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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공과
2026-05-29 제22과구세주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요한복음 1:1~4
읽을말씀 : 요한복음 1:1~4  |  외울말씀 : 요한복음 3:16 | 참고 말씀: 빌립보서 2:6~8
교육목표 :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로서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한다.


   성경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약 성경은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앞서 전하였고, 신약 성경은 이 땅에 오셔서 구약의 예언과 구속 사업을 성취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의 근본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우칠 수 있지요(요 1:2~3). 만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근본을 알지 못하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지 않는다면 어찌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혹여라도 예수님을 세계 4대 성인이나 위대한 선지자 중에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결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참된 신앙인이 되려면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왜 예수님만이 그리스도이신지 정확히 알고 믿어야 합니다. 이를 알기 위해 태초로 거슬러 올라가 예수님의 근본부터 살펴보겠습니다.
   
   
   1. 사랑으로 시작된 태초의 비밀
   
   요한복음 1장 1~3절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태초는 사람의 시간 개념으로는 이해할 수도 없는 아득히 오래전 일입니다. 천지 만물이 창조되기 전, 그때에는 우주가 하나였고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름다운 지구도, 푸른 하늘도, 별들도, 사람도, 동물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광활한 우주의 주인으로 계셨지요.
   이처럼 태초에 하나님은 어떤 형체가 없이 영롱한 빛으로 온 우주를 감싸고 그 안에 소리를 머금고 ‘말씀’으로 계셨습니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홀로 우주 공간을 다스리시던 하나님께서는 어느 때엔가 이러한 마음을 품으셨습니다. ‘이 넓고도 오묘한 공간에서 서로의 마음을 알아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고 감동이 될까….’ 하시며 한 가지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바로 하나님과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를 얻으려는 계획입니다. 마치 농부가 땅에 씨를 뿌리고 열심히 가꿔 열매를 거두기 위해 농사를 짓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형상을 닮은 참 자녀를 얻기 위해서 ‘인간 경작’을 계획하셨습니다.
   그래서 영롱한 빛과 웅장한 소리로 계시던 태초의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을 위해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존재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이라는 거대한 계획의 총감독으로서, 성자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구세주로서, 성령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사람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보혜사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입니다.
   때가 이르자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창 1:26) 하시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담긴 생기를 불어넣어 하나님 마음을 닮은 영적인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름답고 풍요로운 에덴동산을 창설하여 첫 사람 아담을 이끌어 들이시고 만물의 영장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축복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에게 금하신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 곧 선악과는 먹지 말라고 하셨지요. 창세기 2장 16~17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셨습니다.
   이는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을 상징하는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죄로 사망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아담에게 명하신 후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끝없이 넓은 에덴동산에 아담 한 사람만 있는 것이 좋지 못하여 여자를 창조하시고 돕는 배필로 주셨습니다. 첫 사람 아담은 아내 하와와 함께 에덴동산에서 많은 자녀를 낳으며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오랜 세월을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간교한 뱀의 유혹을 받은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고 남편인 아담에게도 줍니다. 아담은 하나님 말씀을 명심하지 못한 채 하와가 주는 선악과를 받아서 먹었습니다(창 3:6). 이로써 그들은 ‘정녕 죽으리라’ 하신 하나님 말씀대로 영이 죽고 말았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의 형상을 잃고 더는 에덴동산에서 살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결국 아담과 하와는 범죄함으로 하나님이 주신 권세와 축복을 잃고 에덴동산에서 이 땅으로 쫓겨나 험난한 인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범죄한 아담의 후손인 모든 사람도 죄성을 이어받아 영원한 사망인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태초의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을 계획하실 때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존재하시면서 만세 전부터 인간 구원의 길을 예비하셨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2.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성자 하나님께서는 사망의 길로 가는 인류에게 참 생명을 주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온 세상과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으로 오신 예수님입니다. 2천여 년 전, 예수님은 이스라엘 베들레헴에 있는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 구유에 누이셨지요.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 왜 초라한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셔야 했을까요?
   첫 사람 아담은 영과 혼과 육으로 지음 받아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죄를 범한 후에는 ‘정녕 죽으리라’ 한 대로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고 말았습니다. 이로써 하나님과의 교통이 단절되었습니다. 이후 원수 마귀 사단의 주관 아래 아담의 후손들은 점점 정욕을 좇아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전 3:18). 이러한 인생들의 죄를 대속하고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은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셨지요.
   요한복음 6장 51절에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을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마음에 양식 삼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양식을 먹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듯이 사람의 영도 영의 양식을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하나이시며 말씀 자체이신(요 1:1, 14)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짐승과 같은 인류에게 생명의 양식이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초라하게 태어나셨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곳에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가득했고, 수많은 천군 천사가 함께하며 구세주의 탄생을 기뻐했습니다. 그날 밤 들에서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은 천사에게서 구세주의 탄생 소식을 전해 듣고 찾아와 아기 예수님께 경배드렸습니다(눅 2:8~20).
   예수님은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셨지만 부모의 정자와 난자가 결합되어 잉태되신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되신 분입니다. 범죄한 아담의 후손이 아니기에 원죄(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죄)가 없으며 성장하면서도 하나님 말씀대로만 사셨기 때문에 자범죄(스스로 짓는 죄)도 없으셨습니다. 어린 시절에도 틈만 나면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준비하셨지요.
   마침내 30세가 되자,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는 한편,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치료하셨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을 온전케 하셨고,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 이상을 먹이셨습니다. 또 물 위를 걸으며 바람과 파도를 잔잔케 하는 등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행하셨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 말씀의 권세와 능력에 놀라면서도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하루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는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이때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서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인정하십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경계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음 주에 이어서 공부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지가 얼마나 되었을까요? ( 년)
   
