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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공과
2022-03-25 제12과가상칠언 (1) 누가복음 23:33~43
읽을말씀 : 누가복음 23:33~43  |  외울말씀 : 마태복음 5:44 | 참고 말씀: 마태복음 27:38~42
교육목표 :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시기 전에 남긴 가상칠언 중 1언, 2언의 영적인 의미를 알아본다.


   많은 사람이 임종이 가까워 오면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며 가족과 친지 등 주변에 유언을 남기고 떠납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일곱 마디 말씀을 남기셨는데 바로 가상칠언(架上七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구원의 길을 완성하시려는 시점에서 남긴 가상칠언에는 어떠한 영적인 뜻이 담겨 있을까요? 먼저 1언과 2언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제1언,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저주받은 자가 달리는 나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순전히 우리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한 로마 군병과 백성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멸시하며 흉악한 죄인 취급을 했습니다.
   오직 선만 행하시고 흠 없으신 예수님을 향해 관원들이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지어다”라고 희롱하였지요.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운명하시는 순간까지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며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권능이 있기에 마음만 먹으면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직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인간 구원의 섭리를 이루시고자 온갖 고난과 수치를 묵묵히 당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들로서 자신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본인들의 행동이 얼마나 큰 죄인지도 몰랐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가장 먼저 이들을 용서해 달라고 간구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저희’란 단순히 당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희롱한 사람들만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어둠 가운데 있는 온 인류를 일컫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이 참된 진리이신 주님을 모르고 엄청난 죄를 짓고 있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어둠에 속한 사람들을 주관하여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을 핍박하게 합니다. 이럴 때에 마땅히 행할 바가무엇인지 예수님께서는 가상칠언 첫 번째 말씀을 통해 깨우쳐 주셨습니다. 바로 사랑의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44절에도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오직 사랑으로 용서하고 간절히 기도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도와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제2언,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골고다 언덕에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좌우편에 두 행악자도 함께 십자가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이때 한편 강도는 예수님을 비방하였으나 다른 편 강도는 오히려 그를 꾸짖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였지요. 그러자 예수님께서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십니다.
   이는 회개한 강도가 구원받아 낙원에 있을 것을 약속해 주신 말씀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회개할 때 죄를 용서하여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메시아임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사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렸을 때 좌우편에 있던 강도들에 대한 기록이 다르게 나옵니다.
   마태복음 27장 44절에는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했고, 마가복음 15장 32절에는 “…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하여 둘 다 예수님을 욕했다 하지요. 반면 누가복음 23장에는 ‘한편 강도가 다른 편 강도를 꾸짖고 회개하여 구원받았다’고 나옵니다.
   이처럼 강도에 대한 복음서의 기록이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성경의 기자들이 잘못 기록한 것이 아니라 당시 상황을 현장감 있게 유추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허락하신 일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당시 상황을 보면 수많은 무리가 십자가를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많은 군중이 모여 예수님을 향해 악한 말들을 하고 있었지요. 이런 소란스러운 상황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좌우에 있던 강도 중에 한편 강도가 예수님을 욕하였습니다. 그 강도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그 소리를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편 강도도 예수님 쪽을 향해 얼굴을 찌푸리며 말하니 마치 예수님을 욕하는 것 같았지요. 그는 예수님을 욕한 강도를 책망한 것인데, 맞은편에서 볼 때는 중앙에 계신 예수님을 향해 욕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처럼 다른 편 강도의 말이 잘 들리지 않는 상황 속에 멀리서 그 장면을 본 사람들은 두 강도가 예수님을 욕했다고 전했습니다. 반면 그때 상황을 정확히 알았던 사람들은 한편 강도는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며 회개하여 구원받았다고 전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후세 사람들이 그 당시 상황을 분별할 수 있도록 성경 기자들을 통해 기록의 차이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회개한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천국에 있으리라” 말씀하시지 않고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천국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아름답습니다. 낙원, 1천층, 2천층, 3천층, 새 예루살렘 성으로 나뉘며, 각 처소마다 행복과 영광이 다릅니다. 특히 새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 보좌가 있는 가장 영화로운 처소로, 하나님을 닮은 거룩하고 온전한 사람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반면 낙원은 천국에서 가장 낮은 처소로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사람이 들어갑니다. 이들은 단지 주님을 영접했을 뿐 죄를 싸워 버리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수고한 것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강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선한 양심을 좇아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했을 뿐, 하나님 말씀을 지켜 행하고자 죄를 버린 것도, 누구를 전도한 것도 아닙니다.
   이처럼 주님을 위해 아무것도 한 일이 없기 때문에 상급이 없는 낙원을 약속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셨다고 해서 예수님께서 강도와 함께 낙원에 계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본체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낙원뿐 아니라 모든 천국의 주인이시기에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여기서 ‘오늘’이란, 예수님께서 운명하신 날 혹은 특정한 날짜를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한 강도가 구원받아 하나님 자녀가 되니 그가 어느 곳에 있든지 함께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운명하신 뒤 곧바로 낙원으로 가셨을까요? 아닙니다.
   성경에는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마 12:40) 했습니다. 그리고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벧전 3:19) 했는데 여기서 ‘옥’이란 감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윗음부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운명하신 뒤 윗음부에 가서 그곳에 있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삼 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윗음부에 가셔야 했을까요?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기 전에는 구원받을 영혼들이 아브라함 품에 안겼다고 나옵니다(눅 16:22). 이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윗음부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 구약 시대나, 신약 시대라 해도 복음을 한 번도 듣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선한 양심을 좇아 살다가 양심 심판에 의해 구원받을 사람도 있기에(롬 2:14∼15), 예수님께서 운명하신 후 윗음부에 가서 복음을 전하신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행 4:12).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깨달아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더욱 기도와 전도에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가상칠언 1언에서 ‘저희’는 누구를 가리킬까요?
   2. 회개한 강도는 왜 천국에서 가장 낮은 처소인 낙원을 허락받았을까요?
   3. 예수님께서는 운명하신 뒤 어디로 가서 복음을 전하셨을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윗음부’란?
   
