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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제목
불임의 고통에서 벗어나 10년 만에 예쁘고 건강한 아기를 낳았어요 - 문은영 집사
출처
날짜
2001년 1월 28일 일요일
조회수
7664
뉴스뉴스1987년, 전남 나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일류 미용사를 꿈꾸며 학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선배 언니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 스물 다섯 살이 되던 해인 1991년 결혼하여 전남 무안에 신혼살림을 차리게 되었지요.

임신 불가 진단을 받고 실의의 나날을 보내던 중

신혼의 단꿈도 잠깐, 결혼 첫해 말 경에 말로만 듣던 기형아를 출산하였는데, 결국 3일 만에 세상을 떠나는 기막힌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왜 내게 이런 일이 …'
저는 참담하고 망연자실한 상태로 며칠을 보내었고, 그 때 남편과 시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앞일이 여간 걱정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남편은 저를 위로해 주느라 애를 썼지만 아쉬운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그러면서 매사에 의욕을 잃고 어깨를 축 늘어뜨린 모습을 보노라면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습니다.
그 후 저희 부부는 악몽과 같은 일을 뒤로 하고 다시 아기를 낳고자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임신은 되지 않았습니다. 하루하루가 어찌나 불안하고 초조한지 제 입장이 되어 보지 못한 분은 아마 그 심정을 모를 것입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마음이 들어 불임환자 치료로 이름이 나 있는 한의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 보았습니다. 며칠 후 나온 진단 결과는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천지가 개벽하는 충격적인 말이었습니다.
"선생님! 무슨 말씀이신지요? 제가 아이를 낳을 수 없다구요?"
"안돼! 절대 안돼! 난 꼭 아기를 낳고 말거야!"
그 당시 제 모습은 절규에 가까웠습니다. 하루도 방에 그냥 앉아 있을 수 없어 불임에 정통하다는 종합병원을 찾아다니며 배란 촉진제를 맞는 등 백방으로 애를 써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일이 이쯤되자 운송업을 하고 있던 남편은 방황하기 시작했고, 평소 믿고 의지하던 친정어머니는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아버지는 병환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시부모님들은 자손이 귀한 집이라 자식의 대를 이어야 한다며 이혼을 종용하기도 했습니다.
그 상황에서의 심적 고통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사람 기피 증세로 시달리며 정신 이상이 될 것 같았고 마침내 하늘을 원망하고 탄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통해 기쁨과 감사가 넘쳐나는 삶으로 변화되고

그러던 지난 1997년 7월, 무안 만민교회에 다니시던 분의 권유로 충남 천안 신한국당 연수원에서 열린 「만민중앙교회 청년선교회 여름수련회」에 참석하였고 그 후 두 세 차례 무안 만민교회 금요철야 예배에 참석하면서 생명력 있고 깨어 있는 교회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매년 5월에 열리는 「이재록 목사 2주연속 특별 부흥성회」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치료받고 응답받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1998년에 열린 「제6회 2주연속 특별 부흥성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성회에 참석한 저는 이재록 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잉태한 사람이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을 비롯한 전세계 곳곳에 있다는 간증을 듣게 되었습니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아이를 낳을 수 없었지만 생명을 주시는 이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체험적인 신앙생활을 해야 되겠다는 마음에 1998년 6월, 무안만민교회에 등록을 하게 되었습니다.
매주 단에서 증거되는 생명의 말씀은 제 삶을 180도로 변화시키기에 충분하였습니다. 말씀에 은혜를 받고 쉬지 않고 기도하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니 항상 기쁨과 감사가 넘쳐났고, 예전의 흐트러지고 무질서했던 언행이 단정하게 정돈되는 등 주변에서도 몰라 볼 정도로 변화되었습니다.
특히 아이 문제로 인해 시어머니와 남편에 대한 미움으로 가득했던 추하고 악한 마음을 말씀을 통해 발견하고 회개하니 남편과 시어머니도 사랑스러워졌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잘 해 드리려고 해도 아이를 못 낳는 아내와 며느리가 되어 있으니 상황이 반전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비록 제게 냉냉한 모습을 보인다 해도 저는 아랑곳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섬기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999년 5월에는 MBC 문화 방송사의 본교회 관련 왜곡 편파 보도로 주변에서는 교회 출석을 심하게 반대했지만 제가 들어 왔던 생명의 말씀과 하나님의 역사를 친히 목도했기 때문에 전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지난 날을 통회자복한 후 이재록 목사님의 권능의 기도를 받으니

그러던 1999년 11월과 12월 사이 이재록 목사님께서 잉태의 축복 기도를 해 주시는 꿈을 세 차례나 꾸게 되었습니다. 꿈을 꾸고 깰 때마다 저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밀려왔고 이재록 목사님께 직접 안수 기도를 받으면 잉태될 것이라는 확신이 왔습니다.
그래서 12월 28일, 송구영신 예배 참석차 서울에 올라온 저는 잉태의 축복을 위해 15일 작정 금식 기도를 하기로 마음먹고 정성껏 준비한 건축예물을 하나님께 드리며 이재록 목사님의 기도를 받았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딸의 마음의 소원을 응답해 주시고 영광받으옵소서"
기도를 받은 후 저는 2000년 신년 초부터 하나님께 믿음을 내보이고자 만민중앙교회 부설 만민기도원 숙소에서 머물면서 오직 기도와 말씀에 전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본교회에서 매일 밤 9시에 열리는 다니엘 철야기도회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지난 날의 삶이 스쳐 지나가며 통회자복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까. 아이를 갖지 못해 "하나님 저는 죄도 없는데 왜 이런 고통을 주시는지요." 하고 원망하며 불평하고 탄식했던 것과 주변 사람들을 미워하고 툭하면 다투었던 일들이 떠오르며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흘러내리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15일 금식 기도를 마쳤는데 순간 마음에 며칠 더 만민기도원에 머무르며 하나님께 매달리면 틀림없이 잉태할 것이라는 믿음이 와서 그대로 행하였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잉태의 축복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돌리기를 원합니다."

"축하합니다. 건강한 아들입니다."

그로부터 약 3개월이 지난 2000년 3월 16일이었습니다. 몸에 이상이 있어 이내 약국에 들러 임신 테스트를 해 보았는데 임신 반응이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날아갈 듯이 기뻤습니다. 정밀 검사를 위해 바로 그 날 무안 군내에 있는 윤 산부인과에 들렀습니다. 검사를 마친 후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놀라운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임신 7주입니다."
결혼 후 10년 만에 임신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저는 불임의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한 나날을 보내면서 열심히 교회와 목자를 섬기면서 충만한 신앙생활을 해 나갔습니다. 드디어 10개월이 지난 2000년 10월 26일, 건강한 아들을 출산하였습니다.
"축하합니다. 건강한 아들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담당의사 선생님께서 "자궁 구조가 기형이라서 임신 확률이 극히 희박한데 기적입니다. 너무 소중한 아이 이니 잘 키우세요."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남편은 하나님의 역사를 인정하며 삶의 활력을 찾게 되었고 시어머니도 '그 동안 고생 많았다.'는 말로 미안함과 기쁨을 대신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선물로 주신 아이를 통해 가정이 화목하게 되었고, 제가 경영하고 있는 미용실에도 축복이 넘쳐나 연일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답니다.
모든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생명의 말씀과 권능의 기도를 통해 축복의 길로 인도해 주신 이재록 목사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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