   2. 신앙인의 기본 책자 15페이지를 보고 다음 약자의 뜻을 써 보세요.
   ① A.D. (Anno Domini: )
   
   ② B.C. (Before Christ: )
   
   3. 요한복음 3장 16절, 마태복음 16장 16절, 빌립보서 2장 6~8절을 찾아 함께 읽어보세요. 그리고 공통점은 무엇인지 찾아보세요.
   ( )
   
   
   ● 알고 넘어갑시다!
   
   태초(창세기) VS 태초(요한복음)
   창세기 1장 1절에서의 ‘태초’는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시점을 가리킨다. 반면에 요한복음 1장 1절에서의 ‘태초’는 창조 이전, 사람의 한계로 이해할 수 없는 아득히 오래전을 말하므로 이 두 말씀에서 나타내는 ‘태초’는 전혀 시점이 다르다.
지난 주 설교요약
2026-05-24 공부 잘하는 비결(5) - 이수진 목사 약 3:17-18, 잠 9:10
오늘은 공부 잘하기 위한 세 번째 조건인 ‘잡념 없이 공부에 집중하는 능력’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공부 잘하기 위한 두 번째 조건인 공부하기 좋은 환경이 아니더라도 믿음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환경을 다스리는 사람이 되자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공부 잘하기 위한 세 번째 조건인 잡념 없이 공부에 집중하는 능력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집중력의 필요성
   
   아무리 책상 앞에 오랜 시간 앉아 있어도 집중하지 않으면 공부 성과가 나지 않습니다. 잡념 속에서 공부하는 일은 마치 수없이 화살을 쏘아 대지만 표적을 하나도 맞히지 못하는 것처럼 헛된 일일 뿐이지요. 그러므로 이제 열심히 공부하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잡념 없이 집중하는 훈련을 반드시 쌓아야 합니다. 이는 우리 학생들뿐 아니라 장년 성도님들에게도 꼭 필요한 훈련입니다.
   특히 기도하고 예배드릴 때 잡념 없이 집중하여 드리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잡념 속에 중언부언 기도하거나 졸음에 빠지면 아무리 매일 성전에 나와 기도한다고 해도 믿음의 성장도, 응답도 더딜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어야 할 시간에 마음과 생각이 잡념 속을 헤매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받으실 수가 없지요. 그러면 매일, 또는 매주 투자하는 그 수많은 시간이 얼마나 헛됩니까.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 만에 끝낼 일도 잡념에 사로잡혀 있으면 이틀, 사흘도 붙잡고 있어야 하지요. 무엇보다 이 잡념부터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경험해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잡념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 떠오릅니다.
   