   윗음부는 정확히 천국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천국에 속한 곳으로, 구약 시대 구원받은 영혼들이 대기하던 장소이다. 정확히 말해 주님이 부활하시기 전까지 구원받은 영혼이 대기하던 곳이다.
   그러나 주님이 부활하신 후에는 대기 장소가 천국 낙원의 가장자리로 바뀌었다.
   신약 시대 윗음부는 구원받은 영혼이 낙원의 대기 장소로 들어가기 전 3일간 영의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거치는 곳이며, 임신 6개월 후 태중에서 유산 또는 낙태된 영혼 중에 구원받은 영혼이 영원히 거하는 처소이기도 하다.
지난 주 설교요약
2022-03-20 3차 영혼육 (6) - 이재록 목사 갈라디아서 5:19~21
지난 시간에는 육체의 일들 중 시기와 분냄, 당 짓는 것과 분리함에 대해 설명했고 오늘은 이단과 투기, 술 취함과 방탕함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고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 육체의 일을 행하는 것은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처참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것이 나의 죄 때문임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은 결코 더 이상 죄 가운데 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비록 한순간에 모든 죄를 버릴 수는 없다 해도 정녕 믿음이 있고 주님을 사랑한다면 어찌하든 신속하게 버리기 위해 노력해 나가는 것이지요.
   증거되는 말씀을 통해 모든 육체의 일을 벗어 버리고 발견되는 모든 죄의 뿌리까지도 뽑아 버리심으로 거룩하고 정결한 빛의 자녀들로서 아버지 하나님께 구하는 대로 응답받고 축복받으시기를 바랍니다.
   
