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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공과
2022-04-08 제14과가상칠언 (3) 요한복음 19:30, 누가복음 23:46
읽을말씀 : 요한복음 19:30, 누가복음 23:46  |  외울말씀 : 히브리서 10:20 | 참고 말씀: 마태복음 27:51~53
교육목표 :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시기 전에 남기신 가상칠언 중 6언, 7언에 담긴 영적인 의미를 깨닫게 한다.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나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손과 발은 체중에 못 이겨 살이 찢어졌고, 가시면류관을 쓰신 머리에는 뾰쪽한 가시가 살을 파고들어 얼굴이 온통 피로 물들었습니다.
   채찍에 맞아 상처투성이가 된 몸으로 뜨거운 햇볕 아래서 계속 피를 흘리셨으니 그 고통의 깊이는 이루 헤아릴 수 없지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나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는마침내 “다 이루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는 마지막 말씀을 남긴 채 운명하셨습니다.
   
   
   제6언, “다 이루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십자가에 달려 죽음으로써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약 3년에 걸친 공생애를 마치고 아무 죄 없이 십자가의 처형을 당하심으로 인간 구원의 섭리를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시기 직전에 “다 이루었다” 고백하신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지키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정죄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한 영혼이라도 더 회개하여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밤낮없이 진리로 가르치셨고, 죄로 인해 질병과 연약함에 매인 사람들과 귀신 들린 사람들을 고치기 위해 쉼 없이 일하셨습니다.
   결국에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사망으로 가던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처럼 죄인들을 위해 저주받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은 사랑이 없으면 결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 사랑을 나타내 보여 구약의 율법을 사랑으로 완성하셨습니다.
   이로써 원수 마귀 사단의 진을 깨뜨리고 완전히 승리하셨기에 “다 이루었다” 고백하신 것입니다.
   또한 “다 이루었다”는 말씀에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좇아 죽기까지 순종함으로 구원의 섭리를 이루신 것처럼, 우리도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여 모든 것을 이루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곧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려 영적인 사랑(고전 13:4∼7)과 성령의 열매(갈 5:22∼23)와 팔복(마 5:3∼12)을 이루어 주님의 마음을 닮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사람은 사명을 충성되이 감당하고 열심히 기도하며 전도하여 많은 영혼을 주님 품으로 인도합니다.
   
   
   제7언,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여섯 시간 동안 고통을 받으며 물과 피를 쏟았기 때문에 운명하시기 직전에는 기력이 전혀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도 큰소리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는 마지막 말씀을 남기고 운명하셨습니다.
   가상칠언 중 제4언에서는 예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라고 하셨는데, 제7언에서는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 죄를 대속해 주는 제물로서의 사명이 끝났기 때문에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마지막 말을 남기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도 사람처럼 영과 혼과 육이 있음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의 육체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죽지만 영혼은 누구도 죽일 수 없기에 아버지 하나님께 자신의 영혼을 부탁하셨습니다.
   
