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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공과
2026-04-17 제16과팔복(3) 마태복음 5:5
읽을말씀 : 마태복음 5:5  |  외울말씀 : 마태복음 5:5 | 참고 말씀: 시편 37:11
교육목표 : 온유한 자가 되어 많은 사람을 품음으로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큰 권세와 영광을 누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세종대왕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훌륭한 성군으로, 찬란한 민족문화를 꽃피웠습니다. 훈민정음 창제를 비롯하여 과학과 기술의 혁명적인 발전을 이루었고, 의약기술과 음악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토 확장 등 모든 분야에 걸쳐 국가의 기틀을 마련했지요.
   이처럼 세종대왕이 큰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데는 무엇보다도 사랑과 덕으로 어진 정치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변에 훌륭한 인재들이 깃들일 수 있었고, 백성들의 사랑을 받으며 후대에까지 이름이 빛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유한 자에게 어떠한 복을 내려주시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온유한 자란
   
   마태복음 5장 5절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말씀했습니다. 사전에 보면 ‘온유’에 대해 ‘성격이 온화하고 부드러움, 유순함,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듦’이라 정의합니다. 세상에서는 성품이 순해서 쉽게 화를 내지 않거나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고, 또 소극적이고 유약한 사람이나 친절하게 남의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을 ‘온유하다’고 합니다.
   마음속에는 미움이 있고 불편하여도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다투지 않으며, 화가 나지만 꾹꾹 눌러 참고, 따져 묻고 싶지만 겉으론 상대에게 양보하며 부드럽게 대하면 ‘착하다. 온유하다.’ 말하지요. 그러나 이렇게 겉모습만 그럴 듯하게 온유한 것으로는 하나님께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마음에 어떤 불편함도, 싫어함도 없이 선한 마음으로 상대를 부드럽고 따뜻하게 품어 줄 수 있어야 온유하다고 인정해 주시지요. 악한 감정을 품지 않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상대의 기쁜 일에 함께 기뻐하며 슬픈 일에 함께 슬퍼하고 위로가 되어 주는 마음이라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온유한 사람은 자기 생각과 교양에 맞지 않고, 내 성격과 취향에 맞지 않아도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고 품습니다. 악으로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으며 매사에 상대의 입장에서 이해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섬겨 주는 포근한 마음이지요. 이런 온유한 마음은 ‘솜’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솜에 단단한 물체나 돌멩이를 던지면 소리 나지 않고 포근히 감싸 안습니다. 반면 단단한 철판에 돌을 던지면 요란하고 튕겨져 나가지요. 또 유리에 돌을 던지면 “쨍!” 하고 깨져 버립니다.
   온유한 마음은 솜같이 포근하고 따뜻하여 모든 사람을 품어 주는 마음입니다. 악한 사람도, 나를 찌르는 사람도 억지로가 아닌 사랑으로 보듬어 줄 수 있는 마음이지요. 이런 부드럽고 온화한 마음에 ‘덕’을 겸하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온전한 온유’의 마음을 이룰 수 있습니다.
   
