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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공과
2022-05-20 제20과육적인 믿음과 영적인 믿음 히브리서 11:1~3
읽을말씀 : 히브리서 11:1~3  |  외울말씀 : 히브리서 11:1 | 참고 말씀: 야고보서 2:26
교육목표 : 육적인 믿음으로는 구원받지 못하기에 참믿음인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하나님께 인정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은 보배 중의 보배요, 모든 문제를 해결하며 영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열쇠와 같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고 기도에 응답받으며, 천국에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언제 어디서든지 만날 수 있는 특권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런데 믿음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영적인 믿음과 그렇지 않은 육적인 믿음입니다.
   
   
   1. 육적인 믿음
   
   육적인 믿음은 눈으로 보아 확인되고, 내가 아는 상식이나 지식과 일치될 때 믿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지식적인 믿음, 이성적인 믿음이라고 합니다. 이런 믿음은 유(有)에서 유 창조, 즉 있는 재료를 가지고 뭔가를 만들어 내는 것을 믿는 믿음이므로 누구나 소유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나 성장하면서 뇌의 기억장치에 여러 지식을 입력합니다. 가정, 학교, 직장 등 주변 환경을 통해 보고 들은 지식을 기억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사용합니다. 이처럼 입력된 지식 중에는 진리가 아닌 비진리가 많습니다. 한때 진리라고 알려졌던 것이 세월이 지나면서 옳지 않다고 밝혀지는 경우가 많지요. 이를 통해서도 세상 지식이 온전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에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변함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비진리가 진리인 줄 알고 배우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진화론을 비롯해 유에서 유의 창조만 배워 온 사람은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눈에 보이지 않는 무 상태에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앉은뱅이를 일어나 걷고 뛰게 하셨습니다. 심지어 죽은 지 이미 나흘이나 되어 썩어 냄새나는 나사로도 살리셨지요.
   육적인 믿음을 지닌 사람은 무에서 유의 창조가 믿어지지 않으니 이러한 말씀을 들어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비록 주님을 영접했다 해도 자신이 옳다 생각하는 의와 하나님 말씀이 상반되면 마음에 갈등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본인은 원수를 갚아야 의롭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고 말씀하시니 갈등이 생기고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믿습니다” 고백해도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야고보서 2장 26절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말씀한 대로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인정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육적인 믿음은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이요, 결국 구원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2. 영적인 믿음
   
   육적인 믿음과 달리 영적인 믿음은 무(無)에서 유(有)의 창조를 믿는 믿음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나의 생각과 지식에 맞지 않아도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믿는 믿음이지요. 또한 하나님께서 ‘하라, 지키라, 하지 말라, 버리라’ 하신 말씀대로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영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무 상태에서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창조주 하나님께서 살아 계셔서 인류의 생사화복과 세계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또한 2천여 년 전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 일 만에 부활하셨으며, 다시 우리를 데리러 오신다는 것을 믿고 기다립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은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의뢰하기 때문에 어떤 문제도 해결받고 응답을 받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9장 23절에 “…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말씀한 것입니다. 그런데 영적인 믿음은 자기가 원한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12장 3절에 “…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말씀한 대로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분량만큼 가질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아도 스스로 영적인 믿음을 가질 수 있다면 이 세상에 응답과 축복을 받지 못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주여, 대통령이 되게 해 주옵소서” 하면 대통령이 될 것이고, 미운 사람이 있으면 “주여, 징계해 주옵소서” 하면 그대로 될 것이니 세상이 얼마나 혼란스러워지겠습니까.
   따라서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아무에게나 영적인 믿음을 주시지 않습니다. 어둠을 벗고 빛 가운데 행할 때 위로부터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을 주십니다. 이처럼 영적인 믿음은 행함이 따르고 반드시 응답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때문에 행함 있는 믿음, 산 믿음이라고 합니다.
   