   사람은 영, 혼, 육으로 구성되어 있어서(살전 5:23) 이 땅에서의 삶을 마치면 영혼은 장막인 육을 떠나게 됩니다. 영혼이 떠난 몸은 썩어 한 줌 흙으로 돌아가지요. 그리고 구원받은 영혼은 천국으로 가서 영생복락을 누리고, 구원받지 못한 영혼은 지옥으로 떨어져 세세토록 고통받으며 살아갑니다(눅 16:19∼31).
   만일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사람의 영만 받으시고 혼은 받지 않으신다면 어떻게 될까요? 천국에 가서 진리만 알 뿐 이 땅에서 눈물, 슬픔, 가난, 질병 등 혼의 작용을 통해 경작받은 일들은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천국의 참된 행복을 느낄 수 없고 중심에서 감사할 수도 없습니다. 이 땅에서 보고 듣고 배운 것들을 느낌과 함께 뇌세포 안에 입력하고, 그 입력한 것을 다시 떠올려 내는 모든 것이 혼의 작용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영과 혼을 함께 받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부탁하신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떨어지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이며, 그분의 주권 아래 이루어지기에 이렇게 기도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큰소리로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기도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람들이 다 알아듣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또한 큰소리로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 뜻이고 하나님께 영혼을 부탁하는 기도였기에 더욱 힘써 부르짖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는 기도를 하신 것은 하나님 뜻을 모두 이루었음을 나타냅니다. 곧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온전히 사명을 감당하였기 때문에 당당히 자신의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길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는 가상칠언을 남기고 운명하셨는데 참으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마태복음 27장 51∼53절을 보면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했습니다.
   여기서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화목제물이 되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죄의 담을 다 헐어 주셨다는 뜻입니다. 성소 휘장은 성전 안에 있는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기 위해 쳐 놓은 긴 커튼을 말합니다. 성소에는 제사장들이 들어가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었고, 지성소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지극히 거룩한 장소로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하루 들어가 죄인들을 위해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속죄의 제물이 되신 후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휘장이 찢어짐으로 그때부터 일반 사람도 성소와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혈을 흘리심으로 인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혀 있던 죄의 담을 헐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주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에 들어와 예배드릴 수 있고, 기도할 때도 제사장이나 선지자를 통하지 않고 직접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한 것입니다(히 10:19∼20).
   
   다음으로, 예수님께서 운명하실 때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했는데, 이는 산천초목 모든 것이 움직였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악함을 탄식하시는 소리로서 독생자를 화목제물로 주셨음에도 완악하여 끝내 주님을 영접하지 않고 멸망으로 가는 사람들에 대해 비통한 마음을 표현하신 것입니다.
   또한 ‘무덤들이 열리고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운명하실 때에 많은 무덤이 열렸는데, 예수님께서 장사된 지 삼 일 만에 살아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뒤에 그들도 무덤에서 나왔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을 믿는 사람마다 죄를 용서받고 다시 생명을 얻어 부활함을 증거로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사랑을 깊이 깨우치고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어 온전한 구원에 이르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가상칠언 6언 “다 이루었다”는 말씀에 담긴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2. 가상칠언 4언에서는 예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라고 하셨는데, 7언에 서는 ( )라고 부르셨다. 죄를 대속해 주는 ( )로서의 사명이 끝났기 때문에 ( )라고 부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 것이다.
   
   3. 성소 휘장이 위부터 아래까지 찢어졌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 )이 되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 )을 다 헐어 주셨다는 뜻이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영, 혼, 육
   
   영이란, 죽거나 썩지 않고 변함이 없는 것, 영원한 것으로 생명이요 진리 자체를 말한다.
   
   혼이란, 사람의 뇌세포 안에 있는 기억 장치와 그 안에 입력된 지식들과 그것을 떠올리는 생각의 작용을 통틀어 말한다.
   
