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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공과
2023-03-10 제10과최고의 기도 모델, 예수님 누가복음 22:39~44
읽을말씀 : 누가복음 22:39~44  |  외울말씀 : 누가복음 22:44 | 참고 말씀: 예레미야 33:3; 데살로니가전서 5:17
교육목표 : 최고의 기도 모델이신 예수님을 닮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의 향을 드림으로 응답과 축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부모를 사랑하는 자녀는 학교나 직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부모와 조곤조곤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또 무엇이 필요하면 자녀로서 당당하게 요구하며 부모에게 스스럼없이 사랑의 표현을 하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버지 하나님과 사랑의 대화를 나누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영이신 하나님께서도 사랑하는 자녀와 대화를 주고받으며 깊은 사랑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근본 하나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친히 기도에 대해 가르치시고 본을 보여 주셨지요. 기도는 성령 받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신 응답의 열쇠이며 축복의 통로입니다. 과연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요령은 무엇일까요?
   
   
   1.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주기도문
   
   마태복음 6장과 누가복음 11장에는 예수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기도, 곧 주기도문이 나옵니다. 이는 자녀로서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는 데 꼭 필요한 내용이지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주기도문을 묵상하며 고백하면 성령의 도우심으로 기도를 체계적으로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요? 주기도문 도입 부분을 보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기도 받는 대상이 나옵니다. 우리가 편지를 쓸 때 “사랑하는 OOO에게”라고 쓰는 것과 같지요.
   그다음에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합니다. 이는 아버지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높이며, 하나님 나라가 선하신 뜻 가운데 이뤄지기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우리의 필요를 구하기에 앞서 하나님 나라를 먼저 구하라는 것이지요.
   그 후에 자신과 이웃을 위한 기도로 이어집니다. 즉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하였지요. 이때 비로소 자신의 필요한 것을 구하고, 주변 사람들을 용서하고 사랑하기 위해 기도하며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하며 하나님께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영광 돌리지요. 이처럼 주기도문에는 기도하는 요령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가 무엇인지 잘 나와 있습니다.
   
   
   2. 최고의 기도 모델,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신데도 기도를 쉬지 않으셨습니다. 누구보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밝히 아셨기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를 올리며 모든 사역을 이루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 39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과연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기도로 고난의 십자가를 지시며 원수 마귀 사단을 이기실 수 있었을까요?
   
   1) 습관을 좇아 기도하셨습니다
   건강을 유지하려면 규칙적인 식사가 매우 중요합니다. 자주 식사를 거르거나 불규칙한 식생활을 하면 위장 기능이 저하되어 건강을 해칠 수 있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규칙적인 식사를 통해 에너지원을 얻듯이 우리가 습관을 좇아 기도해야 하나님으로부터 영적인 힘을 지속해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세상을 이기고 원수 마귀 사단을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지요.
   만일 습관을 좇아 기도하지 않으면 늘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공급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성령의 충만함을 잃고 마음이 곤고해지며 자칫 마음을 지키지 못하여 죄의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항상 쉬지 말고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살전 5:17). 쉬지 않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다가올 시험을 물리쳐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설령 시험이 온다 해도 영적 힘이 축적되어 있으면 사단에 미혹되지 않고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면 매우 좋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를 주심에 감사하고, 자기 전에 하루를 지켜 주심에 감사기도를 드린다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보실 때 얼마나 사랑스럽겠는지요?
   
