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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공과
2025-01-31 제5과가상칠언 (2) 요한복음 19:26∼28, 마태복음 27:46
읽을말씀 : 요한복음 19:26∼28, 마태복음 27:46  |  외울말씀 : 마태복음 12:50 | 참고 말씀: 시편 69:21
교육목표 :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시기 전에 말씀하신 가상칠언 중 3~5언에 담긴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게 한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간 구원의 섭리를 완성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가상칠언에는 매우 깊은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이 의미를 밝히 깨달아야 참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가상칠언 중 3언~5언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제3언,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 보라 네 어머니라”
   
   동정녀 마리아는 예수님을 보면 마치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을 뵈온 듯하여 머리카락 하나라도 상할까 늘 조심하며 온 정성과 마음을 다해 섬겼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가장 처참한 십자가 처형을 받고 계시니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 애타는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예수님은 십자가 곁에 서 있는 마리아를 부르셨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자신을 낳아 준 마리아에게 “어머니”라 하지 않고 “여자여”라고 부르셨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기에 어머니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시기 위해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린 것이요, 마리아는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창조주 하나님과 하나이신 예수님께서 어머니라고 부를 수는 없는 일이지요.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며(출 3:14) 누군가 하나님을 낳았거나 만든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기에(빌 2:6) 성경 어디에도 예수님이 마리아를 ‘어머니’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더구나 마리아는 유전적으로도 예수님의 어머니가 될 수 없지요. 사람은 부모의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여 잉태되는데,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동정녀 마리아를 예수님의 어머니로 섬기며 우상처럼 경배한다면 십계명 중 2계명에도 어긋납니다(출 20:4). 하나님께서는 어떤 피조물의 형상도 만들지 말고 섬기거나 경배하지 말라고 금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아들이니이다”라고 하셨는데 이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요한복음 19장 26∼27절에 보면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했습니다.
   여기서 ‘아들’이란 예수님이 아니라 바로 마리아 옆에 있는 제자 요한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마리아를 위로하시고자 요한을 아들처럼 여기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생명보다 사랑했던 예수님이 처참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고 있으니 마리아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실지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요한에게는 “네 어머니라” 하여 동정녀 마리아를 어머니같이 섬기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믿음 안에서 모든 사람이 한 형제 자매이며 가족이라는 영적인 소속감을 일깨워 주시고자 함이었습니다.
   이 땅에서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라 해도 주님을 믿지 않으면 영원히 함께할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마 12:50) 하신 대로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라야 참된 가족이요,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할 수 있습니다.
   
   
   제4언,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온 인류에게 전하는 가상칠언에는 매우 깊은 영적 의미가 있습니다. 이 소리가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성경에 정확히 기록될 수 있도록 예수님은 큰소리로 외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너무 고통스러워 하나님을 원망하며 부르짖은 소리라고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온갖 멸시 천대를 참으며 모든 고통을 견딘 분이 곧 운명할 즈음에 하나님을 원망하실 리가 없지요.
   그러면 예수님은 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셨던 것일까요?
   
   첫째는,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알리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무런 흠도 점도 없는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처참하게 십자가에 달린 것임을 알리는 절규입니다.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는데 여기서는 “하나님”이라 부르셨다는 점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죄인 된 인류를 대신해 십자가를 지신 것이며, 죄인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온 인류의 죄를 한 몸에 진 죄인으로서 하나님께 철저히 버림받은 상태였기에 감히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하나님”이라 하셨지요.
   
   둘째는, 예수님이 인생들을 위해 죽어 주건만 그것을 알지 못하고, 여전히 사망의 길로 가는 영혼들에게 다시 한번 경고하며 깨우쳐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피조물에게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하나님께서 자신을 철저히 외면하셨는지를 잘 아셨지만 십자가에 못 박는 무리들은 전혀 깨닫지 못했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며 무지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회개하여 구원받도록 간절히 외치셨던 것입니다.
   
