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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공과
2023-02-17 제7과구원받을 믿음과 구원받은 믿음 로마서 10:13~15
읽을말씀 : 로마서 10:13~15  |  외울말씀 : 로마서 12:3 | 참고 말씀: 요한일서 2:12~14
교육목표 : 예수님만이 구세주의 자격 조건에 합당한 분임을 깨달아 구원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무조건 교회에 다닌다고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통회자복한 후 성령을 받아야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에 나와 통회자복하기 전까지 곧 성령 받기 전까지의 과정을 ‘구원받을 믿음’이라 하고, 죄를 통회자복하고 성령을 받은 상태를 ‘구원받은 믿음’이라 하지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천국에 가려면, 단순히 교회만 출석하는 교인이 아니라 ‘구원받은 믿음’을 소유해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을 믿음과 구원받은 믿음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구원을 향해 가는 과정인 ‘구원받을 믿음’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의 일입니다. 누가복음 23장 39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 좌우편에 십자가 처형을 당한 두 행악자가 있었습니다. 그때 한 편 강도가 예수님을 향하여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라고 조롱하였습니다. 그러자 다른 편 강도가 예수님을 힐난하는 강도를 꾸짖으며 주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지요.
   즉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한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셨지요. 그에게 구원받아 낙원에 이를 것을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죄 사함을 주어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메시아, 곧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사실을 선포한 것입니다.
   간혹 ‘회개한 강도처럼 내 마음대로 살다가 죽기 직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구원받을 수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 편 강도는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이미 ‘구원받을 믿음’이 있었기에 구원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다른 편 강도가 예수님을 조롱할 때 그를 책망하며 예수님께서는 아무 죄도 없이 십자가 처형을 받는 것이라고 역설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 편 강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고 이미 마음에 인정하였습니다. 그 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시면서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시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민망했겠습니까. 그래서 십자가에 달려 극심한 고통을 받으면서도 예수님을 향해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며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간절히 호소하였던 것입니다.
   만일 한 편 강도가 십자가 처형을 당하지 않고 생명이 연장되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요? 결코 이전처럼 흉악한 죄를 지으며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자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한 편 강도의 고백을 들으시고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구원에 이를 것을 확증해 주셨지요.
   그렇다면 구원에 이른 강도가 예수님께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기 전에 갖고 있었던 ‘구원받을 믿음’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이는 아직 구원의 확신이 온전히 들지 않지만, 열심히 구원을 향해 가는 과정에 있는 믿음입니다. 누구든지 구원의 확신을 가지려면 ‘구원받을 믿음’에서 ‘구원받은 믿음’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노력도 필요하지요. 곧 믿음을 갖고자 노력할 때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할 수 있는 은혜와 구원의 확신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아직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이 구원받을 믿음에서 구원받은 믿음으로 바뀌려면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우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우면 무엇이 죄인지 깨달아집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만나려고 간절히 찾고 노력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요.
   이전에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마음 중심에서 깨닫고 철저히 회개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시며,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바로 ‘나’ 때문이라고 믿으니 “나는 죄인 중의 죄인이었다.”는 고백이 저절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번복하여 죄를 짓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능력을 주시지요.
   이처럼 통회자복을 하기까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 있는 믿음이 ‘구원받을 믿음’입니다. 진정한 회개가 이루어지면 성령이 임하시고 마음이 시원해지면서 구원의 확신이 생깁니다. 누구도 해결할 수 없었던 죄의 짐을 내려놓으니 몸과 마음이 날아갈 듯 가볍고 기쁨이 샘솟지요. 비로소 ‘구원받은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2. 구원의 확신이 있는 ‘구원받은 믿음’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 그것은 구원의 시작입니다. 그때부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구원의 완성을 이루어야 합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구원의 확신 가운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은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원수 마귀의 종에서 하나님 자녀로 신분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시험 환난과 고통 속에 의지할 곳 없이 살았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영접하고 나서는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천국 소망 가운데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가지요.
   이처럼 성령 받은 후 구원의 확신 가운데 하나님 자녀로 살아가는 믿음을 ‘구원받은 믿음’이라고 합니다. 구원받을 믿음이 하나님 자녀가 되려고 노력해 통회자복을 하기 전까지의 믿음이라면, 구원받은 믿음은 통회자복한 후에 성령 받아 하나님 말씀을 행해 나가는 믿음이지요. 즉 구원받을 믿음과 구원받은 믿음을 구분하는 기준은 ‘성령을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구원받은 믿음’이 주어지면 세상을 좇아 살아왔던 잘못된 구습을 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싶어집니다. 억지로가 아니라 하나님 사랑에 감사하여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와 말씀을 지켜 행하게 되지요.
   어떤 사람은 성령을 받은 즉시 술과 담배를 끊기도 하고 설교 말씀을 통해 배우는 대로 기쁨으로 순종해 나갑니다. 처음에는 겨자씨만 한 믿음에서 출발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해 나가면서 어떤 비바람에도 끄떡없는 나무처럼 큰 믿음으로 성장하여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자녀가 태어나면 아이, 청년의 과정을 거쳐 아비가 되듯이 믿음도 점점 성장해 갑니다. 갓 태어난 자녀와 같이 믿음이 작다고 해도 성장 과정을 거치면 청년을 지나 아비와 같은 큰 믿음이 될 수 있습니다.
   자녀들의 믿음은 이제 막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 받은 단계를 말합니다. 자녀들의 믿음이 자라면 아이들의 믿음이 되지요. 아이들의 믿음이란,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믿음입니다. 즉 부모에 대해 깊이까지는 모르고 일부분 조금 아는 단계이지요. 그러니 진리를 알고 체험하지만, 말씀대로 행하는 것도 있고 행치 못하는 것도 있습니다. 아이들의 믿음이 자라면 청년의 믿음이 됩니다.
   청년의 믿음이란, 완전히 성숙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말씀이 마음에 임해 있으므로 능히 원수 마귀 사단의 궤계를 깨뜨리고 승리하는 단계를 말합니다.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천국에 소망을 두며, 세상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어떤 시험을 만나도 요동하지 않을 힘이 있지요. 쉬지 않고 기도하는 가운데 오히려 감사하고 찬송하며 시험을 거뜬하게 이겨냅니다.
   청년의 믿음이 자라면 아비의 믿음이 됩니다. 이는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아는 믿음’ 곧 근본 하나님을 아는 믿음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아이의 믿음에서 아는 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릅니다. ‘자녀를 낳아 봐야 부모의 마음을 안다’고 하듯이, 아비의 믿음이 되어야 비로소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온전히 알 수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깊은 것, 근본까지도 알 수 있지요.
   아비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모든 사람의 본이 되고 겸손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라도 포용하며, 좌우로 치우치거나 흔들림이 없이 진리 안에 온전히 서게 됩니다. 덕과 사랑을 갖추고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는 성숙한 믿음이기에 천국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자리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구원받을 믿음과 구원받은 믿음을 구분하여 설명해 보세요.
   구원받을 믿음:
   구원받은 믿음:
   
