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배안내
  • 설교요약
  • 구역공과
  • 공지사항
  • 주간성구
구역공과
2026-02-27 제9과성령의 열매 (6) 갈 5:22~23
읽을말씀 : 갈 5:22~23  |  외울말씀 : 마 5:16 | 참고 말씀: 마 12:35
교육목표 : 성령 안에서 범사에 선을 추구하며 진리 안에서 선을 좇아 행함으로 어느 곳에서든지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주 안에서 성령을 받지 않은 세상 사람들도 나름대로 선을 분별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즉 자기 양심에 따라 “이것은 선하다. 저것은 악하다.” 하지요.
   그래서 자기 양심에 거리낌이 없으면 나름 선하고 의롭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양심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나는 선하다고 여긴 것이 상대에게는 악할 수 있고, 내게는 악한 것이 남에게는 선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1. 양심이란
   
   그렇다면 ‘양심’이란 무엇일까요? 바로 ‘본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입니다. 사람의 본성은 부모로부터 어떤 기를 받고 태어나는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선한 부모의 기를 받고 태어난 자녀는 비교적 본성이 선합니다. 또 좋은 환경 속에서 선한 것을 많이 보고 들으며 자란 사람은 양심이 선하게 만들어지기 쉽지요. 반면 악한 부모의 기를 받고 태어나 악한 것을 많이 보고 듣고 접하면 본성과 양심이 악해지기 마련입니다.
   가령, 정직의 중요성을 교육받고 자라는 아이는 작은 거짓말에도 양심의 가책을 느낍니다. 하지만 습관적으로 거짓말하며 자란 아이는 큰 거짓말을 하면서도 잘못한 줄도 모르지요. 양심이 그만큼 악에 물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가치관의 영향을 받고 성장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양심은 달라집니다. 사회마다 나라마다, 시대마다 가치관이 다 같지는 않습니다. 왕정 시대에는 노예를 부리며 학대해도 그것을 잘못이라 생각지 않았습니다. 또 40년 전만 해도 우리 사회는 노출이 심한 옷을 입으면 손가락질 받았지요. 그러나 지금은 의식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만큼 시대의 가치관이 달라졌다는 뜻입니다.
   
   
   2. 성령의 열매인 양선의 열매란
   
   세상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기 보기에 선한 것을 추구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으로 선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는 선악과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기준이 항상 동일합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변함없는 진리, 곧 하나님 말씀이 그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진리’를 기준 삼아 행하려는 마음이 바로 ‘양선’입니다. ‘양선(良善)’을 문자대로 풀면 ‘어질고 착하다’는 뜻입니다. 영적으로는 성령 안에서 선을 추구하는 마음, 곧 진리 안에서 선을 좇아 행하는 마음이지요.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는 것처럼, 선을 추구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선이 배어나옵니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선한 마음이 있기에 선행을 베풀지요. 마치 향수를 뿌린 사람에게서 좋은 향기가 나듯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합니다. 그런데 선을 추구하는 마음만 간절하다 해서 양선의 열매가 맺히지는 않습니다. 선을 보고 듣고 반드시 마음에 이루고 행함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0장에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어떻게 양선을 행했는지 잘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마침 한 제사장이 그를 보았으나 그냥 지나쳐 버리지요. 그 뒤에 레위인이 지나가지만 그도 외면해 버립니다. 제사장이나 레위인은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정작 하나님 뜻을 행해야 할 순간에는 행함을 내보이지 못했지요. 그 후 한 사마리아인이 그곳을 지나다가 쓰러져 있는 사람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바로 상처를 싸매 주며 황급히 주막으로 데려가 돌봐 주었지요.
   이튿날 두 데나리온을 주막 주인에게 주며 그를 부탁하며 비용이 더 들면 나중에 와서 지불하겠다고 합니다. 이기적인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그가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내 갈 길도 바쁜데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의 일에 끼어들었다가 시간과 물질을 손해 볼 수도 있습니다. 또 응급 조치는 해 줄 수 있지만 굳이 앞으로의 비용까지 대겠다면서 주막 주인에게 부탁해야 할 책임은 없지요. 그러나 그에게는 선을 추구하며 행하는 양선의 마음이 있었기에 죽어가는 사람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물질이나 시간에 손해를 본다 해도, 아무리 갈 길이 바쁘다 해도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을 차마 버리고 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만약 그가 이유가 있어 그냥 지나쳐 버렸다면 ‘다친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그를 구했어야 했는데’ 하며 내내 마음에 걸렸을 것입니다. 이처럼 양선은 누군가 자신의 발목을 붙잡고 끌어당기는 것처럼, 선을 택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어서 범사에 선을 택해 나가는 마음입니다.
   
