되고, 이는 곧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 안에 이뤄진다는 말이 되지요.
   이렇게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마음이 임한 만큼 영의 마음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을 믿고 행하는 사람에게는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져 놀라운 역사가 따름으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합니다.
   
   
   2. 사람의 형상과 마음
   
   그러면 사람은 마음이 먼저일까요, 형상이 먼저일까요?
   말씀이신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아담을 지으시고, 그 안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담의 영이 탄생했고, 그 안에 여러 가지 영의 지식들이 채워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담의 마음이지요. 즉 창조주 하나님은 말씀이 먼저이시지만, 피조물인 사람은 형상이 먼저요 마음이 나중인 것입니다.
   
   사전을 보면 마음이란, “사람이 인식하고 느끼고 뜻을 세우는 활동, 혹은 옳고 그름이나 선악을 판단하고 행동을 결정하는 정신활동”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마음”은 “영 자체와 그 안에 들어 있는 지식”을 뜻합니다.
   맨 처음, 아담의 마음은 완전히 빈 그릇과 같고 백지와 같은 상태였습니다. 마치 그릇 안에 무엇을 담듯이 사랑, 온유, 화평, 진실, 겸손과 같은 진리의 지식들을 하나님께서 심어 주셨지요. 그래서 아담의 마음이란, “생명의 씨가 있는 영 자체와 그 안에 들어있는 생명의 지식”입니다. 이것은 곧 아담의 “영”과도 같은 의미이므로 그냥 영이라고 하면 되고, 처음에는 “마음”이라는 말을 쓸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범죄하여 그의 영이 죽은 후에는 “마음”과 “영”이 더 이상 같은 의미가 될 수 없었습니다. 아담의 영이 죽게 되자, 그의 마음에서는 생명의 지식들이 하나하나 빠져나가게 되었고 그 대신 혼을 통해서 원수 마귀가 심어 주는 비진리의 지식들이 들어오게 되었지요.
   
   이처럼 아담이 타락한 후에 사람의 마음은 “원래 있던 진리 대신 비진리가 생명의 씨를 감싸고 있는 것”이 되었습니다. 마음 안에 진리만 있을 때는 “영”이라고 하면 되는데 그 안에 비진리가 들어와서 더 이상 영이라 할 수 없으니 “마음”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이해하기 쉽게 비진리의 마음을 까만 마음이라 하고 진리의 마음을 하얀 마음이라고 하면, 원래는 아주 깨끗한 하얀 마음이었던 것이 점차 까만 마음으로 물들어 감으로 하얀 마음과 까만 마음이 섞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 중에도 아직 조금 남아 있는 진리의 지식 가운데서 때로는 선한 마음과 행실이 나올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진리의 지식은 극히 일부만 남아 있고 세월이 지날수록 점점 더 비진리로 물들어 감으로 마지막 때가 되어가면서 악해지기만 하는 것입니다.
   아직 진리의 지식이 남아 있다 해서 사람의 영이 살아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담이 범죄했을 때 이미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의 지식을 공급받지 못하며 이전에 받은 생명의 지식이 약간 남아 있다 해도 결국은 다 뽑혀 나가게 되어 있지요.
   