   2.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자녀들의 믿음(믿음의 1단계) : 성령을 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이다.
   ② 아이들의 믿음(믿음의 2단계) :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믿음이다.
   ③ 청년들의 믿음(믿음의 3단계) :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이다.
   ④ 아비들의 믿음(믿음의 반석 이상)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낙원
   
   간신히 구원받은 믿음을 지닌 영혼들이 들어가는 처소이다.
   하나님 보좌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으로 하나님 영광의 빛이 약하며 천국의 처소 중 가장 낮은 단계에 속한다.
   낙원의 가장자리는 백보좌 대심판 때까지 천국의 대기 장소로 활용된다.
   온 영을 이루어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는 영혼들을 제외하고 창세 이래 구원받은 무수한 영혼이 낙원의 가장자리에 머물고 있다.
지난 주 설교요약
2023-02-12 지옥 (2) - 이재록 목사 누가복음 16:22~26
지난 시간에는 천국과 지옥의 구조에 대해 살펴보았고, 오늘은 음부가 존재하는 이유에 관해 설명하겠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법을 알면 어떻게 할 때 복을 받는지, 재앙이 오는지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 말씀을 통해 사후의 일까지 알 수 있지요. 천국과 지옥에 대해 들어 앎으로 천국을 목표로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천국과 지옥에 대해 단지 알려 주기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놓으셨지요.
   그 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때를 따라 이른 비와 늦은 비 같은 은혜를 내려 주시고 강권적으로 이끌어 주시기도 하지요. 우리가 주님의 손을 놓지 않는 한, 천국까지 인도해 주십니다.
   오늘도 말씀을 들으실 때 영의 세계를 알려 주시며 우리를 천국 길로 인도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 보시기를 바랍니다.
   