   
   3. 예수님의 양선의 마음
   
   마태복음 12장 19~20절에는 예수님의 양선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말씀한 대로 양선의 열매가 가득하고 향기가 진동을 합니다. 선한 일만 하신 예수님을 악한 사람들은 죽이려 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들을 미워하지 않으셨고 하나님의 참 뜻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아무리 악한 자들이 훼방하여도 다투거나 들레지도 않으셨지요. 육의 사람들은 자신을 드러내고 자랑하기 좋아합니다. 나를 알아주기 원하고 대접받고 싶어 하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고 큰 권능을 베풀면서도 들레지 않으셨고 겸손하셨습니다.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할 정도로 걸음걸이, 몸가짐, 언어에도 흠이 없으셨지요. 오직 그 마음에는 지극한 선과 겸손함, 영적인 사랑만이 가득했습니다.
   우리가 양선의 열매를 맺으면 예수님처럼 누구와도 걸리거나 부딪치지 않습니다. 상대의 티나 허물을 들추어내지 않지요. 자신을 드러내 높임 받으려 하지도 않고 경우에 맞지 않는 일을 당한다 해서 불평하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은 상한 갈대도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셨습니다.
   영적으로 ‘상한 갈대’란, 세상의 죄와 악으로 가득 찬 사람을 말합니다. ‘꺼져 가는 심지’란 마음이 심히 악으로 물들어 그 영혼의 등불이 꺼져 가는 사람이지요. 상한 갈대와 꺼져 가는 심지 같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 해도 그 행함을 보면 세상 사람과 다를 바 없고 오히려 성령을 거역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놀라운 권능을 보면서도 여전히 믿지 않고 악을 발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도 끝까지 믿음으로 바라보며 구원받을 기회를 열어 주셨습니다.
   양선의 열매가 맺히면 악을 발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품습니다. 굳이 시비를 따져 상대의 잘못을 드러내거나 꺾으려고 하지 않지요. 진실한 마음으로 선대하여 그들의 마음을 녹이고 감동을 줍니다. 설령 사망의 길로 가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여기까지만 참자!”라고 한계를 두고 선을 넘는다고 해서 외면하는 것도 없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리고자 애쓰지요. 이것이 곧 양선의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양선’의 마음과 다른 성령의 열매와는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가령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준 것은 자비나 구제와 긍휼이 아닌가?” 또 “다투지도 않고 들레지도 않는 마음은 화평과 겸손의 마음이 아닌가?”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어떤 면에 중점을 두었느냐를 보면 됩니다.
   ‘양선’의 열매는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과 선을 좇아 ‘행할 수 있는 힘’에 대한 것입니다. 상대를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는 ‘긍휼’에 초점을 두지 않고, 긍휼히 여겨야 할 상황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선의 마음’에 중점을 두었지요. 또 다투지도 들레지도 않는다는 것은 화평과 겸손의 마음입니다. 이것을 양선에 비유했을 때는 선해서 화평을 깰 수 없는 마음, 인정받으려고 들레기보다는 겸비한 것을 더 좋아하는 선한 마음에 포인트를 둔 것입니다.
   우리가 양선의 열매를 온전히 맺으면 주님의 마음을 닮게 됩니다.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거나 실족시키지 않으며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습니다. 외적으로도 선과 겸손이 풍겨납니다. 주의 교양으로 범사에 존경받을 만하며 걸음걸이나 몸가짐, 언어 습관 등이 온전해지지요. 누가 봐도 존중할 만한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이란 본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을 말합니다.
   
   2. 양선이란 ( ) 안에서 선을 추구하는 마음, 곧 ( ) 안에서 선을 좇아 행하는 마음입니다.
   