   
   3.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려면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이 계신 것과 하나님을 찾는 사람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또한 계명들을 지켜 행하며 신속히 자신을 진리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입력된 비진리의 지식은 영적인 믿음을 갖는 데에 큰 방해 요소가 됩니다. 육신의 생각을 동원케 하고 의심하게 하므로 비진리의 지식을 뽑아 버리지 않으면 육적인 믿음을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보고 들으며 불같이 기도함으로 마음 안에 있는 비진리를 빼내고 진리로 채워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말씀했으니 먼저는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가르침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으로 담아 두지 않으면 진리를 알지 못하니 행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듣고 가르침을 받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으로만 담고 있으면 지식적인 믿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아는 말씀을 행함으로 옮겨야 합니다. 즉 육적인 믿음에서 영적인 믿음으로 바꾸려면 그만큼 행함이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은데 피아노 교본을 백 번, 천 번 읽기만 한다면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이론은 해박할지 몰라도 실제 행함으로 연습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주를 할 수가 없습니다. 이론을 익히고 열심히 연습해야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 말씀을 양식 삼고 행할 때라야 영적인 믿음이 주어집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 앞에 행함으로 온전한 믿음을 내보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벗이요, 믿음의 조상이라 불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했을 때 행함으로 순종하지 않았다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신뢰했기 때문에 순종함으로 자신의 믿음을 온전히 확증시켜 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하나님의 인정과 사랑을 받으며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영육 간에 강건한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구원받음은 물론,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까지 침노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 믿음은 눈으로 보아 확인되고, 내가 아는 상식이나 지식과 일치될 때 믿는 믿음이다. ( ), 이성적인 믿음이라고도 한다.
   
   2. ( ) 믿음은 무에서 유의 창조를 믿는 믿음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나의 생각과 지식에 맞지 않아도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믿는 믿음이다.
   
   3. 어떻게 해야 영적인 믿음을 소유할 수 있을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이삭’은 어떤 인물일까?
   
   아브라함이 100세, 아내 사라가 90세에 낳은 아들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약속의 씨인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기 위해 결박하여 죽이려고 했을 때 이삭은 순순히 응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그를 대신하여 숫양을 준비해 주셨다.
   이삭은 아내 리브가와의 사이에서 쌍둥이 에서와 야곱을 낳았다.
지난 주 설교요약
2022-05-15 3차 영혼육 (13) - 이재록 목사 요일 2:24~25, 롬 8:14
육을 버리고 영에 속한 혼의 작용을 하게 되면 성령의 음성도 밝히 들을 수 있는데,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는 방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주님을 영접한 모든 자녀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로마서 8장 14절에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씀한 대로, 하나님의 자녀라면 당연히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아야 하는데 이는 곧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았다고 해서 처음부터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고 성령의 인도를 밝히 받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1. 육신의 생각을 깨뜨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으려면
   
   첫째로, 마음속의 비진리 곧 육신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성령의 음성은 귀로 어떤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들려지는 음성이며, 마음속에 일궈진 진리를 통해 들려집니다. 그런데 비진리가 있으면 마음으로 성령의 음성을 듣기 전에 육신의 생각이 먼저 머리에 떠올려집니다.
   먼저 진리의 마음으로 성령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에 순종하여 영의 생각을 해야 하는데, 비진리가 있는 만큼 육신의 생각이 앞서서 성령의 음성을 가로막아 버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려면 먼저 마음의 비진리를 벗어 버려야 하고, 그런 만큼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을 수가 있습니다.
   