   
   1. ‘대기 장소’로서의 음부
   
   천국과 지옥은 단일한 공간이 아니라 여러 공간으로 분류되어 있는데, 그중 음부는 천국이나 지옥과 구분된 별도의 공간입니다. 그렇다면 굳이 왜 음부라는 공간이 별도로 존재할까요? 그것은 바로 음부의 역할이 있기 때문입니다.
   음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대기 장소’로서의 역할입니다. 이 땅에 살다가 수명이 다해 죽은 영혼들이 천국이나 지옥 가기에 앞서 대기하는 장소이지요.
   인간 경작의 긴 역사 동안 무수한 영혼이 육의 생명이 다해 죽었습니다. 이 영혼들은 곧바로 천국의 자기 처소나 지옥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 경작이 끝나고 최후의 심판, 곧 백보좌 대심판을 받은 후에야 천국의 처소 또는 지옥에 들어가게 되지요(계 20:11~13). 최후의 심판 때까지는 사람이 죽으면 육의 몸은 이 땅에 장사 되고 영혼은 대기 장소에 대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주님의 부활 이전과 이후가 다른 대기 장소
   
   이 땅에 살다가 수명이 다해 죽은 영혼들이 대기하는 장소는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에 각각 다릅니다. 정확히는 주님의 부활 이전과 이후가 다르지요.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은 신구약 시대 동일하게 아랫음부에 대기합니다. 지옥의 불 못이나 유황 못에 들어가기 전까지 아랫음부에서 고난받지요.
   그러나 구원받은 영혼들은 다릅니다. 구약시대에는 윗음부에 대기했고 신약시대, 곧 주님의 부활 후부터는 천국 낙원의 대기 장소에 대기하고 있지요.
   누가복음 16장 22~23절에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 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했습니다. 나사로는 구약시대 구원받은 영혼들의 대기 장소인 윗음부에 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다고 말씀하신 이유는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 선지자가 윗음부를 관리했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은 영혼은 대부분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또한 아브라함은 영적으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모두의 조상, 곧 믿음의 조상이기도 하지요. 따라서 윗음부에서 구원받은 영혼들을 관리하는 사명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이후에는 영혼이 구원받으면 윗음부, 곧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낙원에 들어가 주님의 품에 안기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계실 때 그 곁 십자가에 달린 한 강도가 회개하자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말씀하셨지요. 낙원은 천국에 속한 영역입니다. 그렇다면 왜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야 구원받은 영혼들이 천국에 들어간 것일까요?
   천국은 주님을 구세주로 믿고 구원받은 영혼들에게 주어지는 영원한 처소입니다. 그런데 구약의 영혼들은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이전에 죽었지요. 주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율법이나 양심이 잣대가 되어 구원 여부가 정해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모든 죄인은 우리 주님을 통해서만 구원받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했고, 사도행전 4장 12절에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했지요.
   따라서 구약시대에 구원받은 영혼들도 천국에 들어가기 이전에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절차를 밟아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은 언제 복음을 듣고 주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것일까요?
   
   
   3. 구약시대 구원받은 영혼들에게 구원의 도를 전하신 주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삼 일 동안 윗음부의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18~19절에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했지요.
   여기서 옥에 있는 영들이란 바로 윗음부의 영혼들을 가리킵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장사 된 사흘 동안 윗음부의 영혼들에게 구원의 도를 전파하신 것입니다. 윗음부의 영혼들은 이를 믿고 주님을 구주로 영접했지요. 그리고 주님께서 부활하시면서 모두가 함께 천국으로 옮겨졌습니다.
   물론 아직 천국의 자기 처소에 들어간 것은 아닙니다. 낙원 가장자리에 준비된 대기 장소에 들어갔지요. 주님께서 감독하시는 가운데 천국, 곧 하나님의 나라가 예비되고 있는 것입니다.
   