   2)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우리가 부모님께나 윗사람 앞에서 무엇을 구할 때 바른 몸가짐으로 공손히 구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물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는 어떻겠습니까? 결코 흐트러진 자세로 구할 수 없지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겸손한 자세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행 20:36)이나 스데반 집사(행 7:60) 등 믿음의 선진들도 마찬가지이지요.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능력을 신뢰한다는 표시이기도 합니다. 물론 무릎을 꿇기 힘든 상황도 있습니다. 그때는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겸손한 자세로 기도해야 합니다. 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이 좋지요. 처음에는 힘들 수 있지만 5분, 10분 시간을 늘려 가다 보면 나중에는 한 시간, 두 시간도 거뜬히 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 뜻에 합한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하나님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자신을 통해 모든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기 뜻대로 구합니다. 가령,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해 주시면 헌금을 많이 하겠습니다.” 아니면 실컷 자기 마음대로 기도해 놓고 “그대로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하지요.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도 응답이 오지 않으면 원망 불평하고 낙심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데 왜 사업이 번창하지 않습니까? 신속히 물질의 축복을 주세요.”라고 기도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더구나 욕심과 사심을 갖고 기도한다면 응답받을 수 없지요. 바로 하나님 뜻에 합한 기도, 선한 기도를 올려 드려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 맡겨드리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항상 좋은 것을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믿기에, 어떤 결과에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4)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 44절에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 했습니다. 당시 겟세마네 동산은 기온이 낮아 땀이 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땀방울이 핏방울같이 되었다는 데에서 얼마나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기도하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부르짖는 기도가 중요한 이유는 잡념이나 피곤, 졸음이 틈타지 않고 중심으로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령이 충만하고 원수 마귀 사단의 세력이 물러가지요. 그러니 응답은 물론 하나님께서 크고 비밀스러운 일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큰 핍박 속에서도 부르짖어 기도하여 성령 충만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부르짖어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교회는 성령이 역사하여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며 큰 부흥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조용히 묵상 기도하는 것이 마치 경건하고 거룩한 것인 양 가르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조용히 묵상 기도를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예배 전에 와서 기도하거나 밤늦게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조용히 할 때도 있지요.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땀 흘려 중심으로 부르짖어 기도할 때 은혜와 능력을 주시며 응답으로 축복해 주십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기도하셨는지 적어 보세요.
   첫째,
   둘째,
   셋째,
   넷째,
   
   2. 누가복음 22장 44절을 적어 보세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스데반 집사
   
   초대교회 최초의 순교자이다. 그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으로 교회 안에서의 구제 사역을 맡은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으로 뽑혔으며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행했다.
   스데반이 유대 지도자들의 잘못을 지적하자 그들은 마음에 찔려 돌로 쳐 그를 죽였다. 스데반은 죽어가면서도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고백하며 그 영혼이 떠났다.
지난 주 설교요약
2023-03-05 지옥 (5) - 이재록 목사 디모데전서 2:4
지난 시간에는 양심 심판과 어린아이들의 구원 기준에 대해 살펴보았고, 오늘은 아담과 하와, 가인의 구원 여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마지막으로 첫 사람 아담과 하와를 지으신 후 이들을 보시며 심히 기뻐하셨습니다(창 1:31). 그리고 하나님께서 지으신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생물들을 다스릴 권세를 주셨지요(창 1:27~28).
   하나님께 특별한 첫 사람, 곧 아담과 하와를 향한 사랑의 마음을 이처럼 표현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은 오히려 이들이 범죄한 이후에 더 분명히 드러납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 큰 사랑을 받았으면서도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불순종의 죄를 범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은 구원받았을까요? 아담과 하와의 자녀로서 인류 최초로 살인을 저지른 가인은 어떻게 됐을까요?
   
   
   1. 아담과 하와의 구원 여부
   
   1) 그들의 회개를 받으시고 천국에 들이신 하나님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은 참으로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범죄한 아담과 하와는 아무런 부족함 없이 풍성한 삶을 누리던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지요. 그리고 눈물, 슬픔, 고통이 있는 이 땅으로 내려옵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는 결국 사망에 이를 육의 사람이 되었지요. 땅과 만물도 다 함께 저주받아 이들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는 땅에서 땀 흘려 일해야지만 소산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뿐 아니라 이 땅에서 낳은 후손들 또한 죄악과 질병, 재앙과 사망이 있는 이 땅에서 고통받으며 살아가게 되었지요.
   어떤 사람은 이 모든 일을 초래한 아담과 하와가 구원받지 못했으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상고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도 구원의 문을 열어 주셨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죄악이 관영한 오늘날에 비하면 그래도 그 양심이 선하고 깨끗했습니다. 아담으로부터 전해진 원죄, 곧 마음의 죄성은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더욱 짙어졌지요. 또한 사람들이 하나님과 멀어져 온갖 죄를 범하니 그 마음은 점점 더 죄로 물들고 말았습니다. 이런 오늘날의 사람들에 비하면 처음 이 땅에 내려올 당시 아담과 하와는 그 마음이 선했습니다.
   그랬기에 이들은 이 땅에 살면서 지난날의 잘못을 철저히 회개합니다. 전에는 에덴동산에서 편히 거하며 풍성하게 맺혀 있는 과실을 따 먹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수고하여 땀을 흘려야 먹고 살 수가 있습니다. 하와에게는 잉태하는 수고가 더해졌지요. 죄로 인한 눈물과 슬픔을 알게 되고 아들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고통도 겪어야 했습니다.
   이런 삶을 살면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하심 속에 살던 지난날을 얼마나 그리워했겠습니까? 에덴동산에 살 때는 자신들이 항상 누리는 축복이 당연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행복한지도 모르고 감사할 줄도 몰랐습니다. 이 땅에 내려와 살아본 후에야 비로소 그때가 얼마나 좋았는지를 깨닫게 되지요. 그러니 예전에 받은 사랑에 대한 감사가 날로 새롭고, 하나님께 불순종했던 자신들의 과거를 철저히 회개하며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 회개를 받으셨고 그들이 이 땅의 삶을 마친 후에는 천국에 들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간신히 구원받아 낙원에 들어가게 되었지요.
   