   
   2. 온유함을 온전케 하는 덕
   
   ‘덕’이란 사전에 ‘공정하고 남을 넓게 이해하며 받아들이는 마음이나 행동, 마음이 올바르고 사람의 도리에 합당한 일, 인격이 갖추어져 남을 정복시키는 일’이라 설명합니다. 영적 의미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따뜻하고 부드러운 심성을 가졌다 해도 덕이 없으면 온유함의 가치를 온전히 발휘하지 못합니다.
   가령, 마음은 따뜻하고 사랑이 있지만 행동이 거칠고 실수가 많으면 사람들이 깃들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성격이 너무 소극적이어서 남들에게 답답함을 주고, 어떤 사람은 말이 많고 떠들며, 농담을 잘하여 신뢰가 떨어지지요. 대놓고 무시하지는 않지만 상대가 말하고 있는데, 딴청하거나 경청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요.
   이처럼 덕이 없으므로 온유한 마음이 빛을 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온유함이 마음에 이룬 내면적인 것이라면 덕은 외면적인 옷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멋지고 훌륭한 사람이라도 지저분하고 남루하게 옷을 입고 있으면 사람들이 그 가치를 몰라 주고, 지나칠 수밖에 없지요.
   덕을 갖춘 온유함은 마음과 함께 말이나 행동, 모습도 사람들에게 본이 됩니다. 그래서 주변에서 신뢰와 인정을 받으며, 사람들을 치리함에 있어서도 물리적인 힘이 아닌 사랑으로 포용하고 이끌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깃들지요. 이렇게 덕을 갖춘 온유함은 내가 선하게 행동하여 상대를 품는 것뿐만 아니라, 꽃향기에 나비와 벌이 모여들듯 많은 사람이 그 선과 사랑에 감동을 얻고 깃들이게 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얼마나 온유한 마음이 되셨는지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혹여 내가 있는 곳에 소리가 나고 화평이 깨어지지는 않습니까? 만일 모임에 불평하고 고집스런 사람이 있어서 화평이 깨진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먼저 온유한 사람이 되어 그들에게 은혜를 끼치며 감동을 드려 보시기 바랍니다.
   가족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 때문에 불화하고, 아내 때문에 눈치를 봐야 한다 하지 말고, 내가 가족에게 미소가 되기 위해 노력해 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연약하고 악을 행하는 사람이 있어도 외면하지 말고 끝까지 바라봐 줘야 합니다.
   다음으로, 권면이나 지적받을 때 기쁘게 자신을 돌아보며 발전시키는 모습이십니까? 나보다 못한 사람이 말을 해도 중심에서 귀히 여기며 감사하게 받으시는지요? 이런 사람은 어린 소자의 말이라도 귀 기울여 들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능력이 부족하여 실수하는 사람이라도 무시하거나 싫어하지 않고 기다려 주고 계십니까? 다투지 않고, 부드럽고 잔잔하며 쓸데없는 허탄한 말도 하지 않고 꼭 필요한 진리의 말만 내고 계신지요? 온전한 온유를 이룬 사람은 어떤 사람과도 걸림이 되지 않고, 상대의 부족함을 이해하고 포용함으로 많은 사람의 마음을 얻을뿐더러 변화시켜 나갑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기뻐하시는 온유함을 이루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열심히 마음밭을 개간해야 합니다. 거친 밭에서 돌을 골라내고 가시떨기도 뽑아내야지요. 불필요한 것을 걸러내고 거름도 주면서 개간하면 옥토가 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 마음에서 미움, 시기, 질투, 다툼, 판단, 정죄, 교만 등 비진리, 육신의 생각을 벗어 버리면 온유한 마음을 이룰 수 있습니다.
   
   
   3. 온유한 사람에게 임하는 축복
   
   본문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말씀했습니다. 기업이란 “선대로부터 이어오는 재산과 사업 또는 기초가 되는 업”을 말합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온유한 자에게 이 세상에 속한 땅을 기업으로 주신다는 말씀일까요? 아닙니다. 영원한 천국의 땅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혹자는 “구원받아 천국 가면 그만이지. 개인적으로 땅을 꼭 받아야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천국에 가면 이 땅에서 충성한 것만큼 개개인에게 상급이 주어집니다. 어떤 이는 교회만 왔다갔다 하고, 어떤 사람은 전도하고 충성하며 교회를 위해, 성도들을 위해 애통하며 간구했습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생명을 잃기까지 헌신하는 사람도 있지요.
   이처럼 각기 다르게 충성하였는데 똑같은 집에, 똑같은 상급을 주신다면 하나님을 어찌 ‘공평하시며 공의롭다’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공평하시기에 우리가 행한 대로 갚아 주십니다. 바로 자신을 낮추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며 덕을 갖춰 온유함을 이룬 사람이 영혼 구원과 사명 감당에 최선을 다했으니 하늘나라에서 넓은 땅을 주어, 큰 집을 지을 수 있는 터전을 주시지요.
   온유하여 많은 사람을 품고 천국에 이르게 하였으니, 천국에서도 그들이 감사하여 함께 사랑을 나누려고 방문할 텐데, 많은 사람을 맞을 집터도 넓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많은 사람이 마음 중심에서 존경하고 깃들이는 것이 천국에서는 큰 권세가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낮아지고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며 섬기고 희생하였지만, 하늘나라에선 ‘큰 자’의 권세를 누리며, 큰 땅을 소유하게 되지요. 이렇게 주어진 넓은 땅에 이 세상에서 충성으로, 봉사로, 헌금으로 드려진 천국 집의 재료를 가지고, 우리 주님의 지휘 아래 멋지고 아름다운 내 집이 지어집니다. 이 넓은 땅에 정원과 호수, 수영장 등 각종 시설물을 짓게 되지요. 그러나 한 번 받은 천국 땅과 상급은 천국에서 더 이상 늘릴 수도, 나누어 줄 수도, 구입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깨끗이 하고 사랑과 덕으로 많은 사람을 품어 천국에서 큰 자가 되어 많은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유함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3. ( ) 마음은 솜같이 포근하고 따뜻하여 모든 사람을 품어 주는 마음이다.
   악한 사람도, 나를 찌르는 사람도 억지로가 아닌 ( )으로 보듬어 줄 수 있는 마음이다. 이런 부드럽고 온화한 마음에 ( )을 겸하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온전한 온유의 마음을 이룰 수 있다.
   