   
   1. 이단
   
   이단은 기독교와 비슷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집단입니다.
   대표적인 이단 몇 가지를 들어 보면 통일교, 천부교,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말일 성도 예수 그리스도교) 등이 있습니다. 이 외에도 세계적으로 수많은 이단교파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단에 대해 바로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들도 하나님을 믿는다 하고, 교회와 비슷한 형태를 갖추고 있어서 자칫하면 성도들이 미혹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비슷하게 보인다 해도 실제로는 결코 구원과는 상관없는, 잘못된 교리를 가진 것이 이단이지요.
   갈라디아서 1장 8절에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했습니다.
   이단 사상은 우리의 복음과 다른 복음이며, 이를 전파하는 자나 받아들이는 자는 반드시 멸망의 길로 갑니다. 그래서 디도서 3장 10절에는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 하라” 했지요. 이단 사상에 미혹 받지 않도록 그들을 가까이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단이 아닌 교회를 이단이라 잘못 정죄할 때도 하나님 앞에 큰 죄가 됩니다. 더구나 성령의 역사로 권능이 나타나는 제단이나 권능을 행하는 하나님의 종을 이단이라 정죄하면 이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고 성령 훼방, 모독이 되어 사함 받지 못하게 되지요.
   오늘날은 너무나 많은 사람이 이단의 의미도 정확히 모른 채 자신들의 의견과 조금만 다르면 이단이라고 정죄합니다. 여러분은 이단의 정의를 정확히 알아서, 미혹 받지도 말고 반대로 애매히 이단으로 정죄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도 없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베드로후서 2장 1절에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했습니다.
   ‘이단’은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는 것, 곧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단 종파에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합니다. 혹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에 구세주가 되는 데 실패하셨다 하거나 구원의 사역을 온전히 이루시지 못했으므로 또 다른 구세주가 필요하다 하지요. 그러면서 교주가 자칭 구세주라 하거나 하나님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요한일서 2장 22~23절에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했습니다.
   요한일서 4장 2~3절에는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했지요.
   진리를 바로 알고 항상 성령으로 깨어 있어서 어떤 말이나 일에도 진리로만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이단에 미혹되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어떤 미혹을 들어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 투기
   
   ‘투기’는 시기 질투가 심하게 발전해서 다른 사람에게 심히 악을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더러운 일들을 설명할 때도 투기로 인해 더러운 일을 행하는 것이 있다 했지요.
   우리나라 역사를 보아도 이런 일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궁중의 여인들이 왕의 사랑을 받기 위해 다른 비빈들을 투기하며 저주하는 주술을 쓰거나 서로를 비방하고 모함하며 다른 여인에게서 난 왕자를 해치는 등 온갖 술수를 꾸밉니다.
   또한 뛰어난 신하가 있어서 왕의 사랑을 받으면 그 신하도 이내 투기의 대상이 되지요. 다른 신하들이 궤계를 써서 그를 모함하고 결국은 관직에서 몰아내거나 죽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끔찍한 투기의 속성이 많은 사람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곧 진리와 함께 기뻐하지 못하는 마음,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발견된다면 근본적으로 이처럼 악독한 투기와 같은 뿌리임을 깨달아 철저하게 벗어 버리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 시기와 질투가 잘못하면 사단의 역사를 받아 어떤 일에 접했을 때 바로 투기로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3. 술 취함
   
   사람이 술에 취하면 자기를 절제하지 못하게 되며 옳고 그른 것조차 분별하지 못하게 됩니다. 근신하면서 거룩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절제 없이 죄인의 본성에 따라 행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소리를 지르고 싸우기도 하지요. 해서는 안 될 말과 행동을 해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유대인들의 탈무드에 보면, “사단이 너무 바빠서 사람에게 오지 못하면 그 대신 술을 보낸다”는 말도 있을 정도입니다.
   원래 이스라엘 지역에서는 마실 물이 귀합니다. 그래서 물 대신 알코올을 넣지 않고 열매를 발효시킨 포도주를 마셨지요. 마시고 취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수분을 섭취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물 대신 포도주를 마신다고 하여 하나님께서 술 취함을 허락하신 것은 결코 아닙니다. 잠언 23장 31절에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했지요.
   레위기 10장 9절에는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에게 “너나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서 너희 사망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영영한 규례라” 말씀합니다. 이처럼 왕이나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구별된 사람들에게는 더욱 엄격하게 술을 금했지요(민 6:3 ; 잠 31:4).
   사람이 선한 양심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 술 취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음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예의를 갖춰야 하거나 어려운 윗사람을 대할 때는 술에 취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 앞에서는 어떠하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늘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또 성령께서 우리 몸을 성령의 전으로 삼고 계시지요. 그러니 주님을 영접하고 성령의 역사를 받으면 술 취하는 것이 가하지 않다는 사실을 이미 마음에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한 대로 오직 성령의 새 술에 취해 항상 충만하게 신앙 생활하시기를 바랍니다.
   