   육이란, 육적인 의미는 살 즉 몸을 말하고, 영적인 의미는 시간이 흐르면 썩고 변질되어 없어지는 것과 추하고 더러운 비진리를 말한다.
지난 주 설교요약
2022-04-03 3차 영혼육 (8) - 이재록 목사 요일 2:24~25, 15~16
지난 시간에 이어 육에 속한 것들을 버리는 방법을 설명하면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요한일서 2장 15~16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했습니다.
   이 세상도, 세상에 있는 것들도 모두가 썩어질 육의 것이며 이러한 육의 것을 사랑하는 이상은 영으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위의 말씀을 보면 육을 벗어 버리라는 말은 결국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버리라는 말과 같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ㅇㅣ 세 가지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1. 육을 취하게 만드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란 쉽게 말해서, 사람으로 하여금 썩어질 육을 취하게 만드는 원동력과 같은 것입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육을 좋게 느끼고 사랑하게 하며 세상 것들을 취하게 만드는 힘이 되는 것이지요.
   창세기 3장 6절에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했습니다. 즉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으라는 뱀의 미혹을 받았을 때 선악과가 먹음직스러워서 육신의 정욕을 자극하며, 보암직도 하니 안목의 정욕을 일으키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다는 것은 이생의 자랑도 불러일으키더라는 것입니다.
   하와가 이 정욕들을 받아들이니 선악과를 따 먹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되고 따 먹기에 이르렀지요. 예전에는 하나님을 거역할 마음이 전혀 없었는데 맛있어 보이고, 아름답게 보이고, 하나님과 같이 지혜를 얻고 싶다는 정욕들이 동하니 이 정욕들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범죄하도록 하와를 충동질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죄악이 좋아 보이고 사랑스럽게 느껴져서 육신의 일을 행하고, 결국 육체의 일까지 범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육을 벗어 버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이 세 가지를 끊어 버림으로 육을 취하기 원하는 마음이 발동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 마음에서부터 육을 벗어 나가야 하지요.
   그런데 여러분이 죄에 물든 세상에 있는 것들이 얼마나 무가치한 것인지를 먼저 깨달으면 이런 정욕들을 더 쉽게 끊을 수 있습니다.
   만약 하와가 이 선악과를 따 먹는 것이 곧 사망이요 엄청난 고통의 길인 줄 알았다면 그것이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럽게 느껴졌을 리가 없습니다. 먹고 싶기는커녕 만지기도, 바라보기도 싫었겠지요.
   마찬가지로 이 세상 육의 것을 취한 그 결과로 얼마나 고통을 받게 되는지 알게 되고, 최후에 당하게 되는 지옥의 형벌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를 정녕 깨닫게 된다면 육을 추구하는 마음들을 쉽게 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육을 벗어 버리기 위해 가장 먼저 끊어야 할 세 가지
   
   1) 육신의 정욕
   지난 시간에 육신의 정욕에 대해 설명하다 마쳤는데 잠시 복습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육신의 정욕’이란, ‘사람으로 하여금 육신을 좇아 범죄하게 하는 속성’이라 했습니다.
   예를 들어, 아직 술을 끊지 못한 초신자의 마음에는 ‘술 취하기 원하는 육신의 일’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육신의 정욕이 동하게 되면 술을 마시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작용합니다. 술 취하려는 육신의 정욕이 사람을 충동질해서 실제로 술을 마시는 육체의 일을 행하기까지 이끌어 가는 것이지요.
   그런데 비록 초신자요 믿음이 여리다 해도 기도를 충만히 하고 성도의 교제를 통해 은혜를 받으며 성령이 충만할 때는 육신의 정욕이 쉽게 동하지를 않습니다. 마음 한편에 육신의 정욕이 생긴다 해도 즉시 진리로 물리칠 수가 있지요.
   그런데 기도를 쉬고 성령의 충만함이 떨어지면 원수 마귀 사단으로 하여금 육신의 정욕을 부추길 수 있는 틈을 내어 주게 됩니다.
   그래서 육신의 정욕을 차단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성령 충만함을 잃지 않음으로 육을 취하려는 마음보다 영을 추구하려는 마음을 강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같은 기도를 쉬지 않아야 하지요. 베드로전서 5장 8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한 대로 항상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믿음 있다’ 생각하는 일꾼들이라 해도 이 말씀을 명심해야 합니다. 아무리 바쁘게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 해도, 기도를 쉬게 되면 성령 충만이 떨어지게 되고 육신의 정욕이 틈탈 길을 열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으로 범죄하기도 하고 자칫하면 육체의 일을 행하게 되기도 합니다. 기도를 쉼으로 하나님의 일을 이룬다 하면서도 육신의 생각이 동원되어 잘못된 길을 택하기도 하지요.
   그러기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서는 결코 쉬지 않는 기도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때로는 잡수실 시간이나 주무실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바쁘셨지만 결코 기도를 쉬지 않으심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과 교통하시며 그 섭리를 이뤄 가신 것입니다.
   
