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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공과
2026-05-01 제18과팔복(5) 마태복음 5:7
읽을말씀 : 마태복음 5:7  |  외울말씀 : 마태복음 5:7 | 참고 말씀: 히브리서12:6
교육목표 : 선한 긍휼의 향기로 많은 사람에게 위로와 생명을 주며 하나님의 축복하심 가운데 풍성한 삶을 영위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마태복음 5장 7절에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말씀했습니다. ‘긍휼?의 사전적 의미는 ‘가엾게 여긴다, 불쌍하게 생각한다’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의미는 ‘누가 범죄하거나 자신을 힘들게 할 때, 중심에서 용서하고 기도해 주며 사랑으로 권면해 주는 마음’을 뜻하지요. 이는 성령의 열매 중 양선과 비슷하지만 이보다 더 깊은 차원입니다. 양선은 악이 전혀 없으며 오직 선만을 추구하는 마음이지요. 이런 양선의 마음이 행함으로 나타나되, 상대를 변화시킬 수 있는 더한 사랑으로 나타나는 것이 긍휼입니다.
   
   
   1. 한없는 용서의 긍휼
   
   하루는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라고 질문합니다. 베드로의 생각에는 일곱 번씩이나 용서해 준다면 크게 관용을 베푼 것처럼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마 18:22) 하시지요. 이는 70번씩 7번 즉 490번만 용서해 주라는 뜻이 아닙니다. 7은 완전수로, “일흔 번씩 일곱 번”은 완전한 용서, 무한대의 용서를 베풀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비유를 들어 용서의 긍휼에 대해 깨우쳐 주셨습니다.
   어떤 임금에게 ‘일만 달란트’를 빚진 종이 있었는데 그에게는 갚을 힘이 없었습니다. 당시 한 달란트는 6천 데나리온으로 노동자가 6천 일, 즉 16여 년간을 꼬박 일해서 모은 품삯에 해당합니다. 오늘날 하루 노동자의 품삯을 5만 원으로 계산한다면 한 달란트는 3억 원에 해당하지요. 그러니 일만 달란트라고 한다면 3조 원이라고 하는 어마어마한 액수입니다. 그런데 임금이 아내와 자녀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라도 빚을 갚으라고 합니다. 종은 엎드려 절하며 갚을테니 참아 달라며 사정하지요. 결국 임금이 불쌍히 여겨 모든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이처럼 엄청난 빚을 탕감받고 나오던 종이 자신에게 ‘일백 데나리온’ 빚진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데나리온은 로마의 화폐 단위로 일반 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합니다. 품삯을 5만 원으로 계산할 경우 일백 데나리온은 500만 원 정도의 금액에 불과합니다. 일만 달란트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는 돈이지요.
   그런데 일만 달란트 탕감받은 종이 자신에게 빚진 사람의 목을 잡고 “빚을 갚으라!”며 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이 사실을 안 임금이 심히 노하여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며 감옥에 가두고 말지요.
   우리도 이와 같습니다. 죄로 인해 사망으로 갈 수밖에 없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값없이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상대의 작은 잘못 하나를 용서하지 못하고 판단 정죄한다면 얼마나 악한 모습이겠습니까.
   혹여 자신이 상대로 인해 불이익을 당했다 해도 싫어하고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고 포용할 때, 많은 사람을 품을 수 있습니다. 긍휼의 마음이 있다면 누구를 미워하거나 감정을 품지 않습니다. 설령 상대가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않은 일을 행해도 징계하기보다는 먼저 사랑으로 권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권면할 때도 내 생각과 기준에 맞지 않으므로 불편한 마음으로 찌르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을 사랑의 권면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아무리 진리의 말씀을 한다 해도 사랑으로 하지 않으면 상대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2. 사랑을 담은 징계의 긍휼
   