   3. ( )는 세상의 죄와 악으로 가득 찬 사람을 말합니다.
   ( )는 마음이 심히 악으로 물들어 그 영혼의 등불이 꺼져 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사마리아’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이자 그 주변을 일컫는 말이다. 이곳에 바알 당이나 다른 종교의 사당들이 있었기 때문에 선지자들은 ‘우상 숭배의 중심지’로 여겼다. 예후는 왕이 된 후 이스라엘 중에서 바알을 멸했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한 사마리아는 여러 번 앗수르의 공격을 받다가 마침내 함락되고 만다. 앗수르 왕은 사마리아에 자국민들을 이주시켜 혼혈정책을 펼친다. 이로 인해 사마리아는 혼혈 민족이 되었다. 유대인들은 이런 사마리아인들을 적대시하며 상종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지난 주 설교요약
2026-02-22 열 재앙(12) - 할례와 성찬예식 - 이수진 목사 창세기 17:9-14
오늘은 <열 재앙> 마지막 시간으로, 유월절 의식에 참여하기 위한 조건인 할례에 대해 설명합니다.

   1. 언약의 표징인 할례
   
   할례란?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백성 중 남자아이가 태어난 지 8일이 되면 성기 끝의 표피를 잘라내는 의식으로서 오늘날의 포경수술과 같습니다.
   왜 태어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으라고 하신 것일까요? 출생 후 세포들이 여린 상태로 있다가 7일이 지나게 되면 환경에 익숙해지기는 하지만 아직 동작을 시작하지 않은 상태라고 합니다. 이때 할례를 행하여 표피를 베어내면 통증이 크지 않고 상처가 빨리 아물지만, 성인이 된 후에는 그만큼 고통이 따르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태어난 지 8일 만에 남자의 성기 끝에 할례를 행하여 위생과 발육에 도움을 주며 언약의 표징을 삼으셨습니다.
   
   
   2. 모세의 할례
   
   출애굽기 4장 24-26절에 “여호와께서 길의 숙소에서 모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시는지라 십보라가 차돌을 취하여 그 아들의 양피를 베어 모세의 발 앞에 던지며 가로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여호와께서 모세를 놓으시니라 그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를 인함이었더라”
   하나님께서 왜 모세를 죽이려 하셨을까요? 모세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때 태어났습니다. 애굽이 이스라엘 민족을 말살하기 위해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죽이도록 했는데 모세의 부모는 아이를 죽이지 않고 숨겨 키웠지요. 석 달을 몰래 키우다가 더 이상 숨길 수 없어 갈대로 엮은 상자에 아이를 넣고 하숫가에 두었는데,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애굽 공주의 눈에 띄어 양자의 신분으로 왕궁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니 할례를 하지 못하였지요.
   애굽의 왕자로 살던 모세는 어느 날 자신의 동족 히브리 사람을 괴롭히던 애굽 사람을 죽였고, 미디안으로 도망하여 제사장의 딸과 결혼 후 양떼를 치는 목자로 40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고 인도하도록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모세는 이때 할례를 받지 않은 상태였기에 하나님의 사자가 그를 죽이고자 했던 것입니다. 할례는 생명과 직결된 것이요, 할례를 받지 않으면 하나님과 상관이 없지요.
   중요한 할례는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요?
   히브리서 10장 1절에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여기서 율법은 구약이며 장차 오는 것은 신약,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복된 소식을 말합니다. 구약 시대에 육적인 행위로 구원에 이르렀던 할례와는 달리 영적인 할례 곧 마음의 할례를 해야 합니다. 골로새서 2장 11절에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하신 대로입니다.
   
   
   3. 영적인 의미의 할례
   
   로마서 2장 28-29절에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하셨습니다. 육신의 할례는 하나의 그림자요, 신약 시대에 와서는 실체로서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성령을 받지 못했으므로 비진리를 버리기가 어렵기에 육신의 할례를 통하여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나타내었습니다. 하지만 신약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성령이 오셔서 진리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므로 비진리를 버릴 수 있지요. 마음의 할례를 하는 것이 곧 구약 시대의 육신의 할례를 영적으로 지키는 것일 뿐 아니라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 됩니다.
   
