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배안내
  • 설교요약
  • 구역공과
  • 공지사항
  • 주간성구
구역공과
2025-10-03 제40과영적인 사랑의 중요성 고린도전서 13:1~3
읽을말씀 : 고린도전서 13:1~3  |  외울말씀 : 골로새서 3:23 | 참고 말씀: 고린도전서 2:6~8
교육목표 : 범사에 누구를 대하든지 영적인 사랑으로 섬기고 희생해 줌으로 생명을 살리고 변화시키는 성도가 되게 한다.


   사랑장이라 불리는 고린도전서 13장을 보면 영적인 사랑에 대해 설명하기에 앞서 사랑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영적인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와 같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면 영적인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고린도전서 13장 1~3절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여기서 ‘사람의 방언’이란 방언의 은사가 아닌 영어, 일어, 불어 등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의미합니다. 또한 ‘천사의 말’이란 매우 아름다운 말을 뜻합니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고운 말을 할 때 “천사같이 말한다.”고 하지요.
   영적인 사랑이 담긴 말에는 생명을 살리는 놀라운 능력이 있지만 사랑이 없는 말은 아무리 유창하고 아름답게 해도 참 기쁨과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가볍고 속이 비어 요란한 소리를 내는 구리나 꽹과리처럼 아무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묵직한 쇠나 구리는 두드려도 요란한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구리나 꽹과리가 소리를 낸다면 속이 비었거나 가볍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영적인 사랑이 없으면 쭉정이와 같습니다. 마음 안에 사랑이 가득 차서 하나님을 닮은 참 자녀가 될 때라야 인간을 경작하시는 하나님 앞에 알곡으로서 가치가 있지요. “무슨 말로 상대에게 힘이 될까?”, “어떻게 하면 진리로 나오게 할까?” 기도하며, 한마디를 해도 상대에게 생명을 주고자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말씀으로 무조건 상대를 설득시키려 하거나 지적하여 자기 생각에 맞지 않고 거슬리는 부분을 고치려 듭니다. 설령 그 말이 백 번 옳아도 사랑에서 비롯되지 않으면 상대를 변화시키거나 참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늘 자신을 돌아보아 내 의와 틀 속에 말하지는 않는지, 그 말이 생명을 살리는 사랑에서 비롯된 것인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그 어떤 유창한 말보다 영적인 사랑이 담긴 말 한마디가 목마른 영혼을 시원케 하고 아파하는 영혼에게 기쁨과 위로를 주는 생명의 물이요, 값진 보석이 되는 것입니다.
   
   
   2.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예언’이란 하나님으로부터 앞으로 이루어질 일을 받아 선포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언은 사람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감동을 입은 사람이 하나님께 받아 말하는 것이지요. 베드로후서 1장 21절에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말씀한 대로입니다.
   여기서 ‘예언하는 능’이란 특정인에게 주어지는 은사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믿고 진리 안에 들어온 사람이라면 장차 일어날 일을 알아 말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즉 주님께서 강림하시면 구원받은 사람은 휴거되어 7년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7년 환난을 겪고 백보좌 대심판 후 지옥에 갈 것을 알고 선포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예언하는 능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하나님과 상관이 없습니다.
   