   
   4. 방탕함
   
   사전을 보면 ‘방탕함’이란 주색잡기 곧 술, 여자, 도박이나 여러 가지 기예 등에 빠져 행실이 좋지 못한 것이라고 합니다.
   세상에 보면 정욕적인 것들을 즐기고 취할 뿐 아니라 거기에 완전히 빠져 들어서 자신의 의지조차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땅한 책임과 도리도 하지 못하고 사람의 구실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지요.
   한 집안의 가장이 술과 도박에 빠져 가정을 전혀 돌보지 않고 때로는 집과 재산을 다 날리기도 하며 심지어 노름을 하려고 가족까지 파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소위 명품이라고 불리는 사치품들로 인해 방탕함을 초래하는 일도 있지요. 절제 없이 사용한 카드 대금을 갚을 길이 없으니 도둑질을 하는 사람도 있고 결국 스스로 생명을 끊은 사람도 있습니다.
   탐심 하나도 절제하지 못하고 방탕하게 행하므로 결국 재앙과 사망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면 결코 방탕함 가운데 자신을 더럽히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살전 4:3).
   
   주님을 영접하고도 방탕한 생활을 계속 하게 되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마음을 드릴 수도 없고 죄를 버리고 성결될 힘을 얻을 수도 없지요. 교회를 다닌다 해도 형식적으로 왔다 갔다 할 뿐 구원받을 수 있는 참 신앙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새 예루살렘을 소망하는 성도님들은 이처럼 정욕적인 것을 추구하여 방탕함에 빠지는 일은 없으실 줄로 압니다. 그러나 온전함을 이루기 위해 이런 것도 한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과연 온 집에 충성하고 있는가?’, ‘마음과 뜻이 어느 한 편에 치우쳐 있어서 다른 분야에는 소홀히 하지는 않는가?’ 곧 모든 분야에 있어서 자신의 할 도리를 다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또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하루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루의 시간을 규모 있게 보내고 열심히 온 집에 충성했다면 기도할 때도 아버지의 은혜와 능력이 더욱 충만히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마음에서 스스로 느낄 수 있는 것이지요. 교회는 물론 가정과 직장, 자신이 속한 모든 분야에서 온 집에 충성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님들 모두가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과 영광의 약속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참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에게만 임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약속이 온전히 성취되기까지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을 다 벗어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온전히 하나님께 순종하는 빛의 자녀로서 주님 맞을 준비를 속히 마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03-20 욥기강해 (4) - 욥의 원망과 탄식 - 이수진 목사 욥기 2:1~13, 3:1~12
오늘은 욥의 2차 시험과 질병의 원인, 축복과 저주에 관한 영계의 법칙, 그리고 욥의 원망과 탄식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사단은 사람에게 송사거리가 없어질 때까지 계속 송사합니다. 욥은 1차 시험은 통과하였지만 그 내면에는 여전히 사단의 송사를 받을 수밖에 없는 비진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단은 욥을 계속하여 송사했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영계의 법칙 속에서 허락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원수 마귀 사단이 시험한 후에 잠시 물러간다 해도 여전히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40일 금식을 마친 후 원수 마귀로부터 세 차례 시험을 받으시는데, 세 번 다 하나님 말씀으로 물리치십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4장 13절에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한 것처럼 마귀는 잠시 떠나서 또 기회를 엿보는 것입니다.
   
   
   1. 욥의 2차 시험
   
   그러면 이번에는 사단이 욥을 어떻게 송사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지라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욥 2:4~5)
   “가죽으로 가죽을 바꾼다는 것”은 생명에 위협을 준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이는 사람이 아무리 소유물이 많다 할지라도 결국 그것보다 중요한 건 목숨이므로, 만일 욥의 생명에 위협을 주면 하나님을 원망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뼈는 사람의 골격을 형성하고 살은 사람의 형상을 유지시켜 줍니다. “뼈와 살을 친다”는 것은 뼈의 골격이 비뚤어지고 형상이 뒤틀린다는 것이니, 이는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에까지 놓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만큼 욥이 앞으로 받게 될 시험, 연단이 혹독하다는 걸 나타내는 것이지요.
   