   2) 안목의 정욕
   ‘안목의 정욕’이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을 통해 마음이 동요되고, 육의 것들을 추구하게 만드는 속성’을 말합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성장하는 동안 보고 듣고 느끼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마음에 안목의 정욕이 들어오게 됩니다. 곧 보고 듣는 모든 것이 마음에 작용하여 느낌으로 와 닿고, 그로 인해 안목의 정욕이 생기는 것이지요.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것은 아무리 보고 듣는다 해도 별 느낌이 오질 않습니다. 예를 들어 “붉게 잘 익은 사과의 맛이 얼마나 부드럽고 달콤하던지!” 하고 감탄하는 말을 들었다고 합시다. 이때 사과라는 것을 본 일도, 먹어 본 일도 없는 사람은 그런 말을 들어도 식욕이 동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전에 잘 익은 사과를 먹어 보았고, ‘맛있다’고 느꼈던 사람은 이런 말을 들으면 벌써 입안에 침이 고이게 되지요. 예전에 먹어 봤던 기억이 떠오르고 다시 맛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 욕구가 강하게 작용하면 시장에 가서 사먹는 행동으로 나오기도 하지요.
   안목의 정욕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것을 볼 때 육의 느낌과 함께 받아들여 놓으면 다음에 비슷한 장면을 볼 때 이전과 같은 느낌을 이끌어 냅니다. 직접 보는 것이 아니라 그에 관한 말을 듣기만 해도 예전의 느낌이 기억나고 그로 인해 안목의 정욕이 유발될 수가 있지요.
   안목의 정욕을 차단하지 않고 계속 받아들이면 육신의 정욕을 유발하게 되고, 그러면 결과적으로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다윗 왕이 안목의 정욕을 받아들임으로 큰 연단을 자초한 장면이 나옵니다. 다윗이 높은 곳을 거닐다가 한 여인이 목욕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는데 ‘심히 아리따워 보였다’ 했습니다.
   여인이 목욕하는 장면을 보았다 해도 즉시 고개를 돌리고 보지 않으면 더 이상의 범죄로 발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러지 않고 보는 것을 통해 안목의 정욕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로 인해 육신의 정욕이 동하게 됨으로 그 여인이 남의 아내인 줄 알면서도 취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충성된 백성을 이방인의 손에 죽게 하는 살인하는 죄까지 범하게 되지요.
   그 결과 하나님께 심히 책망을 받았을 뿐 아니라 회개한 후에도 죄에 대해 큰 보응으로 많은 수치와 연단을 받아야 했습니다. 한순간의 안목의 정욕을 차단하지 못함으로 심히 고난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 7장에 나오는 아간 역시 안목의 정욕으로 인해 사망의 길로 갔던 인물입니다. 가나안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여리고 성을 공략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성에서 얻는 모든 전리품을 하나님께 돌리도록 명하셨지요. 그런데 아간은 전리품 중에서 아름다운 외투와 은과 금덩이를 보고 그만 안목의 정욕이 틈타서 몰래 감춰 두었던 것입니다.
   이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외면하게 되었고 이스라엘은 다음 전투에서 많은 사망자를 내고 패전하고 말았습니다. 아간 자신도 그 범죄가 밝혀짐으로 비참한 죽임을 당하게 되었지요.
   순간적으로 안목의 정욕이 틈타서 탐심을 좇아 도적질하기에 이르렀는데, 그 결과는 돌이킬 수 없는 사망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을 버리기 위해서는 먼저 안목의 정욕을 철저히 차단해야 합니다. 진리가 아닌 것은 보지도 듣지도 말아야 하며 비진리의 것들을 접할 만한 장소는 아예 가지도 않는 것이 좋습니다.
   아무리 기도를 쉬지 않고 금식하고 철야하며 육을 뽑아버리고자 애를 쓴다 해도 안목의 정욕을 차단하지 않고 있으면 육신의 정욕이 더 힘을 얻고 발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육이 쉽게 버려지지도 않고 죄와 싸우는 것이 어렵고 힘들게만 느껴지지요.
   비유 들어, 전쟁에서 성 안의 군사들이 성 밖으로부터 지원군이나 군사물품을 계속 공급받으면 계속적으로 싸울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여러분이 성 밖에서 아무리 공격을 해도 성 안의 적군을 멸하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니 성 안의 적군을 멸하려면 먼저는 성을 포위하고 지원군과 식량, 무기 등을 공급받지 못하도록 완전히 차단을 해야 하지요. 그렇게 차단한 상태로 계속 공격을 하면 결국 성 안의 적군이 소멸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성 안의 적군이 자기 안의 비진리, 곧 육이라고 하면 성 밖의 지원군은 안목의 정욕입니다. 지원군을 차단하듯이 안목의 정욕을 철저히 차단해야 기도하고 금식하며 죄를 벗으려는 노력이 신속하게 결실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좀 더 쉬운 비유를 들어 보지요. 더러운 물이 담긴 그릇 안에 깨끗한 물을 계속 채워 넣으면 결국은 깨끗한 물로 변하게 됩니다. 그러나 만약 깨끗한 물을 채워 넣으면서 동시에 더러운 물도 함께 부으면 아무리 시간이 가도 그릇 안의 물이 깨끗해지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안목의 정욕을 통해 육을 계속 받아들이게 되면 성결되기 위해 아무리 노력해도 변화가 더디게 되지요.
   혹시 여러분 중에 죄 버리는 것이 힘들다고 하는 분들이 있다면,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보고 듣고 계속해서 안목의 정욕을 취하면서 죄를 버리기 어렵다고 하지는 않으셨는지요? 안목의 정욕을 차단하는 것은 자기 의지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못 버리는 것이 아니고 안 버리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을 철저히 차단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속히 마음에 있는 죄성들을 다 벗어 버리고 깊은 본성 속에 있는 것, 미세한 육의 것들까지도 다 발견하여 벗어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마음껏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04-03 욥기강해 (7) - 영의 분별과 영적 교만 - 이수진 목사 욥기 4:12~21
오늘은 욥의 친구 엘리바스의 영적 체험을 살펴보면서 영의 분별을 하는 방법과 영적인 교만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영혼이 잘되는 만큼 범사가 잘되며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고 영적인 분별도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말씀을 지식적으로 많이 알고 기도를 많이 한다 해도 정작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영혼이 잘되지 못하고, 영적인 분별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영적으로 교만해지게 되지요. 말씀을 통하여 영혼이 잘되며 영적 분별력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1. 엘리바스의 영적 체험
   