   
   2. 세상 것들이 잡념을 부르는 이유
   
   ‘잡념’이란 간단히 말해서 여러 가지 쓸데없는 생각들입니다. 학생들은 주로 재미있는 오락이나 멋있는 연예인, 이성 친구 등 세상 것들이 잡념으로 떠올라서 고민할 것입니다. 여기서 세상 것들이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서 비롯된 모든 것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는 온갖 비진리요, 육이지요.
   그렇다면 왜 세상 것들이 잡념을 부를까요? 세상 것들은 대체로 자극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고 들을 때 강한 느낌과 함께 기억장치에 입력되기가 쉽지요. 강한 느낌과 함께 입력된 것일수록 기억장치 속에 깊이 심겨지고 오래갑니다. 비유를 들면 논에 모를 심을 때 모를 얕게 심으면 물결이 일 때 쉽게 뽑혀 버립니다. 반대로 흙 속 깊이 심으면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잘 자라지요. 마찬가지로 별 느낌 없이 보고 들은 것은 깊이 심겨지지 않기 때문에 설령 기억에 남아도 하루, 이틀, 사흘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금방 빠져나갑니다. 기억장치에 깊이 심긴 지식들은 오래 남지요. 바로 ‘느낌’이 기억장치에 지식을 깊게 심는 작용을 합니다.
   예를 들어 어렸을 때 전쟁을 겪은 분들 중에는 그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하고 생생하게 기억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날 날씨는 어땠는지, 어떤 옷을 입고 있었는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어제 일처럼 또렷이 기억하지요. 그 일을 잊고 지내다가도 그 경험과 조금이라도 상관있는 것을 접하면 그때의 일이 빈번하게 떠오릅니다. 우리나라 어르신들 중에는 6월이 되면 6·25 곧 한국전쟁이 터져서 피난 가던 날이 떠오른다는 분들이 계십니다.
   여러분이 세상 것을 접할 때 별 느낌이 없었다면 보거나 들은 것을 금방 잊어버립니다. 반면에 어떤 강한 느낌을 가졌다면 그것이 잘 기억되고 나중에 다시 떠오릅니다. 또 우리 학생들은 두뇌의 작용이 활발해서 대부분 어른들보다 기억을 잘합니다. 특히 공부할 때 지루하게 느껴지면 이전에 좋은 느낌과 함께 입력한 세상 것들이 더 잘 떠오릅니다. 그렇다면 과연 세상 것들이 어떻게 잡념이 되는지 몇 가지 유형을 살펴보지요.
   
   
   3. 잡념의 유형
   
   첫째, 세상 것들에 대한 호기심이 잡념을 낳는 경우입니다.
   호기심이란 새롭고 신기한 것에 이끌리는 마음입니다. 우리 학생들은 호기심이 많을 나이입니다. 어른들에 비해 세상에 처음 접하는 것도 많고 신기한 것도 많지요. 호기심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세상 비진리의 것들에 호기심을 느낀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학생이 영화에서 연인들이 스킨십하는 장면을 난생처음 보았습니다. 큰 충격을 받았지요. 그 후 수업 시간, 공부 시간 할 것 없이 자꾸 그 장면이 떠오릅니다. ‘이성과 스킨십을 하면 어떤 느낌일까?’ 호기심이 발동하지요.
   여러분이 이렇게 비진리의 것에 호기심을 가지면 원수 마귀 사단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이때다!’ 하고 생각 속에 틈타 호기심이 더 왕성해지도록 부추깁니다. 그러면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보지 말아야 할 것들을 또 찾아보게 되지요. 비슷한 장면이 나오는 영상들을 더 찾아서 봅니다. 그럴수록 호기심이 점점 자라고, 그러다가 ‘나도 이성 친구를 사귀어 보고 싶다. 한 번쯤 경험 삼아 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이런 강한 욕구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잡초 덩굴이 쭉쭉 뻗어나가듯이 또 다른 잡념들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나도 연예인처럼 멋있게 꾸미면 이성 친구들이 관심을 가져 줄까? 친구가 예쁜 옷 파는 인터넷 사이트를 많이 알던데, 나는 부모님이 용돈을 많이 주지 않으시니 갖고 싶은 것도 사지 못하니 힘들다.’ 이런 잡념으로 발전합니다. 이렇게 되면 마음과 생각이 공부에서 점점 더 멀어지지요. 더구나 이전에 이성과 스킨십을 가져본 학생은 그와 비슷한 장면을 보면 이전 기억이 느낌과 함께 되살아납니다. ‘그 느낌을 다시 가져보고 싶다.’ 이런 식으로 강한 충동이 일기도 하지요.
   몇 살 때 그런 일을 겪었느냐에 따라서도 느낌이 다릅니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시기가 각기 다르지요. 신체가 성장한 만큼, 정신연령이 높은 만큼 더 강한 느낌이 남았을 것입니다. 또는 그 당시에는 어려서 별 느낌이 없었어도 어느 정도 성장한 후 호기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 호기심이나 욕구를 이기지 못하는 경우 학생의 본분을 벗어나는 행동을 하기도 하고 범죄 하기도 합니다. 초등학생 시절에 우연히 음란물을 접했는데 그 후 계속해서 접하며 호기심을 키워오다가 청소년기에 성범죄를 저지르는 일들도 있지요.
   이처럼 세상 것들에 대한 호기심은 잡념을 낳는다는 사실을 깨달아 원수 마귀 사단에게 속으면 안 됩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세상 정욕을 취하면 멋있어 보이고 즐거운 것처럼 온갖 감언이설로 유혹하지만 이는 거짓말입니다. 세상 것을 취하면 그 당시에는 혹 좋을지 몰라도 결국 허무함과 공허함만 남을 뿐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영원한 사망으로 갈 수도 있지요.
   