   다음으로 ‘비밀’이란 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 곧 ‘십자가의 도’를 말합니다. 십자가의 도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섭리로서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예비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범죄하여 사망으로 갈 것을 아시고 만세 전에 구세주가 되실 예수님을 예비하셨습니다. 이 구원의 섭리를 성취하기까지 하나님은 비밀로 붙이셨습니다. 구원의 섭리가 알려지면 원수 마귀 사단이 방해하여 성취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고전 2:6∼8).
   원수 마귀 사단은 예수님을 죽이면 아담의 범죄로 넘겨받은 권세를 영원히 가질 줄 알고 악한 사람들을 사주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러나 죄 없으신 예수님을 죽임으로 도리어 구원의 길이 열리게 만들었지요. 이처럼 놀라운 비밀을 알아도 사랑이 없어 전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지식’이란 단지 학문적인 것만이 아니라, 성경에 담긴 진리의 지식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알았다면 만나고 체험하여 마음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는 데 그칠 뿐, 그 지식이 남을 판단 정죄하는 잣대가 되기도 하지요. 그러니 영적인 사랑이 없는 지식 역시 소용이 없습니다.
   또한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러한 큰 믿음을 가졌다고 사랑까지 큰 것은 아닙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실 때 잠시 따라 걸었습니다. 당시 성령을 받은 것도, 마음의 할례를 한 것도 아니므로 영적인 사랑이 임한 상태가 아니었지요. 그러니 자신에게 생명의 위협이 오자 예수님을 부인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체험적인 신앙으로 믿음은 성장할 수 있지만 영적인 사랑은 죄를 버리려는 노력과 헌신, 희생이 따를 때 임합니다. 그렇다고 믿음과 사랑이 무관한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있기에 죄를 버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지요. 그러나 사랑을 이루려는 행함이 없으면 아무리 충성해도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없습니다.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자기를 자랑하고 싶어 형식적으로 구제하는 사람은 칭찬을 받을수록 마음이 높아지게 마련입니다. 자신을 의롭다 착각하여 마음의 할례를 하지 않으니 결국 아무 유익이 없으며 자신에게 해만 되지요. 그러나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구제는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상관이 없습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서 행한 대로 축복과 상급으로 갚아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마 6:3~4).
   구제는 생활하는 데 필요한 양식과 의복, 집, 물질 등을 공급해 주는 것만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영혼의 양식을 공급하여 영혼을 살리는 구제가 되어야 합니다. 구제할 때는 성령의 주관을 받아 상대에게 맞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잘못된 구제는 상대로 하여금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거나 사망의 길로 가게 만들지요.
   가령, 술과 노름으로 가난하게 된 사람이나 하나님의 뜻을 거스려 시험 환난에 빠진 사람을 구제한다면 더욱 잘못된 길로 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사랑으로 구제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영혼이 잘되게 하시고 범사가 잘되는 축복을 주십니다.
   
   다음으로,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준다?는 것은 완전히 희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희생은 사랑을 전제로 하지만 사랑 없이도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습니다. 즉 실컷 수고해 놓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힘과 정성, 시간, 물질을 다해 일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해합니다. 열심 내지 않는 사람을 보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어쩜 저럴 수 있지?” 판단합니다. 이런 마음이면 자신도 힘들고 주변 사람과 화평을 깨니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이 있는데 어떻게 사랑 없는 희생이 나올 수 있을까요? 이는 중심에서 하나님의 것이 내 것이요, 내 것이 하나님 것이라는 주인의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령, 농부가 자기 밭의 일을 할 때는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열심히 합니다. 하지만 남의 일을 할 때는 그 마음가짐이 다르지요. 마찬가지로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삯을 받고 일하는 일꾼처럼 형식적으로 일하고, 당장 대가를 받지 못하면 불평이 나옵니다. 골로새서 3장 23절에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말씀합니다.
   우리가 참된 희생을 하려면 무엇보다 마음에 영적인 사랑을 이뤄야 합니다. 마음 안에 사랑이 가득한 사람은 누가 보든 보지 않든 묵묵히 헌신합니다. 마치 초가 자신의 몸을 태워 어둠을 밝히듯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줍니다.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 수많은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었던 것도 참사랑으로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심으로 생명이 다하기까지 그분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순간에도 영혼들을 위해 중보 기도를 올리셨지요. 하나님께서는 어떤 욕심이나 거짓이 없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에게 모든 수고를 갚아 주시고 위로하시며, 영광의 자리로 이끄십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비밀?이란 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 곧 ( )를 말한다.
   
   2.‘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준다?는 것은 완전히 ( )하는 것을 의미한다.
   
   3. 믿음은 있는데 사랑 없는 희생이 나올 수 있는 것은 중심에서 하나님의 것이 내 것이요, 내 것이 하나님 것이라는 ( )이 없기 때문이다.
   
   
   ● 알고 넘어갑시다!
   
