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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공과
2025-01-03 제1과예수님의 겉옷을 나누고 속옷을 제비 뽑게 하신 섭리 요한복음 19:23~24
읽을말씀 : 요한복음 19:23~24  |  외울말씀 : 마태복음 24:34 | 참고 말씀: 시편 22:18
교육목표 : 예수님의 겉옷을 네 깃으로 나누고 속옷은 찢지 않고 제비 뽑은 섭리가 이스라엘의 역사와 어떠한 연관성이 있는지 알아본다.


   예수님은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온몸에 심한 채찍질을 당해 피투성이가 된 채 사형집행 장소인 골고다 언덕에 도착하셨습니다. 이때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뒤 겉옷을 네 깃으로 나누어 갖지요. 그런데 예수님의 속옷은 나누지 않고 제비를 뽑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깊은 섭리가 담겨 있습니다.
   
   
   1. 예수님의 겉옷을 네 깃으로 나누게 하신 섭리
   
   요한복음 19장 23~24절에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군병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겉옷과 속옷에 대해 자세히 기록을 남기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서기 70년 이후 진행된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기에 ‘예수님의 겉옷’은 이스라엘 또는 유대 민족을 지칭합니다.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후, 겉옷을 취하여 네 깃으로 나눔으로써 그 옷의 형체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망하여 없어질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군병들이 각각 한 깃씩 얻은 것처럼 겉옷 조각은 남아 있었습니다. 이는 나라는 없어져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남아 있을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겉옷이 네 깃으로 나뉜 것처럼 결국 이스라엘은 서기 70년에 멸망하였고 백성들은 동서남북 세계 곳곳으로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유대인이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이유입니다.
   
   예루살렘이 로마의 티투스에게 함락될 때 로마군은 예루살렘 성벽을 파괴하고 성전에 불을 질렀습니다. 성전이 불에 타 금으로 입힌 것이 녹아내려 벽과 바닥에 스며들자 군인들은 그 금을 긁어내고자 성전의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파괴하였습니다.
   그리고 임신한 여인의 배를 칼로 가르고 젖먹이를 어미 품에서 빼앗아 죽이는 등 무자비한 살상을 서슴없이 행했습니다. 이때 살아남은 자들은 로마의 포로가 되고 타국의 노예로 끌려갔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큰 핍박과 환난을 당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7장을 보면 빌라도가 민란이 두려워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언도하면서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고 합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라고 외쳤습니다.
   이 고백대로 유대인들은 무수한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서기 70년에 예루살렘이 로마군에게 함락될 때에 무려 110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되었고, 2차 세계대전 때는 약 600만 명의 유대인이 나치에 희생되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벌거벗겨 십자가에 처형하면서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라고 한 말이 올무가 되어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들도 벌거벗겨 죽임을 당하는 엄청난 환난이 임했습니다.
   
   
   2. 예수님의 속옷을 호지 않고 통으로 짰다는 말씀의 의미
   
   요한복음 19장 23절에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말씀합니다. 속옷을 호지 않았다는 것은 여러 겹의 헝겊을 겹쳐 꿰매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속옷에 대해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인지, 밑에서부터 짠 것인지 등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속옷에 대해 이처럼 세밀하게 기록을 남기신 까닭은 무엇일까요? 이는 이스라엘이 이방 민족과 섞이지 않은 순수 단일민족임을 나타내 주기 위함입니다.
   성경을 살펴 보면 인류의 조상은 아담이고, 믿음의 조상은 아브라함이며, 이스라엘의 조상은 야곱이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을 아브라함이라 하지 않고 야곱이라 한 것은, 야곱에 의해 열두 지파가 형성되고 그들이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세웠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5장 10~11절에 “네 이름이 야곱이다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 생육하며 번성하라 국민과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말씀합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야곱의 열두 아들에 의해 기틀이 형성되어 순수한 단일민족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르호보암 때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단되고 말지요. 그 후 북이스라엘은 이방 민족과 혼인하여 혼혈족이 됩니다. 하지만 남유다는 이방 족속과 섞이지 않고 계속 순수 혈통을 이어 왔습니다. 바로 이들이 우리가 ‘유대인’이라 부르는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속옷을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하신 말씀은 이스라엘이 야곱에 의해 형성된 이후 지금까지 이방 민족과 섞이지 않은 순수한 단일민족임을 나타냅니다.
   