   
   4. 구원받은 영혼들 3일간 윗음부에서 영의 세계 적응
   
   이 땅에서 생명이 다해 죽은 영혼 중 구원받은 영혼들은 낙원의 대기 장소로 들어가는데, 이때 곧장 낙원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3일간을 윗음부에 거하다가 낙원에 들어가지요. 왜 그럴까요?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육체에서 분리되어 나옵니다. 이때 구원받은 영혼에게는 두 천사가 마중을 나와 윗음부로 인도하지요. 구원받지 못한 영혼에게는 지옥 사자가 찾아와 아랫음부로 끌고 갑니다. 영의 세계는 매우 광활하며 육의 세계에 살던 사람이 홀로 천국이나 지옥으로 가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이제 갓 몸을 빠져나온 영혼은 얼마나 어색하겠습니까? 자신이 육체를 입고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상태가 됩니다.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으니 붕붕 날 듯하지요. 이제까지 살던 육의 세계와 느낌이 전혀 다른 영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순간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겪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선은 영의 세계에 적응하고 기본적인 영의 지식을 배울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런 이유로 윗음부에 3일간 머무는 것입니다.
   그 후에는 천국 낙원의 대기 장소로 옮겨져 그곳에서 주님께서 공중 강림하시고 7년 혼인 잔치가 시작될 때까지 기다립니다.
   
   
   5. 영의 지식을 배우는 낙원의 대기 장소
   
   낙원의 대기 장소에서는 무엇을 하며 지낼까요?
   영의 세계는 막연한 곳이 아니라, 너무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곳입니다. 그곳에서 기다리는 영혼들은 선지자들로부터 영의 지식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해, 천국에 대해, 또 영계의 법칙들에 대해서 배우지요. 이런 지식은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이 무한합니다.
   혹 어떤 분들은 “그러면 천국에서도 공부해야 하나, 나는 공부하는 것이 싫은데.”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의 지식을 배우기는 전혀 어렵지도, 지루하지도 않습니다. 신기하고 오묘해서 배울수록 은혜롭고 마음이 충만해지지요.
   이 땅에서도 하나님과 밝히 교통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영의 지식을 배울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과 교통하려면 그만큼 마음이 깨끗하고 온유해야 하지요. 영의 세계의 지식을 배우고 터득하면 세상 그 무엇도 줄 수 없는 기쁨으로 충만하고, 성령의 감동 속에 깊은 영의 일들을 깨우치기도 합니다. 영의 세계의 법칙을 터득함으로써 영에 속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지요.
   예를 들면, 불황 속에서도 사업이 오히려 번창합니다. 질병과 사고가 많은 세상에서도 온 가족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지킴 받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같이 힘들다고 말하는 상황에서도 늘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아가지요.
   이처럼 이 땅에서도 영의 지식을 깨우쳐 알면 충만하고 행복합니다. 하물며 천국에서 깊은 영의 지식을 배울 때는 얼마나 즐겁고 행복할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깨우칠 때마다 감동이 밀려오고, 육의 한계로 인해 가졌던 의문들이 풀리니 마음이 시원하지요.
   
   
   6. 사람의 생각으로는 측량할 수 없을 만큼 넓은 천국과 지옥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전하면 “인류 역사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태어났는데 그들을 다 수용할 만한 공간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습니까?” 하고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주만 생각해 보아도 이에 대한 답을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지구가 속해 있는 태양계는 은하계 전체에 비하면 한 개의 점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 은하계 역시 우주 전체에 비할 때는 작은 점 하나에 불과하지요.
   하나님께서 육의 세계에 베풀어 놓으신 우주조차도 사람의 머리로는 그 한계를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하물며 영의 세계인 천국은 어떠하겠습니까?
   낙원만 해도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측량할 수 없을 만큼 넓은 공간입니다. 낙원도 1천층에 가까운 곳과 가장자리는 까마득하게 멀리 떨어져 있지요. 그러니 ‘천국의 대기 장소가 비좁지는 않을까?’ 염려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음부는 천국과 지옥에 가기 전 영혼들이 대기하는 대기 장소의 역할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영혼들이 대기하는 장소는 신약시대에 와서 달라져 음부가 아닌 천국 낙원으로 바뀌었지요. 주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길을 활짝 여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나 주님에 대해 전혀 듣거나 알 기회가 없이 죽은 사람들은 무조건 지옥에 가야 할까요?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십니다. 결국 공의는 하나님께서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시기 위해 두신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사실입니다. 다음 시간에 말씀을 들으시면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주간도 기도하시며 들으신 말씀을 능력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영의 세계를 알게 하심으로 여러분의 영혼과 삶을 윤택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셔서 새 예루살렘에 더 다가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3-02-12 욥기강해 (34) - 이수진 목사 욥기 14:17-22, 15:1-3
오늘은 하나님의 사랑을 오해하는 욥의 말과 엘리바스의 변론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뜻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하나님의 사랑이 변했다고 오해하는 욥
   