   2) 낙원밖에 갈 수 없었던 이유
   아담과 하와가 낙원에 들어간 이유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받고도 그 사랑을 저버린 것이 결코 작은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먹을 줄 아셨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면서도 친히 기르시고 가르치시며 사랑을 주셨지요. 만물 가운데 큰 권세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순종하기를 진정으로 원하셨지요. 그런데 그 사랑을 저버림으로써 하나님의 마음을 심히 아프게 했으니 그저 구원받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들이 낙원밖에 갈 수 없었던 또 다른 이유는, 이들의 불순종으로 인해 인류에게 인간 경작의 문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의 죄를 회개했습니다. 또한 선악과를 먹은 것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예지 예정하시는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인간 경작의 섭리 가운데 허락된 일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이 고통 가운데 살다가 사망으로 가게 된 것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공의에 따라 계수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아담과 하와가 낙원 이상의 더 좋은 천국을 소유하거나 영광스러운 상급을 받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2. 가인의 구원 여부
   
   1) 동생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신 하나님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뒤 아담과 하와는 이 땅에서 자녀들을 낳았습니다. 첫째 아들은 가인이었고, 둘째 아들은 아벨이었지요. 이들이 장성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지냅니다. 이때 가인은 농사지어 거둔 땅의 소산을 제물로 드렸고 아벨은 자기가 기른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제물로 드렸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않으셨지요.
   하나님께 제사를 지낼 때는 반드시 영계의 법칙에 따라 ‘죄를 사할 수 있는 피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소나 양 같은 짐승을 제물로 제사해 드렸습니다. 신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께서 화목제물이 되어 피 흘려 주셨지요.
   아담과 하와는 이러한 영계의 법칙을 알았고 자녀들에게도 분명히 가르쳤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긴 세월 동안 동행했고, 이 땅으로 내려온 후에도 제한적으로나마 하나님과 교통하며 필요한 것을 배웠습니다.
   아벨은 부모님의 가르침에 순종하여 양의 첫 새끼와 기름으로 피의 제사를 정성껏 드렸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순종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적당히 땅의 소산을 드렸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예물을 받으신 까닭은 그가 믿음으로 순종하여 영적인 제사를 지냈기 때문입니다(히 11:4). 그러나 가인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것이 아니라 임의대로 제사법을 변질시켰습니다. 중심으로 영적 제사를 지낸 것이 아니라 이처럼 적당히 형식을 차렸을 뿐이기에 하나님께서 그 제물을 받지 않으신 것입니다.
   오늘날로 설명하면, 주일에 교회 와서 앉아는 있는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가령 ‘교회에 나왔으니 주일을 지켰다.’ 하고 안주하며 딴생각하거나 졸음으로 빠져버리면, 이는 형식만 차리고 정작 중요한 마음과 정성은 드리지 않았기에 가인처럼 육적인 제사를 지낸 것이지요. 그러니 하나님께서도 이런 예배를 받으실 수가 없습니다.
   