   
   3. 예수님의 속옷을 찢지 않고 제비 뽑은 섭리
   
   속옷은 사람의 마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왕이시니 예수님의 속옷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하여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오직 참 신이신 하나님 한 분만을 첫째로 섬겨 왔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속옷을 찢지 않았다는 것은, 비록 이스라엘 민족이 나라는 빼앗기더라도 이스라엘을 이루는 유대인의 민족정신, 즉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만은 찢어지지 않고 보전된다는 뜻입니다. 설령 이스라엘이 멸망하여 나라의 형체가 없어진다 해도 이들의 마음 안에 계신 하나님, 즉 하나님을 향한 마음만은 이방인들이 없앨 수 없음을 성경에서 예언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변함없는 중심을 소유한 민족이기에 선민으로 택하시고, 그 땅에 예수님을 보내셨으며 마지막 때 섭리를 이루고 계십니다. 오늘날도 철저히 율법을 지키려는 이스라엘인들의 변함없는 중심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의 변함없는 중심을 이어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서기 70년에 멸망당했으나 오랜 세월이 지난 1948년에 독립하여 전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독립한 후 아주 짧은 기간에 선진국가로 떠오르면서 이스라엘 민족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확증하였지요.
   로마 군병이 예수님의 속옷을 찢을 수 없었듯이 어떤 이방인도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빼앗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독립하여 하나님 선민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4. 성경에 예언된 이스라엘의 역사와 마지막 때
   
   예수님은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하셨습니다(마 24:32~34).
   이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날의 징조에 대한 답변으로 깊은 영적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서 ‘무화과나무’란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불면 곧 겨울이 오고, 무화과나무가 연해지면 여름이 가까워 옴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망하여 없어졌다가 다시 독립하거든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이른 줄 알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대’가 얼마의 기간을 의미하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틀림없이 이루어질 일로서, 이미 이스라엘의 독립을 보았으니 때가 가까이 이르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더욱 깨어 기름 준비하고 신부단장 잘하여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당당히 맞이할 수 있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수님의 ( )은 이스라엘 또는 유대 민족을 지칭한다.
   
   2. 로마 군병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후 ( )을 취하여 네 깃으로 나눔으로써 그 옷의 형체가 없어져 버렸다. 이것은 ( )이라는 나라가 망하여 없어질 것을 의미한다.
   
   3. 예수님의 ( )을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하신 말씀은 이스라엘이 야곱에 의해 형성된 이후 지금까지 이방 민족과 섞이지 않은 순수한 ( )임을 나타낸다.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상)> 책자 84~91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티투스’는 어떤 인물일까?
   서기 70년 유대 전쟁의 로마 최고 지휘자로서 예루살렘을 함락시켰다.
   그는 화산 대폭발로 폼페이 시 전체가 화산재에 매몰되고, 로마의 대화재와 페스트 만연 등의 불행한 사건 속에서 로마의 재건과 구제사업에 전력했다. 또한 전 황제가 착공한 콜로세움을 완성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지난 주 설교요약
2024-12-29 팔복(5) - 이수진 목사 마 5:7
오늘은 <팔복>중 다섯 번째로 긍휼히 여기는 자에게 임하는 축복에 대하여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1.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본문 마태복음 5장 7절에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했습니다. ‘긍휼히 여긴다.’의 문자적인 뜻은 ‘가엾게 여긴다, 불쌍하게 생각한다.’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긍휼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 양선의 마음과 비슷합니다. 양선이란, 마태복음 12장 19-20절에 나온 대로 “다투지 아니하고 들레지 아니하고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는 마음”이지요. 성령의 열매 중에 양선의 열매가 맺힘으로 양선이 행함으로 나타나는 것과 거기에 징계의 행함이 더해진 것이 바로 긍휼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리의 항목들이 우리 마음에 맺혀 있는 것이고 팔복은 마음에 맺힌 성령의 열매들을 행함으로 나타내는 것이라 했습니다. 이런 행함으로 삶의 매 순간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으로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긍휼
   