   
   제5언, “내가 목마르다”
   
   예수님은 뜨거운 햇볕 아래 십자가에 매달려 피를 흘려서 탈진 상태였기 때문에 타는 듯한 갈증은 말로 형용할 수 없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배고픔은 참아도 목마름은 견디기 어렵다고 하는데 그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이 단순히 그러한 갈증을 참지 못해서 “목마르다” 하신 것이 아닙니다. 육적으로 타는 듯한 갈증보다 더 견디기 힘든 영적 목마름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 자녀들을 향해 “내가 피를 흘림으로 목이 마르니 내 피 값을 찾아 목마름을 해소해 달라”는 간절한 외침이었습니다. 사망의 길로 가는 영혼을 구원하여 천국으로 인도해 달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영적 의미를 알지 못하고, 예수님이 “목마르다”고 하시자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스펀지처럼 물을 빨아들이는 물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님의 입에 댔습니다(요 19:29). 이는 시편 69편 21절에 “저희가 쓸개를 나의 식물로 주며 갈할 때에 초로 마시웠사오니”라는 예언대로 이루어진 것이지요.
   
   그러면 예수님께서 신 포도주를 맛보셨다는 말씀의 영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는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신 포도주를 드심으로 우리에게는 새 포도주를 마시게 하셨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새 포도주는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으로 인해 완성된 신약의 사랑의 법을 의미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죄를 지으면 반드시 죄에 따른 형벌을 받아야 하고, 죄 사함을 받으려면 매번 짐승을 잡아 피의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신약 시대에는 예수님께서 친히 속죄 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율법의 모든 저주를 속량해 주셨습니다. 곧 우리를 위해 신 포도주를 맛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님의 사랑을 마음에 믿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 그 믿음으로 인해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신 포도주를 맛보시고 우리에게 새 포도주를 마시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주님은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목마르다 호소하고 계십니다. 그 목마름은 피를 흘림으로써 생겨났습니다.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고 죽으셔야 했던 이유는 바로 우리의 죄를 대속해서 참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십자가 보혈로 구원받은 우리들은 마땅히 주님의 피 값을 찾아 드려야 합니다. 그 피 값을 찾아 주님의 목마름을 해소해 드리는 것은 사망의 길로 가는 영혼을 구원하여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수님은 자신을 낳아 준 동정녀 마리아에게 “어머니”라 하지 않고 “여자여”라고 부르셨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2.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아들이니이다”라고 하셨는데 이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3. 예수님은 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셨던 것일까요?
   
   4.“내가 목마르다”하신 말씀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상)> 책자 120~127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사도 요한’은 어떤 인물일까?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다. 형 야고보와 함께 ‘우레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급한 성격의 소유자였으나 주님을 만나 사랑의 사도로 변화되었다. 예수님이 십자가 처형을 당하실 때 예수님으로부터 동정녀 마리아를 잘 섬기라는 부탁을 받았다.
   요한복음과 요한 1, 2, 3서와 요한계시록을 기록하였다.
   
   
   
   설 명절 감사 예배 순서와 예문
   
   설날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음력을 사용하는 아시아권 나라들에서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음력으로 1월 1일인 설날은 ‘묵은해를 떨쳐 버리고 새로 맞이하는 한해의 첫머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지요.
   2025년, 새해에도 늘 지키시고 인도하시며 풍성한 은혜로 채워 주실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겠습니다.
   
   
   1. 설 명절 감사 예배 순서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 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 송 ------------------------- 458장 ---------------------- 다 같이
   
   1.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우리 맘이 평안하리니
   항상 기쁘고 복이 되겠네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그 크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2. 날이 갈수록 주의 사랑이 두루 광명하게 비치고
   천성 가는 길 편히 가리니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그 크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3. 주의 보좌로 나아갈 때에 기뻐 찬미 소리 외치고
   겁과 두려움 없어지리니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그 크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기 도 ------------------------------------------------ 가족 중에서
   
   성경 봉독 ---------------- 고린도후서 5:18~19 ---------------- 인도자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설 교 ----------------------- 화 목 ----------------------- 설교자
   
