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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공과
2022-02-04 제5과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예수 그리스도 레위기 25:23~25
읽을말씀 : 레위기 25:23~25  |  외울말씀 : 로마서 5:19 | 참고 말씀 / 요한계시록 5:1~5
교육목표 :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원수 마귀에게 넘겨준 권세를 회복할 수 있는 영계의 법칙과 구세주가 되는 자격 조건에 대해 알아본다.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공의 가운데 영의 세계를 운영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영계의 법칙에는 죄인에게 벌을 가하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법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그 죄를 속량할 수 있는 법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첫 사람 아담이 불순종의 죄를 범하여 원수 마귀에게 넘겨준 권세를 회복하려면 죄를 속량할 수 있는 영계의 법칙을 적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법칙에 따라 비밀한 가운데 인간 구원의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과연 범죄한 아담이 죄를 속량할 수 있는 영계의 법칙은 무엇일까요?
   
   
   1. 토지를 사고파는 데 적용되는 토지 무르기 법칙
   
   레위기 25장 23~25절에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 말씀합니다. 즉 토지는 하나님의 소유이므로 영영히 팔지 말며, 가난하여 토지를 팔았어도 합당한 규정에 따라 다시 무를 수 있는 ‘토지 무르기 법칙’을 설명하였지요.
   이스라엘에서는 계약서에 어떤 경로로 토지를 팔고 사는지 과정과, 나중에 되돌려 받을 수 있도록 토지 무르기의 내용을 기록하고, 팔고 사는 사람이 도장을 찍고 증인들을 세웁니다. 그 후 계약서 1부는 법과 규례대로 인봉하여 성전 창고에 보관하고, 다른 1부는 언제라도 볼 수 있게 성전 입구에 펼쳐 놓습니다. 그래서 언제라도 근족이 와서 대신 토지를 무를 수 있고, 무를 사람이 없으면 본인이 부를 쌓아 힘이 있을 때 무를 수 있게 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담의 불순종으로 하나님과 마귀 사이에도 토지 무르기의 법칙에 따라 계약이 이루어졌습니다. 아담이 불순종하여 천하 만국을 다스릴 수 있는 모든 권세를 마귀에게 넘겨주게 되었지만(눅 4:6), 토지 무르기 법칙에 따라 영영히 팔지는 못하며 다시 되돌려 받을 수 있지요.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토지 무르기 법칙에 합당한 자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시고 때가 되자 십자가 고난을 통해 인간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2.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조건과 예수 그리스도
   
   요한계시록 5장 4절에는 하나님과 마귀가 계약한 책이 나옵니다. 이는 ‘아담이 불순종하여 마귀에게 천하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넘겨주었지만, 이것을 무를 힘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다시 그 권세를 넘겨주겠다.’는 계약서이지요.
   그런데 사도 요한이 보니 그 책을 일곱 인으로 봉하여 뗄 수 있는 사람이 없어 크게 웁니다. 그때 장로 중 하나가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즉 다윗의 뿌리인 예수님이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토지 무르기 법칙에 따른 구세주의 자격 조건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아담의 근족인 사람이어야 합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했습니다. 그런데 19절에는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말씀합니다.
   즉 누군가 죄를 대속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멸망의 길을 가던 모든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토지 무르기 법칙에 의하면 돈이 없어 토지를 팔게 되더라도 그것을 되살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면 언제든지 무를 수 있습니다. 만일 본인이 무를 힘이 없을 때에는 근족이 대신 무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범죄한 아담이 원수 마귀에게 넘겨준 권세를 되찾을 수 있는 존재는 아담의 근족인 사람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즉 육신을 입은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토지 무르기 법칙 첫 번째 조건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신 분입니다.
   