   둘째, ‘세상 오락을 즐기며 재밌게 놀고 싶다.’는 마음이 잡념을 부릅니다.
   공부가 지루하게 느껴질수록 이런 마음이 더 간절하지요. 이런 유의 잡념들은 재미, 즐거움 등 세상 쾌락을 추구하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예를 들어 컴퓨터 게임을 너무 좋아하는 학생들은 게임 할 때의 쾌감을 또 느끼고 싶어 합니다. 심한 경우 책의 글씨가 쳐부숴야 할 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공부방이 게임 속 공간으로 보이기도 한다고 합니다.
   어떤 학생들은 친구와 노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머릿속에 그런 생각들로 가득합니다. 책 한 장도 채 보지 못하고 딴생각에 빠져있거나 필기도구 같은 것을 만지작거리며 딴청만 부립니다. 혹여 이런 모습으로 책상 앞에 앉아 있다면 이제 잡념의 실체를 알았으니 잘 물리쳐서 달라진 여러분의 모습을 만들어 가길 바랍니다. 이런 세상의 정욕적인 것, 쾌락적인 것들만 잡념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학생들은 비진리의 감정 때문에 마음의 평정이 깨지면서 잡념에 시달립니다. 친구들과의 관계, 부모님과의 관계, 가정불화 등이 이에 해당할 수 있지요.
   간혹 “우리 자녀가 예전에는 공부를 잘했는데 교회를 다니고 나서 성적이 떨어졌다.”며 걱정하는 부모님들이 계십니까? 본문, 잠언 9장 10절 전반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을 믿고 나서 오히려 공부를 더 못할 수 있겠습니까.
   간혹 그런 학생들이 있는 연유는 크게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는 주 안에서 근심을 하는 경우입니다. 우리 학생들이 비록 어려도 주님을 영접하고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알게 됩니다. 믿음이 자라는 만큼 자신의 죄를 발견하여 버려 나가게 되지요. 이 과정에서 마음의 연단이 따르므로 마음 안에서 치열한 싸움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집중력이 떨어지므로 공부에 전력하지 못해 성적이 떨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학생이 이보다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성적이 떨어집니다. 교회를 다니기는 하는데 마음이 딴 데 가 있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이성 친구를 만나러 교회에 오거나 교회에 왔다가 집에 가야 할 시간에 친구들과 놀러 갑니다. 교회 나가는 것을 핑계로 공부를 소홀히 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성적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교회에 나오는 학생, 충성하는 학생들은 공부도 열심히 합니다. 온 집에 충성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잘 알기 때문이지요. 이런 학생이라면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신앙생활’과 ‘공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가 있습니다.
   잡념을 없애기 위한 방법은 다음 시간에 이어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약에 여러분 앞에 TV가 두 대 있고, 보고 싶은 프로그램들이 나온다면 둘 다 보실 수 있겠습니까? 번갈아 가면서 보면 각각의 내용을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한쪽 TV를 보는 동안에 다른 쪽 TV는 볼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공부와 잡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머릿속에 공부할 내용과 잡념을 동시에 받아들일 수는 없지요. 둘 중 하나만 수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택하시겠습니까?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학생 시절은 잠시 잠깐입니다. 더구나 입시를 코앞에 둔 학생들은 공부할 시간이 얼마 없지요. 신앙생활에서도 잡념으로 인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지 못하며 중심 다한 찬양과 기도를 드리지 못하니 얼마나 큰 손해입니까?
   또 장년 성도님들도 사회생활에서 자기 발전을 위해 공부해야 할 일도 있습니다. 이때 직장생활과 함께 공부하려면 틈을 내야 하니 시간이 넉넉할 리 없지요. 그러니 여러분의 머릿속에서 잡념은 하루속히 다 내쫓고 유익한 지식만 가득가득 채우시기 바랍니다. 요즘은 지식도 재산에 속합니다. 그러니 이롭고 유용한 지식을 차곡차곡 쌓아 세상에서도 성공하고 인정받으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귀히 쓰임 받으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6년 5월 24일 주일) 성령강림주일
* 사회: 노영진 목사
개회찬송 171장 1절
성시교독 63번
찬송 179장
기도 최영자 목사
성경봉독 사도행전 2:1~4
찬양 불같은 성령
임마누엘성가대
설교 성령의 역사
당회장 이수진 목사
찬송 169장
주일 저녁예배 (2026년 5월 24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조수열 목사
대표기도 서덕분 전도사
성경봉독 고린도전서 3:16~18
특송 흰돌성가대
설교 고린도전서 강해(17) - 하나님의 성전
당회장 이수진 목사
수요 예배 (5월 27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정규원 목사
대표기도 박금미 전도사
성경봉독 로마서 8:38~39
설교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강영식 목사
금요 철야예배 (5월 29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임학영 목사- 치유집회 -
대표기도 이미영 목사
성경봉독 열왕기하 5:23~27
찬양 샬롬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
당회장 이수진 목사
새벽 예배
인도 김영순 전도사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6-05-24 2026년 5월 넷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당회장님 동정