   ‘중심의 향을 담은 예물?
   마가복음 12장에는 중심의 향을 담은 예물을 드림으로 예수님께 칭찬받았던 한 과부가 나온다. 그녀는 비록 두 렙돈에 불과했지만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드렸다. 렙돈은 당시 그리스의 가장 작은 동전 단위이다.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 하셨듯이 과부가 자신의 생활비를 전부 드렸다는 것은 그녀의 마음 전부가 하나님께로 향해 있다는 표현이다. 곧 사랑의 표현인 것이다. 반면 사람을 의식한 예물이나 억지로 드리는 예물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니 자신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다.
지난 주 설교요약
2025-09-28 죽어지는 밀알이 되자(1) - 이수진 목사 요 12:24
예수님을 통해 ‘한 알의 밀’에 담긴 영적인 의미를 알아보고, 나의 자아(自我)가 죽어지는 법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한 알의 밀이 죽어져서 열매 맺는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씨앗이 싹을 틔우기 위해서는 적당한 수분, 알맞은 온도, 공기가 필요합니다. 이 세 가지 조건이 적절하게 갖춰지면 씨앗에서 싹이 나고 뿌리가 나는 생명 활동이 시작되지요. 한 알의 씨앗이 양분으로 제공되기 위해 스스로 죽어져 자기 형체가 사라질 때 새 생명으로 탄생하여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반면 싹이 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졌어도 씨앗이 완전히 죽지 않으면 뿌리를 내리지 못하니 열매를 맺지 못하지요. 이 자연의 법칙은 영계에서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죽어지는 밀알이 되셨을까요?
   
   
   1. 죽어지는 밀알이 되신 예수님
   
   이사야 53장 4-9절을 보면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말씀하십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성취되었고, 수많은 영혼을 죄인에서 의인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기셨습니다. 이런 풍성한 열매를 거두시기 위해 예수님은 온전히 죽으셔야 했습니다. 십자가의 처형을 받기 전에도 피조물에 의해 수욕을 당하시고 많은 고초를 받으셨지요. 또한 침 뱉음을 당하시고 채찍에 맞으시며, 가시관을 쓰시고 손발에 못 박히시며 온갖 조롱을 다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시기에 모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철저히 죽어지셨습니다. 이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듯이 무수한 영혼을 구원하게 될 것을 믿으셨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이란 영원히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던 죄인들을 구원할 수 있다는 사랑과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는 기쁨을 뜻하며, 또한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될 수 있다는 즐거움을 말합니다.
   모세나 사도 바울과 같은 선진들도 이러한 하늘의 소망이 있었기에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고 오직 하나님 나라를 위해 철저히 죽어질 수 있었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믿음의 형제들을 위해 철저히 죽어지고 비록 부끄러움을 당할지라도 개의치 않고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지요.
   
   
   2. “자아(自我)”가 죽어져야
   
   왜 ‘자아’가 먼저 죽어져야 할까요?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 형제, 학교, 친구, 이웃 등 다양한 환경을 통해 보고 들으며 지식을 쌓아 갑니다. 이렇게 쌓은 지식과 교양으로 자아를 형성하지요. 그런데 각기 다른 부모, 환경, 다른 가르침 속에 자아를 만들었으니 사람마다 생각과 옳다 하는 것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세상의 지식들은 진리에 맞지 않는 것이 많으며, 교양도 나라마다 다릅니다. 그러니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서로 비슷한 생각을 가졌다 해도 자기 유익에 맞지 않으면 나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자기가 옳다 하는 생각이 다 맞는 것이 아니므로 자기를 주장하면 안 되지요.
   진리를 알기 전 우리는 상대를 잘 이해하지 못했고, 쉽게 판단 정죄하며 미워했습니다. 내가 죽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세상에서 배운 지식과 자신의 생각은 참 진리인 하나님 말씀에 비춰 보면 틀린 것이 많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불변한 진리입니다.
   어떤 계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면 이제 진리가 생각과 마음을 두드리게 됩니다. 마음 문을 여는 만큼 진리가 들어와서 마음 안에 자리 잡게 되는데 그때부터 죄와의 싸움이 시작되지요. 내 생각과 이론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옳음을 믿기에 자기를 부인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자기가 죽어지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히브리서 12장 4절에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죄와 싸울 때는 힘써 싸워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마음의 비진리를 벗어버리는 죄와의 싸움이 얼마나 치열한 싸움인지를 알려 줍니다. 마음의 비진리는 대충 회개한다고 벗어지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땀 흘리며 부르짖어 기도할 때 벗어지지요.
   열심히 죄와 싸워나갈 때 하나님께서 그 노력을 보시고 은혜를 주실 뿐 아니라 불세례를 내려 주셔서 죄성을 태워 주시는 등 죄를 버릴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성령의 도우심 속에 내 안에 있던 죄의 속성들을 버리고 주님의 마음을 닮게 되지요. 몸과 결합된 죄성이 태워지는 만큼 육신의 사람이 아니라 영의 사람이 됩니다.
   로마서 8장 13절에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 자신에게 있어서 “자아”가 죽어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뜻, 진리와 위배되는 자기 안의 죄악을 벗어버리는 것이지요.
   