   둘째로,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합니다.
   첫 사람 아담이 죄를 지으니 그의 혈통을 이어받은 모든 인류는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아담의 후예로 태어난 사람은 어느 누구도 구세주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죄인이 죄인의 죄를 대속해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이 아담의 후예가 아닌 사람을 찾고자 하늘 위를 보니 천사만 있고, 땅 위를 살펴보니 아담의 후예인 죄인들만 있고, 땅 아래를 보니 지옥에 속한 것뿐이었기에 심히 애통하였습니다(계 5:1~3).
   그러면 예수님은 토지 무르기 법칙 두 번째 조건에 합당한 분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육적으로는 다윗의 자손이지만, 남녀가 결혼하여 잉태된 분이 아닙니다. 단지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셨기 때문에 아담의 후예가 아니며, 원죄가 없으시므로 두 번째 조건에 합당하십니다.
   
   셋째로, 원수 마귀를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빚을 갚아 주고 싶은 마음이 아무리 간절하여도 자신에게 그만한 재력이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죄를 대속해 주려면 그만한 힘이 있어야 합니다. 영계에서는 죄가 없는 것이 힘이므로 원수 마귀에게 빼앗긴 아담의 권세를 회복하려면 죄가 없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원수 마귀를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지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예수님께서는 토지 무르기 세 번째 조건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셨을까요? 예수님은 아담의 후예가 아니기 때문에 원죄가 없습니다. 생후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33년 동안 율법을 온전히 지켜 행하셨으니 스스로 짓는 자범죄도 전혀 없으셨지요.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온전한 분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전혀 죄가 없으시므로 세 번째 조건에도 합당하십니다.
   
   넷째로, 목숨까지도 줄 수 있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앞서 설명한 세 가지 조건이 모두 성립된다고 해도 가장 중요한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형이 아무리 부자라 해도 사랑이 없으면 동생의 빚을 갚아 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룻기 4장을 보면 보아스가 가난했던 나오미의 형편을 알고 가장 가까운 근족에게 기업 무르기를 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가장 가까운 근족은 자신이 손해를 입지 않으려고 토지 무르기를 거부하지요. 이렇게 근족이 기업을 무를 수 있는 힘이 있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무를 수 없습니다. 결국 나오미의 다음 근족인 보아스가 기업을 무를 수 있는 힘이 있고 사랑도 있어서 그를 대신하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목숨까지도 줄 수 있는 크신 사랑이 있었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시는 희생적인 사랑이 없었다면 범죄한 아담으로 인해 원수 마귀의 자녀가 된 사람들을 하나님 자녀로 되찾아 올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죄인을 용서하시고, 각색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시며,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시고, 평화와 기쁨과 사랑을 주시며 오직 선만 행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온갖 고난과 멸시를 당하시고 마침내는 온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엄청난 희생과 사랑이 있었기에 인간 구원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고 하늘나라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됩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님만이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신 분이며,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이로서는 결코 구원을 얻을 수 없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행 4:12).
   
   
   ● 평가 및 적용하기
   
   1. 토지 무르기 법칙에 합당한 구세주의 자격 조건을 써보세요.
   
   첫째, ( )이어야 한다.
   둘째, ( )의 후예가 아니어야 한다.
   셋째, 원수 마귀를 이길 수 있는 ( )이 있어야 한다.
   넷째, 목숨까지 줄 수 있는 ( )이 있어야 한다.
   
   2. ( )이란, 토지는 모두 하나님의 소유이므로 영영히 팔지 말며, 가난하여 토지를 팔았다 하더라도 합당한 규정에 따라 근족이나 본인이 다시 무를 수 있도록 하는 법칙을 말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원죄와 자범죄
   
   - 원죄 :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 이후 모든 인류는 부모의 기를 통해 불순종의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이를 원죄라 한다.
   
   - 자범죄 : 사람이 태어나 살아가면서 스스로 짓는 죄를 말한다.
지난 주 설교요약
2022-01-30 2차 영혼육 (13) - 이재록 목사 요한복음 3:5~7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사람의 마음과, 마음의 크기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사람들은 마음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정작 “마음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어 보면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시피 합니다. 영과 혼, 영혼을 구별하지 못할 뿐 아니라 마음에 대해서도 비슷한 의미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영혼육의 말씀을 잘 양식 삼으면 사람의 마음은 물론 영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고 구원의 섭리도 더 밝히 깨달을 수 있으며 더 신속하게 성결되는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1. 아담의 마음
   