   
   ● 알고 넘어갑시다!
   
   ‘옥토’란
   땅이 고르고 비옥하여 씨를 뿌리면 싹이 자라 30배, 60배, 100배로 열매를 내는 밭을 말한다. 이러한 마음 밭을 가진 사람은 자기 의와 틀에 매여 있는 단단한 길가밭과 같지 않고 부드럽다.
   또 돌이나 가시떨기 즉 비진리나 육신의 생각이 없기 때문에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으며, 하나님 말씀에 오직 아멘과 예로 순종하기에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다.
지난 주 설교요약
2026-04-12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부활주일) - 이수진 목사 요한복음 11:25-26
부활절을 맞아,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부활과 재림의 소망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즐겁고 행복한 부활주일입니다. 부활절이란 인류를 구원하러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운명하셨다가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다시 살아나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죽었던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것처럼 우리 주님의 부활로 인해 부활에 대한 믿음과 소망이 더욱 견고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죽었던 나사로를 다시 살리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신 예수님
   
   본문 말씀의 배경이 되는 사건은 베다니라는 동네의 나사로라 하는 사람이 죽은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나사로는 예수님을 심히 사랑하고 붙좇았던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라비로 그 가족들이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했으며 편안하게 섬겨 드렸던지 예수님께서 베다니 근방을 지나시는 길이면 이들의 집에 묵으시면서 휴식을 취하기도 하시고 말씀을 가르치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마리아와 마르다가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며 예수님께 급한 전갈을 보내왔는데 그들의 오라비 나사로가 갑자기 병이 들어 위급한 지경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계시던 곳에서 이틀을 더 유하시다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말씀하시며 베다니에 도착하셨을 때는 이미 나사로가 장사 된 지 나흘이나 지났습니다.
   슬픔에 젖어있던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님을 맞으면서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나사로가 살아 있기만 한다면 아무리 중한 병이라도 예수님의 능력으로 고쳐 주실 것을 믿었지만, 이미 죽었으므로 모든 것이 끝나 버렸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와 유대인들이 죽은 나사로 때문에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시며 예수님께서도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보고 “보라 그를 어떻게 사랑하였는가” 하는가 하며, 어떤 이는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속으로 통분히 여기시며 무덤으로 가셔서 “돌을 옮겨 놓으라” 말씀하셨는데, 이때까지도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시려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마르다조차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썩은 냄새가 나나이다” 말할 정도였지요.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고 그들이 순종하여 돌을 옮겨 놓은 것을 보신 후, 눈을 들어 우러러보시고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 후 예수님께서는 큰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명하셨는데, 예수님의 명령에 그대로 순종하여 이미 썩어졌던 나사로의 육체는 순간에 회복되었고, 영혼이 몸으로 돌아와 스스로 무덤 입구에 나타난 것입니다.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으로 싸여 있으니 그 순간 숨을 죽이고 무덤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열광과 환호는 물론 이곳저곳에서 “할렐루야 하나님을 찬송할지어다” 하며 영광을 돌립니다.
   누구보다 나사로의 누이들인 마르다와 마리아는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기쁨으로 달려가 그를 끌어안고 예수님께로 데려와 엎드려 감사를 드리니 슬픔과 애통의 분위기가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큰 잔치로 바뀌었지요. 그 자리에서 영광의 순간을 목도한 많은 유대인은 예수님을 믿었으며, 이 부활의 소식은 순식간에 유대 전역으로 전파되어 하나님께서는 큰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2. 십자가에 죽으신 후 다시 살아나심으로 부활의 소망을 주신 예수님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이 사실을 믿을 때 죽었던 영이 살아납니다. 이것이 영적인 부활이지요. 앞으로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는 주를 믿고 죽은 성도들의 몸이 부활하고, 살아 있는 성도들은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 이것이 육적인 부활입니다. 본문에 “주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요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말씀대로 이뤄지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을 때에는 죽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후,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 하신 말씀처럼, 모든 사람의 영이 죽고 말았지요. 아무 죄와 허물이 없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고, 죽었던 우리의 영을 살리기 위해 대신 죽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며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만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기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뤄드리고자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아무리 구원의 길을 여시기 위함이고,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시는 과정이라 해도, 사랑하는 아들의 고통을 지켜보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받으셔야 했습니다. 누가복음 23장 44절에 “때가 제육 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구 시까지 계속하며” 했고, 마태복음 27장 51절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숨이 끊어지신 그 순간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마음이 심한 고통으로 인해 해조차 빛을 잃고 온 땅이 캄캄해지며 지진이 일어나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로마서 5장 7-8절에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도, 예수님께서도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신 까닭에 이러한 고통을 감내하셨다는 사실을 영원히 잊어서는 안 됩니다.
   
