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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공과
2026-03-27 제13과팔복(1) 마태복음 5:3
읽을말씀 : 마태복음 5:3  |  외울말씀 : 마태복음 5:3 | 참고 말씀: 요한일서 2:15~16
교육목표 : 가난한 심령이 되어 천국을 소유할 뿐만 아니라 가정, 학교, 일터 등 모든 곳에서 만사형통한 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세상 사람들은 부유하고 명예와 권세가 있으며, 자녀들이 효도하고 건강하며 가족이 화목하면 복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복’을 모두 누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물질이 많아도 건강을 잃어 걱정하고, 명예 권세가 있지만 가정이 불화하여 속상해합니다. 또 불의의 사고를 당해 비참하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았다 해도 죽으면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준비를 하지 않고, 이 땅에서 먹고 마시며 잘 사는 것에만 삶의 목표를 둔다면 무서운 지옥에 떨어지고 말지요. 그러니 이 땅에서의 ‘복’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과연 참된 복은 무엇일까요?
   마태복음 5장을 중심으로 참된 복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장 3절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말씀합니다. 이 세상에 가난을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당연히 부유한 것이 좋지요.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시는 것일까요?
   여기서 ‘가난하다’는 것은 물질이 없어 가난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마음이 가난한 것을 뜻하지요. 다시 말해,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악이 없고 선한 마음으로, 아무 욕심이 없어 자기를 비울 줄 아는 중심 상태’를 말합니다. 이렇게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심령을 채울 영의 것을 사모하기에 복음을 쉽게 받아들입니다. 전도해도 쉽게 받아들이고, 말씀을 들으면 그대로 순종하니 구원받기도 쉽지요.
   반면 마음이 부유한 사람들은 세상 욕심으로 마음이 가득 차 있어 전도를 하면 거부합니다. “사업이 바빠서요. 공부해야 해요. 돈 벌어야 해요. 나중에 한가해지면 갈게요.” 합니다. 이렇게 세상의 부, 명예, 권세로 그 눈과 마음이 가득 차 있으니 하나님의 살아 계신 증거를 보여 주어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6장을 보면 심령이 부유한 부자와 심령이 가난한 거지 나사로가 대조적으로 나옵니다. 부자는 호의호식하며 날마다 잔치를 베풀 정도로 풍족한 삶을 살았기에 마음까지 부요해져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거지 나사로는 비록 부자의 대문 앞에서 구걸하며, 그 상처를 개가 핥는 불쌍한 삶을 살았어도 심령이 가난했기에 하나님을 믿었지요.
   그런데 두 사람이 죽은 후에는 형편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나사로는 아브라함 품에 안겨 참된 평안과 안식을 누렸습니다. 반면 부자는 ‘아랫음부’에 떨어져 뜨거운 불꽃 가운데 고통받으며 나사로의 손가락 끝에 물 한 방울이라도 찍어 자기 혀를 서늘하게 해 달라고 애걸합니다. 그러니 날마다 잔치를 즐겼던 부자와 비록 구걸하며 살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였던 거지 나사로 중에서 진정 복 있는 사람은 누구이겠습니까?
   혹자는 “심령이 가난해지려면 거지 나사로처럼 가난하게 살아야 합니까?”라고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비유는 거지와 같이 가난한 삶을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영원한 내세에서는 영생과 영벌이 있기에, 우리가 영생을 누리기 위해 반드시 가난한 심령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심령이 되어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녀들에게 이 땅에서도 건강의 복, 물질의 복, 머리 되는 복 등 만사형통의 복을 주십니다. 또한 어떤 부귀영화와도 바꿀 수 없는 참되고 영원한 복 곧 천국을 주시지요.
   