   둘째로, 희미한 성령의 음성이라도 듣게 될 때 그대로 순종해 나가야 합니다.
   마음에 비진리가 남아 있다 해도 동시에 진리도 있기 때문에 한 편으로 성령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마음이 진리로 이뤄져 있는 만큼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을 수 있고, 진리로 채워진 부분이 적다면 성령의 음성도 희미하게 들리지요.
   그런데 성령의 음성이 이렇게 희미하게 들려올 때도 듣는 대로 열심히 순종해 나가면 그런 만큼 마음이 점점 더 진리로 채워지고, 성령의 음성도 더 밝히 들을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여러분에게 악을 행할 때 온전히 성결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떠오릅니다. ‘속상하다, 밉다’ 하는 육신의 생각이 떠오르며 동시에 ‘온유하라,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성령의 음성이 마음을 통해 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분냄과 미움 등 마음에 비진리가 많은 만큼 성령의 음성은 미약하게 들리지만, 그래도 진리를 배우고 성결되기 위해 기도해 온 사람이라면 조금이라도 성령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럴 때 단호하게 성령의 음성 쪽을 택하여 순종할 수 있다면 그만큼 마음에 악이 버려질 수 있고 점점 더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샛째로, 불같은 기도를 해야 합니다.
   만일 두 개의 라디오를 놓고 각각 다른 방송을 틀었다고 가정할 때 한꺼번에 두 개의 방송을 틀었다 해도 한쪽의 볼륨을 더 크게 하면 그 쪽 방송을 더 잘 들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불같은 기도를 해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면 마치 라디오의 볼륨을 높여 주는 것처럼 성령의 음성이 더 잘 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심방을 할 때도 자신의 생각 속에서 심방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으로 심방해야 합니다.
   만약 초신자가 주일성수를 하지 않았을 때, 심방하는 사람이 생각을 동원하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말씀을 증거하면 되겠다’ 이렇게 머리로 먼저 떠오르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생각을 동원해서 “주일을 지켜라, 주일을 안 지키면 지옥에 간다” 이런 말씀을 증거한다고 해서 온전한 영적인 심방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영적인 심방이 되려면 먼저 그 영혼을 놓고 충만히 기도하여 성령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이 초신자가 주일을 어기게 된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알려 주실 수가 있습니다. 교회 안의 누군가와 걸림이 되었거나 일터에 어려운 문제가 생겨서 낙심하는 등 주일에 나오지 않은 이유를 알게 하시는 것이지요. 혹은 구체적인 문제까지는 알려 주지 않으신다 해도 그에게 적합한 하나님의 말씀 구절을 떠올려 주십니다.
   이렇게 성령의 음성을 들으면 그 음성대로 말씀을 전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성령께서 상대의 마음을 열어 은혜받게 하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결과적으로 상대가 주일도 지킬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때로는 갑작스러운 심방을 가게 되어서 미리 많은 기도를 쌓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이때도 기도를 쉬지 않음으로 항상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있는 상태라면 심방할 영혼이나 가정에 대해 잠시 동안만 기도해도 수월하게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2. 성령의 음성을 분별하려면 훈련의 과정 필요해
   
   성령의 음성을 들으면 하나님의 뜻을 밝히 분별하여 진리 가운데 온전히 거할 수가 있습니다. 앞길에 어떤 장애가 있을 때 성령의 음성으로 알려 주시기도 하고, 축복받을 수 있는 길을 주관해 주시는 경우도 있지요. 비밀한 영계의 일들을 알려 주시거나 장래 일을 알려 주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들이 조금씩 성령의 음성을 들어 나가기 시작하면 이것이 내 생각인지, 아니면 성령의 음성인지 잘 구분이 안 가는 경우를 겪게 됩니다. 물론 명백하게 진리와 비진리로 나뉘는 경우는 어느 것이 성령의 음성인지 쉽게 분별할 수 있지요.
   성경 말씀에 비춰보아 진리이면 성령의 음성이고 비진리이면 육신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둘 다 비진리는 아니지만 성령의 음성이 이것일까, 저것일까 정확히 분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밝히 분별하기 위해서는 훈련하는 과정이 필요하게 되지요.
   먼저는 분별하기 원하는 내용을 놓고 간절히 기도함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성령의 음성이 더 뚜렷하게 들립니다. 또한 기도하는 것뿐 아니라 직접 순종했을 때의 결과를 통해 성령의 음성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참으로 성령의 음성이고 하나님께서 주관하신 것이면 그대로 순종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마음에 위로부터 기쁨과 감사가 임하고 성령 충만이 임하는 것이 그 증거가 될 수도 있습니다. 혹은 다른 사람의 말을 통해 성령의 음성이었음을 확인하게 되거나 순종을 통해 눈에 보이는 축복의 열매를 거둠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경우도 있지요.
   처음 성령의 음성을 들을 때는 주로 성령이 충만한 시간, 특히 기도 시간에 음성을 듣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점점 훈련을 통해 분별하게 되고, 또 성결되어 마음이 진리로 채워지는 만큼 평소에도 성령의 음성을 듣고 주관을 받게 됩니다.
   