   
   3. 죽은 영을 살리는 방법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고 성령을 받으면 성령의 능력으로 생명의 씨가 다시 활동하게 되고 성령은 마음에 영의 지식들을 심어 줍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고 신앙생활을 해 나가면 아담 이후로 점점 검어진 마음이 다시 하얀 마음으로 변화됩니다.
   불같이 기도하면서,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우는 만큼 까만 마음이 점점 사라지고 사랑, 선, 진실, 온유, 겸손과 같은 영의 지식들을 받아들이는 만큼 하얀 마음이 더 많아집니다. 이렇게 계속해 나가면 마침내 까만 마음이 조금도 남지 않은 온전한 하얀 마음으로 변화되는데, 이것이 바로 성결되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성령을 받기는 했는데 마음을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여전히 죄악 가운데, 까만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혹은 처음에는 열심히 죄를 버리기 위해 달려가다가 어느 순간부터 미지근한 신앙이 되어서 죄와의 싸움을 그쳐 버리는 경우도 있지요. 전에는 조금씩 하얀 마음으로 변화되고 있었는데, 죄와의 싸움을 멈춘 다음부터는 또다시 까맣게 물들어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을 받았다 해도 여전히 까만 마음, 비진리의 마음으로 있으면 그 속에서 생명의 씨가 힘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마음에 성령만 임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물 곧 말씀이 임해야 하는 것입니다(요 3:5). 또한 성령을 받았다 해도 마음을 변화시키지 않고 계속 까만 마음으로 있으면 이미 받은 성령이 소멸될 수 있지요(살전 5:19). 한번 성령을 받고 구원받았다 해도 거기에 안주하여 변화되지 않으면 요한계시록 3장 1절에 말씀한 대로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받았다면 부지런히 마음의 죄악을 벗어 버리며 진리의 지식을 담아가야 합니다. 온전히 하얀 마음으로 회복될 때까지 쉬지 않고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에 대해 배우고 깨달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마음에 담긴 진리의 지식들을 성경 안에 기록해 주셨습니다(딤후 3:15). 우리가 성령을 받고 이 말씀들을 부지런히 양식 삼아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만큼 이 땅에서도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을 뿐 아니라 천국에서는 하나님의 보좌 더 가까이 거하게 됩니다. 흠도 티도 없이 하얀 마음을 이루고, 온 집에 충성한 사람들은 바로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가 계시는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 영원히 살아갑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새 예루살렘에 들어오기를 고대하고 계십니다. 성도님들은 아버지 마음을 온전히 닮은 참 자녀가 되어 새 예루살렘의 영광 중에 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2년 1월 23일 주일)
* 사회: 조수열 목사
개회찬송 8장
성시교독 49번
찬송 500장
기도 이미경 목사
성경봉독 요한복음 3:5~7
찬양 주와 함께 가리라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2차 영혼육(13)(영상설교)
당회장님
찬송 만민 찬양 8장
주일 저녁예배 (2022년 1월 23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안성헌 목사
대표기도 최영신 전도사
성경봉독 히브리서 11:6
특송 서경애 권사
설교 상 주시는 이심을 바라보고 달려가라
이수진 목사(당회장 직무대행)
수요 예배 (1월 26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정현진 목사
대표기도 황미경 전도사
성경봉독 빌립보서 3:8
설교 참된 가치를 깨달은 사람들은?
박형렬 목사
금요 철야예배 (1월 28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서진범 목사없음
대표기도 이성익 장로
성경봉독 요한계시록 3:1~6
찬양 샬롬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요한계시록 강해(21)-사데 교회①, 일곱 영①(영상설교)
당회장님
새벽 예배
인도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협조하기 위하여 추후 공지 시까지 새벽예배는 모이지 않습니다.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2-01-23 2022년 1월 넷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새로 나오셔서 등록해 주신 분들과 인터넷으로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교회 소식

● 당회장님의 저서 「일곱 교회」가 덴마크어 종이책으로 발간되었고,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가 세르비아어로, 「믿음의 분량」이 포르투갈어로, 「십자가의 도」가 아르메니아어로, 「나의 삶 나의 신앙2」가 네덜란드어로, 「하나님의 법도」가 영어로, 「천국(하)」가 독일어 전자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 당회장님 신앙칼럼이 「기독선교신문」, 「시사뉴스」 등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만민뉴스 한글(960호),영어(710), 중국어(585호), 포르투갈어(113호) 신문을 온라인으로 발행하였습니다(만민뉴스 홈페이지 www.manminnews.com).

● 「1월 은사집회」를 통해서 치료받은 성도님들은 해당 교구장, 지도교사 또는 교회 홈페이지와 모바일 홈페이지에서 간증 접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 2022년 기도제목과 은사집회를 위한 작정 다니엘 철야에 동참해 주신 모든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작정 다니엘 철야 마지막 날로 만민기도원 이복님 원장님의 인도로 생방송으로 진행되며 준비찬양은 오후 8시 40분부터 시작합니다.

● 당회장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조) 교보문고, 영풍문고, 북스리브로, 예스24, 인터파크 등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자책(e-book) 및 오디오북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감사드립니다.

강단헌화/ 해외 농아지교회 전 성도(꽃꽂이 봉사: 예배국 미화부, 시설관리국)
주간 성경구절
2024-01-28
[주일]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딤후 2:15]
2024-01-29
[월요일]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 6:24]
2024-01-30
[화요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계 3:15]
2024-01-31
[수요일]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막 10:43]
2024-02-01
[목요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막 10:44]
2024-02-02
[금요일]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눅 12:47]
2024-02-03
[토요일]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눅 1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