   
   2. 가난한 심령이 되어 천국을 소유하려면
   
   1)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버려야 합니다
   요한일서 2장 15~16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말씀합니다. 따라서 세상 것들로 채워 있던 우리 마음을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으로, 천국의 소망으로 온전히 채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육신의 정욕을 버려야 합니다. 육신의 정욕이란 죄를 지으려는 마음의 속성이지요. 다시 말해 ‘죄를 짓고 싶은 마음’입니다. 마음속에 미움, 혈기, 욕심, 음욕, 시기, 교만 등 온갖 악이 있으면 죄를 짓고 싶어지지요. 가령, 초신자가 술을 끊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술을 마시고 싶다는 마음을 온전히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술자리에 가면 술을 마시고 싶은 강한 욕구가 일어납니다. 이러한 육신의 정욕이 사람을 충동하여 술을 마시려는 마음을 갖게 하고 술을 마시도록 만듭니다. 또 판단 정죄하는 죄성이 있으면 남의 소문을 듣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며 수군수군합니다.
   
   다음으로, 안목의 정욕을 차단해야 합니다. 안목의 정욕이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을 통해 마음이 동요되고 육의 것들을 추구하게 만드는 속성을 말합니다. 눈이 있어 보고 귀가 있어 들으며 발이 있어 간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보고 들으며 어디에 있는지가 우리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한 번 스쳐가며 본 것이라 해도, 아무 의미 없이 보고 들었다 해도 그것이 느낌으로 입력되어 다시 떠오르기도 하고, 또 보고 싶고 취하고 싶어집니다. 문제는 이렇게 보고 듣고 접한 것들이 죄에 속한 것, 어둠에 속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가령, 음란물을 한 번 봤는데 그것이 공부를 방해하며 또 보고 싶어집니다. 이처럼 안목의 정욕은 내 안에 비진리를 발동시킴으로 육신의 정욕을 불러일으키는 주범이 됩니다. 그러니 진리가 아니면 보거나 듣지도 말고 그런 곳에 가지도 말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생의 자랑’을 버려야 합니다. 이생의 자랑은 현실의 모든 향락을 좇아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 자랑하는 속성입니다. 이생의 자랑이 있으면 자신이 가진 것, 부, 명예, 권세, 재능, 외모, 지식 등을 자랑하며 드러내고 싶어합니다.
   야고보서 4장 16절에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말씀하지요. 이생의 자랑이 있으면 자신이 가진 것으로 남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교만이 나옵니다. 이는 가난한 심령인 섬김, 희생, 사랑과는 거리가 먼 마음이 부유한 모습이지요. 그러니 천국의 아름다움과 소망은 없고 이 세상 것들이 더 좋아 보이고 가치 있게 느껴집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충성하기도 싫고 그저 교회만 왔다갔다 하는 쭉정이 신앙생활에 머무르지요.
   혹여 여러분은 나를 자랑하고 싶고 세상 것에 욕심은 있지 않은지, 은근히 인정받고 높여 주기를 바라지는 않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울 때, 천국의 소망으로 가득 채워 주십니다.
   
   2)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8장 3절에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영적인 어린아이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영적인 어린아이는 단순하고 순수하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좋은 것을 알려 주면 쉽게 받아들이고 자존심이나 자기 고집이 없어 지적을 하거나 권면을 하여도 쉽게 인정하지요. 잘못한 것에 대해 바로 뉘우치고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힘씁니다. 그러나 세상에 물들어 순수함이 사라지면 죄를 범하면서도 무감각해지고 권면을 받아도 인정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죄책감도 없습니다. 주님을 영접한 후에도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를 지어 구원의 길에서 멀어지기도 하지요.
   또한 영적인 어린아이는 선악 간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선한 것을 보면 쉽게 감동받아 눈물을 흘리지만 악은 몸서리치도록 싫어하지요. 하나님께서 악이라 하시면 마음에서부터 싫어지고 어찌하든 범죄하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서 성령님을 통해 신속히 변화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이렇게 가난한 심령이 되기 위해서 항상 겸손히 낮아지고, 말씀을 통해 자신의 악을 발견하며, 불같은 기도를 통해 죄악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그럴 때라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 자녀가 되어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고, 이 땅에서도 부와 명예, 건강, 물질 등 축복을 받는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물질이 없어 가난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 )이 가난한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 )이 없고 선한 마음으로 아무 욕심이 없어 ( )를 비울 줄 아는 중심 상태를 말한다.
   