   
   3. 성령의 음성을 듣고자 할 때 기억해야 할 점
   
   첫째로, 성령의 음성을 분별할 때는 진실하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려는 자세가 되어야 정확한 음성을 들을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의지를 앞세운다거나 자신이 처한 형편이나 현실적인 조건을 먼저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나는 이쪽이 더 좋다’ 하는 사심이 있을 때나 ‘저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하는 선입관을 가지면 그것이 먼저 육신의 생각으로 작용되어서 정확한 성령의 음성을 듣기가 어렵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이라면 무조건 순종하려는 마음과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이라도 내가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신다 하는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로, 자신의 틀과 이론, 자기적인 의 등으로 인해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고 있으면서 그것을 성령의 음성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원래부터 자기 의가 강한 사람이 다니엘의 굳은 절개에 대한 말씀을 듣고 은혜받음으로 ‘타협하지 않는 것이 진리다’ 하고 정립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을 할 때는 한 가지 주장만 고집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비진리가 아니라면 각 사람의 신앙과 형편에 맞게 방법론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자기 의가 강한 사람은 이럴 때도 자신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대로 고집하며 화평을 깨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도 어느 한계 이상을 뚫지 못하여 답답함을 느끼고, 오랜 세월이 지나도 영으로 들어가지 못하여 정체되어 있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자신이 어떤 성령의 음성을 들었다 생각해도 그것이 참으로 성령의 음성인지, 거룩함과 화평함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좇는 것인지 항상 점검하고 조명해 보아야 합니다.
   
   셋째로, 아무리 성령의 음성을 듣고 주관을 받아도 그대로 순종하지 않으면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더구나 성령의 음성을 듣고도 계속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도 없고 그나마 들리던 성령의 음성조차도 듣지 못하게 됩니다.
   성령의 음성에 계속 불순종함으로 성령의 음성을 아예 못 듣게 되면 이는 결국 구원의 문제와도 관련이 되지요.
   예를 들어, 사람이 육체의 일을 범했을 때 심히 성령께서 탄식하시는 음성을 들으므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됩니다. 그러나 그 음성을 무시하고 한 번, 두 번 범죄하면 나중에는 아예 마음이 무뎌져서 두려움도 없어지게 되지요. 그렇게 계속 지내다 보면 결국 사망에 이르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주관을 받는다 해도 거기에 순종하지 않으면 인도를 받는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동쪽으로 가면 귀한 보물이 있다는 말을 듣고도 여러분이 그냥 서쪽에 머물러 있으면 그 보물을 가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해도 성령의 음성을 들을 때 그대로 순종해 나갈 때 그 음성을 점점 더 밝히 듣고 더 정확하게 인도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에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했습니다. 온 영을 이루면 혼과 육도 영에 속한 혼과 육으로 변하게 되고 주님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이 없는 상태로 주님을 맞이할 수가 있지요.
   그런데 영에 속한 혼은 바로 육신의 생각을 벗어 버리고 진리를 좇아 영의 생각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육신의 생각이 없는 만큼 성령의 음성을 들어 하나님 뜻을 알 수 있고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여 하나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속하게 모든 비진리를 벗어 버리고 오직 영의 생각만을 이루시며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음으로 항상 풍성한 축복의 길로만 인도받아 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05-15 욥기강해 (12) 영적인 소경의 모순됨 - 이수진 목사 욥기 6:5~12
오늘은 욥의 교만과 영적인 무지, 그리고 이로 인한 영적인 소경 된 모습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연단은 축복의 지름길
   