   사단은 하나님께 생사화복의 주권과 축복권, 저주권이 있음을 인정하면서 “욥의 뼈와 살을 칠 수 있도록 맡겨 주십시오.”라고 청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도 사단의 송사를 허락하시는데, 단 욥의 생명만은 해하지 말라고 하시지요(욥 2:6). 생명의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허락을 받은 사단이 욥을 치니, 욥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온몸에 악창이 났습니다. 악창이란 고치기 힘든 악성 부스럼을 말합니다. 욥에게 생긴 악창은 뼈마디 속에서부터 곪아 피부에까지 드러나고, 피부에서 다시 곪아 심한 가려움증을 느끼게 하는 질병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조그맣게 시작된 악창이었지만 긁을수록 급속히 번져 나가 마침내는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전신으로 퍼졌지요.
   욥은 재 가운데 앉아서 손으로 몸을 긁다가 가려움이 견딜 수 없이 심해지자 기와 조각을 가져다가 긁었습니다. 구약 시대에 “재 가운데 앉았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자신을 낮추는 최대한의 행위였습니다. 스스로 낮아진 모습으로 회개거리를 찾으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높이는 모습이지요.
   
   
   2. 질병의 원인과 축복과 저주에 관한 영계의 법칙
   
   욥의 아내는 고통받는 남편을 위로하지는 못할망정 비아냥대며 무시하고 저주의 말까지 합니다. 그런데 욥은 이러한 아내에게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욥 2:10)라고 대답하며 이 모든 일에 입술로 범죄치 아니합니다.
   욥이 아내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고, 또 입술로 하나님을 원망치 아니한 것은 잘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 하겠느뇨”라고 한 말은 옳지 않습니다. 욥의 오해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아무 이유 없이 복도 주시고 재앙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질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축복을 받을 수 있는지 영계의 법칙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살면 모든 질병으로부터 지켜 주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신명기 곳곳에 수없이 반복된 말씀이 바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 복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저주가 임하리라는 내용입니다(신 5:32~33, 신 28 1~68).
   만일 이러한 공의의 법칙을 알지 못한다면, 아파도 하나님의 뜻, 저주가 와도 하나님의 뜻, 가난해도 하나님의 뜻이라 하며 하나님을 독재자로 오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재앙 주기를 원하시는 게 아니라 어찌하든 복 주기 원하시고 소망 주기 원하시며 우리를 좋은 길로 인도하기 원하십니다(렘 29:11, 신 10:13).
   그러나 우리가 말씀을 지켜 준행하며 순종할 때는 복을 받지만, 말씀에 순종치 않고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않을 때는 저주가 임하는 것입니다.
   
   욥기는 욥의 신앙의 관점에서 기술해 놓은 것이므로 욥의 모든 말이 옳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후로도 욥과 친구들의 대화를 보면 진리에 맞지 않는 내용이 많습니다. 이러한 점을 유의해야 욥기를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실 때나 징계하실 때는 반드시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지켜 행하면 복을 받지만, 반대로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않으면 저주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욥은 하나님이 축복을 주신 것은 제대로 알았지만 이유도 없이 재앙도 주신다고 오해함으로 스스로 사단을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무 이유도 없이 질병이나 재앙을 주시는 분으로 오해하니 자신을 발견할 수 없었으며 회개거리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주었다가 뺏어 갈 수도 있는 분, 기분 내키는 대로 하는 독재자 같은 분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믿음으로 인해 욥은 지킴을 받을 수 없었으며 사단의 송사를 받아 재앙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많은 신앙인들이 시험 환난을 당할 때 가질 수 있는 문제입니다. 요한복음 8장 32절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진리를 모르면 욥처럼 진리의 자유함을 받지 못해 사단에게 송사거리를 주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받은 저와 여러분은 결코 원수 마귀 사단의 노리갯감이 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요 1:12). 그러기 위해서는 진리를 바로 알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3. 욥의 원망과 탄식
   