   
   3. 믿음에 따라 “자아(自我)”가 죽어지는 단계
   
   이제 주님을 영접한 믿음의 1단계는 말씀을 들으며 의심되고 믿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사와 표적 등에 대한 의심을 물리치는 노력을 해야 하지요. 이 단계에서는 죽어져야 할 것이 많이 있지만 먼저는 ‘그게 맞을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하는 의심을 물리쳐야 합니다. 이 제단에서는 치료와 응답, 성도들이 스스로 체험하고 나타난 일들에 대한 간증이 넘쳐나지요. “하나님은 이렇게 치료하시고요. 응답하세요.” 말로만이 아니라 여러분들의 삶에서 드러나고 나타난 하나님을 만난 체험들, 진실한 간증들이 증거합니다. 의심을 깨뜨리는 이 작업이 내가 죽어지는 단계의 시작입니다.
   믿음의 2단계까지는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육체의 일이 무엇인지 찾고 깨달아 버려야 합니다. 육체의 일이라는 것은 행함으로 짓는 죄를 말합니다. 이때는 하나님께서 어떠한 것을 죄라고 하시는지, 말씀을 열심히 찾아 듣고 알아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고 믿음이 생겼으면, 알지 못했던 나의 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말씀을 통해 깨달았다면 이제는 행함으로 죄를 버려가야 합니다.
   믿음의 3단계에서는 자신에게 있는 육신의 일이 무엇인지 찾고 힘써 버려 나가는 만큼 자아가 죽어지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갑니다. 육신의 일은 행함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마음과 생각으로 짓는 죄입니다. 미워하는 생각, 판단과 정죄하는 생각, 이것은 생각과 마음 안에 있는 죄들, 육신의 일이라고 하지요. 이것이 믿음의 3단계에서 버려가는 과정입니다. 버려가는 만큼 내가 죽어지고 내 안에 주님이, 하나님이 역사하시지요.
   믿음의 반석 이상 서게 되면 대부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때문에 자기 안에 아직 살아있는 자아를 깨닫지 못하고 발견하지 못합니다. 비진리가 아닌 진리로 새롭게 만들어 놓은 자기 의와 틀이지요. 대표적으로 욥이 있습니다. 욥은 아직 영으로 들어가기 전이었지만 행위적으로는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나는 잘못이 없는데 왜 이런 연단을 하십니까?” 하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이것을 발견하는 단계가 믿음의 반석을 지나 영으로 들어가기 전까지의 모습입니다.
   밀알이 죽어질 때는 그 속의 내용물이 양분으로 공급될 뿐 아니라 껍질도 썩어 없어져 어떤 모양도 남지 않습니다. 이렇듯 자아를 형성하고 있는 내용물이 진리로 바뀔 뿐만 아니라 자아라는 틀 자체도 없어져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주를 영접한 후 구습을 버린 새로운 피조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자기 의와 틀은 세상으로부터 입력되어 나를 만든 구습이기 때문에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하면 하나님 말씀을 들음으로 나를 진리로 바꾸어 가야 합니다.
   내가 옳다고 하는 것이 다 옳은 것이 아니고 옳은 것도 있고 잘못된 것도 있음을 인정해야 하지요. 욥의 친구들이 욥에게 진리를 가지고 지적하고 권면하고 질타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지은 사람을 연단하시고 책망하시지, 죄 없는 사람에게 그러실 리가 없어!” 그러나 하나님께서 때로는 욥과 같이 행위적인 죄가 없지만 마음 근본 안에 있는 악의 모양을 버리고자 연단하시는 경우도 있고, 또 큰 축복을 주시고자 시험하시는 경우도 있지요. 내가 알고 있는 단편적인 것으로 상대를, 또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서 평가할 때 큰 잘못이 되는 것입니다.
   영으로 들어가고, 온 영으로 들어갔어도 ‘내 생각이 다 맞다.’ 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가면 꽉 찬 곡식처럼, 벼가 고개를 숙이듯 더 겸손하고 겸비해집니다. 그래서 상대가 어떠한 것을 주장한다 해도 “내 말이 맞아!” 하지 않지요. 도리어 “다시 한번 살펴볼게요.” 한다든가 ‘상대방은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하고 인정해 주고, 받아들이는 넓은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만이 참이기 때문에 나의 경험도 나를 만든 모든 자아와 틀도 진리로 다 바꿔야 합니다. 어떤 것은 죄는 아니라 해도 육체의 결여라면 버려 나가야 온전히 자기를 죽이고 주님으로만 채운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속의 악과 비진리를 발견하고 진리로 변화시키기 위한 죄와의 싸움이 시작될 때 크게 두 종류의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얼마나 죽어지는 밀알이 되었는가? 죽어지는 듯해서 떡잎이 나왔는데 씨앗의 형태는 그대로 있겠다고 고집하여 온전히 죽어지지 못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죽어지기를 원치 않아 딱딱한 밀알 그대로 있지는 않은지?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분명 여러분에게 천국 소망이 있고 영적인 믿음을 가졌다면 자기를 형성한 육신과 자기 의와 틀을 열심히 죽여 갈 것입니다. 그럴 때 반드시 영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지요.
   죽어지기를 주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주안에서 온전히 죽어지심으로 여러분을 통해 30배, 60배, 100배의 놀라운 열매가 맺혀 천국에서나 이 땅에서도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5년 9월 28일 주일)
* 사회: 장성식 목사
개회찬송 21장 1절
성시교독 34번
찬송 465장
기도 최영자 목사
성경봉독 요한복음 12:24
찬양 굳건한 반석이시니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죽어지는 밀알이 되자(2)
당회장 이수진 목사
찬송 만민 찬양 75장
주일 저녁예배 (2025년 9월 28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정진영 목사
대표기도 장정미 전도사
성경봉독 잠언 4:20~23
특송 콜롬비아 만민교회 하늘영광팀
설교 은혜와 생명(1)
당회장 이수진 목사
수요 예배 (10월 1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정규원 목사
대표기도 류순엽 권사
성경봉독 요한일서 4:16
설교 하나님의 사랑(2)
문태규 목사
금요 철야예배 (10월 3일 금요일 오후 11시)
추석 연휴 관계로 금요 철야예배는 없습니다.
새벽 예배
인도 조은영 전도사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5-09-28 2025년 9월 넷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당회장님 동정