   
   3. 부활의 소망 가운데 승리하는 삶을 살았던 믿음의 선진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를 통해 부활의 모델을 보여주셨고, 또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도 부활하실 것을 여러 차례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영으로 깨우치지 못했던 제자들은 수많은 기적을 보고 들었음에도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예수님이 운명하시자 예수님께 은혜를 받고 붙좇았던 여인들과 제자들은 마치 암흑 속에 갇힌 것과 같았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제자들은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가거나, 슬픔에 빠진 여인들은 하염없이 울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날이 밝으면 예수님의 무덤에라도 가려고 기다리는데 그 밤은 마치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길게만 느껴졌지요.
   그러나 죽음은 죄인에게만 해당합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신 지 사흘 만에 통쾌하게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낙심하여 어깨가 늘어졌던 제자들도, 흑암과 같은 슬픔에 빠졌던 여인들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로는 완전히 변하여 참된 기쁨과 소망으로 가득하였지요. 이제는 죽었다가 다시 사는 부활을 믿게 되었을 뿐 아니라 이전에 예수님께 들었던 모든 말씀은 물론 영원한 생명, 천국의 영광을 약속하신 주님이 재림하실 것도 확고하게 믿어졌습니다.
   십자가를 거꾸로 질 때 베드로의 마음속에도, 펄펄 끓는 기름가마에 던져지는 사도 요한의 마음에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확실한 부활의 소망이 있었습니다.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영원한 생명과 영광의 약속으로 가득한 사도 바울에게는 낙심할 겨를조차 없었습니다. 복음이 전파된 후 오늘날까지 수많은 성도가 배고픔과 목마름, 그리고 생명의 위협까지 감수하면서 예수 이름 까닭에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믿음과 소망을 가진 성도들은 천국의 소망이 넘쳐서 고난에 대한 두려움도 슬픔도 없으며, 오직 불같은 열정과 사자 같은 담대함으로 나아가 복음을 전파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9-20절에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이 말씀대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주님을 따라 우리도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을 소망이 있기에 이 땅의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길 수 있는 것입니다.
   