   욥은 평소에 덕이 있고 베풀기를 좋아했으며 그에게는 지식도 많았기에 주변에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욥이 하루아침에 재물과 자식을 잃고 온몸이 엉망진창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친구들이 위로차 욥을 찾아왔지요.
   친구들이 멀리서 욥을 바라보니 그 모습이 악창으로 인해 얼마나 흉하게 변했는지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였습니다. 너무나 참담한 상황이었기에 그들은 할 말을 잊은 채 먼저 말을 꺼내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까지 하나님을 경외하며 입술로 범죄하지 않았던 욥이 먼저 입을 열어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기 시작합니다.
   “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니라… 나의 난 날이 멸망하였었더라면, 남아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러하였었더라면, 그 날이 캄캄하였었더라면, 하나님이 위에서 돌아보지 마셨더라면 빛도 그 날을 비취지 말았었더라면… 그 가운데서 즐거운 소리가 일어나지 말았었더라면”(욥 3:1~7)
   욥은 자신이 태어난 날과 자신의 생명을 저주하며, 자신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까지 원망했지요. 구구절절 이어지는 원망과 탄식 속에 자기의 태어난 것을 저주하고 있으니 그의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알 수 있습니다.
   
   욥기 3장 8절에 “큰 악어를 격동시키기에 익숙한 자가 그 밤을 저주하였었더라면” 했는데, 큰 악어를 격동시키기에 익숙한 자란, 도저히 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일까지도 서슴없이 행할 수가 있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즉 욥은 악어처럼 사악한 누군가가 그날에 부모의 생명이든, 자신의 생명이든 앗아갔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욥이 이렇게 말한 것은 자신의 출생이 원망스러웠기 때문입니다.
   다음 구절을 보면 “그 밤에 새벽 별들이 어두웠었더라면” 합니다. 성경에서 새벽 별은 영적으로 각각 다른 의미로 쓰일 때가 있는데, 여기에서 새벽 별들은 욥의 부모를 가리킵니다. 욥의 부모가 “오늘 밤 사랑을 나누자”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아니했더라면 자신을 잉태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욥은 “그 밤이 광명을 바랄지라도 얻지 못하며 동틈을 보지 못하였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합니다. 부모가 사랑하자고 하는 약속을 어겼다면 아무리 광명하다 할지라도 자녀를 얻지 못합니다. 또한 만일 이 세상에 동이 트지 않는다면 암흑세계가 되어 모든 것이 끝나게 될 것이니 자신도 잉태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어서 욥은 하나님께서 어머니의 태를 닫았다면 자신이 잉태되지 않았을 것이며 지금과 같은 환난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탄식합니다(욥 3:10~12). 설사 잉태되었더라도 태에서 죽어 나왔거나, 어머니가 난산하여 자신이 죽어 버렸으면 지금의 고통을 받지 않았을 것이라며 자기를 태어나게 한 부모를 원망합니다. 또 욥이 태어났을지라도 어미가 젖을 물리지 않았으면 굶어 죽었을 텐데, 어미가 젖을 먹였으므로 자신이 이렇게 고통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욥은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이 취급하시는 줄 알면서도 자신의 태어남을 저주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 이어서 전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잠언 10장 22절에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 하시느니라” 말씀한 대로, 하나님은 복 받을 사람에게 복을 주시되 재앙을 겸해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사람의 방법으로 얻은 복은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영혼이 잘된 사람에게 주신 복은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욥은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고 오해하여 두려워했습니다. 욥이 가진 육신의 생각은 본성 속에 있는 악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러한 본성 속의 악은 바로 연단을 통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욥은 혹독한 연단을 받은 후에야 본성 속의 악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꼭 혹독한 연단을 받아야만 본성의 악이 발견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자신을 조명하여 본성 속의 악을 발견하여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히 4:12, 딤전 4:5).
   그러므로 욥기 말씀을 통해 본성의 악까지 깨닫고 신속히 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2년 3월 20일 주일)
* 사회: 조수열 목사
개회찬송 31장 1절
성시교독 47번
찬송 399장
기도 김진홍 장로
성경봉독 요한일서 2:24~25, 15~16
찬양 주님 주신 아름다운 세상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3차 영혼육(7)
당회장님
찬송 만민 찬양 84장
주일 저녁예배 (2022년 3월 20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장성식 목사
대표기도 서덕분 전도사
성경봉독 욥기 3:13~26
특송 이현미 권사
설교 욥기 강해(5)-욥의 곤고와 번뇌
이수진 목사(당회장 직무대행)
수요 예배 (3월 23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노영진 목사
대표기도 오인숙 전도사
성경봉독 요한복음 15:8
설교 영의 흐름(5)-성령의 역사, 섭리의 도구와 열매
문태규 목사
금요 철야예배 (3월 25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임학영 목사은 사 집 회
대표기도 이미영 목사
성경봉독 욥기 4:1~11
찬양 샬롬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욥기 강해(6)
이수진 목사(당회장 직무대행)
새벽 예배
인도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협조하기 위하여 추후 공지 시까지 새벽예배는 모이지 않습니다.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2-03-20 2022년 3월 셋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새로 나오셔서 등록해 주신 분들과 인터넷으로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교회 소식