   이처럼 용서의 긍휼이 있는 반면 상황에 따라 긍휼이 징계의 형태로 나타나는 징계의 긍휼도 있습니다. 징계의 긍휼 역시 미움이나 정죄함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근본은 사랑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랑받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징계도 따르고, 그렇게 해서라도 죄에서 돌이켜 진리대로 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6~8절에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자녀가 무슨 잘못을 했을 때, 이를 바로잡는 것이 사랑이라 해서 처음부터 매를 들어 때리는 부모는 드물 것입니다. 자녀가 중심에서 뉘우치며 눈물로 회개한다면 “용서해 줄 테니 다음에는 절대 그러지 말아라.” 하고 따뜻하게 안아 주게 되지요.
   그런데 자녀가 말로는 회개한다 하면서 계속하여 잘못을 되풀이한다면 마음이 아프더라도 징계의 매를 들어서라도 마음 깊이 깨우칠 수 있게 해 줘야 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더 이상 빗나가기 전에 징계를 해서라도 돌이키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같은 징계라도 사랑이 없으면 긍휼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이웃집 아이가 물건을 훔쳤을 때, 아이가 중심에서 용서를 빈다면 선한 사람은 긍휼히 여겨 용서해 줍니다. 하지만 악한 사람은 자신에게 손해를 입혔다며 혈기를 내고, 아이를 책망하거나 심지어 용서를 빌어도 처벌을 요구하지요. 또한 처벌하지 않는다 해도 잘못을 전하거나 선입견을 가지고 바라봅니다.
   이러한 징계는 미움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긍휼이 아닐뿐더러 결코 상대를 변화시킬 수도 없습니다. 비록 상대가 잘못을 범했다 해도 그 사람의 입장과 장래를 생각하여 사랑으로 징계할 때라야 징계의 긍휼에 속하지요.
   성경에는 믿음의 형제가 범죄했을 경우 진리로 권고하고 징계하는 과정이 나옵니다(마 18:15~17). 믿음의 형제가 죄를 지었을 때 주변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당사자에게 사랑으로 권면하여 돌이키게 해야 합니다. 만일 권면을 듣지 않으면 그 사람이 속한 모임의 윗분에게 말하여 돌이키게 해야지요. 그래도 듣지 않는다면 교회에 알려서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는다면, 세상 사람과 같이 여기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성경대로 하되 어떤 범죄라도 사람을 판단 정죄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사랑의 긍휼을 베풀어야 우리도 하나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올바른 구제의 긍휼
   
   하나님의 자녀라면 어려움 중에 있는 사람들을 돌볼 줄 아는 구제의 긍휼을 행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믿음의 형제가 가난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말로만 안타까워하고 행함이 없다면 긍휼이라 할 수 없습니다(약 2:15~16). 진정한 구제는 형제가 어려울 때 내 것을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혹자는 “마음은 간절하지만 나도 가진 것이 없는데 어떻게 도와줍니까?”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활이 어려워도 자녀가 굶고 있으면 가만히 있을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의 형제에게 내 자녀와 같이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누가 어렵다고 무턱대고 구제하는 것은 가하지 않습니다. 범죄하여 징계를 받아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을 구제하거나, 게을러서 놀고 돈만 있으면 도박하고 술 마시는 사람을 구제한다면 죄를 짓게 도와주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지 못한 구제는 축복이 막히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지요.
   따라서 상대가 어렵다고 해서 무조건 구제하며 긍휼을 베풀 것이 아니라, 잘 분별하여 구제하고도 어려움을 당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4. 긍휼히 여기는 사람에게 임하는 복
   
   긍휼을 베푸는 사람에게 임하는 축복은 무엇일까요? 마태복음 5장 7절에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하신 말씀대로 긍휼히 여김을 받게 됩니다. 설령 자신을 힘들게 하고 피해를 입힌 사람이라 해도 용서하고 긍휼히 여기면, 자신이 어려움을 당하게 되거나 실수로 상대에게 피해를 입혔을 때,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시고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또한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긍휼히 여길 때, 하나님께서는 부요하고 강건한 축복을 더해 주십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허물을 용서하시고 부족함이 없도록 채워 주시며, 연약함을 강건하게 바꾸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긍휼이 여기는 사람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는 축복인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의 영적인 의미는 누가 범죄하거나 자신을 힘들게 할 때, 중심에서
   용서하고 기도해 주며 사랑으로 권면해 주는 마음을 뜻한다.
   
   2. 긍휼을 베푸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은 과연 무엇일까요?
   
   
   ● 알고 넘어갑시다!
   
   ‘불순종한 요나를 도왔다가 어려움을 당한 경우’
   강대국 앗수르 제국의 수도 니느웨는 그 악독이 하나님 앞에 상달될 정도로 컸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 뜻을 외치라고 명하신다.
   그런데 요나는 북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적국 앗수르가 망하기를 원했기에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니느웨와 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배를 타고 간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바다에 대풍을 내리셨고, 요나가 탄 배는 거의 난파 지경에 이르렀다. 배에 탄 사람들은 이 재앙이 누구 때문인지 알아보기 위해 제비를 뽑았는데 요나가 뽑혀 바다에 던져지고 만다.
   그러므로 긍휼을 베푼다 해도 하나님의 징계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돕는다면 함께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 지혜롭게 행해야 한다.
지난 주 설교요약
2026-04-26 공부 잘하는 비결(1) - 이수진 목사 약 3:17-18, 잠 9:10
오늘부터 몇 주 동안 ‘공부 잘하는 비결’에 대해 설교합니다. 학생들뿐 아니라 성도님들의 신앙생활에도 매우 유용할 것입니다.