   아담이 처음 창조되었을 때 마음은 곧 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 넣으심으로 아담에게는 생명의 씨가 있는 영 자체가 만들어졌고 그 안에 영의 지식 곧 진리의 지식들이 채워졌지요.
   아기가 태어나면 자라면서 여러 가지 체험을 통해 지식들을 얻은 후에야 온전하게 사람으로서의 구실을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담도 하나님과 자신 그리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에 대해 배우며 선과 진리, 빛과 같은 영의 지식을 습득함으로 영으로서의 구실을 온전히 할 수 있게 되었지요.
   이렇게 영 안에 영의 지식이 채워진 것이 바로 아담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마음이라는 말이 필요가 없었습니다. 마음이 곧 영이기 때문에 영이라고 부르면 되었지요. 그런데 아담이 범죄한 후에는 더 이상 영이라고 부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담의 영이 죽은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곧 진리의 지식들을 하나하나 잃어버리고 비진리의 지식들이 채워졌기 때문에 이때부터는 더 이상 영이 아닌 마음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2. 마음의 크기
   
   사람들은 종종 마음의 크기에 따라 대인 또는 소인이라 표현하곤 하는데, 실제로 사람마다 마음의 크기가 다릅니다. 그리고 영이신 하나님의 마음은 그 크기가 무한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원래 빛과 소리로 온 우주에 가득하게 펼쳐져 있었고, 또한 그 마음 안에 모든 우주가 품어져 있었지요. 그 우주 안에 하나님께서 영의 세계도 만드셨고 육의 세상도 만드셨으며 지구와 천지 만물을 창조하고 다스리십니다. 무궁무진한 지식, 지혜, 권능, 사랑, 이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의 마음 안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의 마음은 그 크기가 어떠할까요?
   원래 아담의 마음은 하나님의 영을 닮아서 무한하게 커질 수 있었습니다. 물론 피조물이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과 똑같을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영의 지식을 담아 주시는 만큼 한없이 넓어질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람의 영이 죽은 후에는 혼적인 것들이 영을 감싸 버림으로 마음의 크기에 제한이 생겼습니다. 영으로 무엇을 깨닫거나 느끼는 것이 아니라 혼적인 작용을 통해서 마음이 움직이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사람이 살아가면서 혼을 통해 어떤 지식을 얼마나 담고 또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마음의 크기가 한정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과 지식, 틀로 생명의 씨를 감싸므로 혼적인 한계 속에 살아가는 것이지요.
   
   이처럼 혼적인 한계를 가진 사람들 중에도 어떤 사람은 눈앞의 것만을 생각하기보다는 먼 훗날까지 바라볼 줄 알고, 적은 유익에 연연하기보다는 더 큰 것을 생각합니다. 또 쉽게 감정이 요동하기보다는 인내하고 자비를 베풀 줄 아는 사람도 있지요. 이런 사람은 비교적 마음이 크다 인정을 받으며 많은 사람이 그 안에 깃들입니다.
   그런데 영이 죽은 사람은 비교적 마음이 크다 해도 혼적인 한계를 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는 사랑과 덕이 있어서 많은 사람이 그 마음 안에 깃들였으며, 그중에는 유비보다 지혜와 용맹이 뛰어난 사람도 많았지요. 그러나 그는 의형제를 맺은 관우가 죽임당하자 당장 원수를 갚으려고 서두르다가 멸망을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육의 사람의 한계입니다.
   이와 달리 영으로 마음이 큰 사람은 사랑과 덕이 있을 뿐 아니라 그 사랑이 영적인 사랑이며 지혜와 명철, 인내와 절제 등도 함께 임하는 것입니다.
   
