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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제목
우상의 나라 일본에서 성결의 복음을 듣게 하시고 건강과 행복을 주신 하나님 - 꼬마이 유끼꼬
출처
날짜
1999년 8월 15일 일요일
조회수
8024
뉴스저는1962년 일본 효고현 시소군에서 전신전화회사(NTT)의 직원이던 아버지와 미용사이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나고야에 있는 도오호대학 사회복지학부에 입학한 저는 1982년, 대학 1학년 시절에 같은 서클에서 지금의 남편(코마이 요시아끼 성도)을 알게 되었고 1988년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정신박약자, 자폐증 환자, 간질 환자, 신체장애자, 뇌성마비 환자 등 장애아들을 치료하는 사회복지 기관에서 근무하면서 표면적으로는 건강한 삶을 사는 듯했지만 인생에 대한 불안감으로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직장 상사의 전도로 신앙생활 하던 중

그러던 1994년 어느 날, 직장 일로 전차를 타고 나가노현 이다시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전차에서 마주 보고 앉은 할머니에게서 친근감을 느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할머니께서 전도지를 건네주며 "꼭 읽어 보고 교회에 나가세요"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할머니의 얼굴을 잊을 수 없어 출장을 마치고 돌아와 직장 상사(현재 나고야 만민교회 도끼꾸니 미야꼬 사모)에게 전차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제 말을 들은 미야꼬 사모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료받은 간증을 하면서 함께 교회에 나가자는 것이었습니다.
목의 연골이 돌출되어 양팔이 마비되고 경추디스크로 인해 꼼짝할 수 없었던 미야꼬 사모는 1994년 「일본 나가노현 이다지역 연합대성회」시 강사였던 서울 만민중앙교회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의 안수기도를 받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료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간증을 듣고 저는 1994년 9월 25일 나고야 만민교회에 등록하여 신앙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아들이 「유년성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으나

그러던 1996년 5월 어느 날, 외출을 했다가 집으로 돌아와 보니 둘째 아들인 코오헤이가 심하게 울면서 고통을 호소하였습니다.
"엄마, 다리가 아파요!"
"코오헤이, 왜 그래?"
아이를 일으켜 세우려고 했으나 다리와 손, 그리고 목이 아프다며 일어나 걷지를 못했고, 머리에는 고열이 나면서 식지를 않는 것입니다. 저는 코오헤이가 일 주일 전에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다가 떨어진 것이 생각나 그 일로 뭔가 잘못됐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서둘러 집 근처 정형외과로 데려가서 뢴트겐(X-ray)을 찍었으나 뼈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여전히 아프다고 울고 열도 내리지 않아 등전 보건위생대학병원에 입원시키고 치료를 받았으나 오히려 병세는 심해져 관절과 근육이 급격히 부어오르고 손발, 목 관절을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며칠 후에는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게 되어 휠체어에 실려 다녀야 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유년성 류마티스 관절염」이라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외과 질병이 아니기 때문에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많은 약을 먹여 보았지만 소용이 없자 담당 의사는 "마지막 방법으로 내복약인 스테로이드제로 치료해 보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하지만 스테로이드제는 칼슘 섭취를 방해해서 뼈가 부서지기도 하고 성장이 멈출 수도 있으며 부작용으로 위장병과 간장병을 유발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전혀 그 약을 복용시키고 싶지 않았고, 미야꼬 사모님이 만났던 하나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신슈 성회」에 참석하여 우상을 섬겼던 죄를 회개하니 뉴스이런 막막한 상황을 나고야 만민교회 미야꼬 사모님께 이야기했더니 "며칠 후에 서울 본교회의 당회장이신 이재록 목사님께서 「신슈 지역 연합대성회」를 인도하시기 위해 이다에 오시는데 그 때 믿음으로 치료받자"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에 저는 희망을 걸기로 했습니다.
그 당시 미야꼬 사모님께서 주치의에게 말씀을 드려 외출 허락을 받아 코오헤이를 휠체어에 싣고 이다 시로 향했습니다. 성회에 참석하였을 때 아이가 어찌나 심하게 우는지 집회장소의 맨 뒤에 앉아 통역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결혼 전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모르고 집에 있는 불상 앞에 절을 한 적이 있었는데 강사 이재록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만물의 영장으로 지음받은 사람이 자기들의 손으로 만든 우상을 숭배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며 하나님 앞에 큰 죄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므로 병원에서는 어찌할 수 없다는 질병도 치료하실 수 있으며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마가복음 11:24)는 말씀이 마음에 와 닿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아프다고 우는 아들에게 "코오헤이, 괜찮아. 하나님께서 널 치료해 주실 거야"하고 달래며 열심히 믿음의 고백을 하였습니다.
저는 성회를 통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들을 보았습니다. 어느 할머니는 백내장으로 20여년 동안 거의 보지 못하고 살아왔는데 강사님의 기도를 받는 순간 눈앞이 환해지면서 밝히 보게 되었고, '수사 미쯔오' 성도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중 1500킬로그램의 철판이 그대로 양쪽 다리에 떨어져 뼈가 부스러지는 큰 사고를 당해 힘줄이 끊어지고 신경이 죽은 상태라 걸을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으나 강사님의 기도를 받고는 그 자리에서 목발을 버리고 걷고 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스즈끼 가즈오' 성도는 안 들리던 양쪽 귀가 강사님의 기도를 받고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코오헤이가 휠체어에서 일어나고 뉴스믿음이 성장하니 제 둘째 아들 코오웨이에게도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고통스러워 하루 종일 울어대던 아이가 이재록 목사님께 기도를 받은 후 통증이 사라져 그 자리에서 울음을 그치고 휠체어에서 일어나 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난 「신슈 지역 연합대성회」는 기독교인이 0.4% 밖에 안 되는 일본 기독교계 및 언론들을 놀라게 함으로써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자 아이가 갑자기 고통스러워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하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믿음을 시험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기뻐하면서 감사하였더니 마음이 평안해지고 아이들이 아무리 짜증을 내도 웃음을 잃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본교회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의 생명의 말씀에 은혜받고 성도들에게 전해 주는 도끼구니 야스히로 목사님과 이다 만민교회 유승길 목사님의 수고의 결과였습니다. 특히 한국에서 파송받은 유승길 목사님은 당회장 목사님의 설교 내용을 번역하거나 일본어로 녹음하여 성도들에게 돌리기도 하고 심방해 주며 복음을 전하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고 계셨지요.
한편, 1997년 4월에 퇴직을 하게 된 저는 시간적 여유가 생겨 시간이 날 때마다 나고야 만민교회에서 매일 밤 열리는 다니엘 철야 기도회에 참석하여 기도하면서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이런 작은 노력들을 하나님께서는 기뻐 받으시고 마음의 소원을 응답해 주셨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잘 듣지 못하던 류우헤이의 귀도 깨끗이 치료받고