   1) 용서의 긍휼
   양선이란 다투지도 들레지도 않고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는 예수님의 마음이라 했지요. 여기서 상한 갈대를 꺾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 해도 아직 양심이 화인 맞지 않고 구원받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에 대해 참고 기다리는 것을 말합니다. 악을 행했다 해서 즉시 징벌하시는 것이 아니라 어찌하든 구원에 이르기까지 참아주시는 주님의 마음이지요.
   또한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는다는 것은 성령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진리대로 살지 못한다 해서 즉시 그를 버리지 않는 것을 나타냅니다. 아직 온전치 못하여 범죄하는 사람이라 해도 어찌하든 성령으로 깨우치고 진리 가운데 변화되어 갈 수 있도록 끝까지 인내하며 인도하시는 것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마음을 이루어, 누가 여러분에게 악을 행해도 이해하고 용서하며 바른길로 인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긍휼입니다. 자기 유익을 좇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그의 유익을 좇아 주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이해할 수 있고 긍휼을 베풀 수 있는 것이지요.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긍휼히 여김을 받습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용서의 긍휼을 받으려면 우리도 형제의 잘못을 용서해야 한다 말씀하십니다. 주기도문에도 보면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했지요.
   나에게 범죄한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풀 때라야 내가 범죄한 것에 대해서도 하나님께 긍휼히 여겨 달라고 구할 수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주기도문은 매일 하면서 형제를 용서하지 못하고 긍휼을 베풀지 못한다면 아버지 앞에 드리는 기도를 말과 혀로만 하는 것이니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이 되지요.
   마태복음 18장에도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께 여쭙기를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하니 예수님께서는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하셨지요. 몇 번인가, 헤아려서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히 용서하고 긍휼을 베풀어 주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 크신 긍휼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의 죄를 사해 주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지옥에 떨어져 세세토록 고통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값없이 용서받고 구원을 얻었지요. 우리도 마땅히 상대를 용서하고 긍휼히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악을 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믿음의 형제가 악을 행하여 큰 어려움을 당하게 하는 일도 있지요. ‘세상 사람도 아니고 함께 신앙생활 하는 형제가 어찌 나에게 이럴 수 있는가.’ 하고 심히 실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럴 때도 긍휼의 마음이 있다면 미워하거나 감정을 품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 앞에서 합당하지 않은 것은 돌이키도록 권면하고 진리로 변화되기까지 기도해 주어야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잘못을 모른 척하고 넘어가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분별하고 그가 받을 수 있도록 진리로 가르치는 것은 필요하지요. 그러나 상대의 허물을 말하고 권면할 때도 상대가 악을 행한 것이 내 틀과 의에 맞지 않으므로 불편한 가운데 찌르는 것을 사랑의 권면인 것처럼 포장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내가 높은 마음이 되어 상대를 가르치고 내 뜻대로 주관하려고 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는 긍휼로 그를 위해 대신 죽어주기라도 할 수 있는 사랑의 마음으로 기도하며 권면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2) 징계의 긍휼
   얼핏 생각하기에 용서와 징계는 반대되는 말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징계의 긍휼은 미움이나 정죄함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하는 징계이기 때문에 상대를 변화시키며 살릴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6절에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했고, 8절에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했지요. 사랑받는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징계도 따르는 것입니다. 징계해서라도 진리로 행할 수 있게 하고 구원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가령 여러분에게 아들이 있는데 부모의 것을 도적질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잘못을 고백하면서 “다시는 안 그럴게요. 용서해 주세요.” 눈물로 회개한다면 여러분은 어찌하겠습니까? 당연히 따뜻하게 안아주며 “용서할 테니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아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용서의 긍휼을 베푸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녀가 말로는 회개한다 하면서 계속하여 잘못을 범한다면 부모 입장에서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권면하고 책망할 것입니다. 그래도 듣지 않으면 징계해서라도 깨우쳐 주어야 하지요. 사랑하는 자녀이기 때문에 징계해서라도 돌이키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웃집 자녀가 자신의 물건을 도적질했다면 어찌합니까? 선한 사람은 이때도 용서하고 긍휼히 여기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랫동안 그 잘못을 기억하며 수군거리고 정죄하는 눈으로 바라보지요. 징계를 한다 해도 사랑의 징계, 긍휼의 징계가 아니라 미움과 악한 감정으로 징계합니다.
   아이가 잘되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내 손해를 풀고 기분 나쁜 것을 갚기 위해 아이를 책망하며 심지어는 경찰서에 보내 죗값을 치르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미움의 징계가 아니라 사랑의 징계를 하는 것이 바로 긍휼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형제에게 사랑의 징계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형제가 범죄하는 것을 볼 때 마음에서 정죄하여 여기저기 전하고 수군거린다면 사랑 없는 이웃집 부모와 같은 마음이지요.
   또한 성경에 보면 범죄한 형제에 대하여 진리로 권고하고 징계하는 과정이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18장 15-17절에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하셨지요. 이렇게 하는 것이 징계의 긍휼에 속하는 것입니다.
   