   
   3. 성령으로 영을 낳아가는 만큼 커지는 마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으로 영을 낳아가는 만큼 영적으로 큰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마음에 있는 비진리의 지식을 버리고 진리의 지식 곧 영의 지식을 채워 영으로 변화되는 만큼 마음이 무한하게 넓어질 수 있지요.
   맨 처음 창조되었던 아담의 마음은 천하 만물을 지배하고 정복하고 다스릴 뿐 아니라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짐승들의 이름을 지을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이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 에덴동산에 살면서 낳은 수많은 후손들도 그 마음 안에 품어져 있었고, 영의 존재인 그룹들을 거느리고 있었으며, 그가 에덴을 지킬 때는 원수 마귀 사단이 감히 넘보지 못할 권세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영의 사람이 되어가는 만큼 마음이 커지고 영이신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 또한 능력과 권세 등을 소유하게 됩니다. 단지 눈에 보이는 육의 세계만이 아니라 신령한 영의 세계까지도 그 마음에 품어지기 때문에 육의 사람으로서는 알 수 없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육의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것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 육의 사람들이 이렇게 영의 사람, 마음이 큰 사람들을 볼 때 마치 신(神)처럼 여기게 되지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과 영의 세계의 크기는 무한하며 영의 사람만이 그 세계를 알 수 있습니다. 영의 세계에 속한 사람의 마음 또한 영의 사람만이 느끼며 알 수 있지요.
   
   육에 있는 사람들은 영의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기에 많은 판단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 하셨을 때, 혹자는 “아브라함은 이 말씀에 순종하기가 너무나 힘들었을 것이다,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해 산에 오르면서도 몇 번이고 되돌아오고 싶었을 것이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능과 선하심을 전적으로 신뢰한 아브라함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이삭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육에 있는 사람들은 아브라함과 같은 높은 차원의 믿음과 순종에 대해 이해할 수 없으며 자기적인 기준에 맞춰 생각하기 때문에 오해를 하는 것입니다.
   또 열왕기상 19장 4절을 보면, 엘리야 선지자가 하나님 앞에 탄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에 대해 어떤 사람은 너무 힘든 고난을 당하게 되면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차라리 죽고 싶다” 하는 것처럼 엘리야도 그런 원망의 기도를 했다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자기 생명을 걸고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 주었는데도 오히려 더 악을 발하는 사람들을 볼 때 너무나 심령이 상해서 이런 애통의 기도가 나왔던 것입니다.
   영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는 자신이 영의 마음을 이룬 만큼, 성령의 음성을 듣는 만큼 깨달을 수 있습니다(고전 2:15~16). 우리가 주의 마음을 가지고 영의 마음을 가지면, 영의 사람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육의 사람에 대해서도 어떤 오해나 판단 정죄가 나오지 않습니다. 혼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분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진리 속에 제한된 육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자기 생각의 한계 속에서 판단하며 자신의 좁은 마음 이상의 것을 헤아리기가 어렵지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자신을 만날 때마다 얼굴을 굳히고 눈을 피하면서 급히 지나간다면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자신에게 감정과 미움, 혈기 등 육이 있는 만큼 상대를 판단하게 됩니다. “나한테 감정이 있나 보다” 하면서 자신도 상대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품게 되지요.
   그런데 영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그런 판단이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나를 싫어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수줍음이 많아서 어색해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그 밖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필요하다면 성령께서 역사하심으로 마음에서 정확한 사실을 깨닫게 해 주시고, 화평을 이룰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십니다.
   이렇게 영의 마음을 이룬 사람에게는 수많은 사람들이 깃들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주의 종이 얼마나 영의 마음, 큰마음을 가졌느냐에 따라 그 마음 안에 수많은 영혼들이 깃들이게 되지요. 찌르고 부딪쳐 오는 양 떼, 육적인 양 떼라 해도 다 이해하고 참아 주고 넉넉히 품어 주니 자연히 부흥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업터, 일터에서도 여러분이 영으로 이뤄 마음을 넓히는 만큼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살 수 있고 지혜도 능력도 커집니다. 더구나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으니 무엇을 하든지 좋은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온전히 영의 마음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마음의 구성 성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는 선을 좇기 원하는 명백한 진리의 마음과, 명백하게 악한 비진리의 마음도 있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이 진리와 비진리의 비중이 다르지요.
   그런데 이 두 가지 마음과 또 다른 하나의 마음이 있는데, 바로 본성이라는 것입니다. 본성 속에는 진리와 비진리가 섞여 있는데, 이 본성 속에 있는 비진리를 스스로 발견하지 못하여 영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본성이라는 것은 과연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어떻게 본성 속의 비진리를 발견하여 버릴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설명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 다니면 사람이 좁아지거나 편벽되어진다고 오해를 하며, 술 담배를 끊으니 사업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의 마음을 이루면 결코 좁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무궁무진하게 넓어지며 모든 것을 마음에 품는 대로 이룰 수 있습니다.
   육의 사람들과 세상적인 교제를 하지 않고 서로 육의 것들을 주고받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고 그들을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으며 지배하고 다스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고후 6:11~13).
   또한 영의 마음을 이루면 곧 주님과 아버지 하나님과 마음이 하나 되니(요 17:23) 무엇이나 구하는 대로 응답받습니다. 그 축복으로 인해 세상 사람들 앞에서도 하나님께 사랑받는 증거를 보일 수 있지요.
   그러므로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 삼아 무한한 영의 지식들을 취해 나가심으로 세상 사람들같이 육의 한계 속에서 좁아지는 것이 아니라 만물을 지배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던 아담과 같이 넓고 큰 마음을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2년 1월 30일 주일)
* 사회: 조대희 목사
개회찬송 36장 1절
성시교독 1번
찬송 411장
기도 황금란 전도사
성경봉독 로마서 7:21~23
찬양 주님의 영광을 우리는 보았네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2차 영혼육(14)(영상설교)
당회장님
찬송 만민 찬양 64장
주일 저녁예배 (2022년 1월 30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이석규 목사
대표기도 서덕분 전도사
성경봉독 고린도후서 2:15
특송 여은진 자매
설교 그리스도의 향기
이수진 목사(당회장 직무대행)
수요 예배 (2월 2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박광현 목사
대표기도 김진주 전도사
성경봉독 사사기 16:26~30
설교 전화위복의 새해
문신현 목사
금요 철야예배 (2월 4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주현철 목사없음
대표기도 이영인 전도사
성경봉독 요한계시록 3:1~6
찬양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요한계시록 강해(22)-사데 교회②, 일곱 영②(영상설교)
당회장님
새벽 예배
인도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협조하기 위하여 추후 공지 시까지 새벽예배는 모이지 않습니다.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2-01-30 2022년 1월 다섯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새로 나오셔서 등록해 주신 분들과 인터넷으로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교회 소식