   깊은 밤중에 엘리바스는 영적인 체험을 했는데, 이를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각이 번거로웠습니다. 그는 아직 하나님을 밝히 아는 상태는 아니었고, 또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도 없는 상태에서 영적인 체험을 하니 두렵고 떨렸지요(욥4:12~14). 어떤 영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끼니 몸에서 털이 쭈뼛쭈뼛 솟기까지 했고, 어떤 영이 와서 섰는데 그것이 사단의 영인지 하나님이 보내신 영인지 분별할 수가 없었습니다(욥 4:15~16).
   이때 엘리바스의 귀에 어떤 음성이 들려왔는데, “인생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성결하겠느냐”(욥 4:17) 했습니다. 엘리바스는 마치 하나님께서 음성을 주신 것처럼 말하고 있는데, 우리는 영 분별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인생이 하나님보다 의로울 수 없고 더 성결될 수 없다’는 말은 진리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의인이라 칭함을 받게 되며, 죄를 버리고 말씀대로 행하는 만큼 의로워지고 성결되어 갑니다. 사람이 아무리 선하다 해도 하나님의 선에 닿을 수는 없으니, 엘리바스가 사람이 하나님보다 더 의롭고 성결될 수 없다고 한 여기까지의 말은 진리이지요.
   그런데 사단이 미혹할 때는 진리와 비진리를 교묘하게 섞어서 상대가 분별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분별하는 기준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곧 진리이어야 합니다.
   