   2026년을 시작한 지도 수개월이 흘렀습니다. 여러분은 새해를 맞으며 어떤 다짐과 계획들을 세우셨는지요? ‘올해에 이것만큼은 반드시 이뤄야겠다’ 하며 나름대로 1년 목표를 세우셨을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의 경우 아마 대부분 그 목표 중에 ‘성적 향상’이 들어 있을 텐데, 잘 실천하고 있습니까? 오늘부터 몇 주 동안 ‘공부 잘하는 비결’에 대해 설교합니다.
   
   
   1. 공부 잘하는 비결은 전 성도에게 유용
   
   요즘은 새로운 지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옵니다. 세상 사람들은 생존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하지요. 직장에 다니시는 분들은 승진 시험을 비롯해서 갖가지 자격시험을 보기도 합니다. 자기 사업을 하는 분들은 경쟁력을 가지려면 새로운 정보와 신기술을 열심히 익혀야 하지요. 주부들은 자녀들을 잘 양육하고 교육하려면 때로는 자녀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음식을 맛있게 요리하는 법도 알아야 하고 살림을 알뜰하게 꾸리려면 좋은 정보도 많이 알아야 합니다.
   이처럼 공부 잘하는 비결은 여러 분야에 유용합니다. 무엇보다도 신앙생활에 매우 유용하지요. 직분을 떠나서 모두가 하나님 나라의 일꾼입니다. 능력 있는 일꾼이 되려면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합니다. 영적인 지식과 능력을 갖추는 것은 기본이고 영에 속한 육의 분야들도 부지런히 갖춰야 하지요. 말씀을 지식으로도 무장해야 합니다. 레위족이나 특별한 달란트로 충성하는 분들은 사명을 더 잘 감당하려면 각 분야의 지식을 쌓으며 실력을 키워야 합니다.
   오늘부터 증거하는 이 말씀을 확실한 비결로 믿고 그대로 적용하면, 성공의 지름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무엇을 목표로 삼든지 반드시 이룰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혹시 ‘재미없고 힘든 공부를 왜 해야 하나?’ 하고 의문을 갖는 학생들이 있습니까? 또는 ‘신앙생활만 열심히 하다가 다시 오실 주님을 맞으면 되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드는 학생이 있는지요? 학생들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공부의 목적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2. 공부하는 목적을 바르게 정립해야
   
   ‘공부를 왜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라는 설문 조사에 많은 학생이 ‘부모나 교사의 기대 때문에’ ‘대학에 가기 위해서’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해’ ‘친구보다 잘하고 싶어서’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상당수의 학생이 공부를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의무로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이지요. 이것이 요즘의 현실이요,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공부는 누가 시키니까 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는 바로 여러분 자신의 행복을 위해, 여러분이 자원해서 해야 합니다. 옛날에는 그래도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참되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나름대로 이런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얻기 위해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사람들의 물음이 ‘어떻게 하면 더 안락한 삶,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을까?’로 옮겨갔습니다.
   요즘에는 학생들이 대부분 명문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높은 수입이 보장되는 직업을 갖기 위해 공부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명문학교나 고소득이 보장되는 직업은 그 문이 좁기 때문에 치열한 경쟁이 따른다는 점입니다. 선의의 경쟁은 서로에게 긍정적인 자극을 주어 발전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지나친 경쟁은 오히려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공부를 부담으로 느끼거나 친구들을 경쟁상대로만 의식하게 만듭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교육열이 뜨겁다 보니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심리적으로 큰 부담을 지우는 경우도 많습니다.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서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자살하는 극단적인 경우도 있지요. 그러므로 ‘공부 잘하는 비결’을 알기에 앞서서 먼저는 공부의 목적을 바르게 정립해야 합니다.
   공부는 학생의 행복을 위해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학생들에게 최고의 행복은 무엇일까요? 공부의 목적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데에 두는 것입니다. 우리 만민의 학생들은 지혜로워서 대부분 공부도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서 합니다. 참 믿음이 있기에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그런 삶이 얼마나 복된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무엇을 하든 그 행위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보면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말씀하셨지요. 하나님은 자녀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면 그 자녀들도 영광을 받게 하시고 축복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3. 열심히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하나님께 영광
   