   
   2. 설교 예문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새색시가 부엌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신랑이 깜짝 놀라 “왜 우느냐?”고 물었지요. 이유인즉슨 밥을 태웠다는 것입니다. 신랑은 “내가 물을 조금밖에 길어오지 못해 밥이 탔다.”며 자기 잘못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침 부엌을 지나가시던 시아버지가 이 광경을 보고 이유를 물었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시아버지는 “내가 장작을 굵게 패지 못하고, 잘게 패서 화력이 너무 세서 밥이 탔다.”며 자기 탓이라고 하였지요. 또 시어머니는 “내가 늙어 밥 냄새를 못 맡아 이런 일이 일어났다.”며 며느리를 감싸 주었습니다.
   가족 중에 누구 하나 상대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거나 남의 탓을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자기를 돌아보며 ‘내가 좀 더 잘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하며 상대방을 격려하고 위로해 주었지요.
   행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서로 섬기고 사랑할 때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입니다. 어떤 집은 가훈으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 써 놓은 것도 봅니다. 가정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린다는 것입니다.
   잠언 17장 1절에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했습니다. 육선, 곧 고기로 만든 음식이 가득한 부유한 집에서 살며 다투는 것보다 떡 한 조각밖에 없는 가난한 집에서 살더라도 화목한 것이 낫다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 늘 화목을 이룰 수 있을까요?
   
   먼저, 입의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작은 불씨가 화근이 되어 큰불로 번지면 많은 재산을 잃고 사람이 다치고 죽기까지 합니다. 이처럼 말이 화근(禍根)이 되어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큰 손해를 입히지요.
   야고보서 3장 5~6절에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깨고 싸움으로 번지게 만듭니다. 남을 배려하지 않고 툭툭 내뱉는 말이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요. 그러니 그 사람이 가는 곳은 늘 분쟁이 일어나고 화평이 깨지기 마련입니다.
   누구든지 말할 자유는 있지만 그 말이 선하냐 악하냐에 따라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너무나 다르게 다가옵니다. 어떤 사람은 말 한마디 잘못해서 인생의 큰 해를 입기도 하고, 상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반면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을 수 있지요. 쏟아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듯이, 우리가 한 번 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새해에는 말 한마디도 심사숙고하여 신중하게 하고 쓸데없는 농담이나 험담은 삼가야 하겠습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격려하는 말, 자존감을 높여 주는 힘이 되는 말을 하고자 힘써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29절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했습니다. 이처럼 삶 속에서 늘 상대에게 힘과 용기를 실어 주는 선한 말만 하여 많은 사람에게 은혜를 끼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으로,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며 섬겨야 합니다.
   부부간에도 서로 자기의 유익을 구하면 다툼이 그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무조건 남편이 자기에게 맞춰 주길 바라고 자신이 남편에게 한 만큼 받지 못한다면 서운해하고 삐치는 아내가 있다고 합시다. 더구나 남편은 자존심이 강하여 아내에게 져주기보다는 자기 의견을 강하게 내세운다면 어떻게 될까요?
   ‘섬김’이란 겸손하게 자신을 희생하여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그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는 것입니다. 마치 어머니가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자녀를 사랑하고, 소금이 맛을 내기 위해 자신은 온전히 녹는 것과 같습니다.
   섬기는 사람은 항상 자신보다 상대의 입장을 먼저 고려합니다. 또한 상대의 유익을 구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저 사람에게 힘이 될까?’를 생각합니다. 이렇게 남을 배려하고 섬기는 사람의 공통점은 근본적으로 ‘나’라는 것이 없습니다. ‘나, 내 것, 자존심, 내 고집, 나 보기에 의로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주장하지 않고 삼가 입술의 말을 주의하여 오직 덕을 세우며, 상대의 유익을 구하고 섬긴다면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룰 뿐 아니라 사랑으로 더욱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서로 사랑하고 화평하면 하나님께서는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주시고 형통한 삶으로 인도해 주십니다(출 20:6). 만일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비진리, 악들을 행한다면 형통하지 않은 것을 봅니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설날이 되면 새해의 풍요로운 수확과 가족의 건강과 마음의 소원을 막연히 신에게 빌었습니다. 또 음식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절하며 제사를 지냈지요. 마치 돌아가신 조상이 와서 그 음식을 흠향하는 것처럼 정성 다해 차례를 지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목숨이 다하여 영혼이 떠나면 다시 이 세상으로 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출 20:4~5).
   사람이 죽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은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믿지 않은 사람은 천국에 가지 못하고 지옥에 갑니다. 우리 조상들은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 세계가 있음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신을 찾고 기도하였지요.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신 참 신으로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간절히 찾을 때 만나 주시고, 어떤 사고나 재앙 가운데서도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는 분입니다. 이처럼 좋으신 하나님을 새해에는 마음 중심에서 믿고 의지하심으로 항상 기쁨과 감사가 넘쳐나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 다 같이
   