   
   2. 영을 분별하는 방법
   
   영 분별이란 신령한 것과 육적인 것, 성령의 음성과 육신의 생각, 선과 악, 참과 거짓, 의와 불의 등을 하나님 뜻에 따라 분별하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영을 분별하려면 하나님 뜻을 알아야 하며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진리의 이론을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예수 그리스도 앞에 복종해야 합니다(고후 10:5). 그래서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할 때 하나님 뜻과 영계의 법칙을 알고 영 분별의 은사가 임하는 것입니다.
   영 분별의 은사를 받으면 사람에게 속지 않습니다. 흔히 사람은 외모를 보고 “선해 보인다” 또는 “악해 보인다” 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므로 상대가 선한 사람인지 악한 사람인지 또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사람인지 아닌지를 분명히 알려 주실 수 있습니다. 마음에 깨우침을 주시기도 하고, 영안을 열어 분별하게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도 성경을 통해,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쉽게 분별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요일 4:6) 말씀하셨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진리의 영에 속한 사람이요 진리의 말씀을 듣지 않고 받지 않으면 미혹의 영에 속한 사람인 것입니다.
   만일 영의 사람 되기를 소망한다 하면서 비진리의 말을 즐겨 듣고 함께 말하고 있다면 이런 사람은 영 분별의 능력이 없음은 물론 진리에 속한 사람이라 할 수도 없지요. 판단 정죄하는 말, 수군거리며 험담하는 말, 서운해하며 믿음 없는 말, 부정적인 말 듣기를 좋아하고 있으니 예배하고 기도하여도 변화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 안에 진리가 없고 지식으로만 담아두니 영 분별의 능력이 없는 것이지요.
   
   
   3. 하나님께서 믿으시는 종과 믿지 않으시는 종
   
   엘리바스가 “하나님은 그 종이라도 오히려 믿지 아니하시며 그 사자라도 미련하다 하시나니”(욥 4:18)라고 한 말은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믿었기 때문에 믿음의 조상으로 불러 연단하여 쓰셨습니다. 모세, 엘리야, 사도 바울 등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세운 종은 다 믿으셨지요. 예지 예정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미리 다 아시고 그 그릇됨에 따라 종을 믿고 뽑아 쓰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 것을 처음부터 아셨기 때문에 믿지 않으셨지요(요 6:64). 이처럼 하나님께서 믿지 않는 종이 있는가 하면, 예지하시고 섭리 가운데 믿고 세우시는 종이 있는 것입니다.
   엘리바스는 하나님을 오해하여 “그 사자라도 미련하다 하시나니” 했는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데 친히 부리시는 사자 곧 천군 천사들이 미련하겠습니까? 또한 하나님이 사자를 세우셨으면 그 사자를 미련하다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는 능력도 주십니다.
   고린도전서 1장 27절에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말씀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미련한 사람을 쓰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세상에서 지혜 있는 척하고 교만한 사람을 쓰시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고 선한 사람을 택하여 쓰신다는 의미이지요.
   성경을 보면 요셉, 다니엘, 사도 바울 등 하나님께서 택하여 쓰신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똑똑하고 지혜로웠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엘리바스는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이 없었고, 아직 영적 분별을 할 만한 단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조그만 영적인 체험을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마치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처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성도들 가운데 성령의 음성을 듣는다 해도, 그것이 100%가 되기까지는 성령의 음성인지 아닌지 스스로 분별하는 훈련과정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아직 확실히 분별하지 못할 때는 함부로 성령의 역사라고 단정해서 말하는 일은 삼가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을 잘못 인용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자신이 어떤 일을 마음먹은 대로 실행하지 못할 때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26:41)라는 말씀을 잘못 인용하여 변명하며 자신을 합리화하는 경우가 있지요.
   또 습관적으로 “하나님께서 주관하셨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루셨다” 혹은 “하나님께서 막으셨다”라고 말하는 것도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경우입니다(출 20:7, 레 19:12).
   만일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말을 하거나, 자신을 과시하려는 의도로 자기 생각을 성령의 역사라고 말한다면, 이는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도 거짓말한 것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4. 엘리바스의 교만
   