   2. 육신의 정욕이란 ( )를 지으려는 마음의 ( )이다. 다시 말해 죄를 짓고 싶은 마음이다. 마음속에 온갖 악이 있으면 죄를 짓고 싶어진다.
   
   3. 안목의 정욕이란 ( )으로 보고 ( )로 듣는 것을 통해 ( )이 동요되고 육의 것들을 추구하게 만드는 속성을 말한다.
   
   4. 이생의 자랑은 현실의 모든 향락을 좇아 ( )를 드러내기 위해 ( )하는 속성이다. ( )이 있으면 자신이 가진 것, 부, 명예, 권세, 재능, 외모, 지식 등을 자랑하며 드러내고 싶어한다.
   
   
   ● 알고 넘어갑시다!
   
   지옥의 대기 장소인 ‘아랫음부’
   창세 이래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영혼들이 지옥으로 떨어지기 전 형벌을 받으며 머무는 장소이다. 이들은 인간 경작이 마쳐지고 백보좌 대심판 후에 죄의 경중에 따라 마침내 지옥의 불못이나 유황못으로 떨어진다.
지난 주 설교요약
2026-03-22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4) - 이수진 목사 에베소서 6:10-18
하나님의 전신갑주 중에서 오늘은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신”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진리의 허리띠와 의의 흉배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진리의 허리띠는 하나님의 말씀을 힘써 듣고 무장하여 진리 안에 든든히 서는 것이라 했지요. 그런 사람은 어떤 시험이나 어려움이라 해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넉넉히 승리할 수 있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또 의의 흉배를 붙여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여,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이라 했습니다. 우리의 생명을 지키며 참된 의인이 되니 마귀의 어떤 궤계도 승리할 수 있다 말씀드렸지요.
   원수 마귀 사단은 주님을 믿어 구원받은 영혼들을 어찌하든 구원에서 떠나게 하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주님 안에 깊이 뿌리 내리지 않은 영혼들은 사단 마귀의 공격에 쉽게 넘어질 수밖에 없지요. 우리 성도님들은 “내가 만난 하나님, 나의 구세주이신 주님”에 대한 믿음이 조금도 흔들림 없는 신앙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많은 교인이 주님을 만나고 성령 체험을 했어도 마음의 할례, 다시 말해 “의의 흉배를 붙이는” 일을 등한시하면 하나님과 주님에 대한 믿음도 사라지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항상 깨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여야 합니다. 군인들이 소지한 총을 수시로 점검하듯이 자기의 생각과 마음, 행함을 진리로 돌아보며 성령의 충만함을 힘입을 때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지요.
   이 시간은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신”에 대해 말씀드릴 때 더 온전한 영적 장수로 무장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엡 6:15)
   
   출애굽기 3장 5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출애굽의 지도자로 세우시기 위해 부르실 때 하신 말씀이지요. 사람에게서 가장 더러운 곳은 악이 담겨 있는 마음이지만, 육으로 볼 때는 가장 더럽고 냄새나는 곳이 발이요, 우리가 신고 있는 신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말씀하시며, 더럽고 냄새나는 것을 가지고는 가까이할 수 없는, 깨끗하고 거룩하신 분임을 알려 주십니다. 즉 마음의 할례를 하여 죄를 벗어버리고 악이 없는 깨끗한 마음으로 진리 안에 거해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진리의 말씀 안에 거하므로 성령의 밝은 음성과 주관과 인도를 받아 나갈 수 있다는 말이지요.
   