   2) 가인에게도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하나님
   가인은 하나님께서 동생의 예물은 받으시고 자신의 예물을 받지 않으시자 자기 잘못을 회개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분하여 안색이 변합니다. 그리고 아벨에게 감정을 품고 있다가 결국 아벨을 쳐 죽이고 말지요.
   인간 경작이 시작된 지, 한 세대 만에 벌써 미움과 시기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런 육신의 일들이 장성하여 살인이라는 죄, 곧 육체의 일로까지 나타났지요. 가인은 순간적인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이렇게 끔찍한 악을 행한 것이 아닙니다. 감정을 품고 있다가 계획적으로 자기 혈육, 곧 친동생인 아벨을 살해했지요. 그렇기 때문에 그 죄가 결코 가볍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죄악의 속성을 깨달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죄악을 한 번 허용하기 시작하면 이것이 얼마나 신속하게 들어와 마음을 더럽히는지 알 수 있지요. 그러므로 아무리 작은 죄나 악이라도 ‘이 정도쯤이야.’ 하며 허용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된 가인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도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물론 가인의 죄가 작은 것은 아니지만 가인의 양심 또한 오늘날에 비하면 깨끗한 상태였지요. 가인은 부모를 통해 하나님을 알았고,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원죄가 많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징계를 통해 죄를 뉘우치고 회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처럼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된 가인에게도 긍휼을 베풀어 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인은 범죄의 보응으로 땅에서 저주받아 유리하는 자, 곧 정처 없이 떠도는 자가 되었습니다. 저주받아 지면에서 쫓겨나게 된 가인은 자신의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다며 하나님께 자비를 구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며 죽음을 면하게 하는 표를 주셨지요.
   이 표로 인해 생명을 보존할 수는 있었지만, 가인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이 표를 보면서 두고두고 자신의 범죄를 후회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징계로 인하여 죄를 회개하고 구원에는 이르렀으니 축복이지요. 가인 또한 아담과 하와처럼 간신히 구원받아 낙원에 들어갔습니다.
   
   3) 간신히 구원받아 낙원에 들어간 이유
   선한 세대에 살면서 살인을 했다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기 때문에 가인은 좋은 천국에 갈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가인은 자신과 한 핏줄을 받아 난 자기 형제를 죽이는 악을 행했지요. 이런 마음을 가진 가인이었기에 회개했다고 해도 공의에 따라 낙원 이상의 천국에 들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가인은 회개한다고는 했지만, 죄에 대한 징벌이 두려워서 회개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중심을 다해 회개한 것은 아니었지요. 이후에라도 자신의 악한 마음을 선하게 변화시켰다면 좀 더 좋은 결말을 맞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온 힘과 정성을 다하는 삶을 살았다면 더 좋은 처소와 상급을 받았을 수도 있었지만, 그럴 만한 중심은 아니었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또 큰 권세를 누리며 부족함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천국의 낙원, 곧 가장 낮은 처소에서 천국 백성으로 살아가게 되었지요. 과연 이들은 에덴동산의 삶과 낙원의 삶 중 어느 삶에서 더 큰 행복을 느낄까요?
   바로, 이 땅에서 경작을 통해 죄와 사망의 고통을 뼈저리게 체험한 후 받은 낙원의 삶입니다. 이제는 자신들을 향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경작’이라는 과정을 통해 지난날의 과오를 오히려 더 귀한 선물로 바꾸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에덴동산에 살던 때의 아담과 하와는 아직 사망의 고통을 알지 못하므로 불순종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원수 마귀 사단의 종 된 삶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 것인 줄을 압니다. 구원받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들어와서 지킴 받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삶이 얼마나 복된 줄도 잘 아시지요.
   그러므로 순간에 어리석은 선택으로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결말을 낳는 일이 결코 없으시기를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에게도 이 경작의 시간이 최고의 축복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3-03-05 욥기강해(37) - 엘리바스의 두 번째 변론(3) - 이수진 목사 욥기 15:17-25
지난 시간에 이어 엘리바스의 두 번째 변론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상담할 때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씀드리겠습니다.