   엘리바스는 욥을 비유하여 말하기를, 흙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에 눌려 죽을 사람이며, 조석 사이에 멸한 사람이라 합니다(욥 4:19~20). 동방의 부자였던 욥이 하루아침에 다 망하고 빈털터리가 된 구차한 상태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지요. 일어날 기력도 없이 완전히 망한 욥을 이제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 짓고 있는 것입니다.
   욥기 4장 21절에, 장막 줄을 뽑아 버린다는 것은 아예 근거까지도 없애 버린다는 뜻입니다. 엘리바스는 욥이 다시 회복할 기미가 없고 아무 소망도 없는 상태라고 말하며, 그러한 자들이 죽을 때는 지혜도 없다고 비꼬는 것입니다.
   이러한 엘리바스의 모습은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당시에 바리새인이나 율법사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들이었지만 막상 자신들은 행함이 따르지 않으면서 자신들이 아는 지식으로 예수님에 대해 판단 정죄하였지요.
   사람은 저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것의 옳고 그름을 말할 때, 내 생각에 기준을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 말씀에 기준을 두어야 합니다. 설령 상대가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명백히 위배된 모습이라 해도, 이를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의 몫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자신이 재판관이 되어 상대를 판단하고 정죄한다면, 이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된 모습인 것입니다(약 4:12).
   욥은 순전하고 정직한 사람으로서 아직 하나님의 섭리를 알지 못하는 가운데 고난을 호소하고 있는데, 엘리바스는 욥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며 비방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교만해져서 이상 중에 하나님 말씀을 들은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실상은 원수 마귀 사단의 역사를 받고 있었습니다.
   
   
   5. 육적인 교만과 영적인 교만
   
   육적인 교만은 육적인 조건에서 자기가 상대보다 더 낫다고 여기는 분야를 드러내어 자랑하기 원하며 우쭐하여 남을 무시하는 등 겉으로 쉽게 드러납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을 해 나가면서 진리를 배우면 육적인 교만은 비교적 쉽게 발견하여 버릴 수 있지요.
   이에 비해 영적인 교만은 발견하여 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주로 진리를 머리로만 알고 마음에 이루지 못했으면서 자신이 이룬 줄로 착각할 때 영적으로 교만해집니다.
   신앙의 연륜이 쌓이고 직분이 높아지면 자신의 믿음도 그만큼 성장한 것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또 자신의 믿음은 좋다 생각하니 다른 사람을 볼 때 쉽게 분별하며 가르치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나름대로 믿음 있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자부심이 있으므로 남의 권면이나 책망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자신을 점검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판단 정죄하지요.
   또한 성령의 음성을 듣거나 영안이 열리는 등 어떤 영적인 체험을 한 것, 혹은 영적인 말씀을 많이 아는 것, 사명 감당을 오래 하여 그 분야에 경륜과 능력이 쌓인 것 등으로 인해 ‘내가 더 잘 안다’ 하며 마음이 높아져 버리는 것도 영적인 교만에 속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자신을 돌아보아 육적인 교만은 물론 영적인 교만의 모습이 없는지 점검하며, 진정 하나님 앞에 겸손한 마음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적인 분별력이 없는 상태에서 말씀을 지식적으로만 쌓아 가면 영적인 교만까지 더해져서 스스로 재판장이 되어 많은 죄를 짓습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말씀을 영으로 무장하여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아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고 영으로 분별하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2년 4월 3일 주일)
* 사회: 주현철 목사
개회찬송 9장 1절
성시교독 24번
찬송 458장
기도 최영자 목사
성경봉독 요한일서 2:24~25, 15~16
찬양 굳건한 반석이시니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3차 영혼육(9)
당회장님
찬송 만민 찬양 174장
주일 저녁예배 (2022년 4월 3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장성식 목사
대표기도 빈금선 권사
성경봉독 욥기 5:1~7
특송 윤권능 형제
설교 욥기 강해(8)-육적인 인생관과 영적인 인생관
이수진 목사(당회장 직무대행)
수요 예배 (4월 6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박광현 목사
대표기도 이형진 집사
성경봉독 고린도전서 13:3
설교 모든 것을 다 내어 줄지라도
이미영 목사
금요 철야예배 (4월 8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박형렬 목사없음
대표기도 문태규 목사
성경봉독 요한계시록 4:1~3
찬양 샬롬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요한계시록 강해(30)
당회장님
새벽 예배
인도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협조하기 위하여 추후 공지 시까지 새벽예배는 모이지 않습니다.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2-04-03 2022년 4월 첫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새로 나오셔서 등록해 주신 분들과 인터넷으로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교회 소식

