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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생의 낙오자에서 만민복지타운 원장이 되기까지 - 한병용 장로
출처
날짜
1999년 12월 12일 일요일
조회수
7190
"돈을 벌어야 한다. 돈을..." 뉴스워낙 가난한 집안이었기에 저는 초등학교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약국에서 잔심부름을 하는 등 일찍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이렇게 어린시절부터 가난을 맛보았기에 어느 누구보다도 부에 대한 욕망이 남달랐습니다. 또한 배움에 대한 열의도 대단해서 중.고등학교를 야학으로 마치고 그 동안 모아 둔 돈으로 경기도 수원에서 의약품 도매업을 시작하였습니다.
비교적 사업 수완이 좋았던터라 신속하게 큰 돈을 만질 수 있었지요. 그러나 부에 대한 욕망은 끝이 없었기에 합성수지 대리점, 아파트 건축 자재 도매업 등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사업 실패로 인생의 낙오자가 되었으나

1985년 당시 부동산 경기가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채 사업을 확장하여 자금 압박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로인해 이곳저곳에서 빚 독촉에 시달렸고, 급기야는 급전을 동원하여 이리저리 막아보았으나 역부족이었지요.
그 해 6월말, 결국 15억 원 규모의 부도를 맞게 되었고, 모든 사업 기반이 하루 아침에 ' 와르르' 무너지면서 인생의 낙오자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부모님을 비롯한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고, 동전 한 푼 없는 저를 어느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이제 부랑아 신세가 되어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병원 영안실을 기웃거려야만 했으며 모든 삶을 포기한 채 아무데서나 잠을 자는 인간 폐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만민중앙교회로 인도받고 삶의 의미를 찾아

1987년 12월말경, 죽지 못해 살아가는 제게 친척 한 분이 찾아와 전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부도난 후로 철저히 밑바닥 생활을 경험하면서 심령이 가난해진 저는 그 권면에 힘을 얻어 1988년 1월 1일 만민중앙교회에 등록하였습니다.
거렁뱅이 신세였던 제가 막상 교회에 와 보니 어색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남루한 제 모습을 보니 '과연 내가 하나님을 믿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성도님들의 모습을 보며 큰 은혜를 받았고, 아무 보잘것없는 제게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주의 종님들과 성도님들의 격려와 배려에 감사와 감격의 눈물이 그칠 줄 몰랐습니다. 제게 교회 차량을 운행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을 뿐 아니라 거처도 마련해 주셔서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신 것이 지요.
무엇보다도 매주 선포되는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의 생명의 말씀은 저를 변화시키기에 충분하였습니다. 말씀을 통해 교만했던 지난날을 회개하며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을 찾게 되었고, 상대의 유익을 구할 때 비로소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히 마가복음 9장 23절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는 말씀은 제게 용기와 꿈을 심어 주는 생명의 말씀이 되었습니다. 노인복지시설인 만민복지타운 건립을 꿈꾸고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삶의 의미와 기쁨을 찾아갈 무렵, '어떻게든 내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해야 할 텐데'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생명을 건져 주신 하나님! 제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일을 알려 주세요." 하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생명을 건져 주셨으니 남은 생명을 다하여 세상에서 소외된 자들, 외로운 노인들, 고아들을 위해 살리라'는 마음의 주관이 강하게 왔습니다. 1993년, 아내 이도순 권사와 뜻을 같이 하여 음식점을 정리한 금액 5천만 원을 건축예물로 하나님께 드리고, 저희 부부는 경기도 안성으로 내려가 부르짖어 기도하며 만민복지타운 건립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얼마 후 평소 구제와 사회봉사에 힘써 오시던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 사업계획을 말씀 드렸더니 쾌히 승낙하시면서 "복지타운을 운영해 가실 때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의지하여 창대히 이루세요."라는 권면의 말씀 또한 잊지 않으셨습니다.
무일푼으로 개원하여 오직 하나님께 의지하니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이어서 처음에는 참으로 막막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직 믿음을 갖고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조상 대대로 있던 땅을 소송을 통해 되돌려 받을 수 있도록 역사해 주셔서 복지타운 개원에 필요한 땅과 재정이 일시에 해결되었습니다.
드디어 1996년 6월 26일 개원예배를 드렸고,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개원 초기에는 나름대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기도에 힘쓰니 모든 것을 형통하게 역사하셨습니다
하루는 쌀이 떨어져 12명의 식구들이 모두 굶어야 했는데, 그 때 밤새 하나님께 물질의 축복을 놓고 기도하였더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침 10시경, 차량 한 대가 마당으로 들어와 황급히 나가보니 본교회 이정님 권사님께서 쌀 한 가마를 싣고 오신 것이 아닙니까. 저와 그 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쌀가마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감사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이뿐 아니라 어떤 때에는 난방용 기름이나 부식, 비품 등이 턱없이 부족할 때에도 필요한 것을 놓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니 곧바로 응답해 주시는 체험을 수없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하나님을 100%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도 100%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고, 지금은 조금도 어려움이 없이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만민복지타운을 운영해 나가고 있답니다.

소외받은 사람들의 구원의 방주, 삶의 안식처로 자리잡아 뉴스만민복지타운의 일과 중 하나가 노인 분들의 기저귀를 갈거나 목욕을 시켜 드리는 일, 대소변을 받아내는 일들인데, 보통 사람들 같으면 역겨워 하루도 견뎌내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제게 베푸신 사랑을 생각하면 아무리 역겨운 냄새라도 향기로운 냄새가 되었고, 그분들이 제 어머니요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만민복지타운을 운영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것은 소외된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노인분들이 예배를 통해 생명의 말씀을 듣고 지난날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교회와 목자와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랬더니 평안과 기쁨이 넘치는 모습으로 눈에 띄게 변화되어 갔습니다. 기도할 줄 모르던 사람들이 기도하는 사람으로 변화되고, 믿음의 고백을 하며 서로서로 격려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볼 때마다 얼마나 기쁜지요.
더욱이 임종 직전에 두 눈에 행복한 눈물을 흘리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천국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희열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답니다.

현재 만민복지타운은 대부분 노인들만 생활하고 있지만 앞으로 고아, 장애자, 농아, 맹아, 그리고 노년에 오갈 데 없는 분들이 여생을 편안히 보낼 수 있는 복지타운이 되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면을 빌어 지금까지 물질과 봉사로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던 저를 구원해 주시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사랑의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생명의 말씀과 훈훈한 사랑으로 인도해 주신 이재록 목사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