   “내 허물을 주머니에 봉하시고 내 죄악을 싸매시나이다”(욥 14:17)
   사람은 귀하고 소중한 것을 분실하지 않기 위해 주머니에 넣어 잘 봉합니다. 마찬가지로 허물과 죄악을 봉하고 싸맨다는 것은, 그것을 가볍게 보지 않고 중대하게 보며, 단단히 관리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욥의 걸음을 일일이 세는 것조차도 부족하여, 허물과 죄악을 봉하고 싸매서 도가 넘치게 중죄인처럼 다스리신다는 것이지요.
   마치 사랑이 변해버린 남편에게 슬픈 고백을 하는 아내처럼, 욥은 하나님을 향해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저는 서로 사랑을 주고받았었는데, 어느 순간 하나님이 저를 미워하기 시작하시더니 나의 모든 것을 거둬가셨습니다. 가만히 보니까 하나님께서 저를 미워하여 중죄인 취급을 하시는 것은 저의 어린 시절의 죄를 하나하나 들춰내시는 까닭이지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고통스럽고 힘든 일을 만난다 해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을 남편으로 표현하실 때도 있습니다.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사 54:5) 말씀했고, 특히 아가서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사랑하는 연인의 관계, 신부와 신랑의 관계로 비유하고 있지요.
   하나님은 욥을 지극히 사랑하는 신랑이시기 때문에 아름다운 신부로 만들고자 연단을 허락하신 것인데, 욥은 나쁜 하나님으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2. 사람의 소망을 끊어 버리시는 하나님으로 오해하는 욥
   
   “무너지는 산은 정녕 흩어지고 바위는 그 자리에서 옮겨가고 물은 돌을 닳게 하고 넘치는 물은 땅의 티끌을 씻어 버리나이다…”(욥 14:18-19)
   전에는 욥이 큰 산과 같은 명예가 있었고 부유했으며 권세도 있었습니다. 몸도 바위처럼 건강하고 자녀들도 많았으며, 뭇사람으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이었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웅장한 산과 바위를 무너뜨려 버리시니 이제는 아무 쓸모가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시냇물이 수십 년, 수백 년 흐르다 보면 이 물살에 돌들이 깎이고 닳아서 크기가 점점 작아집니다. 또 작은 물방울 하나는 힘이 없지만 오랜 세월 끊임없이 떨어진다면 단단한 바위도 구멍이 나게 되지요.
   그런데 욥은 조금씩 흐르는 물도 크고 단단한 돌을 닳게 할 수 있다고 한 후에, 왜 넘치는 물이 작은 티끌을 씻어 버린다고 표현한 것일까요?
   여기서 넘치는 물은 ‘하나님의 높으심’을 나타냅니다. 욥은 넘치는 물처럼 엄청난 권세자이신 하나님께서 티끌만도 못한 자신을 짓밟고 쓸어 버렸다고 비꼬는 것입니다. 이렇게 욥은 하나님이 사람의 소망을 끊어 버리시는 분이라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시며, 평안과 소망을 주시는 분입니다(민 6:24-26, 애 3:33, 렘 29:11). 때를 따라 하나님께서 연단을 허락하시는 것도 우리를 힘들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먼저 영혼이 잘됨으로 더 큰 축복을 받도록 하시기 위함임을 알아야 합니다.
   
   
   3. 과거에 집착하며 모든 것을 하나님 탓으로 돌리는 욥
   
   “주께서 사람을 영영히 이기셔서 떠나게 하시며 그의 얼굴빛을 변하게 하시고 쫓아 보내시오니… 그가 깨닫지 못하나이다”(욥 14:20-21)
   욥은 엄청난 권세자인 하나님이 티끌만도 못한 인생인 자기를 끝까지 추격하시며 이기려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재산을 거둬 가셨으며 건강도, 가정의 화평도 떠나게 하셨고, 결국은 욥의 생명까지도 이 세상을 떠나게 하여 음부로 보내려고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욥은 처음에는 하나님께 간청도 해보고, 나중에는 원망, 탄식을 넘어 나쁜 하나님이라 매도하는 등 이런저런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으로부터 아무런 응답이 없으니 이제는 입술을 제어하지 않고 나오는 대로 마구 쏟아내고 있는 것이지요.
   