   마음의 할례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예레미야 4장 4절에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마음 가죽을 벤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무엇을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 하신 것을 그대로 순종하여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미워하지 말라, 판단 정죄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등 하지 말라 하신 것은 하지 않습니다.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안식일을 지키라, 계명을 지키라” 등 버리라 하신 것은 버리고, 지키라 하신 것은 지키는 것이지요. 또한 “전도하라, 기도하라, 용서하라, 사랑하라” 등 하라 하신 것을 행해 나감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모든 비진리, 악, 불의, 불법, 어두움을 몰아내고 마음을 깨끗하게 하여 진리로 채워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모세 당시 유월절 의식은 출애굽 하기 직전에 장자의 재앙을 모면하기 위한 의식이었습니다. 유월절 의식에 참여했다고 해서 영원히 구원받은 것은 아니지요. 영원한 구원을 받았다면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가 천국을 의미하는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출애굽 당시 20세가 넘은 성인들은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가나안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가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도 온전히 구원에 이른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의 할례를 행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여 성령을 받았다고 해서 마음이 온전히 깨끗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에 이르기 위한 마음의 할례를 계속해 나가야 하지요. 마음의 할례를 통해 더럽고 추한 죄악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씻어내고 성령의 검으로 잘라내야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또한 마음의 할례를 해야 하는 것은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함입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께 속한 선한 영들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영들 사이에 치열한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말씀하십니다.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마음의 정결함이 필요합니다. 요한일서 3장 21-22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정결한 마음을 이룰 때 하나님 앞에서 책망할 것이 없으니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을 수 있지요.
   
   
   4. 유월절과 성찬예식
   
   할례를 행할 때, 유월절 의식에 참여할 수 있는데 이는 오늘날의 성찬예식과도 결부됩니다. 유월절이 어린양의 고기를 먹는 것이라면, 성찬예식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의미하는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것이지요. 요한복음 6장 53-54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하셨습니다.
   여기서 ‘인자’는 예수님을 가리키며 ‘인자의 살’은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이요. ‘인자의 살을 먹는다’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양식 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음식물을 소화하려면 수분을 섭취해야 하는 것처럼 인자의 살을 먹을 때도 인자의 피를 함께 마셔야만 소화를 잘 시켜 영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자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믿고 그 말씀대로 지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지요.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 삼고 행해 나갈 때 진리가 마음에 들어와 양분으로 흡수되고, 죄악은 배설되므로 진리의 사람이 되어 영생을 얻게 됩니다. 예를 들어 ‘사랑’이라는 말씀을 마음에 양식 삼아 행하면, 말씀이 양분으로 흡수되면서 반대되는 미움이나 시기, 질투의 마음은 찌꺼기로 배설되고 온전한 사랑의 마음이 됩니다. 또한 우리 마음 안에 화평과 의를 채워 나갈 때 다툼이나 분쟁, 원망과 시비, 불의 등이 물러가게 되지요. 이와 같은 원리로 다른 모든 악을 마음에서 버리는 만큼 깨끗한 마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출애굽 당시 할례받은 사람은 유월절 의식에 참여할 자격이 주어져 장자의 재앙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의 자녀로 인침받은 것이니 성찬예식에 참여할 자격이 됩니다. 유월절은 장자의 재앙을 면하기 위한 순간의 구원이었기에 온전한 구원을 위한 광야의 행진이 필요했듯이, 성령을 받아 성찬예식에 참여할 수 있다 해도 이후로 영원히 구원받기 위한 과정이 필요합니다.
   만일 범죄 하였다면 거룩하신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성찬예식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자신을 돌아보아 죄를 회개하고 깨끗한 중심이 되어 성찬예식에 참여해야 하지요. 고린도전서 11장 27-29절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물세례를 받은 사람만이 성찬예식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누구든지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되지요. 따라서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아직 물세례를 받지 않았다 해도 죄를 회개하고 성찬예식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3-25절에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습니다.
   유월절과 성찬예식의 참 의미를 깨달아 열심히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온전히 마음의 할례를 이루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소망 아름다운 천국에 이르러 떳떳이 주님의 품에 안기며, 후회와 죄송함이 아니라 감사와 희열로 가득한 구원의 날을 맞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6년 2월 22일 주일)
* 사회: 임학영 목사
개회찬송 36장 1절
성시교독 43번
찬송 447장
기도 이미영 목사
성경봉독 에베소서 6:10~18
찬양 이 믿음 더욱 굳세라
임마누엘성가대
설교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1)
당회장 이수진 목사
찬송 348장
주일 저녁예배 (2026년 2월 22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정진영 목사
대표기도 장정미 전도사
성경봉독 고린도전서 1:18~21
특송 3대대 20교구 특송팀
설교 고린도전서 강해(5) -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
당회장 이수진 목사
수요 예배 (2월 25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성기용 전도사
대표기도 윤영자 전도사
성경봉독 요한일서 4:18
설교 간증 설교(2) -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이미경 목사
금요 철야예배 (2월 27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조대희 목사
대표기도 김순오 장로
성경봉독 창세기 5:21~24
찬양 샬롬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창세기 강해(92) - 에녹①
이재록 원로목사
새벽 예배
인도 정현진 목사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6-02-22 2026년 2월 넷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당회장님 동정