   1. 선진들의 말을 인용하여 욥을 깨우쳐 주려는 엘리바스
   
   “내가 네게 보이리니 나를 들으라 내가 본 것을 설명하리라 이는 곧 지혜로운 자들이 그 열조에게서 받아 숨기지 아니하고 전하여 온 것이라 이 땅은 그들에게만 주셨으므로 외인은 그들 중에 왕래하지 못하였었느니라”(욥 15:17-19)
   엘리바스는 그동안 자신의 지식을 총동원해 욥을 설득해 보았지만 욥이 귀담아 듣지 않자 이제는 선진들의 말을 인용하겠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땅은 하나님께서 선민에게 정하여 주신 땅이므로 이방인은 그들 중에 왕래하지 못하게 가르쳤습니다(요엘 3:17). 또 하나님께서는 선민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신 뒤, 장차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이방인들을 다 진멸하라 명하셨습니다. 만일 이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 땅에 거하던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시와 올무가 될 것이라 말씀하셨지요(신 7:16).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민족과 함께 거한다면 그들이 섬기는 우상이나 그들의 잘못된 관습과 악행에 물들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진멸하라 명하신 것입니다. 우리 사람은 환경에 영향을 쉽게 받으며 그로 인해 멸망으로 가기 때문에 사랑의 하나님께서 미연에 막으시는 것이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 선지자와 함께 가나안 땅으로 가는 여정에서 이방 나라들과 싸워 대승하였습니다. 이 일을 보고 두려워하던 모압의 왕 발락은 하나님과 교통하는 발람이라는 사람을 불러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게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저주하지 못하게 하시며 반대로 축복의 말씀만 주셨지요.
   이에 발람은 꾀를 내어 이스라엘에 저주가 임할 일을 행하게 합니다. 바로 모압인들의 모임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초대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압 여인들과 음행하며 우상 앞에 절하였고, 이로 인해 염병이 임해서 2만 4천 명이나 죽었지요.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큰 권능을 체험했음에도 막상 이방인들과 만나 그들의 문화를 접하니 이내 변개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방 민족과의 통혼을 엄격히 금하신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여 우상을 섬기지 않고 말씀 안에 살 때는 형통한 길로 인도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 이방인과 연합하며 우상을 섬길 때에는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고 포로로 잡혀가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요.
   이방인과 연합하지 말라는 말씀은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과 짝하지 말고 진리 안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세상과 짝하여 비진리 속에 악을 행하며 살아갈 때는 사단의 역사를 받고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엘리바스가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을 비유로 드는 것은 욥을 깨우쳐 주기 위함입니다. 욥이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으니 시험 환란이 온 것이라고 혹독하게 질타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욥을 악인이요 강포자라 판단하는 엘리바스
   
   “그 말에 이르기를 악인은 그 일평생에 고통을 당하며 강포자의 햇수는 작정되었으므로”(욥 15:20)
   강포자란 ‘우악스럽고 사나운 자’를 말합니다. 엘리바스는 선민 이스라엘과 함께할 수 없는 이방인들처럼, 욥도 그러한 악인이요 강포자에 속한다고 비유하여 말한 것이지요. 즉 욥은 악인이요 강포자 중 한 명이기에 하나님께서 욥을 어떻게 처리하실 것인지 이미 작정이 다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악인이 일평생에 고통을 당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시 1:6), “너는 행악자의 득의함을 인하여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잠 24:19-20) 말씀했지요. 반드시 선악 간에 심판이 있고, 악인은 잠시 형통해 보여도 결국은 영원한 지옥불에 떨어질 것이므로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 귀에는 놀라운 소리가 들리고 그 형통할 때에 멸망시키는 자가 그에게 임하리니 그가 어두운 데서 나오기를 바라지 못하고 칼날의 기다림이 되느니라”(욥 15:21-22)
   그동안 욥의 귀에는 재산이 다 무너지는 소리, 자녀들이 죽었다는 소리, 사육하던 짐승들이 죽어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내가 자기를 버리고 업신여기는 말을 퍼부었고, 일가친척도 멀리했습니다. 더구나 몸에는 악창이 나서 신음소리가 물이 쏟아지는 것처럼 흘러나왔고 탄식 소리가 끊이지 않았지요. 욥은 계속하여 놀라운 소리만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일들이 일어나기 전에는 욥이 얼마나 형통함 속에 살았습니까? 그러나 시험 환란이 닥치니 형통함은 일시에 무너져 내리고 욥은 죽음 직전까지 이르고 말았습니다. 엘리바스가 보기에는 이처럼 엄청난 시험 환란 속에 빠진 욥은 다시 나올 길이 없습니다.
   여기서 칼날의 기다림이 되었다는 것은, 욥이 지금 많은 사람들로부터 멸시 천대와 조롱을 받으며 심장을 칼로 도려내는 듯한 아픔을 당하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즉 칼날의 기다림이 되고 있는 상태이기에 어두운 곳에서 나오기를 바랄 수도 없는 처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욥아! 너는 악인이요 강포자이기에 형통한 것 같았으나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저주를 받았고, 이제는 칼날의 기다림이 되었으니 시험 환란에서 구원받을 것을 바라지도 말아라. 악인이나 강포자는 멸망이 작정되어 있는 것이다. 이제 사람들이 너를 조롱하고 저주하고 찌르는 일만 남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욥은 스스로 의인처럼 살아왔다고 생각하는데 친구로부터 악인이요 강포자라고 혹독하게 매도하는 말을 들으니 그 마음이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더구나 성령 시대가 아닌 당시에, 한 사람도 아니고 세 친구가 연달아 공격을 하니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를 수밖에 없지요. 그만큼 욥의 친구들의 잘못과 책임도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 올바른 상담을 하려면 성령의 주관을 받아야
   