   주기도문 ------------------------------------------------- 다 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지난 주 설교요약
2025-01-26 팔복(8) - 이수진 목사 마 5:10
오늘은 <팔복> 여덟 번째 말씀으로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것이 무엇이며, 어떤 복이 임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팔복을 이룬 사람은 영육 간에 축복이 임해
   
   팔복은 만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이 말씀대로 이룬 사람은 반드시 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팔복에 나오는 복들은 일반적인 복과는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부유한 것이 복이라 하는데 팔복의 말씀에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기쁘고 즐거운 것이 복인데 예수님께서는 애통하는 자가 복 있다 하시며 배부르고 기름진 것을 복되다 하지 않으시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이 복되다 하시지요.
   잘 모르는 사람이 듣기에는 이상할 수도 있지만 지난 시간까지 영적인 의미를 들으신 여러분은 “참으로 이 팔복이 세상 어떤 복보다도 가장 크고 영원한 복이며 진정한 복이구나” 깨달으셨을 것입니다. 팔복 안에는 부유하고 건강하고 가정이 화목하며 명예와 권세를 누리는 등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육적인 복보다도 더욱 큰 영적인 복 곧 구원과 천국의 축복이 들어 있기 때문이지요.
   팔복에는 이러한 영적인 축복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복이라 하는 것들도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팔복을 이룬 사람에게는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부귀영화도 권세도 얼마든지 주실 수 있고 하나님께서 주신 복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것입니다.
   
   
   2. 주님을 믿으면 축복과 겸하여 핍박을 받아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흔히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받으세요.” “하나님을 믿으면 축복받습니다.” 말합니다. 주님을 믿으면 사업터, 일터에 물질의 축복도 받고 각종 문제를 해결 받으며 만사형통한 복을 누린다고도 말하지요.
   빌립보서 1장 29절에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했습니다. 마가복음 10장 30절에는 주와 그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가족이나 전토를 버린 사람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셨지요. 주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린 만큼 내세의 영생과 금세의 축복을 받는데 이와 함께 핍박도 겸하여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주님을 믿으면 고난을 받는 것일까요? 주님을 믿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은 영적으로 빛에 속하는 행위이며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주인은 어두움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 사단이기 때문입니다. 빛이 비취면 어둠이 물러가듯이 빛 되신 주님을 믿는 성도들이 많아질수록 원수 마귀 사단의 영역이 줄어듭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자기에게 속한 세상 사람들을 주관하여 빛에 속한 성도들을 핍박함으로 주를 믿지 못하도록 하고 빛에서 떠나도록 만들지요.
   