   3) 그 밖의 긍휼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한 자를 긍휼히 여기는 것입니다. 가령, 형제가 가난으로 인해 고통받는다면 말로만 “참 안 됐다. 불쌍하다.” 하는 것이 아니라 내 것을 나누어 주는 것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긍휼이지요.
   어떤 사람은 ‘도와주고 싶지만, 가진 것이 없는데 어떻게 남을 도와주는가.’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만약 자녀가 굶고 있다면 내일 먹을 것이 없다 해도 지금 있는 것을 자녀에게 나누어 줄 것입니다. 믿음의 형제에게도 이렇게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긍휼을 베풀 때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잠언 19장 17절에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주시리라” 했고, 잠언 11장 25절에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점은 우리가 구제를 한다 해도 범죄함으로 하나님께 징계받아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 구제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구약 성경 요나서에 보면 고의적으로 불순종하여 연단 받는 사람을 도울 때 그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징계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도우면 긍휼을 베풀었다, 하면서도 오히려 어려움을 겪게 되므로 성령의 음성을 잘 들어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세상에서 실패한 사람, 병든 사람, 낮아지고 소외된 사람, 구원받지 못한 불신자들에게도 긍휼을 베풀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은 반겨 주고 가까이 하지만 실패한 사람이 왔을 때는 등을 돌리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몇 번 도와주다가도 반복되면 외면하고 푸대접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믿음의 형제가 실패하여 낙심했다 하면 결코 외면하고 멸시해서는 안 됩니다. 항상 따뜻한 사랑의 마음으로 맞아 줄 수 있어야 하지요.
   병든 사람을 긍휼히 여김으로 그를 위해서 기도해 주어야 하고, 믿지 않는 사람을 긍휼히 여김으로 핍박하고 욕한다 해도 전도해야 합니다. 그가 진리를 몰라서 핍박하는 것이요, 그를 긍휼히 여겨 전도하지 않으면 지옥불에 떨어질 것이니 전도해야 하지요. 또한 가까이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이 나라와 전 세계에 진리 안에 살지 못하는 무수한 영혼들을 위하여 항상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긍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복음 13장 34절에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말씀했습니다. 여러분이 이와 같이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될 때 여러분의 걸음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발해집니다. 마치 황무지에 장미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이 마지막 때 험한 세상에서도 포근하고 따뜻한 주의 사랑이 꽃피게 되므로 많은 사람이 생명과 위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도 그 행함을 기억하시고 여러분을 긍휼히 여기시며 범사에 축복을 주십니다. 마음에 긍휼을 이루고 행하는 성도님들이 되어 사랑과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 여러분 자신도 큰 긍휼과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4년 12월 29일 주일) 송년주일
* 사회: 임학영 목사
개회찬송 3장
성시교독 53번
찬송 460장
기도 노영진 목사
성경봉독 마태복음 5:8
찬양 존귀, 영광과 찬양을 주님께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팔복(6)
당회장 이수진 목사
찬송 만민 찬양 161장
주일 저녁예배 (2024년 12월 29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정진영 목사
대표기도 김영순 전도사
성경봉독 고린도전서 3:10~15
특송 김진희 권사
설교 각 사람의 공력
당회장 이수진 목사
수요 예배 (1월 1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장성식 목사
대표기도 성기용 전도사
성경봉독 누가복음 8:19~21
설교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
이미영 목사
금요 철야예배 (1월 3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조혁희 목사
대표기도 김상휘 목사
성경봉독 창세기 1:20~23
찬양 샬롬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창세기 강해(40) - 창조 다섯째 날②
이재록 원로목사
새벽 예배
인도 장성식 목사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4-12-29 2024년 12월 넷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새로 나오셔서 등록해 주신 분들과 인터넷으로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당회장님 동정

● 12월 25일(수) 성탄 축하예배에 설교하셨습니다.