● 금주 금요 철야예배 시 치유집회를 인도하십니다.

● 5월 25일(월) ~ 27일(수)까지 치유집회를 위한 성령충만 다니엘 철야를 인도하십니다.

● 당회장님의 신앙칼럼이 「동아일보」, 「중앙일보」, 「기독선교신문」, 「서울뉴스통신」, 「동방일보」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교회 소식

● 만민뉴스 스페인어(325호), 불어(163호), 우르두어(123호) 신문을 온라인으로 발행하였습니다.
(만민뉴스 홈페이지 www.manminnews.com)

● 5월 치유집회가 금주 금요 철야예배 시 당회장님 인도로 있습니다. 준비찬양은 오후 10시 40분부터 시작하며 실시간 간증접수를 받습니다. (☎ 02-818-7300)
자세한 사항은 교회 홈페이지와 모바일 앱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 치유집회를 위한 「성령충만 다니엘 철야」가 5월 25일(월) ~ 31일(주일)까지 진행됩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참석 바랍니다. 월 ~ 수요일까지 생방송으로 진행되며, 준비찬양은 오후 8시 50분부터입니다.

● 성령강림절을 맞아 당회장님께서 인도하신 특별찬양이 '파워프레이즈'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 되었습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관심과 시청 바랍니다.
아울러 오늘 저녁 8시 30분 GCN 방송을 통해서도 함께하실 수 있습니다.

● 맥추감사절(7월 5일)을 맞이하여 학습문답 및 세례문답을 실시합니다.
문답 내용을 숙지하시고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 학습문답: 6월 7일(주일) 오후 2시, 3층 성전
※ 세례문답: 6월 14일(주일) 오후 2시, 3층 성전

● 사랑하는 성도님들의 행복한 신앙생활을 위해 만민라디오 「좋으신 하나님」 114회를 만민중앙교회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오늘 오후 5시에 업로드합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관심과 청취 바랍니다.
※ 114회 라디오 진행자: 이미영 목사

● 교회 직원(주의 종, 레위) 조회가 5월 26일(화) 오전 9시 30분, 3층 성전에서 있습니다.
레위 직원은 조회 후 성전 대청소가 있습니다.

● 원로목사님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고) 전자책(e-book) 및 오디오북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지교회 소식

익산만민교회(담임 김창숙 목사) 창립 26주년 기념예배
※ 일시: 5월 24일(주일) 오후 3시 30분, 강사: 이미경 목사

아산만민교회(담임 오환준 목사) 창립 18주년 기념예배
※ 일시: 5월 31일(주일) 오후 3시, 강사: 이미영 목사


● 감사드립니다.

강단헌화/ 1대대 3교구(꽃꽂이 봉사: 예배국 꽃꽂이부, 시설관리국)
주간 성경구절
2026-05-24
[주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눅 9:25]
2026-05-25
[월요일]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인생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저희를 시험하시리니 저희로 자기가 짐승보다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 [전 3:18]
2026-05-26
[화요일]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 4:7]
2026-05-27
[수요일]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 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딤후 4:8]
2026-05-28
[목요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빌 3:7]
2026-05-29
[금요일]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 3:8]
2026-05-30
[토요일]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빌 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