● 당회장님의 저서 「근본의 소리를 발하라」 스웨덴어 종이책으로 발간되었고, 「사랑은 율법의 완성」 세르비아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네덜란드어, 「나의 삶 나의 신앙1」 체코어 전자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 당회장님 신앙칼럼이 「기독선교신문」, 「시사뉴스」 등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만민뉴스 한글(965호) 신문을 온라인으로 발행하였습니다.
(만민뉴스 홈페이지 www.manminnews.com)

● 임시 사무연회가 다음 주일(4월 10일) 저녁예배 후 온라인으로 개최됩니다.
※ 안건: 몰도바 만민교회 알렉산드르 따바라누 선교사 목사 안수 청원 건

● 2022 부활절 특별찬양이 4월 15일 금요철야 2부 시에 있습니다.
※ 찬양인도: 당회장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
※ 제목: "부활의 기쁨"

● 부활절 기념 달걀 꾸미기 콘테스트를 여선교회 총연합회 주관으로 실시합니다.
※ 대상: 전 성도(개인, 단체 가능)
※ 접수일자: 4월 14일 목요일(오전 10시 ~ 오후 3시)
※ 접수장소: 신학교 3층 회의실
※ 시상: 대상, 금상, 은상, 동상 각 1팀, 장려상 5팀, 참가상
※ 문의: 여선교회 총연합회 (이옥주 권사 ☎ 010-5395-1762)

● 4월 추천도서는 주님의 자취(상)입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우림북 홈페이지 www.urimbooks.com)

● 당회장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고) 교보문고, 영풍문고, 북스리브로, 예스24, 인터파크 등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자책(e-book) 및 오디오북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지교회 소식

구미만민교회(담임 최제수 목사) 창립 25주년 기념예배
※ 일시: 4월 3일(주일) 오후 3시
※ 설교: 최제수 목사

속초만민교회(담임 박종대 목사) 창립 18주년 기념예배 및 권사 취임
※ 일시: 4월 10일(주일) 오후 3시
※ 강사: 정철수 목사


● 감사드립니다.

강단헌화/ 중국 2교구(꽃꽂이 봉사: 예배국 미화부, 시설관리국)
주간 성경구절
2024-04-07
[주일]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롬 4:25]
2024-04-08
[월요일]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시 121:3]
2024-04-09
[화요일]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시 121:4]
2024-04-10
[수요일]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시 121:5]
2024-04-11
[목요일]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시 121:6]
2024-04-12
[금요일]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시 121:7]
2024-04-13
[토요일]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시 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