   학생들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면 어떤 영광을 주실까요? 신명기 26장 19절에 “여호와께서 너의 칭찬과 명예와 영광으로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그 말씀하신 대로 너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 하신 말씀이 임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당장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할 수도 있고, 쌓은 지식과 갈고닦은 재능을 살려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는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열심히 공부하면 그 자체로도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항상 착실하게 공부하는 모습을 보이면 세상 친구들이 ‘믿음 좋은 친구는 역시 다르다’고 느낍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에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했습니다.
   또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입어서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공부를 잘하면 이를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십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공부도 잘할 수 있구나.’ 하고 세상 사람들도 하나님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더불어 여러분을 인정해 주고 칭찬합니다. 때를 따라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시고 하늘나라에도 상급을 쌓아 주십니다. 장로님, 권사님, 성가대, 기관장뿐 아니라 주 안에서는 학생이라는 신분도 직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부가 학생의 사명이지요.
   아직 학생이기 때문에 어른들처럼 많은 예물을 드리거나 많은 시간을 드려 충성할 수는 없습니다. 대신에 학생의 본분을 다하면 이를 기쁘게 받으시고 축복과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물론 이 말이 교회에서 받은 회장, 기관장, 성가대 같은 사명은 소홀히 하고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할 수만 있다면 주님께 받은 직분도 열심히 감당해서 상급을 더 많이 쌓으면 좋지요. 또 학생의 본분인 공부는 등한시하고 교회에서 주어진 사명만 감당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학생의 때에는 열심히 배우고 익혀서 훗날을 준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섭리입니다.
   전도서 3장 1절에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했습니다. 나무만 보아도 이를 알 수가 있습니다. 어린 나무에 너무 일찍 열매가 맺히면 열매가 부실할 뿐만 아니라 나무도 제대로 성장하기가 어렵습니다. 먼저는 뿌리와 줄기가 견고하고 잎도 무성한 나무로 잘 성장해야 합니다. 꽃도 활짝 피워야 하지요. 그런 다음 때가 되어 맺힌 열매라야 실하고, 나무에도 무리가 가지 않습니다.
   우리 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열매 맺을 준비를 하는 시기입니다. 영양분을 잘 공급해서 신체가 튼튼하게 자라도록 해야 하고 지식과 여러 가지 경험과 훈련을 쌓으면서 내면도 성장시켜야 합니다. 성장기에는 열심히 배우고 익히면서 안팎으로 잘 성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나라에 기둥처럼 쓰이는 튼튼한 재목이 될 수 있습니다.
   
   
   4. 공부는 자신의 꿈을 이루는 수단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더라도 먼저는 학생의 본분을 다하며 감당하는 것이 참된 사명 감당입니다. 이런 충성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도 온전한 상급과 축복을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학생 여러분이 보기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은 참으로 행복해 보일 것입니다. 공부를 잘하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으니 행복합니다. 공부가 꿈을 이루는 수단으로 인식되는 순간 공부에 대한 느낌과 마음가짐은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우리 교회는 해외에서 성도님들이 많이 방문하다 보니, 그들과 소통하고 싶어서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도 있고, 그 마음이 선교의 비전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하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 힘들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즐겁습니다.
   또 우리 교회에는 찬양사역자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사모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이런 학생들은 노래, 무용 등 예능 분야를 열심히 공부하며 재능을 갈고닦습니다. 육적인 재능은 갈고닦아도 영적인 신앙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리 실력 있는 사람이어도 쓰임 받지 못하지요. 학생의 때부터 영육 간에 밸런스를 잘 맞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밖에도 교회에서 하는 일에서,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를 찾아 목표 삼고 공부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지금 쌓는 지식과 경험, 노력 하나하나가 장차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임 받는 귀한 재료가 됩니다. 꼭 레위족이 아니어도 여러분의 꿈과 목표를 멋지게 이루어서 세상에서도 인정받고 칭찬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면 이 또한 교회와 하나님의 기쁨이 되지요.
   공부에 대한 바른 생각을 가지고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걸음을 인도하시고 꿈을 아름답게 이루어 가게 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든지 그것은 과거입니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요. 그러나 현재의 나를 바꾸면 이후의 시간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고마워요, 미안해요, 열심히 할게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긍정적인 말과 행함으로 바꾸면 일터나 가정에서 활기가 생기고 즐거워지지요. 나아가 진리의 마음으로 변화되면 세상일을 할 때도 기쁨과 감사, 용서와 사랑으로 행하니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인정받게 됩니다.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변화되면 삶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죽은 것도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여러분과 함께하시면 무엇을 못하겠습니까. 우리 성도님들은 주님 안에 꿈꾸고 성령과 함께 일하여 멋지게 꿈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 혼자서는 어렵지만, 우리의 능력이신 주님으로 인해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믿음과 소망으로 더 힘차게 나아가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6년 4월 26일 주일)
* 사회: 정진영 목사
개회찬송 30장 1절
성시교독 45번
찬송 404장
기도 황금란 목사
성경봉독 야고보서 3:17~18, 잠언 9:10
찬양 굳건한 반석이시니
임마누엘성가대
설교 공부 잘하는 비결(2)
당회장 이수진 목사
찬송 453장
주일 저녁예배 (2026년 4월 26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김영석 목사
대표기도 장정미 전도사
성경봉독 고린도전서 3:3~9
특송 김진희 권사
설교 고린도전서 강해(13) -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
당회장 이수진 목사
수요 예배 (4월 29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정현진 목사
대표기도 정규원 목사
성경봉독 잠언 8:13
설교 악을 미워하는 것(4)
이미영 목사
금요 철야예배 (5월 1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김상휘 목사
대표기도 김순오 장로
성경봉독 창세기 6:16~18
찬양 샬롬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창세기 강해(99) - 노아의 방주②
이재록 원로목사
새벽 예배
인도 정진영 목사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6-04-26 2026년 4월 넷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당회장님 동정