   
   3. 의를 위해 핍박받는다는 말씀의 의미
   
   의를 위해 핍박받는다는 것은 성도들이 의로우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진리와 선과 빛을 좇아 살 때 받게 되는 핍박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하는 말씀처럼 세상에서 주님을 바르게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핍박을 받기 마련입니다.
   다니엘은 그를 죽이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함을 받았을 때 잠시 기도를 쉬면 핍박을 받지 않을 수도 있었으나 하나님 앞에 기도 쉬는 죄를 범치 아니함으로 사자굴에 던져졌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 역시 딱 한 번만 왕이 세운 우상 앞에 절을 하면 핍박을 받지 않을 것인데 우상숭배를 금하신 하나님 앞에 의를 지키기 위해 풀무불에 던져지는 쪽을 택하였지요. 하나님 앞에 의를 행하고자 하니 세상에서 핍박이 따라옵니다.
   신약 시대에도 큰 핍박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겠다고 한마디만 하면 가족도 명예 권세와 재물도 지킬 수 있으며 오히려 더 많은 상을 주기도 했지만, 성도들은 의를 위해 핍박받는 편을 택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참혹한 고문을 당하고 결국 맹수의 밥이 되어, 혹은 십자가에 달려 순교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 중에도 욕을 먹고 매 맞으며 핍박받으신 분들이 종종 있을 것입니다. 신체적인 위협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해도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면 여러 모양으로 핍박이 오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예를 들어, 세상에 있을 때는 친한 친구들과 만나면 술도 마시고 비진리의 말과 행함으로 어울렸는데 여러분이 은혜를 받으면 술도 끊고 거룩하게 행하려 하니 세상 친구들은 재미가 없지요. 그러니 서운해하거나 싫은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주일에 모임이 있다 해도 주일을 거룩히 지키는 성도들은 갈 수가 없으며 남들은 적당히 속이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직하게 행합니다. 이런 것들이 세상에서는 핍박 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선한 사람은 상대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의롭게 행하는 것을 볼 때 감동 받아 전도되기도 합니다. 반면 악한 사람은 성도들이 의를 지키는 것을 어리석게 여기거나 미워하여 핍박하지요. 때로는 자기 논리대로 설득하려 들기도 합니다. “꼭 그렇게 극성스럽게 믿어야 하느냐? 누구는 모태신앙인데도, 혹은 장로인데도 주일을 어기더라. 제사는 우상숭배가 아니라 민족 고유의 미풍양속이니 절을 해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로 믿는 여러분이라면 아무리 사람들이 회유하고 핍박한다 해도 불의를 행할 수가 없습니다. 직장에서 쫓겨날지언정 하나님을 서운케 할 수는 없으며 일가친척, 친구들의 마음이 상한다 해도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불의를 행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 되었던 우리를 위해 사랑하는 독생자까지 내어주셨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 사랑을 생각한다면 결코 세상과 타협하여 편안한 쪽을 택할 수는 없지요.
   여기서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때로는 성도들이 의를 행하므로 핍박받기보다는 지혜가 부족하여 핍박받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여 성도님이 집 안은 지저분한데도 치우지 않고 식사 준비도 해놓지 않는 등 가족들의 마음을 불편케 해놓고 주일날 하루 종일 집을 비우면 어떨까요? 가족들이 싫어하고 핍박하지요. 교회 다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집 안을 돌보지 않는 것이 문제인데 핍박받는 당사자는 자신이 주일을 지킴으로 핍박받는다고 오해하는 것입니다.
   또 직장에서도 평소에 성실히 행하지 않고 교회를 핑계로 자기 일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미루면 주변 사람들은 그가 교회에 다니는 것에 불편한 마음을 갖고 핍박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의를 위해 핍박받는 것은 감사하고 기뻐하며 승리하되, 항상 자신을 돌아보아 부족한 모습은 변화시킴으로 온전케 되며 항상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4. 의를 위해 핍박받은 자에게 임하는 축복
   