● 당회장님의 저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불어가 종이책으로 발간되었고, 「권능」이 포르투갈어로, 「십자가의 도」가 노르웨이어로, 「나의 삶 나의 신앙1」이 루마니아어로, 「지옥」이 독일어로, 「일곱 교회」가 라트비아어로, 「천국(하)」가 포르투갈어 전자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 당회장님 신앙칼럼이 「기독선교신문」, 「시사뉴스」 등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만민뉴스 스페인어(289호), 불어(138호) 신문을 온라인으로 발행하였습니다.
(만민뉴스 홈페이지 www.manminnews.com)

● 금주는 민족 고유의 명절인 설 연휴가 있습니다. 주 안에서 즐거운 명절이 되시길 바랍니다.
※ 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와 예문이 주보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주보 15페이지 참조)
※ 2월 6일(주일) 주보 광고는 설 연휴 관계로 오늘 오후 5시까지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 우림북/ 2월 추천도서는 「육의 사람 영의 사람(상)」입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우림북 홈페이지 www.urimbooks.com).

● 당회장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조) 교보문고, 영풍문고, 북스리브로, 예스24, 인터파크 등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자책(e-book) 및 오디오북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감사드립니다.

강단헌화/ 해외 지교회(꽃꽂이 봉사: 예배국 미화부, 시설관리국)
주간 성경구절
2024-02-04
[주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리로다 [계 22:5]
2024-02-05
[월요일]
너는 귀를 기울여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들으며 내 지식에 마음을 둘찌어다 [잠 22:17]
2024-02-06
[화요일]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라 [갈 5:13]
2024-02-07
[수요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 6:35]
2024-02-08
[목요일]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마 7:26]
2024-02-09
[금요일]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행 4:11]
2024-02-10
[토요일]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마 13: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