● 당회장님의 저서 「근본의 소리를 발하라」 노르웨이어 종이책으로 발간되었고, 「사랑은 율법의 완성」 라트비아어,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캄보디아어, 「깨어라 이스라엘」 인도 벵골어, 「근본의 소리를 발하라」 덴마크어, 「하나님의 벗 아브라함」우간다 루간다어, 「나의 삶 나의 신앙2」 터키어 전자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 당회장님 신앙칼럼이 「기독선교신문」, 「시사뉴스」 등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만민뉴스 한글(964호), 포르투갈어(115호), 타밀어(118호) 신문을 온라인으로 발행하였습니다(만민뉴스 홈페이지 www.manminnews.com).

● 제1차 임시 당회가 오늘 저녁예배 후 오후 5시에 온라인으로 개최됩니다.

● 제3회 정기 원로회가 오늘 임시 당회 후 이어서 온라인으로 개최됩니다.

● 3월 은사집회가 25일 금요 철야예배 시 당회장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님 인도로 있습니다.
준비찬양은 오후 10시 40분부터 시작하며, 은사집회 실시간 간증접수를 받습니다.
간증접수 전화번호는 02-818-7300 입니다.
환자접수 마감은 오늘까지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교회 홈페이지와 모바일 홈페이지를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 3월 "은사집회를 위한 환자 랜선 기도회"가 만민기도원 이복님 원장님의 인도로 21일(월) 오전 11시에 있습니다. 환자분들은 명찰을 달고 랜선으로 참석하여 주시고, 응답과 축복을 사모하는 일반 성도님들은 GCN 생방송을 통해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준비찬양은 오전 10시 50분에 있습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 당회장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조) 교보문고, 영풍문고, 북스리브로, 예스24, 인터파크 등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자책(e-book) 및 오디오북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정영휘 성도(1가나안) . 조은영12 집사(1가나안/ 14교구 조봉옥 집사 . 이진영 권사의 자녀)
※ 3월 26일(토) 낮 12시, 이천시 중리천로 115번길 45 「이천 미란다호텔 1층 그랜드볼룸」

김세준 형제(3청년/ 7교구 김복동 성도 . 방성례 권사의 자녀) . 안예진 자매(2청년/ 13교구
안병군 집사 . 백미경 권사의 자녀)
※ 3월 26일(토) 오후 4시, 영등포구 양평로 58 「당산 그랜드컨벤션 3층 그랜드홀」

이재인 성도(1가나안/ 11교구 전순희2 권사의 자녀)
※ 3월 26일(토) 오후 4시 20분, 양천구 목동서로 201 「더케이스타웨딩 1층 라티에라홀」


● 감사드립니다.

강단헌화/ 해외 지교회 성도 가정(꽃꽂이 봉사: 예배국 미화부, 시설관리국)
주간 성경구절
2024-03-24
[주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 3:13]
2024-03-25
[월요일]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롬 5:7]
2024-03-26
[화요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2024-03-27
[수요일]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벧전 2:24]
2024-03-28
[목요일]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고후 1:5]
2024-03-29
[금요일]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히 5:8]
2024-03-30
[토요일]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히 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