   
   1. 주님을 믿고 벗어 버려야 할 더러운 ‘죄악의 신’
   
   먼저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설명하는 이유는, 세상에 있을 때 신었던 죄악의 더러운 신을 벗어버려야 비로소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기 전 신었던 신은, 골로새서 3장 8-10절에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말씀하십니다.
   혈기, 악독, 다툼, 판단, 정죄, 수군거림, 거짓 등 죄악 가운데 살던 옛사람과 그 행위가 더러운 신이지요. 이제는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곧 더러운 신을 벗고 복음으로 새롭게 신을 신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이지요.
   
   
   2.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이라 하신 이유
   
   왜 “복음의 예비한 것”이라고 하지 않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이라고 하셨을까요? 이는 우리가 주일을 주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날로서 안식일이라고 하는 이유와 같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주일을 거룩히 지키는 사람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고 봉사하며 하루를 온전히 교회에서 보내도 힘들고 피곤한 것이 아니라 행복합니다. 생명의 말씀인 영의 양식으로 채웠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과 길을 배워 하나님께로 나아가니 주일은 즐거운 날이지요. 또한 주일을 거룩히 지키면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으며 한 주간을 지킴 받으니 복 받는 날이며, 진정한 안식을 누리는 날이 됩니다.
   복음 역시 우리에게 평안을 준다는 의미에서 평안의 복음이라 하신 것입니다. 복음(福音)이란 복된 소리란 뜻으로 우리의 구세주 되신 주님에 대한 소식이며, 나아가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 우리의 본향인 천국에 대한 내용이지요. 이 복된 소식을 알게 되고 믿어졌을 때 감사와 기쁨, 희열이 넘칩니다.
   첫사랑으로 충만했을 때를 생각하면 잘 알 수 있지요. 보이는 이 세상이 다인 줄 알고 죄악 가운데 살다가 지치고 찢긴 심령으로 주님을 만났을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위로와 평안을 얻었습니다. 그러니 먹지 않아도 배부른 것 같고, 좋은 것을 입고 취하지 않아도 행복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었기 때문이지요.
   죄인인 것을 깨달았어도 용서하시는 하나님과 주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구원의 확신으로 넘쳤고 아직 작은 믿음이라도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여기에 깨어 기도하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도 주어졌지요. 이것이 평안을 주시는 복음의 위력입니다.
   그런데 첫사랑을 잃어버리면 어떠합니까? 주일이 되어 말씀을 듣고 죄를 지적받으면 행복하기보다 민망하고 죄송합니다. 진리를 알면서도 행치 않으니, 복음이 평안하기보다 힘들게 느껴지지요. 기도도 잘 안되고 말씀에 은혜도 못 받습니다. 이때 회개하여 잃어버린 은혜와 충만함을 회복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으면 이제 주일에 예배하러 나오는 것도 즐겁지 않습니다. 주일이 안식을 얻는 날이 아니라 힘든 날이 되지요. 이는 복음의 신을 신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음을 듣기만 하라 하신 것이 아니라 복음의 신을 신으라 하셨는데 듣기만 하니 신앙생활이 힘들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3. 복음이 주는 평안을 누리기 위해서는
   