● 12월 27일(금) 원로목사님 1주기 추모예배에 설교하셨습니다.

● 오늘 저녁예배 후 사무연회를 인도하십니다.

● 12월 31일(화) 저녁 송구영신예배에 설교하십니다.

● 1월 2일(목) 교회 직원 시무식에 참석하십니다.

● 당회장님의 신앙칼럼이 「동아일보」, 「중앙일보」, 「기독선교신문」, 「서울뉴스통신」 등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교회 소식

● 원로 목사님의 저서 오디오북이 교보문고 종교부문 12월 2주차 주간베스트셀러 1위와 2위에 올랐습니다. <참된 복을 좇는 자>는 1위를 차지하였고, <거역된 삶과 순종의 삶>은 2위에 올랐습니다.

● 오늘 저녁예배 시 2024년 감사패 수여식이 있습니다.
※ 수상자: 사무국장 김종태 장로

● 2025년 정기 사무연회가 오늘 저녁예배 후 위임받은 대표자들이 참석하여 3층 성전에서 있습니다. 대표자들께서는 저녁예배를 3층 성전에서 드리시기 바랍니다.
※ 대표자: 당회원, 원로회원, 주의 종, 시무장로, 남여 지역장 전원, 남여 조장 연합회 및 구역장 연합회 임원, 각 선교회 선교회장단 이상

● 송구영신예배가 12월 31일(화) 오후 11시에 있습니다.
금년 한 해 동안 각 분야에서 수고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2025년 새해에도 주님의 은총이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도약 2025년 7가지 기도제목, 치유집회를 위한 「작정 다니엘 철야」가 2025년 1월 6일(월) ~ 1월 26일(주일)까지 당회장 이수진 목사님의 인도로 진행됩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참석 바랍니다. 준비찬양은 오후 8시 40분부터입니다.

● 금주 주보 광고 접수를 오늘 오후 6시까지 해 주시기 바랍니다.

● 2025년 1월 추천도서는 「사랑은 율법의 완성」 입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우림북 홈페이지 www.urimbooks.com)

● 교회 직원(주의 종, 레위) 조회가 12월 30일(월) 오전 9시 30분 3층 성전에서 있습니다.
레위 직원들은 조회 후 성전 대청소가 있습니다.

● 교회 직원 "성령 충만 기도회"가 12월 31일(화) 오전 10시 사택 예배실에서 있습니다.
오전 9시 30분까지 입실해 주시기 바랍니다.
※ 인도: 교역자회 회장 이미경 목사

● 교회 직원 시무식이 1월 2일(목) 오전 10시 사택예배실에서 있습니다.
오전 9시 30분까지 입실해 주시기 바랍니다.
※ 인도: 당회장 이수진 목사

● 전 세계에 성결의 복음을 전하는 유튜브 채널 프로그램 "ONLY BIBLE" 13회가 저녁예배 후 업로드 됩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관심과 시청 바랍니다.

● 사랑하는 성도님들의 행복한 신앙생활을 위해 만민라디오 「좋으신 하나님」41회가 만민중앙교회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오늘 저녁예배 후 업로드 됩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관심과 청취 바랍니다.
※ 41회 라디오 진행자: 이미경 목사

● 원로목사님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고) 교보문고, 영풍문고, 북스리브로, 예스24, 인터파크, 알라딘 등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자책(e-book) 및 오디오북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교구 소식

1대대교구, 중국 2교구 당회장님 신년 만남/ 2025년 1월 4일(토) 오후 2시 사택예배실


● 감사드립니다.

강단헌화/ 해외 지교회(꽃꽂이 봉사: 예배국 꽃꽂이부, 시설관리국)니다.
주간 성경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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