   “들나귀가 풀이 있으면 어찌 울겠으며 소가 꼴이 있으면 어찌 울겠느냐”(욥 6:5)
   들나귀나 소가 먹을 꼴이 없기 때문에 우는 것처럼 욥은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울고 있다고 말합니다. 모든 것을 잃은 데다 온몸의 악창으로 인해 너무나 참기 힘든 고통을 이기지 못해 하소연하고 있다는 말이지요.
   욥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원망과 탄식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유가 있다고 말하지만 진리에 비추어 볼 때는 전혀 옳지 않은 모습입니다. 우리가 연단을 감사와 기쁨, 기도로 승리하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롬 5:3~4). 인내의 과정 속에 영혼이 성숙하게 단련되며, 그럴수록 천국 소망이 더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을 연단하여 육을 벗고 영으로 나오게 하십니다(잠 17:3). 연단의 과정이 비록 당시에는 고통스럽다 해도 반드시 그 과정을 거쳐야만 정금과 같이 아름다운 영의 마음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영으로 변화되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하기 때문에 연단은 축복이며 소망을 이루는 지름길이지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누구에게나 시험은 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은 시험이 와도 막을 길이 없고, 극복하는 데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능히 막을 수 있습니다. 또한 믿음으로 시험을 이기는 자에게는 축복이 있습니다(약 1:2~4)
   그런데 믿음이 있는 성도 중에도 시험이 왔을 때 이에 반응하는 모습이 다양합니다. 얼마쯤 인내해 보다가 “너무 힘드니 그만 포기하자”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인내하는 척, 진리 안에 사는 척하다가 그만 범죄하고 마는 사람 등 여러 유형이 있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합격할 때까지, 인정받을 때까지 인내하라는 말씀이지요. 그렇게 할 때 우리가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지 꿈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인내와 절제가 필요합니다. 야고보서 1장 12절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성결되었다고 인정받을 때까지 오는 시험들을 참고, 이기고 또 이겨야 합니다. 이는 이를 악물고 억지로 참으라는 말씀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 참으라는 말씀입니다.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않고 기도해 나가는 사람은 어떤 고난이 온다 해도 믿음으로 통과할 수 있습니다(살전 5:16~18). 죄로 인해 환난이 왔다 해도 이를 통하여 자신을 발견케 해주시니 감사하고, 그래서 죄를 버리고 의 가운데로 나아갈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범죄한 것이 없는데도 시험이 왔다면 축복을 주시기 위한 것이니 더욱 감사할 수 있지요.
   그러니 어떤 시험이 왔을 때라도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지 말고 오직 말씀에 순종하여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감사로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2. 욥의 교만과 영적인 무지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 닭의 알 흰자위가 맛이 있겠느냐 이런 것을 만지기도 내 마음이 싫어하나니 못된 식물같이 여김이니라”(욥 6:6~7)
   욥은 소금을 넣지 않은 음식과 달걀의 흰자위가 맛이 없는 것처럼 친구 엘리바스의 말은 맛이 없어 먹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알맹이도 없고 값어치도 없는 말이라서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다며 비꼬는 것이지요.
   엘리바스가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욥을 가르쳤지만 욥은 그 말이 맛없는 음식물처럼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런 것을 만지기도 싫고 못된 식물같이 여긴다” 했는데, 이는 ‘나는 너보다 우월하다’라는 교만을 드러내는 말입니다. 욥은 교만하여 마음 문을 꽁꽁 닫고 있었기에 친구가 아무리 진리로 권면한다 한들 이를 받아들여 깨우칠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 지식과 학문이 믿음을 주는 것이 아니요, 자칫 교만하게 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영으로 일구지 않고 지식으로 쌓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욥이 진리를 참으로 아는 사람이었다면 교만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겸손히 낮아졌을 것이니 친구와 감정 대립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욥은 순전하고 정직했으며 하나님을 안다고 했지만 정작 영적인 무지함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의 깊은 학문이 자기를 교만하게 만들었고, 영적으로는 소경과 다름없었던 것입니다.
   엘리바스도 교만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옳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상대가 거부하면 전하지 말아야 하는데, 엘리바스는 교만하기 때문에 욥을 무시하며, 욥이 마음 문을 닫은 것도 알지 못한 채 계속하여 욥을 타이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구하는 것을 얻게 하시며 나의 사모하는 것 주시기를 내가 원하나니 이는 곧 나를 멸하시기를 기뻐하사 그 손을 들어 나를 끊으실 것이라”(욥 6:8~9)
   여기서 욥이 구하고 사모하는 것은 바로 죽음이지요. “하나님, 내 생명을 거두어 가세요.”라고 기도하며 응답받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깨닫는다면 결코 이러한 말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 땅에 경작을 하고 계십니다. 사람은 혹 자녀를 저버리는 일이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사 49:15),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닌다 할지라도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사람 편에서는 하나님을 배신하고 떠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불꽃 같은 눈동자로 지켜보시며 애틋한 마음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어 목숨까지 내어 주는 사랑을 베풀어 주신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겪는 모든 어려움을 믿음으로 잘 승리하여 참 자녀로 나올 수 있도록 늘 응원하시며 돕고 계시지요. 그리하여 아름다운 천국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욥은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를 알지 못하고 자신의 생명 거둬 주시기를 구하고 있으니 얼마나 합당치 못한 모습입니까.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하나님께 생명을 거두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믿음 없는 말이며 하나님을 서운하게 하는 말인지 욥은 깨우칠 수 없었습니다. 진리를 올바로 알지 못하였으며 내세의 소망이 없었으므로 하나님 앞에 불평하여 하나님을 서운케 하였던 것입니다.
   