   마태복음 7장 13-14절에 말씀하시듯 우리가 들어가야 할 천국 문은 좁은 문입니다. 이 문으로 가는 길에 때로는 여러 가지 역경과 어려움이 오기도 하고, 믿음이 여릴 때는 좁고 험하게 느껴지기도 하지요. 세상 사람들은 어렵고 힘든 이 길을 선뜻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교회 다니면 포기해야 할 세상의 즐거움이 아깝게 생각되지요. 그러나 막상 복음으로 신을 신은 사람, 즉 진리 안에서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이 길이 결코 힘들고 어려운 길이 아닙니다. 오히려 기쁨과 감사함으로 가는 행복한 평안의 길이지요.
   초대교회 베드로 사도나 바울 사도는 육적으로는 험난한 길을 갔지만 당사자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았습니다. 천국의 소망이 있고, 믿음이 있기에 순교하는 그 순간까지 힘들다 하지 않고 감사함으로 달려갔던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를 힘들고 어렵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아름답고 행복한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이며, 이 땅에서도 행복과 기쁨을 주기 위한 것이지요.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은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평안하고 행복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만약 이 복음으로 신을 신는 것을 ‘평안하다’고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힘들다’ 생각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원수 마귀 사단은 분명히 주변의 세상적인 유혹을 통해 궤계를 부려 올 것입니다. ‘그만큼 했으니 이제는 좀 편하게 신앙생활 해. 적당히 하면 되지, 뭐 그렇게 열심히 신앙생활 할 것 있어? 언제까지 그래야 되는데?’ 이러한 적당주의 신앙생활로 빠지도록 만들어 가는 것이지요. 세상에 대한 미련이나 세상적인 평안함과 즐거움의 유혹을 버리지 못한 사람은 그 궤계에 넘어갈 수가 있습니다.
   요한일서 2장 16절 말씀처럼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자극하여 신앙생활이 힘들고 세상이 좋아 보이게 하지요. 한 번, 두 번, 세상 것을 취하니 결국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원수 마귀가 발을 묶어버립니다. 받았던 은혜도 까먹고, 신고 있던 복음의 신을 벗고, 세상을 향해 달음박질하는 신으로 갈아신게 하지요.
   세상 것을 즐길 때는 ‘그것을 끊으면 무슨 재미로 사나? 허전해서 어떻게 하나?’ 생각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영의 것으로 채우면 됩니다. 기도하고 찬양하며 하나님 말씀을 듣고 읽는다든가, 전도, 심방을 하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충성을 하는 등 영의 것으로 채워야 하지요. 그렇게 보낸 하루는 너무나 기쁘고 행복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위로부터 평안을 주시고 기쁨을 주시는 참 행복이지요.
   세상 오락은 취할 때 잠깐 즐거울 뿐이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은 오랫동안 지속됩니다. 변개하지 않고 주님 안에 거하면 그 평안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될 수 있습니다. 세상 것을 바라보기에 하나님이 주신 행복이 없어지는 것이지, 비진리의 것을 취하지 않고 천국 문을 향해 달려갈 때는 그 행복이 지속될 뿐 아니라 더욱 넘치게 부어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평안을 넘어, 그 행복으로 인해 가슴이 터져 버릴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몸이 날아갈 것 같다고 하지요. 죄의 짐도 없으며,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시고 사랑과 신뢰로 친밀하니, 평안만 가득하고 축복이 넘치게 됩니다. 우리는 천국 가는 길에 있어서 반드시 평안의 복음으로 신을 신어야,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평안만이 넘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때로는 가시를 뿌려 놓을 수도 있고 돌멩이를 뿌려 놓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기만 한다면 아무 문제 될 것이 없지요. 가시나 돌이 해할 수 없으며 어떠한 길이든 힘차게 달려갈 수 있습니다. ‘평안의 복음’은 더러운 신을 벗고 복음으로 새롭게 신을 신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항상 예비 되어 있습니다. 이 평안의 복음의 예비된 것으로 우리만 신을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도 전해서 그들도 함께 신도록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인생이 가시밭길이다.’ 표현하기도 합니다. 세상 삶이 많은 풍파와 어려움에 놓여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복음의 신을 신으면, 가시밭길을 걸어갈 때 발에 상처를 입지 않습니다. 도리어 힘들고 어려운 길, 포장되지도 않은 험난한 길, 돌밭 길, 가시떨기밭 길이라도 복음의 신을 걷고 가면 안전하지요. 하나님이 우리의 신발을 계속 업그레이드해 주실 수 있도록, 신발의 밑창도 튼튼해지고, 더 좋은 가죽으로 입혀질 수 있도록, 항상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서 아름다운 천국까지 평안히 도달하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6년 3월 22일 주일)
* 사회: 장성식 목사
개회찬송 32장 1절
성시교독 50번
찬송 359장
기도 최영자 목사
성경봉독 에베소서 6:10~18
찬양 놀랍고 놀라워
임마누엘성가대
설교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5)
당회장 이수진 목사
찬송 351장
주일 저녁예배 (2026년 3월 22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정진영 목사
대표기도 최성숙 전도사
성경봉독 고린도전서 2:6~9
특송 장지현 자매
설교 고린도전서 강해(9) - 십자가의 도는 하나님의 지혜
당회장 이수진 목사
수요 예배 (3월 25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박광현 목사
대표기도 임금선 전도사
성경봉독 고린도전서 12:1~7
설교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
임학영 목사
금요 철야예배 (3월 27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임학영 목사- 치유집회 -
대표기도 이미영 목사
성경봉독 에스겔 18:21~24
찬양 샬롬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용서하는 마음
당회장 이수진 목사
새벽 예배
인도 임금선 전도사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6-03-22 2026년 3월 넷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당회장님 동정