   “그는 유리하며 식물을 구하여 이르기를 어디 있느냐 하며 흑암한 날이 가까운 줄을 스스로 아느니라 환난과 고통이 그를 두렵게 하며 싸움을 준비한 왕처럼 그를 쳐서 이기리니 이는 그 손을 들어 하나님을 대적하며 교만하여 전능자를 배반함이니라”(욥 15:23-25)
   욥은 부유한 사람이었으나 저주받아서 망해 버렸고, 결국 어둠 가운데서 나오지 못할 형편에 처했으니 이제는 떠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구걸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흑암한 날이 가까운 줄을 스스로 안다”는 것은, 흑암의 권세에서 나오지 못하여 방황하다가 결국 “나는 도저히 회복할 길이 없구나. 나는 이제 끝장이구나…” 하며 스스로 앞날이 없음을 알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 얼마나 혹독하고도 무서운 저주의 말입니까? 엘리바스가 욥에 대하여 감정이 상하고 악에 받치니 해서는 안 되는 말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욥은 환난과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욥 9:34-35). 욥의 이러한 상황을 엘리바스는 “환난과 고통이 그를 두렵게 한다”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싸움을 준비한 왕처럼 그를 쳐서 이긴다”라고 했는데, 만일 왕이 수년 동안 철저히 싸움을 준비한다면 얼마나 수월하게 상대를 쳐서 이기겠습니까? 이는 결국 욥이 이길 수 없는 환난과 고통 속에 빠져 있음을 표현하는 말이지요.
   욥의 친구들이 보기에 욥은 하나님을 대적해 왔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다툴 때 주먹이나 손가락으로 삿대질을 하듯이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대적하는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욥이 교만하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으며 전능자를 배반했고, 그러니 지금과 같은 환난과 고통 속에 빠지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엘리바스의 말처럼, 사람이 하나님 말씀에 ‘아멘’ 하지 않고 불순종하는 것은 바로 내가 살아있고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근본 하나이신 분이지만 ‘자기’가 없으셨고 하나님 뜻에 온전히 순종만 하셨습니다(고후 1:19). 결국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온전히 순종하심으로 구원의 섭리를 이루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께서 본을 보이신 것처럼 하나님 말씀이라면 환경과 조건에 상관없이 ‘예’와 ‘아멘’으로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엘리바스가 욥에게 “네가 교만해서 하나님께 불순종했고 하나님을 배반했다”고 하는 말은 욥에 대한 판단임을 알아야 합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이 하는 말만 가지고 욥을 책잡아서 ‘넌 악인이다, 강포자다, 교만하다.’라고 판단 정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욥의 중심은 그렇지 않았고, 또 하나님을 대적할 마음도 없기 때문에 욥은 친구들의 말을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욥은 친구들이 욥에 대해 알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의 말이 자신을 이해시키지도 못했고, 또 욥의 생각과 뜻에 맞지 않기 때문에 끊임없이 변론한 것입니다. 친구들이 너무 엉뚱한 말을 하니 욥은 결국 그들을 상대하지 않고 하나님과 변론하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욥이 이처럼 친구들을 무시할수록 친구들은 더욱 욥을 오해하며, 판단에 판단을 더해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서로 간에 감정의 벽도 점점 두꺼워져 갈 수밖에 없지요.
   전도서 5:2에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말씀합니다. 하나님만이 사람의 중심을 보시므로, 내 편에서 상대의 마음을 분명히 읽지 못할 때에는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의 종이나 일꾼이 양떼와 상담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겉으로 드러나는 말과 행동만을 보고 상대를 깨우쳐 준다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려 한다면, 상대는 더욱 마음 문을 닫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말씀의 지식이 많고 언변이 뛰어나다 해도 그것으로 상대에게 변화의 역사를 줄 수 없습니다(고전 4:20).
   상대에게 바른길을 깨우쳐 주고 회개시키려면 무엇보다도 성령의 음성을 듣고 주관을 받아서 상담해 주어야 합니다(고전 2:10). 우리가 마음을 진리로 일구면 각 상황에 맞는 답이 무엇인지 성령의 음성을 통해 밝히 알 수 있습니다. 상대의 마음과 생각도 성령께서 알려 주실 수 있고, 상대의 믿음의 분량에 맞춰서 답을 주는 것도 성령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마음을 진리로 일구어 성령의 음성을 듣고 성령의 주관을 받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3년 3월 5일 주일)
* 사회: 조대희 목사
개회찬송 34장 1절
성시교독 47번
찬송 340장
기도 김진홍 장로
성경봉독 누가복음 16:22~26
찬양 주의 사랑 안에서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지옥(6)
당회장님
찬송 만민 찬양 44장
주일 저녁예배 (2023년 3월 5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김영석 목사
대표기도 장정미 전도사
성경봉독 욥기 15:26~35
특송 심찬미 자매
설교 욥기 강해(38)-욥을 향한 엘리바스의 저주
당회장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
수요 예배 (3월 8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이풍근 목사
대표기도 권영남 전도사
성경봉독 욥기 1:21~22
설교 욥기 강해를 들으면서
문태규 목사
금요 철야예배 (3월 10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김상휘 목사없음
대표기도 이영인 전도사
성경봉독 요한계시록 20:6~10
찬양 샬롬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요한계시록 강해(68)
당회장님
새벽 예배
인도 윤영자 전도사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3-03-05 2023년 3월 첫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새로 나오셔서 등록해 주신 분들과 인터넷으로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교회 소식