   
   4. 참 포도나무이신 주님께 붙은 가지가 되어야 부활의 영광에 동참할 수 있어
   
   처음 성령을 받고 구원받는 순간은 기쁨이 가득 넘쳤을 것입니다. 이 기쁨을 끝까지 붙잡고 승리하여 마지막 날을 맞이할 때는 찬송이 온 하늘에 가득한, 말할 수 없이 아름답고 빛나는 형상으로 바뀌어 구름 위로 들리어 올라갈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수고와 눈물을 위로하시고 그 후로는 날마다 잔치를 벌이면서 금은보석으로 화려하게 지어진 천국 집에서 끝없는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지요. 부활의 소망, 다실 오실 주님을 소망하고 사는 사람이 믿음 있는 사람입니다.
   힘든 연단 속에서 정금같이 나오며, 주님께서 상 주심을 믿고 달려가는 사람이 참 포도나무이신 주님께 굳게 붙은 가지가 되어야 주렁주렁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과 재림의 소망이 적은 사람들은 힘든 연단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므로 세상으로 달아나거나 연단을 피하려 합니다. 이처럼 믿음의 길을 포기하거나 성결되는 연단을 거부한다면 더 이상 참 포도나무이신 주님과 연결되지 못하고, 포도나무의 원줄기에서 떨어져 말라 버리는 가지처럼 부활의 소망, 재림의 소망도 사라지지요. 우리는 어떤 순간에도 부활의 영광을 소망하며 죽음이라도 이겨낼 수 있는 강한 영적 장수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골로새서 3장 1절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것을 바라보고 땅엣것을 생각지 말라” 했습니다. 매 순간순간, 부활하신 주님을 생각하며 위엣것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위엣것을 바라보므로 신속하게 성결 되며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지요. 우리 성도님들은 부활의 소망을 굳게 붙드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생명이신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 여러분도 함께 영원한 영광 중에 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6년 4월 12일 주일)
* 사회: 조수열 목사
개회찬송 48장 1절
성시교독 52번
찬송 399장
기도 이미영 목사
성경봉독 에베소서 6:10~18
찬양 주의 크신 사랑
임마누엘성가대
설교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6)
당회장 이수진 목사
찬송 499장
주일 저녁예배 (2026년 4월 12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장성식 목사
대표기도 황미경 전도사
성경봉독 고린도전서 2:12~14
특송 심찬미 자매
설교 고린도전서 강해(11) -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당회장 이수진 목사
수요 예배 (4월 15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김영석 목사
대표기도 류순엽 권사
성경봉독 요한복음 21:15~17
설교 지울 수 없는 은혜
황금란 목사
금요 철야예배 (4월 17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조대희 목사
대표기도 최영자 목사
성경봉독 창세기 6:11~13
찬양 샬롬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창세기 강해(97) - 대홍수 심판②
이재록 원로목사
새벽 예배
인도 윤진영 목사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6-04-12 2026년 4월 둘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당회장님 동정

● 지난 주일 「부활주일 성찬예식」을 집례하셨습니다.

● 당회장님의 신앙칼럼이 「동아일보」, 「중앙일보」, 「기독선교신문」, 「서울뉴스통신」, 「동방일보」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교회 소식

● 만민뉴스 영어(785호), 스페인어(324호) 신문을 온라인으로 발행하였습니다.
(만민뉴스 홈페이지 www.manminnews.com)

● 4월 5일 부활절을 맞아 진행된 수채화 전시와 달걀 꾸미기 콘테스트 소식이 <스타데일리>와 < K뉴스통신>에 소개됐으며, 미용인 선교회의 만민복지타운 미용 봉사 소식이 <스타데일리>와 < ESG 경제>에 보도됐습니다.

● 오늘 저녁예배시 부활절 달걀 꾸미기 콘테스트 시상식이 있습니다.

● 사랑하는 성도님들의 행복한 신앙생활을 위해 만민라디오 「좋으신 하나님」 108회를 만민중앙교회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오늘 오후 5시에 업로드합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관심과 청취 바랍니다.
※ 108회 라디오 진행자: 이미영 목사

● 원로목사님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고) 전자책(e-book) 및 오디오북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지교회 소식

청주만민교회 창립 27주년 기념예배
※ 일시: 4월 12일(주일) 오후 3시, 강사: 이미경 목사

진주문만민교회 창립 28주년 기념예배
※ 일시: 4월 19일(주일) 오후 3시, 강사: 이미경 목사

공주만민교회 창립 25주년 기념예배
※ 일시: 4월 19일(주일) 오후 3시, 강사: 이미영 목사


● 감사드립니다.

강단헌화/ 중국 3교구(꽃꽂이 봉사: 예배국 꽃꽂이부, 시설관리국)
주간 성경구절
2026-04-12
[주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 3:9]
2026-04-13
[월요일]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요 6:48]
2026-04-14
[화요일]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딤후 3:15]
2026-04-15
[수요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 3:16]
2026-04-16
[목요일]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벧전 1:15]
2026-04-17
[금요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요 6:56]
2026-04-18
[토요일]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요 6: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