   
   3. 영적인 소경 된 모습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무정한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할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지 아니하였음이니라”(욥 6:10)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거둬 가실지라도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떳떳하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생명을 거둬 달라고 구하는 자체가 이미 말씀에 어긋나는 비진리인데, 욥은 스스로 말씀 안에 살았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욥은 전능자 하나님은 자신에게 인정을 베풀지 않고 무정하게 고통만 안겨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전능자가 혹독한 매를 가했지만 자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지 않았다, 즉 진리 안에 살았다는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의 진리 말씀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옳다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진리 안에 살았으니 하나님이 내 생명을 거둬 가신다고 해도 아무 여한이 없다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깨우치지 못하면 자신이 잘못했어도 잘못인 줄 알지 못하고, 잘했어도 잘한 줄을 알지 못합니다. 이렇게 분별하지 못하는 상태를 영적인 소경에 비유하는 것입니다.
   
   
   4. 영적인 믿음의 중요성
   
   “내가 무슨 기력이 있관대 기다리겠느냐 내 마지막이 어떠하겠관대 오히려 참겠느냐 나의 기력이 어찌 돌의 기력이겠느냐 나의 살이 어찌 놋쇠겠느냐”(욥 6:11~12)
   욥은 이제 자신은 회생 불가능하며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이상 전능자가 자신을 치료해 주기를 바라는 것도 지쳤고, 돌이나 쇠처럼 단단한 기력이 아니니 이제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부정적인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믿음 없는 사람의 한계 속에서 나오는 고백입니다. 영적인 믿음은 무에서 유를 창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지 나흘이 된 나사로도 살리셨습니다.
   또 우리 교회 김은득 권사님은 전신 3도 화상을 입어 생명까지 위태로운 상황이었지만 당회장님의 기도로 후유증 하나 없이 빠른 시간에 치료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렸지요. 이 경우는 욥의 악창보다 더 참혹하고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욥의 악창은 그래도 세포가 살아 있는 경우라 할 수 있지만 김은득 권사님은 세포까지 익어 버린 경우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적인 믿음을 내보이면 죽은 자도 살아나고, 죽은 세포도 살아납니다.
   욥은 영적인 믿음이 없었기에 부정적인 고백만 이어지는데. 이러한 욥의 모습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대부분 충만할 때는 “믿습니다” 고백하며 열심히 기도하고, 사명 감당하며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막상 시험이 오면 이제까지 쌓아온 믿음이 얼마나 진실한지 드러나지요.
   마가복음 11장 24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야고보서 1장 6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한번 믿고 구했으면 응답받을 때까지 흔들리지 말고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한번 받은 은혜를 저버리지 말며 더욱 진리로 마음을 강하게 하여 천국에 갈 때까지 변개함 없는 믿음으로 달려가야 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이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2년 5월 15일 주일)
* 사회: 조혁희 목사
개회찬송 57장 1절
성시교독 9번
찬송 488장
기도 이미경 목사
성경봉독 요한일서 2:24~25
찬양 만유의 주재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3차 영혼육(14)
당회장님
찬송 만민 찬양 75장
주일 저녁예배 (2022년 5월 15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장성식 목사
대표기도 서덕분 전도사
성경봉독 욥기 6:13~30
특송 안미영 권사
설교 욥기 강해(13) - 변하는 육적인 사랑
당회장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
수요 예배 (5월 18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노영진 목사
대표기도 정규원 목사
성경봉독 마태복음 11:12
설교 천국을 침노하자(1)
이미경 목사
금요 철야예배 (5월 20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문태규 목사없음
대표기도 조대희 목사
성경봉독 요한계시록 5:5~8
찬양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요한계시록 강해(35)
당회장님
새벽 예배
인도 추후 공지 시까지 새벽예배는 모이지 않습니다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2-05-15 2022년 5월 셋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새로 나오셔서 등록해 주신 분들과 인터넷으로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교회 소식