● 당회장님의 저서 「권능」이 보스니아어와 불가리아어 전자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 당회장님의 저서 「지혜」가 오디오북으로 발간되어 교보문고와 네이버를 통해서 판매되고 있습니다.

● 당회장님 신앙칼럼이 「기독선교신문」, 「시사뉴스」 등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만민뉴스 한국어(988호), 영어(738호), 중국어(612호), 스페인어(299호) 신문을 온라인으로 발행하였습니다. (만민뉴스 홈페이지 www.manminnews.com)

● 권능의 무안단물 23주년 기념 감사예배 및 축하공연이 오늘 오후 3시 무안만민교회에서 있습니다.
※ 강사: 만민기도원 이복님 원장
※ 축하공연: 예능위원회

● 3월 은사집회가 3월 24일 금요철야예배 시 당회장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님 인도로 있습니다. 환자접수는 3월 6일(월)~12일(주일)까지 받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교회 홈페이지와 모바일앱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 2023년 7가지 기도제목, 은사집회를 위한 작정 다니엘 철야가 3월 6일(월)~26일(주일)까지 만민기도원 이복님 원장님의 인도로 진행됩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참석 바랍니다.
준비찬양은 오후 8시 50분부터 시작합니다.

● 교회 전도지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 발간되었습니다. 오늘부터 기획실과 교회 안내실 앞에 비치되어 있습니다. 성도님들께서는 전도에 많은 활용바랍니다.

● 서울 지방회 주최 2023년 전도사, 장로 고시가 3월 9일(목) 오전 9시부터 신학교 3층 회의실에서 있습니다.

● 당회장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고) 교보문고, 영풍문고, 북스리브로, 예스24, 인터파크 등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자책(e-book) 및 오디오북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지교회 소식

광주만민교회 창립 27주년 기념예배 및 명예신학박사 학위 수여식/
3월 12일(주일) 오후 3시 광주만민교회
※ 강사: 강승표 목사 ※ 명예신학박사 학위 대상자: 박형렬 목사, 문태규 목사


● 감사드립니다.

강단헌화/ 양완숙 집사(3가나안)(꽃꽂이 봉사: 예배국 꽃꽂이부, 시설관리국)
주간 성경구절
2024-03-10
[주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마 13:17]
2024-03-11
[월요일]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찌어다 [고전 4:1]
2024-03-12
[화요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마 18:19]
2024-03-13
[수요일]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눅 8:15]
2024-03-14
[목요일]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케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단 12:10]
2024-03-15
[금요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벧전 4:14]
2024-03-16
[토요일]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딤후 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