● 금주 금요 철야예배 시 치유집회를 인도하십니다.

● 3월 23일(월) ~ 25일(수)까지 치유집회를 위한 성령충만 다니엘 철야를 인도하십니다.

● 당회장님의 신앙칼럼이 「동아일보」, 「중앙일보」, 「기독선교신문」, 「서울뉴스통신」, 「동방일보」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교회 소식

● 원로목사님의 저서 오디오북 <생명의 샘>이 교보문고 종교부문 3월 둘째주 주간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습니다.

● 만민뉴스 중국어(633호), 우르두어(121호) 신문을 온라인으로 발행하였습니다.
(만민뉴스 홈페이지 www.manminnews.com)

● 3월 치유집회가 금주 금요 철야예배 시 당회장님 인도로 있습니다. 준비찬양은 오후 10시 40분부터 시작하며 실시간 간증접수를 받습니다.(☎ 02-818-7300)
자세한 사항은 교회 홈페이지와 모바일앱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 치유집회를 위한 「성령충만 다니엘 철야」가 3월 23일(월) ~ 29일(주일)까지 진행됩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참석 바랍니다. 월요일 ~ 수요일까지 생방송으로 진행되며,
준비찬양은 오후 8시 50분부터입니다.

● 부활절(4월 5일)을 맞이하여 학습문답 및 학습식을 실시합니다.
오늘 대예배 후 오후 2시, 3층 성전 앞쪽에서 학습문답이 있습니다.
※ 학습식: 3월 29일(주일) 오후 2시, 3층 성전 앞쪽

● 사랑하는 성도님들의 행복한 신앙생활을 위해 만민라디오 「좋으신 하나님」 105회를 만민중앙교회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오늘 저녁예배 후 업로드합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관심과 청취 바랍니다.
※ 105회 라디오 진행자: 이미영 목사

● 원로목사님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고) 전자책(e-book) 및 오디오북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지교회 소식

진천만민교회 창립 1주년 기념예배 및 권사 취임식
※ 일시: 3월 22일(주일) 오후 3시, 강사: 이미경 목사

속초만민교회 창립 22주년 기념예배
※ 일시: 3월 29일(주일) 오후 3시, 강사: 이미경 목사
※ 성령충만기도회: 3월 28일(토) 저녁 8시


● 선교회 소식

권사회
월례회/ 3월 25일(수) 오후 2시, 3층 성전 (인도: 이미경 목사)


● 감사드립니다.

강단헌화/ 중국2교구(꽃꽂이 봉사: 예배국 꽃꽂이부, 시설관리국)
주간 성경구절
2026-03-22
[주일]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 [잠 22:9]
2026-03-23
[월요일]
악한 눈이 있는 자는 재물을 얻기에만 급하고 빈궁이 자기에게로 임할 줄은 알지 못하느니라 [잠 28:22]
2026-03-24
[화요일]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롬 14:1]
2026-03-25
[수요일]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잠 17:9]
2026-03-26
[목요일]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 [잠 10:12]
2026-03-27
[금요일]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엡 1:18]
2026-03-28
[토요일]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엡 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