● 당회장님의 저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스웨덴어가 종이책으로 발간되었고, 「하나님의 벗 아브라함」 리투아니아어, 「일곱 교회」 불어, 「영혼육(상)」 에티오피아 암하라어가 전자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 당회장님 신앙칼럼이 「기독선교신문」, 「시사뉴스」 등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만민뉴스 한글(968호), 스페인어(292호), 말레이시아어(4호) 신문을 온라인으로 발행하였습니다(만민뉴스 홈페이지 www.manminnews.com).

● 정기 원로회가 오늘 저녁예배 후 오후 5시에 온라인으로 개최됩니다.

● 「제2회 가족찬양대회」 본선이 오늘 오후 1시 30분에 GCN방송으로 방영됩니다.
인기상 투표가 있으며, 투표하신 분들 중에 50명을 추첨하여 치킨 세트를 드립니다.
인기상 투표 방법은 교구와 선교회에서 보내 드린 링크를 이용하시고, 성도님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 드립니다. 시상식은 저녁예배 시 있습니다.

● 「5월 은사집회」가 5월 27일 금요 철야예배 시 당회장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님 인도로 있습니다. 환자 접수는 5월 16일(월)부터 5월 22일(주일)까지 받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교회 홈페이지와 모바일 홈페이지를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 「환자를 위한 랜선 기도회」가 만민기도원 이복님 원장님의 인도로 매주 월요일 오전 11시에 있습니다(준비찬양은 오전 10시 50분).

● 연합성결신학교에서는 신설된 성서학과 학생을 대상으로 중국 대교구장 황금란 전도사를 초청하여 "참된 증인이 되자"라는 주제로 특강을 진행합니다.
※ 일시: 5월 21일(토) 오후 3시 ~ 4시 30분
※ 장소: 신학교 3층 예배실

● 총회에 납부할 세례인 부담금(1인당 3천원)을 6월 12일(주일)까지 각 교구장(남·여선교회) 및 지도교사(학생 이상)에게 납부해 주시기 바랍니다.

● 당회장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고) 교보문고, 영풍문고, 북스리브로, 예스24, 인터파크 등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자책(e-book) 및 오디오북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지교회 소식

아산만민교회(담임 오환준 목사) 창립 14주년 기념예배
※ 일시: 5월 22일(주일) 오후 3시
※ 강사: 이미영 목사, 특송: 김혜경 목사

익산만민교회(담임 김창숙 목사) 창립 22주년 기념예배
※ 일시: 5월 22일(주일) 오후 3시 30분
※ 강사: 강승표 목사


● 교구별 현장예배 장소
●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강도문 형제(3청년/ 5교구 강동기 · 백경숙 권사의 장남) ? 김새롬 자매(3청년/ 5교구 김의택 · 강현미 권사의 장녀)
※ 5월 21일(토) 오후 2시 20분, 영등포구 문래동 3가 55-16 SK리더스뷰 「규수당 웨딩홀 2층 카이타스(단독 홀)」


● 감사드립니다.

강단헌화/ 해외 지교회(꽃꽂이 봉사: 예배국 미화부, 시설관리국)
주간 성경구절
2024-05-19
[주일]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빌 1:6]
2024-05-20
[월요일]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막 16:15]
2024-05-21
[화요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막 16:16]
2024-05-22
[수요일]
너희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인하여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롬 16:19]
2024-05-23
[목요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고후 4:8]
2024-05-24
[금요일]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고후 4:9]
2024-05-25
[토요일]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후 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