   ‘그의 얼굴빛을 변하게 한다’는 것은 그동안 욥이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원망과 탄식으로 붉으락푸르락하는 등 얼굴빛이 변해온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그 아들이 존귀하나 그가 알지 못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욥이 과거에는 부유하였고 존귀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믿었기에 하나님 앞에 감사의 제사를 지냈지요. 그러나 과거에 아무리 행복했을지라도 하나님이 다 거두어 가 버리셨으니 기억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감사하지도 않고 은혜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 욥은 “비천하나 그가 깨닫지 못하나이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자기가 비천한 자리에 있지만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욥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비천해진 상황에서도 얼마나 친구들을 무시하였습니까?
   “친구들아, 나는 의인이며 너희보다 월등히 지식과 지혜가 많으니 내 앞에서는 말도 꺼내지 말라” 했고, 하나님 앞에도 교만한 말로 따졌지요. 욥은 지금 낮은 자리에 앉아 있으니 자기의 비천함을 깨달아야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는데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본래 존귀한 자였는데 하나님이 이 모양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지, 왜 내가 비천하냐”고 따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현재 위치를 정확하게 깨우치고 문제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6) 말씀한 대로 범사에 진리로 조명하여 자신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만일 물질 문제, 가정 문제, 질병 문제 등 어려움이 있다면 분명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 “왜 이런 질병에 걸렸는가” 그 이유를 발견하여 돌이키는 것이 축복이지요. 그렇지 않고 욥과 같이 축복을 누렸던 과거에 집착하거나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고 매사를 남의 탓으로만 돌린다면 문제 해결도, 아무런 발전도 없는 것입니다.
   
   “오직 자기의 살이 아프고 자기의 마음이 슬플 뿐이니이다”(욥 14:22)
   욥이 앞에서는 과거를 돌아보며 말하였는데 이제는 현실로 돌아가 자신을 보고 있습니다. 현실은 내 살이 썩어가고 있으며 고통스럽고 마음이 곤고하며 슬프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당한 지금의 괴로움도 하나님 때문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욥은 이 모든 것을 자신의 탓이 아닌 하나님의 탓으로 돌리고 있기에 깨닫지도 못하고 회개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행해 나간다면 어떤 비바람도, 범람하는 물도 나를 어찌할 수 없습니다(마 7:24-25). 그러므로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하나님 탓, 다른 사람 탓, 환경 탓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말씀 안에 굳건히 서 있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4. 변론의 무익함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가로되 지혜로운 자가 어찌 헛된 지식으로 대답하겠느냐… 유조치 아니한 이야기, 무익한 말로 변론하겠느냐”(욥 15:1-3)
   욥의 친구들은 전에는 욥이 지혜로운 줄로 알았었는데, 지금은 가만히 욥의 말을 들어 보니 미련한 사람이었습니다. 욥이 하나님을 나쁜 하나님으로 몰아가며 쉼 없이 원망 탄식의 말, 광풍 같은 말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욥 네가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헛된 지식으로 대답할 리가 없다”라고 말합니다. 아예 욥을 무시하며 미련한 자라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는 변론이 이처럼 무익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아야 합니다. 만일 욥이 친구들과 변론하지 않았다면 친구들이 이렇게 얕잡아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잠언 9:10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 말씀합니다. 만일 욥이 하나님을 끝까지 경외했다면 친구들로부터 미련한 자라는 말을 듣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변론 중에 나오는 말들이 하나님을 경외함에서 떠난 말들이요, 진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 미련한 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
   이어서 엘리바스는 “어찌 동풍으로 그 품에 채우겠느냐”라고 했는데, 이는 동쪽에서 부는 바람을 사람의 품에 안을 수 없다는 말이지요. 바로 욥의 말이 무익하고 헛됨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여기서 유조치 아니한 이야기란, 도움이 되지 않는 쓸데없는 말을 뜻합니다. “욥아, 너는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헛되고 무익한 변론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미련한 자의 말이 아니냐” 이렇게 질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엘리바스의 이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책망하는 자세가 옳은 것도 아닙니다. 엘리바스가 아무리 욥을 책망할지라도 지금은 소용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욥은 친구들 때문에 점점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감정이 일어나 마음이 뒤틀린 상태에서는 아무리 옳은 말도 마음으로 받지 못합니다. 오히려 이 말로 인해 더 화가 나고 감정이 폭발할 수 있지요.
   따라서 친구들이 욥의 연단을 길게 만드는 장본인이라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만일 친구들이 옆에 없었다면 욥은 변론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조용히 묵상하며 회개거리를 찾았다면 이렇게 연단이 길어지지도 않았겠지요.
   욥의 친구들처럼 우리가 어떠한 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상대에게 슬픔과 고통을 주며 원수를 맺게 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잠 10:19). 아무리 좋은 소식이며 옳은 말이라 해도 변론은 아무런 유익을 가져다주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가 받지 못할 때는 말을 멈춰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나 성도를 심방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리를 받는 사람에게는 주되, 오히려 그 말씀으로 시시비비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사람에게는 주지 말아야 합니다(마 7:6). 이는 진리를 받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아예 전도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하여 성령의 음성을 듣고 선한 지혜를 받아서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현재 어려움을 만났다 해도 과거에 내게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합니다. 내가 문제를 만나고 힘든 일이 생겼다 해도 하나님은 살아 계시며 언제나 사랑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이렇게 변함없으신 하나님을 믿어 드린다면 어떤 고난과 역경이라도 능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모든 성도님들도 문제 앞에 낙심하고 믿음을 잃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 변함없이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어려움으로 인해 믿음이 성장하며 더 큰 축복을 받아가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3년 2월 12일 주일)
* 사회: 정진영 목사
개회찬송 9장 1절
성시교독 16번
찬송 223장
기도 이성숙 목사
성경봉독 누가복음 16:22~26
찬양 찬양하라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지옥(3)
당회장님
찬송 만민 찬양 159장
주일 저녁예배 (2023년 2월 12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박광현 목사
대표기도 오인숙 전도사
성경봉독 욥기 15:4~11
특송 서승원 집사
설교 욥기 강해(35)-엘리바스의 두 번째 변론(1)
당회장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
수요 예배 (2월 15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임학영 목사
대표기도 차난영 권사
성경봉독 로마서 8:18
설교 비교할 수 없는 영광
임학영 목사
금요 철야예배 (2월 17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이성칠 목사없음
대표기도 김영석 목사
성경봉독 요한계시록 18:21~19:8
찬양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요한계시록 강해(65)
당회장님
새벽 예배
인도 조대희 목사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3-02-12 2023년 2월 둘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새로 나오셔서 등록해 주신 분들과 인터넷으로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교회 소식