   의를 위해 핍박받은 사람의 복은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했습니다. 팔복 중 첫째 복에도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천국이 저희 것이라’ 했지요. 그 의미는 각각 다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의 천국은 포괄적인 것으로, 구원받아 천국에 가게 됨을 의미합니다. 반면 의를 위해 핍박받은 자의 천국은 각 사람이 의를 행함으로 핍박받은 만큼 영혼이 잘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린 만큼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가는 좀 더 세밀한 의미의 천국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세상에서 핍박을 받으면 그로 인해 믿음이 더욱 굳건하여지고 마음의 성결을 이룰 수 있습니다. 연단을 받지 않은 사람은 어린아이와 같이 연약한 믿음이지만 많은 핍박을 받으면서 기뻐하고 감사하며 진리로 인내하여 승리한 사람들은 점차 청년의 믿음으로, 또 아비의 믿음으로 장성해 나갑니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알지 못했던 깊은 속에 있는 비진리까지도 발견하여 버리고 온유함과 화평함을 이루며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주님의 마음을 닮아 가지요. 점점 더 주님의 마음을 알게 되어 깊은 사랑을 나누고 영적으로 밝은 교통을 이룰 수 있습니다.
   시편 119편 71절에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난을 통해 더 낮아지고 오직 주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죄악들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날마다 성결되어 가며 천국 중에서도 더 좋은 천국의 처소에 들어가 아버지를 뵈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다고 해서 언제까지 계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핍박을 이기면서 믿음이 장성하고 온전해질수록 이제는 핍박받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존중받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육 간의 축복을 크게 받아나가는 것입니다.
   앞서 예를 들었던 다니엘이나 다니엘의 세 친구들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의를 굳게 지킴으로 핍박을 받아 사자굴에 들어가고 풀무불에 던져졌지만 전혀 해를 입지 않고 살아나왔지요. 하나님께 크게 영광 돌렸을 뿐 아니라 왕에게 더욱 사랑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를 믿고 의를 행함으로 핍박받던 성도들이 어느 땐가 믿지 않는 주변 사람들이 아플 때 손수건이나 단물을 통해 치료받게 해 줌으로 인정받고 사랑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전에는 무시하고 멸시하던 사람들도 여러분이 축복받아 가는 것을 보면서 과연 하나님이 살아 계시며, 여러분이 바르게 신앙생활 한 것을 인정하지요. 전에는 핍박하던 사람들이 여러분의 신앙이 자라갈수록 점차 은혜를 받게 되고 오히려 빛 가운데 나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린도전서 15장 41절에 장차 있을 부활에 대해 설명하면서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했습니다. 구원받고 천국에 간다 해서 다 같은 천국이 아니며, 얼마나 의를 행하여 마음을 변화시켰으며 또 핍박을 이기며 하나님께 영광 돌렸는가에 따라 천국도 전혀 다른 천국에 들어간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은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사람들의 핍박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랑하여 담대히 의를 행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온전히 성결을 이루심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받아 마음껏 영광 돌리며 장차 천국에서도 가장 좋은 천국, 새 예루살렘에서 해와 같이 빛난 영광 중에 영원히 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5년 1월 26일 주일)
* 사회: 정진영 목사
개회찬송 29장 1절
성시교독 39번
찬송 221장
기도 최영자 목사
성경봉독 마태복음 5:11~12
찬양 주님의 영광을 우리는 보았네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팔복(9)
당회장 이수진 목사
찬송 만민 찬양 92장
주일 저녁예배 (2025년 1월 26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김영석 목사
대표기도 장정미 전도사
성경봉독 창세기 49:22~26
특송 심찬미 자매
설교 샘 곁의 무성한 가지가 되자
문신현 목사(예수교연합성결회 아프리카 총회장)
수요 예배 (1월 29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박광현 목사
대표기도 권영남 전도사
성경봉독 누가복음 6:45
설교 예쁜 말
장성식 목사
금요 철야예배 (1월 31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조수열 목사
대표기도 이영인 전도사
성경봉독 창세기 1:26~31
찬양 샬롬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창세기 강해(43) - 창조 여섯째 날③
이재록 원로목사
새벽 예배
인도 정영임 전도사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5-01-26 2025년 1월 넷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당회장님 동정

● 지난주 금요 철야예배 시 치유집회를 인도하셨습니다.

● 당회장님의 신앙칼럼이 「동아일보」, 「중앙일보」, 「기독선교신문」,
「서울뉴스통신」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교회 소식

● 원로목사님의 저서 「영혼육(하)」 네덜란드어(901번째), 「하나님의 법도」태국어(902번째)가 종이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 2025년 제1회 정기원로회가 오늘 저녁예배 후 온라인으로 개최됩니다.