태어날 때부터 삼출성(渗出性) 중이염으로 잘 듣지 못하던 첫째 아들인 류우헤이의 귀가 잘 들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신 것입니다. 어느 날, 1층에 있던 아이가 2층 방에서 울리던 탁상시계 자명종 소리를 듣고 올라가 끄고 내려오는 것이 아닙니까? 큰 아이의 귀가 치료받은 것을 통하여 제 믿음이 부쩍 커졌고 기쁨도 충만하던 때에 「제5회 이재록 목사 2주연속 특별 부흥성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코오헤이도 온전히 치료받고자 금식과 기도로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1997년 5월,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며 일본에 있는 다른 만민지교회 성도들과 함께 서울로 갔습니다. 서울 만민중앙교회에 들어서는 순간 아름답기 그지없는 성전에서 저는 가족처럼 맞아 주는 성도들의 사랑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성회에 참석하여 강사 이재록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께 합하지 못한 제 모습들을 통회자복하니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가지고 일본에서 한국까지 온 저에게 큰 은혜와 능력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오후 환자를 위한 집회 시간에 "주여!" 크게 외치고 큰 소리로 기도를 할 때, 소란하면 잠이 깨서 고통스러워하던 아이가 편안하게 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잠이 깨어서 몸에 손을 대어도 전혀 고통스러워하지 않았고 강사님의 안수기도를 받고 난 다음에는 본당 2층에 있는 외국인 성도석으로 돌아오는 동안 코오헤이가 스스로 계단을 걸어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정상적으로 걷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매년 나고야에서 서울까지 찾아온 정성을 보시고 뉴스휠체어에서 일어나 걸을 수는 있어도 상반신 근육이 원래 기능을 회복하지 못한 채로 남아 있었으나
1998년 5월에 열린 부흥성회에 참석하여 온전히 치료받았습니다. 이재록 목사님께 기도를 받으면서 "오늘 치료받아 걷고 뛰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라는 고백을 하였는데 코오헤이가 자유롭게 걷고 뛸 수 있게 되고 마침내 유년성 류마티스 관절염을 깨끗이 치료받은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유전적으로 피부가 좋지 않은 코오헤이는 아토피성 피부염으로 항상 팔이 심하게 가렵고 피부가 지진이 난 땅처럼 갈라져 진물과 딱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는데 강사님의 기도를 받고 깨끗이 치료받았습니다. 그래서 현재는 소금탕에 들어갈 수도 있게 되었지요. 이제는 건강한 몸이 되어 초등학교에 다니는 코오헤이를 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1998년 9월, 저는 셋째 아들 타이헤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도 아토피성 피부염 증세가 있었습니다.
역시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료받고자 기도하다가 1999년 5월, 저는 셋째 아들을 데리고 서울에 와서 「2주연속 특별 부흥성회」에 참석하였지요. 강사 이재록 목사님의 기도를 받으니 피부가 헐고 피가 섞인 진물이 나오며 악취를 풍기고 있던 타이헤이도 깨끗이 치료를 받아 갓난 아기의 피부처럼 되었습니다.
아토피성 피부염으로 고통받던 셋째 아들 코마이 타이헤이가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치료받아 깨끗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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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주시며 가정복음화로 축복하신 하나님

이제 지난 세월을 돌아 보니 모든 것이 제 믿음을 키우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세 아들이 모두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료받은 것을 보고 남편도 믿음을 갖고 성실히 교회에 다니며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고, 부정맥(심장이 규칙적으로 고르게 박동하지 않는 상태)으로 평소 병원 출입이 잦으시던 할머니도 손자 세 명이 모두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료받은 것을 보고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매일 나고야 만민교회의 도끼꾸니 야스히로 목사님께 전화를 걸어 기도를 받아 부정맥을 치료받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하나님께서 왜 이리 저를 사랑하시고 크신 은혜를 주시는지 감당할 길이 없습니다. '만일 성결의 복음을 알지 못했다면 지금 우리 가정의 모습은 어떨까?'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얼마나 만민중앙교회가 좋고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과 성도들이 사랑스러운지 세 번째 서울을 찾았을 때에는 그대로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요.
그러나 저는 수많은 일본 사람들에게 아름답고 놀라운 성결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바임을 믿습니다. 그래서 기쁨으로 일본에 돌아와서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면서 속히 주님이 원하시는 진리의 사람이 되고 하늘의 능력을 입어 일본 복음화에 기여하게 해 주시라고 뜨겁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를 만나 주시고 영생과 천국을 주시며 응답과 축복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생명의 말씀으로 인도해 주신 서울 본교회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