● 당회장님의 신앙칼럼이 「동아일보」, 「중앙일보」, 「기독선교신문」, 「서울뉴스통신」, 「동방일보」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교회 소식

● 만민뉴스 중국어(632호), 불어(160호) 신문을 온라인으로 발행하였습니다.
(만민뉴스 홈페이지 www.manminnews.com)

● 2026년 제2회 정기원로회가 오늘 저녁예배 후 3층 성전에서 있습니다.

● 2025년도 각 부문 우수상 시상식이 오늘 저녁예배 시 있습니다. 해당되시는 분은 지정석에 앉아 주시기 바랍니다.

● 태국 치앙라이 만민교회 창립 기념예배 출장이 있습니다.
※ 출장자: 강사_이미영 목사 외 1명
※ 출장일: 2월 27일(금) ~ 3월 4일(수)

● 필리핀 세부 만민교회 창립 16주년을 맞아 선교출장이 있습니다.
※ 출장자: 강사_이미경 목사 외 1명
※ 출장일: 2월 27일(금) ~ 3월 4일(수)

● 만민문화아카데미 제7기를 개강합니다. 강좌는 보컬(찬양), 통기타, 헤어메이크업, 아나운서, 캘리그래피, 무용, 꽃꽂이, 선교 영어, 선교 중국어, 수화 등 10개 강좌 운영 예정이며, 최소 수강인원은 5명입니다. 수강 신청은 2월 25일(수)까지 교회 홈페이지 또는 모바일앱에서 할 수 있습니다.

● 사랑하는 성도님들의 행복한 신앙생활을 위해 만민라디오 「좋으신 하나님」 101회를 만민중앙교회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오늘 저녁예배 후 업로드합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관심과 청취 바랍니다.
※ 101회 라디오 진행자: 이미경 목사

● 교회 직원(주의 종, 레위) 조회가 2월 23일(월) 오전 9시 30분, 3층 성전에서 있습니다.
조회 후 성전 대청소가 있습니다.

● 원로목사님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고) 전자책(e-book) 및 오디오북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박지민2 성도(1가나안, 11교구)
※ 2월 28일(토) 오전 11시, 송파구 올림픽로 35다길 42 「더베네치아 3층 단독홀」

박주현10 성도(2청년/ 21교구, 빛소금 박용준 집사. 2-1여 최진3 권사의 자녀)
※ 2월 28일(토) 낮 12시 20분, 인천 계양구 경명대로 1108 「CN웨딩홀 계산점 5층 미엘르홀」

김현8 성도(1가나안/ 18교구, 3-3남 김춘봉 성도ㆍ2-4여 이진숙9 집사의 자녀)
※ 2월 28일(토) 오후 6시, 강남구 언주로 508 「상록아트홀 5층 아트홀」


● 감사드립니다.

강단헌화/ 해외지교회(꽃꽂이 봉사: 예배국 꽃꽂이부, 시설관리국)
주간 성경구절
2026-02-22
[주일]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막 10:27]
2026-02-23
[월요일]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마 25:21]
2026-02-24
[화요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 4:19]
2026-02-25
[수요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 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2026-02-26
[목요일]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살후 3:5]
2026-02-27
[금요일]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고전 15:19]
2026-02-28
[토요일]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요일 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