● 당회장님의 초청으로 행복한 겟세마네 기도처 행사가 있습니다.
※ 5월 1일(금): 남·여선교회 및 청년·가나안 선교회 연합회장단과 선교회장단, 지역장·조장·구역장 연합회 임원
※ 5월 4일(월): 2025년 기준으로 열매 내신 일꾼
※ 5월 5일(화): 학생주일학교(중·고등부)

● 당회장님의 신앙칼럼이 「동아일보」, 「중앙일보」, 「기독선교신문」, 「서울뉴스통신」, 「동방일보」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교회 소식

● 만민뉴스 중국어(634호), 태국어(104호), 말레이어(50호), 힌디어(68호) 신문을 온라인으로 발행하였습니다.
(만민뉴스 홈페이지 www.manminnews.com)

● 콜롬비아, 페루 만민교회 창립 기념예배와 목회자 세미나를 위한 출장이 있습니다.
※ 출장자: 강사_이미경 목사, 통역 및 업무_장지현 자매, 특송_서승원 찬양선교사
※ 출장기간: 4월 27일(월) ~ 5월 7일(목)

● 사랑하는 성도님들의 행복한 신앙생활을 위해 만민라디오 「좋으신 하나님」 110회를 만민중앙교회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오늘 오후 5시에 업로드합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관심과 청취 바랍니다.
※ 110회 라디오 진행자: 이미경 목사

● 교회 직원(주의 종, 레위) 조회 및 법정 의무교육이 4월 27일(월) 오전 9시 30분, 3층 성전에서 있습니다. 레위 직원은 조회 후 성전 대청소가 있습니다.

● 원로목사님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고) 전자책(e-book) 및 오디오북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지교회 소식

무안만민교회 창립 29주년 기념예배
※ 일시: 4월 26일(주일) 오후 3시 30분, 강사: 이미영 목사

새대전만민교회(담임 길태식 목사) 창립 2주년 기념예배
※ 일시: 5월 3일(주일) 오후 3시, 강사: 박형렬 목사


● 교구 소식

5교구 남장년 연합구역예배/ 4월 30일(목) 오후 9시, 이춘우 집사댁(설교: 최영신 교구장)


● 기관 소식

아동주일학교
어린이 주일예배/ 5월 3일(주일) 오후 1시 30분, 사택예배실
※ 강사: 이미영 목사, 만민중앙교회 유튜브 생방송으로 방영


● 감사드립니다.

강단헌화/ 여선교회(꽃꽂이 봉사: 예배국 꽃꽂이부, 시설관리국)
주간 성경구절
2026-04-26
[주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잠 3:15]
2026-04-27
[월요일]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무릇 너의 얻은 것을 가져 명철을 얻을지니라 [잠 4:7]
2026-04-28
[화요일]
지혜 있는 자의 교훈은 생명의 샘이라 사람으로 사망의 그물을 벗어나게 하느니라 [잠 13:14]
2026-04-29
[수요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약 3:17]
2026-04-30
[목요일]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약 3:18]
2026-05-01
[금요일]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마 12:19]
2026-05-02
[토요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마 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