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결핍을 경험해 본 사람이 풍요 속에 있는 사람보다 더 깊은 감사를 고백하곤 합니다. 부족함 없이 자란 아이와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에게 똑같은 선물을 주었을 때, 그 기쁨의 크기가 다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풍요에 익숙한 아이에게 선물은 당연한 일상이지만, 결핍을 아는 아이는 그 물건이 없었을 때와 갖게 되었을 때의 양면을 모두 경험했기에 그 기쁨과 행복을 더 크게 느끼지요.
이처럼 어떤 가치의 진면목을 발견하려면 그와 반대되는 경험, 즉 ‘상대성’을 마주해야 합니다. 미움을 겪어본 후에야 사랑의 따스함을 절실히 깨닫고, 짙은 불행의 터널을 지나온 뒤에야 평범한 일상의 행복이 얼마나 귀한지 알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인류의 시조인 첫 사람 아담도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와 영생의 복을 누리며 에덴동산에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그 모든 것은 땀 흘려 얻은 소산이 아닌, 거저 주어진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에덴에는 불행이 없었기에 아담은 역설적으로 행복을 알지 못했습니다.
미움을 겪어본 적이 없기에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체감할 수 없었고, 죽음을 경험한 적이 없었기에 생명의 소중함 또한 깨닫지 못했습니다. 결핍과 고통이라는 상대성을 몰랐던 아담은 결국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하신 하나님의 경고를 가볍게 여기고 선악과를 먹는 불순종의 길을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아담의 후손인 온 인류는 죄인이 되었으며 세월이 흐를수록 더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죄로 인해 눈물, 슬픔, 질병, 고통, 사망을 겪게 되었지요.
그렇다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아담이 선악과를 먹을 것을 모르셨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눈물과 고통, 슬픔과 죽음을 체험하며 ‘상대성’을 깨달을 것을 아셨기에 오래 참고 기다리셨습니다. 이를 깨달은 영혼들이 훗날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과 행복을 누리며,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게 될 것을 아셨기에 선악과를 두신 것이지요.
진정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라면, 공부가 힘들다는 이유로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안에만 가둬두지는 않을 것입니다. 때로는 거친 세상을 경험하고 고생스러운 배움의 과정을 거치게 하는 것이 진정 자녀를 위한 길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고달픈 인생의 한복판에 두신 하나님의 마음 또한 이와 같은 부모의 마음입니다.
우리 삶에 찾아오는 눈물, 고통, 슬픔은 결코 무의미한 것들이 아닙니다.
우리를 참 행복으로 인도하기 위한 하나님의 거룩한 가르침이 담겨 있으며, 우리를 견고히 빚어가는 거룩한 과정이지요
이러한 창조주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달아 그분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죄로 인해 이 땅에 고통과 사망이 왔음을 기억하며, 어둠을 벗어버리고 빛의 자녀로서 천국을 준비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하나님 앞에 서는 날, 우리를 위해 예비된 아름다운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과 복락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시편 39장 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