● 지난 금요 철야예배 시 「9월 치유집회」를 인도하셨습니다.

● 당회장님의 신앙칼럼이 「동아일보」, 「중앙일보」, 「기독선교신문」, 「서울뉴스통신」, 「동방일보」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교회 소식

● 원로목사님의 저서 「지혜」 노르웨이어(933번째)를 전자책으로 발간하였습니다.

● 만민뉴스 중국어(627호), 스페인어(317호), 태국어(97호) 신문을 온라인으로 발행하였습니다.
(만민뉴스 홈페이지 www.manminnews.com)

● 전도지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 10월호를 발간하였습니다. 교회 안내실 앞과 구로 지성전에 비치하였으니 성도님들께서는 전도에 많이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9월 치유집회」에 치료하시고 응답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치유집회를 인도해 주신 당회장님께 감사드리며 치유집회를 통해 치료받거나 응답받으신 성도님들은 해당 교구장, 지도교사 또는 교회 홈페이지와 모바일앱에 간증 접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 금주 금요 철야예배는 추석 연휴 관계로 없습니다.

● 다음 주 추석연휴 관계로 10월 12일 주보 광고를 금주 수요일(10/1)까지 접수 바랍니다.

● 사랑하는 성도님들의 행복한 신앙생활을 위해 만민라디오 「좋으신 하나님」 80회를 만민중앙교회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오늘 저녁예배 후 업로드합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관심과 청취 바랍니다.
※ 80회 라디오 진행자: 이미영 목사

● 교회 직원(주의 종, 레위) 조회가 9월 29일(월) 오전 9시 30분, 3층 성전에서 있습니다.
조회 후 성전 대청소가 있습니다.

● 10월 추천도서는 「눈물」입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우림북 홈페이지 www.urimbooks.com)

● 원로목사님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고) 전자책(e-book) 및 오디오북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지교회 소식

춘천만민교회(담임 강영식 목사) 창립 6주년 기념예배 및 명예권사 취임
※ 일시: 10월 3일(금) 오후 3시, 강사: 이미경 목사


● 기관 소식

권사회
권사회 예배/ 10월 1일(수) ※ 설교: 당회장 이수진 목사


● 감사드립니다.

강단헌화/ 장로회(꽃꽂이 봉사: 예배국 꽃꽂이부, 시설관리국)
주간 성경구절
자료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