● 당회장님의 저서 「근본의 소리를 발하라」 헝가리아어와 「권능」 리투아니아어가 전자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 당회장님 신앙칼럼이 「기독선교신문」, 「시사뉴스」 등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만민뉴스 말레이시아어(18호) 신문을 온라인으로 발행하였습니다.
(만민뉴스 홈페이지 www.manminnews.com)

● 만민뉴스 985호, 986호가 디지털 신문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만민뉴스 홈페이지나 모바일 기사의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동영상이나 음성으로 보고 들으실 수 있습니다.

● 제31회 연합성결신학교 및 제16회 MIS(만민국제신학교) 졸업식이 2월 16일(목) 오후 2시 3층 성전에서 있습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참석 바랍니다.
※ 설교: 연합성결신학교 교장 문신현 목사
※ 연합성결신학교 졸업생: 성기용, 김건희, 송실라
※ MIS(만민국제신학교) 졸업생: 아이미르 쳅치가쉐프(러시아), 막심 츄바츄크(몰도바), 티그란 카챠트리얀(아르메니아)
※ 2023학년도 성서학과 신입생을 2월 13일(월)~2월 25(토)까지 모집합니다.
문의: 신학교 ☏ 02) 822-5237

● 당회장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고) 교보문고, 영풍문고, 북스리브로, 예스24, 인터파크 등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자책(e-book) 및 오디오북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교구 소식

여조장 월례회/ 2월 13일(월) 오후 1시 사택예배실(설교: 당회장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
중국대교구 일꾼 월례회/ 2월 12일(주일) 저녁예배 후 3층 성전(설교: 황금란 대교구장)


● 감사드립니다.

강단헌화/ 해외 지교회 성도(꽃꽂이 봉사: 예배국 꽃꽂이부, 시설관리국)
주간 성경구절
2024-02-18
[주일]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계 22:1]
2024-02-19
[월요일]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계 22:2]
2024-02-20
[화요일]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고전 13:1]
2024-02-21
[수요일]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마 7:8]
2024-02-22
[목요일]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마음을 제어하기로 서약하였거든 파약하지 말고 그 입에서 나온 대로 다 행할 것이니라 [민 30:2]
2024-02-23
[금요일]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빌 4:19]
2024-02-24
[토요일]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잠 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