● 설 명절을 맞아 본 교회는 사회복지 시설인 만민복지타운에 성금을 기탁하였고, 이 소식이 <공감신문>, <한국목재신문>, <시선뉴스>에 보도되었습니다.

● 전도지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 2월호가 발간되었습니다. 교회 안내실 앞과 구로 지성전에 비치되었으니 성도님들께서는 전도에 많은 활용바랍니다.

● 만민기도원 故 이복님 원장님 장례 일정을 은혜롭게 마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장례 예배 순서를 맡으신 모든 분들과 각 분야에서 수고해 주신 분들, 장례 일정에 함께해 주신 해외 총회장님과 선교사님들, 교계와 언론 인사들과 모든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 1월 치유집회에 치료하시고 응답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치유집회를 인도해 주신 당회장님께 감사드리며 치유집회를 통해 치료받거나 응답받으신 성도님들은 해당 교구장, 지도교사 또는 교회 홈페이지와 모바일앱에 간증 접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 「전진 2025년 7가지 기도제목, 치유집회」를 위한 작정 다니엘 철야를 인도해 주신 당회장님께 감사드리며, 동참해 주신 모든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 금주는 민족 고유의 명절인 설 연휴가 있습니다. 주 안에서 즐거운 명절이 되시기 바랍니다.
※ 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와 예문이 주보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 GCN방송에서는 설 연휴 기간 중에 특별 방송을 편성합니다. 새벽예배 및 다니엘철야를 당회장님께서 인도하셨던 작정다니엘철야로 녹화방송합니다.
① 새벽예배
※ 기간: 1월 27일(월) ~ 1월 30일(목)
※ 시간: 오전 5시~ 6시
② 다니엘철야(오전 및 저녁시간에 방송)
※ 기간: 1월 27일(월) ~ 2월 2일(주일)
※ 시간: 오전 7시 ~ 9시, 오후 9시~11시

● 2025년 제 1차 영적 성장 프로젝트 「전 성도 원로목사님 저서 읽기」를 진행합니다.
※ 대상 책자: ①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②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것은
③ 지혜 ④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⑤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⑥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 기간: 2월 1일(토)~ 4월 30일(수)까지 (3개월간)
※ 책자 구입은 시중서점이나 우림북(☎ 02-818-7241)에서 하실 수 있습니다.

● 전 세계에 성결의 복음을 전하는 유튜브 채널 프로그램 "ONLY BIBLE" 17회가 대예배 후 업로드 됩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관심과 시청 바랍니다.

● 사랑하는 성도님들의 행복한 신앙생활을 위해 만민라디오 「좋으신 하나님」 45회가 만민중앙교회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오늘 저녁예배 후 업로드 됩니다.
이번 회차는 설 특집으로 스페셜 DJ 당회장님께서 진행하십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관심과 청취 바랍니다.

● 설 연휴 관계로 주보 광고는 오늘 오후 5시까지 접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 원로목사님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고) 교보문고, 영풍문고, 북스리브로, 예스24, 인터파크, 알라딘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자책(e-book) 및 오디오북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기관 소식

농아인선교회
수어(수화)에 관심 있는 청·장년 봉사자 모집
※ 문의: 김선향 권사(☎ 010-2360-1537)


● 성도 소식

홍인화 집사(13교구, 동양대학교 특임교수)/ 경기도 초·중·고등학교 학생 대상의 "디지털 기반의 창의적 융합 체험 학습" 프로그램 개발과 운영에 기여한 공로로 경기도 교육감 표창장 수여


● 감사드립니다.

강단헌화/ 한병용 장로, 이도순 권사 부부(꽃꽂이 봉사: 예배국 꽃꽂이부, 시설관리국)
주간 성경구절
2026-01-25
[주일]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딤전 4:5]
2026-01-26
[월요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일 2:17]
2026-01-27
[화요일]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 1:15]
2026-01-28
[수요일]
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살전 2:4]
2026-01-29
[목요일]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롬 8:6]
2026-01-30
[금요일]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 11:6]
2026-01-31
[토요일]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시 8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